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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장윤경 기자  strangebride@businesspost.co.kr  |  2016-10-28 09: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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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 생애

이수만은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다. 한국의 대표적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총괄 프로듀서로 스타를 발굴하는 뛰어난 안목과 기획력을 지녔다. 한류대중문화의 신기원을 이끌었다.

1952년 6월 18일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경복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농과대 농업기계과를 나왔다.

1971년 '4월과 5월'이라는 남성 듀엣으로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팝화된 통기타음악이 인기를 누리던 한때를 풍미하며 탑가수로 활동했다. MC로서도 역량을 발휘했다.

1981년 미국으로 떠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나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1985년 귀국후 컴퓨터를 이용해 음반을 만들기 시작했고 인천 월미도 카페운영으로 자금을 마련해 음반제작업을 시작했다.

1989년 ‘SM기획’을 설립하고 1995년 SM엔터테인트를 설립해 회장이 됐다. 경영은 하지 않고 이사로서 활동하다가 현재 총괄프로듀서로 재직하고 있다.

◆ 가족관계

부인 고(故) 김지혜씨와 사이에 두 아들을 뒀다.

◆ 학력

청운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경복중학교를 졸업했다.

1971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9년 서울대 농과대 농업기계과를 졸업했다. 71학번이다.

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대학원 컴퓨터공학 석사를 취득했다. PC를 이용한 ‘로봇 눈’ 실험으로 논문을 썼다.

◆ 경력

1971년 ‘4월과 5월’라는 듀엣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76년 신인가수상을 탔다.

1975년 '모든 것 끝난 뒤', 1976년 '한송이 꿈', 1977년 '파도', 1978년 '행복' 등을 히트시키면서 팝화된 통기타음악이 대세를 이루는 1970년대 후반의 경향을 잘 파악해 인기를 얻었다.

1976년 MBC 10대 가수 남자신인상, 1977년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톱가수의 인기를 누렸다.

1970년대 줄곧 라디오와 TV 진행자로 활약했다. ‘MBC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KBS연예가중계’, ‘MBC화요일에 만나요’, ‘일요일 일요일밤에’, ‘이수만·장윤정의 생방송 아침’ 등 수많은 프로그램의 MC와 MBC ‘이수만과 함께’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를 맡았다.

1981년 홀연히 미국으로 건너가 UCLA(캘리포니아 주립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 석사를 취득했다.

그러나 미국생활중 언더그라운드, 기획자(프로덕션), 과학적 경영기획을 갖춘 대형 음반사 등으로 분업화하고 전문화된 시스템의 위력을 깨닫고 음반산업에 더 관심을 가졌다.

한국으로 돌아와 앨범을 제작해 ‘뉴에이지’ (1989년 1월 1일), ‘끝이 없는 순간’ (1989년 1월 1일), ‘뉴에이지 2’ (1989년 1년 10월), ‘뉴에이지 3’ (1989년 11월 1일), ‘The Musician Series’ (뮤지션 시리즈, 2006년) 등을 만들었다.

업계의 큰 반응을 얻지 못할 무렵 가수후배를 양성에 착수했다.

1989년 2억 원을 투자해 SM 기획을 설립했다. 그의 첫 작품은 ‘현진영과 와와’였다. 그러나 현진영의 대마초 사건이 터지면서 곤란을 겪었다.

1990년대 접어들어 국내외 역량있는 인재를 뽑아 춤과 노래를 연습시켰다. 일본에서 이미 아이돌 그룹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으나 10대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기획 상품처럼 데뷔시키는 방식은 국내에서 최초였다.

1995년 SM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회장이 됐다.

1996년 말에 High-Five of Teenagers(10대들의 승리)란 뜻의 H.O.T를 내놓았다. 10대 5명을 선발하는 데 1년이 걸렸고 선발한 뒤 6개월 동안 합숙을 통해 연습시켰다. 당시 H.O.T는 ‘전사의 후예’로 데뷔한 뒤 ‘열맞춰’, ‘아웃사이드 캐슬’ 등 히트곡을 발매하며 4년여 동안 정상에서 군림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1997년 소녀그룹 S.E.S를 데뷔시켜 성공을 이뤘다. 뒤이어 신화와 플라이투더 스카이도 내놓았다.

2000년 4월 SM엔터테인먼트를 코스닥에 등록시켰다. 당시 지분 66.99%를 소유해 최대주주였다.

2000년 6월에는 2년 6개월 동안 준비해온 야심작인 13세의 가수 보아를 선보였다. 동시에 일본 굴지의댄스음반 제작사인 에이벡스와 조만간 음반 공동마케팅 계약을 체결해 아시아 음반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를 통해 이수만은 종합음반기획자로 자리잡았다.

2000년 8월 아이스크림엔터테인먼트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일본과는 아무로 나미에를 키워낸 에이벡스, 호리프로덕션, 요시모토 흥업, ‘글레이’와 ‘엑스재팬’을 키워낸 언리미티드와 손을 잡았다.

2001년 1월 프랑스의 칸에서 진행된 세계음반박람회(MIDEM)에서 일본 에이벡스와 계약을 맺어 SM 소속 가수 음반을 라이선스 방식으로 출시하기로 했다.

또 작가, 가수, 배우 매니지먼트, 음반 기획제작 판매 등을 사업 목적으로 자본금 5천만 엔 규모의 ‘SM Entertainment Japan’을 설립하며 지분 55%(3억여 원)를 출자했다.

2001년 H.O.T가 해체됐다.

2002년 보아가 일본에 데뷔했다. 현지 오리콘차트 1위에 올라 해외 진출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만 1천만 장 이상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보아의 경제적 가치는 2000억 원”이라고 평가했다.

2003년에는 동방신기를 내놓으며 2세대 아이돌 그룹 시대를 열었다.

2005년 슈퍼주니어, 2007년 소녀시대, 2008년 샤이니, 2009년 에프엑스를 데뷔시켰다.

늘푸른모임 회원, 영화음악작곡가협회 정회원으로도 활동했다.

2006년 MBC 대학가요제 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1년에는 SM 소속 가수들이 파리에서 공연을 열었다. 같은 해 경남 고성공룡세계엑스포 홍보대사로 뽑히기도 했다.

2016년 9월에는 대한적십자사 고액 기부자 모임인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Red Cross Honors Club. RCHC)’ 창립회원이 됐다. RCHC는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이전부터 운영돼왔고 1억 원 이상을 기부했거나 기부를 약속한 후원자 모임이다.

