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임스는 1962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8살 때 미국 보험사 AIG 지사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괌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IBM과 AT&T 본사에서 근무했다.
비비앙인터내셔널 사장을 시작으로 다양한 기업에서 전문경영인으로서 회사의 회생작업을 주도해 성과를 거뒀다.
야후의 자회사인 온라인 검색광고회사 오버추어가 한국에서 사업을 확장할 때 한국 IT업계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한국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오버추어 아시아지역 총괄사장, 야후코리아 사장,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을 차례로 지냈다.
한국GM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사장에 취임했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한국GM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는 평가를 듣는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소통과 팀워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 때문에 웬만한 일은 부하 직원들에게 위임한다고 한다.
직원들이 보낸 이메일에 즉각 답장을 보내며 중요한 결정도 오래 망설이지 않는다고 한다. 속도가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단 판단이 서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바로 밀고 나가는 편이다.
CEO로 선임됐던 여러 회사들에서 회사 분위기를 이전보다 활기차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 4월 야후코리아 사장으로 선임됐을 당시 야후코리아는 다음과 네이버 때문에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전임 사장이 불명예 퇴진했고 야후코리아를 이끌었던 주요 인력들도 잇따라 회사를 떠났다.
김제임스는 구원투수의 임무를 맡고 경영일선에 투입됐다. 사장 취임 초반 조직개편을 실시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직원들과 면담에 나서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사내 블로그를 만들어 솔직한 의견을 공개하고 “누구든 블로그나 이메일 또는 직접 사장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권했다. 그 뒤 한 직원이 “사무실에 있는 음료수 자동판매기를 돈을 넣지 않고도 이용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자 이 요구를 즉시 들어줬다. “말하면 나는 듣는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계기가 됐다.
김제임스는 당시에 대해 “구성원들과 공감대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업무 특성상 팀워크가 깨지면 경쟁력도 곧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승부근성이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자신을 소개할 때 ‘승부욕이 강한 스타일’이라고 소개한다. 경쟁하는 것을 좋아해 스포츠도 땀 흘리고 경쟁하는 종목을 좋아한다고 한다.
직원들에게도 승부욕을 강조한다. 오버추어코리아와 야후코리아 대표 시절 직원들과 수시로 탁구대회를 열었다. 승패보다 게임에 임하는 직원의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당시 “승부근성이 강한 사람이 일도 잘 한다”며 악착같이 이기려고 애쓰는 직원들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고 한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 시절 흑백 TV를 구해와 홍수환 선수의 ‘4전5기’ 권투경기 영상을 직원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승부근성을 불러일으키고 이기는 정신이 한국인에게 특히 많다는 것을 강조해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자회사인 오버추어코리아와 모회사인 야후코리아가 단일 사장체제로 통합될 때 야후코리아 사장으로 선임됐다. 김제임스는 당시 오버추어코리아 사장이었는데 자회사 사장이 모회사 사장을 밀어내고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그만큼 김제임스의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글로벌 기업 현지법인 대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가 본사와 지사를 잇는 튼튼한 다리 노릇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을 방문한 본사 임원과 만나는 자리에서 항상 해당업무를 담당하는 국내 직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저한 자기관리로도 유명하다. 아픈 모습을 직원에게 보인 적이 없다고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전날 밤에 챙겨놓은 신발과 옷을 입고 몇 분 만에 집에서 빠져나온다고 한다.
한국GM이 신형 말리부를 출시한 뒤부터 경영보폭을 넓히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6부산국제모터쇼에서만 3차례 무대에 올랐다.
공격적 판촉으로 한국GM의 실적 개선을 이끌고 있다. 한국GM은 2016년 1월부터 5월까지 1월을 제외하고 모두 해당 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 판매기록을 세웠다.
업계에서 ‘기업회생 전문가’로 불린다. 그가 몸담았던 기업은 대부분 재임 기간 중 눈에 띄는 실적 개선을 이뤘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김제임스 재임 시절에 모두 4차례 최우수 법인상을 수상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이 상을 받은 건 1988년 법인이 설립된 이래 처음이었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문화를 잘 알고 친화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버추어코리아 사장으로 부임했을 당시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온 업무처리 방식을 바꾸려 했다. 이에 직원들이 반발하자 직원들과 수시로 같이 밥을 먹고 술도 마시며 벽을 허물었다고 한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 AT&T 본사에서 마케팅 총괄을 지냈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비비앙인터내셔널 대표이사를 지냈다.
