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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조석래 효성 대표이사
남희헌 김디모데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  |  2016-11-29 09: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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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래 효성 대표이사.
◆ 생애

조석래는 효성 대표이사다.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회장의 장남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지낸 재계 원로다.

1935년 11월19일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 화학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효성을 동생들과 나눠 물려받은 뒤 회장으로 35년 동안 재임하며 효성그룹을 대기업집단으로 키워냈다.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한일경제협회 회장 등 대외활동 역시 왕성하다.

현재 횡령, 배임,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건강이 좋지 않다.

◆ 가족관계

아버지는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명예회장이다.

조 창업주는 경남 함안 대지주 집안출신이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삼성물산을 창업할 때 사업자금을 빌려주면서 동업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약 10년 뒤인 1962년 9월 동업관계를 청산하고 효성물산을 차려 독자적으로 사업에 나섰다.

효성물산은 1962년 조선제분을 인수하고 1966년 나일론 원사 제조기업 동양나이론(주)을 설립해 1970년 한일나이론과 합병했다.

1977년 상호를 효성중공업으로 변경했으며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을 인수하는 등 그룹 외형을 키웠다.

조 창업주는 15살 때 진주 명문가 출신의 하정옥과 결혼해 장남 조석래를 포함해 3남2녀를 뒀다.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이 동생이다. 조양래는 홍긍식 전 변호사협회장의 딸인 홍문자 여사와 결혼해 2남2녀를 두었다.

조양래의 장남은 조현식 한국타이어 지주부문 사장이며 막내아들 조현범 한국타이어부문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3녀 이수연과 결혼했다.

막내동생은 조욱래 DSDL(구 동성개발) 회장으로 김종대 전 농림부 장관의 딸인 김은주와 결혼했다.

조석래는 32세에 송인상 전 재무장관의 셋째 딸 송광자와 결혼해 슬하에 현준, 현문, 현상 3형제를 두었다.

큰아들 조현준은 효성그룹 회장으로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의 막내딸 이미경과 결혼했다.

둘째아들 조현문은 효성 부사장을 지내다 형제의 난을 일으키고 효성을 그만뒀다. 조현문은 이부식 전 해운항만청장의 장녀 이여진과 결혼했다.

막내아들 조현상 효성 사장은 행남자기 김용주 회장의 사촌이자 국내최대 특장차 제조업체인 광림의 김여송 대표의 딸인 비올리스트 김유영과 결혼했다.

◆ 학력

군북국민학교를 다니다가 5학년 때 상경해 재동국민학교로 전학했다.

재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교를 거쳐 1951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1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55년 일본 히비야고등학교를 나왔다.

1959년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했다.

1966년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 화학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와세다대학교 공학 명예박사, 2013년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 공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 경력

1966년 2월 미국에서 돌아와 기업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동양나이론 울산공장 건설을 주도했으며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했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1975년 한영중공업을 인수해 효성중공업을 설립해 국산 산업기계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석유화학과 정보통신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81년 효성중공업 회장으로 취임하며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1983년 6월 24개에 이르던 계열사를 합병, 매각, 청산 등을 통해 8개로 정리했다. 섬유는 동양나이론(현 효성 섬유PG), 중공업은 효성중공업, 무역부문은 효성물산을 중심으로 통합한 것이다.

1996년 6월 21세기위원회와 제2창업준비위원회를 발족한 데 이어 이듬해 전사 차원에서 혁신경영을 선포했다.

1997년 12월 효성그룹의 전 조직을 퍼포먼스그룹(PG) 체제로 바꾸고 책임 경영체제를 도입했다.

1998년 11월 효성T&C,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물산 등 4개 주력계열사를 합병하고 비핵심 계열사 및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효성은 국내 최초로 자체개발한 스판덱스사업을 중국, 브라질, 터키, 베트남 등으로 확대해 2010년부터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달성했다.

자동차 보강재로 사용되는 타이어코드사업도 전 세계 점유율 45%를 차지해 독보적인 시장지배력을 확보했다.

2011년 국내 기업 최초로 '꿈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고강도 소재인 탄소섬유를 개발했다. 2013년 세계 최초로 친환경 고분자 신소재인 '폴리케톤'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2016년 3월18일 효성 등기임원에 재선임됐다.

2016년 12월 29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대표이사직은 유지한다.