2017년 초에는 서울 강남에 ‘K팝 국제학교’의 개교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로 재직하고 있다.

◆ 사건/사고

2000년 SM엔터테인먼트가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뒤 주가가 크게 상승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성장성, 신규등록주 프리미엄 등을 감안하더라도 고평가됐다고 지적했다.

2001년 5월 25일 프로듀서 장두익씨가 올해부터 SM 측이 제작하는 드라마 연출을 맡기로 계약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며 이수만과 회사를 상대로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장씨는 소장에서 “문화방송을 퇴직하자 이씨 측이 ‘방송사 수주를 책임질 줄 알았다‘며 말을 바꾼 뒤 계약이행을 거부하고 있어 위약금과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장씨는 2000년 5월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했었으나 2001년 1월 장씨가 문화방송에서 나온 뒤 이씨측이 계약조건을 이행하지 않자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밝혔다.

SM엔터테인먼트는 "계약이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장두익씨에게 있다고 판단하며 이에 대한 입증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기지급한 계약금의 반환은 물론 TV 프로그램 신규사업 진출계획 및 사업 진행상의 중대한 차질을 빚은 점 등에 대한 제반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03년 9월 ‘연예계 비리’ 사건의 핵심인물로 이수만이 등장했다.

이수만은 1999년 8월 김모 SM 대표이사와 함께 회사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회삿돈 11억5천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수만은 2002년 6~7월부터 해외에 체류하다 2003년 봄 자진귀국해 검찰조사를 받았다. 이수만은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회사 자금을 횡령한 것이 없고 소명자료를 검찰에 제출했다”며 “중요한 해외 계약 때문에 귀국이 늦었다”고 혐의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2003년 10월 7일 그에게 횡령 또는 배임증재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수만은 결국 구속됐다. 그는 2004년 9월 재판 결과 횡령 혐의 등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SM엔터테인먼트는 몇 차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노예계약을 한 사실이 드러나 제재를 받았다.

2002년 7월 전속계약 해지시 과도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조건을 내걸어 ‘노예 계약’이라는 비난과 함께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2007년 9월에도 SM엔터테인먼트가 탤런트 김지훈씨와 전속계약을 맺으면서 부당한 손해배상조항과 계약기간을 설정해 거래상지위를 남용한 점이 공정위로부터 적발돼 시정명령을 받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SM엔터테인먼트는 2001년 10월13일 김씨와 연예전속계약을 체결하면서 손해배상 내용에 대해 ‘총투자액의 5배, 잔여계약기간 예상이익금의 3배, 별도 1억원’으로 설정했다. 실제로 다른 연예기획사들은 당시 ‘계약금의 2배’ ‘잔여 계약기간 동안 평균소득금액의 3배’ 등으로 설정했다.

공정위는 “이같은 손해배상액은 통상 계약금 등의 2∼3배를 배상액으로 정하는 업계의 거래관행에 비해 신인연예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것”이라며 “SM엔터테인먼트가 신인이었던 김씨에게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계약위반에 대한 과도한 손배조항을 설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씨의 계약서에는 ‘조연급 이상의 첫번째 작품 데뷔일로부터 5년째 되는 날 계약기간이 종료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공정위는 조연급 이상이라는 개념이 불명확해 새로운 조건을 협상하거나 다른 기획사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하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2014년 3월21일 SM엔터테인먼트가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탈세했다는 의혹으로 세무조사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는 이수만이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미국에 초호화 저택을 매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수만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미리 만들어 놓고 자사 연예인들이 국외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을 빼돌려 LA 초호화 저택을 매입했다고 전해졌다. LA 인근 말리부 해변에 위치한 이수만의 별장은 51억 원을 넘었다. 홍콩법인인 '보아발전유한공사(POLEX)'라는 회사가 288만 달러를, 이수만이 192만 달러를 공동으로 투자해 매입했다.

이런 의혹이 제기된 것은 POLEX의 주소가 SM엔터테인먼트의 다른 계열사 주소와 같았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홍콩 회사는 이수만 대표와는 무관하다"고 부인했다.

2005년 인기그룹 H.O.T가 해체됐다. H.O.T의 다섯멤버 가운데 장우혁, 이재원, 토니안이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돼 다른 소속사와 전속 계약을 체결하면서 데뷔 4년여 만에 사실상 해체됐다. 당시 팬들은 H.O.T의 해체에 반대시위를 벌였다.

2009년 7월 31일 동방신기의 멤버 가운데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등 3명의 멤버가 법원에 현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3명의 멤버는 서울 중앙지법에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했다.

이 멤버들은 가처분신청에 대한 입장에서 데뷔 후 5년간 세 멤버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수립하여 진행한 일정으로 몸과 마음이 너무나 지쳤고 13년이라는 전속 계약 기간은 사실상 종신 계약을 의미했다고 밝혔다.

또 멤버들은 SM엔터테인먼트로부터 노력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도 못하였고 멤버들은 부당한 계약의 시정을 수 차례 요구하였으나, SM엔터테인먼트는 멤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화장품사업 투자는 연예활동과는 무관한 재무적 투자로서 이번 가처분신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이 사건의 본질은 전속 계약의 부당성이라고 설명했다. 멤버들은 결코 동방신기의 해체를 원하지 않으며 부당한 계약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할 뿐이라고 했다.

법원은 같은 해 10월 27일 "13년이라는 전속 계약 기간은 전성기의 전부라고 할만큼 너무 길다"며 동방신기 멤버들과 SM이 맺은 전속계약이 불공정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전속계약 효력의 전면정지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개별합의를 통해 그룹 활동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고 기존 활동에 따른 수입 배분 등 가처분 단계에서 무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판결에 대해 김영민 전 SM엔터테인먼트 대표는 11월 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10년 계약에 3년을 더하는 갱신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며 "회사로부터 지속적인 지원과 해외 시장 진출, 투자 등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멤버들과 부모님들이 흔쾌히 동의하여 계약을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단지 13년이라는 숫자에만 주목하여 계약이 부당하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금번 가처분 소송은 '부당한 전속계약', '인권', '노예계약'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닌 화장품 사업으로 시작된 금전적 유혹으로 일어난 소송"이라며 "세 명의 멤버가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고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2010년 4월 법원이 시아준수, 영웅재중, 믹키유천 등 동방신기 세 멤버가 제기한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한 것에 대한 이의 신청을 제기하고 전속계약 존재확인 등에 관한 본안 소송을 제기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공시를 통해 "동방신기 3인 관련 가처분 결정 이후 지속적으로 동방신기의 존속을 위해 노력하면서 가처분 이의신청 및 본안 소송을 잠정 보류해왔다"며 "그러나 3인 측은 당사의 동방신기 활동 요청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고 일본에서도 동방신기로서의 활동중단이 발표됨에 따라, SM은 지난 12일 가처분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및 전속계약 존재확인 등에 관한 본안 소송을 제기하였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세 멤버로 구성된 JYJ는 회사의 소송에 대해 전속계약 효력부존재 확인 소송으로 응수했다. 법원은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문과 간접강제 결정문을 밝히며 JYJ의 주장이 정당하고 밝혔다.

