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이인원 롯데 정책본부 부회장

의문의 자살. 롯데 기틀 닦은 전문경영인 [2016년 수정]
백설희 장윤경 기자 ssul20@businesspost.co.kr 2016-08-26 1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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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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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이인원 롯데 정책본부 부회장
▲ 이인원 롯데정책본부 부회장.


이인원은 경상북도 경산시 출신으로 1947년 8월12일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과를 졸업했다.

호텔롯데에 입사해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롯데쇼핑과 인연을 맺었다. 관리담당, 상품매입본부, 영업본부 등을 거쳐 50세에 롯데쇼핑 대표이사에 올랐다.

그룹 정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은 이래 롯데그룹의 2인자로 신동빈 회장을 보좌해 왔다. 롯데그룹의 핵심사업을 관장하고 경영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기반을 닦는 데 힘썼다.

이를 토대로 롯데그룹의 전문경영인으로서 처음으로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인원은 롯데그룹이 출범시킨 제2롯데월드 안전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경영권 분쟁이 생기자 철저하게 신동빈 회장의 편에 섰다.

롯데그룹의 기업문화개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기업문화개선위원회는 지배구조 개선 TFT에 이은 두 번째 롯데그룹의 혁신조직이다.

이인원은 신동빈 회장 편에 서서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그룹 원로로 중심을 잡고 조직을 추슬러 신 회장의 신임을 받았다.

이인원은 검찰의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가 진행되면서 황각규 롯데정책본부 운영실 실장에 이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검찰출석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1997년 롯데쇼핑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에 18년째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국내 ‘최장수 CEO’로도 유명하다. 그룹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며 후배들의 높은 신망을 얻었다.

한 계열사 관계자는 “치밀한 업무능력과 인품으로 존경받고 있는데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뜻을 가장 잘 헤아려 그룹에서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 최초로 부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사이가 갈라졌고 이인원은 신동빈 회장 편에 서게됐다.

부하직원들로부터 들은 바를 직접 눈으로 살펴보고 확인하는 꼼꼼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의심이 나면 끝까지 파헤치는 철저함을 지녔다.

롯데쇼핑 대표 시절 궁금한 것이 생기면 직원들을 불러 설명을 듣는 대신 바로 백화점 매장을 찾아갔다. 백화점 매장에서 불시에 대표를 맞닥뜨린 직원들은 크게 당황했다.

이인원은 롯데쇼핑 대표이사 시절 철두철미함과 불시에 매장을 방문하는 현정점검으로 잘 알려졌다. 특히 내실 중심의 경영을 펼쳐 소공동 1번지의 롯데타운 건설을 잡음없이 마무리했다.

이인원은 롯데그룹 역사에 있어 가장 입지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호텔롯데에서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긴 지 10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롯데그룹에서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기까지 평균 6년 이상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쾌속승진을 거듭한 셈이다.

'한국 유통산업의 주역'으로 평가받을만큼 국내 유통 시장에서 이인원이 일군 경영 성과는 상당하다. 롯데가 2000년대 초반 백화점 인수와 슈퍼마켓 진출 등 유통사업확장에 나설 때마다 그 뒤에는 이인원의 탁월한 경영 전략이 뒷받침됐다.

그는 전자공시제도가 도입된 1999년부터 2012년까지 14년 연속으로 영업흑자를 냈다. 이는 구내 500대 기업에 포함된 30대 그룹 계열사 전문경영인 가운데 최장 기록이었다. 롯데쇼핑의 영업이익은 1999년 1600여억 원에 불과했으나 2012년 1조5천여 억 원으로 9배 가량 늘었다.

이인원은 백화점 중심으로 짜여있던 롯데쇼핑의 구도를 할인점과 백화점부문으로 나눠 롯데그룹의 경영 체질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이를 바탕으로 롯데그룹이 재계 5위로 만드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에비뉴엘 명품관을 새로 만들고 롯데백화점 미아점과 부산 해운대점, 청량리 신역사점, 부산 제2롯데월드 광복점을 열었다. 또 롯데마트와 롯데슈퍼의 점포수를 크게 늘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롯데쇼핑의 4개 사업부문인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롯데슈퍼, 롯데시네마가 각각 ‘갑을논란’, ‘일감몰아주기’, ‘내부거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의 문제에 휩싸이면서 도덕성 문제가 제기됐다. 그의 흑자 달성 기록의 의미가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의 희생을 거름으로 삼아 이룬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2007년부터 일하고 있는 롯데정책본부는 국내외 주요 계열사의 사업전략 지원과 투자를 조율하는 곳으로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다.

