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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증권업계의 관우, 부드러운 카리스마
김디모데 기자 Timothy@businesspost.co.kr 2016-06-08 1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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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유상호는 1960년 2월27일 경북 안동에서 서애 유성룡의 15대 손으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사대부고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한일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우증권, 메리츠증권, 동원증권을 거쳤으며 동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합병하며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한국투자증권 사장에 선임돼 증권업계 최연소 CEO 기록을 세웠고 10년째 단일 증권사 최장수 CEO 기록도 이어가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대우증권 국제부와 런던법인을 거쳐 국제금융 전문가로 알려졌다.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부사장으로 근무할 당시 일일 한국 주식 거래량의 5%를 혼자 매매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유상호의 외국이름을 따 ‘전설의 제임스’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제임스는 유상호가 런던현지법인으로 발령받고 007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에서 따와서 지은 이름이다.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제임스 본드를 닮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이 1년 동안 영입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상호는 처음 영입제안을 거절했으나 반복되는 구애를 저버리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김남구 부회장은 9번이나 사장을 연임시킬 정도로 유상호를 깊이 신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임직원을 소탈하고 격의 없이 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평가도 있다.

덕망과 지략을 갖추고 있다고 해 금융계의 관우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유상호는 삼국지를 인생의 책으로 꼽으며 관우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CEO들과 달리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놓는 등 소통에 적극적이다. 직원들로부터 받은 카톡이나 이메일에 일일이 답변을 하며 메일 답변은 24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워놓고 있다.

애처가로 알려져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출신 두 살 연하의 부인 김소연씨는 연세대학교 재학시절 연합동아리에서 78학번과 79학번으로 만났다.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에 결혼을 했고 미국 유학 중 딸을 얻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채용설명회 때마다 부인을 만난 이야기를 한다. 부인 김소연씨는 “자상하고 잘 챙겨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KDB대우증권, 현대증권 등 대형 증권사 인수에 잇따라 실패하며 업계 1위 도약의 기회를 놓쳤다. 유상호는 2020년 자기자본이익률(ROE)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CEO로 10년 동안 재직하는 것은 뛰어난 경영 수완에 오너의 신뢰가 뒷받침 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후임으로 내세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업계가 경영난으로 인력 감축에 나서는 동안에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고 매년 일정규모의 신규채용도 이뤄졌다. 주요 임원들 역시 유상호처럼 장수하고 있는데 인재를 중시하는 유상호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5년 한일은행에 입사해 금융업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1986년 도미해 유학을 마치고 1988년 귀국해 대우증권 국제부에 입사했다.

1992년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부사장으로 7년간 근무하며 외국인들에게 한국 주식을 팔았다.

1999년 메리츠증권으로 이동해 전략기획본부장 겸 기획재정본부장 상무이사에 올랐다.

2002년 동원증권 부사장으로 옮겼다. 2005년 동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합병하면서 한국투자증권 부사장이 됐다.

2007년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돼 증권업계 최연소 CEO 기록을 세웠다. 이후 1년마다 재선임돼 2016년 3월까지 아홉번 연임에 성공해 재직하고 있다.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금융투자협회 비상근 부회장을 맡았다.

◆ 학력

1978년 고려대학교 사범대학교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5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부인 이소연씨와 사이에 딸 유서은씨가 있다.

서은씨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스웨스턴대학 경제학과를 나왔다. 현재 외국계 투자은행에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상훈

2012년 매경이코노미 올해의 CEO에 선정됐다.

2014년 제23회 다산금융상 대상을 수상했다.

2015년 자랑스러운 연세상경인상을 받았다.

◆ 상훈

2012년 매경이코노미 올해의 CEO에 선정됐다.

2014년 제23회 다산금융상 대상을 수상했다.

2015년 자랑스러운 연세상경인상을 받았다.

어록


“작년 말 시작된 업계 규모의 경쟁이 가속화 됐다. 최고의 생산성으로 무장해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자.” (2016/06/01, 통합 11주년 기념식)

“요즘 대학생들은 스펙을 쌓고 자격증을 따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도 1년에 100명 넘게 신입사원을 뽑지만 이런 스펙은 사실 별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관심이 굉장히 분산돼 있고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집중해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자격증을 따고 스펙도 쌓아야 한다. 18년 만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를 수 있던 것은 처음 증권업에 입문한 직후 세웠던 인생의 장기 계획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장기적인 인생 계획을 15년~20년 단위로 끊어 세워보라.” (2016/04/14, 제3회 찾아가는 청년드림 금융캠프)

“지금은 베트남 시장이 작지만 장차 규모가 커지고 전 세계 투자자를 상대로 팔아볼만한 시장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한국투자증권 베트남 법인을 올해 톱5, 향후 톱3 증권사로 키우겠다. 이 같은 성공 모델을 아시아 각 지역에 이식해 아시아 최고의 증권회사로 도약하겠다.” (2016/02/20, 베트남 현지법인 KIS베트남 기자간담회)

“경쟁사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공격적으로 시장을 선점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이제 통합 11년차를 지나고 있으며, 비전 2020을 달성하기 위해 5년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다. 단순히 인위적인 덩치 키우기가 아니라 우리 내부로부터의 폭발적인 성장을 통해서 비전달성을 위해 매진해주길 바란다.” (2016/01/04, 신년사)

“제조업과 달리 금융업은 사람마다 만들어낼 수 있는 부가가치가 천차만별이다. 개인별, 팀별 성과에 대한 계량화된 평가 시스템이 잘돼 있어 실시간으로 성적이 나오는 곳이다. 증권업의 본질은 신용 또는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의 자산을 지키고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끊임없는 정(丁)의 자세가 중요하다. 정(丁)의 삶이란 모든 국민이 고객이란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다. 때론 헝그리 정신을 갖고 일에 임할 수 있는 인재를 찾고 있다.” (2015/09/09, 연세대학교 CEO와 함께하는 한국투자증권 채용설명회)

