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재인 대통령(왼쪽 네 번째)이 2019년 11월27일 부산 누리마루에서 열린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에서 메콩강 유역 국가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통룬 시술릿 라오스 총리,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 문 대통령,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 프락 속혼 캄보디아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및 한·메콩 정상회의 개최 및 공동성명 채택
문재인은 취임 뒤부터 꾸준히 추진해 온 신남방정책의 결실로 2019년 11월 부산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의 결과로 한국과 아세안 10개 나라 사이에 공동 비전성명이 채택됐다.
한·아세안 공동 비전성명에는 △한국과 아세안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미래 발전 △평화를 향한 동행 : 평화로운 지역 구축 △번영을 향한 동행 : 경제적 동반자 관계 증진 △연계적 증진을 위한 동행 △지속가능성과 환경 협력을 위한 동행 △사람을 위한 사회, 문화 파트너십 강화 등 여섯 가지 주제에 걸친 25개 항의 내용이 담겼다.
한·메콩 정상회의를 통해서는 ‘사람, 번영, 평화의 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한 한강-메콩강 선언’이 채택됐다.
한국과 메콩 5개 나라는 공동 선언에서 한강의 기적이 메콩강의 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우선협력 분야 7개를 담은 미래 협력방향을 제시하고 매년 정상회의를 열기로 결정했다.
우선협력 분야로 △문화·관광 △인적자원개발 △농촌개발 △인프라 △ICT △환경 △비전통안보협력 등도 꼽혔다.
대통령직속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는 2019년 12월19일 제4차 전체회의를 통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한·메콩 정상회의의 성과를 평가하고 후속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주형철 신남방정책특별위원장은 "지난달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돼 정부의 신남방정책이 경제협력은 물론 인적교류, 문화예술, 안보 등 전방위적 협력 관계로 발전했다"며 "신남방정책 가속화를 위해 각 부처가 소관과제를 책임지고 속도감있게 이행해 2020년 가시적 성과를 본격적으로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조치와 대응
문재인은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부품과 관련된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에 소재·부품·장비 분야 경쟁력 강화로 대응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9년 7월4일부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에 쓰이는 핵심 소재품목 3개를 대상으로 한국 수출에 적용해 왔던 절차 간소화조치를 폐지하는 방식 등을 포함해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일본은 한국이 전략물자를 북한에 밀반입한다는 이유로 수출규제를 강화한다고 주장했지만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문제를 놓고 보복조치를 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문재인은 한국경제에서 반도체산업의 비중이 큰 만큼 일본의 수출규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문재인은 외교적 해결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외교채널을 가동해 일본과 양자협의,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 제소와 같은 조치를 취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국 기업이 실질적 피해를 입으면 맞대응을 하겠다는 뜻도 보였다.
문재인은 2019년 7월8일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에 따른 한국 기업들에게 피해가 실제로 발생하면 한국 정부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두 나라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외교적 해결방안을 마련하면서 국내 기업들과 소통을 강화해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를 계기로 국내 기업들의 수입처 다변화와 소재, 부품의 국산화 등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문재인은 2019년 7월10일 국내 대기업 30곳의 총수, 최고경영자들을 청와대에 불러 기업들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대기업들에 핵심 부품, 소재, 장비의 국산화를 위해 더 중소기업과 협력을 확대해 줄 것도 요청했다.
그는 일본을 향해서는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며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하고 아무런 근거없이 대북제재와 연결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조치에 따라 한국과 일본 사이 군사정보 보호협정(지소미아)도 종료 직전까지 갔으나 2019년 11월22일 조건부로 지소미아의 종료절차가 정지됐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아래 2019년 8월23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하기로 했으며 일본 정부는 이해를 표시했다"며 "한일 사이 수출관리 정책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본 측의 3개 품목 수출규제에 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절차를 정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2019년 12월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대화로 한국과 일본 사이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아베 총리가 우리는 이웃이고 서로의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면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고 했다"며 "문 대통령은 실무협의가 원활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아베 총리와 함께 독려해 나가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혁신성장 통한 경기부양에 공 들여
대외 경제여건이 악화하고 경제지표가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문재인은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을 혁신성장 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문재인은 이미 2018년 중반부터 규제완화를 뼈대로 한 혁신성장정책을 강화했는데 2019년 들어 경제행보에 더 힘을 싣고 있다. 시스템반도체와 바이오헬스, 미래차 산업을 육성해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방침도 세웠다.
