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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강대석 전 신한금융투자 사장

야전사령관 자처, 돌쇠 정신 강조
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6-05-11 1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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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강대석 전 신한금융투자 사장
▲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


강대석은 1958년 6월26일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외환은행에 들어갔다가 신한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한증권 마케팅전략본부장 상무와 굿모닝신한증권 리테일본부장 부사장 등을 거친 뒤 뮤직시티, 블루코드테크놀로지, KT뮤직 등에서 사장을 맡았다.

현재 신한금융투자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원만한 리더십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직관리 철학으로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를 들었다. 직원들의 잘못을 나무라는 대신 잘하는 점을 부각시켜 더욱 잘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2012년 5월 한 인터뷰에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를 야전사령관에 비유하면서 직원들의 전의를 불태워야 이길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88년 신한증권(현 신한금융투자)에 입사한 뒤 증권업계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기획, 영업추진, 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으며 리테일(소매금융) 영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굿모닝신한증권이 출범한 뒤 동두천지점을 폐점 직전에서 살려낸 것으로 평가됐다. 영업점장 시절 업적평가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신한금융투자 사장으로 결정되면서 7년 만에 ‘금의환향’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강대석이 선임된 데 증권업계 전문가라는 점이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지주에서 이전까지 증권사 사장을 주로 맡았던 신한은행 출신 인사들이 결과적으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던 점을 감안해 강대석을 선임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대석의 선임은 신한금융에서 1월30일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의 자산관리(WM) 및 기업투자금융(CIB)을 통합 운영하는 ‘매트릭스’ 체제를 도입하기로 한 점과 맞닿아 있다. 신한은행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위축된 증권 부문을 키우기 위해 증권업 전문가인 강대석을 영입했다는 것이다.

2012년 2월10일 신한금융투자 사장 취임식에서 ‘신상필벌’을 강조하며 공정한 인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신한금융투자의 위상이 하락한 원인으로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 위주의 수익구조와 자산관리사업 진출 지연 등을 들며 경영방향 개편을 예고했다.

2012년 2월 취임한 뒤 100일 동안 직원들과 회식을 종종 열어 팀워크를 쌓는 데 주력했다. 이에 대해 “리더십의 핵심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한금융투자 사장이 된 뒤 자산관리(WM)사업을 키우는 데 역점을 뒀다. 2012년 5월2일 퇴직연금센터 산하조직으로 ‘100년 금융투자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자산관리와 퇴직연금사업을 강화할 기반을 쌓기도 했다.

신한금융투자 직원들과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2012년 5월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해 우수 직원과 새내기 직원을 스승과 제자로 맺어주는 ‘신한 청어람 제도’를 시행했다. 그해 5월29일과 9월12일에 여의도 본사 주차장에서 ‘비전 포장마차’를 열어 직원들과 술안주를 직접 만들어 먹으며 회사생활의 고충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취임 이후 신한은행과 연계를 강화해 개인자산관리(PWM)와 기업투자금융(CIB) 부문에서 시너지를 내는 데 주력해 왔다. 두 회사의 자산관리사업을 합친 PWM센터의 수를 꾸준히 늘렸으며 기업투자금융 부문에서도 은행과 협력해 좋은 성과를 냈다.

신한금융투자가 2013년에 순이익 745억 원을 내 2012년보다 순이익이 17.9% 늘었다. 이 성과를 인정받아 2014년 2월 연임을 확정했다.

2014년 5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한 매체의 CEO 특강에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돌쇠정신’을 예로 들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국내 금융투자시장의 성장한계를 감안해 2015년 1월부터 신한금융투자의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당시 베트남에서 현지 증권사를 인수한 뒤 현지화와 신한베트남은행과 협업을 통해 해외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2015년 12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도 현지 증권사를 인수했다. 2016년 2월 신한금융투자의 베트남 현지법인을 출범했다.

2012년에 증권사 가운데 최초로 고객수익률 평가제도를 도입하는 등 자산관리사업을 강화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신한금융투자가 2015년 7월9일 전체 운용자산 103조 원을 기록해 창사 이후 최초로 100조 원을 넘어섰다.