◆ 사건/사고

장남 조현준 회장과 핵심임원 등 4명과 함께 8천억 원대 횡령·배임·조세포탈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2003년부터 10여여년 동안 8900억 원의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 1237억 원을 포탈하고, 2007~2008년 ㈜효성의 회계처리를 조작해 주주 배당금 500억 원을 불법으로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임직원이나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수천억 원대의 효성과 카프로의 주식을 사고팔아 1318억 원의 주식 양도차익을 얻고 소득세 268억 원을 포탈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밖에 해외 법인 자금 690억 원을 횡령해 개인 빚이나 차명으로 소유한 회사의 채무 변제에 쓰고 페이퍼컴퍼니가 효성 싱가포르 법인에 갚아야 할 채무를 전액 면제토록 지시해 회사에 233억 원의 손실을 끼친 배임혐의도 있다.

2014년 7월 금융감독원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분식회계 혐의로 효성에 대해 과징금 20억 원을 부과하고 대표이사인 조석래와 이상운 부회장 등 2명에게 해임권고 조처를 내렸다.

2015년 1월 계열사 갤럭시아디바이스를 사재 9억 원을 동원해 인수했다. 5월에도 갤럭시아디스플레이를 완전감자 후 유상증자하는 방식으로 204억 원에 매입했다. 7월 갤럭시아디바이스가 갤럭시아디스플레이를 흡수합병해 하나의 회사가 됐다. 조석래가 장남 조현준이 거느린 갤럭시아소그룹에 속한 부실 회사를 떠안아 도움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조석래가 회사를 인수한 뒤 두 회사의 모회사인 갤럭시아컴즈는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16년 1월15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3년, 벌금 1365억 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재판부가 건강 상태를 고려해 법정구속은 면했다. 검찰이 구형한 10년형보다 형량이 낮은 것은 배임·횡령과 상법 위반에 대해서 무죄로 판단되고 조세포탈 혐의만 인정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부실자산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1980년대부터 2012년까지 조세포탈과 회계분식을 반복한 것은 그릇된 이윤 추구의 한 단면”이라며 “효성에 대한 경영권 및 지배권 유지 강화 수단임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기업 총수이자 전경련 회장을 지낸 조 회장이 경제계에서 지닌 위치에 비춰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밝혔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음에도 2016년 3월18일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에 재선임돼 논란이 일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효성그룹이 조석래 회장 일가의 재선임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고 개선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2016년 5월30일 금융감독원이 조석래의 조세회피 혐의를 추가로 발견했다. 조석래는 효성이 1999~2000년 발행한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 28억 원을 세 아들 이름으로 사들였다가 되팔아 19억 원의 차익을 남겼으나 지분변동 사실을 공시하지 않았고 양도소득세도 내지 않았다.

2016년 11월30일 항소심이 재개됐다. 다음공판은 2017년 1월 18일이다. 

2016년 2월16일 차명주식 양도에 따른 포탈세액 산정의 법률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 조항은 1심에서 조석래 양도소득세 포탈세액을 115억 원으로 계산한 근거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을 받아들일 경우 포탈세액이 달라져 항소심 양형 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4월8일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패소했다.

효성그룹은 2016년 7월22일 증권선물위원회의 조석래 해임 권고 조치 취소 소송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분식회계 기간이 길고 규모도 거액”이라며 책임을 져야한다고 판단했다.

◆ 상훈

2009년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에 선정됐다.

1994년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다.

1989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1976년 공장새마을운동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1974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72년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71년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 어록

“우리는 ICT기술의 발전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변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2016/11/03, 효성 50주년 기념사)

“부회장과 임직원들은 회사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뿐이다. 부디 선처해주길 바란다.” (2015/11/09, 조세포탈 1심 검찰 구형을 앞두고 최후 진술에서)

“미래성장동력인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젊은 인재들에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경제활성화에 앞장서겠다.” (2015/10/29, 청년희망펀드에 사재 16억 원을 기부하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당시 기업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며 개인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 (2014/06/16, 서울중앙지법 첫 공판에서 변호인단을 통해)

“화학사업도 국내를 벗어나 글로벌 회사들과 맞설 수 있는 수준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당장 대책을 세우세요.”(2013/07, (주)효성 3분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아들들이 사업을 잘하면 주가가 그렇게 떨어지겠나.”(2013/04/25, 한일경제인회의 기자회견 직후 후계구도 관련 질문에 대해)

“한·일 양국이 굳건한 경제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해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야 한다.”(2013/04/24,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경제인회의에서)

