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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정세균 국무총리
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  |  2020-11-26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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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균 국무총리.

◆ 생애

정세균은 국무총리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은 시기에 국무총리를 맡아 정부의 방역활동 전체를 지휘하고 있다.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해 어깨가 무겁다. 

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당대표, 산업부 장관,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을 빼면 모두 한 셈이다. 

1950년 9월26일 전북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쌍용그룹에서 상무로 재직했다.

쌍용그룹에서 미국 주재원으로 일하다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의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의장,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민주당 대표를 지냈고 참여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6선 의원이자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재직했다.

온화한 인품으로 타협과 대화를 중시한다. 계파색이 옅지만 민주당 계열에서 친노의 좌장 역할을 했다. 

2020년 1월 문재인 정부 두 번째 국무총리가 됐다.

◆ 활동의 공과

△코로나19 총리, K-방역 성과
정세균이 총리에 취임한 2020년 1월14일 이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1월19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2월 들어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는 등 국내 코로나19 상황도 본격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정세균은 2월14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제총리, 통합총리가 가고자 했던 길인데 코로나19 총리가 되게 생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코로나19 감염이 계속 확산되자 정세균은 2월23일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직접 본부장을 맡았다.

같은 달 25일부터는 대구에 상주하면서 현장에서 방역을 진두지휘했다.

정세균은 대구에 상주하기로 결정하면서 “대구경북 확진자가 많은 현재 상황은 단순히 대구경북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라며 “중앙과 지방을 구분하지 않고 범정부적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다.

2월 이후 국내 코로나 확진자 수는 진정되는 흐름을 보였고 4월경에는 하루 확진자 수가 10명을 밑돌았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상황이 외국과 비교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K-방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정부의 성공적 코로나19 대응은 여론의 지지를 받았고 4월15일 치러진 제21대 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압승을 이끌어 내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2020년 하반기 들어 광복절 집회 등으로 하루 확진자 수가 한동안 100명을 웃도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9월부터 10월 초 사이에는 다시 하루 확진자 수를 두 자릿수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정세균은 개천절을 앞두고 “방역을 방해하거나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결과를 초래하면 책임을 묻고 구상권도 청구하겠다”며 “제가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인데 8·15 집회를 생각하면 화가 나고 개천절에 또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화가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11월 들어 산발적 집단감염이 계속 발생하고 계절적 요인까지 겹치며 하루 확진자가 200명을 훌쩍 넘어서는 등 대규모 재확산 조짐이 보이고 있어 여전히 정세균의 코로나19 방역 지휘는 계속되고 있다.
▲ 정세균 국무총리가 2020년 4월11일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을 방문해 의료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하기 위해 경제행보에 보폭 넓혀
정세균은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한 경제 활성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가까이 이어지는 등 장기화되면서 이제 정부는 방역뿐 아니라 민생과 경제도 함께 챙길 수밖에 없게 됐다. 

다행히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20년 2분기에 22년 만에 최저치인 –3.2%로 역성장해 바닥을 친 뒤 3분기부터는 성장세로 돌아섰다. 이에 정세균도 10월 들어 코로나19 확진자수가 진정 흐름을 보이자 경제행보에 무게를 두는 움직임을 보였다.

먼저 10월12일에는 ‘최근 2주 동안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 50명 미만’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는데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1단계로 완화했다.

정세균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완화를 놓고 “장기간 계속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고 민생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적극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에서는 10월12일 인공지능 반도체산업 발전전략, 15일에는 수소경제 로드맵 등 굵직한 경제정책도 연이어 내놨다.

정세균은 10월15일 열린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정부는 수소경제위원회를 구심점으로 민관이 힘을 모아 수소경제로 가는 길을 열어갈 것이다”며 “누구도 가보지 않은 수소경제로 길은 혼자 가면 힘들고 어렵지만 함께 가면 더 빠르고 쉽게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세균은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가 열린 날에는 직접 수소차를 타고 출근하기도 했다.

다만 11월 들어 다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있어 정세균의 경제행보는 뒤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 정부 두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
정세균은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2월1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직접 브리핑을 열고 “문재인 정부의 제2대 국무총리로 정세균 의원을 모시고자 한다”며 “시대적 요구에 가장 잘 맞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세균을 ‘풍부한 경륜과 정치력을 갖춘 분’으로 평가하며 온화한 인품으로 경청의 정치를 펼쳤다고 바라봤다.

정세균의 국무총리 임명을 놓고 과거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5위인 국무총리 자리를 맡는 게 부적절하다는 말도 나왔다. 더욱이 입법부 수장이었던 사람이 행정부 2인자로 가는 게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자유한국당의 비판도 제기됐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2월20일 국회에 정세균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냈고 2020년 1월13일 국회를 통과했다.

정세균은 2020년 1월14일 국무총리 취임사를 통해 “혼자 빨리 가는 특권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공정이 더 멀리 가는 힘이고 지혜”라며 “사회 각 분야의 불공정을 개선하고 더욱 튼튼한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국회의장 활동
정세균은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돼 국회를 이끌었다.

더불어민주당이 20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자 원내1당 몫인 국회의장 자리는 민주당이 차지하게 됐다.

2016년 6월9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국회의장 선출 투표에서 정세균은 287표 가운데 274표를 얻어 국회의장이 됐다.

정세균은 국회의장 수락연설에서 “20대 총선 민심으로 만들어진 여소야대와 다당제체제 아래에서 국회의장에게 부여된 막중한 소임에 최선을 다하고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정세균은 국회의장이 되며 공식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이 됐지만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과는 갈등이 많은 편이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려고 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지연작전을 펼쳤다.

정세균은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를 열고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했고 투표결과 해임 건의안이 가결됐다. 새누리당은 정세균이 중립성을 위반해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했다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세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한 국회의장으로도 기록됐다.

2016년 12월8일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은 국회 본회의에 올랐다. 하루 뒤인 9일 본회의장에 상정된 탄핵안 표결에서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99명이 참석해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은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야당 정치인으로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맞서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뒤 정세균은 10여 년에 걸친 야당 시절을 하면서 여당과 정부에 맞섰다. 

정세균은 2008년 7월 통합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대철, 추미애 등 경쟁자들을 제치고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정세균은 당대표로서 수차례 선거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이전에 대선과 총선에서 참패했던 악조건에서 당을 수습했다는 말을 들었다.

당대표를 맡은 뒤 첫 선거인 2009년 10월29일 재보궐선거에서 통합민주당은 3석을 얻으며 2석을 차지하는 데 그친 한나라당을 이긴 것으로 평가됐다.

이어 2010년 6월2일 지방선거에서는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바로 그해 7월28일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는 민주당이 패배해 정 세균은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정세균은 야당 시절에 텃밭이나 다름없는 진안무주장수 지역구를 떠나 서울 종로로 옮겨 막강한 여당 정치인들을 잇달아 꺾으며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정세균은 2012년 총선에서 친박근혜계 유력 정치인 홍사덕 새누리당 후보와 맞붙어 52.27% 득표율을 보이며 승리했다.

2016년에는 같은 지역구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대결해 52.6%의 지지를 받으며 39.7% 득표율을 보인 오 전 시장을 크게 이겼다. 애초에 정세균이 오 전 시장보다 훨씬 불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있고 여론조사 결과도 오차범위 밖으로 뒤지고 있었다. 

△참여정부에서 정치적 입지 강화
정세균은 참여정부(2003~2008)가 들어선 이후 장관과 주요 당직을 거치며 거물급 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정세균은 2003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 때 합류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일 때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았는데 열린우리당에서도 같은 직책을 담당하며 원내대표였던 김근태 전 의원과 호흡을 맞췄다.

그 뒤 정세균은 국회 주요 상임위원회로 꼽히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예결특위 위원장을 놓고 벌인 경합을 벌인 상대는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한길 전 의원이었다.

정세균은 열린우리당 내부 갈등으로 지도부가 총사퇴하며 공석이 된 원내대표에 도전했다.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기도 했으나 열린우리당 내 각 계파 나름의 셈법에 따라 결국 정세균이 단독 출마해 2005년 1월에 원내대표에 오르게 됐다.

얼마 뒤 열린우리당은 2005년 10월26일 국회의원 재선거가 이뤄진 4곳에서 한나라당과 보수성향 무소속 후보에게 의석을 내주며 참패했다. 선거 참패의 여파로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물론 청와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총사퇴한 상황에서 원내대표였던 정세균은 열린우리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인선위원장을 맡게 됐다. 곧이어 정세균은 임시 당의장으로 추대됐다.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데다 계파 색채가 옅다는 점에서 비상시에 열린우리당을 맡아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힌 것으로 해석됐다.

당시 정세균은 열린우리당 의장, 원내대표를 겸임하며 여당의 막강한 당권을 지는 동시에 인지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

2006년에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돼 행정부 경험도 쌓으며 당시 이미 대선주자로까지 거론됐다.

정세균이 산자부 장관으로 있을 때 열린우리당은 정계개편을 앞두고 계파 갈등이 심화했다. 당내 상황이 어수선해지며 당의장을 지냈던 정세균의 당 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정세균은 2007년 2월 당의장으로 다시 추대됐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소속 국회의원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면서 집단탈당하며 안팎으로 시끄러웠다.