2019년 12월19일 발표된 '2020년 경제정책방향'에도 바이오산업, 미래차산업 육성을 비롯해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경쟁력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 소재, 부품, 장비 부문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재인은 2019년에도 혁신성장을 위해 대기업 총수와 벤처기업인들을 활발하게 만나며 정부의 기업을 향한 지원의사를 밝히고 동시에 기업에는 투자를 당부했다.
문재인은 2019년 1월15일 대기업 총수와 중견 기업인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2019년 기업인과 대화’ 행사를 열었다. ‘2019년 기업인과 대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와 중견기업인 128명이 참석했다.
문재인은 이 행사에서 “기업이 힘차게 뛰어오를 수 있는 환경 만들기가 2019년 정부 목표”라며 “여러 기업이 2019년 계획한 대규모 투자를 빠르게 추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전담 지원반을 가동해 도울 테니 앞으로도 사업 발굴과 투자에 더욱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문재인은 벤처기업인들도 청와대에 초대해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를 열었다. 이 간담회에는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 사장,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김범석 쿠팡 대표이사,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이사, 권오섭 L&P코스메틱 대표이사 회장,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이사 등 7명이 초대됐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은 벤처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접수하고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벤처기업)을 더 많이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문재인은 2019년 한 해 동안 8차례 지방을 도는 전국 경제투어를 펼치며 경제현장을 직접 챙기기도 헀다.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문재인의 뜻에 화답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에 133조 원,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120조 원, 셀트리온은 바이오제약산업에 40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문재인은 ‘제2 벤처붐’을 통해 벤처창업이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대규모 전용 펀드를 조성해 앞으로 4년 동안 12조 원 규모의 투자를 창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유니콘기업을 2020년까지 20개로 늘리는 목표를 세웠다.
문재인이 2019년 12월 국무총리 후보자로 기업인 출신인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한 것도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에서 경제에 무게를 두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강력한 부동산 안정화 의지
문재인은 부동산 시세 안정화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2019년 11월19 서울시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 행사에서 부동산 관련 질문에 “부동산정책은 자신있다”며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고 지금 노력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더 강력한 방법으로 반드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놓고는 "역대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한 이유는 부동산과 건설업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써왔기 때문"이라며 "건설경기만큼 고용효과 등 경기 부양효과의 확실한 수단은 없지만 우리 정부에서는 경제성장률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 부동산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9년 12월 들어서도 서울 아파트 가격의 상승세가 꺽이지 않자 12월16일 문재인 정부의 18번째 부동산 정책인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 나왔다.
시가 15억 원 이상 아파트의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고 시가 9억 원 이상인 아파트의 주택담보비율(LTV)를 낮추는 등 비교적 강도 높은 내용이 담겼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지역을 서울 13개 구 전역 등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정부는 부동산 시세의 상승세가 꺽이지 않는다면 2020년 상반기에 추가적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 ▲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2019년 6월30일 오후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회동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남북미 정상회동으로 대화 불씨 살려
문재인은 2019년 6월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을 성사해 오랫동안 교착상태였던 남북대화, 북미대화의 불씨를 살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와 경제제재 일부 완화에 관해 합의를 볼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협상이 결렬되며 장기간 대화가 중단됐다.
그 뒤 북한이 수차례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고 북한언론에서 한국과 미국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며 오랫동안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풀리지 않았다.
