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용 기자 romancer@businesspost.co.kr2015-10-02 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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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김상헌 네이버 대표.
김상헌은 1963년 9월 1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법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철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다음 공군법무관으로 병역의무를 마쳤다.
김상헌은 서울지방법원에서 지적소유권 전담판사를 하다 LG그룹에 입사했다. LG그룹에서 법무팀장을 맡았는데 기업 법무팀장으로 처음이자 LG 역사상 최연소 부사장이 됐다.
미국 하버드 로스쿨 석사학위(LLM)과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NHN의 경영고문으로 자리를 옮겨 경영관리본부장 부사장을 역임했고 NHN 대표에 오른 이후 6년 동안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소통을 누구보다 강조하며 이메일과 사내 게시판 등을 통해 직원들과 열린 커뮤니케이션을 늘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우리 회사는 사람과 사람 외에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려고 하며 사람은 결국 누군가와 닿아있기를 희망하고 그러한 연결의 최우선은 소통”이라고 임직원에게 강조한다.
그는 CEO의 덕목에 대해 “CEO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듣고 또 듣는 것 소통하고 또 소통하는 것"이라면서 "이를 항상 마음에 새기며 낮은 자세로 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직원들과 활발한 소통을 위해 사내 인트라넷에 ‘CEO 다이알로그’라는 코너를 마련해 회사업무는 물론 구성원들의 가족과 취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댓글로 의견을 교환하며 늘 소통을 시도하는 경영인이다.
LG전자와 NHN에 근무하면서 법조인으로 돋보이는 성과를 냈다.
LG전자에서 일할 당시 LG전자가 진행하던 인수합병(M&A)과 LG반도체 매각, LG카드 문제를 법률적으로 문제없이 처리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2001년 중국 엘리베이터부품 제조업체인 ‘북경시람광전제공사’가 LG를 상대로 낸 상표권 침해소송에서 승리를 이끌어 내는 등 지적소유권 전담판사 경력을 살려 브랜드 상표 분쟁에서 공을 세웠다.
LG가 지주회사로 재편하는 법적 절차를 담당했다.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당시 국내에 생소했던 회사분할과 현물출자, 공개매수, 합병 등의 문제를 잘 처리했고 그가 담당했던 LG의 지주회사 전환사례는 다른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NHN에서 법조인으로서 능력을 발휘해 NHN대표에 올랐다.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네이버에 대해 검색서비스를 비롯한 인터넷 포털서비스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된다며 남용행위를 중단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리자 네이버는 이에 불복해 법적 소송을 했다.
그는 당시 경영본부장으로 근무하며 모든 법적절차를 총괄했고 결국 공정위를 상대로 승소했다. NHN은 공정위와 법적소송을 벌이는 동안 그를 NHN대표로 임명하며 힘을 실어줬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93년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했다. 1995년 서울지방법원 지적소유권 전담부 판사를 역임했다.
1996년 LG그룹에 입사했다. LG그룹에서 법무팀장을 맡다 2004년 LG그룹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7년 NHN 경영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8년 NHN경영관리본부 본부장이 됐고 2009년부터 NHN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NHN의 기업분할 이후 네이버 대표이사로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 학력
1982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서울대학교에서 법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철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LG에 근무하던 시절 2000년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학위(LLM)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과 1남1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노소라 서울지방법원 전 판사로 2014년부터 무역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 상훈
2011년 제1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IT발전부문을 수상했다.
2014년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 상훈
2011년 제1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IT발전부문을 수상했다.
2014년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어록
“밖에서 볼 때 우리 직원들이 거만 혹은 답답하다는 오해를 받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제안에 대해 순진한 직원들이 주저하며 적극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서비스 개발에만 충실하다보니 외부 파트너와 소통 노하우를 키우지 못했습니다.” (2009/04/08, 언론을 통해 NHN직원들이 개선할 점에 대해 말하며)
김 대표는 “국내 인터넷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부작용도 많았지만 참여와 개방이라는 인터넷 본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업계의 자율의지에 맡기면 선순환 작용이 일어날 것입니다.” (2009/04/09, 기자간담회에서 개정된 저작권법에 대해 정부의 규제를 반대한다는 뜻을 드러내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미디어의 적이 아닌 친구가 될 것이다. 언론사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으로 뉴스를 내보내면 자사 웹사이트 방문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하면 안 된다. 소셜네트워크와 인터넷 발달이 기존 미디어에 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2010/04/30, 한국미디어경영학회 2010년 봄철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이제 CEO가 사장실에 앉아 부사장 불러서 지시를 내리는 시대가 아니다. 직원 중 디지털 네이티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방법이 SNS다. 회사의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담당 직원을 불러서 호통치기보다 블로그나 SNS에 보다 가볍게 내용을 남겨 봐라. 조금이라도 관련된 직원들의 피드백이 쏟아질 것이고 상향식의 격의 없는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 SNS 소통은 아직 기업 외적 현상으로 보일지 몰라도 점점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 돼 가고 있다.” (2010/06 기술표준협회 CEO 조찬강연에서)
“호기심이 많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볼 때마다 기쁨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예상한다는 것은 뻔한 것일 경우가 많고 경쟁도 많아 이미 늦은 것입니다. 물론 거기서도 승자가 되고 이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보다 남들이 가치를 못 찾고 있거나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 않는 것에 긴 안목으로 투자하는 것, 그 것이 지금은 비록 느릴지 모르지만 성공가능성도 더 높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2011/05/02, 법률저널과 인터뷰에서)
◆ 평가
소통을 누구보다 강조하며 이메일과 사내 게시판 등을 통해 직원들과 열린 커뮤니케이션을 늘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우리 회사는 사람과 사람 외에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려고 하며 사람은 결국 누군가와 닿아있기를 희망하고 그러한 연결의 최우선은 소통”이라고 임직원에게 강조한다.
