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뱅크 제3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심사 탈락
키움증권 중심의 키움뱅크가 제3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심사에서 탈락했다
금융위원회는 2019년 5월26일 키움뱅크 컨소시엄과 토스뱅크 컨소시엄이 모두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밝혔다.
키움뱅크 컨소시엄은 키움증권을 주축으로 KEB하나은행, SK텔레콤 등 모두 28곳의 주주가 참여하는 인터넷전문은행 컨소시엄이다.
키움증권은 키움뱅크 컨소시엄의 지분 25.63%를 들고 있는 최대주주다.
금융위는 키움뱅크 사업계획이 혁신성과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2019년 하반기 재인가를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키움뱅크의 재도전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김익래는 인터넷전문은행을 다우키움그룹의 새 성장동력으로 정하고 사업 추진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키움증권은 2018년 11월6일에 프로야구단 서울히어로즈와 메인스폰서십 계약도 체결했는데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에 대비해 인지도를 높여두려는 김익래의 포석이라고 업계는 바라봤다.
키움증권은 2015년에도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검토했지만 은산분리정책에 막혀 사업을 진행하지 못했다.
△다우키움그룹 대기업 지정
김익래가 다우기술을 설립한 지 33년 만에 다우키움그룹이 대기업에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9년 5월15일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59개 기업집단을 2019년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다우키움그룹은 2019년에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계열사는 57개로 나타났다. 사모투자전문회사(PEF)와 투자목적회사(SPC)가 늘어나 자산총액이 5조 원으로 집계됐다.
자산총액 순위는 대기업집단 59곳 가운데 59위다. 김익래는 다우키움그룹 총수(동일인)로 지정됐다.
다우키움그룹은 2018년에 매출 2조8346억 원, 영업이익 3841억 원, 순이익 3235억 원을 냈다.
△ 프로야구단 '키움 히어로즈'로 키움증권 마케팅 강화
키움증권은 프로야구단 서울히어로즈의 메인 스폰서가 됐다.
키움증권은 2018년 11월6일 서울 여의도 키움증권 본사에서 프로야구단 서울 히어로즈와 메인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기간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으로 연간 스폰서 금액은 100억 원이다.
서울히어로즈의 구단명은 이 계약에 따라 2019년부터 5년 동안 키움 히어로즈가 된다.
김익래는 프로야구 마케팅을 향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전문은행 등 새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마케팅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익래는 이번 계약 이전부터 프로야구 마케팅을 향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왔다.
키움증권은 2006년부터 야구장 펜스 광고를 통해 프로야구 마케팅을 진행해 왔다. 프로야구단과 손잡고 각종 프로모션과 유소년 야구도 지원했다. 비록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2008년에는 야구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사를 맡는 방안도 타진했다.
△다우키움그룹 경영권 승계 준비
김익래는 다우키움그룹의 2세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김익래의 아들인 김동준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는 2019년 1월1일 키움인베스트먼트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대표는 다우기술, 다우데이타를 거쳐 키움인베스트먼트로 자리를 옮겼다.
업계에서는 김 대표가 다우키움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대비해 사업 전반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김 대표는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회사인 ‘이머니’를 통해 다우키움그룹의 지주격 회사인 다우데이타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김 대표의 이머니 지분은 2014년 기준으로 26.91%였지만 업계에서는 김 대표가 이머니 지분을 꾸준히 늘려 2019년 1분기 기준으로 지분을 50% 이상 확보했다고 추정한다.
이머니는 2019년 1분기 기준으로 다우데이타의 지분을 20.92% 보유하고 있다. 김익래(40.64%)에 이어 2대주주다.
이머니는 2011년 다우데이타 지분율이 10% 수준이었지만 8년 동안 2배 넘게 지분율을 높였다.
업계에서는 김익래가 이머니의 다우데이타 지분율을 높여 가는 방식으로 김 대표의 다우키움그룹 승계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우데이타 각자대표로 경영현장 복귀
김익래는 다우데이타 각자대표이사로 경영일선에 돌아왔다.
다우데이타는 2015년 3월27일 정동철 대표이사체제에서 정동철, 김익래 각자대표이사체제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김익래는 그동안 다우키움그룹 계열사의 경영을 전문경영인에 맡겨두고 그룹의 대외업무 등에만 관여했다.
다우데이타가 핀테크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한 것이 김익래의 경영복귀 이유로 꼽힌다.
다우데이타는 종합결제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밴코리아를 2013년 인수했고 주주총회를 통해 직불전자지급 수단 발행과 관리사업에도 진출할 것을 의결했다.
