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앨범·미니 앨범·싱글 앨범으로 구분되는 전통적인 앨범 발매 방식에서 벗어나, 디지털 싱글 형태의 음악들을 자유롭고 지속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음반 시장뿐만 아니라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 역시 활발한 움직임을 선보이겠다." (2016/01, 'SM타운: 뉴 컬처 테크놀로지' 프레젠테이션에서)
"취재진, 해외 관계자 분들에게도 중요하지만, 아마 세 분이 가장 주의 깊게 봤을 것이다." "보아, 강타, 김민종 이사님이 무섭게 쳐다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고식 마쳤는데 잘 부탁드린다." (2016/01, 'SMTOWN: New Culture Technology 2016'이 열렸을 당시 발표자로 나서 새 새 보이그룹 'NCT' 등 다양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실 전 가창력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원래 듀엣을 하려 했던) 작은 형(소녀시대 써니 아버지)이 노래를 더 잘했죠. 대신 저는 곡을 만들거나 믹싱을 하거나 최신 트렌드를 간파하는 능력이 좋은 편이었어요. 컴퓨터 공학을 공부한 덕분에 디지털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 남보다 빨랐고.” (2011/07/1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왜 가수를 그만뒀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한국형 시스템이 한류 세계화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우리는 가능성 있는 연습생들을 선발해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트레이닝을 시켜 엔터테이너로 키우고 있다. 물론 정상적 교육에도 만전을 기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에이전시 시스템은 이미 검증된 스타를 향해서만 투자를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이미 세계로 나가고 있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한탕주의로 성공할 수 없다. 우리는 장기적인 계획과 투자를 통해 스타를 만들어왔다. 이를 부정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미국과 유럽에서도 우리 시스템을 배우고자 하는 상황이다." (2011/06/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횡령 한 적이 없습니다." (2003/10/09, 회삿돈 횡령 혐의에 대해 부인하면서)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즉 ‘가수이기 이전에 인간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삶의 모든 주파수를 음악에 맞추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MTV를 보며 엔터테인먼트 감각을 익혔다. 엔터테인먼트산업에서의 성공으로 명예와 돈을 얻을 수 있는 미국이 부러웠다. 사실 미국에서 보고 배운 것 을 한국에 적용했다."(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가수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로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답변하며)
"H.O.T는 중국에서 2위를 달리는 그룹이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가수로 성장했다. 그런데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흐리는 한 회사가 주가를 올리고 싶은 욕심에 눈이 멀어 강타와 문희준을 제외한 멤버 3명을 빼간 셈이다. 동종 업계에서 ‘선수’를 빼가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다.“ (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H.O.T’의 해체 이유에 대해 말하며)
“한류는 이미 국가의 중대한 사업이 됐다. 3년 안에 한류를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중국문화가 아시아를 완전 장악하게 된다. 중국에서 미래의 메이저 엔터테인먼트회사가 나올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문화의 핵에는 한국이 존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스타를 배출하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 (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류에 대한 견해를 묻자)
