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최고의 특수수사통, '리틀 김기춘'
고진영 기자 lanique@businesspost.co.kr 2016-10-24 04: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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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는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검사 출신으로 명석하고 능력이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권력을 이용한 비리와 축재 의혹으로 박근혜정부 레임덕의 뿌리를 제공했다. 결국 2016년 10월 30일 자리에서 내려왔다.

1967년 경북 봉화에서 교사였던 부친 우영구씨의 장남으로 태어나 경북 영주에서 자랐다.

검사가 꿈이었던 그는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대학교 3학년 때 사법고시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당시 만 20세였다.

우병우는 검사로서 일찍부터 출세가도를 달렸다. 서울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해 부부장검사로 승진한 뒤 엘리트코스인 법무부와 서울중앙지검, 대검을 차례로 거쳤다. 각종 굵직한 사건을 맡으며 ‘특수통’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탄탄대로 경력에 제동이 걸렸다.

우병우는 2009년 대검 중수부 수사1과장으로서 이인규 대검 중앙수사부장 등과 함께 ‘박연차 게이트’에 엮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게 됐다. 그는 미리 준비한 200여 개의 질문을 들고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심문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수사를 받은지 20여 일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병우는 그 뒤에도 잠시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과 수사기획관을 맡는 등 요직을 지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천지검 부천지청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등 한직을 돌았다. 검사장 승진에서도 두 번이나 탈락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여론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병우는 2013년 사표를 냈다. 우병우를 끝으로 노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검찰 지휘라인은 모두 옷을 벗었다.

하지만 그는 박근혜 정부 2년차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에 임명된 것이다.

당시 야당은 “노 전 대통령 5주기를 열흘 앞두고 나온 이런 소식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무리한 수사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의 주임검사를 민정비서관에 임명하는 것은 민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적절한 인사”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발은 큰 타격이 되지 못했다. 우병우는 민정비서관 시절 청와대 문고리 권력에 관한 루머 등이 담긴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을 처리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김영한 민정수석이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과 갈등을 빚다 사퇴하자 민정수석에 발탁됐다. 임명 8개월 만에 수직승진을 한 셈이다.

그는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뒤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청와대 비서실 개편에서도 유임됐다. 당시 개편에서 이병기 비서실장과 수석 5명이 바뀌었다.

그러나 우병우는 최근 각종 비리 의혹이 엮인 ‘우병우 게이트’로 궁지에 몰렸고 '최순실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책임을 묻는 여론이 거세졌다. 청와대는 인적쇄신 의지표명의 일환으로 10월 30일 우병우를 비롯한 일부 비서진의 사표를 수리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검찰 재직 시절 명석한 두뇌에 기획력과 수사력, 돌파력, 추진력 등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받았다. 특히 수사에 관한 한 능력이 탁월하다는 데 이론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칙주의자에 강직한 성격, 타협이 안되는 성향이라는 등의 평가가 따랐다. 하지만 ‘지나치게 물불 안가리는 수사로 밀어붙인다’ ‘너무 직선적 성격으로 배려심이 없다’는 지적도 적지않았다.

우병우를 놓고 ‘리틀 김기춘’이라고도 부른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검찰총장으로 재임할 때 ‘선엄후관(先嚴後寬:엄격함과 관대함을 결합해 대사를 이룬다)’을 강조했다. 두 사람은 엄격하다는 점에서 닮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선엄했던 것은 분명히 맞지만 후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풍자도 나온다.

우병우는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에 파견되어서 송해은 검사, 윤대진 검사와 호흡을 맞추며 ‘외인부대’로 맹활약해 검찰에서 특수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송금 특검과 함께 가장 성공한 특검으로 평가받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당시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인 신승환씨를 구속함으로써 신 총장의 조기퇴진을 불렀다. 차정일 특검이 우병우를 “매우 훌륭한 검사”라고 평가한 기록이 있다.

