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언론 "‘탄소 상쇄 인정’ 논란 낳은 국제협의체, 미국정부 압박받아 결정"

▲ 과학 목표 기반 탄소 감축 협의체(SBTi)가 미국 국무부의 압박을 받아 탄소 상쇄를 인정해준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사진은 SBTi 결정 발표 페이지 상단 노출 이미지. < SBTi >

[비즈니스포스트] 탄소 상쇄(carbon offset)를 감축 실적으로 인정해주겠다고 선언해 논란이 됐던 국제 탄소감축 협의체가 미국 정부의 압박을 받아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1일(현지시각) 존 케리 전 미국 기후특사를 보좌했던 미국 국무부 관계자들이 과학 목표 기반 탄소 감축 협의체(SBTi)를 상대로 탄소 상쇄를 감축 실적으로 인정하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SBTi는 글로벌기업들의 감축 실적을 인증해주는 협의체로 탄소공개프로젝트(CDP),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세계자연기금(WWF), 세계자원연구소(WRI) 등이 공동 설립했다. 현재 글로벌 감축 실적 인증 협의체 가운데 가장 권위가 높고 기준도 엄격하게 관리된다.

올해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 아르셀로미탈 등 글로벌기업 230곳이 기준 미달로 퇴출됐다.

탄소 상쇄란 제품 및 서비스 생산 등에서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은 채 배출량에 해당하는 만큼 탄소 배출권을 구매해 이를 상쇄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자발적 탄소 시장(VCM)을 통해 배출권을 구매하는데 정부나 국제기관이 관리하는 곳이 아니라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케리 전 특사는 탄소 상쇄 제도 확산에 적극적인데 탄소 배출권의 주 판매자인 개발도상국들이 이를 통해 기후대응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케리 전 특사는 19일(현지시각) 열린 미국 국무부 내부 행사에서 “SBTI 이사회가 탄소 상쇄를 향한 열린 마음을 보였다는 것에 고무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SBTi는 현재 탄소 상쇄를 감축 실적으로 인정해주겠다는 결정을 철회한 상태다. 신기후연구소 등 환경단체부터 SBTi 내부 구성원들까지 탄소 상쇄 인정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1일(현지시각)에는 SBTi 내부 구성원들이 이사회를 상대로 한 집단행동을 예고하기도 해 갈등이 고조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결국 이사회가 내부 구성원들의 요구를 수용해 결정을 철회하며 양측의 대립도 진정됐다.

파이낸셜타임스에 정보를 제공한 미국 정부 내부 관계자는 “SBTi를 향한 탄소 상쇄 인정 압박은 SBTi의 신뢰성과 기온상승을 1.5도 아래로 억제한다는 목표까지도 희생해 탄소 배출권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루이즈 아마랄 SBTi 최고경영자(CEO)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가 SBTi를 대상으로 탄소 상쇄 인정 압박에 나선 것은 2022년 제27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7) 개최 직전부터였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2022년 10월 있었던 내부 구성원과 대담에서 “케리 특사의 사무실에서 기업들이 탄소 배출권을 통해 온실가스를 상쇄하는 것을 인정해달라는 요청이 왔다”고 발언했다.

미국 국무부는 파이낸셜타임스에 “미국 정부는 신뢰도가 높은 탄소 시장이 개발도상국들의 친환경 전환에 있어 꼭 필요한 체계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있다”며 “탄소 시장이 높은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과 신뢰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면 SBTi와 다른 기관들이 탄소 상쇄를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