“정부의 방송 규제에는 잣대가 없다. 외국과 싸우기 위해서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잣대를 만들어야 한다. 먼저 할리우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자유로운 문화 속에서 예술의 꽃이 핀다. 구체적으로는 방송광고비 규제를 철폐하고, 불법음반·불법인터넷 다운 사이트를 단속하며 대중음악 공연장을 지어야 한다. 체육관에서 공연 하면 체육기금으로 세금 40%를 내야 한다. 비싸기도 비싸고 음악기금도 아닌 체육기금이라니 말이 안된다. 지금이라도 1만 명 정도 들어가는 공연장이라도 지어주어야 한다." (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중문화 산업정책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며)
“대학원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듯이 엔지니어가 꿈이었다. 영 화 ‘백 투 더 퓨처’에 나오는 박사처럼 위아래가 붙어 한 벌로 된 우주복 같은 작업복을 입고 싶었다. H.O.T가 데뷔할 때 처음 입고 출연한 옷이 이 엔지니어복과 비슷했는데 누구에게도 말 안했지만 속으로 ‘이 녀석들이 내가 입고 싶었던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어릴적 꿈을 말하며)
“연예산업에는 정답이나 공식이 없으며 기획자들은 대중의 감각에 끊임없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래도 아직 어떤 음반이 히트할지는 잘 모르겠다.” “투자를 다각화하는 전략으로 연예 산업의 높은 위험성을 줄이고 있다.” “4,5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하는데 그중 4분의 1만 맞아도 성공한 셈이다.” (2001/08/2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보아의 인세는 일본 정상급의 절반을 다소 밑도는 수준이지만 첫 출발로서는 만족할 만하다.”“보아가 일본 시장에서 성공한다면 한국 가수들의 ‘아시아 비즈니스 모델’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1/03/12, 보아가 일본 도쿄의 대형클럽 벨파레에서 쇼케이스를 가지면서)
"H.O.T에 대해선 세부사항을 발표할 단계가 아니다. 그러나 H.O.T 멤버들과 긍정적인 방향으로 협의하고 있다.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또 S.E.S 멤버의 대학 입학취소에 대해선 할 말이 있다. 오히려 S.E.S쪽이 피해자다. 입학 당시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한국내 외국인학교 졸업사실이 뒤늦게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소속가수의 사적인 문제가 음반회사에도 파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팬들이나 투자자들이 공과 사를 구분할 것으로 본다." (2001/02/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증권가에서 소속가수와 관련된 얘기가 많다’는 질문에)
"신인을 발굴하고 음반을 제작하는 것이 기본이다. 음반제작은 SM엔터테인먼트가 직접 할 수도 있고 다른 레코드사나 기획사를 활용할 수도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신인 발굴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H.O.T, S.E.S, 신화 등을 발굴한 것은 음반업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1/02/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SM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음반업종 특성을 풀이한다면?’이라는 질문에)
" 21세기 새로운 부가가치 사업으로 떠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있어 인터넷을 통해 숨은 인재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게될 것이다." (2001/06/20, SM엔터테인먼트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시에 이뤄지는 엔터테인먼트 인재 양성 교육 기관 설립을 추진하면서)
“SM TV프로덕션 설립에 공동으로투자를 하는 기업은 요시모토그룹과 통신회사인 KDD 등 일본 굴지의 기업들.” “1인 체제의 제작능력 한계를 극복하고 프로덕션을 기업화함으로써 앞으로 광고시장이 완전 자유화될 경우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00/05/23, SM엔터테인먼트가 일본 요시모토그룹 등의 출자를 받아 TV프로덕션 사업에 진출한다고 밝히며)
◆ 평가
이수만은 1975년 연예계 대마초 사건으로 주요 음악인들이 음악계에서 퇴출됐을 때 바른 생활로 살아남아 가요계의 공백기에 진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수시절을 거쳤고 방송일을 경험했으며 미국에서 음악을 따로 공부하고 음악산업에서 활약했다. 이런 경력은 이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음악인과 예술의 관계, 음악과 산업의 관계에 남다른 통찰력을 지니게 했다. 머리가 비상하고 선견지명을 지니고 있다는 말도 듣는다.