우병우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 동부지청 부부장 검사로 승진한 뒤 춘천지검 영월지청장, 대구지검 특수부장,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특히 2003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수사팀은 업무상 배임죄의 공소시효 7년을 하루 앞두고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는데 이는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 전환사채 헐값발행에 직접 관여한 일부 인사를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자는 우병우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분리기소는 나중에 ‘1심보다 더 무거운’ 항소심 유죄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때문에 “우병우 검사가 수사의 구슬을 뀄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려 이건희 회장 부부를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이던 2008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씨를 수사했고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같은해 8월 김옥희씨를 구속하기도 했다.

우병우에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서거 직전 노 전 대통령을 검찰에 불러 직접 조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과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사건의 주임검사를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은 그의 부인과 조카사위 등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모두 600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2009년 4월30일 대검 중앙수사부(이인규 부장)에 소환돼 늦은 밤까지 조사를 받았다. 당시 대검 청사 11층에 마련된 특별조사실에서 전직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검사가 우병우였다.

그런데 소환조사한 지 20여 일 뒤인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의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그 뒤 우병우가 2012년에 이어 2013년 4월5일 검사장 승진인사에서도 탈락하면서 ‘수사능력으로만 보자면 한 시대를 풍미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람’으로 그를 평가하던 이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승진 탈락이 노 전 대통령 서거의 후폭풍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우병우는 민정비서관 시절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항명사태’를 벌인 배경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상관인 김 전 민정수석을 제치고 우병우로부터 ‘직보’를 받으며 힘을 실어줬다는 것이다.

이는 김 전 민정수석이 사석에서 “재임 7개월 동안 제대로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지 못했다”라고 언급한 사실과 함께 많은 뒷얘기를 만들어 냈다.

항명파동이 일어나면서 민정비서관인 우병우는 청와대 문고리 권력에 관한 루머 등이 담긴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을 진두지휘해 더욱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숱한 잡음에도 사건들을 원만하게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업무 능력을 높게 평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의 처리에 대한 각종 의혹과 비판도 제기됐다.

민정수석실은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 등을 중심으로 한 ‘7인회’가 문건 유출을 주도했다고 언론에 흘렸지만 실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정수석실은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한모 경위에게 “자백하면 기소하지 않겠다”고 회유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2015년 1월 48세의 나이에 민정비서관에서 민정수석으로 초고속승진하면서 뒷말이 많았다. 민정수석은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공직자 사정을 총괄하는 막강한 보직이다.

민정수석 인사를 앞두고 당초 정치권과 검찰은 검찰총장과 기수와 같거나 높은 인사가 발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검사장도 거치지 않은 40대 민정수석의 등장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처가 덕에 재산이 많은 것도 공직자로서 논란이 됐다.

그는 2016년 3월 개인재산으로 393억 6754만 원을 신고했다. 2015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정부 고위공직자 가운데 재산이 가장 많았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0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법조인의 길에 들었다.

그 뒤 1992년 대구지검 경주지청 검사 1993년 창원지검 밀양지청 검사, 1994년 수원지검 검사 1997년 제주지검 검사, 1999년 법무부 국제법무과 검사, 2001년 서울지검 동부지청 검사를 거쳤다.

2002년 서울지검 동부지청 부부장검사로 승진했다.

2002년 춘천지검 영월지청 지청장, 2003년 서울지검 부부장검사로 활약했다.

2004년 대구지검 특수부 부장검사에 올랐다.

2005년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 과장, 2007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2008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 2009년 대검찰청 중수1과 과장 및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2010년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을 역임했다.

2011년 인천지검 부천지청 지청장으로 임명됐다.

2012년 법무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맡았다.

2013년 4월 법무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2013년 5월 우병우법률사무소를 열었다.

2014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에 임명됐다.

2015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에 올랐다.

◆ 학력

1984년 경북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8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이상달 전 기흥컨트리클럽 및 정강중기정강건설 회장의 둘째사위다.

이 전 회장은 2008년 별세했다. 이 회장이 사망하면서 아내와 네 명의 딸이 거액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기흥컨트리클럽은 현재 삼남개발이 운영하고 있다.

우병우의 아내는 삼남개발의 모회사인 에스디엔제이홀딩스 주식을 2200주(자본금의 20%) 보유하고 있다. 에스디엔제이홀딩스의 자산총액은 토지를 포함해 1967억 원에 이른다.

