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2016-03-28 10: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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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부회장.
최희문은 1964년 태어났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미국 앰허스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뱅커스트러스트에 입사한 뒤 크레디트스위스퍼스트보스톤(CSFB)은행, 골드만삭스 등을 거쳐 삼성증권 캐피털마켓 사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메리츠증권 부사장으로 영입됐고 현재 메리츠종금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부회장에 선임됐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자본시장 전문가로서 ‘구조화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메리츠증권 부사장으로 임명됐을 때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현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에게 “양질의 사람들이 와서 일하고 싶은 회사, 명성이 높은 회사를 만들자”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메리츠증권이 2010년 2월26일 주주총회에서 메리츠종금과 합병을 결의했을 때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메리츠종금증권 사장으로 취임한 뒤 기존의 메리츠증권 임원 34명 가운데 9명을 물갈이했다. 당시 외국계 투자금융회사 출신의 인사들을 대거 영입했다.
메리츠증권과 메리츠종금의 합병법인인 메리츠종금증권은 2010년 4월1일 출범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기업대출 등을 할 수 있는 종금업 라이선스를 2020년까지 보유하게 됐다.
메리츠종금증권이 2010년 4월1일 출범하자마자 종금형 상품인 ‘THE CMA plus’와 ‘메리츠 발행어음’ 출시를 주도하며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당시 최희문은 “우리에게 충분한 자본이 있다”며 자금력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메리츠종금증권은 당시 자기자본 6300억 원을 보유해 증권업계 13위에 올랐다.
2010년 10월21일 메리츠종금증권이 소매금융자산 6조 원을 넘어섰다. 당시 최희문은 CMA, 구조화상품, 오토리스 등의 상품 판매를 확대해 2020년까지 총자산 30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2011년 1월11일 메리츠금융지주사 설립이 확정됐을 때 메리츠금융 대표이사(비상근)을 겸직하기로 결정됐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11년 3월28일 공식 출범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메리츠화재를 중심으로 메리츠종금증권, 메리츠자산운용,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 리츠파트너스, 메리츠비즈니스서비스 등으로 이뤄진 국내 최초의 보험지주회사다.
2012년 5월18일 메리츠종금증권 이사회에서 김용범 당시 최고재무관리자(CFO)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메리츠종금증권은 최희문과 김용범의 각자 대표이사 사장 체제로 전환됐다. 김용범 사장이 지점영업과 관리를 맡고 최희문이 지점영업을 제외한 모든 영업부문을 총괄하는 방식이다.
증권업계에 불황이 왔다고 평가된 2012년 4~12월 동안 메리츠종금증권의 누적순이익을 512억 원으로 끌어올렸다. 2011년 같은 기간보다 순이익이 49% 늘었으며 2011년 전체 순이익인 536억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2012년 4~12월 동안 전체 증권사들의 누적순이익은 7877억 원으로 2011년 같은 기간 1조7498억 원에서 9621억 원이나 감소했다.
당시 메리츠종금증권의 순이익 증가 비결로 종금업 라이선스와 더불어 최희문과 김용범의 빠른 의사결정구조가 회자됐다. 최희문과 김용범은 당시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등으로 업무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말단 직원이라고 해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일 경우 직접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6월7일 메리츠종금증권 각자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선임됐다.
2013년 12월5일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에 처음 왔을 때 군대 같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기업 특유의 격식을 따지는 문화가 비효율을 초래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각자 대표이사를 맡았던 김용범 사장이 2014년 12월29일 메리츠화재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메리츠종금증권의 단독 대표이사 사장으로 돌아왔다.
메리츠종금증권이 2014년에 종금 라이선스를 이용한 부동산금융 주선금액 5조 원을 돌파했다. 이를 통해 메리츠종금증권은 2014년에 순이익 1477억 원을 올렸다. 창사 이후 처음으로 순이익 1천억 원을 넘어섰다.
2015년 초에 증권사들이 구조조정에 나섰는데도 영업인력 채용을 늘리고 초대형 거점점포 여의도금융센터를 개원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했다.