2012년 11월 28일 결국 SM엔터테인먼트는 2009년 7월31일자로 전 그룹 동방신기 멤버 JYJ 3인(박유천 김준수 김재중) 전속계약을 종료시키고 향후 상호 제반 활동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SM엔터테인먼트 측은 “3인이 그룹 ‘동방신기’로서 활동할 의사가 없음을 밝혀 더 이상 3인을 매니지먼트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향후 서로 간 관련될 일이 없어 상호 간섭하지 않기로 해 금일 조정을 통해 재판을 마무리하게 됐다”며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유노윤호, 최강창민이 향후 소송 진행에 따른 더 이상의 추가피해나 불필요하게 이슈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번 재판을 끝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2016년 9 월 이수만은 국회 산업통산자원위원회 국정감사 참고인 출석을 거절했다.

손금주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여야는 이수만 회장을 9월 26일 열린 산업·무역 분야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채택하는 것에 합의했다. 참고인 신청 이유는 정부가 사드배치가 중국 내 한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대한 업계 관계자의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SM 측은 해외출장을 이유로 이수만 회장의 참고인 출석을 거절했다.

◆상훈

1977년 MBC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1997년 SBS 서울가요대상 인기가요 기획상을 받았다.

2004년 SBS 가요대전 프로듀서상을 받았다.

2005년 제12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을 받았다.

2007년 한국국제경영학회 글로벌 프론티어상을 수상했다.

2008년 제23회 골든디스크상 제작자상을 받았다.

2011년 제2회 대한민국 서울문화예술대상 대중가요프로듀서 대상과 제1회 강소기업가상, 제2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제6회 한-EU 산업협력의 날 한-EU 협력상, 제1회 한국음악저작권대상 음반제작자상, 제11회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국위선양부문을 받았다.

2012년 코리아 소사이어티 문화상과 제1회 가온차트 K-POP 어워드 K-POP 공헌상을 받았다. 자랑스런 경복인상도 받았다.

2016년 제16회 음악 풍운방 연도성전 아시아 최고 프로듀서상을 받았다.

◆ 어록

"정규 앨범·미니 앨범·싱글 앨범으로 구분되는 전통적인 앨범 발매 방식에서 벗어나, 디지털 싱글 형태의 음악들을 자유롭고 지속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음반 시장뿐만 아니라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 역시 활발한 움직임을 선보이겠다." (2016/01, 'SM타운: 뉴 컬처 테크놀로지' 프레젠테이션에서)

"취재진, 해외 관계자 분들에게도 중요하지만, 아마 세 분이 가장 주의 깊게 봤을 것이다." "보아, 강타, 김민종 이사님이 무섭게 쳐다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고식 마쳤는데 잘 부탁드린다." (2016/01, 'SMTOWN: New Culture Technology 2016'이 열렸을 당시 발표자로 나서 새 새 보이그룹 'NCT' 등 다양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실 전 가창력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원래 듀엣을 하려 했던) 작은 형(소녀시대 써니 아버지)이 노래를 더 잘했죠. 대신 저는 곡을 만들거나 믹싱을 하거나 최신 트렌드를 간파하는 능력이 좋은 편이었어요. 컴퓨터 공학을 공부한 덕분에 디지털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 남보다 빨랐고.” (2011/07/1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왜 가수를 그만뒀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한국형 시스템이 한류 세계화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우리는 가능성 있는 연습생들을 선발해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트레이닝을 시켜 엔터테이너로 키우고 있다. 물론 정상적 교육에도 만전을 기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에이전시 시스템은 이미 검증된 스타를 향해서만 투자를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이미 세계로 나가고 있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한탕주의로 성공할 수 없다. 우리는 장기적인 계획과 투자를 통해 스타를 만들어왔다. 이를 부정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미국과 유럽에서도 우리 시스템을 배우고자 하는 상황이다." (2011/06/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횡령 한 적이 없습니다." (2003/10/09, 회삿돈 횡령 혐의에 대해 부인하면서)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즉 ‘가수이기 이전에 인간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삶의 모든 주파수를 음악에 맞추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MTV를 보며 엔터테인먼트 감각을 익혔다. 엔터테인먼트산업에서의 성공으로 명예와 돈을 얻을 수 있는 미국이 부러웠다. 사실 미국에서 보고 배운 것 을 한국에 적용했다."(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가수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로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답변하며)

"H.O.T는 중국에서 2위를 달리는 그룹이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가수로 성장했다. 그런데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흐리는 한 회사가 주가를 올리고 싶은 욕심에 눈이 멀어 강타와 문희준을 제외한 멤버 3명을 빼간 셈이다. 동종 업계에서 ‘선수’를 빼가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다.“ (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H.O.T’의 해체 이유에 대해 말하며)

“한류는 이미 국가의 중대한 사업이 됐다. 3년 안에 한류를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중국문화가 아시아를 완전 장악하게 된다. 중국에서 미래의 메이저 엔터테인먼트회사가 나올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문화의 핵에는 한국이 존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스타를 배출하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 (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류에 대한 견해를 묻자)

“정부의 방송 규제에는 잣대가 없다. 외국과 싸우기 위해서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잣대를 만들어야 한다. 먼저 할리우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자유로운 문화 속에서 예술의 꽃이 핀다. 구체적으로는 방송광고비 규제를 철폐하고, 불법음반·불법인터넷 다운 사이트를 단속하며 대중음악 공연장을 지어야 한다. 체육관에서 공연 하면 체육기금으로 세금 40%를 내야 한다. 비싸기도 비싸고 음악기금도 아닌 체육기금이라니 말이 안된다. 지금이라도 1만 명 정도 들어가는 공연장이라도 지어주어야 한다." (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중문화 산업정책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며)

