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경영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한 달에 3분의 1은 해외, 3분의 1은 현장에 출근한다고 한다.
평소 “현장은 고객과 직접 만나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이자 기회”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해, 뉴욕, 파리, 도쿄, 홍콩 등 아모레퍼시픽이 진출한 글로벌 거점이나 국내 지역사업부를 자주 방문해 현장경영을 펼치고 있다.
중국과 미국, 프랑스 등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라네즈' '마몽드' 등의 출시를 성공시켰다. 특히 중국법인은 2007년부터 흑자를 내며 중국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중국에서는 진출 초기 당시에는 무명기업으로 어려운 과정을 겪었다. 서경배는 1992년 중국 진출 이후2014년 10월까지 꼬박 중국을 120번 가량 오갔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 '설화수'와 '이니스프리'를 내세워 중국과 아시아 화장품 시장을 공략했다. 설화수는 유커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면세점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유커 매출에 힘입어 설화수는 2015년 국내 화장품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연매출 1조 원을 넘었다.
2012년부터 방판 중심의 매출을 벗어나기 위해 온라인과 면세점 등 유통 채널 다각화를 진행했다. 또 브랜드 구조조정을 진행해 라네즈, 설화수, 마몽드, 에뛰드, 이니스프리 등 5대 글로벌 챔피언 뷰티 브랜드를 정하고 중국과 아시아 시장에서 브랜드를 키우는데 집중해왔다.
화장품 회사 회장답게 “마스카라만 빼놓고 다 써 봤다”고 한다. 그는 상품이 출시되기 전에 신제품을 직접 다 써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마스카라는 실력이 없어서 유일하게 못 써봤다”며 “사용 후 제품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까지만 해도 중견기업에 불과했던 아모레퍼시픽이 만리장성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비결에 서경배의 20년 ‘한우물 뚝심 경영’이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2013년 12월 포춘코리아가 선정한 '올해의 CEO 10' 에서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문성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화장품이라는 단일품목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했고 일찌감치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중국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공부하는 경영자’로 통한다. 책의 저자와 전화통화를 해 내용을 묻기도 하고 주변 임직원들에게 책을 권유할 때도 많다. "경영자는 평생 배우는 것을 멈춰선 안 된다"는 지론을 지니고 있다. 독서와 현장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통해 경영에 반영하곤 한다.
해외를 다니며 얻은 영감을 경영에 적극 반영하는데 부탄 방문 일화는 유명하다. 아모레퍼시픽 사장 시절인 2011년 초 부탄을 방문하고 당시 한 사원에서 승려 4만여 명이 70여 만 국민의 행복을 기원해주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귀국한 뒤 임직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궁리한 끝에 오전 7~10시 중 1시간 단위로 선택해 출근할 수 있도록 한 시차출퇴근제도, 현장출퇴근 제도, 여름휴가의 연중휴가 전환, 지정휴일제 등 여러 제도를 사내에 도입했다.
사내에서 회장님 대신 ‘서경배 님’으로 불린다고 한다. 2002년 태평양 사장 시절부터 호칭을 ‘님’으로 통일시킨 까닭이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여성의 경영참여도 장려하고 있다. 2014년 8월 기준으로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임원 69명 가운데 여성이 7명으로 전체의 10% 수준이었다. 이는 다른 기업들보다 약 10배까지 높은 비율을 보인 것이다. 2014년 6월 기준으로도 전체 직원 가운데 60%가 여성이다.
직원들과 소통 경영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대표적 예가 월례 정기조회다. 매월 첫 출근일 8시30분까지 회사강당에서 직원들과 조회시간을 연다.
이는 서성환 창업주가 1945년부터 시작한 전통이다. 이 자리에서 임직원의 이야기를 듣거나 해외 출장을 다니며 들었던 생각을 들려주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7년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에 과장으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태평양종합산업 기획부장, 태평양 재경본부 이사대우 본부장을 맡았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는 태평양화학 기획조정실 가정용품사업부 이사대우 전무를 맡았다.
