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 기후공시' 둘러싼 갈등이 미국 둘로 나눴다, 양측 치열한 법정공방 예고

▲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내놓은 기후공시 규정을 상대로 취소소송을 제기한 공화당에 맞서 민주당이 SEC를 지원하기로 해 공시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기후공시 소송과 관련한 판단이 진행되고 있는 제8연방순회항소법원이 자리잡고 있는 미국 미주리 세인트루이스시 토마스 F 에글턴 빌딩. < Flickr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공시 의무화 제도를 둘러싼 법정공방이 더욱 치열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화당 지지 세력이 강한 주 정부에서 단체로 취소소송을 제기하자 민주당 성향이 뚜렷한 주 정부들이 이에 맞서 SEC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SEC 기후공시가 원안대로 약 2년 뒤 효력을 발휘하게 될 가능성도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4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뉴욕과 메사추세츠 등 민주당 지지층이 강한 미국 각 주 18곳과 수도인 워싱턴 D.C. 측은 SEC 기후정보공개규정(Climate Disclosure Rule) 존속을 돕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법원에 제출한 문건에서 “투자자들이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뢰 가능하고 충분히 비교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며 “기후정보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웨스트버지니아와 알래스카 등 공화당 성향이 강한 25개 주는 최근 SEC 기후공시 의무화가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미주리 세인트루이스시에 위치한 제8 연방순회항소법원에서 위법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SEC 기후공시는 기업이 온실가스 스코프 1(직접 배출)과 스코프 2(간접 배출) 정보를 공시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이다. 2026년부터 시가총액 7억 달러(약 9649억 원) 이상의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우선 적용된다.

소송을 제기한 측에서는 SEC 기후공시가 기업들에 지나친 부담을 줘 기업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 정부들과 별개로 같은 법원에서 미국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기업들이 공동으로 제기한 소송도 진행되고 있다.

공화당 성향 및 민주당 성향의 주 정부들이 대부분 소송전에 참여하며 SEC 기후공시를 둘러싼 공방은 미국 전체 50개 주 가운데 43개 주로 확산됐다.

미국이 기후공시와 관련해 사실상 두 세력으로 나뉘어져 첨예한 갈등을 벌이게 된 셈이다.

법정공방에 참여하지 않은 7개 주 가운데 캘리포니아는 이미 주 정부 자체적으로 도입하려는 기후공시 제도를 상대로 제기된 취소 소송에 대응하고 있다.

SEC는 결국 양측의 갈등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자 기후공시 제도 시행 자체를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SEC 기후공시' 둘러싼 갈등이 미국 둘로 나눴다, 양측 치열한 법정공방 예고

▲ 미국 워싱턴 D.C. 본부에 붙어 있는 증권거래위원회(SEC) 현판. <연합뉴스>

4일(현지시각) 미국 정치전문지 더힐과 로이터 등에 따르면 SEC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기후공시를 일시정지한다고 발표했다.

SEC는 성명을 통해 “연방순회항소법원의 사법적 검토가 끝날 때까지 재량권을 발휘하기로 결정했다”며 “위원회는 앞으로 있을 법정 공방에서 (기후공시) 규정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다만 법정 공방이 격화되더라도 SEC 기후공시가 최종적으로 철회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공시 반대 세력이 근거로 든 기업활동의 자유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서 보장하는 권리 가운데 하나다. 1970년대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기업 등 상업행위자에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판단한 데서 기인한다.

그러나 과거 판례를 볼 때 법원에서 SEC 기후공시가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EC는 지난해 새로 도입한 자사주 매입 규정과 관련해 기업들로부터 취소 소송을 당했다. 당시에도 기업들은 SEC 규정이 기업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제5 연방항소법원은 루이지애나주에 위치한 법원으로 공화당 영향이 강한 사법부로 평가되는데도 소송 기각 결정을 내렸다.

법원 판단과 관계없이 SEC 기후공시 도입 시점이 예정보다 늦춰질 가능성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확정된 유럽연합(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기업들의 요구로 도입 시기를 2년 늦춘 2026년 6월로 정했기 때문이다.

SEC는 현재 기후공시 도입 시기를 2026년 3월로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일정은 법원 판결과 미국 연말 대선 결과 등에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