2015년 3월20일 메리츠종금증권 주주총회에서 290만 주의 주식선택매입권을 받았다. 메리츠종금증권 전체 주식의 0.9% 규모로 2020년부터 2024년 사이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
2015년 6월1일 메리츠종금증권이 아이엠투자증권을 흡수합병해 합병법인으로 출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이 합병으로 총자산 12조 원대, 자기자본 1조 원대의 국내 10위권 증권사로 몸집을 불렸다.
2015년 7월2일 메리츠종금증권이 4247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종금 라이선스 종료 이후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진출하기 위한 조치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의 증권사로 프라임브로커리지 등 대형 투자금융(IB) 사업을 할 수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2015년 순이익 2873억 원을 올려 2014년보다 순이익이 98.6% 증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이자 국내 증권사 가운데 가장 많은 순이익을 올렸다. 자기자본을 운용해 얻은 수익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도 21.3%로 국내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20%를 돌파했다.
2016년 3월18일 메리츠종금증권 정기주주총회에서 세번째로 연임에 성공했다. 최희문은 이 자리에서 기업금융 분야에서 다른 증권사들과 경쟁력 격차를 더욱 벌리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내외에서 양질의 프로젝트를 찾아내고 상대적으로 약했던 트레이딩과 소매금융(리테일) 부문의 시장지배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7년 뱅커스트러스트에 입사한 뒤 1995년까지 일하면서 뉴욕지부와 서울지부 부사장을 역임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크레디트스위스퍼스트보스톤(CSFB)은행 이머징마켓 부문에서 홍콩지부와 서울지부 이사 등으로 일했다.
2001~2002년 동안 골드만삭스그룹 상무를 맡았다.
2002년 삼성증권 캐피탈마켓사업본부장 전무로 자리를 옮겨 장외파생상품, 주식운용, 채권영업 등을 총괄했다.
2009년 메리츠증권 부사장으로 영입돼 채권, 법인영업, 파생상품운용, 시스템트레이딩, 자산운용 등 기업금융(홀세일) 부문을 총괄했다.
2010년 2월부터 메리츠종금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2011년 1월 메리츠금융지주사 설립이 확정됐을 때 메리츠금융 대표이사(비상근)을 겸임하게 됐다.
2017년 12월 메리츠종금증권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 학력
미국 파운턴밸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앰허스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1987년 졸업했다.
1993년 스탠퍼드대학교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최희문의 장모와 김용범 전 메리츠종금증권 사장의 장모가 서로 사촌인 것으로 알려졌다.
◆ 상훈
2009년 대통령 및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 상훈
2009년 대통령 및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어록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되고 국내 경제 또한 저성장 국면이 이어져 영업환경은 악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가운데 증권산업은 대형사 중심의 경쟁구도 속에 생존 사투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술혁신에 따른 IT융합과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로 업권의 경계도 무너지고 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겠다.” (2016/03/18, 메리츠종금증권 정기주주총회에서 향후 증권업계의 환경을 예측하며)
“임직원 스스로가 ‘주체’가 돼 일을 하는 문화가 정착돼 메리츠종금증권도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임직원이 주주나 파트너라는 맘을 갖고 일하니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경영진의 역할도 급격히 줄었다. 직원들에게 일일이 지시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경영진은 직원들이 도전정신을 갖고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회사가 높은 성과를 내는 비결은 여기에 있다. 성과에 대한 보상제도는 업계 최고 수준이다. 직장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만큼 보상하고 있다.” (2015/09/04,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올해 인수한 아이엠투자증권이 메리츠종금증권의 대형 투자금융(IB)회사 도약에 큰 도움을 줬다”며 “아직 종합금융투자사업자와 같은 대형 투자금융회사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유상증자나 순이익 증가세를 감안하면 2년 안에 요건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2015/08/31, 한 매체의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메리츠종금증권은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대형 증권사로 가느냐, 틈새시장에서 살아남는 중소형 증권사로 남느냐를 두고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2015/05/14, 메리츠종금증권의 아이엠투자증권 흡수합병 안건이 상정된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금융은 사람이 전부다. 일류 인재를 끊임없이 찾고 또 찾겠다. 자본이나 자산규모에 비해 넘칠 정도로 인재를 확보하겠다. 이렇게 확보한 인재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업 영토가 확장되는 선순환 구조를 속도감 있게 만들겠다.” (2015/03/20, 메리츠종금증권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력 충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다른 증권사와 다른 전략을 세워야 돈을 벌 수 있다. 단순 중개업에서 벗어나 일정 부분 리스크(위험)를 지더라도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부분에 집중했다.” (2013/12/0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메리츠종금증권의 순이익 증가 비결로)
