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활동
최중경은 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서 회계업계 자정에 힘쓰고 있다.
최중경은 2016년 6월
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당선되고 두 달 뒤 회장 직속으로 ‘회계 바로 세우기 특별위원회’를 세웠다.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선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최중경은 “부실감사와 분식회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올바른 회계제도 정립과 회계사 역량강화가 필요하다”며 “특별위원회 활동으로 그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정감사제 도입도 추진했다.
지정감사제란 상장기업이 회계감사를 받을 때 금융위원회 등에서 회계법인을 정해주는 제도다. 기존에는 감사를 받아야 할 기업이 회계법인을 수임해 감사를 받는 자유수임 구조였다.
최중경은 “회사가 감사할 회계법인을 입찰경쟁으로 선발하는 구조 아래 양질의 감사가 이뤄질 수 없다”며 “자유수임제 때문에 회계감사가 본래의 취지를 잃고 기업에 점점 예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1월 금융위원회가 마련한 회계제도 개선안에 기존의 자유수임제와 지정감사제의 혼합형인 선택지정제가 채택됐다. 관련 내용은 2018년 1월 현재 국회의 논의를 거치고 있으며 2019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택지정제란 상장기업이 6년 동안 같은 회계법인에 외부감사를 받았다면 다음 3년은 반드시 다른 회계법인을 선택해야 하는 제도다. 기업이 회계법인 3곳을 제시하면 증권선물위원회가 한 곳을 최종 선정한다.
공인회계사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2017년 12월12일 공인회계사의 사회적 신뢰를 높이고 사회공헌 활동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사회공헌위원회’를 발족했다.
최중경은 “공인회계사가 전문가로서 사회적 신뢰를 얻으려면 사회적 약자 지원 등 여러 분야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이번 위원회 출범으로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 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은 2017년 12월12일 회계사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공헌위원회'를 발족했다. 사진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최중경.<공인회계사회> |
△압도적 지지로 공인회계사회 회장 당선
최중경은 2016년 6월22일 치러진 공인회계사협회 회장 투표에서 전체 4911표 가운데 3488표를 얻어 71%의 지지로 당선됐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민만기 공인회계사도 후보로 나섰다.
최중경의 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 출마와 관련해 여러 논란이 있었다. 최중경의 1년도 안되는 회계사 경력과 효성, KT캐피탈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는 점 등이 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서 부적절하다는 말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중경은 71%에 이르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이 됐는데 이는 단체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당시 회계사업계 사정과 관련이 있다.
공인회계사회 회장은 비상임에 임기 2년의 명예직이다. 따라서 치열한 선거가 치러지는 자리는 아니었다. 직전 회장 선거에서는 후보자가 없어 강성원 전 회장이 연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회계부정 사태로 회계사 사이에 위기감이 돌면서 사정이 변했다. 위기의식과 함께 회계사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실제로 2016년 4월13일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회계사 출신 국회의원이 늘어났다.
공인회계사회가 정치적으로 힘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회장을 원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한국세무사회의 회장으로 백운찬 전 관세청장이 당선된 점도 최중경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백 회장도 관료출신으로 세무사로서 경력이 거의 없어 최중경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백 회장은 세무사회 회장을 맡고 관료출신의 영향력으로 세무사의 지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계사 사이에서도 최중경 같은 전직 관료출신 회장이 필요하다는 시선이 생겼다.
최중경도 장관에서 물러난 후 점차 주목받고 있는 직능단체 대표 자리가 앞으로 개인적 행보와 관련해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중경은 선거공약으로 감사보수 최저한도 설정 등을 내세웠다.
| ▲ 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이 2017년 3월27일 서울 KB국민은행 본점에서 KB국민은행과 한국공인회계사회의 '공익법인의 회계투명성제고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 두번째부터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 |
△지식경제부 장관 시절
최중경은 2011년 1월27일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에 임명됐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탈세와 부동산 투기, 과거의 환율 정책실패 등으로 당시 여당 의원들에게도 비판을 받았다.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이 무산됐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다.