“강한 기업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기업이 생존하는 것이다.”(2013/01, 효성 신년사에서)

“옛날 일을 자꾸 들추어내면 사실 답이 없다. 우리 경제가 짧은 시간에 성장하다보니 그동안 부작용이 있었다. 시골에 옛날에 땅 좀 샀다고 나중에 총리가 못 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다 들추면 국민 중에 제대로 된 사람 없다.” (2007/07/25, 제주 신라호텔 전경련 주최CEO 하계 포럼 '미래 한국비전과 차기 지도자에게 드리는 제언' 강연에서)

◆ 평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신중함과 숫자까지 하나하나 챙기는 공학도 출신다운 꼼꼼함.” 조석래 회장에 대한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보수적인 명문가의 장남답게 신중하고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경영인으로서 진퇴를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결단력도 지녔다. 이런 면모는 경영권을 물려받아 효성중공업 회장에 취임한 뒤 24개에 이르던 계열사들을 8개로 줄인 데서 확인된다.

1998년에도 주력계열사들을 합병하고 사업부문을 통합하는 등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리수를 뒀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효성물산은 무리한 수출로  1조 원대의 적자를 내는 등 파산위기를 맞았다.

효성그룹은 계열사 간 합병과 자산매각 등 자구노력을 통해 회사를 살려냈다. 효성물산은 부실기업이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자구노력으로 회생한 대표적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효성그룹은 효성물산이 낸 1조 원대의 부실을 10여 년에 걸쳐 나눠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정리해나갔다. 2013년 5월 국세청이 이런 정황을 포착하고 특별세무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조석래는 물론 장남 조현준 회장까지 검찰조사를 받았고 수천억 원대의 회삿돈 횡령 및 배임, 세금포탈 등의 혐의가 드러났다.

변호인단을 통해 회사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했으나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자식들의 사이가 좋지 않는 점도 고민거리다.

평소 입버릇처럼 “향후 경영권은 능력있는 자식에게 물려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발언은 효성그룹의 경영권을 장자 승계방식을 따라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조석래도 두 동생들인 조양래, 조욱래 회장과 함께 경영권을 무리없이 나눠 물려받았다.

하지만 조석래의 세 아들은 그렇지 않다. 차남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은 경영에 참여했으나 아버지 조석래는 물론 다른 형제들과도 갈등을 빚은 끝에 2013년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조현문씨는 보유하고 있던 지분까지 모두 팔고 효성가와 사실상 연을 끊어버렸다. 그는 또 형인 조현준 회장과 동생인 조현상 사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형제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조현문씨의 소송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우병우는 변호사시절 조현문의 효성 고발을 주도했고 청와대 입각 후 조사부에 배당된 해당 사건을 특수4부로 재배당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장남 조현준 회장과 3남 조현상씨도 경쟁적으로 효성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효성은 "형제가 상의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재계에서 알려진 ‘기술 중시’ 경영인이다. 조석래는 화공학을 전공한 공학도 출신으로 경제 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력에 있다는 생각으로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절감하며 ‘산업을 중심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산업입국(産業立國)의 창업이념에 ‘기술로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철학을 더해 기술 중심의 경영활동을 펼쳐왔다.

2005년 3월25일 와세다대학교에서 기업 경영인으로 드물게 경영학이 아닌 공학으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조업 기술개발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일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국내 기업인 최초다.
 
조석래는 일찍이 대학교수를 꿈꾸며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준비했으나 조기에 가업을 잇게 돼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뒤늦게 꿈을 이룬 명예박사학위를 각별히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일리노이대에서도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일리노이공대 최초 한국인 명예박사다.

효성그룹은 2016년 10월 터진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내지 않은 몇 안되는 곳 중 하나다.

조석래가 전경련 회장을 지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평가받는다. 친MB기업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자금 출연 대상에서 배제됐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 기타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을 했던 만큼 일본어와 영어실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민간 경제사절 역할도 톡톡히 했다. 특히 일어 실력이 뛰어나 3년 임기의 한일경제인회 회장직을 3번에 걸쳐 연임했다.

대외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한일경제협회 회장뿐 아니라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한중경제협회 부회장 등을 맡았고 태평양지역 최대 규모 민간 경제협력체인 태평양연안경제협의회 회장도 역임했다. 이밖에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이사장,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동양학원 이사장, 한-스페인협회 회장, 한-덴마크경협위원회 회장, 와세다대 한국동창회장, 일리노이공과대학교재단 이사, 일리노이대 한국동창회 명예회장 등도 거쳤다.