정세균은 탈당한 의원들이 결성한 통합신당과 다시 세력을 모으는 일을 진행했다.

결국 2007년 8월10일 대통합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이 합당했고 합당한 신당에는 과거 민주당과 한나라당 일부 세력도 합류했다. 이 때 한나라당에서 대선후보에도 도전했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입당해 함께 배를 탔다. 

△정치 입문
쌍용그룹 상무로 일하던 1995년에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 김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에 임명되며 정치를 시작했다.

정세균은 1996년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전북 진안무주장수 선거구에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총선 때마다 낙선 없이 매번 당선돼 선수로 6선에 성공했는데 진안무주장수 지역구에서만 2008년까지 4번 당선됐다.

초선 의원으로서 새정치국민회이 원내부총무와 당총재 특별보좌역 등을 맡았다.

이후 새정치국민회의가 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꿔 확대 개편한 뒤에는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일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쌍용그룹 활동
정치에 발을 들이기 전에 쌍용그룹에서 무역 업무를 담당했다. 쌍용그룹 입사 전 고려대 재학시절에는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정세균은 고려대학교에서 대학 내 신문사에서 기자활동을 했다. 정세균은 “실제로 공부보다는 고대신문사 일에 거의 매진했었던 것이 대학생활의 대부분”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에 오른 뒤에는 10월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정세균은 1978년에 쌍용그룹에 입사해 주로 무역업무를 맡으며 상무까지 승진했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주재원으로도 일했다.

뉴욕 주재원으로 있을 때 뉴욕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로스앤젤레스 주재원으로 있을 때 페퍼다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땄다.

정세균은 “‘라면에서 미사일까지’라는 국제영업의 최일선에서 몸 바쳐 일했다”며 “미국 지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선진 정치경제의 현장을 체득하는 좋은 기회를 갖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 비전과 과제
▲ 정세균 국무총리가 2020년 11월11일 부산시 진구 개금골목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은 2020년 11월 이후 하루 확진자 수가 200명을 훌쩍 웃돌 정도로 심각해진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대응해야 한다.

계절적 요인까지 겹친 만큼 한동안 국내 코로나19 확산세는 수그러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11월19일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1.5단계로 격상하는 등 방역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정세균은 11월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코로나19 방역이 위기에 직면했다”며 “특히 국민 절반 이상이 밀집한 수도권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안정되지 못하면 '경제총리'로서 정세균의 행보도 힘을 받기 어렵다.

정치권에서는 정세균이 2022년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바라본다.

정세균은 2020년 11월10일 광주·전남KBS 특별대담에 출연해 다음 대선에 도전할 것인지와 관련해 “내년 3월경에는 어떤 말을 할 시점이 다가올 걸로 보나”라는 질문을 받고 “그때 가서 보자”면서 여운을 남겼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대선 도전을 위해 2021년 초에 개각을 통해 총리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세균이 대선에 도전한다면 방역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인 뒤 총리에서 물러나는 일은 더욱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는 대선후보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일이 제일 큰 숙제다. 

정세균은 11월10일 기자간담회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윤 총장은 가족과 측근이 수사를 받는 중이니 자숙했으면 하고 추 장관은 점잖고 냉정하면서 절제된 언어를 사용했으면 좋겠다”며 말했다. 이례적으로 정치현안에 분명한 목소리를 낸 것인데,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왔다.  

◆ 평가
▲ 정세균 국무총리가 2020년 11월7일 서울시 마포구 홍대 주차장거리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캠페인을 벌이며 마스크를 나눠 준 외국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드러운 성격으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신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온화한 성품으로 당직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별명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정치인으로써 색깔이 약하고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잠재적 대선주자로 꾸준히 거명되면서도 지지율이 1~2%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민주당 대표 시절에는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자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고 6일간 단식투쟁을 벌이는 등 강단 있는 면모를 선보인 적도 있다. 

정세균은 미디어법이 영구집권을 위해 한나라당이 꾸민 전술이라며 헌법 권한쟁의심판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장외투쟁은 5개월 동안이나 이어졌다. 

참여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길지 않게 재직했다. 경제부총리로 입각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으나 산자부 장관에 임명됐다.

당시 한나라당에서 여당의 대표가 장관으로 가는 것을 두고 부끄럽지 않냐고 지적하기도 했으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느 곳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라고 응수했다.

산자부 장관 재임기간에 수출 3천억 달러시대가 열려 3천억 달러의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부인 최혜경씨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최홍준씨의 딸이다. 최홍준씨가 정세균을 대성할 인물로 보고 사윗감으로 점찍었다고 한다.

최혜경씨는 경북 포항 출신으로 가족이 함께 상경해 진명여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재학 중 미팅에서 정세균을 만났다.

정세균이 다녀온다는 말도 없이 군대에 갔지만 끝까지 기다려 결혼했다고 한다. 최씨는 남편이 집에서 말도 잘 안하고 애정 표현도 거의 없어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계파색이 강하지 않으나 범친노로 분류되기도 한다. 민주당 내에서는 “어려울 때 정세균 신세 안 져본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다.

정세균이 당대표를 세 차례 지냈고 대선후보 경선까지 치르는 등 오랜 기간 당내 활동을 이어온 만큼 당내에는 정세균계(SK계)가 형성돼 있다.

어린 시절 형편은 넉넉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정고시로 중학교 학력을 취득했고 고등학교는 무주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전주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로, 다시 인문계인 전주신흥고등학교로 두차례나 전학을 했다. 공업고등학교에서 항상 1등이었지만 신흥고등학교를 다닐 형편이 안 돼 교장에게 장학금을 달라고 요청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법관을 꿈꾸다가 유신체제에서 꿈을 접었고 학교 신문사 활동을 하며 언론인이 되고자 했으나 1974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를 보고 이 역시 포기했다고 한다.

6선을 하는 동안 각종 이권비리에 연루되거나 사생활로 물의를 빚은 적이 없다. 1997년 한보그룹 비자금 사태 특별청문회에서 한보그룹 전문경영인이 유력 정치인에게 불법자금을 다 건넸지만 받지 않은 유일한 인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름에서 비롯된 별명 ‘세균맨’을 갖고 있으며 본인도 이를 알고 즐겨 활용한다. 블로그 이름을 ‘좋은 세균 정세균’이라고 하기도 하고 20대 선거 때는 선거유세차량의 이름을 소독차라고 붙였다. 국회의장 때는 SNS 이용자로부터 세균맨 인형을 선물 받아 국회의장실 책상 위에 두기도 했다.

과거 인사청문회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백범 김구 선생과 다산 정약용을 들었다.

◆ 사건사고

△포스코 송도사옥 매각 과정에 외압 의혹
2018년 3월19일 시사저널은 정세균이 2014년에 사업가 박모씨의 청탁을 받고 포스코 송도사옥 매각과정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정세균이 포스코 측에 ‘송도사옥을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보라’고 요구한 녹취록도 공개됐다.

정세균은 의혹을 부인하며 "박모씨는 교회를 다니며 알게됐고 박씨가 더 비싸게 팔 수 있는데 포스코가 싼 가격에 부영에 사옥을 팔려고 한다고 호소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불법적 개입이나 부정적 청탁은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국회의장 시절 자유한국당(새누리당)과 반목
정세균은 2016년 9월 정기국회 첫날 개회사에서 쓴소리를 하겠다면서 민감한 발언을 내놨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와 고위공직자 비리 전담 특별 수사기관 신설, 사드배치 반대 등을 촉구한 것이다. 

이에 여당은 환영했으나 새누리당은 “야당 대변인이냐”고 크게 반발하며 해임 결의안까지 제출했다. 새누리당은 국회일정까지 보이콧하며 20대 국회를 시작부터 파행으로 몰고갔다.

새누리당이 보이콧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처리하면서 “세월호나 어버이연합 둘 중에 하나 내놓으라는데 안 내놔, 그래서 맨입으로, 그래서 그냥은 안되는거지”라고 발언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새누리당은 정치중립 상실과 직권남용을 저질렀다며 국회의장을 검찰에 형사고발하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이에 정세균은 SNS에 짜장면을 먹는 사진을 올렸다가 새누리당의 반발에 삭제하기도 했다.

2016년 10월 새누리당이 정세균 부부의 ‘황제방미’와 ‘황후쇼핑’ 논란을 제기했다. 국회 예산으로 국회의장 부부동반 출장을 다녀오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딸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1등석을 이용하고 교민들에게 시계를 선물한 것 등도 문제삼았다.