일부에서는 다우키움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다우데이타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김익래가 돌아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 대표가 2017년 9월 사임한 뒤에도 김익래는 이인복 각자대표이사와 함께 다우데이타 각자대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다우키움그룹의 수직계열화
김익래는 다우키움그룹의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다우기술은 2006년 8월22일 보유하고 있던 다우데이타 주식 1100만 주(49.48%) 모두를 김익래에게 163억 원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김익래는 이 지분을 토대로 다우데이타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다우데이타, 다우기술, 키움증권으로 이어지는 다우키움그룹의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다우키움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다우데이타의 주요주주는 김익래(40.64%)와 김익래의 아들인 김동준 키움인베트스트먼트 대표이사가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회사인 이머니(20.92%)다.
다우데이타는 다우기술의 지분을 38.08% 보유하고 있고 다우기술은 키움증권의 지분 47.7%를 들고 있다.
키움증권은 다시 키움인베스트먼트, 키움저축은행, 키움투자자산운용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2019년 1분기 기준으로 다우키움그룹 소속 상장사는 다우데이타, 다우기술, 키다리스튜디오, 사람인HR, 한국정보인증, 미래테크놀로지, 키움증권 등 7개다.
이밖에 사모투자회사와 외국법인 등을 포함해 95개의 비상장 계열사가 있다.
△키움증권 통해 증권업 진출
김익래는 키움증권을 통해 증권업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김익래는 2000년 1월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구조개혁기획단의 김범석 팀장을 초대 사장으로 키움증권(구 키움닷컴)을 설립했다.
키움증권은 2000년 5월4일부터 온라인 주식위탁매매 서비스를 시작했다. 영업점이 없다는 장점을 활용해 저가의 수수료 전략을 펼쳤다.
처음 1년 동안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기존 증권사의 10분의 1 수준인 수수료로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알려지며 주식위탁매매시장에서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키움증권은 2005년부터 13년 연속 주식위탁매매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오고 있다.
개인투자자시장에서 특히 강점을 지니고 있으며 2005년부터 개인투자자의 약 25%가 키움증권의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 ‘영웅문’을 사용해오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키움증권은 주식위탁매매를 시작으로 투자자문, 선물, 기업공개(IPO), 직접투자(PI)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16년에는 한국투자증권을 제치고 우리은행 지분 인수에 성공하기도 했다.
키움증권은 키움인베스트먼트, 키움저축은행, 키움투자자산운용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다우기술 설립과 상장
김익래는 소프트웨어 유통개발 회사 다우기술을 세웠다.
김익래는 1986년 1월 큐닉스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과 함께 자본금 5천만 원으로 다우기술을 설립했다.
다우기술은 대형 컴퓨터의 운영체계로 볼 수 있는 ‘유닉스(UNIX)’의 한글화 작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외국 유명 소프트웨어의 한글화 작업을 주요 사업영역으로 삼고 사업 규모를 확대했다.
김익래는 사업 초반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복제가 어려운 하드웨어에 내장되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사업방향을 바꿔 위기를 넘었다.
다우기술은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고 1994년 정부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에 힘입어 실적이 급성장했다.
1997년 기업공개를 추진해 코스피 상장에 성공했다. 공모가는 5만2천 원으로 결정됐다.
다우기술은 다양한 인터넷 솔루션을 개발해 인터넷 시대를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익래는 2000년 3월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면서 다우기술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익래는 2000년 5월 매일경제신문에 “다우기술이 개발했던 인터넷 솔루션이 키움증권 등 자회사를 설립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글을 남겼다.
△큐닉스 공동 설립
김익래는 컴퓨터 개발 회사 큐닉스를 설립했다.
김익래는 1981년 1월 이범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와 함께 ‘국내 1호’ 벤처기업으로 꼽히는 큐닉스를 공동 설립했다.
큐닉스는 애플 컴퓨터의 한글화에 주력하면서 한글 프린터 모듈을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한글 프린터 모듈의 복제품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마이크로스프트의 한국 독점 대리점권을 따내 사업이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김익래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국내 소프트웨어 사용허가를 들고 있던 금성사(현 LG전자)의 상무를 직접 찾아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 큐닉스를 한국 대리점으로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익래는 큐닉스에서 연구개발을 제외한 기획, 영업, 재무 등의 분야를 총괄했다.
하지만 동업자인 이 교수와 사업방향을 두고 의견 차이가 있었고 이를 좁히지 못해 큐닉스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