신한은행, 신한생명 등과 함께 입점하는 신한금융투자의 복합점포를 확대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신한금융투자와 신한은행은 강대석의 취임 직후부터 자산관리와 기업투자금융 부문에서 복합점포를 늘려왔으며 2015년 11월12일 신한생명까지 참여한 보험 복합점포 1호점을 열기도 했다.

신한금융투자는 2015년에 순이익 2155억 원을 내 2014년보다 순이익이 82.2% 증가했다. 이는 신한금융투자가 신한금융에 편입된 이후 가장 좋은 실적이다.

미래에셋증권의 대우증권 인수, 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인수 등을 겪은 뒤인 2016년 4월부터 여러 매체의 인터뷰에서 신한금융투자를 대상으로 한 증자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2조5천억 원인 신한금융투자의 전체 자산을 3조 원 이상으로 키워 대형 투자금융(IB)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밝히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0년 1월 한국외환은행에 들어갔다. 1988년 6월 신한증권에 입사했다. 1996년 신한증권 인사부장을 맡았다가 1998년 압구정지점장으로, 1999년 지역본부장 상무대우로 승진했다. 2000년 4월 신한증권 상무로 선임돼 마케팅, 리서치, IT업무 등을 담당했다.

2002년 8월 신한증권과 굿모닝증권의 합병으로 통합 굿모닝신한증권이 출범한 뒤 기획, 인사, 노무 담당 상무를 역임했다. 2003년 2월 굿모닝신한증권 리테일본부장 부사장을 맡았다.

2004년 뮤직시티 공동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5년 블루코드테크놀로지 대표이사를 맡았다가 2008년 3월 KTF뮤직 공동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2009년 6월 KT뮤직 공동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2010년 신성투자자문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2012년 신한금융투자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돼 2014년, 2015년, 2016년까지 세 차례 연임했다.

2013년 4월 신한금융투자 직원봉사단 ‘열심이’를 발족해 단장을 맡았다.

◆ 학력

1976년 서울 성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에서 학사 위를 취득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아들 2명을 뒀다. 큰아들은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복무했다.

◆ 상훈

2013년 5월10일 ‘2012년 하반기 우수 국고채전문 딜러 시상식’에서 우수PD상을 수상했다.

◆ 상훈

2013년 5월10일 ‘2012년 하반기 우수 국고채전문 딜러 시상식’에서 우수PD상을 수상했다.

어록


“금융투자업계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한금융투자가 도태되지 않으려면 증자를 해야 한다. 신한금융에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2016/05/10,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신한증권에 입사한 뒤 전체 지점 가운데 7년 동안 가장 저조한 영업실적을 올려 페점 위기에 놓였던 동두천지점을 일부러 지원했다. 지점장으로 발령받은 첫날 직원들에게 ‘1등 안에 1등 지점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뒤 실제 1등은 아니었지만 2등 지점을 만들었다. 그 원동력은 긍정적인 생각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2014/05/28,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한 매체의 CEO특강에서)

“증권업은 제조업과 달리 그때그때 시장 상황에 맞는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 과거에는 좋은 주식을 고르는 게 증권사들의 역할이었지만 앞으로는 증권사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능력을 활용해 지수별로 다양한 금융상품을 출시해야 한다.” (2014/02/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2014년의 가장 도전적인 현실은 국내 금융업계의 ‘게임의 룰’이 심각하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금융 선진국들이 경험한 냉혹한 금융구조 개혁이 한국에서도 진행될 것이다. 신한금융투자를 포함한 자기자본의 여유가 있는 일부 대형사와 혁신을 통해 특화에 성공한 몇몇 회사를 중심으로 금융투자업계가 재편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대형 종합증권사로 성장할 것인지 또는 은행계 증권사로 특화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생존의 갈림길로 대변되는 올해에 새로운 환경에 최적화된 새로운 회사를 설계해야 한다. 2014년에 신한금융투자는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다’는 마음으로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 내야 한다.” (2014/01/02, 신한금융투자 신년사에서)

“어려웠던 시장 환경을 탓하기에는 지난해 우리의 경영실적은 많이 부족했다. 명확하게 설정돼 있는 전략을 강하게 실행해 나가는데 있어 아직 주저함이 있는 것 같다. 올해 변화된 모습과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지난해 우리의 진정성과 치열한 고민들의 산물인 ‘비전 2015’는 또 다시 공염불이 될 것이다.” (2013/01/02, 신한금융투자 신년사에서)

