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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이재오 새누리당 국회의원](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1502/9430_14632_3343.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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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오 새누리당 국회의원 |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30여 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다섯 차례에 걸쳐 10여 년의 옥고를 치른 대표적 재야출신 인사다.
1945년 1월11일 강원도 묵호(현 동해시)에서 4남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강원도 탄광지대에서 전기기사로 일했다. 그의 가족은 탄광이 문을 닫자 고향인 경북 영양으로 귀향해 소작농으로 일했다.
중학교 때 읽은 심훈의 ‘상록수’에 깊은 영향을 받아 농촌운동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린시절부터 웅변에 재능이 뛰어나 각종 웅변대회를 휩쓸기도 했다.
영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양군청 농장관리인으로 근무하다 중앙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대학교 2학년 한일회담 비준 반대운동을 하다 제적됐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이후 국민산업학교에 입학해 졸업하고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다시 중앙대 경제학과에 복학하여 졸업했다.
군 복무 중 파견교사 시험에 합격해 전역 뒤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장훈고, 대성고, 송곡여고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이재오는 이우재, 장기표, 김문수 등과 함께 51개 지구당을 가진 민중당을 창당한다. 그는 14대 총선 서울 은평을 지역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민중당이 전국 득표율 3%를 얻지 못하고 해산되는 결과를 맞았다.
이후 김문수, 이우재 등 민중당 세력과 함께 보수여당인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15대 총선에서 서울지역 최다득표 기록을 세우며 당선돼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놨다.
당시 김문수, 홍준표 등 초선의원 35명과 함께 ‘시월회’를 조직해 당 쇄신 논의를 주도했다.
16, 17대 총선에서 지역구인 은평구에서 내리 당선됐다.
이재오는 최병렬 대표 체제에서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았지만 2개월 만에 물러났다.
그는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후보 선대본부장을 맡아 이명박 정권 창출의 핵심역할을 했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정치일선에서 떠났다가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복귀했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 이후 국민권익위원장, 특임장관을 역임하는 등 자타가 인정하는 ‘실세’로 꼽혔다. 특히 그는 4대강 전도사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