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데뷔 이후 가수로서 1990년대에 두각을 보였고 2000년대 이후로는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박진영의 음악세계는 미국 대중음악, 특히 흑인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박진영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2년반 동안 살았는데 당시 흑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춤과 노래를 배웠다고 한다.
박진영은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마이클 잭슨의 1집 'Off The Wall'을 음악의 출발점으로 꼽는다.
다른 가수출신 제작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가수활동을 그만두는 것과 반대로 박진영은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가수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작곡가로서도 최고반열에 올랐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음원 저작권 수입 1위를 기록했다.
프로듀서로서도 god와 원더걸스, 비, 미쓰에이, 갓세븐, 트와이스 등을 스타로 만드는 등 대한민국 최고의 제작자 가운데 한명으로서 역량을 인정받는다.
박진영은 아시아 연예인 사상 최초로 비가 뉴욕의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단독 공연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비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2006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연예기획자로서 언론을 이용한 ‘몸값띄우기’에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표절문제와 과도한 성적코드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도 일부 존재한다.
박진영은 이른바 샘플링을 이용해 많은 곡들을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표절 의혹에 자주 휘말리고 있다. god의 명곡 ‘어머님께’의 경우 투팍의 곡 ‘Life Goes On’와 ‘Dear Mama’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어나자 뒤늦게 협상을 해 박진영은 편곡지분만 보유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알려졌다.
파격적인 의상과 섹시코드를 추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집 활동 당시 화보 촬영을 하며 입었던 비닐바지 패션은 박진영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엉덩이춤도 큰 화제를 모았다.
2집 활동 당시 ‘엘리베이터’라는 곡과 뮤직비디오도 당시 시대분위기상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섹스는 게임이다”라는 박진영의 발언은 누리꾼들의 조롱과 패러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나치게 미국시장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국내에서 승승장구하던 원더걸스를 무리하게 미국으로 진출하도록 해 실패했던 경우가 대표적이다. 박진영이 추구하는 미국음악과 그의 인맥은 최근의 미국음악 트렌드가 아니라 과거의 미국음악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92년 ‘박진영과 신세대’라는 이름의 그룹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1994년 9월 ‘날 떠나지 마’라는 타이틀곡을 내놓으며 솔로가수로 전향했고 솔로 1집 앨범은 1995년까지 47만장의 음반판매량을 달성했다.
1995년 타이틀곡 ‘엘리베이터’로 2집앨범을 발표했다.
1997년 타이틀곡 ‘그녀는 예뻤다’로 3집 앨범을 냈다.
1998년 타이틀곡 ‘Honey’로 4집 앨범을 냈다.
1998년 5집, 2001년 6집, 2007년 7집을 냈고 2009년부터 싱글앨범을 내며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99년 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제작자 겸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 학력
용마초등학교와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서울 배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 연세대학교 지질학과에 입학했다.
경기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한 후 연세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에 편입했다가 중퇴했다.
◆ 가족관계
아버지 박명노씨, 어머니 윤임자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박명노씨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한국산업은행과 동부그룹 전무, 동부주택할부금융 사장 등을 역임했다.
윤임자씨는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교사를 하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생활하고 있다.
박명노씨는 교회 장로이며 윤임자씨는 교회 권사이기도 하다.