1994년에는 32살의 나이에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을 맡아 증권, 패션, 야구단, 농구단 등 화장품 사업과 관련 없는 사업을 매각했다. 이를 통해 화장품 사업에 집중하는 한편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1997년 태평양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대한화장품공업협회 부회장을,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대한화장품공업협회 제 38대 회장을 지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는 태평양제약, 아모스프로페셔널, 에뛰드, 빠팡에스쁘아, 태평양금속, 장원산업 비상근 이사의 역할을 수행했다.
2005년 대한화장품공업협회 제 39대 회장에 재선임됐다.
2006년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으며 2013년 회장에 취임해 현재 재직하고 있다.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2013년에 아모레퍼시픽그룹은 매출 3조8954억 원, 영업이익 4698억 원을 기록하며 화장품 업계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유커(중국인 관광객) 특수를 제대로 누렸던 2014년에는 매출 4조7119억 원, 영업이익 6591억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매출 4조원을 넘어섰다.
◆ 학력
1975년 상명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8년 선린중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경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5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했다.
1987년 코넬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가족관계
아버지 서성환 창업주는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을 설립했다. 1932년 서 창업주의 모친 윤독정씨가 부엌에서 동백기름을 짜서 내다 판 것이 기업의 시초였다.
서 창업주는 1943년 개성 김재현백화점 화장품 코너를 마련하고 화장품 유통 및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1959년에 프랑스 화장품 회사인 코티와 제휴해 코티분을 생산 판매했고 1964년 국내 처음으로 방문판매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후 ABC 인삼크림, 진생삼미 등의 한방화장품을 출시하며 국내 화장품 산업을 이끌어갔다.
서경배는 서 창업주와 변금주씨 슬하의 2남 4녀 가운데 차남이다.
형인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은 1982년 태평양화학에 입사해 도쿄 및 뉴욕지사를 거쳐 태평양증권 부사장과 태평양종합산업의 회장을 지냈다.
서경배는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막내딸 신윤경씨와 결혼해 장녀 서민정씨, 차녀 서호정씨 두 딸을 두고 있다. 서민정씨는 이니스프리·에뛰드하우스 지분을 증여받는 등 3세 경영권 승계를 받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 상훈
1998년 32회 조세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01년 능률협회컨설팅으로부터 대한민국마케팅대상을 받았다.
2002년 ‘2002 연세 상경인의 밤’ 행사에서 ‘올해의 청년 연세 상경인상’을 받았다.
2006년 프랑스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상했다.
2008년 제3회 지속가능경영대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09년 제1회 대한민국 브랜드 이미지 어워드에서 기업인부문 어워드와 2010년 제4회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을 받았다.
2010년 제24회 경영학자 선정 경영자대상 시상식에서 경영자대상을 수상했다.
2012년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로 선정됐다.
2015년 제47회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과 제24회 다산경영상 오너경영인부문을 받았다.
◆ 상훈
1998년 32회 조세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01년 능률협회컨설팅으로부터 대한민국마케팅대상을 받았다.
2002년 ‘2002 연세 상경인의 밤’ 행사에서 ‘올해의 청년 연세 상경인상’을 받았다.
2006년 프랑스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상했다.
2008년 제3회 지속가능경영대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09년 제1회 대한민국 브랜드 이미지 어워드에서 기업인부문 어워드와 2010년 제4회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을 받았다.
2010년 제24회 경영학자 선정 경영자대상 시상식에서 경영자대상을 수상했다.
2012년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로 선정됐다.
2015년 제47회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과 제24회 다산경영상 오너경영인부문을 받았다.
