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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
조승리 기자  csr@businesspost.co.kr  |  2019-10-17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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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

◆ 생애

허민은 위메프 지주회사인 원더홀딩스 대표이사다. 소셜커머스업체인 위메이크프라이스(위메프)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다.

원더홀딩스 주력 자회사 위메프가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넥슨코리아의 외부 고문으로 영입되면서 넥슨코리아의 게임기획과 개발역량을 강화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1976년 3월17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응용화학부를 졸업한 뒤 게임회사 네오플을 세웠다. 넥슨에 회사를 매각하고 미국 버클리음악대학에서 공부했다.

미국에서 돌아와 네오플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 위메프를 만들었다. 초기에 투자자로만 참여했으나 나중에 대표이사를 맡아 2년 동안 경영을 총괄했다.

국내 최초 독립야구단인 '고양원더스'를 창단해 구단주를 맡았고 미국 독립야구단에 입단해 투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네오플을 매각한 뒤 음악 공부, 야구단 운영 등 독특한 이력 때문에 '괴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본인이 하고 싶은 분야는 전문가가 될 정도로 파고든다.

◆ 경영활동의 공과

△위메프 적자 지속에도 적자폭은 줄여나가 
위메프는 2011년 설립 이래 지금까지 적자를 내고 있다.

다만 소셜커머스업체 모두가 영업손실을 내고 있는데 경쟁업체인 쿠팡과 티몬보다 적자폭을 꾸준히 줄여 나가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위메프가 통신판매업자에서 통신판매 중개업자로 사업을 다각화한 것이 적자폭을 줄이는 데 보탬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메프는 직매입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오픈마켓으로 사업을 일부 전환하면서 물류와 배송비 등의 매출원가 부담을 덜었다.

매출 증가와 매출원가 절감 노력에도 판매비와 관리비, 광고선전비, 판매촉진비 등의 증가는 회사에 부담이 되고 있다. 

위메프는 자본금보다 갚아야할 돈이 많은 자본잠식 상태로 2018년 기준 자본잠식률이 1376%에 이른다.

위메프는 거래액 증가를 목표로 적자에서 벗어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위메프의 2018년 거래액은 5조4천억 원으로 2017년 4조2천억 원보다 28.6% 증가했다. 5년 전인 2013년 거래액 7천억 원과 비교해 8배 늘어난 수치다.

위메프 관계자는 “판매 수익 대부분을 가격을 낮추는데 재투자하고 있다”며 “한 자릿수 영업손실률을 보여 손익관리가 가능한 재무구조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위메프 실적.
△원더홀딩스에 넥슨 3500억 원 투자유치
허민은 위메프의 지주회사인 원더홀딩스에 게임회사 넥슨의 투자를 유치했다.

넥슨은 2019년 9월9일 신주인수 방식으로 원더홀딩스에 35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취득한 지분율은 1.1%다.

원더홀딩스는 허민이 2009년 세운 회사로 소셜커머스회사 위메프, 게임 개발사 원더피플, 에이스톰 등을 보유하고 있다.

넥슨은 이번 투자로 원더피플과 에이스톰의 게임 개발과 라이브 서비스에 협력하고 허민은 넥슨의 외부 고문으로 넥슨의 전반적 게임 개발에 참여한다.

업계에서는 넥슨의 투자를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대표와 허민의 신뢰관계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허민이 게임회사 네오플에서 개발한 던전앤파이터를 넥슨이 2008년 3800억 원에 인수했다. 현재 던전앤파이터는 넥슨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허민이 위메프를 세웠을 때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는 2015년 1천억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원더홀딩스의 자회사들은 게임과 이커머스 등 다방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며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어 넥슨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며 “특히 게임에 허민 대표의 높은 열정과 통찰력은 넥슨의 차별화된 경쟁력 높이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회사 원더피플과 에이스톰에서 차기 게임 개발
허민은 2017년 게임업계로 복귀한 뒤 원더홀딩스 산하 게임 개발회사 '원더피플'과 '에이스톰'에서 총괄프로듀서로 게임 개발을 지휘했다.

허민은 원더피플에서 게임 개발엔진 '언리얼 엔진4' 기반 총게임(FPS) 장르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허민의 차기작은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와 '포트나이트'처럼 다수 게이머들이 전투에 참여해 최후 생존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원더피플은 차기작 개발을 위한 관련 특허도 확보했다.

하지만 허민은 던전앤파이터 이후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원더피플이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배급하는 '프렌즈마블'은 현재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150위 정도에 그친다. 원더피플이 개발과 배급을 모두 맡은 '아레나M'은 순위가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벤처캐피탈회사 ‘원더엔젤스’ 설립
허민은 2011년 모바일과 게임 투자에 주력하는 벤처캐피탈회사 ‘원더엔젤스’를 세운다.

허민은 2011년 5월 50억 원의 자본금을 출자해 벤처캐피탈회사 원더엔젤스를 세웠다. 꾸준히 벤처회사 투자를 진행하면서 투자 규모가 커져 전문투자회사와 심사역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허민은 게임회사 네오플을 매각한 자금을 기반으로 2010년 나무인터넷에 150억 원을 출자해 소셜커머스회사 위메프를 세웠다. IT 관련 벤처회사에도 5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원더엔젤스 관계자는 “모바일과 게임 등의 부문에서 투자 전문성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외부에서 유한책임투자자를 유치하는 등 운용자산 규모를 키워 다양한 기업에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메프 투자자에서 대표이사로 경영 참여
허민은 2010년 5월 위메프를 운영하는 나무인터넷을 세워 투자자로 참여했다. 

