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 악재에 대처
이주열은 2016년 10월 이후 박근혜 게이트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등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한국은행이 경제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2016년 12월9일 국회를 통과하자 시장의 불안심리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와 금융위원회 등과 긴밀하게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자 긴급회의를 열고 금융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외적으로도 2016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뒤 2017년 들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사드배치 보복이 잇따르면서 이주열의 역할도 더욱 커지고 있다.
2017년을 ‘초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하고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저금리를 한동안 이어갈 뜻을 시사했다. 2017년 4월에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2.5%에서 2.6%로 상향하면서 점진적인 경기회복을 예상했다.
△기준금리
이주열은 금융시장의 안정을 중시하고 통화긴축정책을 선호하는 ‘매파’로 분류돼왔다. 그러나 막상 한국은행 총재가 된 뒤에는 기준금리를 여러차례 내렸다.
이주열이 취임한 지 4개월 만인 2014년 8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15개월 만에 0.25%포인트 내려 연 2.25%로 조정했다. 일본의 엔화약세 정책에 세월호 참사 등의 악재가 겹친 데다
정부에서 시장에 돈을 대거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초이노믹스’(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와 정책공조 필요성이 제기된 점을 감안했다.
2014년 10월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다시 0.25%포인트 내려 연 2.0%로 조정했다. 2015년 3월과 5월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리면서 금리가 연 1.5%까지 떨어졌다.
2016년
들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등 국제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국내에서도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으로 기업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금리를 추가로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2016년 4월에 새로 추천된 금융통화위원 4명 가운데 상당수가 비둘기파로 분류된 점도 금리인하 전망의 근거가 됐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016년 6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로 내려 기준금리는 연 1.25%가 됐다. 시장의 금리동결 전망을 뒤엎은 결정이었다. 이주열은 “기업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경기가 하강할 위험이 있어 선제적인 완화에 나섰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내린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준금리를 내려 낮은 물가상승률을 목표치인 2%로 올리려 했지만 물가상승률이 2016년 상반기까지 매달 0%대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이주열은 두차례나 물가안정목표 설명회에 참여해 사안들을 직접 해명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가계부채가
2017년 4월 기준으로 1300조 원을 넘어서는 등 심한 부작용도 나타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016년 12월 기준금리를 올리자 “미국이 금리를 예상보다 빠르게 올릴 가능성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려도 금리를 곧바로 따라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한국은행은 2017년 4월 기준으로 10개월째 기준금리 연 1.25%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부총리와 갈등
이주열이 한국은행 총재가 된 뒤 기준금리가 네차례나 인하된 점을 놓고 독립성 시비가 종종 일어났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들이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을 직간접적으로 주문했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국은행도 경기가 좋지 않다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뼈대로 한 ‘초이노믹스’를 펼치면서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내려달라는 뜻을 여러차례 내비쳤다.
반면 이주열은 기준금리를 내려도 소비를 끌어올리기 힘들다는 입장과 함께 기준금리 결정이 한국은행 고유의 권한임을 강조했다.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국내 경제의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2014년 9월22일 호주 시드니에서 이주열을 만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주열과 만나 금리의 금 자도 말하지 않았지만 척하면 척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던 것이 대표적인 갈등 사례다. 이주열은 이틀 뒤 경제동향간담회에서 “G20 회의에서 어떤 국가의 대표가 ‘바보야 문제는 실천이야’라고 말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2015년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것을 주장하자 “한국개발연구원과 생각이 비슷하다”고 밝히면서 금리인하를 다시 압박했다. 한국은행은 그해 6월에 기준금리를 연 1.50%로 내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6년 1월 취임한 뒤에는 이주열과 대체로 공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6년 10월에 이주열이 재정정책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통화정책의 여력은 제한적이다”고 말한 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금리인하 여력이 아직 있다”고 말하면서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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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1704/47663_65648_4541.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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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뉴시스> |
△한국판 양적완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2016년 4월 총선공약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앞세우면서
정부와 여당 등이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은 한국은행에서 발권력을 동원해 산업은행 채권과 주택담보대출증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기업구조조정 재원을 확보하는 것을 뜻한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뒤에도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이 한국판 양적완화를 추진했고 청와대도 힘을 실어줬다.
한국은행은 초반에 난색을 표시했지만 이주열이 2016년 5월 “기업구조조정이 경제에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은 최후의 수단으로 쓰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게 일어났다. 이주열도 한국은행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직접출자보다는 대출이 낫다는 의견을 보였다.
결국 2016년 7월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방안이 확정되면서 한국은행이 도관은행인 기업은행에 10조 원을 빌려주는 선에서 매듭이 지어졌다.
△리디노미네이션 논란
2015년 9월17일 국정감사에서 화폐개혁의 필요성을 지적받자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액면가를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조치를 말한다.
그 뒤 리디노미네이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 빗발치자
이주열은 2015년 10월4일 국정감사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의 기대효과와 부작용이 분명하다”며 “사회적인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시장과 소통부재 논란
이주열은 통화정책 성패의 관건으로 시장의 신뢰를 들면서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시장과 국민들에게 미리 신호(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한국은행 총재가 된 뒤 매파적인 발언과 달리 기준금리를 여러차례 내리면서 시장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주열도 2015년 3월30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년 동안 가장 아픈 점은 소통이 부족했다는 비판”이라고 말했다.
2015년 5월1일 한국은행의 창립 이후 처음으로 외부에서 홍보전문가를 채용하기로 결정하면서 파격적인 인사를 실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융통화위원들에게도 외부와 소통을 늘릴 것을 주문했다.
△이주열과 김중수
전 총재
이주열은 한국은행 부총재 시절 김중수 당시 총재(현 한림대학교 총장)와 각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 총재가 되자 ‘김중수 라인’을 물갈이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주열은 2009년 4월~2012년 4월 동안 한국은행 부총재로 일했는데 당시 재직기간이 겹쳤던 김중수 전 총재(2010년 4월~2014년 3
월)와 한국은행의 인사와 조직개편 등을 두고 종종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불화설이 돌았다.
이주열은 2012년 4월6일 한국은행 부총재 퇴임식에서 “60년 동안 형성된 한국은행 고유의 가치와 규범이 하루아침에 부정돼 혼돈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에들러 비판했다.
김중수 전 총재가 재임기간에 ‘개혁’과 ‘글로벌’을 앞세워 조직을 대규모로 개편하고 인사를 물갈이한 점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됐다.
이주열은 2014년 4월 한국은행 총재로 취임한 뒤 대규모 인사를 통해 김중수 전 총재 시절 발탁된 임직원을 대거 교체했다. 그
뒤 장병화 한국은행 부총재 등 최측근 인사를 임명해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한국은행의 두번째 내부 출신 총재
이주열은 이성태 전 총재(1998년 임명)에 이어 한국은행 내부 출신 가운데 두 번째로 총재에 올랐다. 이주열은
2017년 현재 한국은행에서 38년 째 일하고 있다.
2007년 통화신용정책담당 부총재로 한은의 통화정책을 이끌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은이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됐다.
2014년 3월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됐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주열을 총재로 선택한 이유로 한국은행을 잘 알고 국제금융시장에 관련된 식견과 판단력을 갖춘 점을 들었다.
한국은행에 오랫동안 근무해 직원들의 신망이 두텁고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한국은행 안에만 있어 통화정책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2012년 한국은행법이 개정돼 역대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 가운데 처음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쳤다. 한국은행 내부 출신이라는 점 등이 감안돼 인사청문회를 비교적 무난하게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