문재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 전화통화 등을 통해 북미관계를 중재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문재인은 2019년 4월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며 북미 정상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에게 남북 접촉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 뒤 문재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를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한국에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애초에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한국 방문기간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트위터에 김정은 위원장과 한국 비무장지대에서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올리며 북미대화 재개의 기대감이 커졌다.
문재인과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6월30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비무장지대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다는 계획을 밝혔고 남북미 정상회동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 앞에서 만나 뒤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남쪽지역과 북쪽지역을 오가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곧이어 문재인이 합류해 남북미 정상이 한자리에 함께 하게 됐다.
남북미 정상회동을 마친 뒤 북미 정상은 따로 정상회담을 하고 다음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에 들어가기로 약속했다.
북한과 미국은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비핵화 실무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이후 북한은 2019년 연말을 비핵화 협상시한으로 내세우며 미국과 계속 교착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상생형 일자리 추진
2018년까지 지지부진했던 상생형 일자리사업은 2019년 들어 ‘광주형 일자리’를 시작으로 ‘구미형 일자리’까지 타협을 이루며 진전을 보였다. 군산, 포항 등 다른 지역에서도 상생형 일자리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상생형 일자리는 기업이 적은 임금의 일자리를 마련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복리후생을 지원해 임금 수준을 보완하는 등 사회통합형 모델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였던 광주형 일자리는 2018년 말까지 합의를 끌어내지 못해 논의가 장기화할 조짐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은 신년사에서부터 광주형 일자리를 거론하며 협상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문재인은 광주형 일자리의 기업 쪽을 대표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을 앞에 둔 자리에서 “광주형 일자리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상생형 일자리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광주광역시와 현대차는 2019년 1월31일 광주형 일자리 사업과 관련한 투자협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문재인은 이날 투자협약식에 참석해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과 전국 확산을 위해 정부도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LG화학이 구미시에 양극재 생산공장 건설을 짓기로 하며 구미형 일자리도 추진되고 있다.
다만 광주형 일자리사업의 첫 모델인 광주글로벌모터스 자동차공장 착공식에 노동계가 불참을 표명하는 등 지방자치단체와 노동계의 이견은 계속 표출되고 있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
북한과 미국은 2018년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선언의 순서 등을 놓고 갈등을 겪었다. 국내에서도 문재인이 2018년 9월 안에 국회에서 4.27 판문점선언을 비준할 것을 요청했지만 자유한국당 등의 강한 반발을 샀다.
문재인은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2018년 6월~8월 두 차례의 고위급회담이 진행됐고 9월5일~6일 대북특사단이 평양에 파견됐다. 이런 노력 끝에 문재인이 9월18일~20일 북한을 방문해 남북 정상회담을 여는 일정이 확정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기업인들도 특별 수행원으로 대거 참여하면서 경제협력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문재인은 2018년 9월18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세 번째 정상회담을 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공항에 직접 나와 문재인을 영접하는 등 극진한 예우를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문재인과 김정은은 2018년 9월19일 정상회담 결과 ‘9월 평양 공동선언’을 내놓았다. 이 선언을 살펴보면 문재인과 김정은은 북한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다른 국가의 전문가 참관 아래 영구 폐기하는 것에 합의했다.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서울을 가까운 시일 안에 방문할 것을 약속했다. 2018년 안에 동해선-서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의 착공식을 여는 것도 합의했다. 대북 제재의 완화 여부 등에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의 정상화 등 경제협력도 추진하기로 했다.
문재인은 2018년 9월19일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평양 시민 15만 명 앞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연설하면서 비핵화와 한민족을 강조했다. 9월20일에는 김정은과 문재인이 백두산을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문재인은 평양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뒤 2018년 9월24일~27일 동안 유엔 총회에 참석했다. 그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고 미국 폭스뉴스와 인터뷰, 유엔총회 기조연설 등도 진행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려면 종전선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곳곳에 전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018년 10월에 평양을 찾아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일정을 논의하면서 정체 상태였던 북미관계가 풀릴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졌다. 그러면서 평양 정상회담 이전에 50%대까지 떨어졌던 문재인의 국정 수행 지지율도 60% 초반으로 반등했다.