2011년 7월 마케팅비 출혈경쟁에 수익구조 개선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위메프 대표이사에 올랐다. 2012년 4월 세계적 컨설팅회사 맥킨지에서 근무한 박은상을 공동대표이사로 영입했다.

허민은 위메프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국내 소셜커머스시장이 출혈 마케팅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로 변했다며 위메프를 단순 소셜커머스가 아닌 지역정보 포털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허민은 위메프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소셜커머스 1등을 목표로 공격적 마케팅을 펼쳐 나갔다. 

위메프는 2012년 11월 실구매고객 100만 명을 대상으로 20억 원 규모의 포인트 리워드 방식의 몰아주기 판매방식을 실행해 화제를 모았다. 2013년 1월에는 배송상품 구매자 전원에 5%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하며 25억 원을 투자했다. 또 대형 공급업체와 독점계약을 맺으며 프리미엄제품 판매망도 넓혔다.

위메프는 허민이 경영에 참여하는 동안 소셜커머스 경쟁업체인 쿠팡과 티몬에 이어 업계 3위로 성장했다. 2013년 상반기에는 모바일 웹사이트 전체 순위에서 18위를 차지하며 티몬과 쿠팡을 누르고 업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허민은 2013년 7월 위메프 대표이사에서 사임했다. 허민의 사임으로 위메프는 박은상 공동대표체제에서 단독체제로 전환됐다.

허민은 위메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경영에서 손을 떼고 투자자로의 역할에만 집중하겠다"며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는 꿈을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던전앤파이터 초기 홈페이지 모습.
△게임회사 네오플 창업과 게임 ‘던전앤파이터’ 매각
허민은 2001년 서울대학교 동기 5명과 함께 게임회사 네오플을 차렸다. 이들과 함께 개발한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게임회사 넥슨에 팔아 수천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

허민은 네오플에서 2001년 4월 처음으로 온라인 소개팅 게임 ‘캔디바’를 만들었다. 캔디바는 출시 10개월 만에 매출 10억 원을 올리며 네오플 경영을 지속할 수 잇는 종잣돈이 됐다.

하지만 허민은 캔디바 이후 내놓았던 게임 18개가 모조리 실패하면서 30억 원의 빚을 졌다. 

이때 2005년 내놓은 게임 던전앤파이터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당시 삼성전자가 개발자금을 투자하고 퍼블리싱을 맡았으며 서비스 6개월 만에 회원 수 100만 명, 동시접속자 수 5만 명을 돌파했다.

허민은 당시에는 낯선 개념이었던 ‘부분유료화’를 시행했고 이 시스템은 네오플에 큰 매출을 안겨줬다.

허민은 2006년 240억 원을 받고 한게임과 네이버를 운영했던 NHN에 네오플의 지분 60%를 넘겼다. 한게임과 결합하면서 던전 앤 파이터는 2007년 말 기준으로 전체 가입자 수 750만 명, 동시접속자 수 16만 명을 보이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월 매출도 50억 원을 넘겼다.

그러다 허민은 2007년 팔았던 네오플의 지분을 다시 사들여 경영권을 되찾지만 회사를 다시 되팔 고민을 하게 된다. 이때 허민은 “너무나 지쳐 에너지가 바닥난 상황에서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 때문에 같이 일하는 식구들에게도 죄책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넥슨은 2008년 네오플의 지분 100%를 3852억5929만 원에 인수한다. 

허민은 넥슨에 네오플 지분을 넘긴 뒤 네오플 직원 220명에게 수십억 원의 주식을 배분했다. 그는 인수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날 “나를 포함한 네오플 내부 주요 주주들이 지분을 일정량 모아 전 직원에게 나눠줄 계획”이라며 “함께 고생했는데 누구만 결실을 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던전앤파이터는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2018년 기준으로 누적 매출 12조 원을 돌파했다.

◆ 비전과 과제
▲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가 2011년 7월14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위메프 최고경영자에 취임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원더홀딩스 주력 자회사 위메프가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는 상황을 해결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위메프는 2017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손실율을 한 자릿수인 8.8%까지 낮췄다. 하지만 위메프의 완전자본잠식률은 1278%에 이르러 다소 위험한 수준이다. 

허민의 뒤를 이어 2013년 위메프를 이끄는 박은상 위메프 대표이사가 특가를 앞세워 고객을 더 끌어모으는데 승부를 걸고 있다.

넥슨코리아의 외부 고문으로 영입되면서 넥슨코리아의 게임기획과 개발역량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넥슨코리아는 현재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시장의 중심축이 PC게임에서 모바일게임으로 움직일 때 대응이 미흡했던 탓에 모바일게임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주 NXC 대표이사와 넥슨코리아 경영진은 허 대표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이사는 사내 공지로 신규게임 프로젝트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리면서 허 대표의 고문 활동을 놓고 “전반적 게임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며 “다양한 노하우를 공유하고 안에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밖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조언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허민이 던전앤파이터 이후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게임업계 한쪽에서는 허 대표의 역할이 크지는 못할 것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 평가
▲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왼쪽 네 번째)와 이종한 나무인터넷 대표(왼쪽 두번째)가 2010년 10월6일 위메이크프라이스닷컴 론칭 기자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허민은 '괴짜'라는 수식어가 붙는 성공한 벤처사업가다.

처음 차린 게임벤처회사가 대박을 터뜨리며 수천 억 원의 자산을 손에 쥐게 됐다. 이 돈을 종잣돈 삼아 부동산에 투자한 것이 잘 풀려 매년 100억 원 정도의 부동산 임대수입을 올리고 있다.

야구선수이면서 기업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게임벤처회사를 돌연 매각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을 배웠고 다시 소셜커머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을 하면서 독립야구단을 만들기도 하고 직접 야구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지만 야구단을 소유하고 싶다는 꿈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독립야구단을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초의 고무공장을 세운 인물이었고 아버지는 부산중학교, 부산고등학교 야구선수 출신이었다.