신동빈 회장이 맡고 있던 정책본부장 자리를 처음으로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인 이인원에게 맡겼다는 것은 그만큼 신임이 두텁다는 뜻이다.

이밖에도 이인원은 여러 자리에서 제때에 임기응변을 발휘해 신 회장을 보필해 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도 신동빈 회장 측에 서서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그룹 원로로 중심을 잡고 무난하게 대응했다고 평가받았다.

일례로 2005년에는 중저가의류 브랜드인 ‘유니클로’의 출시 기자회견 때 신동빈 회장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르는데도 신 회장은 단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당시 이인원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셔서 그렇다”고 설명해 어색한 자리를 모면했다.

이인원이 롯데그룹 수사를 위한 핵심인물 중 하나로 꼽힌 것은 그가 20년이 넘는 세월 롯데그룹 핵심부에서 근무하며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을 보필하기 이전에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수십년 동안 그룹의 '실세' 경영인으로 롯데가문의 대소사에 관여하며 오너 일가의 신뢰를 한몸에 받아 온 최측근은 이라고 업계에서 평가 받았다.

지금의 종합유통그룹 '롯데'가 있기까지 이인원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롯데를 위해 살아온 인물이다. 검찰의 수사가 이인원에게 향할 당시 롯데의 심장부를 겨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검찰은 이인원이 그룹의 안방살림을 도맡아온 만큼 롯데그룹과 계열사 간 비리 및 횡령에 깊이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집중해왔다. 이인원의 소환조사 결과에 따라 신동빈 회장에 대한 신병처리도 결정될 것으로 업계는 바라봤다.

이 때문에 비리의혹의 '핵심 키'를 쥐고 있던 이인원의 심적 부담감은 더욱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관계자는 "평사원으로 시작해 스스로의 힘으로 전문CEO 자리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유통산업을 이끌어온 최장수 CEO로써 롯데 직원들에게 귀감이 되는 분이었는데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했다. 1978년 롯데쇼핑 이사, 1997년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사장 등을 맡았다. 백화점 경영의 핵심인 관리와 상품, 구매, 영업 등의 업무를 모두 경험했다.

1998년에 롯데쇼핑 대표이사 사장으로 고속으로 승진했다. 그는 2007년까지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본부 대표이사를 맡았다.

2000년 한국백화점협회 회장과 한국소매업협의회 회장을 겸임했다. 2003년 서울상공회의소 비상근 부회장으로 임명됐다.

2007년부터 롯데그룹 롯데정책본부에 입성한 뒤로 신동빈 회장을 보좌했다. 정책본부는 그룹의 전반적인 경영과 주요사업을 관리하는 핵심조직으로 그는 롯데그룹의 경영전략을 짜는 업무를 맡고 있다. 주력 계열사 대표에서 그룹 전체를 관장하는 자리로 한단계 더 올라선 것이다.

2011년 롯데정책본부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신동빈 회장을 대신해 정책본부를 책임지게 됐다. 이인원은 전문경영인으로서 그룹 내 최초로 부회장이 됐다.

2015년 1월 제2롯데월드 안전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제2롯데월드의 안전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이인원은 서울시가 롯데그룹이 안전관리, 대응 시스템 구축을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전체 건물에 대한 사용제한, 금지, 임시사용승인 취소 등의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히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안전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제2롯데월드 안전논란을 차단할 ‘특급 소방수’ 역할을 맡게 됐다.

2015년 9월부터는 롯데그룹 기업문화개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6년 정기임원인사에서 자리를 유지했다.

◆ 학력

경북대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과를 1970년 졸업했다.