2015년 효성에서 급여 28억1700만 원, 상여 15억9100만 원 등 44억80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나머지 등기이사 이상운 부회장, 조현준 회장, 조현문씨의 보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7억 원가량 더 많다. 2016년 상반기 급여로 14억8800만 원을 수령했다.

전경련 회장 시절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상무에서 전무로 발탁했다. 2007년 전경련 회장 취임 후 임직원들에게 전경련 발전방안을 제출하도록 했는데 이승철 부회장이 만든 방안이 마음에 들어 공석이던 전무로 바로 승진시켰다고 한다.

고령이고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다. 2010년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아 절제수술을 받았다. 전립선암 증세와 심장 부정맥이 겹쳐 홀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로 알려졌다.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법정 구속되지 않은 것도 재판부가 건강상태를 고려해 판결한 것이다.

효성그룹 오너일가는 30대 그룹 중 주식담보액이 가장 많다. 2016년 9월 현재 조석래도 보유주식의 61.3%인 218만4천 주를 KEB하나은행, 한국증권금융, 국세청 등에 담보로 제공하고 있다.


◆ 평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신중함과 숫자까지 하나하나 챙기는 공학도 출신다운 꼼꼼함.” 조석래 회장에 대한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보수적인 명문가의 장남답게 신중하고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경영인으로서 진퇴를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결단력도 지녔다. 이런 면모는 경영권을 물려받아 효성중공업 회장에 취임한 뒤 24개에 이르던 계열사들을 8개로 줄인 데서 확인된다.

1998년에도 주력계열사들을 합병하고 사업부문을 통합하는 등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리수를 뒀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효성물산은 무리한 수출로  1조 원대의 적자를 내는 등 파산위기를 맞았다.

효성그룹은 계열사 간 합병과 자산매각 등 자구노력을 통해 회사를 살려냈다. 효성물산은 부실기업이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자구노력으로 회생한 대표적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효성그룹은 효성물산이 낸 1조 원대의 부실을 10여 년에 걸쳐 나눠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정리해나갔다. 2013년 5월 국세청이 이런 정황을 포착하고 특별세무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조석래는 물론 장남 조현준 회장까지 검찰조사를 받았고 수천억 원대의 회삿돈 횡령 및 배임, 세금포탈 등의 혐의가 드러났다.

변호인단을 통해 회사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했으나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자식들의 사이가 좋지 않는 점도 고민거리다.

평소 입버릇처럼 “향후 경영권은 능력있는 자식에게 물려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발언은 효성그룹의 경영권을 장자 승계방식을 따라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조석래도 두 동생들인 조양래, 조욱래 회장과 함께 경영권을 무리없이 나눠 물려받았다.

하지만 조석래의 세 아들은 그렇지 않다. 차남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은 경영에 참여했으나 아버지 조석래는 물론 다른 형제들과도 갈등을 빚은 끝에 2013년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조현문씨는 보유하고 있던 지분까지 모두 팔고 효성가와 사실상 연을 끊어버렸다. 그는 또 형인 조현준 회장과 동생인 조현상 사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형제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조현문씨의 소송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우병우는 변호사시절 조현문의 효성 고발을 주도했고 청와대 입각 후 조사부에 배당된 해당 사건을 특수4부로 재배당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장남 조현준 회장과 3남 조현상씨도 경쟁적으로 효성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효성은 "형제가 상의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재계에서 알려진 ‘기술 중시’ 경영인이다. 조석래는 화공학을 전공한 공학도 출신으로 경제 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력에 있다는 생각으로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절감하며 ‘산업을 중심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산업입국(産業立國)의 창업이념에 ‘기술로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철학을 더해 기술 중심의 경영활동을 펼쳐왔다.

2005년 3월25일 와세다대학교에서 기업 경영인으로 드물게 경영학이 아닌 공학으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조업 기술개발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일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국내 기업인 최초다.
 
조석래는 일찍이 대학교수를 꿈꾸며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준비했으나 조기에 가업을 잇게 돼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뒤늦게 꿈을 이룬 명예박사학위를 각별히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일리노이대에서도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일리노이공대 최초 한국인 명예박사다.

효성그룹은 2016년 10월 터진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내지 않은 몇 안되는 곳 중 하나다.