“동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합병은 우리나라 금융기관 역사상 서로 이질적이고 규모도 비슷한 두 조직이 통합해 유일하게 성공한 케이스다. 작년 구조조정을 마친 경쟁사들이 비용 효율성을 무기로 거센 도전을 해오고 있는 만큼 지금 실적에 만족하지 말고 경쟁사에 비해 미진한 부분이 없는지 점검하고 노력해야 한다.” (2015/06/01, 한국투자증권 합병 10주년 기념식)

“새로운 제도 변경 등을 감안할 때 5~10년 뒤 증권업계는 일부 대형사들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바뀔 겁니다. 정부가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를 완화해 대형사들의 투자여력이 커진 만큼 국내 자본시장의 성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가계자산은 부동산 등 실물자산 중심에서 고령화에 따른 연금, 중위험·중수익형 금융자본으로 이동하게 돼 이 부문에서 체계적인 투자와 관리체계를 가진 대형사들이 시장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 (2014/05/21, 금융투자회사 CEO의 비전과 나눔)

“작은 좌절들이 쌓이면 인생의 큰 시련을 막아낼 수 있는 노하우와 체력이 생긴다. 젊은 시절의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30대 시절 가장 힘든 영역에서 치열하게 도전하고 좌절했던 경험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2014/04/02, 성균관대 매경 CEO특강)

“전세계적으로 돈이 넘치는 곳이 중국과 중동인데 우리는 중동의 오일머니를 끌어와야 한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돈을 쓰지만 중동은 순수 투자목적으로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슬람 금융의 상징성을 갖춘 수쿠크(이슬람 채권)가 도입되면 자금 조달 차원에서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13/11/29, 자금 조달 다변화를 위해 수쿠크를 도입해야 한다며)

“현재 금융투자사들은 악화된 업황으로 인해 창조경제에 투자할 여력이 많지 않다. 창조경제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금융투자업 규제를 완화하고 업무 영역을 넓혀 줄 필요가 있다.” (2013/05/29, 창조금융 활성화를 위한 자본시장의 역할 정책심포지엄에서)

◆ 평가

대우증권 국제부와 런던법인을 거쳐 국제금융 전문가로 알려졌다.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부사장으로 근무할 당시 일일 한국 주식 거래량의 5%를 혼자 매매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유상호의 외국이름을 따 ‘전설의 제임스’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제임스는 유상호가 런던현지법인으로 발령받고 007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에서 따와서 지은 이름이다.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제임스 본드를 닮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이 1년 동안 영입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상호는 처음 영입제안을 거절했으나 반복되는 구애를 저버리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김남구 부회장은 9번이나 사장을 연임시킬 정도로 유상호를 깊이 신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임직원을 소탈하고 격의 없이 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평가도 있다.

덕망과 지략을 갖추고 있다고 해 금융계의 관우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유상호는 삼국지를 인생의 책으로 꼽으며 관우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CEO들과 달리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놓는 등 소통에 적극적이다. 직원들로부터 받은 카톡이나 이메일에 일일이 답변을 하며 메일 답변은 24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워놓고 있다.

애처가로 알려져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출신 두 살 연하의 부인 김소연씨는 연세대학교 재학시절 연합동아리에서 78학번과 79학번으로 만났다.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에 결혼을 했고 미국 유학 중 딸을 얻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채용설명회 때마다 부인을 만난 이야기를 한다. 부인 김소연씨는 “자상하고 잘 챙겨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KDB대우증권, 현대증권 등 대형 증권사 인수에 잇따라 실패하며 업계 1위 도약의 기회를 놓쳤다. 유상호는 2020년 자기자본이익률(ROE)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CEO로 10년 동안 재직하는 것은 뛰어난 경영 수완에 오너의 신뢰가 뒷받침 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후임으로 내세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업계가 경영난으로 인력 감축에 나서는 동안에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고 매년 일정규모의 신규채용도 이뤄졌다. 주요 임원들 역시 유상호처럼 장수하고 있는데 인재를 중시하는 유상호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 기타

초등학교 때 꿈은 외교관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기업가였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경영에 매력을 느끼고 기업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사업을 하기 위해 금융을 배워야 한다고 판단해 한일은행에 들어갔다가 1년 반만에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국 유학에서 당시 대우증권 뉴욕사무소장이던 황건호 금융감독원 옴부즈만을 만나 증권맨이 될 마음을 품었다. 지도교수가 박사과정 진학을 권유했으나 거절하고 귀국해 대우증권에 입사했다.

가난한 유학시절 최저임금을 받으며 학교내 허드렛일을 했다. 임신 중이던 아내에게 생선초밥을 사다주지 못해 속앓이를 한 사연을 전하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요리가 취미로 ‘가장 창조적인 예술은 요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은퇴 후 요리사자격증을 딸 계획을 세울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요리학원에서 파스타 등 이탈리아 요리 강습을 받기도 했다.


스스로 주량을 모를 정도로 술을 잘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건강을 위해 술은 짧고 굵게 마시고 매일 한시간씩 운동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2015년 급여 8억4880만 원, 상여 8억7670만 원 등 17억2550만 원의 보수를 받았는데 2016년 1분기에만 급여 2억1220만 원, 상여 15억6990만 원 등 17억821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한국투자증권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금융투자업계에서 최고 실적을 달성하고 지속적으로 외형자산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간 동안 한국투자증권은 7128억 원의 순이익을 냈고 외형자산이 70조8천억 원에서 133조5천억 원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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