그러나 정세균 측은 미국 하원의장의 공식초청에 따른 것이고 이전 국회의장들도 시계 등을 선물로 줬다고 해명했다. 또 정세균 부인이 연간 수천만 원을 사용해야 받을 수 있는 백화점 VIP카드를 관용차에 부착한 것도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정세균은 “정치적 도를 넘어섰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박사학위 논문 표절의혹
2012년 총선 때 박사학위 논문 표절의혹이 제기됐다. 새누리당은 정세균이 2004년 2월 경희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1991년 6월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제출된 이모씨의 석사학위 논문 상당 부분을 고스란히 베꼈다고 주장했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논평을 통해 “표절이라고 주장한 부분은 출처를 모두 밝혔다”며 대꾸할 가치가 없는 억지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학술단체협의회는 5월 기자회견을 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세균의 논문이 인용과 도용을 혼동해 표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산업자원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들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병역논란이 일었다. 병적증명서에 따르면 1975년 7월4일부터 1978년 1월17일까지 병역을 필한 것으로 돼있는데 쌍용이 제출한 경력증명서에 1978년 1월1일 입사한 것으로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세균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인사청문회에서 편법증여 의혹이 나왔다. 장남이 약 1억 원, 장녀가 약 7천만 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소득세나 증여세를 납부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세균은 “90년대 외할머니가 증여한 것과 용돈, 아르바이트 수입, 장학금, 산업체 병역특례 근무 수입 등을 모은 것”이라며 “사회통념상 액수가 많을 수 있으나 법적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 밖에 잦은 교통법규 위반에 따른 준법정신 결여 지적에 사과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밝혔고 가족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서는 위장전입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장관 인사청문회는 인사검증보다 오히려 정세균이 대표로 있을 때 사학법을 날치기 통과한 데 대한 한나라당의 사과 요구에 집중됐다. 한나라당이 청문회를 거부하는 등 파행이 지속됐으나 정세균은 “한나라당이 불참한 가운데 사학법이 통과돼 안타깝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며 유감 표명을 거부했다.

△행정도시특별법과 과거사법 빅딜설 발언 구설
정세균은 2005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활동할 때 한나라당과 행정도시특별법과 과거사법을 맞교환했다는 이른바 ‘빅딜설’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정세균은 야당인 한나라당과 협의를 통해 행정도시특별법 등 쟁점 법안을 통과시켰다.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던 법안을 처리하며 정세균의 협상력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세균은 2005년 3월3일 기자회견에서 “사실 2월에 당연히 처리했어야 하는데 한나라당쪽에서 행정도시특별법을 원만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과거사법을 연기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완곡한 요청이 있어 수락한 것”이라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지도부 사이 빅딜을 내비치는 말로 한나라당의 고발을 당하기에 이른다.

한나라당 법률지원단은 2005년 3월 7일 “정세균 원내대표를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혐의로 서울 남부지검에 고발한다”며 “한나라당을 분열시키고 야당 지도자를 음해하기 위해 ‘빅딜설’이라는 허위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정치적 술수를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 경력
▲ 정세균 국무총리가 2020년 1월14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시절 학교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학생운동에 몸담았다.

1973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됐다.

1978년에 쌍용그룹에 입사했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 종합상사 해외주재원으로 지내면서 시멘트, 기계부품, 신발 등 국제 영업 최전선에서 근무했다.

1995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정계입문 제안을 받고 특별보좌관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1995년 민주당 진안무주장수지구당 위원장에 올랐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전북 무주진안장수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15대 국회 상반기에 새정치국민회의 원내부총무를 지냈고 하반기에 원내수석부총무에 올랐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15대와 16회 국회에서 재정경제위원회 간사를 지내고 건설교통위원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등을 거쳤다.

2004년과 제17대 총선과 2008년 제18대 총선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돼 전북에서만 내리 4선을 했다. 17대 국회에서 정보위원회를 거쳐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5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올랐다.

2005년 10월 열린우리당 임시 당의장에 선출됐다.

2006년 2월 제9대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됐다.

2007년 1월 11개월만에 당으로 복귀해 2월 전당대회에서 당의장에 합의추대됐다.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이 출범한 뒤 상임고문으로 물러났다.

2007년 12월 17대 대선 때는 대통합민주신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7월 추미애 정대철 후보를 꺾고 민주당 대표에 뽑혔다. 18대 국회 때는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위원을 거쳤다.

2010년 10월 민주당 최고위원에 올랐다.

2011년 4월 싱크탱크 국민시대를 출범했다.

2011년 12월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됐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바꿔 종로구에서 출마했다. 친박 핵심인 홍사덕 전 의원을 접전 끝에 5천 표 차이로 꺾고 5선에 성공했다. 총선이 끝난 뒤 민주당 민생공약특위에서 경제민주화본부장을 맡았다.

2012년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당내 경선에 뛰어들었으나 문재인 후보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문재인캠프에서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꺾고 6선에 성공했다. 대선후보급 격돌로 관심을 모은 지역에서 초반 열세 관측을 뒤엎고 과반 이상 득표로 오 전 시장을 크게 따돌렸다.

2016년 6월부터 2018년 5월까지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냈다.

2020년 1월 문재인 정부의 2대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 학력

1963년 능길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정규중학교가 아닌 주천고등공민학교를 다니다 1966년 검정고시로 중학 졸업 학력을 취득했다.

1969년 전주 신흥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뉴욕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페퍼다인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2000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땄다.

2014년 8월22일 전북대학교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1978년 부인 최혜경씨와 결혼했다. 아들 정준원씨와 딸 정유선씨를 두고 있다.

◆ 상훈

2017년 페루 정부로부터 대십자훈장을 받았다.

201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 기타

2020년 3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정기재산변동신고에 따르면 정세균의 재산은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50억5430만4천 원이다.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본인 명의로 서울 마포구 상수동 소재 아파트 9억9200만 원, 서울 종로구 아파트 등 전세금 7억 원, 2018년식 제네시스 EQ900 등 차량 6519만3천만 원 등이다.

예금은 3억5866만3천 원, 채무는 2억6994만3천 원 등이다.

배우자 명의로 경북 포항에 위치한 임야 6만4790㎡(제곱미터) 32억62만6천 원 등도 신고했다.

정세균은 1975년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해 1978년 35사단에서 병장으로 만기제대했다.

저서는 ‘21세기 한국의 비전과 전략’(1999), ‘정세균이 바라보는 21세기 한국의 리더십’(2002), ‘나의 접시에는 먼지가 끼지 않는다’(2007), ‘질 좋은 성장과 희망한국’(2008), ‘정치 에너지’(2009), ‘정치 에너지 2.0’(2011), ‘99%를 위한 분수경제’(2011) 등이다.

◆ 어록
▲ 정세균 국무총리가 2020년 11월11일 세종시 세종공관에서 열린 취임 300일 기념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 여러분께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로서 책임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불필요한 논란이 계속된다면 총리로서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 고위공직자라면 절제하고 성찰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할 말 다 하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하면서 고위공직자로서 도리를 다한다 하겠나.” (2020/11/04,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 갈등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부산과 창원, 경남 시도민 여러분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동남권신공항 현안과 관련해 사안을 책임지고 있는 총리로서 몇 말씀 드릴까 한다. 부산, 울산, 경남 800만 시도민들의 간절한 여망이 외면받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잘 마무리짓겠다. 현재 정부는 김해신공항 건설 계획과 관련해 최종 검증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이와 관련해 부산을 비롯해 울산, 경남 지역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20/10/16, 부산시 금정구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제41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기념사에서)

“공권력을 총동원해 8·15 광복절 집회의 재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방역을 방해하거나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결과를 초래하면 책임을 묻고 구상권도 청구하겠다. 제가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인데 8·15 집회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 그리고 개천절에 또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화가 난다.” (2020/09/17,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의사협회가 8월14일에 집단휴진을 예고하고 있어 걱정이 매우 크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집단행동은 결코 신뢰와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다. 정부는 의사협회가 제안한 협의체 구성을 놓고 이미 수용 의사를 밝혔고 열린 자세로 의료계와 소통하기 위해 대화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다. 의사협회는 하루빨리 대화의 장으로 나와 보건복지부와 함께 지혜를 모아주기를 바란다.” (2020/08/12,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행정수도 문제는 2002년 대통령선거 때부터, 거의 20년 전부터 민주당이 소중하게 추진해 온 정책이다. 민심 수습용으로 보는 것은 오해다.” (2020/07/23,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방역과 경제, 우리가 가면 길이 된다. 방역에서 선제적이고 적극적 대응으로 세계적 모범을 보였듯, 경제에서도 과감한 특단의 조치를 통해 경제위기 극복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가겠다.” (2020/06/29, 3차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에서)

“24년 만에 (총선에) 출마를 안 한다. 조금 섭섭하다.” (2020/04/09, 세종시 도담동 복합커뮤니티센터을 방문해 사전투표 최종 모의시험을 참관하던 중 이춘희 세종시장으로부터 총선 불출마 관련 질문을 받고)

“일본 정부가 우리 국민들에 사실상 전면적 입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 정부도 적절한 대응조치를 강구하겠다.” (2020/03/06,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25일 오전 국무회의를 마치고 (대구·경북) 현장에 내려가 방역을 직접 진두지휘 하겠다. 대구·경북 확진자가 많은 현재 상황은 단순히 대구·경북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다. 중앙과 지방을 구분하지 않고 범정부적 역량을 총동원하겠다.” (2020/02/24,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제 총리, 통합 총리가 가고자 했던 길인데 코로나 총리가 되게 생겼다.” (2020/2/14,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인근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은 권력기관 민주화를 통해 특권 없는 공정사회로 나가는 새로운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다. 공정하고 특권이 없고 인권이 보호되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 요구를 차질없이 이행하겠다.” (2020/01/31, ‘특권없는 공정한 사회를 위한 권력기관 개혁 후속조치 추진계획’ 담화문에서)

“대한민국을 향한 마지막 봉사라는 각오로 희생하고 헌신하겠다. 총리로서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책임을 다하는데 모든 힘을 쏟겠다.” (2020/01/14,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총리 취임식 취임사에서)