1999년 미국의 인터넷 부동산회사 코코란닷컴 CEO로 부임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컨설팅회사 팰리세이즈 어드바이저 대표로 재직했다.
2005년 오버추어코리아 대표를 맡으며 한국에 돌아왔다.
2006년 3월 회사 매출을 2배 이상 늘린 성과를 인정받아 오버추어 아시아지역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같은 달부터 2007년 8월까지 오버추어재팬 대표도 지냈다.
2007년 4월부터 야후코리아 총괄사장을 지냈다.
2009년 1월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2013년 미국상공회의소(암참)의 신임 회장으로 선임됐다. 암참 60년 역사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회장에 오른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2015년 한국GM에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영입됐다.
2016년 1월 한국GM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 학력
1984년 미국 UCLA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하버드대학에서 경영학석사학위(MBA)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과 사이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 상훈
◆ 상훈
어록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컨트롤이 가능한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한국GM의 내수 목표 19만1천 대는 매우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목표이지만 자신있다.”(2016/06/01, 2016부산국제모터쇼 한국GM 전야제에서)
“한국GM CEO를 맡은 지난 5개월 동안 임직원, 노조 협력업체, 판매대리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오면서 회사의 지속가능한 미래경쟁력 확보에 대한 방향을 설정했다.”(2016/06/01, 2016부산국제모터쇼 한국GM 전야제에서)
“신형 말리부가 침체된 중형세단시장의 해답이 될 것으로 본다. 신형 말리부를 통해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한국GM의 역사를 새롭게 쓰겠다.”(2016/04/27, 신형 말리부 신차 발표회에서)
“한국 인재들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한국 인재들을 채용해 일자리 창출을 돕겠다.”(2014/01, 암참 회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승부욕이 강한 스타일이다. 경쟁하는 것을 좋아한다. 스포츠도 땀 흘리고 경쟁하는 종목을 좋아한다. 평소 ‘죽기살기로’라는 말을 자주 쓸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이 지닌 성공 유전자가 도움이 됐다.”(2014/01, 암참 회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성공하는 기업은 직원들 스스로가 불타오른다. CEO 역할은 직원들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불꽃을 일으키는 부싯돌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우수한 인재와 최첨단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회사인 만큼 불꽃만 잘 댕기면 전 세계 어느나라 법인도 따돌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2010/08, MS본사에서 ‘최우수 법인상’을 받은 소감에 대해 묻자)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사장과 직원 간은 물론이고 직원들끼리도 믿음이 있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서로 간에 신뢰가 없는 회사가 잘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두 번째는 책임감과 투명성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히딩크 감독은 지역이나 학벌이나 연고 등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실력을 보고 선수를 기용했다.”(2010/07, 언론과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CEO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어왔고 도전과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승부에 대한 집념으로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 인터넷강국 한국의 역량을 세계로 알릴 수 있도록 지금 하는 일에서 내 생애 최고의 승부를 펼치고 싶다.”(2008/11,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는 실적전환 전문가로 23년 동안 그런 일을 했다. (야후 설립자인) 제리 양이 전화해 야후코리아를 회생시켜달라고 했다. 자신이 없었다면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2007/05, 야후코리아 사장 취임 뒤 첫 기자회견에서)
“내가 구상하고 실현할 것은 명백하다. 게임의 플랜을 먼저 생각하고, 적임자를 배정한 뒤 일을 시작한다.”(2007/05, 야후코리아 사장 취임 뒤 첫 기자회견에서)
◆ 평가
소통과 팀워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 때문에 웬만한 일은 부하 직원들에게 위임한다고 한다.
직원들이 보낸 이메일에 즉각 답장을 보내며 중요한 결정도 오래 망설이지 않는다고 한다. 속도가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단 판단이 서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바로 밀고 나가는 편이다.
CEO로 선임됐던 여러 회사들에서 회사 분위기를 이전보다 활기차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 4월 야후코리아 사장으로 선임됐을 당시 야후코리아는 다음과 네이버 때문에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전임 사장이 불명예 퇴진했고 야후코리아를 이끌었던 주요 인력들도 잇따라 회사를 떠났다.
