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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이동걸 전 KDB산업은행 회장
최석철 기자  esdolsoi@businesspost.co.kr  |  2016-12-16 08: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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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걸 전 KDB산업은행 회장.
◆ 생애

이동걸은 전직 KDB산업은행 회장이다. 한일은행에 입행한 뒤 40여 년 동안 은행과 증권, 캐피탈 등 다양한 금융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아 온 백전노장이다.

1948년 1월1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한일은행에 입사해 40년 이상 은행과 증권업계에서 일했다.

신한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뒤 부행장을 거쳐 굿모닝신한증권(신한금융투자 전신) 사장과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겸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다. 

추진력있는 ‘친박TK' 금융전문가이자 감성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이동걸이 민간출신 금융전문가이기 때문에 정책금융을 잘 다루지 못 한다는 평가와 함께 친박성향을 보인 인사라는 점에서 낙하산 인사라는 평가도 받았다.

2016년 2월 KDB산업은행 회장에 취임했다가 임기를 1년5개월 남겨둔 2017년 9월7일 중도사퇴했다. 

◆ 가족관계

이동재 전 포항시 교육장과 이동건 나남전기 회장이 형이다.

◆ 학력

1966년 경북사대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영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 경력

1970년 한일은행에 입행했다.

1987년 신한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뒤 1988년 신한은행 무역센터지점 지점장을 맡았다.

1992년 신한은행 홍콩현지법인 사장을 지냈다.

1995년 신한은행 인재개발부 부장을 지낸 뒤 다음해 인사부 부장을 역임했다.

1998년 신한은행 이사대우로 승진했고 1999년 신한은행 상무를 지냈다.

2002년 신한은행 부행장을 역임했다. 같은해 신한캐피탈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당시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CRC) 시장에 뛰어들어 상당한 수익을 냈다.

2006년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며 신한금융투자를 업계 최고의 증권사로 만들었다.

2007년 증권업협회 공익이사를 맡았다.

2009년 굿모닝신한증권에서 이름을 바꾼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겸 이사회 의장에 취임했다.

2009년 9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신한금융투자 부회장을 지냈다.

2012년 벌크선업체인 신성해운 회장에 취임했다.

2013년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에서 석좌교수를 지냈다.

2016년 2월 KDB산업은행 회장에 취임했다.

2017년 9월 KDB산업은행 회장에서 물러났다. 

◆ 사건/사고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 시절인 2008년 굿모닝신한증권는 업계 최초로 벨라루스에 진출했고 라오스, 카자흐스탄으로도 발을 넓히며 증권사들의 해외진출에 가속도를 붙였다. 이동걸은 “남들이 가지 않은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지 3년 만인 2009년 굿모닝신한증권은 빅4 자리에 올랐다. 주주들을 설득해 자기자본을 5천억 원 이상으로 늘렸다. 이전까지 굿모닝신한증권은 굿모닝증권과 신한증권이 합병한 뒤 업계 10위에 머물러 있었다.

2009년 수필가로 정식 등단해 주목받았다. 이동걸은 수필전문지 ‘에세이플러스’가 주최한 제39회 수필공모에 당선돼 7월호에 당선작 ‘결혼 33주년’을 게재했다.