대동고등학교 야구부에서 투수를 맡았다. 2학년 때 무리한 연습으로 관절이 손상돼 어깨를 다쳤다.

1999년 서울대 최초로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유명세를 탔다. 선거 당시 운동본부 이름을 '광란의 10월'로 정하고 후보자들의 공동 선거유세 대신 학생회관 앞에서 혼자 힙합 춤을 춘다거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선거공약을 알리는 파격적 행보를 통해 학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저항'이라는 주제로 열리던 서울대학교 축제를 '놀이' 중심으로 바꿨다.

서울대 다닐 때 야구부원이긴 했으나 부상 때문에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버클리음악대학 입학 오디션에 떨어졌지만 수백통의 메일을 보내 결국 입학허가를 받아냈다. 미국에 머무를 당시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투수 필 니크로에게 너클볼을 배우기도 했다.

2009년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미래에셋타워를 800억 원대에 인수해 주목을 받았다.

2011년 9월15일 한국야구위원회와 고양원더스 창단 업무협약을 맺고 구단주의 꿈을 이뤘다. 김성근 감독을 영입해 화제가 됐으며 2년 동안 2군 리그 교류전에서 5할대의 승률을 기록했다. 고양원더스는 2012년 5명, 2013년 12명, 2014년 5명 등 모두 22명의 선수들이 KBO 소속 프로구단으로 이적하는 성과를 냈다.

2013년 9월1일 락앤드볼더스 선발투수로 첫 등판해 3이닝을 던져 5피안타 4볼넷으로 5실점했다. 이날 락앤드볼더스가 패하면서 데뷔전에서 패전투수가 됐으나 아웃카운트를 9개나 잡아냈다.

김정주 NXC대표와 허민의 인연은 유명하다.

2008년 김정주는 주변의 부정적 의견에도 허민을 직접 만나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네오플을 인수했다. 인수 당시 넥슨이 보유한 현금을 모두 투입한 것은 물론 부족한 금액은 일본의 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기도 했다.

2015년 허민은 위메프 투자금을 유치하러 다니면서 김정주를 찾아가 브라질 벤처캐피털리스트 3명의 창업일화를 담은 책 '드림 빅'을 선물하며 위메프의 미래를 소개했다. 이후 김정주는 흔쾌히 위메프에 1천억 원을 투자했다.

◆ 사건사고
▲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가 2019년 2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나 스포츠 컴플렉스에 꾸려진 키움히어로즈의 스프링캠프에서 청백전 투수로 나서 공을 던지고 있다.<연합뉴스>
△훈련 끝난 키움히어로즈 2군 선수들과 캐치볼 논란
허민이 훈련이 끝난 키움히어로즈 2군 선수들과 캐치볼과 라이브 배팅을 진행해 논란이 일었다.

SBS의 보도에 따르면 허민은 2019년 6월2일 오전 훈련을 마치고 퇴근하려던 키움히어로즈 2군 선수들에게 퇴근하지 말고 남아 있을 것을 지시한 뒤 선수들과 캐치볼과 라이브 배팅을 즐겼다.

키움히어로즈 구단은 갑횡포(갑질) 논란이 일자 “선수들이 강제로 참가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선수들만 참가했다”며 “라이브 배팅을 제안한 것도 허민 의장이 아니라 구단에서 허민 의장에게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위메프 수습사원 채용 갑횡포 논란
소셜커머스회사 위메프가 영업사원을 채용해 수습기간에 정직원 수준의 업무를 하게 한 뒤 전원을 해고해 논란이 일었다.

위메프는 2014년 12월 지역 영업직 사원 11명을 채용해 2주의 수습기간에 음식점과 미용실 등을 돌며 계약을 따는 등 정직원에 준하는 일을 시켰다. 하지만 수습기간이 끝나자 기준을 통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원이 해고통보를 받았다.

위메프의 채용 갑횡포가 알려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매운동과 회원 탈퇴가 이어졌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위메프의 수습사원 해고가 과거에도 수차례 반복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박은상 위메프 대표는 “해당 11명을 전원 최종 합격으로 정정하겠다”며 “완벽하게 준비된 인력을 찾는 방식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잠재력 있는 인력을 찾아 직접 교육하는 방식으로 신입사원 제도를 변경하겠다”고 말했다.

허민도 유감의 뜻을 박 대표를 통해 전했다.

박 대표는 "허 전 대표도 이번 사태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경영진과 함께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이번 계기로 채용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상처 입히지 않고 사랑받는 회사가 되자고 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2015년 2월3일 위메프에 현장 근로감독 시정지시서를 내리고 과태료 840만 원을 부과했다.

△위메프 대규모 구조조정 논란
허민이 경영상 이유로 위메프 전체 직원 550명 가운데 200명을 권고사직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위메프는 2011년 10월17일 지역 포털업체로 체질 전환을 하겠다며 전체 직원 550명 가운데 200명을 감축한다는 목표로 권고사직 형태의 인력 감축을 했다.

사직을 통보 받은 직원들은 사전 통보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감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직 대상자들은 모두 당일 통보를 받고 사직서를 작성했으며 한달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받았다.

위메프 관계자는 “소셜커머스시장의 적자 구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회사의 효율성 향상과 재무상태 개선 등을 위해서는 인력 감축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공포의 쿵쿵따’와 ‘신야구’ 게임 표절 시비
KBS의 인기 프로그램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간판코너 ‘공포의 쿵쿵따’가 인기를 얻으면서 게임업체들도 끝말잇기 게임들을 내놓았는데 2003년 초에 게임사인 네오플과 D3i, 넷마블 사이에 표절시비가 일었다.