"나라가 이렇게 안팎으로 어려울 때는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 힘이 될 수 있다면 무슨 일리든 하는 것이 공인의 태도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아마 국민들께서, 그리고 여야를 포함한 국회의원들께서도 그런 충정을 알아주실 것이다." (2019년 12월20일,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의 국무총리 후보자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야당에서 입법부 수장 출신의 총리 지명에 대해 삼권분립 훼손이라고 지적하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며)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국무총리에 지명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에 주력하겠다.”(2019/12/17, 국무총리에 지명된 뒤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법적으로 대응하겠다.”(2018/03/19, 포스코 송도사옥 매각 관련 부정청탁 의혹 보도를 놓고)

“헌법 개정과 정치제도 개혁은 국민과의 약속이자 국회의 책무다. 효율적 운영을 거쳐 구체적 성과를 내기 위해 개헌특위와 정개특위를 통합특위로 새로 구성한 것이다.”(2018/01/15, 헌법개정,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격려사를 하며)

“동물국회보다는 식물국회가 낫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식물국회가 식물정부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국회 내부에서도 높다.” (2017/06, 국회의장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2016/12/09,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를 발표하며)

“대통령이 현 시국의 엄중함에 대한 진심어린 마음으로 국회와 협력해 주시기를 요청한다. 대한민국의 파국을 바라는 국민은 단 한사람도 없다. 이런 시련과 고통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회가 단단히 중심을 잡아야 한다. 아무리 혼돈스러운 와중이라 하더라도 내년도 예산안 및 관련 세법 처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달라.” (2016/11/03, 국회 본회의 모두발언에서)

“오늘 3당 원내대표 회동은 초유의 국가 리더십 위기를 맞아 국민들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국회 본연의 임무인 예산과 민생현안을 논의하려는 자리였다. 회동을 시작도 하기 전에 여당이 자신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퇴장해 회담을 무산시킨 것은 매우 유감이다.” (2016/10/31, 여야3당 원내대표 회동이 무산되자)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법과 원칙에 따라 절차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예산부수법안 지정을 통해 합의되지 않고 일방 통행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라 생각한다. 지난 두 해 동안 세법 처리가 여야 간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합의보다는 의장의 직권상정으로 처리된 경우가 많았다. 저는 이것은 아주 좋지 않은 전례라고 생각한다. 의장으로서 이번 정기국회의 모든 세법 개정안은 여야가 합의를 통해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겠다. 합의가 이뤄지도록 의장으로서 최선의 지원과 노력을 다할 예정이다.” (2016/10/17, 2016 세법 개정안 토론회 축사에서)

“법인세는 우리 세수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세법 개정안이 예산안 처리 이전에 합의가 된다면 부수법안을 지정할 필요가 없다. 여야 간 제대로 조율되지 않아 예산 부수법안으로 지정될 상황이 오면 세입과 관련된 법안은 당연히 지정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6/09/22,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의원은 국민의 편에 서서, 잘못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께서 우리 국회를 신뢰합니다. 국회의장을 영어로 ‘Speaker’라고 합니다. 상석에 앉아 위엄을 지키는 Chairman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Speaker인 것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쓴 소리 좀 하겠습니다. 제 개인의 목소리가 아닌 국민의 목소리라 생각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2016/09/01,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우병우 거취 등을 언급하며)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3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철 지난 옷’처럼 사회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은 시대적 상황에 맞게 다듬고 보완해나가야 최고 규범으로서의 권위와 실질적 효용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제 여야 지도부가 국가개조를 위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새 헌법질서를 통해 낡은 국가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충분히 조성돼 있다. 늦어도 70주년 제헌절 전에는 새로운 헌법이 공포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6/07/17, 제68주년 제헌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더불어 성장론’은 한마디로 분배냐 성장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불평등 해소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는 성장 모델이며, 내수와 수출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성장전략이다. ‘더불어 성장’은 공정경제, 선도경제, 네트워크경제라는 세 축을 통해 더불어 발전을 추구한다." "공정경제를 통해 '분배를 통한 성장'을 추구하고, 선도경제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기업간 협력을 모색하며 네트워크경제를 통해 지역, 계층 간 상생을 추구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고 한다.” (2016/02/01, 더불어민주당 유능한경제정당위원회에서 경제정책기조인 ’더불어 성장론‘을 발표하며)

“혁신위는 종로가 어떤 지역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소선거제 이후 24년간 총선에서 (야당이) 단 한 번도 승리해보지 못 한 지역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궐선거에서 이겼던 것이 유일한 승리였고 총선에선 내가 이긴 것이 처음이다. 종로 재선이 되고 나서 대권에 거듭 도전해 볼 생각이 있다.” (2015/11/16, 팟캐스트 ‘나는 정청래다’에 출연해서)

“청년실업이 국가재난 상태에 이르렀다. 내 아들도 아직 취업준비생이다.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청년정책을 만들고 있다.” (2015/11/27, 성균관대 청년희망정책 특강에서)

“우리 정치의 큰 별이 또 한 분 졌다. 우리 민주화의 큰 역할을 하셨고 대통령으로서 정치 개혁의 선구자이셨다. 통합 선거법 만드셨고, 재임 중 금융실명제 같은 경제개혁과 하나회 척결 같은 묵은 유산의 척결에 큰 역할을 하신 김영삼 대통령의 서거에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 (2015/11/22, 김영삼 전 대통령을 조문하며)

“수출 대기업 중심의 낙수경제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활력이 솟아오르는 분수경제로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 부자감세가 아닌 서민경제를 살리는 민생경제로, 청년층의 희망과 활력을 살리는 청년경제로 바꿔야 한다. 정부 직접고용이 가능한 공공분야의 신규 일자리를 확충하고, 청년고용할당제를 민간 분야까지 넓혀야 한다.” (2015/10/16, 6대 국정과제를 제안하며)

“당 대표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갈등과 분열을 극복해야지 상대를 제압하려고 해선 안 된다. 고충이나 고심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재신임 투표가 지금의 혼란보다 더 큰 혼란을 낳을 수 있어 시기적으로도 방법상으로도 적절치 않다. 전당대회에서 한 번 선출된 당 대표를 툭하면 흠집 내고 흔드는 것은 잘못이라는 게 저의 일관된 생각이지만 문 대표가 총선이나 대선 전망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문제다.” (2015/09/11,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재신임안을 비판하며)

“저는 국민의 요구와 당원동지 여러분의 열망에 부응하고자 2·8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 우리 당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혁명적 수준의 혁신과 통합에 도움이 된다면 이 당의 문지기라도 마다하지 않겠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혁명과 승리를 위해 작은 밀알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번 전당대회가 통합과 희망, 미래를 함께 녹이는 혁명적 용광로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다하겠다.” (2014/12/26,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며)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취임 일성으로 들고 나온 것이 분수경제(bottom up economics)다. 분수경제론을 정치권에서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이 바로 필자인데 벌써 3년여가 지난 일이다. 그런데 소위 '최경환노믹스'라고 포장한 세법개정안이나 부동산 정책을 보면, 겉모습은 분수경제로 포장했으나 낙수효과에 의존하는 정책임을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다. '최경환노믹스'가 진정한 분수경제를 지향한다면 세법개정안, 부동산 정책 등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 낙수경제가 명백한 데 분수경제로 읽어달라는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기 전에, 국회에서 논쟁하여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4/08/10, 칼럼을 통해 최경환노믹스를 비판하며)

“진상규명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 그것이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다 받아들여야 한다. 새누리당이 지방선거 때문에 주저한다면 선거 이후에 해도 좋다. 온 국민을 슬픔에 빠뜨리고 사회 전체를 뒤흔든 사건 앞에서 대한민국 정치가 이정도의 노력조차 마다해서는 안 된다.” (2014/05/09,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SNS에 올린 글)

“18대 대통령 선거는 국정원과 군이 개입된 명백한 부정선거다. 국정감사가 끝나는 즉시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 자신을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국민을 대규모로 조직하고 부정선거 규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고강도 2차 투쟁에 돌입해야 한다. 지금까지 증거들이 부정선거란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을 위해서 대통령에 도전한 것이 아니라 새마을운동과 유신의 부활이 목적이다” (2013/10/21, 18대 대선이 부정선거라며 SNS에 올린 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보면 상당한 수준으로 국격이 올라갔다. 한류로 인한 브랜드 가치도 많이 올랐다.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서 정상들도 만나고 해야 되는데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국격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 (2012/12/09, 18대 대선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지금 대한민국에는 유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나는 위기 극복에 요구되는 경험과 전문성을 갖추었고, 균형감각을 지닌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또한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결단력과 올바른 판단력이 있고, 국민 여러분과 같은 눈높이 생각을 가졌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바뀌어야 한다. 일 해보지 않은 사람, 검증되지 않은 능력은 불안하다.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의 대통령 시대도 넘어서야 한다. 창조적 계승은 답습하는 게 아니다, 극복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한다.” (2012/06/26, 경제대통령이 되겠다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민주당이 한번도 종로에서 승리한 적이 없었다. 저를 뽑아주신 여러분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 종로의 민심은 대한민국 국민의 민심이다. 민생을 살리고 이명박정권을 제대로 심판하라는 것이 종로구민의 민심이었다. 이런 민심이 표로 제대로 연결돼 제가 종로구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이 곳 종로는 자영업자와 소기업들이 많은 곳으로 민생경제가 파탄났기 때문에 무엇보다 민생경제를 살리겠다. 민주주의를 제자리로 돌려두는 데 노력하겠다.” (2012/04/11, 19대 총선 당선소감에서)

◆ 활동의 공과

△코로나19 총리, K-방역 성과
정세균이 총리에 취임한 2020년 1월14일 이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1월19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2월 들어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는 등 국내 코로나19 상황도 본격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정세균은 2월14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제총리, 통합총리가 가고자 했던 길인데 코로나19 총리가 되게 생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코로나19 감염이 계속 확산되자 정세균은 2월23일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직접 본부장을 맡았다.