대학시절 교내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했고 CEO재직 중에도 임직원들에게 직접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는 등 감성경영으로 호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캠프에서 금융인모임을 이끌었다. 2012년 12월20일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과 김진만 전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등 전현직 금융인 1365명이 새누리당 당사에 모여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동걸은 이 자리에서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 온 금융인들이 현재의 어려운 경제난국을 극복하고 미래성장을 이끌 지도자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KB금융지주 등 금융권 인사 때마다 유력후보로 물망에 올랐고 매번 ‘낙하산 인사’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2013년 11월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후보로 나섰지만 회장 선출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이 일었다. 이동걸은 회장추천위원회를 통한 회장 선출방식은 당시 회장이었던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에게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라며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동걸은 “한 회장은 3년 이상 회추위원들과 소통했으나 다른 후보들은 30분짜리 인터뷰 기회만 얻었다”며 “신한금융 회장 선임과정에 절차의 공정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회장 면접을 보이콧하며 후보에서 물러났고 한 회장이 회장추천위원 5명의 표를 모두 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2014년 KB금융지주 회장 1차후보 7명 안에 들었지만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선정한 면접대상자 4명 안에 드는 데 실패했다. 금융권 안팎에서 유력후보로 거명됐던 터라 2차후보에 포함되지 않은 점이 뜻밖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는 이동걸이 4인 후보에 포함될 경우 ‘관피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 금융권의 해석이었다. KB국민은행 노조는 1차 후보가 결정되기 전부터 이동걸에게 편지를 보내 KB금융 차기 회장 인선과정에 나서지 말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2016년 2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이동걸을 차기 KDB산업은행 회장으로 임명해줄 것을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선거지원을 한 대가로 받는 ‘보은인사’, ‘낙하산인사’라는 비판이 거셌다. 산업은행 노동조합은 이동걸의 회장내정을 두고 ‘전형적 비전문가형 낙하산 인사’라며 즉각 철회할 것을 금융위원회에 요청했다.

이동걸은 금융권의 대표적인 친박계 ‘대구경북(TK)' 인사로 손꼽힌다. 이동걸은 영남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으로 2013년부터 영남대에서 경제학과 특임 석좌교수를 지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영남대학교 이사를 역임한 적이 있다.

KDB산업은행 회장에 취임했지만 여러 과제에 직면했다.

우선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을 강도높게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조선과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이 글로벌 경기불안 장기화로 상시적 위기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2015년에만 5조 원이 넘는 적자를 봤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우조선해양과 4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고도 부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STX조선해양이 산업은행의 가장 큰 부담이다.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의 경영정상화는 2017년까지 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현대상선과 동부그룹, 동국제강과 한진중공업 등 산업은행이 주도적으로 처리해야 할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이 밀려있다.

이동걸은 국내 산업계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형 인수합병을 신속하면서도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느냐의 시험대에 올라있는 셈이다.

산업은행은 정부가 2015년 발표한 정책금융기관 역할 재정립 방안에 따라 부여받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산업은행은 지분 15% 이상을 보유한 118개사 가운데 91개 기업을 3년 안에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대상 대부분이 중소벤처기업 지분이지만 한국항공우주산업(지분율 26.75%)과 대우조선(31.46%), 한국GM(17.02%) 등 대기업들도 적지 않다.

2016년 3월 산업은행은 현대상선과 △용선료 조정 △채무재조정 △해운동맹(얼라이언스) 가입 등을 조건으로 하는 채권단 조건부 자율협약을 맺었다. 현대상선은 6월 용선료 인하 협상을 마무리한 데 이어 12월 해운동맹 2M과 협력관계를 맺었다.

일각에서는 해운동맹에 가입한 것이라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현대상선과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의 사업모델 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5월 이동걸은 노조의 동의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산업은행 노조는 “이 회장이 직원과 소통하고 노동조합과 상생하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어기고 날치기 이사회를 통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며 “직원들의 민심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이동걸은 “4급 이상 직원 1650명을 대상으로 동의서를 받았으며 81%가 성과연봉제 도입에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산업은행 노조는 성과연봉제 이사회 의결과 관련해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8월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한진해운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한진해운이 현대상선보다 덩치가 훨씬 컸기 때문에 그 원인이 주목됐다.

이동걸은 “한진해운에 신규자금 지원을 연장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며 “조양호 한진해운 회장이 근본적인 자구책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조양호 한진해운 회장이 최순실씨를 비롯한 비선실세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난 사실이 밝혀진 뒤 한진해운 법정관리에도 비선실세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동걸은 “대우조선과 한진해운에 대해 기본적으로 국민의 혈세를 더는 쓰지 않겠다는 큰 원칙을 동일하게 적용했다”면서 “한진해운을 애초에 죽이려고 했다면 마지막에 회장을 만나고 협상에 나서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물류대란이 나타났다.