◆ 가족관계

◆ 상훈

1999년 한국전자상거래 대상 우수상과 2003년 대한민국 안전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2005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 상훈

1999년 한국전자상거래 대상 우수상과 2003년 대한민국 안전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2005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어록


“롯데 노사는 지난 반세기 동안 가족경영과 상생경영을 바탕으로 깊은 신뢰를 맺고 서로 협력해 왔다.” “이런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한 창조적 노사문화의 정착이 롯데의 새롭게 써 나갈 역사에 든든한 바탕이 될 것이다.” (2016/05/23, 롯데 가족경영·상생경영 및 창조적 노사문화 선포 1주년 기념식에서)

“최근 제기된 삼겹살 협력업체와 논란은 한 계열사(롯데마트)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룹 전체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라며 “앞으로 부정적 여론을 유발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초기에 대응하라.” (2016/01/15 ‘삼겹살 사건’으로 논란이 불거지자 롯데그룹 계열사에 경고 메시지 보내면서)

“노사가 힘을 모은 첫 번째 행사가 사회공헌 활동이어서 더욱 뜻 깊다. 롯데 임직원이 어울려 정성껏 담근 김장이 어려운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015/12/01 ‘어울림 김장 나눔’ 행사를 가지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된 유능하고 검증된 분, 지금까지 롯데그룹의 성장과정에서 검증되고 고락을 함께하며 임직원의 신뢰를 쌓은 분이 그룹을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신동주 전 부회장)으로 인해 야기된 작금의 사태는 그룹의 미래와 발전에 어떠한 도움도 될 수 없다.” (2015/10/21 그룹 인트라넷에 올린 글에서)

“외부의 객관적 시각을 통해 내부에서 간과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허심탄회하게 조언해달라. 그러한 활동들을 통해 롯데가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또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5/09/15 기업문화개선위원회를 출범하면서)

“각고의 노력 끝에 수족관과 시네마가 재개장하게 된 만큼 타워동 준공시까지 사소한 것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철저히 관리해 고객 여러분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달라.” (2015/05/13, 제 2롯데월드를 찾아 건설현장과 시설들을 점검하며)

“사소한 것도 철저히 점검해 고객들이 안심하고 롯데월드몰을 방문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 (2015/03/13 안전관리위원장으로서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하면서)

“롯데월드몰이 정말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 오픈했지만 계속된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우리의 안전의식 수준이 국민들의 기대와 얼마나 격차가 컸는지 느끼는 계기가 됐다.” (2015/01/09, 롯데그룹 안전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돼 1차 회의와 안전점검 투어를 실시하며)

“우리 중소기업 제품들이 해외명품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시장진출을 돕겠다. 글로벌 생활명품 육성 프로젝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부가 힘을 합쳐 동반성장을 이룬 모범사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2014/10/21, 글로벌 생활명품 출범식과 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교육 기부는 인재양성을 위한 기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롯데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교육기부 활동을 진행하겠다.” (2012/04/26, 롯데 HR 포럼에 참석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으며)

“100개 팔아주는 곳과 10개 팔아주는 곳은 다르며 100개 쪽이 (수수료가) 비싼 것은 당연하다." (2006/12/27, 우리홈쇼핑 인수 기자간담회에서 롯데백화점이 입점업체에 너무 과다한 수수료를 받는다는 지적에 대해)

“올해 경영환경은 지난해보다 훨씬 더 나빠지고, IMF 경제위기 때보다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갈수록 치열한 대내외 환경에서 기업의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2005/01/03, 임직원에게 e-메일로 전달한 신년사에서)

◆ 평가

1997년 롯데쇼핑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에 18년째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국내 ‘최장수 CEO’로도 유명하다. 그룹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며 후배들의 높은 신망을 얻었다.

한 계열사 관계자는 “치밀한 업무능력과 인품으로 존경받고 있는데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뜻을 가장 잘 헤아려 그룹에서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 최초로 부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사이가 갈라졌고 이인원은 신동빈 회장 편에 서게됐다.

부하직원들로부터 들은 바를 직접 눈으로 살펴보고 확인하는 꼼꼼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의심이 나면 끝까지 파헤치는 철저함을 지녔다.

롯데쇼핑 대표 시절 궁금한 것이 생기면 직원들을 불러 설명을 듣는 대신 바로 백화점 매장을 찾아갔다. 백화점 매장에서 불시에 대표를 맞닥뜨린 직원들은 크게 당황했다.

이인원은 롯데쇼핑 대표이사 시절 철두철미함과 불시에 매장을 방문하는 현정점검으로 잘 알려졌다. 특히 내실 중심의 경영을 펼쳐 소공동 1번지의 롯데타운 건설을 잡음없이 마무리했다.