박진영의 누나는 결혼해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상훈
2006 문화콘텐츠 수출유공자 시상식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011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상훈
2006 문화콘텐츠 수출유공자 시상식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011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어록
“왬(Wham)부터 시작해 그의 모든 솔로 앨범을 사랑했고,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 고(Wake me up before you go go)를 96년에 리메이크했었고 이번 콘서트에서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가수들이 다 너무 빨리 떠난다. 당신들의 음악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2016/12/26,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날 세상을 떠난 영국 팝가수 조지 마이클을 기리며)
“가장 부르기 힘든 게 발라드다. 기교 없이 깨끗하게 부른다 했을 때 얼마나 다르게 부르겠나. 그런데 다르게 부르는 사람이 있다. 1, 2% 다른 점이. 그게 없이 어떻게 수많은 명품 발라더 사이에서 자리를 만드나? 빤하게 잘 부르는 것보단 새롭게 못 부르는 게 낫다.” (2016/11/27, SBS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6’에서)
“정말 좋은 투수는 직구를 잘 던지는 투수도 아니고요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도 아니에요. 심장이 큰 투수에요.” (2013/02/03, SBS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6’에서)
“삶은 절대로 우리를 결정대로 되지 않으니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사셨다면 편안히 주무셔도 됩니다.” (2012/04/30,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내가 하는 모든 잔소리를 종합하면 결국 휘트니 휴스턴을 본받자는 얘기다. 그녀는 노래하는 내내 들숨과 날숨을 내쉬어 ‘소리반 공기반’인 톤을 유지한다.” (2012/02/13,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내가 가수를 왜하지라는 고민 끝에 깨달은 것은 ‘나는 딴따라다’라는 것이다. 한명의 팬이라도 감동을 주고 싶다. 다들 멋있을 때 떠나라고 하는데 난 늙을 때까지 공연하고 싶다. 내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앞에서 노래하고 싶다.” (2007/11/15, 6년 만에 7집 앨범을 내며)
“결론적으로 나는 정치적 이슈에 관심이 있다. 아니 아주 많다.” (2007/02/07,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린 한류포럼의 기조연설자로서 자격 논란이 일어나자)
“비는 여자를 소개시켜준다고 해도 싫다고 한다.” (2005/10/23, 중국 베이징공인체육장에서 비의 첫 중국 단독콘서트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진보세력은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리버럴한데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보수성을 띤다.” (2003/08/22,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차세대 성장동력 보고회에 참석해)
“섹스는 사랑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일상적인 ‘놀이’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신성하거나 혹은 추악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2001/06/11, 6집 ‘게임’을 발매하며)
◆ 평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제작자(프로듀서) 가운데 한명으로 평가된다.
1994년 데뷔 이후 가수로서 1990년대에 두각을 보였고 2000년대 이후로는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박진영의 음악세계는 미국 대중음악, 특히 흑인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박진영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2년반 동안 살았는데 당시 흑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춤과 노래를 배웠다고 한다.
박진영은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마이클 잭슨의 1집 'Off The Wall'을 음악의 출발점으로 꼽는다.
다른 가수출신 제작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가수활동을 그만두는 것과 반대로 박진영은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가수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작곡가로서도 최고반열에 올랐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음원 저작권 수입 1위를 기록했다.
프로듀서로서도 god와 원더걸스, 비, 미쓰에이, 갓세븐, 트와이스 등을 스타로 만드는 등 대한민국 최고의 제작자 가운데 한명으로서 역량을 인정받는다.
박진영은 아시아 연예인 사상 최초로 비가 뉴욕의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단독 공연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비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2006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연예기획자로서 언론을 이용한 ‘몸값띄우기’에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표절문제와 과도한 성적코드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도 일부 존재한다.
박진영은 이른바 샘플링을 이용해 많은 곡들을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표절 의혹에 자주 휘말리고 있다. god의 명곡 ‘어머님께’의 경우 투팍의 곡 ‘Life Goes On’와 ‘Dear Mama’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어나자 뒤늦게 협상을 해 박진영은 편곡지분만 보유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알려졌다.
파격적인 의상과 섹시코드를 추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집 활동 당시 화보 촬영을 하며 입었던 비닐바지 패션은 박진영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엉덩이춤도 큰 화제를 모았다.
2집 활동 당시 ‘엘리베이터’라는 곡과 뮤직비디오도 당시 시대분위기상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섹스는 게임이다”라는 박진영의 발언은 누리꾼들의 조롱과 패러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나치게 미국시장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국내에서 승승장구하던 원더걸스를 무리하게 미국으로 진출하도록 해 실패했던 경우가 대표적이다. 박진영이 추구하는 미국음악과 그의 인맥은 최근의 미국음악 트렌드가 아니라 과거의 미국음악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 기타
농구를 좋아한다고 한다. 스포티비가 중계한 NBA 2015-16 결승전 6차전에 객원해설로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박상천 전 민주당 의원과 5촌 관계다. 한때 민주당에서 선거를 앞두고 영입설도 제기됐지만 고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