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장관 지명부터 임명까지
추미애는 2020년 1월2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주도하게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019년 10월14일 사퇴한 뒤 11월 중순부터 추미애가 유력후보로 거명됐다. 판사 출신이고 검찰개혁에 관심을 보여왔던 데다 5선 의원이라 인사청문회 통과도 비교적 쉬울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2019년 12월5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당시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추미애 의원은 판사 시절에 이어 헌정사상 최초의 지역구 5선 여성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소신과 개혁성을 보여줬다"며 "사법개혁을 완수하고 공정과 정의의 법치국가를 확립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추미애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소명의식을 갖추고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호흡을 묻는 질문에 "개인적 문제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며 "추후에 차차 말하겠다"고 대답했다.
2019년 12월30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검찰개혁의 의지를 보였다.
추미애는 "법무부와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안이 입법되면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완료해 개혁법안이 실효성 있게 시행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2월31일 국회에 2020년 1월1일까지 추미애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보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 뒤 국회에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보내지 않자 2020년 1월2일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 ▲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19년 12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
△당대표에서 물러난 뒤
추미애는 2018년 10월22일 민주당 혁신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혁신성장동력을 찾아내면서 관련 정책의 민주당 내부 콘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다. 2018년 11월 새만금 수상 태양광발전소를 찾아 새만금 개발에 따른 재생에너지 등의 혁신과제 수행을 논의했다.
2019년 초 에너지신사업과 바이오헬스케어 등 분야별 혁신성장계획을 내놓았다. 그 뒤 벤처기업인에 이어 바이오의료기업인들과 만나고 5세대(5G) 이동통신을 활용한 스마트팩토리 개발현장 등을 잇달아 찾았다. 2019년 4월 경상북도 구미에서 '구미형 일자리' 만들기에 온힘을 쏟겠다고 약속하는 등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을 뒷받침하는 행보를 보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18년 12월 추미애의 지역구인 서울 광진구을 지역의 자유한국당 지역 당협위원장 공모에 신청하면서 2020년 4월 총선에서 추미애와 오 전 시장이 맞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추미애가 2019년 12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돼 총선에 사실상 나갈 수 없게 되면서 둘의 대결도 이뤄지지 않게 됐다.
△민주당계 최초로 당대표 임기 완수
추미애는 2018년 8월25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임기 2년을 마쳤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당대표가 임기 도중에 물러나지 않은 것은 추미애가 처음이다.
그는 2018년 8월22일 당대표 활동 성과와 평가를 담은 548쪽 분량의 백서를 냈다. 2018년 8월24일 마지막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지난 수십년 동안 정치적 분열과 통합을 거듭한 민주당의 아픈 역사를 끝냈다는 점이 큰 의미”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임기 도중 가장 뭉클했던 기억으로 ‘촛불혁명’과 정권 교체를 꼽았다. 평화로우면서 헌법정신에 걸맞은 방식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고 스스로 평가하기도 했다.
2018년 8월25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열린 당대표 경선에서 이해찬 후보가 당선됐다. 추미애는 이때 전당대회 인사말에서 “우리는 백년정당의 역사를 써야 한다”며 “여러분과 함께 소임을 마치고 내려놓는 것이 이제 우리 정당의 전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지방선거 승리 공헌
추미애는 2018년 6월13일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대승에 당대표로서 공헌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결과 시도지사 17명 가운데 14명, 기초단체장 226명 가운데 151명의 당선자를 냈다.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도 12명 가운데 11석을 민주당에서 차지했다.
추미애는 2017년 8월 정당발전위원회에서 지방선거 공천방안을 논의하려고 했지만 민주당 시·도당 위원장들이 더불어민주당 당헌과 당규에 따라 공천을 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당시 추미애는 국무위원 등의 공직자 인선에 민주당이 추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에 공천 논란이 합쳐져 추미애와 청와대, 민주당 내부의 ‘친문재인파’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자 추미애는 한 발 물러서 지방선거기획단에서 지방선거 공천에 관련된 당헌·당규 해석과 시행규칙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당헌과 당규 기반의 공천 절차가 진행되면서 공천을 둘러싼 민주당 내부의 갈등도 봉합됐다.
