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허 카젬은 픽업트럭 콜로라도와 대형 SUV 트래버스를 앞세워 판매 반등을 꾀하고 있다.
두 차량에 예상보다 낮은 가격을 책정하면서 그동안 한국GM 제품에 약점으로 꼽히던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콜로라도는 국내에 4천만 원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돼 왔지만 2019년 8월 가장 낮은 트림 기준 3855만 원에 출시됐다. 트래버스 가격도 5천만 원을 웃돌 수 있다는 예상을 깨고 2019년 9월 가장 낮은 트림을 4520만 원에 내놨다.
한국GM은 쉐보레 브랜드 제품을 미국에서 수입해서 판매할 때면 국내 완성차기업 제품과 비교해 ‘비싸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판매 확대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카허 카젬은 경차인 스파크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인기차종을 두지 못한 만큼 두 차량을 ‘반전카드’로 만들기 위해 마케팅전략 수립단계에서부터 공을 들였다.
소비자의 요구와 눈높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잠재고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현대자동차의 팰리세이드 등 국내 완성차기업 차량과 경쟁관계로 묶이는 것을 피하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가입하기도 했다. 국내 완성차기업 5곳 가운데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가입한 곳은 한국GM이 유일하다.
카허 카젬은 그가 부임한 2017년 이후 한국GM의 내수판매량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문제를 해소하려 한다.
한국GM의 2017년 판매량은 2016년 판매량보다 26.5% 감소한 13만2378로 집계됐다. 2019년 1~8월에는 자동차를 모두 3만9890대 팔았는데 이는 2018년 같은 기간보다 32.2% 감소한 수치다.
한국GM은 2017년까지 6년 연속으로 내수판매 3위를 지키다가 2018년 쌍용자동차에 자리를 내줬다.
△2019년 임금협상 놓고 노조와 골 깊어져
한국GM 노사는 2019년 임금협상에서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임금협상을 놓고 회사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2019년 9월 9~11일 사흘 동안 전면파업을 진행했다. 추석연휴에도 잔업과 특근을 거부하는 등 강경태세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8월에도 나흘 동안 부분파업을 벌였다.
노조는 기본급을 2018년보다 5.65% 인상과 함께 성과급 및 격려금 등이 포함된 상여금 1650만 원 추가 지급과 고정주간조 전원에 생산장려수당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장기 발전전망 관련 특별요구’안을 마련해 부평2공장의 지속가능한 발전전망 계획, 부평 엔진공장의 중장기 사업계획, 창원 공장 엔진생산 등의 미래발전계획을 제시하라고도 했다.
회사는 경영 정상화를 이유로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며 교섭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카허 카젬은 노조가 2018년 임금단체협약에서 회사가 수익성을 회복한 뒤에야 임금 인상 및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는 점을 내세워 약속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2019년 9월4일 열린 트래버스 출시행사에서 “최근 노동조합의 조치는 안타깝다”며 “노조도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전달했으며 노조와 함께 미래를 구축하기 위해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GM 노사는 2019년 임금협상을 놓고 교섭장소 결정부터 삐걱거렸다. 애초 2019년 5월30일 첫 상견례을 열기로 했으나 교섭장소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한 달 넘게 상견례조차 하지 못했다. 인천 부평 공장 본관 2층 앙코르룸을 새 교섭장소로 하는 데 합의하고 나서야 7월9일 첫 상견례를 진행할 수 있었다.
2019년 9월19일 38일 만에 임금협상 단체교섭이 재개됐지만 한국GM 노사는 이번에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한국GM 노조 조합원 8천여 명은 2019년 9월20일부터 부분파업을 시작했다.
△노조 반대에도 연구개발법인 분리 추진
한국GM은 법인을 분할한 뒤 2019년 1월 연구개발을 전담할 신설법인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를 공식 출범했다.
이에 따라 기존 한국GM은 자동차와 부품의 제조 및 판매사업을 전담하는 생산법인과 자동차 엔지니어링과 디자인 설계 등을 맡는 연구개발법인으로 나뉘게 됐다.
한국GM의 직원 1만3천 명 가운데 연구개발부문에서 일하는 인력 3천여 명이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로 자리를 옮겼으며 로베르토 렘펠 GM 수석 엔지니어가 GM테크니컬센터 대표이사에 올랐다.
한국GM은 2018년 7월 글로벌 제품 개발업무를 전담할 신설법인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생산법인과 연구개발법인을 분리해 한국에서 철수할 때 생산법인은 청산하고 연구개발법인만 남기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보고 신설법인 설립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GM 2대주주인 KDB산업은행 역시 신설법인 설립에 제동을 걸면서 법인설립은 난관에 부딪혔다. 산업은행은 한국GM의 신설법인 설립을 위한 주주총회 개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서울고등법원이 이를 일부 인용하기로 결정하면서 한국GM의 임시주총 결의의 효력이 정지됐다.
한국GM은 신설 연구개발법인을 GM의 핵심 준중형 SUV 연구개발 거점으로 육성하겠다고 확약해 산업은행으로부터 법인설립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산업은행과 GM은 2018년 12월18일 ‘주주 간 분쟁해결 합의서’를 맺었다. 이 합의서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법인분리에 찬성하는 대신 GM은 신설법인을 글로벌 차원에서 준중형 SUV와 CUV 연구개발 거점으로 지정해 최소 10년 동안 유지하기로 했다. 또 신설 연구개발법인에서도 산업은행이 2대주주 역할을 맡기로 했다.
