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생명 상장 이후 주가 승승장구
정문국은 2016년 12월부터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계획에 따라 ING생명의 코스피 상장을 추진했다. 삼성증권과 모건스탠리를 대표주간사로 선정하고 2017년 상반기 안에 상장할 계획을 내놓았다.
2017년 1월 연임이 확정됐는데 기업공개 절차를 차질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MBK파트너스에서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ING생명은 1조1055억 원 규모의 주식 공모를 거쳐 5월11일 코스피에 상장됐다. 주가는 초기에 공모가격 3만3천 원을 밑돌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한화생명,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 주가가 2017년 12월 기준으로도 공모가격을 밑돌고 있어 ING생명 주가도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ING생명 주가는 정문국의 고배당 전략과 높은 재무건전성 등에 힘입어 상승으로 전환했다. 2017년 12월 기준으로 상장 초기보다 40% 가까이 올랐다.
△MBK파트너스의 ING생명 매각 시도 무산
ING생명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2016년 들어 ING생명 매각을 추진하면서 정문국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렸다.
중국계 자본인 JD캐피탈, 타이핑생명, 푸싱그룹 등이 ING생명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 당시 MBK파트너스는 ING생명을 3조 원 이상에 팔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드배치로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냉각되면서 IGN생명의 매각작업도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MBK파트너스는 2016년 말 ING생명의 상장계획을 공식적으로 내놓으면서 매각과 기업공개(IPO)를 함께 추진하는 ‘투트랙전략’을 펼치기로 했다.
△ING생명 사장
2014년 1월 에이스생명 사장으로 일하던 도중 ING생명 사장에 내정됐다. 당시 ING생명을 인수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정문국을 영입했다.
2014년 2월 취임한 뒤 ING생명의 시장점유율 하락세를 돌려세우기 위해 강점인 설계사채널을 강화하기로 했다. 새로운 영업채널을 키우고 고령화에 대응해 보장성보험도 확충하기로 했다.
다만 취임한 지 100일 만에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로 결정하면서 노사갈등을 빚기도 했다. 정문국은 ING생명의 실적악화를 감안하면 희망퇴직이 고육지책이라고 주장했다.
2014년 8월 설계사들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영업을 시작한 지 1~3년이 지나면 성과급을 주는 ‘장기인센티브 제도’를 시행했다. 방카슈랑스(은행 창구에서 보험상품 판매)와 독립법인대리점(GA) 채널도 구축했다.
2014년 11월 ING생명의 모든 상품에 오렌지 혹은 오렌지와 관련된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일관된 브랜드 전략을 통해 고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2015년 들어 설계사 채널을 통한 매출을 2014년보다 10% 이상 늘리고 실적호조를 보이는 방카슈랑스 채널의 영업역량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그해에 기존 종신보험보다 보험료가 최대 25% 저렴한 새 종신보험상품을 내놓는 등 보장성보험 영업을 강화하는 데도 힘썼다.
ING생명은 정문국의 영업전략에 힘입어 실적이 호전되고 있다. 2017년 1~3분기에 순이익 2736억 원을 냈는데 2016년 같은 기간보다 51% 증가했다.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여력을 나타내는 지급여력(RBC)비율도 2017년 9월 기준 501.7%로 집계돼 전체 보험업계 평균 257.2%를 훨씬 웃돌았다.
정문국은 2017년 들어서도 설계사 채널을 강화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2017년 12월 상위 0.1% 설계사를 위한 ‘파트너센터’를 열기도 했다.
| ▲ 정문국 ING생명 사장(오른쪽에서 네번째)이 2017년 12월6일 서울 중구 ING생명 본사에서 열린 '파트너센터' 론칭 기념식에 참여해 기념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
△짧은 에이스생명 사장 시절
2013년 2월 알리안츠생명 사장에서 물러난 뒤 그해 6월 공석이었던 한국에이스생명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알리안츠생명에 이어 에이스생명에서도 첫 한국인 사장이 됐다.
알리안츠생명에서 방카슈랑스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렸고 재무구조도 안정화한 점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에이스생명 노조는 정문국의 선임을 강하게 반대했다.
2014년 1월8일까지 에이스생명 사장으로 일하다가 ING생명 사장으로 내정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6개월 만에 물러난 것 때문에 책임 시비가 일어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정문국이 취임 초기부터 본사인 홍콩 에이스그룹에게 실적압박을 강하게 받아 6개월 만에 물러난 것이라는 풀이를 내놓기도 했다.
△알리안츠생명 임원 시절
2004년 제일생명의 후신인 알리안츠생명에 신채널부문 부사장으로 복귀해 법인영업과 방카슈랑스를 담당했다.
금융기관 8곳과 제휴하고 신채널 마케팅을 적극 펼치면서 알리안츠생명의 방카슈랑스 점유율을 크게 높였다. 이에 힘입어 2007년 1월 알리안츠생명 사장으로 선임됐다. 최초의 한국인 사장이기도 했다.
취임한 뒤 실적이 우수한 설계사를 우대해 관련 조직을 확대하고 종신보험과 보장성보험의 판매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2008년 성과급 도입을 추진하다가 노동조합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노조가 생명보험업계 최장기인 234일 동안 파업하면서 알리안츠생명은 그해 순손실을 봤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2009년 첫 직영 다이렉트지점을 개점하고 독립보험대리점(GA) 영업을 강화하는 등 판매채널 다각화를 추진해 흑자전환했다.
2010년 초 연임에 성공했다. ‘기본에 충실한 경영’ 전략이 알리안츠그룹의 호응을 얻었다. 당시 알리안츠생명은 지급여력(RBC)비율 352.6%로 집계됐는데 국내 최상위권 수준이었다.
2011년 자산관리(WM)서비스센터를 여는 등 고액자산가를 위한 자산관리로 사업다각화를 시도했다. 2012년에는 퇴직연금과 고객관리를 강화했다.
2013년 2월1일 알리안츠생명 사장에서 물러났다. 보험환경이 악화되자 알리안츠그룹에서 비교적 젊은 후임자 이명재 사장으로 세대교체를 한 것으로 추측됐다.
△제일생명 입사 후 인수합병 컨설팅 경력 쌓아
1984년 제일생명 비서실에 평사원으로 들어갔다. 그 뒤 영어 실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비서실장으로 승진했다.
1998년 외환위기가 온 뒤 제일생명 구조조정실에서 매각작업을 준비하다가 매각주간사인 JP모건에서 일하던 미국 금융인 프랭크 빔과 만나 친분을 쌓았다.
프랭크 빔과 손잡고 인수합병 컨설팅회사 허드슨인터내셔널어드바이저를 세운 뒤 한국법인 대표를 맡았다.
당시 능력을 인정받아 AIG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뒤 AIG글로벌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를 맡아 아시아 지역의 인수합병 작업을 전담했다. 국내 보험사들의 매각작업을 주로 맡았다.
AIG생명 상무로 임명된 뒤 개인연금 분야의 방카슈랑스 영업을 총괄하면서 관련부문의 호실적을 이끌어냈다.
| ▲ 정문국 ING생명 사장(오른쪽에서 네번째)이 2017년 5월11일 서울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열린 ING생명의 상장 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