추미애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인 2018년 5월31일부터 6월12일까지 전체 7천km 이상 움직이면서 후보들의 유세를 지원했다. 자유한국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부산·울산·경남 지역에 특히 힘을 실었다.
중앙당 후원금 모금을 위한 홍보영상 ‘더치페이III-하드캐리!’ 영상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출연해 어깨춤을 추고 연기를 하는 모습도 선보였다.
민주당의 압승 직후인 2018년 6월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국민에게 높은 지지를 받은 데는 경선 과정부터 본선까지 투명하고 공정하게 신뢰를 보여준 덕분”이라며 “‘문재인 대통령 효과’도 거의 절대적이었고 민주당도 단일대오로 일사불란하게 잘했다”고 말했다.
|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018년 4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수사당국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드루킹’사건 대응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포털 댓글 추천 수를 조작한 ‘드루킹’사건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이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적극 대응했다.
2018년 4월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드루킹’ 김동원씨 등 2명을 당에서 제명하고 ‘드루킹사건 진상조사단’을 출범시켰다.
추미애는 이날 회의에서 “드루킹사건을 계기로 물만난 듯 하는 야당의 저질 공세가 심각하게 우려된다”며 “드루킹사건은 건전한 여론 형성을 저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에 수사당국은 드루킹사건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드루킹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경남지사 후보로 확정하며 드루킹사건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19년 5월9일 ‘드루킹 특검’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며 국회 정상화가 어려워지자 추미애는 “야당이 본질을 외면한 채 드루킹 바짓가랑이만 잡고 무모한 정쟁의 늪으로 국회를 끌고 간다”고 야당을 맹비난했다. 같은 날 경남에서 열린 ‘민주당 필승 전진대회’에서 드루킹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는 김경수 후보에게도 “꿋꿋하고 당당하라, 절대로 쫄지 마라”며 격려의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김경수 후보는 2018년 6월13일 지방선거에서 김태호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치고 경남도지사로 당선됐다.
△‘미투운동’ 옹호
집권여당의 여성 당대표로서 한국사회에 불어온 ‘미투운동’바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당에서 불거진 성희롱·추행 의혹에 단호하게 대처했다.
2018년 3월4일 세계여성의날 기념 거리행진에 피켓을 들고 참석해 “미투운동, 위드유운동이 우리 사회의 그릇된 성문화를 바꾸고 건전한 새로운 나라로 가는 길에 함께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2018년 3월5일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정무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안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를 한 직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당대표로서 피해자와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안희정 도지사를 놓고 출당 및 제명조치를 밟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의 보도가 나온 뒤 2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루어져 ‘신속한 대처’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투운동으로 고 장자연씨의 죽음이 재조명되는 가운데 2018년 3월9일 “추악한 권력의 타락을 온몸으로 막고자 했으나 끝내 숨진 장자연씨와 관련해 검찰은 여지를 두지 말고 과감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8년 4월24일 당 윤리심판원에 선거캠프 여성 관계자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강성권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상구청장 예비후보를 제명할 것을 지시했다.
△인터넷의 욕설·가짜뉴스 비판
2018년 신년사에서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반발, 가짜뉴스와 마타도어가 판치겠지만 국민과 함께 헤쳐 가겠다”며 가짜뉴스와 전쟁을 선포했다.
2018년 1월8일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에 ‘가짜뉴스 신고센터’가 개설됐다. 추미애는 1월17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SNS에서 가짜뉴스와 인신공격, 욕설 등이 난무하고 있다”며 “이는 대단히 명백하고 상습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소통위원회 댓글조작·가짜뉴스법률대책단은 2018년 2월19일까지 총 375건의 가짜뉴스를 고소했다.
추미애는 2019년 2월 그가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라는 소문과 관련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명백한 가짜뉴스"라며 "나는 5.18민주화운동 유공자가 아니고 오히려 가슴아픈 역사에 직접 동참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헌논의로 야당 압박
2018년 1월12일 최고의원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이 끝내 개헌 저지세력이 되겠다면 이는 민심 거역세력이 되는 것이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야당을 압박했다.
