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노기' 주역 이은석, '듀랑고'로 세 번째 '인생게임' 만들다

고진영 기자 lanique@businesspost.co.kr 2018-02-20 15: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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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 주역 이은석, '듀랑고'로 세 번째 '인생게임' 만들다
▲ 이은석 넥슨 왓스튜디오 디렉터.
“비슷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다.”

이은석 넥슨 왓스튜디오 디렉터가 게임업계에 해왔던 경고다. 패스트 팔로어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6년을 공들인 야심작 ‘야생의 땅:듀랑고’에 이런 철학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야생의 땅:듀랑고(듀랑고)는 출시 2주 만에 누적 다운로드 330만 건을 돌파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넥슨이 서비스했던 모바일게임 가운데 가장 많은 이용자와 하루 이용자 수, 동시접속자 수를 확보했다.

듀랑고는 원인 모를 이유로 공룡 시대에 워프(시공간 이동)해 온 현대인들이 수렵과 채집, 농사 등을 통해 야생을 개척하고 가상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게임이다. 

출시하자마자 서버 접속장애로 위기를 맞았는데도 반등에 성공한 것은 독특한 콘텐츠 덕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보통 서비스 처음부터 서버 상황이 안 좋으면 유저들이 대체 가능한 게임으로 이탈하게 되지만 현재 듀랑고와 비슷한 모바일게임은 찾기 힘들어 계속 붙들어 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듀랑고는 모바일에서는 드문 샌드박스형 게임이다. 이은석 디렉터는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장르가 쇠락기에 접어든 이유가 이용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뿌리고 통제하는 하향식 구조에 있다고 보고 자유도 높은 샌드박스 구조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모래사장에서 어떤 형태든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샌드박스형 게임은 응용이 가능한 판만 깔아놓는다. 이용자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스스로 놀이를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듀랑고에는 이른바 ‘엔드 콘텐츠’, 최종 목표가 없다. 꼭 해야하는 임무도 없고 생존도 목적이 되지 않는다. 공룡과 싸우다 죽을 수는 있어도 음식을 못 먹어 굶어 죽거나 옷이 없어 얼어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용자들은 집을 꾸미거나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키우고 옷을 만들면서 스스로 재미를 찾아야 한다. 

이 디렉터는 “듀랑고는 생존보다 생활게임”이라며 “생존에 방향을 맞추면 이용자들이 끊임없이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다 보니 특정 행위를 위해 어떤 수단을 써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가령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나뭇가지를 모을 수도 있지만 갈대나 짐승의 배설물을 사용할 수도 있다. 옷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다. 흰색 염료를 만드려면 가장 좋은 재료는 진주지만 조금 탁한 빛깔을 감수하겠다면 조개 껍질로도 대체가 가능하다. 

이런 자유로운 게임의 성격은 이 디렉터가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듀랑고는 이 디렉터가 이끄는 사내 개발조직 '왓스튜디오(What! Studio)'가 ‘프로젝트K’라는 코드명으로 개발한 게임이다. 

왓스튜디오에서는 직원들이 업무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게임 등 취미생활도 허용된다. 게임 개발은 집단창작 과정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문화가 중요하다는 이유다. 

이 디렉터의 모니터를 누구나 살펴볼 수도 있다. 그는 허용 범위를 제한하기보다 금지 범위만 설정하는 '블랙리스트'에 기반한 문화가 혁신성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직책과 권위를 내세우는 낡은 시스템은 복잡한 온라인게임에 안 어울린다는 것이다. 

듀랑고의 또 다른 특징은 인공지능(AI)이다. 이용자가 늘어날 때마다 인공지능은 이들이 개척해야 할 섬을 무작위로 판단해 생성하고 식물이나 동물 등도 각 섬에 맞춰 새롭게 만들어낸다. 

이 디렉터는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일부 개발인력을 대체해 신규 채용이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인공지능을 피하지 말고 즐겨야한다"고 말해왔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되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 인공지능이 데이터화하고 배울 수 없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듀랑고 역시 이 디렉터가 ‘세상에 없는 게임’을 만들겠다며 고민한 결과 탄생했다.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자체 IP(지식재산권) 등 독창성을 내세웠다.

이 디렉터는 넥슨의 대표적 장수게임인 ‘마비노기’와 ‘마비노기 영웅전’을 줄줄이 성공시킨 스타 개발자다.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1997년 졸업하자마자 게임업계에 뛰어들었다. 2002년 넥슨데브캣스튜디오 디자인 팀장으로 입사해 마비노기 개발과 아트디렉터, 마비노기 영웅전의 개발총괄을 맡았다.

그는 올해 듀랑고를 내놓으면서는 “매출보다 오래가는 게임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모바일게임은 대체로 수명이 짧은데 쉽지않은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듀랑고의 앞날은 모바일로는 아직 낯선 샌드박스 구조에서 얼마나 많은 이용자들을  잡아둘 수 있을지가 가를 것으로 보인다. 높은 자유도가 오히려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다. 가이드가 없다 보니 적응이 어렵고 게임에 빠져들려면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이용자 사이의 소통과 협업이 없이는 사실상 진행이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 없이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어렵다.

이 디렉터도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시대 게임 개발자들의 생존을 두고 “예전에는 골방에서 남들과 부대끼지 않고 개발하면 편했다“며 “하지만 그렇게 기계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작업일수록 기계화 가능성이 큰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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