이동걸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에 물류대란이 우려돼 세 차례에 걸쳐 대책회의를 했다”며 “한진해운이 첫 회의에선 비상계획 수립에 찬성했지만 두번째 회의부터 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한진해운측이 화주의 이름이나 각종 개인정보 등을 건네주지 않아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양호 한진해운 회장은 “중간에 소통이 잘못됐는지 몰라도 해양수산부와 금융위원회에 물류난이 일어난다고 분명히 설명했다”고 반박했다.

2016년 7월 대우건설 사장에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 내정됐다는 말이 업계에 돌면서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다. 박 사장이 두터운 정치권 인맥을 갖고 있는 데다 대우건설 사장 선임과정이 계속 미뤄지면서 재공모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지분 50.75%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8월 박 사장은 대우건설 사장에 올랐다.

대우건설 노조는 “산업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투명한 절차없이 밀실인사를 단행했다”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대우건설 사장 선임과정을 파행으로 몰고 간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2016년 11월 대우조선해양에 1조8천억 원 규모의 자본확충 지원을 결정했다. 이동걸은 대우조선해양이 2017년에 경영정상화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동걸이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 등 조선업 부실지원과 관련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도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에는 수조 원규모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한진해운에는 지원하지 않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완전 자본잠식상태로 2017년 초 상장폐지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걸은 “대우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국가경제에 57조~60조 원 정도의 영향을 미친다”며 “경제의 한 부분으로 볼 때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2016년 12월 산업은행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탈퇴했다. 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진 뒤 전경련을 해체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과 IBK기업은행도 탈퇴했고 시중은행들도 전경련 탈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상훈

2007년 한국증권선물거래소(KRX) 선정 ‘올해의 증권선물인상‘을 수상했다.

◆ 어록

“기본적으로 채권단은 개별 회상의 외상값을 갚는 데 공적자금을 투입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주주로부터 내 팔을 자르겠다는 결단이 없었는데 어떻게 지원을 해줄 수 있겠냐.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당시 한진해운은 채권단의 추가 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2016/10/04, 조선해운업 국정감사 자리에서 현대상선과 달리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유를 설명하며)

“한진해운을 살리면 들어갈 수 있는 공적자금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 순간이라도 결단을 내린 것에 평가를 받아야 한다. 구조조정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2016/10/04, 조선해운업 국정감사에서)

“긴 기간은 아니었는데 10년은 지난 것 같습니다.”(2016/09/06,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산업은행 회장에 오른 지 6개월 동안의 소감을 묻자)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제때 바꾸지 못하면 무너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2016/08/19, 2016년 상반기 경영설명회에서)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경쟁력 강화와 산업구조 개선을 지원하고 국가경제의 흐름이 선순환 되도록 금융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해야겠다.” “자구노력이 없는 기업과 한계기업에는 과감한 결단을 보여주겠다.” “매 순간 냉철하게,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없도록 하라.” (2016/02/12, 산업은행 회장 취임식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보고 우리나라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데 역점을 두겠다.” “기업현황을 먼저 파악하고 정리할 부분을 빨리 정리하겠다.” (2016/02/04, 차기 산업은행 회장에 내정된 뒤)

“금융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에 비해 떨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금융이 낙후했다고 낙담하지만 나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해석한다.” “출신을 따지기보다 흐트러진 조직을 추스를 수 있는 좋은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회장은 전체적으로 외연을 넓히고 비은행 분야를 육성하는 것이 역할이고 은행장은 영업을 책임져야 한다.” (2014/10/11, KB금융지주 회장 후보에 올랐을 당시)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여성리더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부패한 사회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했다.” (2013/01/0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대선 당시 박근헤 후보를 지지한 이유에 대해)

“40여 년을 금융인으로서 경제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일상의 혼돈이 곳곳에 남아 감성의 틀을 정리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 일이었다. 내 인생에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야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2009/06/24, 수필가로 등단한 소감으로)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꿈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만인이 꿈을 꾸면 얼마든지 현실로 이뤄낼 수 있다. 신념과 미래를 향한 비전을 함께 가진다면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2008/05/16, 서울 명지대학교 강연회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될 경우 증권시장은 다수의 기업이 시장을 분할해 가지는 군웅할거 시대에서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과점 체제로 바뀔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의 진정한 수혜자가 되기 위해 경쟁업체를 압도하는 상품개발능력과 마케팅 역량, 그리고 강력한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 (2006/02/22,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에 취임하며)

◆ 평가

열정과 추진력 있는 CEO로 평가받는다. 스스로 놀고먹는 것을 못 견디는 성격이라고 얘기한다.