2018년 2월2일 대통령 중심제를 기반으로 한 개헌안을 확정하고 “올해 6월이야말로 개헌의 골든타임으로, 자유한국당은 국민의 개헌 요구에 적극 임하라”고 촉구했다. 야당도 개헌안을 확정하고 본격적으로 국회가 개헌안 논의에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2018년 4월3일 자유한국당이 개헌안을 확정하자 추미애는 “국회가 입법과 행정 전권을 행사하겠다는 사실상의 내각제”라며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30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한 총리가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되면 국민주권, 3권분립 정신에 정면으로 위반된다”고 비판했다.
국민투표법 개정 무산으로 6월 개헌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2018년 4월25일 의원총회에서 “야당들이 개헌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기회를 날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7년 9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토지공개념
추미애는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주창한 '토지공개념'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토지공개념은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는 개인 혼자만 소유할 수 없고 사회 전체가 향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말한다.
추미애는 2017년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헨리 조지를 언급하면서 "모든 불평등과 양극화의 원천인 '고삐 풀린 지대'를 그대로 두고서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7년 10월 기자단 간담회에서는 "헨리 조지는 사람이 자기 노력으로 만들지 않은 노예와 토지 등을 시장에서 가격으로 결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며 "그가 살아있다면 토지 사용권을 인민에게 주고 소유권은 국가가 보유하는 중국 방식을 지지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추미애는 2017년 11월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 토론회를 직접 주최하기도 했다. 여권 안에서도 비교적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개헌안에도 토지공개념 조항이 들어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염 경기도지사가 2018년 9월 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토지공개념에 관련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다만 이를 놓고 자유한국당 등에서 추미애가 '토지 국유화'에 찬성하고 있다는 공격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추미애는 2019년 12월30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토지국유화 표현을 언급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북핵 문제 해결에 일익 담당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 진행된 남북 사이 화해 분위기 조성에 여당 당대표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2017년 9월4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미국에 동시 특사를 파견해 북미·남북 사이 투 트랙 대화를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전날인 9월3일 실시된 북한의 6차 핵 실험과 관련해 “한반도 정세를 위기로 몰아넣고 북한의 운명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정치적 도박으로 기록될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14일부터 4박6일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DC와 뉴욕시를 방문해 미국의 민간 인사와 공직자들을 만나 한미동맹 강화 및 북핵 해법을 논의했다. 14일 열린 동포간담회에서는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대화 테이블에 나온다면 북·미 수교도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30일 중국에서 열린 ‘세계 정당 고위급대회’에 참석했다. 다음날인 12월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북한이 오판하지 않게 중국이 회초리를 들어달라”며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을 요청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남북 사이의 대화가 급진전하기 시작하자 지속적으로 환영의 뜻을 표하며 해빙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2018년 2월18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과 관련된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청했다.
2018년 3월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 지원 특별위원회’설치를 결정했다. 추미애는 “당 안팎의 한반도 외교 전문가를 모시고 대대적 정당외교 행보 차원 활동을 전개해나갈 것”이라며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참여하는 6자회담과 같은 협력의 틀 구축에도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추미애는 2018년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을 생중계로 시청한 후 “참으로 감격스럽다”며 “모두가 한 마음으로 평화 정착과 공동 번영을 위한 구체적 진전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열린 만찬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참석했다.
2018년 9월30일 더불어민주당의 대미외교특사단 단장으로서 미국을 3박4일 동안 방문해 미국 의원들과 평양 공동방문을 제의하는 등 '9월 평양 공동선언'의 후속조치를 위한 의원외교를 진행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북미관계가 경색된 이후에도 추미애는 대북제재 완화 등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 3월 유튜브방송 '추미애TV'에서 "핵과는 무관한 징벌적 제재에 한정해 제재를 완화하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외교가 지금 가장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보조
2017년 8월17일 적폐청산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첫 회의를 가졌다. 위원회는 법·제도·문화 적폐원인 분석 및 개선, 각 부처 적폐청산 TF 모니터링, 국정농단 재판 상황 점검, 홍보방안 등을 논의했다.
2017년 10월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적폐 청산에 대해 정치보복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시도하고 있지만 국가 운영과 통치행위에서 상실된 공적 정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적폐 청산의 목표”라며 10월12일부터 시작될 국정감사에 ‘적폐청산’을 지상과제로 천명했다.
국정감사 기간에 국정원의 대선 및 국내 정치 개입을 비롯해 강원랜드 등 불법 특혜 채용, MB 정부의 방송 장악과 관련된 문건과 증언을 공개하고 야당을 압박했다.