네오플은 2003년 2월5일 넷마블에 ‘쿵쿵따 게임의 표절 및 베타서비스 중지’라는 제목의 공문을 제출하면서 ‘쿵쿵따 표절 시비’를 제기했다. 양측간 표절논란이 불거지자 D3i가 ‘쿵쿵따의 실제 주인은 우리’라며 표절 공방전에 가세했다.

D3i는 보도자료를 통해 “네오플의 캔디바에 앞서 2002년 4월 '쿵쿵따' 서비스를 제공해왔다”며 “캔디바의 쿵쿵따도 D3i가 개발한 전투말잇기와 쿵쿵따 게임을 표방했으므로 네오플은 저작권과 상표권 출원의 객관적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네오플은 게임 캔디바 아바타를 케이포테크놀로지가 표절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2003년 9월 서울지방법원에 저작권 침해 가처분신청을 냈다.

서울지방법원 민사 50부는 2003년 11월18일 케이포테크놀로지가 네오플의 아이템에 대한 복제권, 개작권,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네오플이 2005년 출시한 온라인 야구게임 ‘신야구’는 캐릭터 디자인을 놓고 일본 게임 개발사인 코나미가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를 표절했다고 주장하면서 네오플이 캐릭터를 도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10년 “신야구 캐릭터가 실황야구 캐릭터를 복제한 것이라고 볼 수 없음은 물론 실황야구 캐릭터의 2차 저작물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 경력
▲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오른쪽)가 2012년 8월 잠실구장을 찾은 전설의 너크볼러 필 니크로(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999년 12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2001년 4월 게임회사 네오플을 세우고 2008년 8월까지 네오플 대표이사로 일했다.

2010년 5월 소셜커머스회사 위메프를 설립했다.

2011년 5월 벤처캐피탈 원더엔젤스를 세웠다.

2011년 7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위메프 대표이사를 지냈다.

2011년 9월부터 2014년 9월까지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 구단주를 맡았다.

2013년 8월부터 2015년까지 미국 독립야구단 락랜드볼더스 선수로 뛰었다.

2019년 1월 프로야구구단 키움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에 취임했다.

2019년 9월 게임회사 넥슨 게임 개발 외부고문으로 영입됐다.

◆ 학력

1994년 부산 대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02년 서울대학교 응용과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버클리음악대학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 상훈

2012년 12월4일 은퇴 프로야구인 모임인 일구회가 선정하는 '2012 일구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12년 12월7일 프로야구 스포츠토토 올해의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 기타

허민은 네오플을 넥슨에 판 뒤 이를 부동산에 투자해 자산을 1조 원 넘게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넥슨에 네오플을 팔아 3천억 원대 자산가가 됐고 2009년 885억 원을 들여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미래에셋타워를 사들였다. 2012년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맞은 편 토지를 660억 원을 주고 매입했고 2년 뒤 그 부지 위에 위메프 사옥을 세웠다.

◆ 어록
▲ 최성 고양시장(왼쪽), 구본능 KBO 총재(가운데),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가(오른쪽) 2011년 9월15일 한국야구위원회 회관에서 원더홀딩스 창단 업무협약을 맺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히어로즈는 모기업이 없는 유일한 야구 전문기업으로서 존재가치가 뚜렷한 구단이라 생각한다. 여러 현안들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18/12/21, 프로야구구단 넥센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에 선임되며)

“불가능의 반대말은 가능이 아니라 도전이다. 스승인 니크로 선생이 47세에 현역에서 은퇴했으니 나는 3년 정도 더 던져서 50세에 은퇴하고 싶다.” (2013/09/02,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야구단 운영은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선수들에게 돈만 주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야구단 운영은 내게도 큰 의미가 있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것이 고양원더스를 만든 것이다.” (2012/12/04, 일구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으며)

“성공스토리를 사회에 기부하고자 어린 시절의 꿈인 야구선수 육성을 선택했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인재 육성에 이바지하고 싶다.” (2011/09/15,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 창단 양해각서 체결식에서)

“국내 소셜커머스 시장이 과열 경쟁 등으로 혼탁해지는데 대한 반성과 안타까움이 컸다. 국내 토종 소셜커머스 업체인 위메프가 제대로 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도전 정신에서 경영자 복귀를 결정했다. 위메프의 최종 목표는 최고의 소셜커머스가 아닌 세계 최고의 지역 포털이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티켓몬스터나 쿠팡, 그루폰이 아닌 네이버다. 전 세계 회원 3억 명, 동시 접속자 240만 명으로 연간 1천억 원의 수익을 창출했던 던전앤파이터의 신화를 위메프에서 다시 한번 재현하겠다.” (2011/07/14, 위메프 기자간담회에서)

“나이가 어릴수록 리스크를 크게 걸어야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려고 먼저 생각하기보단 일단 먼저 사람들부터 끌어들이고 무엇을 할지는 그 다음에 생각했다. 매일 매일 모여 농구를 하고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일단 놀면서 시작해보자는 것이 그 때 생각이었다. 하루는 소개팅을 해달라는 친구의 요청이 있었는데 그 때 떠올랐던 아이디어가 소개팅을 소재로 한 사이트였다.” (2011/04/03,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에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10/10/06, 위메프 공개 기자간담회에서)

“한빛소프트의 ‘팡야’ 퍼블리싱 과정을 지켜보면서 ‘신야구’를 선뜻 내 놓게 됐다. 네오플의 개발력과 한빛소프트의 퍼블리싱 능력이 합쳐지면 2005년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05/01/27, 한빛소프트와 캐주얼 야구게임 신야구의 퍼블리싱 계약을 맺으며)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새로운 대학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 기존 운동권을 대신해 학우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는 학생회를 만들겠다. ‘광란의 10월’이라는 다소 특이한 팀 이름은 전국대학의 10월 축제를 연결하는 문화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선거공약을 반영한 것이다. 앞으로 대학 문화 구축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일부 간부만 참여해온 기존의 총학생회에서 벗어나 환경문제, 대중문화, 스포츠, 여성문제, 학내시설 등 각 분야의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학생들이 관심분야에 참여할 수 있는 장으로 학생회를 변화시키겠다.” (1999/12/03,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당선 인터뷰에서)

◆ 경영활동의 공과

△위메프 적자 지속에도 적자폭은 줄여나가 
위메프는 2011년 설립 이래 지금까지 적자를 내고 있다.