평소 “12라운드에 힘이 남아있는 권투 선수는 승패를 떠나 패자다. 11라운드까지 혼신의 에너지를 쏟아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원 모두가 사장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정을 보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통, 고객감동, 나눔과 배려’를 강조한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KDB산업은행 본점에는 시민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글귀가 걸려있다. 이 글귀는 매달 바뀌고 있는데 이동걸의 감성경영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한금융투자 CEO로 재직 때 새내기 사원들에게 '인디언 기우제' 얘기를 들려주며 "꿈을 크게 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며 소통하는 등 친근한 증권사 문화를 만드는 데 힘썼다. 전국의 직원들에게 “존경하는 사장님, 힘내시라”는 응원메일을 받고 이를 따로 스크랩해뒀다고 한다.

산업은행 회장 취임식장에 이메일 주소(dglee@kdb.co.kr)가 써진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이동걸은 “이 조직에서 아버지 같은 사람인데 자식들이 속병이 있으면 아버지가 해결해야 한다”며 “사적인 일이든 조직과 관련된 아이디어든 이메일을 보내달라. 일주일 안에 답을 주고 보안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굿모닝증권과 신한증권의 합병한 굿모닝신한증권을 화학적으로 완결하고 회사를 대형사로 키우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금융위원회는 이동걸을 산업은행 회장에 내정하며 “이동걸은 은행과 증권 등 여러 금융분야에서 쌓은 투자금융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산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하고 실물경제의 활력도 적극 뒷받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을 실질적으로 맡아 진행한 경험이 없고 정책금융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전무한 것이 약점으로 지목됐다. 40년 이상 금융권 경력을 쌓았지만 한일은행과 신한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에서만 근무했다.

◆ 기타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경영철학을 내세웠다. 신한금융투자에 재직할 당시 와인펀드나 아트펀드 같은 개별상품을 비롯해 낯선 지역인 라오스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에 네트워크를 확대한 점 등은 이 같은 경영철학의 결과물이었다.

대학시절에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다. 학보사 편집장도 지냈는데 이 경력으로 한일은행 노조의 노보(노조신문) 제작을 맡기도 했다. 이후 금융노조로 자리를 옮겨 금융노조 소식지를 발행하는 업무를 담당하면서 28세에 금융노조 간부(기획조정실장)을 맡기도 했다.

홍보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인터뷰 문안이나 인사말을 작성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퇴근 후 틈틈이 책 속에서 좋은 문구나 글귀를 찾아뒀다.

홍기택 전임 KDB산업은행 회장과 유사한 점이 많다. 정책금융기관을 거치지 않은 ‘비전문가’라는 점과 영남대 특임석좌교수를 지낸 교수 출신, 박근혜 정부 금융권 실세로 취임 당시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을 겪은 점 등이 유사하다.

◆ 평가

열정과 추진력 있는 CEO로 평가받는다. 스스로 놀고먹는 것을 못 견디는 성격이라고 얘기한다.

평소 “12라운드에 힘이 남아있는 권투 선수는 승패를 떠나 패자다. 11라운드까지 혼신의 에너지를 쏟아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원 모두가 사장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정을 보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통, 고객감동, 나눔과 배려’를 강조한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KDB산업은행 본점에는 시민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글귀가 걸려있다. 이 글귀는 매달 바뀌고 있는데 이동걸의 감성경영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한금융투자 CEO로 재직 때 새내기 사원들에게 '인디언 기우제' 얘기를 들려주며 "꿈을 크게 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며 소통하는 등 친근한 증권사 문화를 만드는 데 힘썼다. 전국의 직원들에게 “존경하는 사장님, 힘내시라”는 응원메일을 받고 이를 따로 스크랩해뒀다고 한다.

