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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윤동한 전 한국콜마 회장
백설희 기자  ssul20@businesspost.co.kr  |  2016-10-13 09: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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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력/학력/가족
  • 어록

 

   
▲ 윤동한 전 한국콜마 회장.
◆ 생애

윤동한은 전 한국콜마 회장이다. 일찍부터 기업인의 꿈을 키웠고 여러번의 시도끝에 한국콜마를 세웠다. 

1947년 12월30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수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농협을 거쳐 대웅제약에서 15년 동안 재직하면서 부사장까지 올랐다.

대웅제약을 나와 일본콜마와 합작해 한국콜마를 세웠다.

한국콜마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화장품사업을 시작한 뒤 국내최초로 ODM 방식을 도입해 빠르게 성장했고 제약산업에도 진출했다. 

◆ 가족관계

부인 김성애씨와 1남1녀를 두고 있다. 아들 윤상현 한국콜마홀딩스 사장과 딸 윤여원 한국콜마 전무다. 

◆ 학력

1965년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영남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에서 수학했다.

2008년 수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 경력

1970년 농협중앙회 입사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윤동한은 승진, 연수에서 계속 명문대 출신에 밀리면서 나중에 기업을 차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974년 대웅제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기업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당시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대웅제약을 택했다. 대웅제약에서 6번이나 승진해 최연소 부사장에 오르기도 했다.

1990년 일본콜마와 합작해 한국콜마를 세웠다.

1993년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을 도입했다.

2002년 제약산업에 진출했다.

2004년 한국원자력연구소와 민관 최초 합작법인 선바이오텍(현 콜마비앤에이치)을 설립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상품학회 고문을 맡았다.

◆ 상훈

2005년 제38회 과학의 날 과학기술유공자상을 수상했다.

2008년 IMI 경영대상 기술혁신 부문상을 받았다.

2010년 올해의 CEO 대상, 2011년 올해의 CEO 대상 인재경영부문 대상, 2012년 올해의 CEO 대상 혁신경영부문 대상을 받았다.

2014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제23회 다산경영상 창업경영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 사건/사고

1989년 외국계 제약회사로부터 최고경영자(CEO) 제안을 받았으나 기업을 차리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 거절했다.

윤동한은 대웅제약에서 나온 뒤 창업 아이템을 탐색하기 위해 미국을 자주 방문했고 화장품 제조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미국콜마를 찾아가 기술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미국콜마 측은 당시 한국에 법인을 세울 계획이 없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윤동한은 때마침 일본콜마가 한국 투자자를 찾는다는 얘기를 접했고 일본을 찾아가 합작을 제의했다. 당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콜마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윤동한은 수차례 일본에 건너가 일본콜마를 설득했고 1990년 결국 합작에 이르렀다.

한국콜마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화장품 제조업을 시작했으나 사업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장품 회사들이 세금계산서 없는 무자료 거래를 요구해 왔으나 윤동한은 이를 거절해 주문을 따내기 힘들었다. 주문을 받아내지 못하다보니 전기료를 제때 못 내 단전 통보를 받은 적도 있다.

윤동한은 원칙을 지키면서 사업을 하기위해 고심했고 자체기술개발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분부터 제조기술까지 개발해 화장품 회사에 제시하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시스템을 갖춰야겠다고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한국콜마는 1993년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을 도입했다.

윤동한은 한국콜마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인 GMP(우수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도 화장품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한국콜마는 매년 매출의 5~6%가량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콜마는 2012년 10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며 한국콜마홀딩스가 사업회사 한국콜마를 자회사로 두는 구조가 됐다.

한국콜마홀딩스의 손자회사 에치엔지가 그룹 계열사 한국콜마로부터 의약품을 매입해 판매하는 사업을 하며 급격한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어 일감몰아주기 논란이 일었다.

에치엔지는 콜마비앤에이치(45%)와 윤여원 전무 39.36%, 윤상현 사장 15.64%이 나누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에치엔지가 특수관계자로부터 거둔 매출은 398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33%(398억 원)에 이른다. 에치엔치 매출은 최근 3년 동안 약 4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공정거래법상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은 오너 일가(특수관계인)의 계열사 지분이 30%(비상장사 20%) 이상인 상황에 내부거래 비중이 12% 이상 또는 200억 원 이상이면 ‘일감몰아주기’ 제재를 받는다.