2018년 1월18일에는 국정원 특활비 투명성 강화를 위한 국가재정법, 국정원법, 감사원법, 국회법, 예산회계에 관한 특례법 등 5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당 대표가 현안과 관련된 법안을 직접 발의하는 것은 이례적 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부자증세와 인사 논란에서 문재인 정부 지원사격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고소득법인과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부자증세'정책에 힘을 실어줬다.
추미애는 2017년 7월20일 과세표준 5억 원을 넘는 소득자를 대상으로 세율을 현행 40%에서 42%로 올릴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1만8천여 명으로부터 5천억 원 가량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됐다. 과세표준 2천억 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율을 25%로 3%포인트 올려 120여 개 기업으로부터 3조 원 정도의 법인세를 더 걷는 방안도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가 인사를 둘러싼 논란에 시달렸을 때도 추미애는 힘을 보탰다.
추미애는 강경화 외교부장관 임명 강행이 논란을 빚자 “외교부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미래의 외교자산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데 강경화 장관이 적임자”라며 “야당이 강경화 장관 임명을 놓고 협치 포기라고 우기는 건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가 ‘몰래 혼인신고’ 등의 논란으로 자진 사퇴했을 때도 야당의 태도에 유감을 나타냈다. 추미애는 “안경환 전 후보가 도의적 판단에 따라 사퇴했음에도 야당은 이를 두고 문재인정부 인사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키우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당의 새 진용 구성
추미애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 손발을 맞출 인사들을 당에 적극 등용했다. 신임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에 이춘석 의원과 김태년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이춘석 사무총장은 호남 출신으로 대선 기간 문재인 대통령의 원내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친문계의 핵심으로 꼽히는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면서 2017년도 예산을 직접 다루는 등 예산안에 이해가 깊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은 이 사무총장 선임과 관련해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보내 준 호남에 화답하는 차원”이라며 “대통령과 당 대표의 원활한 다리 역할을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추미애는 당직 인선과 관련해 “당 인사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면서 문재인정부가 국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체제를 만드는 것”이라며 "대통합, 대탕평의 원칙과 능력주의에 입각해 인사를 적재적소에 기용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정책위 수석부의장에 홍익표 의원, 민주연구원장에 김민석 의원, 당 대변인에 백혜련 의원과 김현 전 의원, 대표 비서실장에 문미옥 의원 등을 임명했다.
|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이 2017년 5월9일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시민들과 함께하는 개표방송' 현장에서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승리 선언에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의 19대 대선 승리
2017년 5월에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
추미애는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건에 정치력을 발휘하며 촛불정국과 함께 해 제1야당의 위상을 굳건히 만들었다.
대선 과정에서 상임 선대위원장을 맡아 전국을 돌며 선거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온라인 쇼핑몰 CF를 패러디한 유튜브 광고영상 ‘정책은 언제나 목마르다’에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나와 연기를 하기도 했다.
△군 촛불집회 무력진압 논의 폭로
2016년 11월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추미애는 “박 대통령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를 시켜서 물리적 충돌을 준비하고 있다”며 “최종적으로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돈다”고 폭로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제1야당의 책임있는 정치 지도자가 하기엔 너무나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비판했고 박사모에서는 추미애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다.
2018년 3월8일 군인인권센터가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국방부에서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기각할 것에 대비해 군병력 투입을 주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분분했다”며 “당시 수도방위사령관 구홍모 중장(육군참모차장 육사40기)은 직접 사령부 회의를 주재하며 ‘소요사태 발생 때 무력 진압’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폭로했다.
2018년 3월20일 JTBC의 ‘국방부 위수령 검토 보도 논란’과 관련해서 추미애의 2016년 발언이 조명을 다시 받았다. 그해 7월5일에는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군기무사령부에서 2017년 3월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을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추미애는 2018년 7월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이 유례없이 질서를 지키며 시위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동안 기무사는 국민을 폭군으로 인식해 무력진압 계획을 세웠다”고 비판했다. 계엄령 이야기를 꺼냈던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 안전을 걱정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2019년 10월21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이라는 기무사 문건을 추가로 공개했다. 그러자 추미애는 10월22일 SNS를 통해 “아무리 유언비어라 왜곡해도 결국 이렇게 진실은 드러난다”며 “국민을 총부리로 탄압하려는 극악무도한 계획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반헌법적 중범”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당선
2016년 8월 54.03%의 득표율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로써 민주당계 정당의 60여 년 역사상 처음으로 대구 출신 성 당대표가 탄생했다.