“금융지주회사법상 영업에 이용할 목적으로 금융지주회사 간 고객정보 공유가 가능해짐에 따라 메리츠금융지주도 고객정보를 통합관리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고객관리와 고객군별 전략 개발에 고객정보를 활용해 다양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1/04/24, 메리츠금융지주 출범 이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메리츠종금증권은 앞으로 부동산과 관련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기업금융, 펀드 등 부동산의 모든 부문에서 사업적 역량을 강화하면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속도가 늦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특히 지금처럼 기로에 서 있는 자본시장에서 속도에 관계없이 계속 전진만 할 수 있다면 성과는 곧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0/05/23,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국내 증권사들은 글로벌 투자금융회사와 비교했을 때 규모 면에서 아직 너무 거리가 있다. 나름대로 경쟁력 있는 분야를 골라서 특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인프라스트럭처 펀드에 집중해서 글로벌회사로 성장한 맥쿼리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국내 증권사도 이와 같은 특화전략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국내에서 경쟁사들이 모두 영위하는 같은 업무로서는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2010/04/2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탄생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메리츠증권과 메리츠종금의 합병을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게 됐다. 30년이 넘는 두 회사의 연륜과 장점을 적극 조화시켜 메리츠종금증권을 경쟁력 있는 대형 금융투자회사로 키우겠다.” (2004/04/01, 여의도 메리츠종금증권 본사에서 열린 출범기념식에서)
◆ 평가
자본시장 전문가로서 ‘구조화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메리츠증권 부사장으로 임명됐을 때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현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에게 “양질의 사람들이 와서 일하고 싶은 회사, 명성이 높은 회사를 만들자”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메리츠증권이 2010년 2월26일 주주총회에서 메리츠종금과 합병을 결의했을 때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메리츠종금증권 사장으로 취임한 뒤 기존의 메리츠증권 임원 34명 가운데 9명을 물갈이했다. 당시 외국계 투자금융회사 출신의 인사들을 대거 영입했다.
메리츠증권과 메리츠종금의 합병법인인 메리츠종금증권은 2010년 4월1일 출범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기업대출 등을 할 수 있는 종금업 라이선스를 2020년까지 보유하게 됐다.
메리츠종금증권이 2010년 4월1일 출범하자마자 종금형 상품인 ‘THE CMA plus’와 ‘메리츠 발행어음’ 출시를 주도하며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당시 최희문은 “우리에게 충분한 자본이 있다”며 자금력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메리츠종금증권은 당시 자기자본 6300억 원을 보유해 증권업계 13위에 올랐다.
2010년 10월21일 메리츠종금증권이 소매금융자산 6조 원을 넘어섰다. 당시 최희문은 CMA, 구조화상품, 오토리스 등의 상품 판매를 확대해 2020년까지 총자산 30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2011년 1월11일 메리츠금융지주사 설립이 확정됐을 때 메리츠금융 대표이사(비상근)을 겸직하기로 결정됐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11년 3월28일 공식 출범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메리츠화재를 중심으로 메리츠종금증권, 메리츠자산운용,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 리츠파트너스, 메리츠비즈니스서비스 등으로 이뤄진 국내 최초의 보험지주회사다.
2012년 5월18일 메리츠종금증권 이사회에서 김용범 당시 최고재무관리자(CFO)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메리츠종금증권은 최희문과 김용범의 각자 대표이사 사장 체제로 전환됐다. 김용범 사장이 지점영업과 관리를 맡고 최희문이 지점영업을 제외한 모든 영업부문을 총괄하는 방식이다.
증권업계에 불황이 왔다고 평가된 2012년 4~12월 동안 메리츠종금증권의 누적순이익을 512억 원으로 끌어올렸다. 2011년 같은 기간보다 순이익이 49% 늘었으며 2011년 전체 순이익인 536억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2012년 4~12월 동안 전체 증권사들의 누적순이익은 7877억 원으로 2011년 같은 기간 1조7498억 원에서 9621억 원이나 감소했다.