그는 CEO의 덕목에 대해 “CEO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듣고 또 듣는 것 소통하고 또 소통하는 것"이라면서 "이를 항상 마음에 새기며 낮은 자세로 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직원들과 활발한 소통을 위해 사내 인트라넷에 ‘CEO 다이알로그’라는 코너를 마련해 회사업무는 물론 구성원들의 가족과 취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댓글로 의견을 교환하며 늘 소통을 시도하는 경영인이다.
LG전자와 NHN에 근무하면서 법조인으로 돋보이는 성과를 냈다.
LG전자에서 일할 당시 LG전자가 진행하던 인수합병(M&A)과 LG반도체 매각, LG카드 문제를 법률적으로 문제없이 처리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2001년 중국 엘리베이터부품 제조업체인 ‘북경시람광전제공사’가 LG를 상대로 낸 상표권 침해소송에서 승리를 이끌어 내는 등 지적소유권 전담판사 경력을 살려 브랜드 상표 분쟁에서 공을 세웠다.
LG가 지주회사로 재편하는 법적 절차를 담당했다.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당시 국내에 생소했던 회사분할과 현물출자, 공개매수, 합병 등의 문제를 잘 처리했고 그가 담당했던 LG의 지주회사 전환사례는 다른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NHN에서 법조인으로서 능력을 발휘해 NHN대표에 올랐다.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네이버에 대해 검색서비스를 비롯한 인터넷 포털서비스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된다며 남용행위를 중단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리자 네이버는 이에 불복해 법적 소송을 했다.
그는 당시 경영본부장으로 근무하며 모든 법적절차를 총괄했고 결국 공정위를 상대로 승소했다. NHN은 공정위와 법적소송을 벌이는 동안 그를 NHN대표로 임명하며 힘을 실어줬다.
◆ 기타
스스로를 어디에도 선뜻 속하기를 싫어하는 ‘주변인’ 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생으로 조국 서울대 교수와 김난도 서울대 교수, 원희룡 제주도지사, 나경원 새누리당 국회의원, 한승 대법원 선임재판연구원이 있지만 친하지 않다고 말한다.
취미는 독서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감상이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미국 하버드 로스쿨로 유학갈 때 이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를 소포로 모두 부쳤다.
‘리더십’에 대해 논하는 자리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만화를 특히 좋아한다.
집무실 서재 한쪽에 만화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일본 만화 ‘시마 과장’에서 “사장이란 편한 자리가 아니라니까”라는 등장인물의 대사가 나오는 부분을 SNS를 통해 공유하며 ‘만화는 나의 힘’이라고 표현했다.
문학도 좋아한다.
배재고 재학시절 백일장에서 수상을 다수했고 친구들과 함께 폐지됐던 문학반까지 부활시켰다. 도서관에 1천 권의 책을 기증했다.
네이버의 지식IN 서비스에 법률관련 정보가 올라오면 직접 답변을 달기도 한다.
유익한 정보와 즐거움을 주는 것이 경영철학이라고 밝혔다.
LG에서 NHN으로 이직할 때 스티즈 잡스가 존 스컬리 펩시콜라 사장을 영입할 때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당신은 설탕물만 팔고 있을 거냐’고 말한 대목을 읽은 것이 이직동기가 됐다고 말한다.
러시아의 대표 포털기업인 메일닷루의 사외이사를 맡기도 했다.
2013년 연봉으로 15억8200만 원을 받았고 2014년 17억9300만 원을 받았다. 2015년 1분기 14억1300만 원을 수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