조석래가 전경련 회장을 지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평가받는다. 친MB기업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자금 출연 대상에서 배제됐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 사건/사고

장남 조현준 회장과 핵심임원 등 4명과 함께 8천억 원대 횡령·배임·조세포탈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2003년부터 10여여년 동안 8900억 원의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 1237억 원을 포탈하고, 2007~2008년 ㈜효성의 회계처리를 조작해 주주 배당금 500억 원을 불법으로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임직원이나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수천억 원대의 효성과 카프로의 주식을 사고팔아 1318억 원의 주식 양도차익을 얻고 소득세 268억 원을 포탈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밖에 해외 법인 자금 690억 원을 횡령해 개인 빚이나 차명으로 소유한 회사의 채무 변제에 쓰고 페이퍼컴퍼니가 효성 싱가포르 법인에 갚아야 할 채무를 전액 면제토록 지시해 회사에 233억 원의 손실을 끼친 배임혐의도 있다.

2014년 7월 금융감독원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분식회계 혐의로 효성에 대해 과징금 20억 원을 부과하고 대표이사인 조석래와 이상운 부회장 등 2명에게 해임권고 조처를 내렸다.

2015년 1월 계열사 갤럭시아디바이스를 사재 9억 원을 동원해 인수했다. 5월에도 갤럭시아디스플레이를 완전감자 후 유상증자하는 방식으로 204억 원에 매입했다. 7월 갤럭시아디바이스가 갤럭시아디스플레이를 흡수합병해 하나의 회사가 됐다. 조석래가 장남 조현준이 거느린 갤럭시아소그룹에 속한 부실 회사를 떠안아 도움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조석래가 회사를 인수한 뒤 두 회사의 모회사인 갤럭시아컴즈는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16년 1월15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3년, 벌금 1365억 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재판부가 건강 상태를 고려해 법정구속은 면했다. 검찰이 구형한 10년형보다 형량이 낮은 것은 배임·횡령과 상법 위반에 대해서 무죄로 판단되고 조세포탈 혐의만 인정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부실자산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1980년대부터 2012년까지 조세포탈과 회계분식을 반복한 것은 그릇된 이윤 추구의 한 단면”이라며 “효성에 대한 경영권 및 지배권 유지 강화 수단임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기업 총수이자 전경련 회장을 지낸 조 회장이 경제계에서 지닌 위치에 비춰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밝혔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음에도 2016년 3월18일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에 재선임돼 논란이 일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효성그룹이 조석래 회장 일가의 재선임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고 개선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2016년 5월30일 금융감독원이 조석래의 조세회피 혐의를 추가로 발견했다. 조석래는 효성이 1999~2000년 발행한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 28억 원을 세 아들 이름으로 사들였다가 되팔아 19억 원의 차익을 남겼으나 지분변동 사실을 공시하지 않았고 양도소득세도 내지 않았다.

2016년 11월30일 항소심이 재개됐다. 다음공판은 2017년 1월 18일이다. 

2016년 2월16일 차명주식 양도에 따른 포탈세액 산정의 법률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 조항은 1심에서 조석래 양도소득세 포탈세액을 115억 원으로 계산한 근거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을 받아들일 경우 포탈세액이 달라져 항소심 양형 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4월8일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패소했다.

효성그룹은 2016년 7월22일 증권선물위원회의 조석래 해임 권고 조치 취소 소송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분식회계 기간이 길고 규모도 거액”이라며 책임을 져야한다고 판단했다.


◆ 경력

1966년 2월 미국에서 돌아와 기업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동양나이론 울산공장 건설을 주도했으며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했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1975년 한영중공업을 인수해 효성중공업을 설립해 국산 산업기계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석유화학과 정보통신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81년 효성중공업 회장으로 취임하며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1983년 6월 24개에 이르던 계열사를 합병, 매각, 청산 등을 통해 8개로 정리했다. 섬유는 동양나이론(현 효성 섬유PG), 중공업은 효성중공업, 무역부문은 효성물산을 중심으로 통합한 것이다.

1996년 6월 21세기위원회와 제2창업준비위원회를 발족한 데 이어 이듬해 전사 차원에서 혁신경영을 선포했다.

1997년 12월 효성그룹의 전 조직을 퍼포먼스그룹(PG) 체제로 바꾸고 책임 경영체제를 도입했다.

1998년 11월 효성T&C,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물산 등 4개 주력계열사를 합병하고 비핵심 계열사 및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효성은 국내 최초로 자체개발한 스판덱스사업을 중국, 브라질, 터키, 베트남 등으로 확대해 2010년부터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달성했다.