다만 소셜커머스업체 모두가 영업손실을 내고 있는데 경쟁업체인 쿠팡과 티몬보다 적자폭을 꾸준히 줄여 나가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위메프가 통신판매업자에서 통신판매 중개업자로 사업을 다각화한 것이 적자폭을 줄이는 데 보탬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메프는 직매입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오픈마켓으로 사업을 일부 전환하면서 물류와 배송비 등의 매출원가 부담을 덜었다.

매출 증가와 매출원가 절감 노력에도 판매비와 관리비, 광고선전비, 판매촉진비 등의 증가는 회사에 부담이 되고 있다. 

위메프는 자본금보다 갚아야할 돈이 많은 자본잠식 상태로 2018년 기준 자본잠식률이 1376%에 이른다.

위메프는 거래액 증가를 목표로 적자에서 벗어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위메프의 2018년 거래액은 5조4천억 원으로 2017년 4조2천억 원보다 28.6% 증가했다. 5년 전인 2013년 거래액 7천억 원과 비교해 8배 늘어난 수치다.

위메프 관계자는 “판매 수익 대부분을 가격을 낮추는데 재투자하고 있다”며 “한 자릿수 영업손실률을 보여 손익관리가 가능한 재무구조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위메프 실적.
△원더홀딩스에 넥슨 3500억 원 투자유치
허민은 위메프의 지주회사인 원더홀딩스에 게임회사 넥슨의 투자를 유치했다.

넥슨은 2019년 9월9일 신주인수 방식으로 원더홀딩스에 35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취득한 지분율은 1.1%다.

원더홀딩스는 허민이 2009년 세운 회사로 소셜커머스회사 위메프, 게임 개발사 원더피플, 에이스톰 등을 보유하고 있다.

넥슨은 이번 투자로 원더피플과 에이스톰의 게임 개발과 라이브 서비스에 협력하고 허민은 넥슨의 외부 고문으로 넥슨의 전반적 게임 개발에 참여한다.

업계에서는 넥슨의 투자를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대표와 허민의 신뢰관계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허민이 게임회사 네오플에서 개발한 던전앤파이터를 넥슨이 2008년 3800억 원에 인수했다. 현재 던전앤파이터는 넥슨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허민이 위메프를 세웠을 때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는 2015년 1천억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원더홀딩스의 자회사들은 게임과 이커머스 등 다방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며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어 넥슨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며 “특히 게임에 허민 대표의 높은 열정과 통찰력은 넥슨의 차별화된 경쟁력 높이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회사 원더피플과 에이스톰에서 차기 게임 개발
허민은 2017년 게임업계로 복귀한 뒤 원더홀딩스 산하 게임 개발회사 '원더피플'과 '에이스톰'에서 총괄프로듀서로 게임 개발을 지휘했다.

허민은 원더피플에서 게임 개발엔진 '언리얼 엔진4' 기반 총게임(FPS) 장르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허민의 차기작은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와 '포트나이트'처럼 다수 게이머들이 전투에 참여해 최후 생존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원더피플은 차기작 개발을 위한 관련 특허도 확보했다.

하지만 허민은 던전앤파이터 이후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원더피플이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배급하는 '프렌즈마블'은 현재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150위 정도에 그친다. 원더피플이 개발과 배급을 모두 맡은 '아레나M'은 순위가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벤처캐피탈회사 ‘원더엔젤스’ 설립
허민은 2011년 모바일과 게임 투자에 주력하는 벤처캐피탈회사 ‘원더엔젤스’를 세운다.

허민은 2011년 5월 50억 원의 자본금을 출자해 벤처캐피탈회사 원더엔젤스를 세웠다. 꾸준히 벤처회사 투자를 진행하면서 투자 규모가 커져 전문투자회사와 심사역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허민은 게임회사 네오플을 매각한 자금을 기반으로 2010년 나무인터넷에 150억 원을 출자해 소셜커머스회사 위메프를 세웠다. IT 관련 벤처회사에도 5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원더엔젤스 관계자는 “모바일과 게임 등의 부문에서 투자 전문성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외부에서 유한책임투자자를 유치하는 등 운용자산 규모를 키워 다양한 기업에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메프 투자자에서 대표이사로 경영 참여
허민은 2010년 5월 위메프를 운영하는 나무인터넷을 세워 투자자로 참여했다. 

2011년 7월 마케팅비 출혈경쟁에 수익구조 개선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위메프 대표이사에 올랐다. 2012년 4월 세계적 컨설팅회사 맥킨지에서 근무한 박은상을 공동대표이사로 영입했다.

허민은 위메프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국내 소셜커머스시장이 출혈 마케팅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로 변했다며 위메프를 단순 소셜커머스가 아닌 지역정보 포털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허민은 위메프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소셜커머스 1등을 목표로 공격적 마케팅을 펼쳐 나갔다. 

