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활동
취임 이후 부지런히 현장을 찾으며 직원들과 소통하고 있다.
김낙순은 마사회장에 취임한 2018년 1월19일 첫 출근 장소로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아 협력을 강조했다.
김낙순은 취임식에서 “대한민국 초대 노동위원장 보좌관으로 일한 경력을 통해 노사관계에 남다른 철학을 지니고 있다”며 “실천으로 보여드릴 테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취임식을 마친 뒤 신입사원과 만찬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회장과 소통이 가장 어려울 것 같은 사람부터 만나보고자 특별히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취임 다음날에는 경마현장을 방문해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기수 조교사, 경마지원직 등 유관단체를 찾아 응원과 부탁의 말도 전했다.
2월2일에는 경기 용인 ‘한국마사회 렛츠런스포츠단’ 훈련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했다. 이날 훈련장에는 마사회의 현정화 탁구 감독, 이경근 유도 감독, 전재식 승마 감독, 김재범 유도 코치 등이 함께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지원
2018년 1월27일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과 지원금 50억 원을 전달하는 협약식을 맺었다.
김낙순은 “전 세계인의 축제이자 국가적 행사인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며 “한국마사회도 기부를 통해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마사회는 기부금 외에도 동계올림픽 기간 자원봉사 인력 7명을 파견하고 입장권 구매, 농어촌 지역 취약계층 800명의 관람 지원 등을 통해 성공적 대회 개최를 돕는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2018년 2월8일 강원도 강릉지역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마사회장 취임
2018년 1월19일 경기 과천 렛츠런파크서울 본관 문화공감홀에서 취임식을 열고 3년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과 소명감을 느낀다”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공기업으로서 설립 목적에 충실한 기관으로 되돌아가 국민 마사회로 재탄생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성과 공익성 우선 △신뢰와 격려의 조직문화 △투명한 업무처리 등을 3대 핵심과제로 제시하면서 “마사회가 국민의 사랑을 위해 모든 임직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최선을 다 할 것”을 당부했다.
△야인시절(2008년~2017년)
2016년 20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에 등록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이용선 전 민주통합당 공동대표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을을 놓고 더불어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비리전력자 논란 등에 휩싸여 공천을 받지 못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현역의원으로 서울 양천을에서 재선에 도전했으나 김용태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2천여 표 차이로 밀려 재선에 실패했다.
18대 총선 이후 국회의원은 하지 못했으나 더불어민주당에서 꾸준히 정치활동을 했다.
민주당 대표, 최고위원 선거 때마다 정동영 의원, 박영선 의원 등의 편에 서 당선을 도왔고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본부장,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조직위원장 등을 맡았다.
2017년 대선에서는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회의 조직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 문화예술관광학부 초빙교수 등으로도 활동했다.
△17대 국회의원 시절(2004년~2008년)
2004년 총선에서 서울 양천을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현역의원이던 오경훈 의원을 400여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개표율이 98%에 이를 때까지도 오경훈 후보에 뒤처졌으나 마지막 투표함에서 표가 더 많이 나오면서 결과가 뒤바꼈다. 서울 양천을은 17대 총선에서 500표 이하로 당선자가 갈린 5곳 중 한 곳으로 기록됐다.
전반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하반기 행정자치위원회, 교육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2005년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주축으로 친노 성향 의원들이 힘을 합쳐 만든 열린우리당 외곽단체인 ‘국민참여연대’에서 활동했다.
2006년 열린우리당 초선의원들의 모임인 ‘국민의 길’이라는 모임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6년 열린우리당 수석사무총장을 맡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황제 테니스 의혹 등을 조사했다.
김낙순은 정동영계 의원으로 분류되며 2007년 2월 김한길 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 23명의 의원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김한길 전 원내대표와 함께 2007년 5월 통합신당을 만들고 6월 민주당과 합당해 통합민주당을 만든 뒤 사무부총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하기 위해 김한길 전 원내대표 등 19명과 함께 다시 통합민주당을 탈당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치렀다.
전반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하며 KT의 무선재판매사업 문제점을 짚고 통신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2권의 정책 자료집을 내는 등 활발한 국정활동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17대 국회의원 이전 시절
1980년대 중반 신한민주당 중앙당 연수부장으로 정치에 입문해 통일민주당 중앙당 경리부장, 평화민주당 대통령선거대책본부 유세 부위원장, 김영배 전 국회부의장의 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1998년 제2회 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선거에 나섰으나 낙선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본부 기획위원으로 참여했다.
2003년 서울 양천을에서 내리 4선을 한 6선의 김영배 의원이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의원직을 사퇴하자 재보궐 선거 출마를 준비하며 중앙 정치에 진출할 뜻을 보였다.
김낙순은 서울 양천에서 오랜 기간 살며 지구당에서 20여년 간 활동한 것을 비롯해 김영배 의원의 보좌관을 지내는 등 양천지역 후보로서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양재호 전 양천구청장이 2003년 양천을 재보선 민주당 후보로 결정되자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아 양 후보를 도왔다.
양 후보가 오경훈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하자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양천을 후보로 직접 나서 국회에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