같은 달 25일부터는 대구에 상주하면서 현장에서 방역을 진두지휘했다.

정세균은 대구에 상주하기로 결정하면서 “대구경북 확진자가 많은 현재 상황은 단순히 대구경북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라며 “중앙과 지방을 구분하지 않고 범정부적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다.

2월 이후 국내 코로나 확진자 수는 진정되는 흐름을 보였고 4월경에는 하루 확진자 수가 10명을 밑돌았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상황이 외국과 비교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K-방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정부의 성공적 코로나19 대응은 여론의 지지를 받았고 4월15일 치러진 제21대 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압승을 이끌어 내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2020년 하반기 들어 광복절 집회 등으로 하루 확진자 수가 한동안 100명을 웃도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9월부터 10월 초 사이에는 다시 하루 확진자 수를 두 자릿수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정세균은 개천절을 앞두고 “방역을 방해하거나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결과를 초래하면 책임을 묻고 구상권도 청구하겠다”며 “제가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인데 8·15 집회를 생각하면 화가 나고 개천절에 또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화가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11월 들어 산발적 집단감염이 계속 발생하고 계절적 요인까지 겹치며 하루 확진자가 200명을 훌쩍 넘어서는 등 대규모 재확산 조짐이 보이고 있어 여전히 정세균의 코로나19 방역 지휘는 계속되고 있다.
▲ 정세균 국무총리가 2020년 4월11일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을 방문해 의료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하기 위해 경제행보에 보폭 넓혀
정세균은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한 경제 활성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가까이 이어지는 등 장기화되면서 이제 정부는 방역뿐 아니라 민생과 경제도 함께 챙길 수밖에 없게 됐다. 

다행히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20년 2분기에 22년 만에 최저치인 –3.2%로 역성장해 바닥을 친 뒤 3분기부터는 성장세로 돌아섰다. 이에 정세균도 10월 들어 코로나19 확진자수가 진정 흐름을 보이자 경제행보에 무게를 두는 움직임을 보였다.

먼저 10월12일에는 ‘최근 2주 동안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 50명 미만’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는데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1단계로 완화했다.

정세균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완화를 놓고 “장기간 계속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고 민생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적극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에서는 10월12일 인공지능 반도체산업 발전전략, 15일에는 수소경제 로드맵 등 굵직한 경제정책도 연이어 내놨다.

정세균은 10월15일 열린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정부는 수소경제위원회를 구심점으로 민관이 힘을 모아 수소경제로 가는 길을 열어갈 것이다”며 “누구도 가보지 않은 수소경제로 길은 혼자 가면 힘들고 어렵지만 함께 가면 더 빠르고 쉽게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세균은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가 열린 날에는 직접 수소차를 타고 출근하기도 했다.

다만 11월 들어 다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있어 정세균의 경제행보는 뒤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 정부 두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
정세균은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2월1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직접 브리핑을 열고 “문재인 정부의 제2대 국무총리로 정세균 의원을 모시고자 한다”며 “시대적 요구에 가장 잘 맞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세균을 ‘풍부한 경륜과 정치력을 갖춘 분’으로 평가하며 온화한 인품으로 경청의 정치를 펼쳤다고 바라봤다.

정세균의 국무총리 임명을 놓고 과거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5위인 국무총리 자리를 맡는 게 부적절하다는 말도 나왔다. 더욱이 입법부 수장이었던 사람이 행정부 2인자로 가는 게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자유한국당의 비판도 제기됐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2월20일 국회에 정세균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냈고 2020년 1월13일 국회를 통과했다.

정세균은 2020년 1월14일 국무총리 취임사를 통해 “혼자 빨리 가는 특권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공정이 더 멀리 가는 힘이고 지혜”라며 “사회 각 분야의 불공정을 개선하고 더욱 튼튼한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국회의장 활동
정세균은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돼 국회를 이끌었다.

더불어민주당이 20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자 원내1당 몫인 국회의장 자리는 민주당이 차지하게 됐다.

2016년 6월9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국회의장 선출 투표에서 정세균은 287표 가운데 274표를 얻어 국회의장이 됐다.

정세균은 국회의장 수락연설에서 “20대 총선 민심으로 만들어진 여소야대와 다당제체제 아래에서 국회의장에게 부여된 막중한 소임에 최선을 다하고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정세균은 국회의장이 되며 공식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이 됐지만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과는 갈등이 많은 편이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려고 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지연작전을 펼쳤다.

정세균은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를 열고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했고 투표결과 해임 건의안이 가결됐다. 새누리당은 정세균이 중립성을 위반해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했다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세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한 국회의장으로도 기록됐다.

2016년 12월8일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은 국회 본회의에 올랐다. 하루 뒤인 9일 본회의장에 상정된 탄핵안 표결에서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99명이 참석해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은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야당 정치인으로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맞서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뒤 정세균은 10여 년에 걸친 야당 시절을 하면서 여당과 정부에 맞섰다. 

정세균은 2008년 7월 통합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대철, 추미애 등 경쟁자들을 제치고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정세균은 당대표로서 수차례 선거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이전에 대선과 총선에서 참패했던 악조건에서 당을 수습했다는 말을 들었다.

당대표를 맡은 뒤 첫 선거인 2009년 10월29일 재보궐선거에서 통합민주당은 3석을 얻으며 2석을 차지하는 데 그친 한나라당을 이긴 것으로 평가됐다.

이어 2010년 6월2일 지방선거에서는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바로 그해 7월28일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는 민주당이 패배해 정 세균은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정세균은 야당 시절에 텃밭이나 다름없는 진안무주장수 지역구를 떠나 서울 종로로 옮겨 막강한 여당 정치인들을 잇달아 꺾으며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정세균은 2012년 총선에서 친박근혜계 유력 정치인 홍사덕 새누리당 후보와 맞붙어 52.27% 득표율을 보이며 승리했다.

2016년에는 같은 지역구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대결해 52.6%의 지지를 받으며 39.7% 득표율을 보인 오 전 시장을 크게 이겼다. 애초에 정세균이 오 전 시장보다 훨씬 불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있고 여론조사 결과도 오차범위 밖으로 뒤지고 있었다. 

△참여정부에서 정치적 입지 강화
정세균은 참여정부(2003~2008)가 들어선 이후 장관과 주요 당직을 거치며 거물급 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정세균은 2003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 때 합류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일 때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았는데 열린우리당에서도 같은 직책을 담당하며 원내대표였던 김근태 전 의원과 호흡을 맞췄다.

그 뒤 정세균은 국회 주요 상임위원회로 꼽히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예결특위 위원장을 놓고 벌인 경합을 벌인 상대는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한길 전 의원이었다.

정세균은 열린우리당 내부 갈등으로 지도부가 총사퇴하며 공석이 된 원내대표에 도전했다.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기도 했으나 열린우리당 내 각 계파 나름의 셈법에 따라 결국 정세균이 단독 출마해 2005년 1월에 원내대표에 오르게 됐다.

얼마 뒤 열린우리당은 2005년 10월26일 국회의원 재선거가 이뤄진 4곳에서 한나라당과 보수성향 무소속 후보에게 의석을 내주며 참패했다. 선거 참패의 여파로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물론 청와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총사퇴한 상황에서 원내대표였던 정세균은 열린우리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인선위원장을 맡게 됐다. 곧이어 정세균은 임시 당의장으로 추대됐다.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데다 계파 색채가 옅다는 점에서 비상시에 열린우리당을 맡아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힌 것으로 해석됐다.

당시 정세균은 열린우리당 의장, 원내대표를 겸임하며 여당의 막강한 당권을 지는 동시에 인지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

2006년에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돼 행정부 경험도 쌓으며 당시 이미 대선주자로까지 거론됐다.

정세균이 산자부 장관으로 있을 때 열린우리당은 정계개편을 앞두고 계파 갈등이 심화했다. 당내 상황이 어수선해지며 당의장을 지냈던 정세균의 당 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정세균은 2007년 2월 당의장으로 다시 추대됐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소속 국회의원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면서 집단탈당하며 안팎으로 시끄러웠다.

정세균은 탈당한 의원들이 결성한 통합신당과 다시 세력을 모으는 일을 진행했다.

결국 2007년 8월10일 대통합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이 합당했고 합당한 신당에는 과거 민주당과 한나라당 일부 세력도 합류했다. 이 때 한나라당에서 대선후보에도 도전했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입당해 함께 배를 탔다. 

△정치 입문
쌍용그룹 상무로 일하던 1995년에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 김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에 임명되며 정치를 시작했다.

