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단위 농협과 신협 등 상호금융기관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회사채를 대거 사들였다가 채무 재조정으로 손실을 입을 위기에 처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과 신협 등 상호금융기관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공모회사채 6천억 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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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상호금융기관이 두 해운사의 공모회사채 가운데 약 40%를 사들인 셈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기준으로 8043억 원, 한진해운은 7283억 원 규모의 공모회사채를 발행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공모회사채의 규모도 현대상선 3600억 원, 한진해운 2210억 원에 이른다. 현대상선은 이미 4월7일 만기였던 공모회사채 1200억 원을 상환하지 못했다.
임정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상호금융기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운사에서 고금리로 발행한 회사채를 상당량 사들였다”며 “해운사 구조조정 과정에 비협약채권인 회사채도 포함되면서 상호금융기관이 채무 조정에 따라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KDB산업은행 등 해운사 채권은행들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조건 가운데 하나로 회사채를 사들인 사채권자의 채무 재조정을 들고 있다.
현대상선은 상호금융기관 등 공모사채권자들을 대상으로 50% 이상을 출자전환하고 원금에 대해 이자 연 1%를 지급하는 채무 재조정안을 제시했다. 한진해운도 회사채의 원리금을 주식으로 갚는 방안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상호금융기관의 지역단위 조합들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채무 재조정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회사채에서 전환되는 주식의 가치하락 때문에 자산건전성에 타격을 피할 수 없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주가는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간 뒤 약세를 보이고 있다.
상호금융권 관계자는 “농협과 신협의 지역단위 조합들은 독립채산제에 따라 개별 법인으로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회사채를 수억~수십억 원씩 각각 사들였을 것”이라며 “개별 조합들의 입장이 상이해 중앙회 차원에서 대응방안을 마련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상호금융기관이 용선료 인하를 협상 중인 선주들보다 훨씬 불리한 방안으로 채무 재조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불만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대상선은 선주들을 상대로 용선료를 28% 깎는 대신 그만큼 출자전환을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모사채권자들에게 제시한 50% 출자전환 방안보다 더 많은 원금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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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상호금융기관이 일부 손실을 무릅쓰고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채무 재조정 방안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예상도 힘을 얻고 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사채권자의 채무를 재조정하지 못하면 자율협약을 받을 수 없어 법정관리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이 경우 공모회사채를 포함한 모든 채권이 동결돼 상호금융기관도 투자자금을 거의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상호금융기관은 정부에서 법정관리 기업의 자산을 팔아 빚을 갚아주는 것도 사실상 기대할 수 없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자구계획에 따라 자산 대부분을 이미 팔았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5월19일, 현대상선은 5월31일~6월1일 사채권자 집회를 연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