△개헌과 지방선거
문재인은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시행할 뜻을 밝혔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2018년 6.13지방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의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대승을 거뒀다.
문재인은 2018년 1월10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6.1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할 방침을 다시 확인했다. 2018년 3월7일 국회 5당 대표와 만났을 때도 “개헌은 정국의 블랙홀”이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하지 못하면 모멘텀을 만들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2018년 3월26일 정부 개헌안을 발의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18년 5월4일까지 자체 개헌안을 만들거나 국회 규정에 따라 발의일로부터 60일 이내인 5월24일 안에 정부 개헌안의 찬반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 개헌안에는 대통령 4년 연임제, 선거연령 하향, 대통령의 권한 분산 등이 담겼다. 그러나 다른 야당에서 주장하는 국회 총리선출제나 추천제 등은 들어가지 않아 갈등이 예고됐다.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투표에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 뒤 자유한국당이 온라인 댓글조작사건인 ‘드루킹사건' 등을 이유로 장외투쟁을 벌이는 등 개헌 논의가 계속 지연됐다. 지방선거와 개헌안 동시투표의 진행에 필요했던 국민투표법 개정도 공표시한인 2018년 4월23일을 넘겨 무산됐다. 문재인이 발의한 정부 개헌안이 2018년 5월24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민주당 의원들만 참여해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 처리됐다.
2018년 6월13일 제7회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광역자치단체 17곳 가운데 부산, 울산, 경상남도를 포함한 14곳, 기초단체장 226곳 가운데 151곳에서 승리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기반도 더욱 튼튼해졌다.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12곳 가운데 11곳에서도 이겼다. 이를 놓고 민주당의 대승이 문재인 정부의 높은 지지율에서 기인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여파 등으로 실패 가능성이 제기되던 평창 동계올림픽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기도 했다.
문재인은 2018년 1월 신년사에서 2월에 치러지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성원을 보내줄 것을 국민에게 요청했다. 때마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신년사에서 북한 국가대표팀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여 의사를 담아 문재인이 환영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남한과 북한은 2018년 1월 남북 고위급회담과 실무접촉을 거쳐 1월20일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결정했다. 개막식에서 남북 국가대표팀이 함께 입장하고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남북한 단일팀으로 꾸리는 것도 합의했다.
2018년 2월9일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했다. 남북 국가대표팀이 2007년 중국 창춘동계아시안게임 뒤 11년 만에 한반도기를 들고 함께 입장했다. 이때 개막식은 공동입장 외에 ‘인면조’ 등 특이한 연출과 김연아 선수의 성화 봉송 등도 선보여 화제에 오르내렸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2018년 2월9일부터 25일까지 열렸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를 따 종합순위 7위를 차지했다. 기업 후원금과 입장료 수익 등을 합치면 평창올림픽 운영에 들어간 2조6천억 원보다 많은 것으로 추산되면서 ‘흑자올림픽’으로 불리기도 했다.
문재인은 2018년 8월30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으로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의 공으로 올림픽금장훈장을 받았다. 이때 문재인은 하계올림픽을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개최할 뜻을 전해 긍정적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에 물꼬 터
문재인이 대통령에 오른 뒤 이전에 위태로웠던 남북관계는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은 2018년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열어 가까워진 남북관계를 세계에 알렸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표단을 보내고 당국회담을 열 뜻을 보였다. 문재인이 호응하면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등이 2018년 1월9일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급회담을 열어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남북관계 개선을 협의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면서 남북관계도 빠르게 진전됐다. 당시 김여정 제1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와 초청의사를 문재인에게 전달했다.
문재인과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4월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열고 한반도 비핵화, 2018년 안에 종전선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이산가족 상봉 등을 담은 ‘4.27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이때의 남북 정상회담은 군사분계선에서 열린 첫 회담이다. 북한 지도자와 남한 지도자가 서로의 땅을 밟은 것도 처음이다.
