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동차 232조 조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5월 한국과 유럽, 일본 등을 겨냥해 수입차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수입차에 최고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미국은 자동차 수입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관셉 부과가 정당한지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2018년 7월19일에도 워싱턴DC의 상무부 강당에서 공청회를 열고 ‘수입자동차 관세’를 놓고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한국 정부는 한국이 미국의 핵심 안보동맹국이자 신뢰할 만한 교역 상대이므로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차원에서 한미 FTA를 개정한 상황에서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한미 FTA 혜택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여지가 있다고도 본다.
△한미 FTA 개정 협상
김현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이끈 장본인으로서 한미 FTA 개정 테이블에 다시 앉게 됐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한미FTA 개정을 원하고 있어 2017년 7월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개최를 요청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7년 8월22일에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1차를 열었다. 당시 양측은 한미 FTA의 효과와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 FTA 재개정 필요성에 상호 이견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이 회기에서는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한미 FTA 이후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가 2배로 늘어난 점을 문제 제기하고 한미 FTA의 개정 또는 수정을 통해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국은 한미 FTA를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좋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미 FTA 효과에 대한 조사·분석·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 어떠한 결정도 상호 호혜성의 원칙 하에 양측 간 합의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7년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2차, 2018년 1월에 1~2차 개정 협상, 2018년 3월 3차 개정 협상을 하면서 합의를 마쳤다.
개정 협상에서 한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 면제국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불확실성을 완화했다. 농산물 개방이나 자동차 부품 사용 의무화 등의 이슈도 방어했다.
다만 자동차부문에서는 자동차 안전기준 인정 범위 확대, 픽업트럭 관세 철폐 기간 연장 등 미국 측의 자동차 관련 관심사항이 반영됐다.
산업부에 따르면 2018년 7월 한미 FTA는 분야별 문안을 놓고 진행된 협의를 사실상 완료했다. 양국 영향 평가와 일부 기술적 사항을 놓고 협의를 진행한 뒤 9월에 서명식을 열기로 했다.
△미국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 발동
한국은 2018년 5월15일 미국이 세탁기·태양광 수출품에 부과한 세이프가드(수입제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미국은 2018년 1월 수입세탁기를 놓고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미국 가전업체인 월풀이 한국산 제품을 수입해 미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줬다고 제소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김현종은 월풀의 제소가 미국 산업의 시장 점유율이나 이윤 부분에서 피해를 줬다고 보기 어렵다고 민관에 설명했고 WTO의 제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11월이면 WTO의 분쟁해결기구 상소위원 7명 가운데 3명만 남는다. 3명까지 상소위원이 줄면 상소기구가 사실상 제대로 된 기능을 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나온다.
정부는 이를 두고 국제사회와 공조해 상소위원 선임을 위한 164개 회원국들의 의견을 모으고자 하고 있다.
|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미국 워싱턴 DC 무역대표부에서 열린 '제2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 참석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등과 함께 양국 FTA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
△두번째 통상교섭본부장 임명
2017년 7월30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됐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경제통상분야 전문가로서 주요 교역국과 FTA 체결 업무를 수행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당면한 통상 현안들을 차질없이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발탁에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김 신임 본부장의 임명은 전문성과 국익을 고려한 합리적이고 실리 중심의 인선”이라고 평가했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김 신임 본부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통상교섭분야 전문가”라며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한미 FTA 개정협상 준비를 철저히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은 “현 시점에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고 기대했다.
김현종은 8월4일 취임식에서 “통상교섭본부 직원 모두가 전략가가 되기를 원한다”며 “우리가 예측 가능하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건 협상 상대방뿐으로 수동적이고 수세적 골키퍼 정신은 당장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 선출
2016년 5월 장승화 전 WTO 상소기구 위원이 미국의 반대로 연임에 실패하자 정부는 후임으로 김현종을 추천했다.
WTO 상소기구는 국제통상법분야의 최고 심판기관으로 국제통상과 WTO 협정의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정부로부터 독립되며 회원국을 다양하게 대표하는 위원들로 구성된다. 위원 숫자는 7명인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관행적으로 1석씩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 5자리를 지역·선진-개도국 사이 안배에 따라 뽑는다.
장 전 위원의 공석에 김현종을 포함 중국 2명, 일본, 호주, 대만, 네팔 각 1명 등 모두 7명이 입후보했다. 김현종은 10월8~26일 동안 스위스, 벨기에, 미국 등을 방문해 WTO 인터뷰와 선거운동 활동을 벌였다.
김현종은 WTO 사무국 근무와 통상교섭본부장, 유엔대사 역임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자질을 피력했고 정부도 재외공관을 통한 지지 확보, 주요국 통상장관과 통상당국 접촉 등으로 지원에 나섰다.
결국 2016년 11월23일 WTO 분쟁해결기구 정례회의에서 상소기구 위원에 공식 임명됐다. 상소기구 위원은 WTO 분쟁의 최고 판단자로서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직위로 우리나라에서 상소기구 위원이 연속 배출된 것은 통상분야의 쾌거로 여겨졌다.
| ▲ 기자들에게 둘러 싸인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
△정치 출사표
2016년 2월18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영입인사 1호라서 더욱 주목받았다.