김제임스는 구원투수의 임무를 맡고 경영일선에 투입됐다. 사장 취임 초반 조직개편을 실시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직원들과 면담에 나서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사내 블로그를 만들어 솔직한 의견을 공개하고 “누구든 블로그나 이메일 또는 직접 사장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권했다. 그 뒤 한 직원이 “사무실에 있는 음료수 자동판매기를 돈을 넣지 않고도 이용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자 이 요구를 즉시 들어줬다. “말하면 나는 듣는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계기가 됐다.
김제임스는 당시에 대해 “구성원들과 공감대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업무 특성상 팀워크가 깨지면 경쟁력도 곧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승부근성이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자신을 소개할 때 ‘승부욕이 강한 스타일’이라고 소개한다. 경쟁하는 것을 좋아해 스포츠도 땀 흘리고 경쟁하는 종목을 좋아한다고 한다.
직원들에게도 승부욕을 강조한다. 오버추어코리아와 야후코리아 대표 시절 직원들과 수시로 탁구대회를 열었다. 승패보다 게임에 임하는 직원의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당시 “승부근성이 강한 사람이 일도 잘 한다”며 악착같이 이기려고 애쓰는 직원들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고 한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 시절 흑백 TV를 구해와 홍수환 선수의 ‘4전5기’ 권투경기 영상을 직원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승부근성을 불러일으키고 이기는 정신이 한국인에게 특히 많다는 것을 강조해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자회사인 오버추어코리아와 모회사인 야후코리아가 단일 사장체제로 통합될 때 야후코리아 사장으로 선임됐다. 김제임스는 당시 오버추어코리아 사장이었는데 자회사 사장이 모회사 사장을 밀어내고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그만큼 김제임스의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글로벌 기업 현지법인 대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가 본사와 지사를 잇는 튼튼한 다리 노릇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을 방문한 본사 임원과 만나는 자리에서 항상 해당업무를 담당하는 국내 직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저한 자기관리로도 유명하다. 아픈 모습을 직원에게 보인 적이 없다고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전날 밤에 챙겨놓은 신발과 옷을 입고 몇 분 만에 집에서 빠져나온다고 한다.
한국GM이 신형 말리부를 출시한 뒤부터 경영보폭을 넓히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6부산국제모터쇼에서만 3차례 무대에 올랐다.
공격적 판촉으로 한국GM의 실적 개선을 이끌고 있다. 한국GM은 2016년 1월부터 5월까지 1월을 제외하고 모두 해당 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 판매기록을 세웠다.
업계에서 ‘기업회생 전문가’로 불린다. 그가 몸담았던 기업은 대부분 재임 기간 중 눈에 띄는 실적 개선을 이뤘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김제임스 재임 시절에 모두 4차례 최우수 법인상을 수상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이 상을 받은 건 1988년 법인이 설립된 이래 처음이었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문화를 잘 알고 친화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버추어코리아 사장으로 부임했을 당시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온 업무처리 방식을 바꾸려 했다. 이에 직원들이 반발하자 직원들과 수시로 같이 밥을 먹고 술도 마시며 벽을 허물었다고 한다.
◆ 기타
한국이름은 김정우다.
8살 때 미국 괌으로 건너갔다.
두 아들에게 태도(attitude), 실력(skill), 노력(effort) 세 가지를 강조한다고 한다. 태도가 좋고 실력이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다. 두 아들은 미국 국적이지만 미국에서 학교를 보내지 않고 한국에 함께 들어왔다.
테니스와 탁구가 취미다. 열세 살 때부터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실력이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하버드대학 재학 시절 교내대회에 참가해 우승한 적도 있다. 이형택 선수와도 개인적으로 친하다고 한다. 태국에 머물면서 현지 프로선수를 초청해 경기를 치러 완승을 한 적도 있다.
그는 “테니스가 개인적으로 나한테 잘 맞는 것 같다”며 “축구나 야구처럼 인원이 많아야 되는 것도 아니고 딱 둘만 있으면 되니 때문”이라고 말했다.
골프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으로 시간이 좀 아깝다. 그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걸 해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