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전과 과제
김지완은 땅에 떨어진 BNK금융지주의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
BNK금융지주는 계획적으로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검찰수사에서 확인되면서 회사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검찰은 2017년 5월1일 BNK금융지주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한 혐의로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과 김일수 전 BNK금융지주 부사장(현 BNK캐피탈 사장)을 구속기소하고 박영봉 전 BNK금융지주 부사장을 포함한 임직원을 불구속기소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금융회사가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범죄인 주가조작을 한 만큼 죄질이 더욱 나쁘다는 비판을 받았다. 엘시티 특혜대출 의혹에 이어진 사건이라 금융회사의 이미지는 한층 크게 훼손됐다.
김지완은 BNK금융그룹의 구조를 정비해 안정하고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BNK금융그룹이 2017년을 ‘투뱅크-원프로세스’의 원년으로 삼은 만큼 김지완은 두 은행의 시너지로 더 큰 성장을 도모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두 은행이 하나의 금융지주회사의 계열사로서 동일한 체계를 갖게 된다면 BNK금융지주 입장에서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두 은행 사이의 불필요한 중복기능을 제거하고 유휴인력과 물적자원을 서로 쉽게 전환할 수 있게 돼 비용측면에서도 유리해진다.
BNK금융그룹은 두 은행의 각 부서별 업무를 표준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2016년 말 조직개편을 통해 각 그룹의 부서 이름 등 조직 구성을 통일했고 세부적 업무 프로세스도 일치시키고 있다. 업무표준화의 핵심인 IT업무의 표준화를 위해 IT본부도 신설했다.
김지완은 BNK금융그룹의 디지털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김지완이 고령의 나이이기 때문에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쫓아갈 수 있냐는 시장의 의구심을 받고 있는 만큼 부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BNK금융그룹은 2016년 3월 핀테크금융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모바일뱅크인 ‘썸뱅크’를 출범해 영업력의 돌파구로 삼았다. BNK금융그룹은 썸뱅크의 업그레이드를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각 핀테크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BNK핀테크발전협의회’를 여러 차례 열어 인공지능(AI)과 전자문서 시스템 도입 등을 논의하고 있다.
김지완은 규모보다 저평가된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역량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지주의 역할을 확대해 글로벌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김지완은 “장부가격이나 실적과 같은 BNK금융의 기업가치와 비교하면 시장의 평가가 매우 낮다”면서 “대손문제가 그 원인인데 정리가 되고 나면 주가가 상승될 수 있는 계기를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완은 지배구조 등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고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해 성장성을 높여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책임과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계열사의 자율경영 체제를 확립해 견제와 균형이 조화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정착해 제대로된 평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완은 BNK금융그룹을 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처럼 세계적 금융기관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포부도 보였다.
산텐데르 은행은 스페인 작은 지방은행에서 출발해 많은 인수합병 과정을 거쳐 20년 만에 세계 5위권 초대형 은행으로 성장했다. 하나의 전산과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했지만 각자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독립된 형태로 운영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김지완은 이를 롤모델로 삼고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을 ‘투뱅크 원프로세스’로 끌고 가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관측됐다.
| ▲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왼쪽)이 2008년12월1일 하나IB증권과 통합 기념행사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
◆ 평가
원만한 성격을 지녔다. 덕분에 넓고 탄탄한 인맥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김지완이 은행 경험은 부족하지만 CEO로서의 경쟁력은 금융권에서 빠지지 않는다고 평가받는다. 1998년 53세의 나이로 부국증권 사장을 시작으로 현대증권을 거쳐 하나대투증권까지 15년 동안 사장을 역임했다. 지금껏 증권가 최장수 CEO 기록으로 ‘직업이 사장’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따뜻한 성품을 지녔다.
하나금융투자를 떠난 지 몇 년이 흐른 뒤에도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며 당시 비서 역할을 했던 직원들을 모아 밥을 사기도 했다.
2008년 외환위기 당시 하나대투증권 사정이 나빠지자 김지완은 “구조조정을 해 직원들을 내보내고 마음이 좋지 않다”며 사장실 규모를 반으로 줄였다. 회사에서 사장에게 제공하는 복지를 거의 다 스스로 없앴다.
공과 사의 구분이 확실한 강직한 성품이다. 김지완의 아들이 홍콩에서 근무를 했을 때 아들과 국제전화를 할 일이 계속 생기자 김지완이 회사서 쓰는 통화료에서 국제전화 요금을 떼어내 따로 청구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김지완은 70세가 넘는 고령이지만 체력이 좋다고 평가받는다. 김지완이 회사를 옮기면 해당 회사 임원이 등산훈련부터 시작한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영업에서 성과를 내려면 체력이 기본이라는 김지완의 철학이 토대가 됐다.
그는 증권가 사장 시절 본사 임원과 부서장을 이끌고 불암산 등반으로 시작해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까지 40여㎞를 종주하는 무박 2일 등산 행사를 매년 했다. 이 코스를 일컫는 ‘불·수·도·북’이라는 말도 생겼다. 김지완은 늘 등반에 앞장서며 젊은이를 능가하는 체력을 과시했다.
하나대투증권 시절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출발해 팔당댐까지 이어진 조깅 코스를 임직원들과 정기적으로 함께 뛰는 것도 즐겼다.
김지완의 집안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경주에서 부유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5학년 때 부산으로 도망치듯 이사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별세로 가세는 더욱 기울었다.
김지완은 가난 속에서 7남매를 키우는 어머니를 보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김지완은 지역명문 부산중학교에서 항상 상위권에 들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부산상고에 진학했다. 전교 60등까지 주어지는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과외교사를 했고 2학년이 되자 취업반에 들어갔다. 그의 꿈은 '은행원'이었다. 빨리 직장을 잡아 집안에 보탬이 되고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업 전 치른 은행 입사시험에서 낙방했다. 김지완은 훗날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그냥 그렇게 상고를 나와 은행에 갔더라면 아마 지점장 정도 하고 직장 생활을 마쳤을 것”이라며 “시험에 떨어진 게 오히려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셈”이라고 회상했다.
김지완은 작은 개인회사에 취직했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저녁에는 사장 자녀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김지완은 고교 동창들보다 2년 늦은 1966년 부산대 무역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친구 12명과 바위처럼 변함없는 우정을 기리자며 '우암회(友巖會)'를 만들었다.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김정복 전 보훈처 장관 등이 우암회 친구들이다.
대학 재학 중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 ▲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임직원, 고객 등 총 306명과 함께 ‘2010년 불수도북(불암·수락·도봉·북한산) 산행’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