김현종은 입당 인사에서 “‘경제와 외교안보 글로벌 2.0’시대를 열고 있는 대한민국은 정치도 이 시대에 맞는 정치인이 필요할 것”이라며 “글로벌 진출 2.0시대를 정치인으로서 국민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종은 20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김현종은 “제 능력과 네트워크로 이 지역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마찬가지로 정치신인인 유동수 후보와 경선에서 맞붙었다. 한미 FTA의 주역이었던 김현종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도 있었으나 30년 동안 이 지역에서 공인회계사로 활동하고 인천도시공사 상임감사, 송영길 전 인천시장 후원회 등을 지내며 지역기반을 다진 유동수 후보에게 밀렸다. 공천 심사 결과는 유동수 66.85%, 김현종 43.15%였다.
김현종은 경선 탈락 후 블로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계양 주민 여러분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에 감사드린다”며 “공정하고 당당한 경쟁을 함께 한 유동수 후보께 축하드리고 본선에서 꼭 승리하시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남겼다.
△삼성전자 애플 특허소송 관여
2009년 3월 삼성전자 글로벌법무담당 사장에 영입돼 해외특허, 반덤핑 등 해외 법무와 지적재산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가 수시로 변하고 있어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며 “김 사장은 뛰어난 법무 실무가인 동시에 기업의 생존과 미래 전략을 이끌고 나갈 전략가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검증된 인물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특허경영을 강화해 나가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종은 2011년 4월부터 벌어진 애플과 특허소송을 이끌었다. 애플이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삼성전자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자 삼성은 이에 반소하는 등 두 회사가 세계에서 특허전쟁을 벌였는데 김현종이 맞불전략을 주장한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현종은 애플과 특허 분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2011년 12월31일 삼성전자를 퇴직했다. 삼성전자 퇴직 예우 규정에 따라 3년 임기의 상담역으로 활동할 수 있으나 이를 거절했다.
재직 중이던 2011년 11월 대형 로펌으로 이적설이 나오기도 했으나 삼성전자는 이를 부인했다. 삼성 퇴직 이후에도 로펌으로 가지 않았다.
△유엔대사 활동
2007년 8월 제21대 유엔대사에 임명됐다. 당시 한미 FTA를 성공적으로 타결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와 함께 본인의 의사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통상 전문가인 만큼 다자외교·안보분야에 취약해 유엔대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역할을 고려하면 차라리 제네바 대사에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한미 FTA의 성공적 추진에 크게 기여했고 미국 정.재계나 유엔 산하 각종 국제기구 등에 지인이 많고 국제사회의 인지도가 높은 점을 감안해 유엔대표부 대사직에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박 수석은 또 “국제규범으로 움직이는 유엔 기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법률에 대한 소양과 능력”이라며 “변호사 출신인 김 본부장의 '리걸(legal) 마인드'를 감안했고, APEC 등에서 정부 대표로서 다자외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해 유엔대사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007년 10월 53개 아시아 회원국가로 구성된 유엔 아주그룹 의장에 선임됐다. 아주그룹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물론 안전보장이사회 등 유엔 주요기관과 산하기관 등의 선거에서 회원국 사이 입후보를 조정하고 각종 회의에서 아주 지역 뜻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8년 1월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에 선출됐다. 경제사회이사회는 개발과 인권 등 경제사회 문제 전반을 관할하는 유엔 주요 기관으로 김현종은 장 마르크 호샤이트 룩셈부르크 대사 등 3명과 함께 1년 동안 부의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2008년 5월 유엔대사에서 귀임했다.
△참여정부 통상교섭조정관 통상교섭본부장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에서 통상현안 브리핑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눈에 들어 참여정부 통상부문을 사실상 주도적으로 이끌게 됐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5월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발탁됐다. 노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받으면서 FTA 추진 로드맵을 만들었고 사실상 FTA 추진의 전권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개방형 공무원 채용과 한미FTA기획단 신설 등 인사와 조직개편 권한까지도 행사할 수 있었다.
2004년 7월 통상교섭조정관이 된지 1년3개월 만에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해 40대의 젊은 나이로 통상부문의 사령탑이 됐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45세의 젊은 나이지만 통상법을 공부했고 4년간 세계무역기구(WTO)의 수석고문변호사를 역임했으며 지난해부터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대외협상 업무를 차질없이 수행해 조직 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아세안, EU, 캐나다, 인도 등 동시다발적 대형 FTA를 추진하면서 한국 자유무역 지도를 확대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6년 2월3일 한미 FTA 협상을 발족했다. 한미 FTA는 쌀·쇠고기 등 농축산물 문제, 자동차 ·섬유 등 제조업 문제, 스크린쿼터 등 문화예술 문제, 개성공단 생산품 지위 등 외교안보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지 않은 과제로 여겨졌다. 김현종은 “궁극적으로 한미 FTA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 추진한다”고 밝혔다.
협상 만료 시한이 닷새 남은 2007년 3월26일부터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카란 바티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와 '끝장 협상'에 들어갔다. 마지막날인 31일 양쪽은 4월2일 새벽 1시까지 협상 연장에 합의하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끝까지 첨예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결국 2007년 4월2일 한미 FTA 협상을 타결했다. 김현종은 국회 보고에서 한미 FTA에 이면합의가 없으며 재협상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로 추가 협상이 진행돼 7월1일에야 서명이 이뤄졌다. 이후 한미 FTA는 2010년 한 차례 더 추가협상을 거쳤다.
2007년 5월6일 한EU FTA 협상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8월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에게 통상교섭본부장 자리를 넘기고 유엔대사로 임명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