아내 이씨와 사이에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두고 있다.

◆ 상훈

◆ 상훈

어록


“비서실장이 당일 운영위 참석으로 부재중인 상황에서 나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로서 국정 현안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업무적 특성이 있다. 이런 사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니 양지해주길 바란다.” (2016/10/19, 10월21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겠다는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며)

“정무적으로 책임지라고 했는데 그럴 생각이 없다. 모두 내가 모르는 사람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이고, 이럴 때마다 공직자가 관둬선 안 된다. 검찰이 부르면 가야 하겠지만 어차피 저는 '모른다’ 밖에 할 말이 없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중요한 업무를 해야하는데 매일 해명 보도자료를 쓰는 것은 소모적이다.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 (2016/07/20, 처가의 강남 땅 매매 과정, 장남의 운전병 보직 의혹 등을 두고 기자간담회에서)

“정운호를 몰래 변론했다는 것은 찌라시 수준의 소설같은 얘기다.” (2016/07/19, 우병우가 과거 홍만표 변호사와 함께 수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채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몰래 변론했다는 경향신문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김정주는 단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전화 통화도 한 번 한 적이 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진경준 검사장을 통해 넥슨에 매수를 부탁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한 것은 명백한 허위보도다. 조선일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 (2016/07/18, 우병우의 처가 부동산을 진경준 검사장의 주선으로 넥슨코리아가 1천억 원대에 매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1900자 분량의 입장 자료를 내 반박하며)

“(오해가 있어도) 인터뷰를 안 하는 것이 (비서의) 본분이다. 사람은 행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조용히 대통령을 모시겠다.” (2015/01, 초고속으로 승진해 민정수석에 임명되면서 논란이 일자 자신의 행보와 관련해)

“23년 검사로 살아오면서 보람을 느낀 때도 많았고 실체적 진실을 파헤쳐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힘겨운 적도 많았다. 이제 보람은 가슴에 품고 짐을 내려놓고자 한다” (2013/04/15,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사직인사’를 통해)

“대통령비서실장이 당일 운영위원회 참석으로 부재중인 상황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로서 국정 현안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 참석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2015/05/01,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소집된 국회 운영위원회 청와대 업무보고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며)

“몇 달째 잠도 못 자고 수사에 매달렸는데 너무하는 것 아닌가.” (2011/06/05,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으로서 저축은행 수사를 진두지휘하던 가운데, 국회가 중수부의 수사기능 폐지를 검찰청법에 명문화하자 이에 반발하며)

“죽기살기로 하고 있다.” (2010/10/25, C&그룹 불공정행위 혐의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기자간담회에서)

◆ 평가

검찰 재직 시절 명석한 두뇌에 기획력과 수사력, 돌파력, 추진력 등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받았다. 특히 수사에 관한 한 능력이 탁월하다는 데 이론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칙주의자에 강직한 성격, 타협이 안되는 성향이라는 등의 평가가 따랐다. 하지만 ‘지나치게 물불 안가리는 수사로 밀어붙인다’ ‘너무 직선적 성격으로 배려심이 없다’는 지적도 적지않았다.

우병우를 놓고 ‘리틀 김기춘’이라고도 부른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검찰총장으로 재임할 때 ‘선엄후관(先嚴後寬:엄격함과 관대함을 결합해 대사를 이룬다)’을 강조했다. 두 사람은 엄격하다는 점에서 닮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선엄했던 것은 분명히 맞지만 후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풍자도 나온다.

우병우는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에 파견되어서 송해은 검사, 윤대진 검사와 호흡을 맞추며 ‘외인부대’로 맹활약해 검찰에서 특수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송금 특검과 함께 가장 성공한 특검으로 평가받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당시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인 신승환씨를 구속함으로써 신 총장의 조기퇴진을 불렀다. 차정일 특검이 우병우를 “매우 훌륭한 검사”라고 평가한 기록이 있다.