산업은행 회장 취임식장에 이메일 주소(dglee@kdb.co.kr)가 써진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이동걸은 “이 조직에서 아버지 같은 사람인데 자식들이 속병이 있으면 아버지가 해결해야 한다”며 “사적인 일이든 조직과 관련된 아이디어든 이메일을 보내달라. 일주일 안에 답을 주고 보안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굿모닝증권과 신한증권의 합병한 굿모닝신한증권을 화학적으로 완결하고 회사를 대형사로 키우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금융위원회는 이동걸을 산업은행 회장에 내정하며 “이동걸은 은행과 증권 등 여러 금융분야에서 쌓은 투자금융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산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하고 실물경제의 활력도 적극 뒷받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을 실질적으로 맡아 진행한 경험이 없고 정책금융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전무한 것이 약점으로 지목됐다. 40년 이상 금융권 경력을 쌓았지만 한일은행과 신한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에서만 근무했다.

◆ 사건/사고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 시절인 2008년 굿모닝신한증권는 업계 최초로 벨라루스에 진출했고 라오스, 카자흐스탄으로도 발을 넓히며 증권사들의 해외진출에 가속도를 붙였다. 이동걸은 “남들이 가지 않은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지 3년 만인 2009년 굿모닝신한증권은 빅4 자리에 올랐다. 주주들을 설득해 자기자본을 5천억 원 이상으로 늘렸다. 이전까지 굿모닝신한증권은 굿모닝증권과 신한증권이 합병한 뒤 업계 10위에 머물러 있었다.

2009년 수필가로 정식 등단해 주목받았다. 이동걸은 수필전문지 ‘에세이플러스’가 주최한 제39회 수필공모에 당선돼 7월호에 당선작 ‘결혼 33주년’을 게재했다.

대학시절 교내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했고 CEO재직 중에도 임직원들에게 직접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는 등 감성경영으로 호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캠프에서 금융인모임을 이끌었다. 2012년 12월20일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과 김진만 전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등 전현직 금융인 1365명이 새누리당 당사에 모여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동걸은 이 자리에서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 온 금융인들이 현재의 어려운 경제난국을 극복하고 미래성장을 이끌 지도자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KB금융지주 등 금융권 인사 때마다 유력후보로 물망에 올랐고 매번 ‘낙하산 인사’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2013년 11월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후보로 나섰지만 회장 선출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이 일었다. 이동걸은 회장추천위원회를 통한 회장 선출방식은 당시 회장이었던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에게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라며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동걸은 “한 회장은 3년 이상 회추위원들과 소통했으나 다른 후보들은 30분짜리 인터뷰 기회만 얻었다”며 “신한금융 회장 선임과정에 절차의 공정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회장 면접을 보이콧하며 후보에서 물러났고 한 회장이 회장추천위원 5명의 표를 모두 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2014년 KB금융지주 회장 1차후보 7명 안에 들었지만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선정한 면접대상자 4명 안에 드는 데 실패했다. 금융권 안팎에서 유력후보로 거명됐던 터라 2차후보에 포함되지 않은 점이 뜻밖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는 이동걸이 4인 후보에 포함될 경우 ‘관피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 금융권의 해석이었다. KB국민은행 노조는 1차 후보가 결정되기 전부터 이동걸에게 편지를 보내 KB금융 차기 회장 인선과정에 나서지 말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2016년 2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이동걸을 차기 KDB산업은행 회장으로 임명해줄 것을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선거지원을 한 대가로 받는 ‘보은인사’, ‘낙하산인사’라는 비판이 거셌다. 산업은행 노동조합은 이동걸의 회장내정을 두고 ‘전형적 비전문가형 낙하산 인사’라며 즉각 철회할 것을 금융위원회에 요청했다.

이동걸은 금융권의 대표적인 친박계 ‘대구경북(TK)' 인사로 손꼽힌다. 이동걸은 영남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으로 2013년부터 영남대에서 경제학과 특임 석좌교수를 지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영남대학교 이사를 역임한 적이 있다.

KDB산업은행 회장에 취임했지만 여러 과제에 직면했다.