정세균은 1996년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전북 진안무주장수 선거구에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총선 때마다 낙선 없이 매번 당선돼 선수로 6선에 성공했는데 진안무주장수 지역구에서만 2008년까지 4번 당선됐다.

초선 의원으로서 새정치국민회이 원내부총무와 당총재 특별보좌역 등을 맡았다.

이후 새정치국민회의가 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꿔 확대 개편한 뒤에는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일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쌍용그룹 활동
정치에 발을 들이기 전에 쌍용그룹에서 무역 업무를 담당했다. 쌍용그룹 입사 전 고려대 재학시절에는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정세균은 고려대학교에서 대학 내 신문사에서 기자활동을 했다. 정세균은 “실제로 공부보다는 고대신문사 일에 거의 매진했었던 것이 대학생활의 대부분”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에 오른 뒤에는 10월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정세균은 1978년에 쌍용그룹에 입사해 주로 무역업무를 맡으며 상무까지 승진했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주재원으로도 일했다.

뉴욕 주재원으로 있을 때 뉴욕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로스앤젤레스 주재원으로 있을 때 페퍼다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땄다.

정세균은 “‘라면에서 미사일까지’라는 국제영업의 최일선에서 몸 바쳐 일했다”며 “미국 지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선진 정치경제의 현장을 체득하는 좋은 기회를 갖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 비전과 과제
▲ 정세균 국무총리가 2020년 11월11일 부산시 진구 개금골목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은 2020년 11월 이후 하루 확진자 수가 200명을 훌쩍 웃돌 정도로 심각해진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대응해야 한다.

계절적 요인까지 겹친 만큼 한동안 국내 코로나19 확산세는 수그러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11월19일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1.5단계로 격상하는 등 방역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정세균은 11월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코로나19 방역이 위기에 직면했다”며 “특히 국민 절반 이상이 밀집한 수도권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안정되지 못하면 '경제총리'로서 정세균의 행보도 힘을 받기 어렵다.

정치권에서는 정세균이 2022년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바라본다.

정세균은 2020년 11월10일 광주·전남KBS 특별대담에 출연해 다음 대선에 도전할 것인지와 관련해 “내년 3월경에는 어떤 말을 할 시점이 다가올 걸로 보나”라는 질문을 받고 “그때 가서 보자”면서 여운을 남겼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대선 도전을 위해 2021년 초에 개각을 통해 총리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세균이 대선에 도전한다면 방역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인 뒤 총리에서 물러나는 일은 더욱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는 대선후보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일이 제일 큰 숙제다. 

정세균은 11월10일 기자간담회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윤 총장은 가족과 측근이 수사를 받는 중이니 자숙했으면 하고 추 장관은 점잖고 냉정하면서 절제된 언어를 사용했으면 좋겠다”며 말했다. 이례적으로 정치현안에 분명한 목소리를 낸 것인데,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왔다.  


◆ 평가
▲ 정세균 국무총리가 2020년 11월7일 서울시 마포구 홍대 주차장거리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캠페인을 벌이며 마스크를 나눠 준 외국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드러운 성격으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신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온화한 성품으로 당직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별명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정치인으로써 색깔이 약하고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잠재적 대선주자로 꾸준히 거명되면서도 지지율이 1~2%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민주당 대표 시절에는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자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고 6일간 단식투쟁을 벌이는 등 강단 있는 면모를 선보인 적도 있다. 

정세균은 미디어법이 영구집권을 위해 한나라당이 꾸민 전술이라며 헌법 권한쟁의심판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장외투쟁은 5개월 동안이나 이어졌다. 

참여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길지 않게 재직했다. 경제부총리로 입각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으나 산자부 장관에 임명됐다.

당시 한나라당에서 여당의 대표가 장관으로 가는 것을 두고 부끄럽지 않냐고 지적하기도 했으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느 곳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라고 응수했다.

산자부 장관 재임기간에 수출 3천억 달러시대가 열려 3천억 달러의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부인 최혜경씨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최홍준씨의 딸이다. 최홍준씨가 정세균을 대성할 인물로 보고 사윗감으로 점찍었다고 한다.

최혜경씨는 경북 포항 출신으로 가족이 함께 상경해 진명여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재학 중 미팅에서 정세균을 만났다.

정세균이 다녀온다는 말도 없이 군대에 갔지만 끝까지 기다려 결혼했다고 한다. 최씨는 남편이 집에서 말도 잘 안하고 애정 표현도 거의 없어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계파색이 강하지 않으나 범친노로 분류되기도 한다. 민주당 내에서는 “어려울 때 정세균 신세 안 져본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다.

정세균이 당대표를 세 차례 지냈고 대선후보 경선까지 치르는 등 오랜 기간 당내 활동을 이어온 만큼 당내에는 정세균계(SK계)가 형성돼 있다.

어린 시절 형편은 넉넉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정고시로 중학교 학력을 취득했고 고등학교는 무주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전주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로, 다시 인문계인 전주신흥고등학교로 두차례나 전학을 했다. 공업고등학교에서 항상 1등이었지만 신흥고등학교를 다닐 형편이 안 돼 교장에게 장학금을 달라고 요청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법관을 꿈꾸다가 유신체제에서 꿈을 접었고 학교 신문사 활동을 하며 언론인이 되고자 했으나 1974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를 보고 이 역시 포기했다고 한다.

6선을 하는 동안 각종 이권비리에 연루되거나 사생활로 물의를 빚은 적이 없다. 1997년 한보그룹 비자금 사태 특별청문회에서 한보그룹 전문경영인이 유력 정치인에게 불법자금을 다 건넸지만 받지 않은 유일한 인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름에서 비롯된 별명 ‘세균맨’을 갖고 있으며 본인도 이를 알고 즐겨 활용한다. 블로그 이름을 ‘좋은 세균 정세균’이라고 하기도 하고 20대 선거 때는 선거유세차량의 이름을 소독차라고 붙였다. 국회의장 때는 SNS 이용자로부터 세균맨 인형을 선물 받아 국회의장실 책상 위에 두기도 했다.

과거 인사청문회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백범 김구 선생과 다산 정약용을 들었다.

◆ 사건사고

△포스코 송도사옥 매각 과정에 외압 의혹
2018년 3월19일 시사저널은 정세균이 2014년에 사업가 박모씨의 청탁을 받고 포스코 송도사옥 매각과정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정세균이 포스코 측에 ‘송도사옥을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보라’고 요구한 녹취록도 공개됐다.

정세균은 의혹을 부인하며 "박모씨는 교회를 다니며 알게됐고 박씨가 더 비싸게 팔 수 있는데 포스코가 싼 가격에 부영에 사옥을 팔려고 한다고 호소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불법적 개입이나 부정적 청탁은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국회의장 시절 자유한국당(새누리당)과 반목
정세균은 2016년 9월 정기국회 첫날 개회사에서 쓴소리를 하겠다면서 민감한 발언을 내놨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와 고위공직자 비리 전담 특별 수사기관 신설, 사드배치 반대 등을 촉구한 것이다. 

이에 여당은 환영했으나 새누리당은 “야당 대변인이냐”고 크게 반발하며 해임 결의안까지 제출했다. 새누리당은 국회일정까지 보이콧하며 20대 국회를 시작부터 파행으로 몰고갔다.

새누리당이 보이콧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처리하면서 “세월호나 어버이연합 둘 중에 하나 내놓으라는데 안 내놔, 그래서 맨입으로, 그래서 그냥은 안되는거지”라고 발언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새누리당은 정치중립 상실과 직권남용을 저질렀다며 국회의장을 검찰에 형사고발하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이에 정세균은 SNS에 짜장면을 먹는 사진을 올렸다가 새누리당의 반발에 삭제하기도 했다.

2016년 10월 새누리당이 정세균 부부의 ‘황제방미’와 ‘황후쇼핑’ 논란을 제기했다. 국회 예산으로 국회의장 부부동반 출장을 다녀오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딸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1등석을 이용하고 교민들에게 시계를 선물한 것 등도 문제삼았다.

그러나 정세균 측은 미국 하원의장의 공식초청에 따른 것이고 이전 국회의장들도 시계 등을 선물로 줬다고 해명했다. 또 정세균 부인이 연간 수천만 원을 사용해야 받을 수 있는 백화점 VIP카드를 관용차에 부착한 것도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정세균은 “정치적 도를 넘어섰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박사학위 논문 표절의혹
2012년 총선 때 박사학위 논문 표절의혹이 제기됐다. 새누리당은 정세균이 2004년 2월 경희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1991년 6월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제출된 이모씨의 석사학위 논문 상당 부분을 고스란히 베꼈다고 주장했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논평을 통해 “표절이라고 주장한 부분은 출처를 모두 밝혔다”며 대꾸할 가치가 없는 억지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학술단체협의회는 5월 기자회견을 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세균의 논문이 인용과 도용을 혼동해 표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산업자원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들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병역논란이 일었다. 병적증명서에 따르면 1975년 7월4일부터 1978년 1월17일까지 병역을 필한 것으로 돼있는데 쌍용이 제출한 경력증명서에 1978년 1월1일 입사한 것으로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세균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인사청문회에서 편법증여 의혹이 나왔다. 장남이 약 1억 원, 장녀가 약 7천만 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소득세나 증여세를 납부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세균은 “90년대 외할머니가 증여한 것과 용돈, 아르바이트 수입, 장학금, 산업체 병역특례 근무 수입 등을 모은 것”이라며 “사회통념상 액수가 많을 수 있으나 법적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 밖에 잦은 교통법규 위반에 따른 준법정신 결여 지적에 사과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밝혔고 가족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서는 위장전입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장관 인사청문회는 인사검증보다 오히려 정세균이 대표로 있을 때 사학법을 날치기 통과한 데 대한 한나라당의 사과 요구에 집중됐다. 한나라당이 청문회를 거부하는 등 파행이 지속됐으나 정세균은 “한나라당이 불참한 가운데 사학법이 통과돼 안타깝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며 유감 표명을 거부했다.

