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경 기자 strangebride@businesspost.co.kr2016-05-16 06: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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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이기형 인터파크홀딩스 회장.
이기형은 1963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를 졸업하고 삼성SDI에 입사했다.
데이콤으로 회사를 옮긴 뒤 주로 천리안사업의 전략과 기획업무를 맡았다. 멀티미디어와 인터넷 분야를 담당하며 인터넷사업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데이콤의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최초의 인터넷쇼핑몰인 '인터파크'를 창업하고 대표이사를 맡았다. 33세의 나이였다.
인터파크에서도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해 G마켓을 탄생시켰다. G마켓이 오픈마켓의 선두주자로 한창 잘나갈 때 이베이에 매각했다.
인터파크INT 대표이사, 아이마켓코리아 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인터파크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기초과학 발전을 위해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민간 과학재단 카오스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국내 인터넷쇼핑몰 사업의 개척자다.
도전정신과 강력한 추진력, 승부사 기질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다.
199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쇼핑사업을 시작하고 2003년 업계 최초로 '무료배송'이라는 공격적인 전략을 추진하는 등 새로운 분야를 앞장서 개척하는 도전정신과 추진력이 뛰어나다.
평범한 회사원에서 시작해 연매출 3조 원을 넘어선 인터넷 쇼핑몰 업체의 수장이된 자수성가형 CEO다.
사업 초기 수많은 대기업들이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인터넷쇼핑사업에 진출했을 때 이기형은 회사에서 숙식하며 총력전으로 맞대응해 주변 임원은 물론 경쟁사 간부들조차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늘 아이디어가 풍부한 편이다. ‘인터넷 테마파크’라는 의미의 ‘인터파크(Interpark)’ 브랜드도 직접 작명했다고 한다.
한편으론 G마켓을 매각한 이후 추진했던 여러 사업에서 뚜렷한 수익원을 찾지 못해 '핵심 사업은 없고 변죽만 울린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인터파크는 G마켓을 매각한 대금으로 여러 사업을 추진했다. 2009년말 오프라인 사업 진출을 위해 편의점 체인 바이더웨이 인수에 참여했고 2010년 4월 전자책 단말기 ‘비스킷’을 시작했다. 바이더웨이 인수 실패 후엔 커피 프랜차이즈 전문점 디초콜릿커피를 사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규 사업들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G마켓 매각 이후 뚜렷한 수익원이 없는 인터파크는 실적과 주가 부진에 빠졌다. MRO업체인 아이마켓코리아를 인수해 B2B사업에 진출한 것도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타개책 가운데 하나였다.
내부 소통에 적극적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임직원들과 함께 어김없이 산에 오른다. 산을 오르내리며 사업의 해결방안도 모색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매주 한 번씩 임직원들과 합창공연을 갖기도 했다. 사내 휴게실에 피아노를 갖다 놓고 임직원들이 모여 퇴근 후 2시간 가량 합창을 한다. 평소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그는 합창을 통해 직원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9년 삼성SDI에 입사했다.
1991년 데이콤에 입사해 PC통신 천리안 사업의 전략과 기획업무를 맡았다.
1995년 데이콤의 사내벤처 육성프로그램인 '소(小)사장제'에 쇼핑몰 사업아이템으로 지원해 선정되며 창업의 계기를 마련했다.
데이콤의 소사장제는 직원이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며 사업계획이 제출되면 임원 11명 전원으로 구성된 '소사장사업 심의위원회'의 심사와 사장의 결재를 거쳐 최종 결정되는 제도였다.
1997년 데이콤인터파크로 분리 설립하고 대표이사를 맡았다.
1999년 인터파크로 사명을 변경하고 코스닥에 상장했다.
2000년 인터파크의 사내 벤처 육성프로그램을 통해 설립한 G마켓을 인수해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2009년 경쟁사인 이베이에 G마켓을 매각했다. 당시 오픈마켓 업계 1위를 하던 G마켓을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이베이에 매각한 것은 업계와 증권가에서 큰 화제가 됐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인터파크INT 대표이사를 맡았다.
2011년 10월 삼성이 운영해오던 MRO기업(소모성 자재구매 대행업체)인 아이마켓코리아의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고 같은해 12월 정식으로 인수했다.
2014년부터 2016년 3월까지 아이마켓코리아 대표이사를 맡았다.
2015년부터 인터파크홀딩스 대표이사 회장과 카오스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카오스재단은 이기형이 기초과학 발전 위해 사재 출연해 2014년 11월 설립한 민간 과학재단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온라인쇼핑협회 회장을 맡았다.
◆ 학력
1982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를 졸업했다.
2006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 SEP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12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이기형은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를 이렇게 돌아봤다. "어머니는 그 작은 몸으로 지금 수 많은 자식들과 손자들까지 살폈으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2남매를 키운 어머니가 벤처가 무엇인지를 인생을 통해 보여줬다."
부인과 사이에 딸 둘을 뒀다.
◆ 상훈
2003년 정보통신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2년 한국인터넷진흥원 인터넷 30주년 공로상을 수상했다.
2015년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 상훈
2003년 정보통신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2년 한국인터넷진흥원 인터넷 30주년 공로상을 수상했다.