위메프는 2012년 11월 실구매고객 100만 명을 대상으로 20억 원 규모의 포인트 리워드 방식의 몰아주기 판매방식을 실행해 화제를 모았다. 2013년 1월에는 배송상품 구매자 전원에 5%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하며 25억 원을 투자했다. 또 대형 공급업체와 독점계약을 맺으며 프리미엄제품 판매망도 넓혔다.

위메프는 허민이 경영에 참여하는 동안 소셜커머스 경쟁업체인 쿠팡과 티몬에 이어 업계 3위로 성장했다. 2013년 상반기에는 모바일 웹사이트 전체 순위에서 18위를 차지하며 티몬과 쿠팡을 누르고 업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허민은 2013년 7월 위메프 대표이사에서 사임했다. 허민의 사임으로 위메프는 박은상 공동대표체제에서 단독체제로 전환됐다.

허민은 위메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경영에서 손을 떼고 투자자로의 역할에만 집중하겠다"며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는 꿈을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던전앤파이터 초기 홈페이지 모습.
△게임회사 네오플 창업과 게임 ‘던전앤파이터’ 매각
허민은 2001년 서울대학교 동기 5명과 함께 게임회사 네오플을 차렸다. 이들과 함께 개발한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게임회사 넥슨에 팔아 수천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

허민은 네오플에서 2001년 4월 처음으로 온라인 소개팅 게임 ‘캔디바’를 만들었다. 캔디바는 출시 10개월 만에 매출 10억 원을 올리며 네오플 경영을 지속할 수 잇는 종잣돈이 됐다.

하지만 허민은 캔디바 이후 내놓았던 게임 18개가 모조리 실패하면서 30억 원의 빚을 졌다. 

이때 2005년 내놓은 게임 던전앤파이터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당시 삼성전자가 개발자금을 투자하고 퍼블리싱을 맡았으며 서비스 6개월 만에 회원 수 100만 명, 동시접속자 수 5만 명을 돌파했다.

허민은 당시에는 낯선 개념이었던 ‘부분유료화’를 시행했고 이 시스템은 네오플에 큰 매출을 안겨줬다.

허민은 2006년 240억 원을 받고 한게임과 네이버를 운영했던 NHN에 네오플의 지분 60%를 넘겼다. 한게임과 결합하면서 던전 앤 파이터는 2007년 말 기준으로 전체 가입자 수 750만 명, 동시접속자 수 16만 명을 보이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월 매출도 50억 원을 넘겼다.

그러다 허민은 2007년 팔았던 네오플의 지분을 다시 사들여 경영권을 되찾지만 회사를 다시 되팔 고민을 하게 된다. 이때 허민은 “너무나 지쳐 에너지가 바닥난 상황에서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 때문에 같이 일하는 식구들에게도 죄책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넥슨은 2008년 네오플의 지분 100%를 3852억5929만 원에 인수한다. 

허민은 넥슨에 네오플 지분을 넘긴 뒤 네오플 직원 220명에게 수십억 원의 주식을 배분했다. 그는 인수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날 “나를 포함한 네오플 내부 주요 주주들이 지분을 일정량 모아 전 직원에게 나눠줄 계획”이라며 “함께 고생했는데 누구만 결실을 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던전앤파이터는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2018년 기준으로 누적 매출 12조 원을 돌파했다.


◆ 비전과 과제
▲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가 2011년 7월14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위메프 최고경영자에 취임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원더홀딩스 주력 자회사 위메프가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는 상황을 해결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위메프는 2017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손실율을 한 자릿수인 8.8%까지 낮췄다. 하지만 위메프의 완전자본잠식률은 1278%에 이르러 다소 위험한 수준이다. 

허민의 뒤를 이어 2013년 위메프를 이끄는 박은상 위메프 대표이사가 특가를 앞세워 고객을 더 끌어모으는데 승부를 걸고 있다.

넥슨코리아의 외부 고문으로 영입되면서 넥슨코리아의 게임기획과 개발역량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넥슨코리아는 현재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시장의 중심축이 PC게임에서 모바일게임으로 움직일 때 대응이 미흡했던 탓에 모바일게임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주 NXC 대표이사와 넥슨코리아 경영진은 허 대표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이사는 사내 공지로 신규게임 프로젝트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리면서 허 대표의 고문 활동을 놓고 “전반적 게임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며 “다양한 노하우를 공유하고 안에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밖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조언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허민이 던전앤파이터 이후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게임업계 한쪽에서는 허 대표의 역할이 크지는 못할 것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 평가
▲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왼쪽 네 번째)와 이종한 나무인터넷 대표(왼쪽 두번째)가 2010년 10월6일 위메이크프라이스닷컴 론칭 기자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허민은 '괴짜'라는 수식어가 붙는 성공한 벤처사업가다.

처음 차린 게임벤처회사가 대박을 터뜨리며 수천 억 원의 자산을 손에 쥐게 됐다. 이 돈을 종잣돈 삼아 부동산에 투자한 것이 잘 풀려 매년 100억 원 정도의 부동산 임대수입을 올리고 있다.

야구선수이면서 기업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게임벤처회사를 돌연 매각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을 배웠고 다시 소셜커머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을 하면서 독립야구단을 만들기도 하고 직접 야구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지만 야구단을 소유하고 싶다는 꿈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독립야구단을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초의 고무공장을 세운 인물이었고 아버지는 부산중학교, 부산고등학교 야구선수 출신이었다.

대동고등학교 야구부에서 투수를 맡았다. 2학년 때 무리한 연습으로 관절이 손상돼 어깨를 다쳤다.

1999년 서울대 최초로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유명세를 탔다. 선거 당시 운동본부 이름을 '광란의 10월'로 정하고 후보자들의 공동 선거유세 대신 학생회관 앞에서 혼자 힙합 춤을 춘다거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선거공약을 알리는 파격적 행보를 통해 학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저항'이라는 주제로 열리던 서울대학교 축제를 '놀이' 중심으로 바꿨다.