△행정도시특별법과 과거사법 빅딜설 발언 구설
정세균은 2005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활동할 때 한나라당과 행정도시특별법과 과거사법을 맞교환했다는 이른바 ‘빅딜설’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정세균은 야당인 한나라당과 협의를 통해 행정도시특별법 등 쟁점 법안을 통과시켰다.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던 법안을 처리하며 정세균의 협상력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세균은 2005년 3월3일 기자회견에서 “사실 2월에 당연히 처리했어야 하는데 한나라당쪽에서 행정도시특별법을 원만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과거사법을 연기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완곡한 요청이 있어 수락한 것”이라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지도부 사이 빅딜을 내비치는 말로 한나라당의 고발을 당하기에 이른다.

한나라당 법률지원단은 2005년 3월 7일 “정세균 원내대표를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혐의로 서울 남부지검에 고발한다”며 “한나라당을 분열시키고 야당 지도자를 음해하기 위해 ‘빅딜설’이라는 허위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정치적 술수를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 경력
▲ 정세균 국무총리가 2020년 1월14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시절 학교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학생운동에 몸담았다.

1973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됐다.

1978년에 쌍용그룹에 입사했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 종합상사 해외주재원으로 지내면서 시멘트, 기계부품, 신발 등 국제 영업 최전선에서 근무했다.

1995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정계입문 제안을 받고 특별보좌관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1995년 민주당 진안무주장수지구당 위원장에 올랐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전북 무주진안장수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15대 국회 상반기에 새정치국민회의 원내부총무를 지냈고 하반기에 원내수석부총무에 올랐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15대와 16회 국회에서 재정경제위원회 간사를 지내고 건설교통위원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등을 거쳤다.

2004년과 제17대 총선과 2008년 제18대 총선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돼 전북에서만 내리 4선을 했다. 17대 국회에서 정보위원회를 거쳐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5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올랐다.

2005년 10월 열린우리당 임시 당의장에 선출됐다.

2006년 2월 제9대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됐다.

2007년 1월 11개월만에 당으로 복귀해 2월 전당대회에서 당의장에 합의추대됐다.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이 출범한 뒤 상임고문으로 물러났다.

2007년 12월 17대 대선 때는 대통합민주신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7월 추미애 정대철 후보를 꺾고 민주당 대표에 뽑혔다. 18대 국회 때는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위원을 거쳤다.

2010년 10월 민주당 최고위원에 올랐다.

2011년 4월 싱크탱크 국민시대를 출범했다.

2011년 12월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됐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바꿔 종로구에서 출마했다. 친박 핵심인 홍사덕 전 의원을 접전 끝에 5천 표 차이로 꺾고 5선에 성공했다. 총선이 끝난 뒤 민주당 민생공약특위에서 경제민주화본부장을 맡았다.

2012년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당내 경선에 뛰어들었으나 문재인 후보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문재인캠프에서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꺾고 6선에 성공했다. 대선후보급 격돌로 관심을 모은 지역에서 초반 열세 관측을 뒤엎고 과반 이상 득표로 오 전 시장을 크게 따돌렸다.

2016년 6월부터 2018년 5월까지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냈다.

2020년 1월 문재인 정부의 2대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 학력

1963년 능길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정규중학교가 아닌 주천고등공민학교를 다니다 1966년 검정고시로 중학 졸업 학력을 취득했다.

1969년 전주 신흥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뉴욕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페퍼다인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2000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땄다.

2014년 8월22일 전북대학교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1978년 부인 최혜경씨와 결혼했다. 아들 정준원씨와 딸 정유선씨를 두고 있다.

◆ 상훈

2017년 페루 정부로부터 대십자훈장을 받았다.

201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 기타

2020년 3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정기재산변동신고에 따르면 정세균의 재산은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50억5430만4천 원이다.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본인 명의로 서울 마포구 상수동 소재 아파트 9억9200만 원, 서울 종로구 아파트 등 전세금 7억 원, 2018년식 제네시스 EQ900 등 차량 6519만3천만 원 등이다.

예금은 3억5866만3천 원, 채무는 2억6994만3천 원 등이다.

배우자 명의로 경북 포항에 위치한 임야 6만4790㎡(제곱미터) 32억62만6천 원 등도 신고했다.

정세균은 1975년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해 1978년 35사단에서 병장으로 만기제대했다.

저서는 ‘21세기 한국의 비전과 전략’(1999), ‘정세균이 바라보는 21세기 한국의 리더십’(2002), ‘나의 접시에는 먼지가 끼지 않는다’(2007), ‘질 좋은 성장과 희망한국’(2008), ‘정치 에너지’(2009), ‘정치 에너지 2.0’(2011), ‘99%를 위한 분수경제’(2011) 등이다.


◆ 어록
▲ 정세균 국무총리가 2020년 11월11일 세종시 세종공관에서 열린 취임 300일 기념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 여러분께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로서 책임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불필요한 논란이 계속된다면 총리로서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 고위공직자라면 절제하고 성찰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할 말 다 하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하면서 고위공직자로서 도리를 다한다 하겠나.” (2020/11/04,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 갈등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부산과 창원, 경남 시도민 여러분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동남권신공항 현안과 관련해 사안을 책임지고 있는 총리로서 몇 말씀 드릴까 한다. 부산, 울산, 경남 800만 시도민들의 간절한 여망이 외면받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잘 마무리짓겠다. 현재 정부는 김해신공항 건설 계획과 관련해 최종 검증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이와 관련해 부산을 비롯해 울산, 경남 지역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20/10/16, 부산시 금정구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제41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기념사에서)

“공권력을 총동원해 8·15 광복절 집회의 재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방역을 방해하거나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결과를 초래하면 책임을 묻고 구상권도 청구하겠다. 제가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인데 8·15 집회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 그리고 개천절에 또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화가 난다.” (2020/09/17,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의사협회가 8월14일에 집단휴진을 예고하고 있어 걱정이 매우 크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집단행동은 결코 신뢰와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다. 정부는 의사협회가 제안한 협의체 구성을 놓고 이미 수용 의사를 밝혔고 열린 자세로 의료계와 소통하기 위해 대화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다. 의사협회는 하루빨리 대화의 장으로 나와 보건복지부와 함께 지혜를 모아주기를 바란다.” (2020/08/12,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행정수도 문제는 2002년 대통령선거 때부터, 거의 20년 전부터 민주당이 소중하게 추진해 온 정책이다. 민심 수습용으로 보는 것은 오해다.” (2020/07/23,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방역과 경제, 우리가 가면 길이 된다. 방역에서 선제적이고 적극적 대응으로 세계적 모범을 보였듯, 경제에서도 과감한 특단의 조치를 통해 경제위기 극복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가겠다.” (2020/06/29, 3차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에서)

“24년 만에 (총선에) 출마를 안 한다. 조금 섭섭하다.” (2020/04/09, 세종시 도담동 복합커뮤니티센터을 방문해 사전투표 최종 모의시험을 참관하던 중 이춘희 세종시장으로부터 총선 불출마 관련 질문을 받고)

“일본 정부가 우리 국민들에 사실상 전면적 입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 정부도 적절한 대응조치를 강구하겠다.” (2020/03/06,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25일 오전 국무회의를 마치고 (대구·경북) 현장에 내려가 방역을 직접 진두지휘 하겠다. 대구·경북 확진자가 많은 현재 상황은 단순히 대구·경북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다. 중앙과 지방을 구분하지 않고 범정부적 역량을 총동원하겠다.” (2020/02/24,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제 총리, 통합 총리가 가고자 했던 길인데 코로나 총리가 되게 생겼다.” (2020/2/14,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인근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은 권력기관 민주화를 통해 특권 없는 공정사회로 나가는 새로운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다. 공정하고 특권이 없고 인권이 보호되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 요구를 차질없이 이행하겠다.” (2020/01/31, ‘특권없는 공정한 사회를 위한 권력기관 개혁 후속조치 추진계획’ 담화문에서)

“대한민국을 향한 마지막 봉사라는 각오로 희생하고 헌신하겠다. 총리로서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책임을 다하는데 모든 힘을 쏟겠다.” (2020/01/14,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총리 취임식 취임사에서)