당시 메리츠종금증권의 순이익 증가 비결로 종금업 라이선스와 더불어 최희문과 김용범의 빠른 의사결정구조가 회자됐다. 최희문과 김용범은 당시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등으로 업무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말단 직원이라고 해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일 경우 직접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6월7일 메리츠종금증권 각자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선임됐다.
2013년 12월5일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에 처음 왔을 때 군대 같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기업 특유의 격식을 따지는 문화가 비효율을 초래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각자 대표이사를 맡았던 김용범 사장이 2014년 12월29일 메리츠화재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메리츠종금증권의 단독 대표이사 사장으로 돌아왔다.
메리츠종금증권이 2014년에 종금 라이선스를 이용한 부동산금융 주선금액 5조 원을 돌파했다. 이를 통해 메리츠종금증권은 2014년에 순이익 1477억 원을 올렸다. 창사 이후 처음으로 순이익 1천억 원을 넘어섰다.
2015년 초에 증권사들이 구조조정에 나섰는데도 영업인력 채용을 늘리고 초대형 거점점포 여의도금융센터를 개원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했다.
2015년 3월20일 메리츠종금증권 주주총회에서 290만 주의 주식선택매입권을 받았다. 메리츠종금증권 전체 주식의 0.9% 규모로 2020년부터 2024년 사이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
2015년 6월1일 메리츠종금증권이 아이엠투자증권을 흡수합병해 합병법인으로 출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이 합병으로 총자산 12조 원대, 자기자본 1조 원대의 국내 10위권 증권사로 몸집을 불렸다.
2015년 7월2일 메리츠종금증권이 4247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종금 라이선스 종료 이후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진출하기 위한 조치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의 증권사로 프라임브로커리지 등 대형 투자금융(IB) 사업을 할 수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2015년 순이익 2873억 원을 올려 2014년보다 순이익이 98.6% 증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이자 국내 증권사 가운데 가장 많은 순이익을 올렸다. 자기자본을 운용해 얻은 수익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도 21.3%로 국내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20%를 돌파했다.
2016년 3월18일 메리츠종금증권 정기주주총회에서 세번째로 연임에 성공했다. 최희문은 이 자리에서 기업금융 분야에서 다른 증권사들과 경쟁력 격차를 더욱 벌리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내외에서 양질의 프로젝트를 찾아내고 상대적으로 약했던 트레이딩과 소매금융(리테일) 부문의 시장지배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 기타
중학교 1학년인 1977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뒤 학창시절을 모두 미국에서 보냈다.
글로벌 투자금융회사에서 15년 동안 경력을 쌓은 해외파로 미국 국적을 지니고 있다.
2004년 4월 메리츠종금증권 출범 이후 인터뷰에서 해외생활을 오래 했지만 한국에 대한 문화적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폭탄주만 보면 도망을 다닌다”며 “술과 겨루는 것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2010년 4월 메리츠종금증권 사내메시지를 통해 취미, 애창곡, 주량 등을 밝혔다. 취미는 청계산 등산이며 애창곡은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다. 주량은 소주 1병, 폭탄주 4~5잔이다.
대표이사 보고의 대부분을 이메일, 전화, 문자 등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위 고하를 막론한 원탁 토론과 태블릿PC를 활용한 ‘종이없는 회의’를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즐기는 술을 와인으로 밝혔다. 골프는 업무 때문에 치는 정도이며 공식 행사에 비서 없이 혼자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013년에 연봉 17억7390만 원을 받아 당시 금융권 인사들 가운데 2번째로 많았다.
2014년에는 전체 보수 22억321만 원을 받았다. 급여가 5억 원, 상여금 16억9653만 원, 인정상여 등 기타 근로소득이 668만 원이었다. 이때 장기 경영성과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이연성과급 20억5488만 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매주 2~3일씩 각 사업부에서 올라온 거래의 사업성을 토론하고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딜 리뷰’를 연다. 이때 최희문은 반드시 회의에 참석해 안건을 직접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