△KDB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 수혈받아
2018년 5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해 한국GM 경영 정상화방안을 확정했다.
이 방안에 따라 정상화자금 가운데 GM 본사는 모두 64억 달러를 부담하게 됐다. 기존 대출자금 28억 달러는 전액 출자전환하고 시설투자에 20억 달러, 구조조정비용 8억 달러, 운영자금 8억 달러 등 36억 달러를 댄다.
산업은행은 시설투자용으로 7억5천만 달러(약 8958억 원)를 출자하기로 했다. 총자산의 20% 이상을 매각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비토권도 회복했다. 2017년 10월 산업은행과 GM본사가 맺은 ‘주주간 계약’이 만료된 데 따라 산업은행은 비토권을 잃었다.
GM은 5년 동안 지분 매각이 전면 제한되며 이후에도 5년 동안 지분 35% 이상으로 1대주주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10년 동안 한국GM의 경영권을 포기할 수 없도록 한 셈이다.
△판매량 끌어올리기 위해 신차 15종 출시
카허 카젬은 2018년 5월 경차 ‘더 뉴 스파크’ 출시를 알리며 앞으로 5년 동안 모두 15종의 신차 및 상품성 개선 모델을 내놓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한국GM은 2019년 9월 현재까지 모두 6종의 신차 및 상품성 개선 모델을 내놨다.
2018년에 더 뉴 스파크를 시작으로 중형 SUV ‘이쿼녹스’와 세단 ‘더 뉴 말리부’, 스포츠카 ‘더 뉴 카마로 SS’를 내놨으며 2019년 8월 말과 9월 초에는 각각 픽업트럭 콜로라도와 대형 SUV 트래버스를 출시했다.
2020년에는 준중형 SUV 트레일블레이저를 내놓는다. 트레일블레이저는 GM이 2018년 KDB산업은행으로부터 7억5천만 달러(약 8958억 원)를 지원받으며 한국GM에 배정하기로 약속한 신차 2종 가운데 하나로 부평 1공장에서 생산된다.
카허 카젬은 앞으로 내놓을 차량의 70% 이상을 SUV로 채운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국내에서 높아지는 SUV 수요에 대응해 판매를 늘리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쉐보레 브랜드 제품을 놓고 국내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2019년 3월 서울모터쇼에서 선보인 초대형 SUV ‘타호’를 비롯해 초대형 SUV ‘서버번’, 준대형 SUV ‘블레이저’ 등이 물망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군산 공장 폐쇄
한국GM은 생산물량 감소로 2018년 5월 22년 역사를 지닌 군산 공장 문을 닫았다.
한국GM은 2011년 군산 공장에서 약 26만 대까지 생산량을 늘렸지만 이후 쉐보레 브랜드와 GM의 연이은 유럽 철수, 내수판매 부진 등으로 연간 생산량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연간 생산량은 2013년 15만 대로 반토막 난 뒤 2017년에는 3만 대로 쪼그라들었다.
한국GM은 판매 부진 탓에 지속적으로 인력을 줄였고 2018년 2차례 희망퇴직을 신청받으면서 군산 공장 직원 수는 1800명에서 612명으로 줄었다.
군산공장 폐쇄로 남은 직원 612명은 뿔뿔이 흩어졌다. 200여 명은 한국GM의 부평과 창원 공장에 전환배치되고 나머지 400여 명은 3년 동안 무급휴직에 들어가고 부평과 창원 공장에서 결원이 발생하면 순차적으로 배치하기로 했다.
▲ 카허 카젬 한국GM 대표이사 사장(왼쪽 두번째)과 시저 톨레도 영업서비스마케팅부문 부사장(왼쪽 첫번째)이 ‘2019 한국산업 서비스 품질지수’ 조사에서 판매와 AS 부문 1위 달성을 축하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GM> |
△부임하자마자 철수설과 맞닥뜨려
카허 카젬은 2017년 9월 한국GM 사장에 취임한 뒤 지속적으로 철수설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가 부임한 해에 KDB산업은행과 GM본사가 맺은 ‘주주간 계약’이 만료되면서 한국GM 철수설이 떠올랐다.
GM본사가 적자를 내는 해외법인을 대상으로 구조조정 칼날을 들이대면서 한국GM도 구구조정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됐다.
카허 카젬의 한국GM 영입도 철수설에 기름을 끼얹는 요인이었다.
카허 카젬은 한국GM을 맡기 전 GM인도 사장으로 재임하며 2017년 3월부터 5월 사이 인도 내수시장에서 수출용 공장만 남기는 등 사실상 철수에 가까운 사업재편을 진행해 ‘구조조정 전문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카허 카젬은 철수설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GM의 입장을 대신 전달하며 철수설을 진화하려 애썼다.
카허 카젬은 부임하고 사흘 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주재한 자동차업계 간담회에서 “GM은 세계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성과를 강화할 수 있는 시장 중심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한국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GM호주 엔지니어 출신으로 국제 경력 쌓아
카허 카젬은 1995년 GM호주에 입사한 뒤 GM의 호주 자동차 브랜드 '홀덴' 생산부문에서 선임 엔지니어를 시작으로 생산관리 분야의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2009년 GM태국 및 아세안 지역 생산·품질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012년 GM우즈베키스탄 사장으로 임명됐다.
2015년 GM인도에 합류해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16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GM인도 사장으로 취임한 지 6개월 만에 GM은 인도 내수시장 철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결국 GM은 2017년 인도 내수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수출용 공장만 유지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재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