2015년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어록
“인터넷에 기반한 사업이지만 포털·모바일 기업과 비교했을 때 지난 20년간 기술 혁신이 거의 없었던 분야가 전자상거래”라며 “앞으로는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과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기계학습) 같은 신기술을 전자상거래에도 대거 적용하겠다” (2016/06/28,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저가 경쟁만으로는 한국 전자상거래 시장에 미래가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원래 저가(低價) 경쟁은 시장 형성 초기에 선발 주자가 후발 주자의 진입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이라며 “한국은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저가 경쟁뿐” (2016/06/28,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여러분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길을 찾았습니까? 그렇다면 축하드립니다. 물론 아직 원하는 길을 찾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더욱 더 축하드립니다. 대략 30년쯤 후에는 저처럼 후배들 앞에서 축사를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2015/02/26, 서울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며)
"(주말에 붐비는 산행코스를 줄을 서서 올라가다 보면) 대부분은 그냥 지금 가는 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절벽을 만나 제자리로 돌아오면 지금보다 오히려 뒤쳐지게 되는 것이 너무도 두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위험을 훨씬 높게 느끼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즐기는 변종들이 이 세상에는 반드시 있습니다. 이들은 도전하게 되고 도전을 통해 사실 위험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금 더 대담한 도전을 합니다." (2015/02/26, 서울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며)
"1997년 IMF가 찾아오면서 투자가 얼어붙고 나자 자본금이 바닥난 인터파크는 사업중단결정을 모회사로부터 통보 받았습니다. 저는 역 제안을 했습니다. “일단 지분을 나에게 넘기면 평생에 걸쳐서라도 갚겠다. 이후 망하든 흥하든 모두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2015/02/26, 서울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며)
"오픈마켓 시대는 끝났다" (2011년 초, 임직원들에게)
“인터파크는 내가 걷고 싶은 길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난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가겠다. 실력보다 중요한 건 끈기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평소 임직원에게 강조하는 말)
◆ 평가
국내 인터넷쇼핑몰 사업의 개척자다.
도전정신과 강력한 추진력, 승부사 기질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다.
199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쇼핑사업을 시작하고 2003년 업계 최초로 '무료배송'이라는 공격적인 전략을 추진하는 등 새로운 분야를 앞장서 개척하는 도전정신과 추진력이 뛰어나다.
평범한 회사원에서 시작해 연매출 3조 원을 넘어선 인터넷 쇼핑몰 업체의 수장이된 자수성가형 CEO다.
사업 초기 수많은 대기업들이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인터넷쇼핑사업에 진출했을 때 이기형은 회사에서 숙식하며 총력전으로 맞대응해 주변 임원은 물론 경쟁사 간부들조차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늘 아이디어가 풍부한 편이다. ‘인터넷 테마파크’라는 의미의 ‘인터파크(Interpark)’ 브랜드도 직접 작명했다고 한다.
한편으론 G마켓을 매각한 이후 추진했던 여러 사업에서 뚜렷한 수익원을 찾지 못해 '핵심 사업은 없고 변죽만 울린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인터파크는 G마켓을 매각한 대금으로 여러 사업을 추진했다. 2009년말 오프라인 사업 진출을 위해 편의점 체인 바이더웨이 인수에 참여했고 2010년 4월 전자책 단말기 ‘비스킷’을 시작했다. 바이더웨이 인수 실패 후엔 커피 프랜차이즈 전문점 디초콜릿커피를 사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규 사업들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G마켓 매각 이후 뚜렷한 수익원이 없는 인터파크는 실적과 주가 부진에 빠졌다. MRO업체인 아이마켓코리아를 인수해 B2B사업에 진출한 것도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타개책 가운데 하나였다.
내부 소통에 적극적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임직원들과 함께 어김없이 산에 오른다. 산을 오르내리며 사업의 해결방안도 모색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매주 한 번씩 임직원들과 합창공연을 갖기도 했다. 사내 휴게실에 피아노를 갖다 놓고 임직원들이 모여 퇴근 후 2시간 가량 합창을 한다. 평소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그는 합창을 통해 직원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기타
좌우명은 ‘The road not taken(가지 않은 길)’이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제목이자 그가 경영철학으로 즐겨 쓰는 말이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가자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창업 초기에 투자금을 구하기 위해 시골집을 담보로 잡히고 창업투자회사도 여러 곳 찾아다녔으나 50군데에서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대한투자신탁에서 거금을 투자받아 데이콤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15년 5월 기업분석업체 한국CXO연구소는 국내 193개 그룹 오너들의 출신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 국내 오너 기업가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고교는 경기고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고 출신 오너들 가운데 고교 평준화 첫 세대인 1958년 이후에 태어난 인물은 이기형이 유일했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카오스재단은 대중에게 기초 과학과 수학을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타 부문의 학문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카오스(K.A.O.S.)는 ‘Knowledge Awake On Stage’의 준말로 ‘무대 위에서 깨어난 지식’을 뜻한다고 한다.
인터파크에 불량판매자가 접근이 만만한 모양입니다. 판매자들이 불량으로 들어온 제품을 인터파크에 싸게 내다팔면서 정상상품으로 둔갑하여 판매하다 소비자 항의받아 환불처리하지않고 이를 인터파크측에서 규정만 따지면서 소비자권익보호에 신경쓰지 않고 판매자편의 들어주면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어
이는 경영자의 소비자보호인식이 부족함이 있다고 보아집니다. 최근들어 발생하는 사건들 무관치 않습니다 (2016-07-27 02:3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