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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

최장수 은행장 출신, 선진금융 전도사
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 2016-06-22 10: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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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
▲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하영구는 1953년 11월26일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씨티은행 서울지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씨티은행 한국 투자금융그룹 대표, 아시아라틴아메리카지역본부 임원 등을 거쳐 씨티은행 한국 소비자금융그룹 대표에 올랐다.

한미은행장에 발탁됐으며 한국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하자 한국씨티은행장에 올라 15년 동안 은행장으로 일했다.

현재 전국은행연합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한국인 최초 씨티은행 소비자금융그룹 대표, 은행권 최초 40대 은행장, 한국씨티은행 초대 은행장, 국내 최장수 은행장 등 ‘최초’ ‘초대’ ‘최장’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외국계은행에서 오래 근무해 ‘선진금융의 전도사’로 불린다.

수익중심의 경영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은행장에 올랐을 당시 영업전략회의에서 던진 첫 질문은 “그래서 얼마 벌 수 있습니까?”였다고 한다.

권위보다 실무를 챙기는 꼼꼼한 업무 스타일이라고 전해진다.

한미은행장 시절 “격식에 얽매인 의전은 비효율적 요소가 많다”며 수행비서를 따로 두지 않고 비서실을 없앴다. 본인이 직접 일정을 관리하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직접 작성하는 등 기존의 격식을 파괴했다고 한다.

소탈한 스타일로 소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은행장 시절 직원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직접 축하메시지를 보내고 자주 구내식당을 찾아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는 등 소탈한 모습으로 소통에 힘썼다고 한다.

한국씨티은행장일 때도 매주 금요일 ‘디너미팅’을 통해 직원들과 소통을 이어갔다고 전해진다.

매년 여름 ‘희망의 집짓기’ 행사에 직원들과 함께 참여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집을 짓는 봉사활동을 펼쳤다.

2014년 한국씨티은행은 서로를 부를 때 이름 뒤에 직책 대신 ‘님‘을 붙여 부르는 운동을 벌였는데 당시 하영구는 자신을 ‘영구님’으로 부르지 않으면 벌금을 받겠다는 규칙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은행연합회장이 되고서도 ‘소통위원회’를 만들어 매달 직원들의 생일을 챙겨주고 쉬는 시간에 음악을 틀어주는 등 직원들과 소통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의 능력을 중시하여 여성인력 발굴과 활용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씨티은행장 시절 ‘한국여성지도자상’을 만들어 여성권익향상을 위해 힘쓴 여성지도자들을 발굴했다. 2007년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을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으로 발탁하기도 했다. 은행연합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김혜경 자금시장부장을 상무이사로 승진시켜 은행연합회 첫 여성임원을 배출하는 등 여성의 지위향상에 힘을 쓰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1년 씨티은행 서울지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씨티은행에서 기획부 심사역, 자금부 수석딜러, 한국 자금담당 총괄이사, 한국 투자금융그룹 대표, 아시아라틴아메리카지역본부 임원 등을 거친 뒤 1998년 씨티은행 한국 소비자금융그룹 대표에 올랐다.

2001년 한미은행장에 발탁되며 은행장을 시작했다.

2004년 한국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하자 한국씨티은행장에 올라 2014년 10월까지 한국씨티은행장을 역임했다.

2010년 한국씨티금융지주가 출범한 뒤 2014년까지 한국씨티금융지주회장도 겸임했다.

2014년 12월부터 제12대 전국은행연합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0년과 2002년 재정경제부 장관의 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의 은행분과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 학력

1972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서울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땄다.

◆ 가족관계

부인 조미원 여사와 사이에 딸 셋을 두고 있다.

◆ 상훈

2002년 한국증권거래소 주관 ‘2002년도 기업지배구조 모범최고경영자상’을 받았다.

2016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주관 ‘빛내자상’을 받았다.

◆ 상훈

2002년 한국증권거래소 주관 ‘2002년도 기업지배구조 모범최고경영자상’을 받았다.

2016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주관 ‘빛내자상’을 받았다.