어록
“아시아의 시대로 점차 세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아시아의 미(美)를 창조하는 기업’, ‘아시아의 가치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기회” “‘원대한 기업’으로 향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만큼 우직한 걸음으로 겸손한 도전을 이어가자” “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에뛰드, 이니스프리 등 5대 글로벌 챔피언 브랜드를 키워 ‘1조 브랜드’를 육성하고, 중국 등 신흥 시장 외에도 선진 시장까지 적극적으로 진출해 ‘아시아의 미(美)’를 세계에 알리겠다.” (2016/01/04 아모레퍼시픽그룹 신년사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과 중국 상하이 뷰티사업장 연구소가 중국 고객의 피부와 특성, 선호도 등을 연구하고 있죠.” (2015/04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르는 것 투성이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일하는 과정에서 중국인과 오해도 있었다. 서로 이해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힘들고 어려웠다.” (2014/10/26 중국 상하이 현지에서 열린 뷰티사업장 준공 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직 50대 초반이다. 젊고 할 일도 많다. 미래는 오겠지만 (경영권 승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 중이고 나중에 완전히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는 원하는 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봐라고 자주 말한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2014/10/26 중국 상하이 현지에서 열린 뷰티사업장 준공 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가 지금까지 중국에만 120번 가까이 왔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글로벌 인재상이 ‘혜초(신라 시대 승려)대사’같은 분이에요.” (2014/10/22 중국 상하이(上海) 쟈딩구 마루쩐 아모레퍼시픽 상하이 뷰티사업장 준공 간담회에서)
“400년 전 어려움 속에서 나라를 지키고 이끈 리더, 류성룡 선생과 같은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어 세계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2014/09/03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회에서 ‘리더는 성공으로 이끄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 세상의 미는 각기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며 우리는 우리만이 줄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인 '아시안 뷰티'를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뉴 뷰티'를 만들어가고 있다. 성공한 사람을 모두 리더라고 하지 않으며 진정한 리더는 성공으로 이끄는 사람을 말한다"며 "여러분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리더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2014/09/03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회에서 ‘리더는 성공으로 이끄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우리는 이제 우리의 화장문화를 전 세계 고객들에게 전파하는 'Great Global Brand Company'로 도약하고자 한다.” (2014/03/21, 제55회 정기주주총회에서)
“올해는 2020년 비전인 '원대한 기업'의 초석을 다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우리 다 함께 시장과 고객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2020년까지 5대 글로벌 챔피언 뷰티 브랜드 육성, 글로벌 사업 비중 50% 달성, 질적 성장을 실현하자." (2014/01/02, 중구 청계천로 아모레퍼시픽 본사 시무식에서)
“창업정신 되새겨 고객의 원점에 서야 미래가 있습니다.” (2013/12/02, 서울 중구 청계천로 시그니처타워 본사에서 열린 마지막 임직원 조회에서)
“가까운 미래에 회사 전체 매출의 51% 이상을 한국 밖에서 내겠다.” (2013/09, 창립 68주년 기념식에서)
◆ 평가
현장경영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한 달에 3분의 1은 해외, 3분의 1은 현장에 출근한다고 한다.
평소 “현장은 고객과 직접 만나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이자 기회”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해, 뉴욕, 파리, 도쿄, 홍콩 등 아모레퍼시픽이 진출한 글로벌 거점이나 국내 지역사업부를 자주 방문해 현장경영을 펼치고 있다.
중국과 미국, 프랑스 등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라네즈' '마몽드' 등의 출시를 성공시켰다. 특히 중국법인은 2007년부터 흑자를 내며 중국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중국에서는 진출 초기 당시에는 무명기업으로 어려운 과정을 겪었다. 서경배는 1992년 중국 진출 이후2014년 10월까지 꼬박 중국을 120번 가량 오갔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 '설화수'와 '이니스프리'를 내세워 중국과 아시아 화장품 시장을 공략했다. 설화수는 유커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면세점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유커 매출에 힘입어 설화수는 2015년 국내 화장품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연매출 1조 원을 넘었다.