“대학원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듯이 엔지니어가 꿈이었다. 영 화 ‘백 투 더 퓨처’에 나오는 박사처럼 위아래가 붙어 한 벌로 된 우주복 같은 작업복을 입고 싶었다. H.O.T가 데뷔할 때 처음 입고 출연한 옷이 이 엔지니어복과 비슷했는데 누구에게도 말 안했지만 속으로 ‘이 녀석들이 내가 입고 싶었던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어릴적 꿈을 말하며)

“연예산업에는 정답이나 공식이 없으며 기획자들은 대중의 감각에 끊임없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래도 아직 어떤 음반이 히트할지는 잘 모르겠다.” “투자를 다각화하는 전략으로 연예 산업의 높은 위험성을 줄이고 있다.” “4,5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하는데 그중 4분의 1만 맞아도 성공한 셈이다.” (2001/08/2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보아의 인세는 일본 정상급의 절반을 다소 밑도는 수준이지만 첫 출발로서는 만족할 만하다.”“보아가 일본 시장에서 성공한다면 한국 가수들의 ‘아시아 비즈니스 모델’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1/03/12, 보아가 일본 도쿄의 대형클럽 벨파레에서 쇼케이스를 가지면서)

"H.O.T에 대해선 세부사항을 발표할 단계가 아니다. 그러나 H.O.T 멤버들과 긍정적인 방향으로 협의하고 있다.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또 S.E.S 멤버의 대학 입학취소에 대해선 할 말이 있다. 오히려 S.E.S쪽이 피해자다. 입학 당시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한국내 외국인학교 졸업사실이 뒤늦게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소속가수의 사적인 문제가 음반회사에도 파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팬들이나 투자자들이 공과 사를 구분할 것으로 본다." (2001/02/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증권가에서 소속가수와 관련된 얘기가 많다’는 질문에)

"신인을 발굴하고 음반을 제작하는 것이 기본이다. 음반제작은 SM엔터테인먼트가 직접 할 수도 있고 다른 레코드사나 기획사를 활용할 수도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신인 발굴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H.O.T, S.E.S, 신화 등을 발굴한 것은 음반업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1/02/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SM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음반업종 특성을 풀이한다면?’이라는 질문에)

" 21세기 새로운 부가가치 사업으로 떠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있어 인터넷을 통해 숨은 인재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게될 것이다." (2001/06/20, SM엔터테인먼트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시에 이뤄지는 엔터테인먼트 인재 양성 교육 기관 설립을 추진하면서)

“SM TV프로덕션 설립에 공동으로투자를 하는 기업은 요시모토그룹과 통신회사인 KDD 등 일본 굴지의 기업들.” “1인 체제의 제작능력 한계를 극복하고 프로덕션을 기업화함으로써 앞으로 광고시장이 완전 자유화될 경우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00/05/23, SM엔터테인먼트가 일본 요시모토그룹 등의 출자를 받아 TV프로덕션 사업에 진출한다고 밝히며)

◆ 평가

이수만은 1975년 연예계 대마초 사건으로 주요 음악인들이 음악계에서 퇴출됐을 때 바른 생활로 살아남아 가요계의 공백기에 진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수시절을 거쳤고 방송일을 경험했으며 미국에서 음악을 따로 공부하고 음악산업에서 활약했다. 이런 경력은 이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음악인과 예술의 관계, 음악과 산업의 관계에 남다른 통찰력을 지니게 했다. 머리가 비상하고 선견지명을 지니고 있다는 말도 듣는다.

시류를 읽는 통찰력과 도전을 통해 현재의 K팝 열풍을 이끈 선구자로 회자된다. 그는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시장조사, 기획, 스타발굴, 트레이닝, 관리로 이어지는 독특한 기획시스템으로 차별성을 키웠다. 특히 그는 기획력과 스타를 찾아내는 안목이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H.O.T는 이수만의 첫 성공작이고 1세대 아이돌 그룹 시대의 서막이었다. H.O.T는 치밀하게 기획된 가수로 서태지가 일궈놓았던 신세대 음반시장을 석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엑소와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을 키우면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내다보고 화려한 군무를 추는 K팝 가수들의 육성시스템을 처음으로 체계화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현진영, HOT, SES, 신화 등을 필두로 동방신기, 보아,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을 연이어 배출하며 국내와 아시아, 전 세계 K팝 시장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SM엔터테인먼트는 K팝 한류 현상에 불을 지핀 곳으로 잘 알려져있다. ‘한류’라는 단어 자체가 본격적으로 미디어에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2000년 2월 SM엔터테인먼트가 배출한 그룹 HOT의 중국 베이징 콘서트 이후였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초로 상장사가 되면서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체계화, 기업화, 글로벌화 현상에 기여한 업체로도 평가된다.

SM엔터테인먼트는 아이돌스타를 전문적으로 만들어내는 회사로 자리잡았다. 그 뒤 SM 소속 가수(팀) 들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아시아시장을 공략해 큰 수확을 거뒀다. 그 예로 2001년 보아를 일본에 데뷔시켜 성공시켰다.

일본사업에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키이스트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SM재팬은 2016년 8월 키이스트의 일본 자회사이자 자스닥 상장사인 DA에 제2자 배정 유상증자로 약 130억 원을 투자해 2대주주가 됐다.

소속사 가수들은 그가 섬세하고 꼼꼼하다고 평가한다.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스테파니씨는 이수만 사장이 종종 직접 무대의상을 준비해주며 멤버들 화장과 ‘인조 속눈썹’까지 직접 챙겨준다고 회고했다.

이수만은 SM 엔터테인먼트 수장으로서 2016년에도 활약이 컸다고 평가받았다.

이수만은 2016년 9월 한 매체가 1년 동안 연예계를 움직인 파워피플을 조사한 결과 7위에 올랐다. 2015년보다 2계단 떨어졌지만 가요계서는 최고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2016년 초부터 매회 음원을 발매하는 SM스테이션을 기획했고 엑소를 잇는 NCT라는 신인을 탄생시켰다. '스테이션'은 이수만이 생각해 낸 것으로 2016년 초부터 1년 동안 매주 금요일 새로운 음원을 공개하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디지털 음원 공개 채널이다.

