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가 영화계를 망친다", 슈퍼히어로영화 전성시대 놓고 논쟁

고진영 기자 lanique@businesspost.co.kr 2018-05-06 06: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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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가 영화계를 망친다", 슈퍼히어로영화 전성시대 놓고 논쟁
▲ 마블 스튜디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왼쪽)와 DC코믹스 '저스티스 리그'의 슈퍼히어로들.
“사람들이 ‘어벤져스’에 빨리 질리기를 바란다. 그 영화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는 2시간 동안 초인적 남성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도시를 때려부수는 것 말고도 할 이야기가 많다.”

‘타이타닉’과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최근 이런 말을 했다가 영화팬들의 다툼에 불을 붙였다.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가 영화계를 망치고 있는가하는 주제는 요즘 할리우드에서 자주 등장하는 논쟁거리다. 프랜차이즈 영화란 ‘캐릭터와 세계관을 공유하며 내용에 연계성이 있는 시리즈’를 뜻한다. 

6일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의 최고 흥행작 20편 가운데 12편이 이런 시리즈물이었다. 프랜차이즈 전성시대다.

제작사들에게 프랜차이즈 영화는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흥행 보증수표와 다름없다. 인기 캐릭터를 바탕으로 충성도 있는 관객층을 확보하기만 하면 그 뒤로 내놓는 속편들의 흥행은 따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작사들은 슈퍼히어로에 기반한 영화적 세계관의 조성을 위해 앞다투고 있다. 어벤져스 등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영화들의 성공을 따라잡으려는 것이다.

세계적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3년 전 “서부극이 몰락했듯이 슈퍼히어로 영화도 사라지게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최근 ‘블랙호크’를 연출하기로 DC코믹스와 합의했다. 스필버그 감독의 생애 첫 슈퍼히어로 영화다. 
 
블랙호크는 DC코믹스 슈퍼히어로 군단인 ‘저스티스 리그’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DC코믹스는 타임워너의 자회사인데 배트맨과 슈퍼맨 등의 캐릭터를 들고 있다. 캐릭터 보유로만 따지면 북미 코믹북(만화책)시장에서 마블 스튜디오와 쌍벽을 이룬다. 하지만 영화로는 마블 스튜디오가 절대적으로 앞서가고 있는 만큼 회심의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제작사인 유니버설 픽처스 역시 몬스터들로 구성된 ‘다크 유니버스’를 만드는 데 바쁘다. 지난해 개봉한 ‘미이라’의 바통을 내년 ‘프랑켄슈타인의 신부’가 이어받게 된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는 ‘슈퍼히어로 시리즈물이 영화장르를 독점하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따라붙는다.  

배우 조디 포스터는 라디오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득세가 관객들의 영화보는 습관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자극적 콘텐츠와 특수상영에 따른 비싼 티켓값 등이 영화를 예술로서 자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벤트’처럼 가끔씩만 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제작사들이 눈앞의 수익을 위해 나쁜 콘텐츠(슈퍼히어로 영화)들을 만들고 있는데 당장은 이득을 볼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관객들을 망치는 결과”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북미에서 영화를 보러간 관객 수는 22년 만에 최저치를 보였다. 

‘버드맨’과 ‘레버넌트’로 2015에서 2016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연속 수상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역시 슈퍼히어로 영화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냐리투 감독은 미국 영화매체 데드라인과 인터뷰에서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가끔 심오한 척 하지만 내용을 보면 매우 우경화적”이라며 “대부분은 힘있는 사람들이 그와 다른 것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이런 영화에 담긴 철학의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문화적 집단학살(cultural genocide)이라고 혹평했다. 

‘아이언맨’의 주연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이 말에 반발해 “모국어가 스페인어인 사람이 ‘문화적 집단학살’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성공한 것만 봐도 이냐리투 감독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다”고 비꼬았다가 인종차별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영화적 완성도와 별개로 슈퍼히어로 시리즈물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제작할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제작사들이 프랜차이즈 영화에만 돈을 몰아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시리즈물이나 액션이 아닌 드라마 장르의 영화가 1억 달러(1천억 원가량) 이상의 제작비를 지원받는 일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제작되는 전체 영화의 숫자도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해 할리우드 6대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내놓은 영화는 93개에 불과했다. 10년 전인 2007년만 해도 150개를 만들었는데 대폭 줄었다. 스튜디오들이 프랜차이즈 영화들에 들어가는 제작비를 급격히 늘리면서 다른 영화에는 투자를 아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인디와이어의 유명 평론가 데이비드 에리히는 “‘텐트폴 영화(성수기를 겨냥한 블록버스터)’의 존재 의미는 원래 제작사들이 흥행을 확신하는 영화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여기서 본 수익으로 중형급 영화들을 만들 수 있는 여력을 얻는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제작비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오히려 다른 영화들이 만들어지지 않는 결과만 낳고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자금을 들인 슈퍼히어로 영화, 그리고 아카데미 등 시상식을 겨냥해 아주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지는 독립영화 등으로 장르가 양분되고 있으며 이 둘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 사례도 있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레버넌트’는 이런 추세를 거슬러 1억3500만 달러가 들어갔다. 이 때문에 개봉 전부터 언론에서는 ‘블록버스터급 제작비를 들인 아트하우스(예술) 영화’라며 흥행 참사를 내다봤다.

예상과 달리 레버넌트는 전 세계에서 5억3천만 달러(5700억 원가량)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미국 대중문화매체 벌쳐는 주연배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성공의 가장 큰 공신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컴스코어(ComScore)의 수석 미디어 분석가 폴 더가라베디안 역시 “디카프리오는 세계에서 티켓 파워(관객 동원력)가 가장 강한 배우”라며 “여론조사에 따르면 관객들이 레버넌트를 보러간 가장 큰 이유는 디카프리오로 꼽혔으며 이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사례가 더 희귀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재 영화계를 지배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영화들은 배우 인지도를 높이는 역할도 하지만 할리우드 배우의 스타성이 예전같지 않은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캐릭터의 존재감이 워낙 크다 보니 그 역할을 맡은 배우까지 가리기 때문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프랜차이즈 영화를 제외하면 10년 동안 세계적으로 흥행했다고 할 만한 작품이 코믹 영화인 '듀 데이트' 하나뿐이다. 이마저도 전 세계 흥행 수입이 2억1천만 달러(2100억 원가량)에 불과하다. 

디카프리오는 14년 전 제작비 1억 달러를 들여 제작된 그의 주연작 ‘에비에이터’에 관해 “지금이라면 절대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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