시류를 읽는 통찰력과 도전을 통해 현재의 K팝 열풍을 이끈 선구자로 회자된다. 그는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시장조사, 기획, 스타발굴, 트레이닝, 관리로 이어지는 독특한 기획시스템으로 차별성을 키웠다. 특히 그는 기획력과 스타를 찾아내는 안목이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H.O.T는 이수만의 첫 성공작이고 1세대 아이돌 그룹 시대의 서막이었다. H.O.T는 치밀하게 기획된 가수로 서태지가 일궈놓았던 신세대 음반시장을 석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엑소와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을 키우면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내다보고 화려한 군무를 추는 K팝 가수들의 육성시스템을 처음으로 체계화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현진영, HOT, SES, 신화 등을 필두로 동방신기, 보아,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을 연이어 배출하며 국내와 아시아, 전 세계 K팝 시장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SM엔터테인먼트는 K팝 한류 현상에 불을 지핀 곳으로 잘 알려져있다. ‘한류’라는 단어 자체가 본격적으로 미디어에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2000년 2월 SM엔터테인먼트가 배출한 그룹 HOT의 중국 베이징 콘서트 이후였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초로 상장사가 되면서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체계화, 기업화, 글로벌화 현상에 기여한 업체로도 평가된다.
SM엔터테인먼트는 아이돌스타를 전문적으로 만들어내는 회사로 자리잡았다. 그 뒤 SM 소속 가수(팀) 들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아시아시장을 공략해 큰 수확을 거뒀다. 그 예로 2001년 보아를 일본에 데뷔시켜 성공시켰다.
일본사업에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키이스트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SM재팬은 2016년 8월 키이스트의 일본 자회사이자 자스닥 상장사인 DA에 제2자 배정 유상증자로 약 130억 원을 투자해 2대주주가 됐다.
소속사 가수들은 그가 섬세하고 꼼꼼하다고 평가한다.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스테파니씨는 이수만 사장이 종종 직접 무대의상을 준비해주며 멤버들 화장과 ‘인조 속눈썹’까지 직접 챙겨준다고 회고했다.
이수만은 SM 엔터테인먼트 수장으로서 2016년에도 활약이 컸다고 평가받았다.
이수만은 2016년 9월 한 매체가 1년 동안 연예계를 움직인 파워피플을 조사한 결과 7위에 올랐다. 2015년보다 2계단 떨어졌지만 가요계서는 최고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2016년 초부터 매회 음원을 발매하는 SM스테이션을 기획했고 엑소를 잇는 NCT라는 신인을 탄생시켰다. '스테이션'은 이수만이 생각해 낸 것으로 2016년 초부터 1년 동안 매주 금요일 새로운 음원을 공개하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디지털 음원 공개 채널이다.
'스테이션'은 SM 아티스트 간 콜라보레이션은 물론, 외부 아티스트·프로듀서·작곡가 및 타 기업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까지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35%에 이르는 만큼 엑소와 NCT 등에 중국인 멤버를 기용해 중국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NCT 중국팀은 중국에서 데뷔를 앞두고 있다. 증권가로부터도 국내 엔터테인먼트 가운데 유일하게 유의미한 중국진출을 해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을 듣기도 했다.
◆ 기타
2013년 3월 서울대 입학식에서 연예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축사를 했다. 이수만은 '자부심, 도전, 자기책임,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와인에 조예가 깊다.
애처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6년 6월 5일 기준으로 이수만은 1801억 원에 이르는 주식자산을 지녔다. 같은 해 초보다는 1.3% 줄어든 것이다. 이수만은 SM 주식 20.19%를 보유하고 있는 개인 최대주주다.
그러나 7월 초 정부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사업에 악영향을 받게 돼 이수만의 주식 가치도 급락했다. 이수만의 SM과 스포츠마케팅 업체인 갤럭시아에스엠 등 상장사지분평가액은 1211억 원을 기록해 사드 배치 결정 전보다 404억 원이나 감소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주식 가치가 가장 많이 줄었다.
2014년 7월 기준으로 이수만은 650억 원에 이르는 빌딩을 소유해 연예인 최고 빌딩 부자로 뽑혔다. 해외에서도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 LG스튜디어 시티에 위치한 초호화 저택과 12만 평에 이르는 LG인근 샌디에이고 테메큘라의 와인농장, LA타운 상가를 소유하고 있다. 초호화저택과 LA타운 상가는 각각 약 30억 원, 약 42억 원에 이르는 등 이수만은 총 100억 원 가치의 부동산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