'스테이션'은 SM 아티스트 간 콜라보레이션은 물론, 외부 아티스트·프로듀서·작곡가 및 타 기업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까지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35%에 이르는 만큼 엑소와 NCT 등에 중국인 멤버를 기용해 중국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NCT 중국팀은 중국에서 데뷔를 앞두고 있다. 증권가로부터도 국내 엔터테인먼트 가운데 유일하게 유의미한 중국진출을 해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을 듣기도 했다.

◆ 기타

2013년 3월 서울대 입학식에서 연예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축사를 했다. 이수만은 '자부심, 도전, 자기책임,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와인에 조예가 깊다.

애처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6년 6월 5일 기준으로 이수만은 1801억 원에 이르는 주식자산을 지녔다. 같은 해 초보다는 1.3% 줄어든 것이다. 이수만은 SM 주식 20.19%를 보유하고 있는 개인 최대주주다.

그러나 7월 초 정부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사업에 악영향을 받게 돼 이수만의 주식 가치도 급락했다. 이수만의 SM과 스포츠마케팅 업체인 갤럭시아에스엠 등 상장사지분평가액은 1211억 원을 기록해 사드 배치 결정 전보다 404억 원이나 감소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주식 가치가 가장 많이 줄었다.

2014년 7월 기준으로 이수만은 650억 원에 이르는 빌딩을 소유해 연예인 최고 빌딩 부자로 뽑혔다. 해외에서도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 LG스튜디어 시티에 위치한 초호화 저택과 12만 평에 이르는 LG인근 샌디에이고 테메큘라의 와인농장, LA타운 상가를 소유하고 있다. 초호화저택과 LA타운 상가는 각각 약 30억 원, 약 42억 원에 이르는 등 이수만은 총 100억 원 가치의 부동산을 지니고 있다.


◆ 평가

이수만은 1975년 연예계 대마초 사건으로 주요 음악인들이 음악계에서 퇴출됐을 때 바른 생활로 살아남아 가요계의 공백기에 진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수시절을 거쳤고 방송일을 경험했으며 미국에서 음악을 따로 공부하고 음악산업에서 활약했다. 이런 경력은 이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음악인과 예술의 관계, 음악과 산업의 관계에 남다른 통찰력을 지니게 했다. 머리가 비상하고 선견지명을 지니고 있다는 말도 듣는다.

시류를 읽는 통찰력과 도전을 통해 현재의 K팝 열풍을 이끈 선구자로 회자된다. 그는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시장조사, 기획, 스타발굴, 트레이닝, 관리로 이어지는 독특한 기획시스템으로 차별성을 키웠다. 특히 그는 기획력과 스타를 찾아내는 안목이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H.O.T는 이수만의 첫 성공작이고 1세대 아이돌 그룹 시대의 서막이었다. H.O.T는 치밀하게 기획된 가수로 서태지가 일궈놓았던 신세대 음반시장을 석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엑소와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을 키우면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내다보고 화려한 군무를 추는 K팝 가수들의 육성시스템을 처음으로 체계화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현진영, HOT, SES, 신화 등을 필두로 동방신기, 보아,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을 연이어 배출하며 국내와 아시아, 전 세계 K팝 시장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SM엔터테인먼트는 K팝 한류 현상에 불을 지핀 곳으로 잘 알려져있다. ‘한류’라는 단어 자체가 본격적으로 미디어에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2000년 2월 SM엔터테인먼트가 배출한 그룹 HOT의 중국 베이징 콘서트 이후였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초로 상장사가 되면서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체계화, 기업화, 글로벌화 현상에 기여한 업체로도 평가된다.

SM엔터테인먼트는 아이돌스타를 전문적으로 만들어내는 회사로 자리잡았다. 그 뒤 SM 소속 가수(팀) 들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아시아시장을 공략해 큰 수확을 거뒀다. 그 예로 2001년 보아를 일본에 데뷔시켜 성공시켰다.

일본사업에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키이스트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SM재팬은 2016년 8월 키이스트의 일본 자회사이자 자스닥 상장사인 DA에 제2자 배정 유상증자로 약 130억 원을 투자해 2대주주가 됐다.

소속사 가수들은 그가 섬세하고 꼼꼼하다고 평가한다.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스테파니씨는 이수만 사장이 종종 직접 무대의상을 준비해주며 멤버들 화장과 ‘인조 속눈썹’까지 직접 챙겨준다고 회고했다.

이수만은 SM 엔터테인먼트 수장으로서 2016년에도 활약이 컸다고 평가받았다.

이수만은 2016년 9월 한 매체가 1년 동안 연예계를 움직인 파워피플을 조사한 결과 7위에 올랐다. 2015년보다 2계단 떨어졌지만 가요계서는 최고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2016년 초부터 매회 음원을 발매하는 SM스테이션을 기획했고 엑소를 잇는 NCT라는 신인을 탄생시켰다. '스테이션'은 이수만이 생각해 낸 것으로 2016년 초부터 1년 동안 매주 금요일 새로운 음원을 공개하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디지털 음원 공개 채널이다.

'스테이션'은 SM 아티스트 간 콜라보레이션은 물론, 외부 아티스트·프로듀서·작곡가 및 타 기업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까지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35%에 이르는 만큼 엑소와 NCT 등에 중국인 멤버를 기용해 중국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NCT 중국팀은 중국에서 데뷔를 앞두고 있다. 증권가로부터도 국내 엔터테인먼트 가운데 유일하게 유의미한 중국진출을 해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을 듣기도 했다.

◆ 사건/사고

2000년 SM엔터테인먼트가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뒤 주가가 크게 상승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성장성, 신규등록주 프리미엄 등을 감안하더라도 고평가됐다고 지적했다.

2001년 5월 25일 프로듀서 장두익씨가 올해부터 SM 측이 제작하는 드라마 연출을 맡기로 계약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며 이수만과 회사를 상대로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장씨는 소장에서 “문화방송을 퇴직하자 이씨 측이 ‘방송사 수주를 책임질 줄 알았다‘며 말을 바꾼 뒤 계약이행을 거부하고 있어 위약금과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장씨는 2000년 5월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했었으나 2001년 1월 장씨가 문화방송에서 나온 뒤 이씨측이 계약조건을 이행하지 않자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밝혔다.

SM엔터테인먼트는 "계약이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장두익씨에게 있다고 판단하며 이에 대한 입증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기지급한 계약금의 반환은 물론 TV 프로그램 신규사업 진출계획 및 사업 진행상의 중대한 차질을 빚은 점 등에 대한 제반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03년 9월 ‘연예계 비리’ 사건의 핵심인물로 이수만이 등장했다.

