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투자전문 부동산 금융회사로 발돋움
대신증권은 계열사 사이 시너지를 확대하면서 부동산부문과 관련된 대체투자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신증권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통해 금융 주선을 하면 중순위 대출에 대신저축은행이 참여하고 후순위 대출에 대신에프앤아이(F&I)가 투자하는 방식 등이다.
부동산상품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고 있다. 대신에프앤아이(F&I)는 2016년 5월 한남동 일대 부지를 6242억 원에 사들인 뒤 최고급 아파트를 세우기 위해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2018년 1월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에 해외 부동산팀을 만들고 6월에는 473억 원을 미국에 부동산 전문 법인을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2018년 9월 미국 뉴욕 맨하탄에 있는 빌딩에 1227억 원을 투자하는 등 해외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오너 일가, 대신증권 주식 담보로 대출 받아
2018년 8월 기준으로 이어룡과 양홍석 사장 등 대신증권 오너 일가는 대신증권 주식 242만 주가량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전체 대출 규모는 약 150억 원 수준으로 추정됐다.
이어룡이 보유한 대신증권 주식 92만1029주는 모두 담보로 잡혀있으며 양홍석 사장은 소유한 주식의 30%가량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주식 담보 대출은 재산권에만 담보가 설정되고 의결권은 인정돼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행사하는데 지장이 없다.
다만 담보 설정액 이하로 주가가 떨어지면 반대매매 행사로 경영권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오너 일가가 빌린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양홍석 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뚜렷한 사용처가 확인된 바 없다.
△대신증권 명동 시대
2016년 12월 대신증권을 사옥을 여의도에서 명동 신사옥(대신파이낸스센터)으로 옮겼다.
대신증권은 1985년 명동에서 여의도로 본사를 옮겼는데 32년 만에 다시 명동으로 옮긴 것이다.
‘제2의 창업’이라는 각오로 대신증권의 전성기를 다시 이끌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대신증권뿐 아니라 대신자산운용과 대신저축은행, 대신F&I 등 계열사들도 모두 명동으로 모였다.
이 과정에서 여의도의 국내 1호 시세 전광판이 폐기됐고 대신증권의 상징인 황소상 ‘황우’도 명동으로 옮겨졌다.
대신증권이 세운 황소상은 양재봉 창업주가 의뢰해 1994년 김행신 전남대 교수가 제작한 것으로 ‘증시 활황’을 상징한다.
증권사에서 세운 유일한 황소상이며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됐다. 여의도에는 한국거래소, 한국금융투자협회에도 황소상이 세워져 있다.
△대신증권 3세 경영 준비
이어룡의 아들이자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자의 손자이자 양회문 전 대신증권 회장의 장남인 양홍석 사장은 승진 가도를 달리는 것과 동시에 꾸준히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대신증권의 지분을 확대하며 3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2018년 10월 현재 대신증권은 실질적으로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이사와 오너 일가인 양홍석 사장의 투톱체제로 경영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 사장은 2018년 6월 기준으로 대신금융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대신증권 지분 7.0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어룡은 대신증권 지분 1.91%를 보유하고 있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오너 일가가 보유한 대신증권 지분은 11.35%다.
양 사장은 2006년 6월 대신증권 공채로 입사해 서울의 한 지점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양 사장은 당시 대신증권 지분 5.55%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이어룡은 자식들이 바닥부터 성장하기를 원해 양홍석 사장을 입사했을 때 핵심부서가 아닌 현장으로 발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 사장은 2007년 5월14일 대신증권의 계열사인 대신투자신탁운용 상무이사, 같은 해 10월1일 대신증권 전무, 2008년 2월29일 대신증권 부사장으로 초고속승진했다.
2010년 5월28일 대신증권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선임돼 등기이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양 사장은 2012년 사내이사만 유지하고 대표이사에서 물러났고 2014년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어룡은 양홍식 사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보고받은 뒤에야 승진을 결정했다고 한다.
△대신금융그룹 출범
이어룡은 2012년 6월 대신증권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대신증권과 계열사들을 모아 대신금융그룹을 출범하고 대신금융그룹 회장에 올랐다.
대신증권은 2011년 중앙부산저축은행과 부산2저축은행, 도민저축은행을 인수한 데 이어 2013년 한국창의투자자문, 2014년 우리F&I를 연이어 인수하며 대신증권을 정점으로 하는 대신금융그룹을 꾸렸다.
다만 2018년 금융위원회가 ‘금융그룹 통합감독법’에 ‘금융그룹 유사 명칭 사용금지’ 조항을 넣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그룹 이름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금융그룹 통합감독 대상인 금융그룹와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른 금융지주사, 국책은행을 제외한 금융회사들은 ‘금융그룹’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금융그룹 통합감독법’이 제정에 대비해 대신금융그룹은 이름 변경을 염두에 두고 있다.
△대신증권 회장 맡아
2004년 9월17일 남편인 양회문 전 대신증권 회장이 폐암으로 별세하자 9월24일 대신증권 이사회에서 후임 회장으로 선임됐다. 양회문 전 회장의 유언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시아버지이며 창업주인 양재봉 당시 대신증권 명예회장이 이어룡을 적극 지지하면서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회문 전 회장이 별세한 직후 대신증권에 매일 출근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김대송 당시 대신증권 사장과 아침마다 증권업의 현황과 경영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룡은 취임사에서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대신증권의 전통과 명예를 지키고 한 단계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하자마자 대신증권의 전국 영업점 110곳을 모두 돌면서 직원들과 직접 만나서 악수하는 이른바 ‘악수 경영’을 펼쳤다.
전국 영업점의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하고 지점장실과 본사 임원실을 투명유리로 바꾸는 등 새 단장해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퇴직하거나 유고를 당한 임직원의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따뜻한 경영’을 강조했다.
또 회장 취임 부뒤 가장 먼저 직원들의 월급을 10% 인상했다.
다른 증권사 오너나 최고경영자와 비교해 뒤늦게 경영에 입문했지만 2006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하고 책을 가까이하는 등 경영활동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취임 초기에는 외부행사에 거의 참여하지 않으면서 조용하고 부드러운 경영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평가가 두드러졌지만 2010년대에 대신증권이 저축은행 3곳과 한국창의투자자문, 우리F&I 등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추진력이 생겼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