추미애는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끌어내면서 민생을 위해서 민생경선을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했다.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2016년 2월 27일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에 참여했다.
주호영 당시 정보위원장이 2016년 2월 대표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을 수정발의했다. 당시 야당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면서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필리버스터는 의회 운영절차의 한 형태로 입법부나 여타 입법 기관에서 구성원 한 사람이 어떤 안건에 대해 장시간 발언하면서 진행되는 표결을 지연하거나 완전히 막고자 하는 행위다.
추미애는 “판사 출신인 내가 봐도 말이 안 되는 법”이라며 16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섰다. 이날 2시간34분에 걸쳐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법리적 측면에서 지적했다.
△헌정 사상 첫 ‘지역구 5선 여성의원’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추미애는 광진구 을에서 새누리당 후보와 국민의당 후보의 3파전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4만3980표(득표율 48.5%)를 얻어 여성 정치인으로서는 헌정 사상 최초로 지역구 5선 여성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추미애는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찬성 여파로 낙선한 것을 제외하면 15대부터 19대까지 4선을 했고 20대로 5선을 채웠다.
△문재인 지도부 입성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됐다.
추미애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의원에 의해 최고위원을 맡게 되면서 지도부에 입성했다.
추미애는 권노갑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문제 발언에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권노갑 고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르던 ‘동교동계’의 좌장 격인데 “당 운영을 할 때 주류는 60%, 비주류는 40%를 맡는 게 관행”이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추미애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지지세력을 받들고 챙기라는 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이지 지분을 챙기라는 게 그 분의 뜻은 아닐 거다”라며 “분열을 막고 통합을 호소하는 것이 정답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던 최고위원들과는 선을 그었다. 이것은 추미애가 이후 민주당의 당대표 선거에 도전했을 때 상당한 자산으로 돌아왔다는 평가도 나왔다.
△‘추다르크’ 탄생에서 노무현 탄핵 찬성 역풍, 정계 복귀까지
1997년 대선을 앞둔 11월 말 대구 연청조직원들과 '잔다르크 유세단'을 만들어 대구에서 선거유세를 이끌었다. 이때의 활약으로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도 새천년민주당 총재 비서실장을 맡았다. 당시 김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겸임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노무현 대선후보가 낮은 지지율로 고심할 때도 추미애는 지지를 거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가 발족한 뒤에는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아 성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하면서 '돼지저금통' 국민성금 57억 원을 모으는 데 기여했다.
추미애는 그의 홈페이지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와 만났을 때 "돈이 없어도 좋은 방법이 있다, 돼지저금통을 들고 국민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데 도와주겠는가?"는 제안을 받아 따랐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추미애는 2004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이때의 여파로 2004년 총선에서도 낙선해 2년 동안 미국 유학을 다녀오는 등 정계를 떠나야 했다.
유학 이후 정계에 복귀해 2007년 정동영 대선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다시 출마해 당선하면서 국회 복귀에도 성공했다.
그 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국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2012년 총선에서도 당선돼 4선 의원에 올랐다.
민주당계 정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연이어 맡았고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에서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소신 강한 판사부터 정계 입문까지
추미애는 판사 시절부터 강한 소신으로 이름을 날렸다.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85년 춘천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했다. 당시 전두환 정부가 불온서적 압수수색을 시작하면서 검찰이 전국 법원에 서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 다른 법원들은 영장을 모두 발부했지만 추미애만 '책을 유언비어로 볼 근거가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 뒤 인천지방법원 판사, 전주지방법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를 거쳤다. 1995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제안으로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을 맡았다. 당시 김대중 총재는 '여성도 이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가 아닌가'라며 정계 입문을 권유했다.
1996년 서울 광진구을에 출마해 43.77%의 득표율로 당선하면서 판사 출신의 첫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 총선을 앞두고 1차 조직책 신청에 탈락했지만 당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한 끝에 총선에 나가 승리했다.
당시 김대중 총재의 부인인 이희호 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추미애의 선거 유세를 돕기도 했다. 그 뒤 16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