이수만은 1999년 8월 김모 SM 대표이사와 함께 회사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회삿돈 11억5천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수만은 2002년 6~7월부터 해외에 체류하다 2003년 봄 자진귀국해 검찰조사를 받았다. 이수만은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회사 자금을 횡령한 것이 없고 소명자료를 검찰에 제출했다”며 “중요한 해외 계약 때문에 귀국이 늦었다”고 혐의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2003년 10월 7일 그에게 횡령 또는 배임증재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수만은 결국 구속됐다. 그는 2004년 9월 재판 결과 횡령 혐의 등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SM엔터테인먼트는 몇 차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노예계약을 한 사실이 드러나 제재를 받았다.

2002년 7월 전속계약 해지시 과도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조건을 내걸어 ‘노예 계약’이라는 비난과 함께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2007년 9월에도 SM엔터테인먼트가 탤런트 김지훈씨와 전속계약을 맺으면서 부당한 손해배상조항과 계약기간을 설정해 거래상지위를 남용한 점이 공정위로부터 적발돼 시정명령을 받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SM엔터테인먼트는 2001년 10월13일 김씨와 연예전속계약을 체결하면서 손해배상 내용에 대해 ‘총투자액의 5배, 잔여계약기간 예상이익금의 3배, 별도 1억원’으로 설정했다. 실제로 다른 연예기획사들은 당시 ‘계약금의 2배’ ‘잔여 계약기간 동안 평균소득금액의 3배’ 등으로 설정했다.

공정위는 “이같은 손해배상액은 통상 계약금 등의 2∼3배를 배상액으로 정하는 업계의 거래관행에 비해 신인연예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것”이라며 “SM엔터테인먼트가 신인이었던 김씨에게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계약위반에 대한 과도한 손배조항을 설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씨의 계약서에는 ‘조연급 이상의 첫번째 작품 데뷔일로부터 5년째 되는 날 계약기간이 종료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공정위는 조연급 이상이라는 개념이 불명확해 새로운 조건을 협상하거나 다른 기획사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하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2014년 3월21일 SM엔터테인먼트가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탈세했다는 의혹으로 세무조사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는 이수만이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미국에 초호화 저택을 매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수만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미리 만들어 놓고 자사 연예인들이 국외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을 빼돌려 LA 초호화 저택을 매입했다고 전해졌다. LA 인근 말리부 해변에 위치한 이수만의 별장은 51억 원을 넘었다. 홍콩법인인 '보아발전유한공사(POLEX)'라는 회사가 288만 달러를, 이수만이 192만 달러를 공동으로 투자해 매입했다.

이런 의혹이 제기된 것은 POLEX의 주소가 SM엔터테인먼트의 다른 계열사 주소와 같았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홍콩 회사는 이수만 대표와는 무관하다"고 부인했다.

2005년 인기그룹 H.O.T가 해체됐다. H.O.T의 다섯멤버 가운데 장우혁, 이재원, 토니안이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돼 다른 소속사와 전속 계약을 체결하면서 데뷔 4년여 만에 사실상 해체됐다. 당시 팬들은 H.O.T의 해체에 반대시위를 벌였다.

2009년 7월 31일 동방신기의 멤버 가운데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등 3명의 멤버가 법원에 현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3명의 멤버는 서울 중앙지법에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했다.

이 멤버들은 가처분신청에 대한 입장에서 데뷔 후 5년간 세 멤버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수립하여 진행한 일정으로 몸과 마음이 너무나 지쳤고 13년이라는 전속 계약 기간은 사실상 종신 계약을 의미했다고 밝혔다.

또 멤버들은 SM엔터테인먼트로부터 노력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도 못하였고 멤버들은 부당한 계약의 시정을 수 차례 요구하였으나, SM엔터테인먼트는 멤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화장품사업 투자는 연예활동과는 무관한 재무적 투자로서 이번 가처분신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이 사건의 본질은 전속 계약의 부당성이라고 설명했다. 멤버들은 결코 동방신기의 해체를 원하지 않으며 부당한 계약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할 뿐이라고 했다.

법원은 같은 해 10월 27일 "13년이라는 전속 계약 기간은 전성기의 전부라고 할만큼 너무 길다"며 동방신기 멤버들과 SM이 맺은 전속계약이 불공정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전속계약 효력의 전면정지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개별합의를 통해 그룹 활동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고 기존 활동에 따른 수입 배분 등 가처분 단계에서 무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판결에 대해 김영민 전 SM엔터테인먼트 대표는 11월 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10년 계약에 3년을 더하는 갱신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며 "회사로부터 지속적인 지원과 해외 시장 진출, 투자 등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멤버들과 부모님들이 흔쾌히 동의하여 계약을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단지 13년이라는 숫자에만 주목하여 계약이 부당하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금번 가처분 소송은 '부당한 전속계약', '인권', '노예계약'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닌 화장품 사업으로 시작된 금전적 유혹으로 일어난 소송"이라며 "세 명의 멤버가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고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2010년 4월 법원이 시아준수, 영웅재중, 믹키유천 등 동방신기 세 멤버가 제기한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한 것에 대한 이의 신청을 제기하고 전속계약 존재확인 등에 관한 본안 소송을 제기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공시를 통해 "동방신기 3인 관련 가처분 결정 이후 지속적으로 동방신기의 존속을 위해 노력하면서 가처분 이의신청 및 본안 소송을 잠정 보류해왔다"며 "그러나 3인 측은 당사의 동방신기 활동 요청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고 일본에서도 동방신기로서의 활동중단이 발표됨에 따라, SM은 지난 12일 가처분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및 전속계약 존재확인 등에 관한 본안 소송을 제기하였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세 멤버로 구성된 JYJ는 회사의 소송에 대해 전속계약 효력부존재 확인 소송으로 응수했다. 법원은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문과 간접강제 결정문을 밝히며 JYJ의 주장이 정당하고 밝혔다.

2012년 11월 28일 결국 SM엔터테인먼트는 2009년 7월31일자로 전 그룹 동방신기 멤버 JYJ 3인(박유천 김준수 김재중) 전속계약을 종료시키고 향후 상호 제반 활동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SM엔터테인먼트 측은 “3인이 그룹 ‘동방신기’로서 활동할 의사가 없음을 밝혀 더 이상 3인을 매니지먼트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향후 서로 간 관련될 일이 없어 상호 간섭하지 않기로 해 금일 조정을 통해 재판을 마무리하게 됐다”며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유노윤호, 최강창민이 향후 소송 진행에 따른 더 이상의 추가피해나 불필요하게 이슈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번 재판을 끝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2016년 9 월 이수만은 국회 산업통산자원위원회 국정감사 참고인 출석을 거절했다.