2012년부터 방판 중심의 매출을 벗어나기 위해 온라인과 면세점 등 유통 채널 다각화를 진행했다. 또 브랜드 구조조정을 진행해 라네즈, 설화수, 마몽드, 에뛰드, 이니스프리 등 5대 글로벌 챔피언 뷰티 브랜드를 정하고 중국과 아시아 시장에서 브랜드를 키우는데 집중해왔다.
화장품 회사 회장답게 “마스카라만 빼놓고 다 써 봤다”고 한다. 그는 상품이 출시되기 전에 신제품을 직접 다 써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마스카라는 실력이 없어서 유일하게 못 써봤다”며 “사용 후 제품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까지만 해도 중견기업에 불과했던 아모레퍼시픽이 만리장성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비결에 서경배의 20년 ‘한우물 뚝심 경영’이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2013년 12월 포춘코리아가 선정한 '올해의 CEO 10' 에서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문성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화장품이라는 단일품목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했고 일찌감치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중국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공부하는 경영자’로 통한다. 책의 저자와 전화통화를 해 내용을 묻기도 하고 주변 임직원들에게 책을 권유할 때도 많다. "경영자는 평생 배우는 것을 멈춰선 안 된다"는 지론을 지니고 있다. 독서와 현장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통해 경영에 반영하곤 한다.
해외를 다니며 얻은 영감을 경영에 적극 반영하는데 부탄 방문 일화는 유명하다. 아모레퍼시픽 사장 시절인 2011년 초 부탄을 방문하고 당시 한 사원에서 승려 4만여 명이 70여 만 국민의 행복을 기원해주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귀국한 뒤 임직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궁리한 끝에 오전 7~10시 중 1시간 단위로 선택해 출근할 수 있도록 한 시차출퇴근제도, 현장출퇴근 제도, 여름휴가의 연중휴가 전환, 지정휴일제 등 여러 제도를 사내에 도입했다.
사내에서 회장님 대신 ‘서경배 님’으로 불린다고 한다. 2002년 태평양 사장 시절부터 호칭을 ‘님’으로 통일시킨 까닭이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여성의 경영참여도 장려하고 있다. 2014년 8월 기준으로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임원 69명 가운데 여성이 7명으로 전체의 10% 수준이었다. 이는 다른 기업들보다 약 10배까지 높은 비율을 보인 것이다. 2014년 6월 기준으로도 전체 직원 가운데 60%가 여성이다.
직원들과 소통 경영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대표적 예가 월례 정기조회다. 매월 첫 출근일 8시30분까지 회사강당에서 직원들과 조회시간을 연다.
이는 서성환 창업주가 1945년부터 시작한 전통이다. 이 자리에서 임직원의 이야기를 듣거나 해외 출장을 다니며 들었던 생각을 들려주는 것으로 전해진다.
◆ 기타
병역기간 동안 육군으로 근무했다. 취미생활은 클래식음악감상과 독서, 운동이다.
보유주식 가치가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오르면서 급등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조7천억 원대에서 2014년 9월 6조 원 대로 2015년 12월에는 9조2783억 원이 됐다.
개인이 보유한 주식가치가 6조원을 넘긴 것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이어 세 번째다. 당시 서경배의 지분가치가 2014년 상반기와 비교해 45% 늘어난 5조8006억 원으로 가장 많이 늘었다.
2015년 3분기까지 보수는 11억2500만 원으로 2014년 같은 기간 보수 26억8493만원보다 15억5993만 원 적었다. 이는 2014년 상반기 보수에 3년 주기로 지급되는 인센티브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발표된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Bloomberg Billionaire Index)에 따르면 79억 달러에 이르는 재산을 보유해 세계에서 154위, 국내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9배 규모로 용산에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신사옥을 짓고 있다. 5200억 원을 들여 현재 건물을 헐고 다시 짓는 신사옥 공사가 끝나면 계열사 전체가 한 건물에 모이게 된다.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있는 현재의 건물은 서성환 창업주가 1976년 세웠던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