서울대 다닐 때 야구부원이긴 했으나 부상 때문에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버클리음악대학 입학 오디션에 떨어졌지만 수백통의 메일을 보내 결국 입학허가를 받아냈다. 미국에 머무를 당시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투수 필 니크로에게 너클볼을 배우기도 했다.

2009년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미래에셋타워를 800억 원대에 인수해 주목을 받았다.

2011년 9월15일 한국야구위원회와 고양원더스 창단 업무협약을 맺고 구단주의 꿈을 이뤘다. 김성근 감독을 영입해 화제가 됐으며 2년 동안 2군 리그 교류전에서 5할대의 승률을 기록했다. 고양원더스는 2012년 5명, 2013년 12명, 2014년 5명 등 모두 22명의 선수들이 KBO 소속 프로구단으로 이적하는 성과를 냈다.

2013년 9월1일 락앤드볼더스 선발투수로 첫 등판해 3이닝을 던져 5피안타 4볼넷으로 5실점했다. 이날 락앤드볼더스가 패하면서 데뷔전에서 패전투수가 됐으나 아웃카운트를 9개나 잡아냈다.

김정주 NXC대표와 허민의 인연은 유명하다.

2008년 김정주는 주변의 부정적 의견에도 허민을 직접 만나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네오플을 인수했다. 인수 당시 넥슨이 보유한 현금을 모두 투입한 것은 물론 부족한 금액은 일본의 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기도 했다.

2015년 허민은 위메프 투자금을 유치하러 다니면서 김정주를 찾아가 브라질 벤처캐피털리스트 3명의 창업일화를 담은 책 '드림 빅'을 선물하며 위메프의 미래를 소개했다. 이후 김정주는 흔쾌히 위메프에 1천억 원을 투자했다.

◆ 사건사고
▲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가 2019년 2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나 스포츠 컴플렉스에 꾸려진 키움히어로즈의 스프링캠프에서 청백전 투수로 나서 공을 던지고 있다.<연합뉴스>
△훈련 끝난 키움히어로즈 2군 선수들과 캐치볼 논란
허민이 훈련이 끝난 키움히어로즈 2군 선수들과 캐치볼과 라이브 배팅을 진행해 논란이 일었다.

SBS의 보도에 따르면 허민은 2019년 6월2일 오전 훈련을 마치고 퇴근하려던 키움히어로즈 2군 선수들에게 퇴근하지 말고 남아 있을 것을 지시한 뒤 선수들과 캐치볼과 라이브 배팅을 즐겼다.

키움히어로즈 구단은 갑횡포(갑질) 논란이 일자 “선수들이 강제로 참가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선수들만 참가했다”며 “라이브 배팅을 제안한 것도 허민 의장이 아니라 구단에서 허민 의장에게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위메프 수습사원 채용 갑횡포 논란
소셜커머스회사 위메프가 영업사원을 채용해 수습기간에 정직원 수준의 업무를 하게 한 뒤 전원을 해고해 논란이 일었다.

위메프는 2014년 12월 지역 영업직 사원 11명을 채용해 2주의 수습기간에 음식점과 미용실 등을 돌며 계약을 따는 등 정직원에 준하는 일을 시켰다. 하지만 수습기간이 끝나자 기준을 통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원이 해고통보를 받았다.

위메프의 채용 갑횡포가 알려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매운동과 회원 탈퇴가 이어졌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위메프의 수습사원 해고가 과거에도 수차례 반복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박은상 위메프 대표는 “해당 11명을 전원 최종 합격으로 정정하겠다”며 “완벽하게 준비된 인력을 찾는 방식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잠재력 있는 인력을 찾아 직접 교육하는 방식으로 신입사원 제도를 변경하겠다”고 말했다.

허민도 유감의 뜻을 박 대표를 통해 전했다.

박 대표는 "허 전 대표도 이번 사태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경영진과 함께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이번 계기로 채용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상처 입히지 않고 사랑받는 회사가 되자고 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2015년 2월3일 위메프에 현장 근로감독 시정지시서를 내리고 과태료 840만 원을 부과했다.

△위메프 대규모 구조조정 논란
허민이 경영상 이유로 위메프 전체 직원 550명 가운데 200명을 권고사직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위메프는 2011년 10월17일 지역 포털업체로 체질 전환을 하겠다며 전체 직원 550명 가운데 200명을 감축한다는 목표로 권고사직 형태의 인력 감축을 했다.

사직을 통보 받은 직원들은 사전 통보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감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직 대상자들은 모두 당일 통보를 받고 사직서를 작성했으며 한달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받았다.

위메프 관계자는 “소셜커머스시장의 적자 구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회사의 효율성 향상과 재무상태 개선 등을 위해서는 인력 감축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공포의 쿵쿵따’와 ‘신야구’ 게임 표절 시비
KBS의 인기 프로그램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간판코너 ‘공포의 쿵쿵따’가 인기를 얻으면서 게임업체들도 끝말잇기 게임들을 내놓았는데 2003년 초에 게임사인 네오플과 D3i, 넷마블 사이에 표절시비가 일었다.

네오플은 2003년 2월5일 넷마블에 ‘쿵쿵따 게임의 표절 및 베타서비스 중지’라는 제목의 공문을 제출하면서 ‘쿵쿵따 표절 시비’를 제기했다. 양측간 표절논란이 불거지자 D3i가 ‘쿵쿵따의 실제 주인은 우리’라며 표절 공방전에 가세했다.