이인원은 롯데그룹 역사에 있어 가장 입지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호텔롯데에서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긴 지 10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롯데그룹에서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기까지 평균 6년 이상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쾌속승진을 거듭한 셈이다.

'한국 유통산업의 주역'으로 평가받을만큼 국내 유통 시장에서 이인원이 일군 경영 성과는 상당하다. 롯데가 2000년대 초반 백화점 인수와 슈퍼마켓 진출 등 유통사업확장에 나설 때마다 그 뒤에는 이인원의 탁월한 경영 전략이 뒷받침됐다.

그는 전자공시제도가 도입된 1999년부터 2012년까지 14년 연속으로 영업흑자를 냈다. 이는 구내 500대 기업에 포함된 30대 그룹 계열사 전문경영인 가운데 최장 기록이었다. 롯데쇼핑의 영업이익은 1999년 1600여억 원에 불과했으나 2012년 1조5천여 억 원으로 9배 가량 늘었다.

이인원은 백화점 중심으로 짜여있던 롯데쇼핑의 구도를 할인점과 백화점부문으로 나눠 롯데그룹의 경영 체질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이를 바탕으로 롯데그룹이 재계 5위로 만드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에비뉴엘 명품관을 새로 만들고 롯데백화점 미아점과 부산 해운대점, 청량리 신역사점, 부산 제2롯데월드 광복점을 열었다. 또 롯데마트와 롯데슈퍼의 점포수를 크게 늘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롯데쇼핑의 4개 사업부문인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롯데슈퍼, 롯데시네마가 각각 ‘갑을논란’, ‘일감몰아주기’, ‘내부거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의 문제에 휩싸이면서 도덕성 문제가 제기됐다. 그의 흑자 달성 기록의 의미가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의 희생을 거름으로 삼아 이룬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2007년부터 일하고 있는 롯데정책본부는 국내외 주요 계열사의 사업전략 지원과 투자를 조율하는 곳으로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다.

신동빈 회장이 맡고 있던 정책본부장 자리를 처음으로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인 이인원에게 맡겼다는 것은 그만큼 신임이 두텁다는 뜻이다.

이밖에도 이인원은 여러 자리에서 제때에 임기응변을 발휘해 신 회장을 보필해 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도 신동빈 회장 측에 서서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그룹 원로로 중심을 잡고 무난하게 대응했다고 평가받았다.

일례로 2005년에는 중저가의류 브랜드인 ‘유니클로’의 출시 기자회견 때 신동빈 회장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르는데도 신 회장은 단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당시 이인원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셔서 그렇다”고 설명해 어색한 자리를 모면했다.

이인원이 롯데그룹 수사를 위한 핵심인물 중 하나로 꼽힌 것은 그가 20년이 넘는 세월 롯데그룹 핵심부에서 근무하며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을 보필하기 이전에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수십년 동안 그룹의 '실세' 경영인으로 롯데가문의 대소사에 관여하며 오너 일가의 신뢰를 한몸에 받아 온 최측근은 이라고 업계에서 평가 받았다.

지금의 종합유통그룹 '롯데'가 있기까지 이인원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롯데를 위해 살아온 인물이다. 검찰의 수사가 이인원에게 향할 당시 롯데의 심장부를 겨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검찰은 이인원이 그룹의 안방살림을 도맡아온 만큼 롯데그룹과 계열사 간 비리 및 횡령에 깊이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집중해왔다. 이인원의 소환조사 결과에 따라 신동빈 회장에 대한 신병처리도 결정될 것으로 업계는 바라봤다.

이 때문에 비리의혹의 '핵심 키'를 쥐고 있던 이인원의 심적 부담감은 더욱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관계자는 "평사원으로 시작해 스스로의 힘으로 전문CEO 자리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유통산업을 이끌어온 최장수 CEO로써 롯데 직원들에게 귀감이 되는 분이었는데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기타

오너일가를 제외한 전문경영인 가운데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이인원은 2014년 연봉으로 12억9800만 원을 받았다. 이원준 롯데백화점 대표는 5억7900만 원을 받았다. 상여금으로 각각 3억5천만 원과 1억7천만 원을 받았다.

신동빈 회장의 연봉은 15억5천만 원이었다.

이인원이 목숨을 끊은 양평은 그가 주말마다 찾아와 머리를 식히곤 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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