우선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을 강도높게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조선과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이 글로벌 경기불안 장기화로 상시적 위기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2015년에만 5조 원이 넘는 적자를 봤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우조선해양과 4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고도 부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STX조선해양이 산업은행의 가장 큰 부담이다.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의 경영정상화는 2017년까지 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현대상선과 동부그룹, 동국제강과 한진중공업 등 산업은행이 주도적으로 처리해야 할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이 밀려있다.

이동걸은 국내 산업계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형 인수합병을 신속하면서도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느냐의 시험대에 올라있는 셈이다.

산업은행은 정부가 2015년 발표한 정책금융기관 역할 재정립 방안에 따라 부여받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산업은행은 지분 15% 이상을 보유한 118개사 가운데 91개 기업을 3년 안에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대상 대부분이 중소벤처기업 지분이지만 한국항공우주산업(지분율 26.75%)과 대우조선(31.46%), 한국GM(17.02%) 등 대기업들도 적지 않다.

2016년 3월 산업은행은 현대상선과 △용선료 조정 △채무재조정 △해운동맹(얼라이언스) 가입 등을 조건으로 하는 채권단 조건부 자율협약을 맺었다. 현대상선은 6월 용선료 인하 협상을 마무리한 데 이어 12월 해운동맹 2M과 협력관계를 맺었다.

일각에서는 해운동맹에 가입한 것이라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현대상선과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의 사업모델 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5월 이동걸은 노조의 동의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산업은행 노조는 “이 회장이 직원과 소통하고 노동조합과 상생하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어기고 날치기 이사회를 통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며 “직원들의 민심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이동걸은 “4급 이상 직원 1650명을 대상으로 동의서를 받았으며 81%가 성과연봉제 도입에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산업은행 노조는 성과연봉제 이사회 의결과 관련해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8월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한진해운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한진해운이 현대상선보다 덩치가 훨씬 컸기 때문에 그 원인이 주목됐다.

이동걸은 “한진해운에 신규자금 지원을 연장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며 “조양호 한진해운 회장이 근본적인 자구책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조양호 한진해운 회장이 최순실씨를 비롯한 비선실세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난 사실이 밝혀진 뒤 한진해운 법정관리에도 비선실세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동걸은 “대우조선과 한진해운에 대해 기본적으로 국민의 혈세를 더는 쓰지 않겠다는 큰 원칙을 동일하게 적용했다”면서 “한진해운을 애초에 죽이려고 했다면 마지막에 회장을 만나고 협상에 나서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물류대란이 나타났다.

이동걸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에 물류대란이 우려돼 세 차례에 걸쳐 대책회의를 했다”며 “한진해운이 첫 회의에선 비상계획 수립에 찬성했지만 두번째 회의부터 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한진해운측이 화주의 이름이나 각종 개인정보 등을 건네주지 않아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양호 한진해운 회장은 “중간에 소통이 잘못됐는지 몰라도 해양수산부와 금융위원회에 물류난이 일어난다고 분명히 설명했다”고 반박했다.

2016년 7월 대우건설 사장에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 내정됐다는 말이 업계에 돌면서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다. 박 사장이 두터운 정치권 인맥을 갖고 있는 데다 대우건설 사장 선임과정이 계속 미뤄지면서 재공모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지분 50.75%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8월 박 사장은 대우건설 사장에 올랐다.

대우건설 노조는 “산업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투명한 절차없이 밀실인사를 단행했다”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대우건설 사장 선임과정을 파행으로 몰고 간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2016년 11월 대우조선해양에 1조8천억 원 규모의 자본확충 지원을 결정했다. 이동걸은 대우조선해양이 2017년에 경영정상화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동걸이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 등 조선업 부실지원과 관련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도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에는 수조 원규모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한진해운에는 지원하지 않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완전 자본잠식상태로 2017년 초 상장폐지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걸은 “대우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국가경제에 57조~60조 원 정도의 영향을 미친다”며 “경제의 한 부분으로 볼 때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2016년 12월 산업은행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탈퇴했다. 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진 뒤 전경련을 해체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과 IBK기업은행도 탈퇴했고 시중은행들도 전경련 탈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경력

1970년 한일은행에 입행했다.