손금주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여야는 이수만 회장을 9월 26일 열린 산업·무역 분야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채택하는 것에 합의했다. 참고인 신청 이유는 정부가 사드배치가 중국 내 한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대한 업계 관계자의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SM 측은 해외출장을 이유로 이수만 회장의 참고인 출석을 거절했다.


◆ 경력

1971년 ‘4월과 5월’라는 듀엣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76년 신인가수상을 탔다.

1975년 '모든 것 끝난 뒤', 1976년 '한송이 꿈', 1977년 '파도', 1978년 '행복' 등을 히트시키면서 팝화된 통기타음악이 대세를 이루는 1970년대 후반의 경향을 잘 파악해 인기를 얻었다.

1976년 MBC 10대 가수 남자신인상, 1977년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톱가수의 인기를 누렸다.

1970년대 줄곧 라디오와 TV 진행자로 활약했다. ‘MBC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KBS연예가중계’, ‘MBC화요일에 만나요’, ‘일요일 일요일밤에’, ‘이수만·장윤정의 생방송 아침’ 등 수많은 프로그램의 MC와 MBC ‘이수만과 함께’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를 맡았다.

1981년 홀연히 미국으로 건너가 UCLA(캘리포니아 주립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 석사를 취득했다.

그러나 미국생활중 언더그라운드, 기획자(프로덕션), 과학적 경영기획을 갖춘 대형 음반사 등으로 분업화하고 전문화된 시스템의 위력을 깨닫고 음반산업에 더 관심을 가졌다.

한국으로 돌아와 앨범을 제작해 ‘뉴에이지’ (1989년 1월 1일), ‘끝이 없는 순간’ (1989년 1월 1일), ‘뉴에이지 2’ (1989년 1년 10월), ‘뉴에이지 3’ (1989년 11월 1일), ‘The Musician Series’ (뮤지션 시리즈, 2006년) 등을 만들었다.

업계의 큰 반응을 얻지 못할 무렵 가수후배를 양성에 착수했다.

1989년 2억 원을 투자해 SM 기획을 설립했다. 그의 첫 작품은 ‘현진영과 와와’였다. 그러나 현진영의 대마초 사건이 터지면서 곤란을 겪었다.

1990년대 접어들어 국내외 역량있는 인재를 뽑아 춤과 노래를 연습시켰다. 일본에서 이미 아이돌 그룹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으나 10대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기획 상품처럼 데뷔시키는 방식은 국내에서 최초였다.

1995년 SM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회장이 됐다.

1996년 말에 High-Five of Teenagers(10대들의 승리)란 뜻의 H.O.T를 내놓았다. 10대 5명을 선발하는 데 1년이 걸렸고 선발한 뒤 6개월 동안 합숙을 통해 연습시켰다. 당시 H.O.T는 ‘전사의 후예’로 데뷔한 뒤 ‘열맞춰’, ‘아웃사이드 캐슬’ 등 히트곡을 발매하며 4년여 동안 정상에서 군림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1997년 소녀그룹 S.E.S를 데뷔시켜 성공을 이뤘다. 뒤이어 신화와 플라이투더 스카이도 내놓았다.

2000년 4월 SM엔터테인먼트를 코스닥에 등록시켰다. 당시 지분 66.99%를 소유해 최대주주였다.

2000년 6월에는 2년 6개월 동안 준비해온 야심작인 13세의 가수 보아를 선보였다. 동시에 일본 굴지의댄스음반 제작사인 에이벡스와 조만간 음반 공동마케팅 계약을 체결해 아시아 음반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를 통해 이수만은 종합음반기획자로 자리잡았다.

2000년 8월 아이스크림엔터테인먼트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일본과는 아무로 나미에를 키워낸 에이벡스, 호리프로덕션, 요시모토 흥업, ‘글레이’와 ‘엑스재팬’을 키워낸 언리미티드와 손을 잡았다.

2001년 1월 프랑스의 칸에서 진행된 세계음반박람회(MIDEM)에서 일본 에이벡스와 계약을 맺어 SM 소속 가수 음반을 라이선스 방식으로 출시하기로 했다.

또 작가, 가수, 배우 매니지먼트, 음반 기획제작 판매 등을 사업 목적으로 자본금 5천만 엔 규모의 ‘SM Entertainment Japan’을 설립하며 지분 55%(3억여 원)를 출자했다.

2001년 H.O.T가 해체됐다.

2002년 보아가 일본에 데뷔했다. 현지 오리콘차트 1위에 올라 해외 진출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만 1천만 장 이상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보아의 경제적 가치는 2000억 원”이라고 평가했다.

2003년에는 동방신기를 내놓으며 2세대 아이돌 그룹 시대를 열었다.

2005년 슈퍼주니어, 2007년 소녀시대, 2008년 샤이니, 2009년 에프엑스를 데뷔시켰다.

늘푸른모임 회원, 영화음악작곡가협회 정회원으로도 활동했다.

2006년 MBC 대학가요제 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1년에는 SM 소속 가수들이 파리에서 공연을 열었다. 같은 해 경남 고성공룡세계엑스포 홍보대사로 뽑히기도 했다.

2016년 9월에는 대한적십자사 고액 기부자 모임인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Red Cross Honors Club. RCHC)’ 창립회원이 됐다. RCHC는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이전부터 운영돼왔고 1억 원 이상을 기부했거나 기부를 약속한 후원자 모임이다.

2017년 초에는 서울 강남에 ‘K팝 국제학교’의 개교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로 재직하고 있다.

◆ 학력

청운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경복중학교를 졸업했다.

1971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9년 서울대 농과대 농업기계과를 졸업했다. 71학번이다.

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대학원 컴퓨터공학 석사를 취득했다. PC를 이용한 ‘로봇 눈’ 실험으로 논문을 썼다.

◆ 가족관계

부인 고(故) 김지혜씨와 사이에 두 아들을 뒀다.