"나라가 이렇게 안팎으로 어려울 때는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 힘이 될 수 있다면 무슨 일리든 하는 것이 공인의 태도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아마 국민들께서, 그리고 여야를 포함한 국회의원들께서도 그런 충정을 알아주실 것이다." (2019년 12월20일,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의 국무총리 후보자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야당에서 입법부 수장 출신의 총리 지명에 대해 삼권분립 훼손이라고 지적하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며)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국무총리에 지명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에 주력하겠다.”(2019/12/17, 국무총리에 지명된 뒤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법적으로 대응하겠다.”(2018/03/19, 포스코 송도사옥 매각 관련 부정청탁 의혹 보도를 놓고)

“헌법 개정과 정치제도 개혁은 국민과의 약속이자 국회의 책무다. 효율적 운영을 거쳐 구체적 성과를 내기 위해 개헌특위와 정개특위를 통합특위로 새로 구성한 것이다.”(2018/01/15, 헌법개정,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격려사를 하며)

“동물국회보다는 식물국회가 낫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식물국회가 식물정부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국회 내부에서도 높다.” (2017/06, 국회의장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2016/12/09,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를 발표하며)

“대통령이 현 시국의 엄중함에 대한 진심어린 마음으로 국회와 협력해 주시기를 요청한다. 대한민국의 파국을 바라는 국민은 단 한사람도 없다. 이런 시련과 고통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회가 단단히 중심을 잡아야 한다. 아무리 혼돈스러운 와중이라 하더라도 내년도 예산안 및 관련 세법 처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달라.” (2016/11/03, 국회 본회의 모두발언에서)

“오늘 3당 원내대표 회동은 초유의 국가 리더십 위기를 맞아 국민들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국회 본연의 임무인 예산과 민생현안을 논의하려는 자리였다. 회동을 시작도 하기 전에 여당이 자신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퇴장해 회담을 무산시킨 것은 매우 유감이다.” (2016/10/31, 여야3당 원내대표 회동이 무산되자)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법과 원칙에 따라 절차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예산부수법안 지정을 통해 합의되지 않고 일방 통행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라 생각한다. 지난 두 해 동안 세법 처리가 여야 간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합의보다는 의장의 직권상정으로 처리된 경우가 많았다. 저는 이것은 아주 좋지 않은 전례라고 생각한다. 의장으로서 이번 정기국회의 모든 세법 개정안은 여야가 합의를 통해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겠다. 합의가 이뤄지도록 의장으로서 최선의 지원과 노력을 다할 예정이다.” (2016/10/17, 2016 세법 개정안 토론회 축사에서)

“법인세는 우리 세수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세법 개정안이 예산안 처리 이전에 합의가 된다면 부수법안을 지정할 필요가 없다. 여야 간 제대로 조율되지 않아 예산 부수법안으로 지정될 상황이 오면 세입과 관련된 법안은 당연히 지정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6/09/22,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의원은 국민의 편에 서서, 잘못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께서 우리 국회를 신뢰합니다. 국회의장을 영어로 ‘Speaker’라고 합니다. 상석에 앉아 위엄을 지키는 Chairman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Speaker인 것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쓴 소리 좀 하겠습니다. 제 개인의 목소리가 아닌 국민의 목소리라 생각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2016/09/01,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우병우 거취 등을 언급하며)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3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철 지난 옷’처럼 사회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은 시대적 상황에 맞게 다듬고 보완해나가야 최고 규범으로서의 권위와 실질적 효용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제 여야 지도부가 국가개조를 위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새 헌법질서를 통해 낡은 국가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충분히 조성돼 있다. 늦어도 70주년 제헌절 전에는 새로운 헌법이 공포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6/07/17, 제68주년 제헌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더불어 성장론’은 한마디로 분배냐 성장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불평등 해소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는 성장 모델이며, 내수와 수출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성장전략이다. ‘더불어 성장’은 공정경제, 선도경제, 네트워크경제라는 세 축을 통해 더불어 발전을 추구한다." "공정경제를 통해 '분배를 통한 성장'을 추구하고, 선도경제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기업간 협력을 모색하며 네트워크경제를 통해 지역, 계층 간 상생을 추구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고 한다.” (2016/02/01, 더불어민주당 유능한경제정당위원회에서 경제정책기조인 ’더불어 성장론‘을 발표하며)

“혁신위는 종로가 어떤 지역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소선거제 이후 24년간 총선에서 (야당이) 단 한 번도 승리해보지 못 한 지역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궐선거에서 이겼던 것이 유일한 승리였고 총선에선 내가 이긴 것이 처음이다. 종로 재선이 되고 나서 대권에 거듭 도전해 볼 생각이 있다.” (2015/11/16, 팟캐스트 ‘나는 정청래다’에 출연해서)

“청년실업이 국가재난 상태에 이르렀다. 내 아들도 아직 취업준비생이다.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청년정책을 만들고 있다.” (2015/11/27, 성균관대 청년희망정책 특강에서)

“우리 정치의 큰 별이 또 한 분 졌다. 우리 민주화의 큰 역할을 하셨고 대통령으로서 정치 개혁의 선구자이셨다. 통합 선거법 만드셨고, 재임 중 금융실명제 같은 경제개혁과 하나회 척결 같은 묵은 유산의 척결에 큰 역할을 하신 김영삼 대통령의 서거에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 (2015/11/22, 김영삼 전 대통령을 조문하며)

“수출 대기업 중심의 낙수경제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활력이 솟아오르는 분수경제로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 부자감세가 아닌 서민경제를 살리는 민생경제로, 청년층의 희망과 활력을 살리는 청년경제로 바꿔야 한다. 정부 직접고용이 가능한 공공분야의 신규 일자리를 확충하고, 청년고용할당제를 민간 분야까지 넓혀야 한다.” (2015/10/16, 6대 국정과제를 제안하며)

“당 대표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갈등과 분열을 극복해야지 상대를 제압하려고 해선 안 된다. 고충이나 고심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재신임 투표가 지금의 혼란보다 더 큰 혼란을 낳을 수 있어 시기적으로도 방법상으로도 적절치 않다. 전당대회에서 한 번 선출된 당 대표를 툭하면 흠집 내고 흔드는 것은 잘못이라는 게 저의 일관된 생각이지만 문 대표가 총선이나 대선 전망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문제다.” (2015/09/11,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재신임안을 비판하며)

“저는 국민의 요구와 당원동지 여러분의 열망에 부응하고자 2·8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 우리 당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혁명적 수준의 혁신과 통합에 도움이 된다면 이 당의 문지기라도 마다하지 않겠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혁명과 승리를 위해 작은 밀알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번 전당대회가 통합과 희망, 미래를 함께 녹이는 혁명적 용광로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다하겠다.” (2014/12/26,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며)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취임 일성으로 들고 나온 것이 분수경제(bottom up economics)다. 분수경제론을 정치권에서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이 바로 필자인데 벌써 3년여가 지난 일이다. 그런데 소위 '최경환노믹스'라고 포장한 세법개정안이나 부동산 정책을 보면, 겉모습은 분수경제로 포장했으나 낙수효과에 의존하는 정책임을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다. '최경환노믹스'가 진정한 분수경제를 지향한다면 세법개정안, 부동산 정책 등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 낙수경제가 명백한 데 분수경제로 읽어달라는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기 전에, 국회에서 논쟁하여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4/08/10, 칼럼을 통해 최경환노믹스를 비판하며)

“진상규명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 그것이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다 받아들여야 한다. 새누리당이 지방선거 때문에 주저한다면 선거 이후에 해도 좋다. 온 국민을 슬픔에 빠뜨리고 사회 전체를 뒤흔든 사건 앞에서 대한민국 정치가 이정도의 노력조차 마다해서는 안 된다.” (2014/05/09,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SNS에 올린 글)

“18대 대통령 선거는 국정원과 군이 개입된 명백한 부정선거다. 국정감사가 끝나는 즉시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 자신을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국민을 대규모로 조직하고 부정선거 규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고강도 2차 투쟁에 돌입해야 한다. 지금까지 증거들이 부정선거란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을 위해서 대통령에 도전한 것이 아니라 새마을운동과 유신의 부활이 목적이다” (2013/10/21, 18대 대선이 부정선거라며 SNS에 올린 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보면 상당한 수준으로 국격이 올라갔다. 한류로 인한 브랜드 가치도 많이 올랐다.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서 정상들도 만나고 해야 되는데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국격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 (2012/12/09, 18대 대선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지금 대한민국에는 유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나는 위기 극복에 요구되는 경험과 전문성을 갖추었고, 균형감각을 지닌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또한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결단력과 올바른 판단력이 있고, 국민 여러분과 같은 눈높이 생각을 가졌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바뀌어야 한다. 일 해보지 않은 사람, 검증되지 않은 능력은 불안하다.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의 대통령 시대도 넘어서야 한다. 창조적 계승은 답습하는 게 아니다, 극복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한다.” (2012/06/26, 경제대통령이 되겠다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민주당이 한번도 종로에서 승리한 적이 없었다. 저를 뽑아주신 여러분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 종로의 민심은 대한민국 국민의 민심이다. 민생을 살리고 이명박정권을 제대로 심판하라는 것이 종로구민의 민심이었다. 이런 민심이 표로 제대로 연결돼 제가 종로구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이 곳 종로는 자영업자와 소기업들이 많은 곳으로 민생경제가 파탄났기 때문에 무엇보다 민생경제를 살리겠다. 민주주의를 제자리로 돌려두는 데 노력하겠다.” (2012/04/11, 19대 총선 당선소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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