D3i는 보도자료를 통해 “네오플의 캔디바에 앞서 2002년 4월 '쿵쿵따' 서비스를 제공해왔다”며 “캔디바의 쿵쿵따도 D3i가 개발한 전투말잇기와 쿵쿵따 게임을 표방했으므로 네오플은 저작권과 상표권 출원의 객관적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네오플은 게임 캔디바 아바타를 케이포테크놀로지가 표절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2003년 9월 서울지방법원에 저작권 침해 가처분신청을 냈다.

서울지방법원 민사 50부는 2003년 11월18일 케이포테크놀로지가 네오플의 아이템에 대한 복제권, 개작권,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네오플이 2005년 출시한 온라인 야구게임 ‘신야구’는 캐릭터 디자인을 놓고 일본 게임 개발사인 코나미가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를 표절했다고 주장하면서 네오플이 캐릭터를 도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10년 “신야구 캐릭터가 실황야구 캐릭터를 복제한 것이라고 볼 수 없음은 물론 실황야구 캐릭터의 2차 저작물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 경력
▲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오른쪽)가 2012년 8월 잠실구장을 찾은 전설의 너크볼러 필 니크로(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999년 12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2001년 4월 게임회사 네오플을 세우고 2008년 8월까지 네오플 대표이사로 일했다.

2010년 5월 소셜커머스회사 위메프를 설립했다.

2011년 5월 벤처캐피탈 원더엔젤스를 세웠다.

2011년 7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위메프 대표이사를 지냈다.

2011년 9월부터 2014년 9월까지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 구단주를 맡았다.

2013년 8월부터 2015년까지 미국 독립야구단 락랜드볼더스 선수로 뛰었다.

2019년 1월 프로야구구단 키움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에 취임했다.

2019년 9월 게임회사 넥슨 게임 개발 외부고문으로 영입됐다.

◆ 학력

1994년 부산 대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02년 서울대학교 응용과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버클리음악대학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 상훈

2012년 12월4일 은퇴 프로야구인 모임인 일구회가 선정하는 '2012 일구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12년 12월7일 프로야구 스포츠토토 올해의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 기타

허민은 네오플을 넥슨에 판 뒤 이를 부동산에 투자해 자산을 1조 원 넘게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넥슨에 네오플을 팔아 3천억 원대 자산가가 됐고 2009년 885억 원을 들여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미래에셋타워를 사들였다. 2012년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맞은 편 토지를 660억 원을 주고 매입했고 2년 뒤 그 부지 위에 위메프 사옥을 세웠다.


◆ 어록
▲ 최성 고양시장(왼쪽), 구본능 KBO 총재(가운데),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가(오른쪽) 2011년 9월15일 한국야구위원회 회관에서 원더홀딩스 창단 업무협약을 맺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히어로즈는 모기업이 없는 유일한 야구 전문기업으로서 존재가치가 뚜렷한 구단이라 생각한다. 여러 현안들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18/12/21, 프로야구구단 넥센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에 선임되며)

“불가능의 반대말은 가능이 아니라 도전이다. 스승인 니크로 선생이 47세에 현역에서 은퇴했으니 나는 3년 정도 더 던져서 50세에 은퇴하고 싶다.” (2013/09/02,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야구단 운영은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선수들에게 돈만 주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야구단 운영은 내게도 큰 의미가 있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것이 고양원더스를 만든 것이다.” (2012/12/04, 일구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으며)

“성공스토리를 사회에 기부하고자 어린 시절의 꿈인 야구선수 육성을 선택했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인재 육성에 이바지하고 싶다.” (2011/09/15,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 창단 양해각서 체결식에서)

“국내 소셜커머스 시장이 과열 경쟁 등으로 혼탁해지는데 대한 반성과 안타까움이 컸다. 국내 토종 소셜커머스 업체인 위메프가 제대로 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도전 정신에서 경영자 복귀를 결정했다. 위메프의 최종 목표는 최고의 소셜커머스가 아닌 세계 최고의 지역 포털이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티켓몬스터나 쿠팡, 그루폰이 아닌 네이버다. 전 세계 회원 3억 명, 동시 접속자 240만 명으로 연간 1천억 원의 수익을 창출했던 던전앤파이터의 신화를 위메프에서 다시 한번 재현하겠다.” (2011/07/14, 위메프 기자간담회에서)

“나이가 어릴수록 리스크를 크게 걸어야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려고 먼저 생각하기보단 일단 먼저 사람들부터 끌어들이고 무엇을 할지는 그 다음에 생각했다. 매일 매일 모여 농구를 하고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일단 놀면서 시작해보자는 것이 그 때 생각이었다. 하루는 소개팅을 해달라는 친구의 요청이 있었는데 그 때 떠올랐던 아이디어가 소개팅을 소재로 한 사이트였다.” (2011/04/03,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에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10/10/06, 위메프 공개 기자간담회에서)

“한빛소프트의 ‘팡야’ 퍼블리싱 과정을 지켜보면서 ‘신야구’를 선뜻 내 놓게 됐다. 네오플의 개발력과 한빛소프트의 퍼블리싱 능력이 합쳐지면 2005년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05/01/27, 한빛소프트와 캐주얼 야구게임 신야구의 퍼블리싱 계약을 맺으며)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새로운 대학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 기존 운동권을 대신해 학우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는 학생회를 만들겠다. ‘광란의 10월’이라는 다소 특이한 팀 이름은 전국대학의 10월 축제를 연결하는 문화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선거공약을 반영한 것이다. 앞으로 대학 문화 구축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일부 간부만 참여해온 기존의 총학생회에서 벗어나 환경문제, 대중문화, 스포츠, 여성문제, 학내시설 등 각 분야의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학생들이 관심분야에 참여할 수 있는 장으로 학생회를 변화시키겠다.” (1999/12/03,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당선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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