◆ 어록

"정규 앨범·미니 앨범·싱글 앨범으로 구분되는 전통적인 앨범 발매 방식에서 벗어나, 디지털 싱글 형태의 음악들을 자유롭고 지속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음반 시장뿐만 아니라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 역시 활발한 움직임을 선보이겠다." (2016/01, 'SM타운: 뉴 컬처 테크놀로지' 프레젠테이션에서)

"취재진, 해외 관계자 분들에게도 중요하지만, 아마 세 분이 가장 주의 깊게 봤을 것이다." "보아, 강타, 김민종 이사님이 무섭게 쳐다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고식 마쳤는데 잘 부탁드린다." (2016/01, 'SMTOWN: New Culture Technology 2016'이 열렸을 당시 발표자로 나서 새 새 보이그룹 'NCT' 등 다양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실 전 가창력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원래 듀엣을 하려 했던) 작은 형(소녀시대 써니 아버지)이 노래를 더 잘했죠. 대신 저는 곡을 만들거나 믹싱을 하거나 최신 트렌드를 간파하는 능력이 좋은 편이었어요. 컴퓨터 공학을 공부한 덕분에 디지털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 남보다 빨랐고.” (2011/07/1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왜 가수를 그만뒀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한국형 시스템이 한류 세계화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우리는 가능성 있는 연습생들을 선발해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트레이닝을 시켜 엔터테이너로 키우고 있다. 물론 정상적 교육에도 만전을 기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에이전시 시스템은 이미 검증된 스타를 향해서만 투자를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이미 세계로 나가고 있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한탕주의로 성공할 수 없다. 우리는 장기적인 계획과 투자를 통해 스타를 만들어왔다. 이를 부정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미국과 유럽에서도 우리 시스템을 배우고자 하는 상황이다." (2011/06/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횡령 한 적이 없습니다." (2003/10/09, 회삿돈 횡령 혐의에 대해 부인하면서)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즉 ‘가수이기 이전에 인간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삶의 모든 주파수를 음악에 맞추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MTV를 보며 엔터테인먼트 감각을 익혔다. 엔터테인먼트산업에서의 성공으로 명예와 돈을 얻을 수 있는 미국이 부러웠다. 사실 미국에서 보고 배운 것 을 한국에 적용했다."(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가수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로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답변하며)

"H.O.T는 중국에서 2위를 달리는 그룹이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가수로 성장했다. 그런데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흐리는 한 회사가 주가를 올리고 싶은 욕심에 눈이 멀어 강타와 문희준을 제외한 멤버 3명을 빼간 셈이다. 동종 업계에서 ‘선수’를 빼가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다.“ (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H.O.T’의 해체 이유에 대해 말하며)

“한류는 이미 국가의 중대한 사업이 됐다. 3년 안에 한류를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중국문화가 아시아를 완전 장악하게 된다. 중국에서 미래의 메이저 엔터테인먼트회사가 나올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문화의 핵에는 한국이 존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스타를 배출하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 (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류에 대한 견해를 묻자)

“정부의 방송 규제에는 잣대가 없다. 외국과 싸우기 위해서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잣대를 만들어야 한다. 먼저 할리우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자유로운 문화 속에서 예술의 꽃이 핀다. 구체적으로는 방송광고비 규제를 철폐하고, 불법음반·불법인터넷 다운 사이트를 단속하며 대중음악 공연장을 지어야 한다. 체육관에서 공연 하면 체육기금으로 세금 40%를 내야 한다. 비싸기도 비싸고 음악기금도 아닌 체육기금이라니 말이 안된다. 지금이라도 1만 명 정도 들어가는 공연장이라도 지어주어야 한다." (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중문화 산업정책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며)

“대학원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듯이 엔지니어가 꿈이었다. 영 화 ‘백 투 더 퓨처’에 나오는 박사처럼 위아래가 붙어 한 벌로 된 우주복 같은 작업복을 입고 싶었다. H.O.T가 데뷔할 때 처음 입고 출연한 옷이 이 엔지니어복과 비슷했는데 누구에게도 말 안했지만 속으로 ‘이 녀석들이 내가 입고 싶었던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2001/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어릴적 꿈을 말하며)

“연예산업에는 정답이나 공식이 없으며 기획자들은 대중의 감각에 끊임없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래도 아직 어떤 음반이 히트할지는 잘 모르겠다.” “투자를 다각화하는 전략으로 연예 산업의 높은 위험성을 줄이고 있다.” “4,5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하는데 그중 4분의 1만 맞아도 성공한 셈이다.” (2001/08/2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보아의 인세는 일본 정상급의 절반을 다소 밑도는 수준이지만 첫 출발로서는 만족할 만하다.”“보아가 일본 시장에서 성공한다면 한국 가수들의 ‘아시아 비즈니스 모델’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1/03/12, 보아가 일본 도쿄의 대형클럽 벨파레에서 쇼케이스를 가지면서)

"H.O.T에 대해선 세부사항을 발표할 단계가 아니다. 그러나 H.O.T 멤버들과 긍정적인 방향으로 협의하고 있다.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또 S.E.S 멤버의 대학 입학취소에 대해선 할 말이 있다. 오히려 S.E.S쪽이 피해자다. 입학 당시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한국내 외국인학교 졸업사실이 뒤늦게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소속가수의 사적인 문제가 음반회사에도 파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팬들이나 투자자들이 공과 사를 구분할 것으로 본다." (2001/02/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증권가에서 소속가수와 관련된 얘기가 많다’는 질문에)

"신인을 발굴하고 음반을 제작하는 것이 기본이다. 음반제작은 SM엔터테인먼트가 직접 할 수도 있고 다른 레코드사나 기획사를 활용할 수도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신인 발굴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H.O.T, S.E.S, 신화 등을 발굴한 것은 음반업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1/02/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SM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음반업종 특성을 풀이한다면?’이라는 질문에)

" 21세기 새로운 부가가치 사업으로 떠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있어 인터넷을 통해 숨은 인재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게될 것이다." (2001/06/20, SM엔터테인먼트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시에 이뤄지는 엔터테인먼트 인재 양성 교육 기관 설립을 추진하면서)

“SM TV프로덕션 설립에 공동으로투자를 하는 기업은 요시모토그룹과 통신회사인 KDD 등 일본 굴지의 기업들.” “1인 체제의 제작능력 한계를 극복하고 프로덕션을 기업화함으로써 앞으로 광고시장이 완전 자유화될 경우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00/05/23, SM엔터테인먼트가 일본 요시모토그룹 등의 출자를 받아 TV프로덕션 사업에 진출한다고 밝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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