어록


“성과연봉제는 금융권 생존의 문제와 연결해서 봐야 합니다. 은행의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반면 인건비 부담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6/06/13,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1981년 씨티에 입행했을 때 두 분의 여성 임원이 있었어요. 극도로 보수적이던 당시 금융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저도 처음에 놀랐어요. 하지만 자연스럽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글로벌 기업 문화를 흡수할 수 있었어요. 사람을 평가하는 데 배경, 학력, 인종, 성별은 중요치 않아요. 중요한 건 능력이에요.” (2015/08/2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아내가 재테크를 하고 있다" (2015/05/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재테크를 어떻게 하고 있냐는 질문에)

“글로벌 씨티그룹과 국내 은행의 보상정책이 달라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05/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씨티은행 재직 당시 고액연봉 논란에 대해)

"은행장 시절과 비교해 금융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은행권 전체를 기준으로 당국과 금융사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아내가 요즘 나에게 '예전에는 씨티은행에 매달려 사는 씨티 며느리였는데 이제는 온 동네 일을 다 챙기는 동네 며느리가 됐다'는 핀잔을 준다." (2015/03/29,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금융은 신뢰다. 고객의 신뢰와 시장의 신뢰, 금융 당국의 신뢰가 없으면 금융회사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특히 고객의 신뢰가 없으면 금융은 뿌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013/03/29,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성과연봉제를 전 직원들에게 확대하는 것은 한국적인 정서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이 있다” (2011/07/07, SC제일은행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보수 자체가 많고 적은 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보수체계를 정하면서 회사에 과도한 리스크가 있지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 주주에 부담을 주는 대가로 보수가 커지는 것은 고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보수 자체가 많으냐 적으냐는 시장이 더 잘 알 것입니다.” (2009/09/08,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관련한 과도한 보수에 대해)

"주가상승을 위해 성장성 있는 비즈니스 영역이 필요한 씨티본사가 한국씨티은행을 팔 이유가 전혀 없다. 매각설에는 음해성이 포함돼 있는 것 같다." (2009/03/19,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융회사의 핵심업무는 아웃소싱을 제한하고 있는데 그 범위가 너무 광범위합니다. 아웃소싱이 가능한 업무가 확대되면 금융업의 고비용 문제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2008/01/09,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만난 자리에서)

“나도 젊은 시절에 운동을 했지만 합병은행의 이름을 한미가 아니라 씨티로 결정한 것은 애국심의 발로였다. 외국인들이 서울에 왔을 때 씨티의 로고를 보고 어떻게 느끼겠는가. 아, 이 나라가 그만큼 세계화가 많이 된 나라, 씨티가 투자할 정도로 안정적인 나라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2006/06/28,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와 최대 패스트푸드 전문점 맥도날드가 한국에 들어와서 어떻게 됐느냐. 월마트는 이마트에, 맥도날드는 롯데리아에 밀렸다. FTA에 대한 불안감은 과도한 면이 있다. FTA를 해도 금융부문은 문제없다.” (2006/06/28,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결혼에 비유한다면 한미은행과 씨티뱅크는 국제결혼을 한 부부다.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조와 대화를 통해 노사 문제를 해결하겠다.” (2005/10/31, 한국씨티은행장 취임 1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은행 전쟁이라고요? 저는 평화주의자입니다. 원칙에서 벗어나 서로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전쟁은 하지 않겠습니다.” (2005/01/0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씨티은행은 외국계은행이 아니다. 가장 세계적이면서 가장 한국적인 은행이 되겠다.” (2004/11/02, 한국씨티은행 출범 기념 기자회견장에서)

“경영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 (2004년 한미은행 노조 파업당시)

“‘자기가 어떤 업무를 할 것인가‘는 본인이 결정하지 못하더라도 ’주어진 업무를 어떠한 자세로 해결해 가느냐‘는 각자의 결정에 달려 있다.” (2003/08/07,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회사가치 극대화가 아니겠는가. 고객만족과 직원만족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겠다.”
(2001/05/17, 칼라일이 한미은행장으로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전 세계 1억 명의 고객을 지닌 씨티은행의 최우선 경영모토는 ‘고객우선’이 아니라 ‘주주이익’이다. 경영을 잘해서 주가를 올려 주주이익에 기여하는 게 스톡옵션을 받는 경영진이나 종업원, 고객, 지역사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2001/03/04, 씨티은행 한국지점 대표 당시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 평가

한국인 최초 씨티은행 소비자금융그룹 대표, 은행권 최초 40대 은행장, 한국씨티은행 초대 은행장, 국내 최장수 은행장 등 ‘최초’ ‘초대’ ‘최장’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외국계은행에서 오래 근무해 ‘선진금융의 전도사’로 불린다.

