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받는 사법부
검찰은 2018년 7월1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관련자 PC를 놓고 본격적으로 포렌식(디지털 저장매체 정보 분석) 작업에 착수했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사용하던 PC 하드디스크도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2018년 6월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PC 하드디스크를 요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거부했다. 하드디스크는 ‘디가우징(복구불능하게 데이터를 지우는 것)’됐다고 했다. 김명수가 모든 조사 자료의 영구 보존을 지시하기 이전인 시기에 이런 조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증거가 훼손됐음이 드러나자 일부 법관들 사이에서 '김명수가 이를 일부러 묵인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장의 PC는 중요한 문서를 많이 담고 있는 만큼 김명수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김명수는 법원행정처가 검찰 수사에 비협조적 태도를 보이는 것과 관련해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기 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마무리 짓기 위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문을 내놓은 적이 있다.
대법원은 검찰의 요청에도 자료들을 제한적으로 내놓고 있다. 자료를 모두 준다면 사법농단 외 다른 의혹들이 포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요구에도 법원행정처의 비협조적 태도가 계속되면 검찰의 강제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 ▲ 2018년 4월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휴일연장근로 수당 사건 2차 공개변론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이 자리에 앉아 변론을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
△사법부 내부 개혁에 나서
김명수는 2017년 9월26일 취임한 뒤 한 달 만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추가조사위원회'를 꾸렸다.
그러나 추가 조사위원회는 부실조사를 했다는 지적을 받았고 김 대법원장은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을 단장으로 하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을 꾸렸다.
이 특별조사단은 2018년 5월25일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보고서를 통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와 청와대의 재판거래 의혹, 일부 판사들을 향한 사찰 의혹이 있지만 검찰에 수사 의뢰할 정도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에 김명수는 5월28일부터 형사 고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각계의 의견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고발했고 일부 대법관들은 고발에 우려를 표현하기도 했다.
김명수는 2018년 6월15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자체 혁신방안을 내놓았다. 먼저 사법농단 의혹에 관여된 13명의 법관의 징계 절차를 회부했다. 일부는 재판 업무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2018년 5월31일 내놓은 대국민 담화문에서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완전히 분리하고 법원행정처를 대법원 청사 외부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승진 인사의 폐지도 검토한다. 이를 통해 법관들이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있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기로 했다.
사법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수직적·관료적 구조에서 수평적 합의제 구조로 개편하기로 했다. 또 법관독립위원회의 설치도 추진하기로 했다.
△인사청문회 통과
김명수는 2017년 9월12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2017년 9월21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가결됐고 25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김명수는 우리법연구회 활동 등으로 이념 편향과 코드인사 논란으로 여소야대 국회의 문턱을 넘는 데 난항을 겪기도 했다.
김명수는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에서 “진보·보수, 좌우의 이분법적 잣대로 규정하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며 “이념이 아닌 우리사회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30여 년 동안 재판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법연구회를 두고 “정치적·이념적 편향이 나타나는 학술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나 정황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법관들의 자율적 학술모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법연구회의 후신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놓고는 “대법원 산하 공식 전문분야연구회”라고 옹호했다. 다만 지명 일주일 만에 인권법연구회를 탈퇴하며 논란을 잠재우려는 모습도 보였다.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김명수는 2017년 8월21일 대법원장 후보자에 지명됐다. 현직 지방법원장(춘천)이 재임 중 대법원장에 지명된 것은 처음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김명수 후보자는 사법행정의 민주화를 선도적으로 실행했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했다”고 말했다.
김명수는 “두려운 마음이 있지만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출발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열심히 해서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지방법원장 시절
2016년 2월11일 제46대 춘천지방법원장에 취임했다. 취임사에서 “법원의 가장 주요한 업무는 정의에 맞는 옳고 훌륭한 재판을 다하는 것”이라며 “원칙을 중시하되 역지사지의 태도로 국민의 권리와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소를 춘천으로 옮기고 지역 행사에 자주 참석하는 등 춘천 지역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역 단체장과 지속적 교류는 물론 강원도청 직원과 강원대 로스쿨 학생 등 지역민을 위한 강연도 여러 차례 했다.