한국콜마그룹의 경우 특수관계자 매출이 12%, 200억 원 이상이지만 대기업이 아니라 중견기업이기 때문에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 어록

“1등 기업과 2등 기업은 인재입양이 아닌 인재양성과 기술복사가 아닌 기술개발에서 갈린다.기업의 인재양성은 기술개발로 이어지고 이것이 혁신경영으로 이어진다.” 

“금수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과 좌절이라는 걸림돌이 내게는 좋은 수저를 빚기 위한 디딤돌이 됐다.” (2016/09/30, 청주 교원대학교 특별강연에서)

“제품에 대한 투자는 미래를 살아나갈 기반이자 외국 기업과 경쟁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브랜드와 마케팅으로 경쟁하려면 언어와 국력, 문화 등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면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2016/07/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화장품과 의약품의 융합기술을 통해 업계 선도주자로서 차별화된 기술력을 선보이겠다. 글로벌 경영 원년인 지난해 성과가 밑거름이 돼 올해는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활약이 기대된다.” (2016/01/04, 2016년 신년사에서)

“2007년에 북경콜마 법인을 설립하면서 해외시장에 뛰어들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상하이로 진출했는데 한국콜마는 북경으로 갔다. 다른 지역보다 규제가 엄격해서 외국 기업이 사업을 추진하기 쉽진 않지만 여기서 성공하면 중국 어느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국 사업은 앞으로 매년 200억 원 안팎의 매출성장이 예상된다.” (2015/10/1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 평가

윤동한은 ‘유기농 경영’,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분명한 경영철학을 지니고 있다.

유기 퇴비로 작물을 키우면 작물의 자생력이 커져 화학비료를 뿌리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듯 임직원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업무를 찾아 주체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킬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직원들 가정이 편안해야 회사가 잘된다는 철학으로 효도 수당이나 출산 장려금 제도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보천리는 ‘소 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뜻이다. 윤동한은 느리더라도 우직하게 사업을 하다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사자성어를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삼았다고 한다.

윤동한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어릴적부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입학시험을 50일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더 기울었다.

첫 직장은 돈을 벌기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회사에서도 명문대생에 치여 실력에 비해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오직 실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내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목표를 위해 중소기업으로 이직해 회사를 키우며 역량을 쌓았다. 마침내 창업에 성공해 국내 1위 화장품 ODM업체를 키워냈다.

◆ 기타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국콜마 본사엔 소 조각상 100여점이 있다. 윤동한은 우보천리라는 경영철학을 되새기는 의미에서 조각상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콜마홀딩스는 2016년9월26일 일본에 반출된 고려불화를 2016년 6월 25억 원에 사들여 소유권 이전절차를 마무리한 뒤 국립중앙박물관에 영구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 기증은 윤동한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평소 국내 역사와 문화재에 남다른 애착을 보여왔는데 지인을 통해 일본에서 한 미술품 중간상이 수월관음도를 살 사람을 알아보고 다닌다는 사실을 접하고 구매를 결정하기도 했다.

◆ 평가

윤동한은 ‘유기농 경영’,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분명한 경영철학을 지니고 있다.

유기 퇴비로 작물을 키우면 작물의 자생력이 커져 화학비료를 뿌리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듯 임직원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업무를 찾아 주체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킬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직원들 가정이 편안해야 회사가 잘된다는 철학으로 효도 수당이나 출산 장려금 제도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보천리는 ‘소 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뜻이다. 윤동한은 느리더라도 우직하게 사업을 하다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사자성어를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삼았다고 한다.

윤동한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어릴적부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입학시험을 50일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더 기울었다.

첫 직장은 돈을 벌기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회사에서도 명문대생에 치여 실력에 비해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오직 실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내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목표를 위해 중소기업으로 이직해 회사를 키우며 역량을 쌓았다. 마침내 창업에 성공해 국내 1위 화장품 ODM업체를 키워냈다.

◆ 사건/사고

1989년 외국계 제약회사로부터 최고경영자(CEO) 제안을 받았으나 기업을 차리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 거절했다.

윤동한은 대웅제약에서 나온 뒤 창업 아이템을 탐색하기 위해 미국을 자주 방문했고 화장품 제조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미국콜마를 찾아가 기술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미국콜마 측은 당시 한국에 법인을 세울 계획이 없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윤동한은 때마침 일본콜마가 한국 투자자를 찾는다는 얘기를 접했고 일본을 찾아가 합작을 제의했다. 당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콜마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윤동한은 수차례 일본에 건너가 일본콜마를 설득했고 1990년 결국 합작에 이르렀다.