문재인은 2018년 5월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연 자리에서 6월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뜻을 모았다. 북한은 2018년 5월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등 비핵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5월24일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할 뜻을 밝히자 문재인과 김정은 위원장은 5월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을 긴급하게 열었다. 이때 문재인과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고 판문점선언도 조속하게 이행할 뜻을 거듭 확인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 등을 거쳐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등에 합의하면서 문재인의 위상도 높아졌다.
△19대 대통령 당선과 2017년 국정운영
문재인은 2017년 5월9일 19대 대통령선거에 41.1%의 득표율로 2위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역대 최대인 17.7%포인트의 득표율 차이로 당선됐다.
촛불정신을 받들어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내걸고 대통령 직무를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국가비전으로 제시하고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5대 국정목표로 정했다.
'사람중심 경제'를 전면에 내세워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경제정책의 축으로 삼았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가계소득을 늘려 경제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취임 뒤 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신설하고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 2017년 6월에는 11조2천억 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 예산을 편성해 집행했다.
탈원전·탈석탄과 신재생에너지 육성을 담은 에너지 전환정책, 공공·공적주택 공급 확대를 추진하는 주거복지 로드맵, 지능화 기술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을 위한 4차산업혁명 대응계획 등을 세웠다.
사회분야는 적폐청산을 내걸고 국정원 댓글조작사건 수사 방해 의혹,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청와대 및 국정원 보수단체 불법 지원, BBK 관련 고발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뿐 아니라 이명박 정권 인사들까지 적폐청산 대상이 되면서 야권에서 정치보복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외교·안보분야에서 당초 문재인이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태도가 강했으나 정부 출범 뒤 북한 핵실험과 11차례 미사일 발사가 이뤄지면서 남북관계 경색을 겪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때문에 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앞두고 애를 먹기도 했다.
중국과는 박근혜 정부 시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배치했던 문제를 푸는 일에 주력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할 뜻을 보여 한일관계는 이전보다 경색됐다. 러시아·아세안 등 다른 나라들과는 신북방정책·신남방정책을 통해 협력의 폭을 적극적으로 넓혔다.
△'최순실 게이트'와 대선후보 문재인
문재인은 2016년 하반기 최순실 게이트가 빚어낸 긴박한 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대선후보로서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처음에는 신중론을 폈지만 2016년 11월15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과 함께 전국적 퇴진운동에 나서면서 강경노선으로 전환했다. 2016년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2017년 3월10일 대통령직 파면이 선고됐다.
문재인이 제1야당의 주요 대선후보인 점과 원칙주의적 성향을 보여줘 박근혜 대통령의 대척점으로 평가된 점 등 덕분에 지지를 얻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17년 4월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당시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을 제치고 결선투표 없이 본선으로 직행하면서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당대표 문재인과 인재 영입
문재인은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시절 당내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 ‘친노’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인재영입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1당으로 올라서는 데 궁극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선에서 패배한 뒤 6개월 만에 정계에 복귀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사건과 10.4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논란,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논란, 세월호 참사 정국 등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문재인은 2015년 2월8일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박지원 후보를 제치고 대표에 올랐다. 이때 박지원 후보에 고작 3%포인트만 앞섰을 정도로 당내 장악에는 실패했다. 문재인과 안철수 의원의 대립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분열하자 비주류의 사퇴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2015년 12월28일 당이름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꿨다. 2016년 1월27일 대표에서 물러났다.
2015년 12월부터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외부인사를 영입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2016년 4월 총선에서 123석을 얻어 새누리당을 제치고 원내1당에 올랐다. 당시 문재인이 영입한 인사들 가운데 표창원 김병관 박주민 조응천 김병기 이철희 서형수 의원 등이 총선에서 민주당 열풍을 이끌며 20대 국회를 여는 데 성공했다.