그러나 2011년 11월15일 사상 유래가 없었던 대규모 순환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이른바 '9·15 정전사태'로 불리는 이 사고의 여파로 최중경은 지식경제부 장관에 임명된 지
8개월만인 2011년 9월27일 사의를 표하고 2011년 11월16일 장관에서 물러난다.
△세 차례에 걸친 악연, 최중경과 외환
최중경은 적극적 외환개입정책의 신봉자다. 경제관료로 있으면서 책임있는 자리에 있을 때마다 강력한 외환개입정책을 폈다. 그의 대표적 별명인 ‘최틀러’도 2004년 외환개입 때 얻은 별명이다.
최중경의 외환과 관련된 악연은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당시 최중경은 재정경제원(현재 기획재정부) 금융협력과장이었다.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 강만수 재정경제원 차관 등과 함께 외환정책의 실무자였다.
매일경제의 1997년 11월8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최중경은 “현재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금융시장 관계자들과 일부 언론의 호도로 국제금융시장에서 국내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경제는 당시 기사에서 최중경이 “‘IMF의 자금지원을 전혀 검토한 적이 없으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최중경의 발언과 달리 1997년 11월21일 임창열 당시 부총리는 IMF에 구제금융 200억 달러를 공식 요청했고 정부는 1997년 12월3일 IMF와 구제금융 양해각서를 체결하기에 이른다.
최중경과 외환의 두 번째 악연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있던 시절의 외환개입이다.
최중경은 환율이 떨어지면 국내 수출기업의 수출경쟁력이 약해진다며 역외차액선물환시장(NDF)에 개입했다.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며 한동안 환율을 달러당 1140원 이하로 사수해 당시 이 환율을 ‘최중경 라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당시 저돌적 환율방어에 외환시장은 최중경을 그의 이름과 히틀러를 합친 ‘최틀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후 최틀러는 최중경의 대표적 별명이 됐다.
그러나 무리한 환율개입으로 거의 1조8천억 원에 이르는 국고손실을 낸 것이 그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최중경은 국고손실에 책임지고 물러나 2005년 8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상임이사로 사실상 좌천돼 미국으로 출국해 한동안 머무르게 됐다.
최중경은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다시 기획재정부에서 활동할 기회를 잡았다. 2007년 12월3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임명됐다. 이명박 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범한 2008년 2월에는 기획재정부 제1차관으로 임명됐다.
같은 시기에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은 강만수 전 장관과 함께 두 사람의 성을 딴 ‘최-강 라인’으로 불리며 ‘747성장’으로 대변되는 MB노믹스를 이끌 핵심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무리한 고환율정책이 다시 최중경의 발목을 잡았다. 고환율정책 때문에 국내 물가가 크게 올랐다. 이른바 '키코 사태'로 많은 수출기업이 환차손을 보게 되자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이 시기에 언론은 강 전 장관과 최중경에게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키코(KIKO)란 ‘Knock-In Knock-Out’의 약자로 환율변동에 따른 환차손 위험을 줄이기 위해 수출기업과 은행이 맺는 계약의 일종이다. 약정금액과 약정환율, 환율 상한가와 하한가를 정해 놓고 환율변동에 따라 양 당사자에게 각각 권리가 부여된다. 키코에 따르면 환율이 약정상한을 넘으면 수출기업은 은행에 손해를 보고 외환을 팔게 된다.
결국 최중경은 4개월을 채우지 못한 채 정책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 이후에도 이명박 정권에서 주필리핀 대사와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지내다 지식경제부 장관까지 지냈다.
최근 키코 사태 피해기업들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청산과 관련해 금융적폐의 하나로 키코를 꼽고 있다. 당시 은행과 맺었던 키코가 사실상 사기라고 주장한다.
| ▲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가 1997년 12월3일 IMF 구제금융 합의안에 서명하고 있다. 뒷줄 왼쪽 첫번째가 최중경 당시 재정경제원 금융협력과장, 뒷줄 왼쪽 네번째는 강만수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 앞줄 왼쪽 첫번째는 미셸 캉드쉬 당시 IMF 총재, 앞줄 왼쪽 두번째가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