우병우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 동부지청 부부장 검사로 승진한 뒤 춘천지검 영월지청장, 대구지검 특수부장,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특히 2003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수사팀은 업무상 배임죄의 공소시효 7년을 하루 앞두고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는데 이는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 전환사채 헐값발행에 직접 관여한 일부 인사를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자는 우병우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분리기소는 나중에 ‘1심보다 더 무거운’ 항소심 유죄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때문에 “우병우 검사가 수사의 구슬을 뀄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려 이건희 회장 부부를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이던 2008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씨를 수사했고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같은해 8월 김옥희씨를 구속하기도 했다.

우병우에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서거 직전 노 전 대통령을 검찰에 불러 직접 조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과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사건의 주임검사를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은 그의 부인과 조카사위 등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모두 600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2009년 4월30일 대검 중앙수사부(이인규 부장)에 소환돼 늦은 밤까지 조사를 받았다. 당시 대검 청사 11층에 마련된 특별조사실에서 전직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검사가 우병우였다.

그런데 소환조사한 지 20여 일 뒤인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의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그 뒤 우병우가 2012년에 이어 2013년 4월5일 검사장 승진인사에서도 탈락하면서 ‘수사능력으로만 보자면 한 시대를 풍미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람’으로 그를 평가하던 이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승진 탈락이 노 전 대통령 서거의 후폭풍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우병우는 민정비서관 시절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항명사태’를 벌인 배경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상관인 김 전 민정수석을 제치고 우병우로부터 ‘직보’를 받으며 힘을 실어줬다는 것이다.

이는 김 전 민정수석이 사석에서 “재임 7개월 동안 제대로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지 못했다”라고 언급한 사실과 함께 많은 뒷얘기를 만들어 냈다.

항명파동이 일어나면서 민정비서관인 우병우는 청와대 문고리 권력에 관한 루머 등이 담긴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을 진두지휘해 더욱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숱한 잡음에도 사건들을 원만하게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업무 능력을 높게 평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의 처리에 대한 각종 의혹과 비판도 제기됐다.

민정수석실은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 등을 중심으로 한 ‘7인회’가 문건 유출을 주도했다고 언론에 흘렸지만 실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정수석실은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한모 경위에게 “자백하면 기소하지 않겠다”고 회유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2015년 1월 48세의 나이에 민정비서관에서 민정수석으로 초고속승진하면서 뒷말이 많았다. 민정수석은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공직자 사정을 총괄하는 막강한 보직이다.

민정수석 인사를 앞두고 당초 정치권과 검찰은 검찰총장과 기수와 같거나 높은 인사가 발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검사장도 거치지 않은 40대 민정수석의 등장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처가 덕에 재산이 많은 것도 공직자로서 논란이 됐다.

그는 2016년 3월 개인재산으로 393억 6754만 원을 신고했다. 2015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정부 고위공직자 가운데 재산이 가장 많았다.

◆ 기타

우병우는 어릴 때부터 검사를 꿈꿨다. 고3 담임이었던 한병태 전 영주고 교장은 “왜 검사를 하려고 하느냐 물었더니 "정의로운 사회와 부정과 부패가 없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당돌하리만큼 또박또박 말했다”며 “참 독특한 학생으로 기억한다”고 떠올렸다.

고3 시절 모의고사에서 늘 전국 100위 안에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력고사에서 53등을 해 서울대 법대로 진학했다.

한병태 전 교장은 “우리 반은 7시30분까지 등교를 권장했는데 일찍 오는 순으로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게 했다. 우 수석은 1년 동안 늘 앞에서 셋째 줄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력이 떨어져 너무 멀리 앉거나 너무 가까이 앉으면 정신이 집중되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우병우는 초임검사 시절 시보(試補)로 온 대학동기들에게 ‘김 시보’ ‘박 시보’ 등으로 부르며 군기를 잡았다.

우병우는 2008년 별세한 이상달 기흥컨트리클럽 및 정강중기·정강건설 회장의 둘째 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뒀다. 아내의 상속재산 덕분에 2015년 420억 원이 넘는 재산을 등록했다.

2016년 3월에도 개인재산으로 393억 6754만 원을 신고해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이 공개되는 고위공직자 가운데 2년 연속 재산이 가장 많은 인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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