2016년 1월14일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멘토’로 불렸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삼고초려 끝에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하면서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도 민주당의 총선 승리에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이 총선에서 공천 전권을 행사하고 문재인이 고립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총선 이후에도 총선 승리의 공로 평가, 당대표 합의추대, 야권연대 등에서 시각차를 보였다. 결국 김 위원장은 2017년 3월8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18대 대선 패배
문재인은 18대 대선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맞붙었다. 지지율 조사에서 오차범위 안의 접전을 벌였지만 결국 졌다.
2012년 4월11일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8월25일부터 9월16일까지 열린 국민참여경선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의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선출됐다.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문재인 지지 선언을 한 뒤 사퇴하는 등 범야권의 지지를 얻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지지율에서 다소 밀렸지만 여론이 좌우로 사실상 양분된 가운데 대선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문재인의 지지율이 올랐다.
그러나 2012년 12월19일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약 100만 표 차이로 졌다. 당시 문재인은 1469만 표(48.0%)를 얻었는데 이는 탈락 후보 사상 최다 득표이자 역대 대선 후보들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득표다.
18대 대선에서 패배한 요인으로 독자적 리더십을 세우는 데 실패해 국민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는 분석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
문재인은 198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법조계 동업자로서 만났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뒤 문재인을 정계에 불러들였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을 때 ‘법률가는 억울한 서민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김앤장 등 대형로펌의 영입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한다면 노모를 모실 수 있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그해 부산으로 내려가 사법시험 동기인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소개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다. 김광일 노무현 변호사 등과 함께 1981년 일어난 부림사건에 변호인을 맡은 것으로 언론에 알려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문재인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1982년 부산에 내려왔고 부림사건은 그 전의 일이다.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일하면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1987년 대우조선해양 사건으로 노 변호사가 구속되자 문재인은 부산 지역 변호사를 동원해 변호인단을 만들어 변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치권에 인도한 장본인이다.
1988년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참여 요청을 받자 "정치인 자질은 노무현씨가 훨씬 더 탁월하다"며 노무현 변호사를 추천했고 노무현 변호사는 이를 거듭 피하다 결국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노무현 후보가 몇 차례 부산광역시장 출마를 권유했는데도 “나는 참모용이고 더 나은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고사했다.
노무현 후보의 부산 선거대책본부장으로 활동했으나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변호사 업무에 복귀할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2003년 1월 노무현 당선자가 "당신들이 나를 정치로 나가게 했고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책임져야 할 것 아니냐"고 하자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 제의를 수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흔들릴 때마다 문재인이 "정치를 끝까지 계속해 달라"고 애걸 반 압박 반으로 강요한 만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훗날 회고했다.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과로를 하며 건강이 악화돼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이때 치아가 10개나 빠져 임플란트를 하면서 발음이 안 좋아졌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위기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을 꾸렸다.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2007년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청와대에서 '왕수석', '왕의 남자'로 불리며 대통령의 신뢰를 받았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으로부터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국정원칙이 파괴됐다'는 비난을 받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2인자로 주목받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23일 서거한 뒤 장례절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도맡았다. 그 뒤 재단법인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사법시험 합격과 사법연수원 시절
사법시험에 한 차례 재수한 끝에 1980년 차석으로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12기도 차석으로 마쳤다.
문재인은 10대 시절 역사학자를 꿈꿨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을 감안해 1972년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1978년 2월 군대에서 제대한 직후 아버지 문용형씨가 59세로 별세하자 가장으로서 책임감과 아버지에게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에 사법시험을 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79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 1980년 시위 참가로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돼 있다가 2차 합격 소식을 들었다.
1980년 사법시험 3차 면접시험을 볼 때 안전기획부 요원으로부터 지금도 옛날에 시위할 때와 생각이 변함없는지 질문받자 “지금도 변함없다”고 대답했다. 최종적으로 합격했지만 훗날 원하던 판사 임용에서 탈락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박원순 서울시장 등 쟁쟁한 동기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82년 사법연수원 12기를 차석으로 수료했다. 원래 성적은 수석이었으나 시위 전력 때문에 차석으로 순위가 바뀌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