자동차 보강재로 사용되는 타이어코드사업도 전 세계 점유율 45%를 차지해 독보적인 시장지배력을 확보했다.

2011년 국내 기업 최초로 '꿈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고강도 소재인 탄소섬유를 개발했다. 2013년 세계 최초로 친환경 고분자 신소재인 '폴리케톤'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2016년 3월18일 효성 등기임원에 재선임됐다.

2016년 12월 29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대표이사직은 유지한다.

◆ 학력

군북국민학교를 다니다가 5학년 때 상경해 재동국민학교로 전학했다.

재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교를 거쳐 1951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1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55년 일본 히비야고등학교를 나왔다.

1959년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했다.

1966년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 화학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와세다대학교 공학 명예박사, 2013년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 공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아버지는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명예회장이다.

조 창업주는 경남 함안 대지주 집안출신이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삼성물산을 창업할 때 사업자금을 빌려주면서 동업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약 10년 뒤인 1962년 9월 동업관계를 청산하고 효성물산을 차려 독자적으로 사업에 나섰다.

효성물산은 1962년 조선제분을 인수하고 1966년 나일론 원사 제조기업 동양나이론(주)을 설립해 1970년 한일나이론과 합병했다.

1977년 상호를 효성중공업으로 변경했으며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을 인수하는 등 그룹 외형을 키웠다.

조 창업주는 15살 때 진주 명문가 출신의 하정옥과 결혼해 장남 조석래를 포함해 3남2녀를 뒀다.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이 동생이다. 조양래는 홍긍식 전 변호사협회장의 딸인 홍문자 여사와 결혼해 2남2녀를 두었다.

조양래의 장남은 조현식 한국타이어 지주부문 사장이며 막내아들 조현범 한국타이어부문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3녀 이수연과 결혼했다.

막내동생은 조욱래 DSDL(구 동성개발) 회장으로 김종대 전 농림부 장관의 딸인 김은주와 결혼했다.

조석래는 32세에 송인상 전 재무장관의 셋째 딸 송광자와 결혼해 슬하에 현준, 현문, 현상 3형제를 두었다.

큰아들 조현준은 효성그룹 회장으로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의 막내딸 이미경과 결혼했다.

둘째아들 조현문은 효성 부사장을 지내다 형제의 난을 일으키고 효성을 그만뒀다. 조현문은 이부식 전 해운항만청장의 장녀 이여진과 결혼했다.

막내아들 조현상 효성 사장은 행남자기 김용주 회장의 사촌이자 국내최대 특장차 제조업체인 광림의 김여송 대표의 딸인 비올리스트 김유영과 결혼했다.

◆ 상훈

2009년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에 선정됐다.

1994년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다.

1989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1976년 공장새마을운동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1974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72년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71년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 어록

“우리는 ICT기술의 발전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변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2016/11/03, 효성 50주년 기념사)

“부회장과 임직원들은 회사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뿐이다. 부디 선처해주길 바란다.” (2015/11/09, 조세포탈 1심 검찰 구형을 앞두고 최후 진술에서)

“미래성장동력인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젊은 인재들에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경제활성화에 앞장서겠다.” (2015/10/29, 청년희망펀드에 사재 16억 원을 기부하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당시 기업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며 개인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 (2014/06/16, 서울중앙지법 첫 공판에서 변호인단을 통해)

“화학사업도 국내를 벗어나 글로벌 회사들과 맞설 수 있는 수준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당장 대책을 세우세요.”(2013/07, (주)효성 3분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아들들이 사업을 잘하면 주가가 그렇게 떨어지겠나.”(2013/04/25, 한일경제인회의 기자회견 직후 후계구도 관련 질문에 대해)

“한·일 양국이 굳건한 경제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해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야 한다.”(2013/04/24,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경제인회의에서)

“강한 기업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기업이 생존하는 것이다.”(2013/01, 효성 신년사에서)

“옛날 일을 자꾸 들추어내면 사실 답이 없다. 우리 경제가 짧은 시간에 성장하다보니 그동안 부작용이 있었다. 시골에 옛날에 땅 좀 샀다고 나중에 총리가 못 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다 들추면 국민 중에 제대로 된 사람 없다.” (2007/07/25, 제주 신라호텔 전경련 주최CEO 하계 포럼 '미래 한국비전과 차기 지도자에게 드리는 제언' 강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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