춘천지법에서 민주적 사법행정을 시도했다. 일반적으로 판사들의 사무분담은 법원장이 자의적으로 결정하는데 김명수는 판사회의에서 사무분담 원칙을 정하고 구체적 사무분담은 운영위원회에서 논의해 정하도록 했다. 사무분담이 정해진 후에는 개별 판사들에게 그 이유를 일일이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춘천지법에 형사 항소심 재판부가 1개밖에 없어 사건 적체가 심해지자 2017년 2월 형사 단독사건 항소심을 다루는 제3형사부를 신설했다. 제3형사부는 기존 형사 단독 항소사건의 5분의 2를 소화하고 행정사건의 절반가량을 다루고 있다.
시민사법위원회, 시민사법참여단과 활발한 회의를 개최해 법원과 일반 국민이 사법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또한 법원의날을 기념한 ‘법원을 향한 열린 지성, 캠퍼스 100인 토론회’ 등을 통해 법원과 지역 시민사회의 거리를 좁혔다.
전국 최초로 보호소년 인문치료를 통해 보호소년들의 사회 적응 훈련을 도왔다. 북한이탈민을 대상으로 헌법 및 생활법률 교육, 다문화가정을 위한 스마트 법률학교 공동 개최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원의 후견적 역할을 강화했다.
| ▲ 2018년 4월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김명수 대법원장(오른쪽)이 법관들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전두환 정권에서 임명한 김용철 대법원장을 재임명하려는 데 반발하면서 출범한 조직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과 박시환 전 대법관 등이 발탁되면서 우리법연구회가 주목받았다.
그러나 보수정당에서 우리법연구회를 ‘사법부의 하나회’라고 비판하면서 해체를 요구했고 2010년 회원 공개 이후 탈퇴자가 늘어나면서 해산했다.
김명수는 2011년 출범한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인권법연구회는 우리법연구회 판사 상당수가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으로 여겨진다.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와 함께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첫 학술대회를 개최했고 유엔 국제인권법 매뉴얼 한국어판을 발간하는 등 인권법분야 법률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김명수는 2017년 3월 인권법연구회가 주최한 학술대회에 법원장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하기도 했다.
△진보적 판결
김명수는 다양한 사건에서 국민의 기본권은 물론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판결을 내렸다.
2011년 6월 군산 제일고 교사들이 간첩으로 조작된 사건인 오송회 사건(1982년)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위자료로 150억 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1년 12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한 이신범 이택돈 전 의원에게 국가와 전두환 전 대통령, 이학봉 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수사단장이 3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김명수는 판결문에서 “당시 합수부 수사관들은 고문과 구타, 욕설, 협박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불법행위가 국가 공무원의 직무집행이었던 만큼 국가는 원고 모두에 대해, 전 전 대통령과 이 전 단장은 체포를 지시한 이택돈 전 의원에 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2014년 9월 군무원이 군부대 내에서 근무시간 중 함께 일하는 동료 여직원에게 음란 동영상을 보여준 사건에 대해 성희롱에 해당돼 징계가 정당하다고 결정했다. 김명수는 판결문에서 “남성 중심적 가치관과 질서가 지배하는 군부대에서 여성이 성적 언동을 한 남성을 상대로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2014년 12월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가 남대문경찰서를 상대로 제기한 옥외집회금지 통고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쌍용차 범대위는 쌍용차 추모 문회제를 열기 위해 집회신고를 했지만 남대문서는 폭력시위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해 집회금지 통고 처분을 내렸다. 남대문서는 이를 집회 연락책임자에게 직접 전달하지 못하자 금속노조 사무실 우편함에 꽂아놓고 이를 문자로 통보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각 처분서가 원고나 연락 책임자에게 적법하게 송달되지 않아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집회·시위 금지 통고는 국민의 기본권을 직접 제한하는 조치인 만큼 통고는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2015년 3월 논산훈련소에서 행군하던 중 발목을 접질려 다친 군인이 십자인대 재건수술을 받자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행군 도중 넘어지면서 무릎을 다쳤거나 그러한 사고가 원인이 돼 급격하게 악화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부상과 공무수행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2015년 6월 삼성에버랜드가 조장희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을 해고한 이유가 사실상 노조 활동 때문이라고 판단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다. 판결문에서 삼성그룹의 노조 탄압 전략이 담긴 에스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실제 삼성이 작성하고 실행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2015년 11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파기환송심에서 전교조 합법노조 지위 유지를 결정했다. 판결문에서 “신청인은 이 사건 처분으로 노조 활동이 상당히 제한을 받게 되고 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라고 밝혔다.
전교조는 고용노동부가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노조 자격을 박탈당했는데 법원 선고 때까지 노조로 인정해달라며 효력정지를 신청해 2심까지 승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파기환송했다.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를 깨고 독립적 결론을 내린 사례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