“신한금융투자의 외형과 순익이 많이 성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조직문화가 일체감이 있고, 직원끼리 힘을 합해 일을 하는 회사, 신바람 나는 일터를 만드는 것도 지향한다.” (2012/09/12, 신한금융투자의 ‘비전 포장마차’ 행사에서 한 매체와 인터뷰하며)

“금융투자업계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이를 감안해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의 한계 돌파, 자산관리 중심의 개인자산관리(PB)산업의 지속적인 성장, 세일즈&트레이딩 사업모델 강화, 신규 성장동력 발굴 등에 성공해야 한다. 2020년에 아시아 최고의 종합금융투자회사가 되는 것이 신한금융투자의 이정표다. 새로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직원들도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고 준비해야 한다. 회사 역시 직원들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도록 인력, 채널, 영업지원 시스템 등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 (2012/08/01, 신한금융투자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고객을 굳이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전문가인 직원들이 높은 수익을 안겨다 준다면 그것만으로 고객이 찾아오게 만들 수 있다. ‘나는 남과 좀 달라야 한다’는 의식과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 체계적인 교육이 갖춰진다면 수익률도 높아지고, 높아진 수익률이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2012/05/1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리테일(소매금융)에 편중된 신한금융투자의 수익구조를 고쳐 본사의 영업과 균형을 맞추겠다. 리테일 안에서도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수익과 금융상품의 수익 비중을 5대5로 가져가겠다. 이를 통해 2015년까지 각 사업 부문을 매년 30%씩 성장시켜 업계 전 부문에서 5위권 회사로 도약하고 순영업수익 1조 원 시대를 개막하겠다.” (2012/05/14,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2005년 부사장을 끝으로 떠났던 회사에 7년 만에 복귀한 점이 최고경영자(CEO)로서는 오히려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바로 사장이 됐다면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금융투자회사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지난 7년은 ‘증권맨’이 아니라 고객의 위치에 있으면서 그런 것들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2012/05/13,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좋은 회사를 만들려면 강한 조직문화를 구축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인사가 중요하다. 신상필벌을 강하게 추진해 획기적인 조직운영체계를 만들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는 적극적인 지원 등을 통해 동기부여를 하겠다.” (2012/02/10, 신한금융투자 대표이사 사장 취임식에서)

◆ 평가

원만한 리더십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직관리 철학으로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를 들었다. 직원들의 잘못을 나무라는 대신 잘하는 점을 부각시켜 더욱 잘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2012년 5월 한 인터뷰에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를 야전사령관에 비유하면서 직원들의 전의를 불태워야 이길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88년 신한증권(현 신한금융투자)에 입사한 뒤 증권업계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기획, 영업추진, 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으며 리테일(소매금융) 영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굿모닝신한증권이 출범한 뒤 동두천지점을 폐점 직전에서 살려낸 것으로 평가됐다. 영업점장 시절 업적평가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신한금융투자 사장으로 결정되면서 7년 만에 ‘금의환향’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강대석이 선임된 데 증권업계 전문가라는 점이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지주에서 이전까지 증권사 사장을 주로 맡았던 신한은행 출신 인사들이 결과적으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던 점을 감안해 강대석을 선임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대석의 선임은 신한금융에서 1월30일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의 자산관리(WM) 및 기업투자금융(CIB)을 통합 운영하는 ‘매트릭스’ 체제를 도입하기로 한 점과 맞닿아 있다. 신한은행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위축된 증권 부문을 키우기 위해 증권업 전문가인 강대석을 영입했다는 것이다.

2012년 2월10일 신한금융투자 사장 취임식에서 ‘신상필벌’을 강조하며 공정한 인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신한금융투자의 위상이 하락한 원인으로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 위주의 수익구조와 자산관리사업 진출 지연 등을 들며 경영방향 개편을 예고했다.

2012년 2월 취임한 뒤 100일 동안 직원들과 회식을 종종 열어 팀워크를 쌓는 데 주력했다. 이에 대해 “리더십의 핵심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한금융투자 사장이 된 뒤 자산관리(WM)사업을 키우는 데 역점을 뒀다. 2012년 5월2일 퇴직연금센터 산하조직으로 ‘100년 금융투자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자산관리와 퇴직연금사업을 강화할 기반을 쌓기도 했다.