한국콜마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화장품 제조업을 시작했으나 사업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장품 회사들이 세금계산서 없는 무자료 거래를 요구해 왔으나 윤동한은 이를 거절해 주문을 따내기 힘들었다. 주문을 받아내지 못하다보니 전기료를 제때 못 내 단전 통보를 받은 적도 있다.

윤동한은 원칙을 지키면서 사업을 하기위해 고심했고 자체기술개발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분부터 제조기술까지 개발해 화장품 회사에 제시하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시스템을 갖춰야겠다고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한국콜마는 1993년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을 도입했다.

윤동한은 한국콜마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인 GMP(우수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도 화장품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한국콜마는 매년 매출의 5~6%가량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콜마는 2012년 10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며 한국콜마홀딩스가 사업회사 한국콜마를 자회사로 두는 구조가 됐다.

한국콜마홀딩스의 손자회사 에치엔지가 그룹 계열사 한국콜마로부터 의약품을 매입해 판매하는 사업을 하며 급격한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어 일감몰아주기 논란이 일었다.

에치엔지는 콜마비앤에이치(45%)와 윤여원 전무 39.36%, 윤상현 사장 15.64%이 나누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에치엔지가 특수관계자로부터 거둔 매출은 398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33%(398억 원)에 이른다. 에치엔치 매출은 최근 3년 동안 약 4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공정거래법상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은 오너 일가(특수관계인)의 계열사 지분이 30%(비상장사 20%) 이상인 상황에 내부거래 비중이 12% 이상 또는 200억 원 이상이면 ‘일감몰아주기’ 제재를 받는다.

한국콜마그룹의 경우 특수관계자 매출이 12%, 200억 원 이상이지만 대기업이 아니라 중견기업이기 때문에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 경력

1970년 농협중앙회 입사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윤동한은 승진, 연수에서 계속 명문대 출신에 밀리면서 나중에 기업을 차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974년 대웅제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기업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당시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대웅제약을 택했다. 대웅제약에서 6번이나 승진해 최연소 부사장에 오르기도 했다.

1990년 일본콜마와 합작해 한국콜마를 세웠다.

1993년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을 도입했다.

2002년 제약산업에 진출했다.

2004년 한국원자력연구소와 민관 최초 합작법인 선바이오텍(현 콜마비앤에이치)을 설립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상품학회 고문을 맡았다.

◆ 학력

1965년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영남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에서 수학했다.

2008년 수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김성애씨와 1남1녀를 두고 있다. 아들 윤상현 한국콜마홀딩스 사장과 딸 윤여원 한국콜마 전무다. 

◆ 상훈

2005년 제38회 과학의 날 과학기술유공자상을 수상했다.

2008년 IMI 경영대상 기술혁신 부문상을 받았다.

2010년 올해의 CEO 대상, 2011년 올해의 CEO 대상 인재경영부문 대상, 2012년 올해의 CEO 대상 혁신경영부문 대상을 받았다.

2014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제23회 다산경영상 창업경영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 어록

“1등 기업과 2등 기업은 인재입양이 아닌 인재양성과 기술복사가 아닌 기술개발에서 갈린다.기업의 인재양성은 기술개발로 이어지고 이것이 혁신경영으로 이어진다.” 

“금수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과 좌절이라는 걸림돌이 내게는 좋은 수저를 빚기 위한 디딤돌이 됐다.” (2016/09/30, 청주 교원대학교 특별강연에서)

“제품에 대한 투자는 미래를 살아나갈 기반이자 외국 기업과 경쟁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브랜드와 마케팅으로 경쟁하려면 언어와 국력, 문화 등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면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2016/07/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화장품과 의약품의 융합기술을 통해 업계 선도주자로서 차별화된 기술력을 선보이겠다. 글로벌 경영 원년인 지난해 성과가 밑거름이 돼 올해는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활약이 기대된다.” (2016/01/04, 2016년 신년사에서)

“2007년에 북경콜마 법인을 설립하면서 해외시장에 뛰어들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상하이로 진출했는데 한국콜마는 북경으로 갔다. 다른 지역보다 규제가 엄격해서 외국 기업이 사업을 추진하기 쉽진 않지만 여기서 성공하면 중국 어느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국 사업은 앞으로 매년 200억 원 안팎의 매출성장이 예상된다.” (2015/10/1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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