1987년 신한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뒤 1988년 신한은행 무역센터지점 지점장을 맡았다.

1992년 신한은행 홍콩현지법인 사장을 지냈다.

1995년 신한은행 인재개발부 부장을 지낸 뒤 다음해 인사부 부장을 역임했다.

1998년 신한은행 이사대우로 승진했고 1999년 신한은행 상무를 지냈다.

2002년 신한은행 부행장을 역임했다. 같은해 신한캐피탈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당시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CRC) 시장에 뛰어들어 상당한 수익을 냈다.

2006년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며 신한금융투자를 업계 최고의 증권사로 만들었다.

2007년 증권업협회 공익이사를 맡았다.

2009년 굿모닝신한증권에서 이름을 바꾼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겸 이사회 의장에 취임했다.

2009년 9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신한금융투자 부회장을 지냈다.

2012년 벌크선업체인 신성해운 회장에 취임했다.

2013년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에서 석좌교수를 지냈다.

2016년 2월 KDB산업은행 회장에 취임했다.

2017년 9월 KDB산업은행 회장에서 물러났다. 

◆ 학력

1966년 경북사대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영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이동재 전 포항시 교육장과 이동건 나남전기 회장이 형이다.

◆ 상훈

2007년 한국증권선물거래소(KRX) 선정 ‘올해의 증권선물인상‘을 수상했다.


◆ 어록

“기본적으로 채권단은 개별 회상의 외상값을 갚는 데 공적자금을 투입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주주로부터 내 팔을 자르겠다는 결단이 없었는데 어떻게 지원을 해줄 수 있겠냐.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당시 한진해운은 채권단의 추가 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2016/10/04, 조선해운업 국정감사 자리에서 현대상선과 달리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유를 설명하며)

“한진해운을 살리면 들어갈 수 있는 공적자금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 순간이라도 결단을 내린 것에 평가를 받아야 한다. 구조조정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2016/10/04, 조선해운업 국정감사에서)

“긴 기간은 아니었는데 10년은 지난 것 같습니다.”(2016/09/06,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산업은행 회장에 오른 지 6개월 동안의 소감을 묻자)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제때 바꾸지 못하면 무너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2016/08/19, 2016년 상반기 경영설명회에서)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경쟁력 강화와 산업구조 개선을 지원하고 국가경제의 흐름이 선순환 되도록 금융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해야겠다.” “자구노력이 없는 기업과 한계기업에는 과감한 결단을 보여주겠다.” “매 순간 냉철하게,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없도록 하라.” (2016/02/12, 산업은행 회장 취임식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보고 우리나라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데 역점을 두겠다.” “기업현황을 먼저 파악하고 정리할 부분을 빨리 정리하겠다.” (2016/02/04, 차기 산업은행 회장에 내정된 뒤)

“금융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에 비해 떨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금융이 낙후했다고 낙담하지만 나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해석한다.” “출신을 따지기보다 흐트러진 조직을 추스를 수 있는 좋은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회장은 전체적으로 외연을 넓히고 비은행 분야를 육성하는 것이 역할이고 은행장은 영업을 책임져야 한다.” (2014/10/11, KB금융지주 회장 후보에 올랐을 당시)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여성리더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부패한 사회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했다.” (2013/01/0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대선 당시 박근헤 후보를 지지한 이유에 대해)

“40여 년을 금융인으로서 경제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일상의 혼돈이 곳곳에 남아 감성의 틀을 정리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 일이었다. 내 인생에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야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2009/06/24, 수필가로 등단한 소감으로)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꿈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만인이 꿈을 꾸면 얼마든지 현실로 이뤄낼 수 있다. 신념과 미래를 향한 비전을 함께 가진다면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2008/05/16, 서울 명지대학교 강연회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될 경우 증권시장은 다수의 기업이 시장을 분할해 가지는 군웅할거 시대에서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과점 체제로 바뀔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의 진정한 수혜자가 되기 위해 경쟁업체를 압도하는 상품개발능력과 마케팅 역량, 그리고 강력한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 (2006/02/22,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에 취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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