수익중심의 경영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은행장에 올랐을 당시 영업전략회의에서 던진 첫 질문은 “그래서 얼마 벌 수 있습니까?”였다고 한다.

권위보다 실무를 챙기는 꼼꼼한 업무 스타일이라고 전해진다.

한미은행장 시절 “격식에 얽매인 의전은 비효율적 요소가 많다”며 수행비서를 따로 두지 않고 비서실을 없앴다. 본인이 직접 일정을 관리하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직접 작성하는 등 기존의 격식을 파괴했다고 한다.

소탈한 스타일로 소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은행장 시절 직원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직접 축하메시지를 보내고 자주 구내식당을 찾아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는 등 소탈한 모습으로 소통에 힘썼다고 한다.

한국씨티은행장일 때도 매주 금요일 ‘디너미팅’을 통해 직원들과 소통을 이어갔다고 전해진다.

매년 여름 ‘희망의 집짓기’ 행사에 직원들과 함께 참여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집을 짓는 봉사활동을 펼쳤다.

2014년 한국씨티은행은 서로를 부를 때 이름 뒤에 직책 대신 ‘님‘을 붙여 부르는 운동을 벌였는데 당시 하영구는 자신을 ‘영구님’으로 부르지 않으면 벌금을 받겠다는 규칙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은행연합회장이 되고서도 ‘소통위원회’를 만들어 매달 직원들의 생일을 챙겨주고 쉬는 시간에 음악을 틀어주는 등 직원들과 소통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의 능력을 중시하여 여성인력 발굴과 활용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씨티은행장 시절 ‘한국여성지도자상’을 만들어 여성권익향상을 위해 힘쓴 여성지도자들을 발굴했다. 2007년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을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으로 발탁하기도 했다. 은행연합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김혜경 자금시장부장을 상무이사로 승진시켜 은행연합회 첫 여성임원을 배출하는 등 여성의 지위향상에 힘을 쓰고 있다.

◆ 기타

2000년 스노우보드를 처음 배운 뒤 겨울마다 스키장을 찾는 보드 매니아로 알려져 있다.

2001년 9.11테러 당시 미국 뉴욕 월가에 있었는데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 위성복 조흥은행 이사회장, 신동혁 한미은행 이사회장, 박창배 증권거래소 이사장 등 금융권 인사들과 하늘의 도우심으로 화를 면했다는 뜻의 ‘천우신조회’를 결성했다.

2001년 진념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정부주도의 금융지주회사 회장 자리에 '국제금융경험을 가진 40대 젊은 피’를 앉힌다는 목표로 하영구 영입에 들어갔는데 그는 씨티은행과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연봉의 차이 때문에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후 하영구는 금융계에 공석이 발생할 때마다 하마평에 올랐다.

2014년 10월 씨티은행 이사회에 사임의사를 전달하고 KB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윤종규 당시 KB금융지주 부회장과 박빙의 승부를 벌인 끝에 패배했다. 9명이 참여해 6표 이상을 얻어야 하는 투표에서 1차 5대4, 2차 6대3으로 윤종규 후보가 회장직을 차지했다.

하영구는 한 달 뒤인 2014년 11월 은행연합회장 후보에 출마해 제 12대 은행연합회장이 올랐다.

2002년 필립 코틀러 켈로그 경영대학원 교수가 서울에 방문했을 때 켈로그 출신 한국 동문들이 조촐한 모임을 열었는데 당시 하영구는 켈로그 경영대학원 동문회장을 맡고 있었다. 조동만 전 한솔아이글로브 회장,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 이종구 새누리당 국회의원, 남종원 전 매일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 등이 켈로그 경영대학원 출신이다.

서울대학교 무역학과 인맥으로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정태석 전 광주은행장,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 김창록 전 한국산업은행장,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 장병완 국민의당 국회의원, 최지성 삼성그룹 부회장 등이 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등과도 '월가(Wall Street)회' 모임을 통해 교류를 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미국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쓴 ‘문명의 충돌‘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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