신한금융투자 직원들과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2012년 5월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해 우수 직원과 새내기 직원을 스승과 제자로 맺어주는 ‘신한 청어람 제도’를 시행했다. 그해 5월29일과 9월12일에 여의도 본사 주차장에서 ‘비전 포장마차’를 열어 직원들과 술안주를 직접 만들어 먹으며 회사생활의 고충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취임 이후 신한은행과 연계를 강화해 개인자산관리(PWM)와 기업투자금융(CIB) 부문에서 시너지를 내는 데 주력해 왔다. 두 회사의 자산관리사업을 합친 PWM센터의 수를 꾸준히 늘렸으며 기업투자금융 부문에서도 은행과 협력해 좋은 성과를 냈다.

신한금융투자가 2013년에 순이익 745억 원을 내 2012년보다 순이익이 17.9% 늘었다. 이 성과를 인정받아 2014년 2월 연임을 확정했다.

2014년 5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한 매체의 CEO 특강에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돌쇠정신’을 예로 들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국내 금융투자시장의 성장한계를 감안해 2015년 1월부터 신한금융투자의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당시 베트남에서 현지 증권사를 인수한 뒤 현지화와 신한베트남은행과 협업을 통해 해외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2015년 12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도 현지 증권사를 인수했다. 2016년 2월 신한금융투자의 베트남 현지법인을 출범했다.

2012년에 증권사 가운데 최초로 고객수익률 평가제도를 도입하는 등 자산관리사업을 강화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신한금융투자가 2015년 7월9일 전체 운용자산 103조 원을 기록해 창사 이후 최초로 100조 원을 넘어섰다.

신한은행, 신한생명 등과 함께 입점하는 신한금융투자의 복합점포를 확대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신한금융투자와 신한은행은 강대석의 취임 직후부터 자산관리와 기업투자금융 부문에서 복합점포를 늘려왔으며 2015년 11월12일 신한생명까지 참여한 보험 복합점포 1호점을 열기도 했다.

신한금융투자는 2015년에 순이익 2155억 원을 내 2014년보다 순이익이 82.2% 증가했다. 이는 신한금융투자가 신한금융에 편입된 이후 가장 좋은 실적이다.

미래에셋증권의 대우증권 인수, 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인수 등을 겪은 뒤인 2016년 4월부터 여러 매체의 인터뷰에서 신한금융투자를 대상으로 한 증자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2조5천억 원인 신한금융투자의 전체 자산을 3조 원 이상으로 키워 대형 투자금융(IB)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밝히고 있다.

◆ 기타

대학생 시절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산하 동아리인 ‘증권학회’에서 활동했다.

1980년에 중평 37사단 포병부대에 입대해 복무했다. 2012년 9월 한 칼럼에서 이등병 시절부터 ‘군대 체질’이라는 칭찬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칼럼에서 교육관 가운데 하나로 “대학을 안 보내더라도 군대는 꼭 보내야 한다”를 제시하기도 했다.

2012년 2월 신한금융투자 사장으로 취임한 뒤 ‘SnS(Slow&Shot)’ 운동을 장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SnS운동은 ‘술잔은 천천히, 술자리는 짧게’라는 의미로 직원들에게 술자리 대신 스터디모임을 열거나 회식 종료시각을 미리 정해두는 등 업무와 공부에 집중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2012년 6월20일 신한금융투자에서 주최한 ‘진품명품을 찾아라’ 행사에 지점장 시절 증시전망 신문기사, 30년 전 가두캠페인 사진, 25년 전 첫 보너스 명세서 등을 사료로 내놓았다.

2015년 6월30일 출간된 ‘열정리더-성공 리더들의 생각 습관’(한국리더스포럼)의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2013년 4월 신한금융투자의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봉사단 ‘열심이’를 발족했다.

2013년 회계연도에 보수 6억3600만 원을 받았다. 2014년 전체 보수로 7억2100만 원을 받았다.

일주일에 2번씩 직원들과 ‘도시락 미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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