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와 전면전 선포
박원순은 2019년 4월7일 미세먼지 재난대책본부를 설립해 미세먼지와 전면전을 선포했다. 박 시장이 직접 미세먼지 재난대책본부장을 맡기로 했다.
서울시는 미세먼지 관련 정책을 전문적으로 뒷받침할 싱크탱크로 '미세먼지연구소'를 설립하고 ‘미세먼지 연구·정책자문단’도 발족했다.
미세먼지 재난대책본부는 박 시장을 본부장으로 사업장관리반, 시민건강보호반, 홍보추진반 등 기능별 5개 실무반 및 25개 자치구 대책본부로 구성된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이 예상되는 당일 오후 4시부터 재난대책본부가 소집돼 '전시체제'로 미세먼지 저감과 시민 보호를 실시간으로 지시하고 점검한다.
미세먼지 연구·정책자문단’은 장영기 수원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를 자문단장으로 김순태 아주대 환경공학과 교수, 고준호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 배현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등 21명의 전문가로 구성된다.
△스마트시티 서울
박원순은 2019년 3월13일 '스마트시티 서울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1조4천억 원을 투자해 서울 전역에 5만 개의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설치하고 미세먼지, 소음, 바람 등 도시현상과 유동인구, 차량 이동 등 시민행동 빅데이터 정보를 수집 활용해 2022년까지 스마트시티 서울을 만드는 방안을 내놨다.
행정 교통 안전 환경 복지 경제 등 6대 분야 총 18개 전략과제를 수립해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도시로 거듭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제로페이 시범사업 초기 부진
박원순은 2018년 12월20일 결제 대행회사와 카드사를 없애 수수료 0%대를 가능하게 만든 QR코드 결제수단인 제로페이를 출시했다.
공식 일정을 줄이더라도 제로페이 홍보에는 만사를 제처놓고 현장을 찾는 등 제로페이 알리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초기 가맹점 가입 수는 많지 않았다.
소상공인들이 가입하기에 절차가 다소 복잡하고 소비자들도 결제방식에 익숙하지 않아 2월 제로페이의 하루 평균 거래건수는 1005건으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사용실적에 비해 0.1%도 안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영업자와 소비자의 제로페이 참여가 저조하자 서울시 자치구 공무원들에게 가맹점 모집 목표치를 할당했다. 특별교부금 300억 원을 제로페이 모집실적과 연결해 차등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2019년 4월 현재 서울시가 가맹대상으로 정한 생활밀착형업종 소상공인업체 4곳 중 1곳이 등록했다. 4월14일 기준 12만28곳이 가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 ▲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9년 3월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꽃가게를 찾아 제로페이 홍보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
△용산과 여의도 개발 추진과 취소
박원순은 2018년 7월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받으러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의도를 신도시급으로 개발하고 서울역∼용산역 철로를 지하화한 뒤 그 위에 마이스 단지와 쇼핑센터를 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개발계획을 공개하자 서울 여의도와 용산의 부동산 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호가가 급등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여의도·용산 개발은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며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반대 의사를 내놓았다.
김 장관의 반대에도 개발 의지를 굽히지 않다가 서울 집값이 급등하면서 민심이 악화되자 여의도 용산 개발계획 발표 및 추진을 전면 보류했다.
△균형발전 위한 강북 개발
박원순은 2018년 8월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 한달살이를 마무리한 뒤 '지역 균형발전정책'을 발표했다.
교통과 주거 등 강북 지역의 기반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골목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민자사업으로 추진됐으나 지지부진했던 면목선, 우이신설연장선, 목동선, 난곡선 등 비강남권 4개 철도노선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2022년까지 비강남권 공영주차장을 90곳 4200면 추가 조성하고 가로변 여유공간에 노상주차장 800면을 만들도록 했다.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2022년까지 장기 방치된 빈집 1천 채를 사들여 청년 창업공간과 청년 주택 등으로 활용하고 청년·신혼주택 4천 호 공급을 목표로 2019년에 우선 400호를 매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2년까지 영유아 열린육아방 373개, 국공립어린이집 486개, 키움센터 357개를 설치하는 등 신규 돌봄시설의 90% 이상을 비강남권에 집중적으로 세우기로 했다.
강북권에 어린이전문병원도 신설하고 청소년 문화·휴식공간을 2022년까지 20개 추가 건립하기로 했다. 또 비강남권에 20개 구립도서관을 확충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강남권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시 산하기관의 강북 이전도 추진한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서울연구원, 인재개발원이 우선 검토대상이다.
△서울시장 3선 성공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와 58.2%를 얻어 20.6%를 득표한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를 꺾고 3선에 성공했다.
그는 ‘시대와 나란히’ ‘시민와 나란히’ ‘미래를 열겠다’는 3가지 목표 아래 9가지 주요 공약을 내세웠다.
9가지 공약은 △시민이 주인인 서울 △성평등 도시 서울 △남북평화를 앞당기는 서울 △돌봄을 책임지는 서울 △폐업, 실직, 빈곤의 두려움 없는 서울 △청년의 꿈을 이루는 서울 △고르게 발전하는 서울 △파란 하늘을 위해 노력하는 서울 △스마트 시티로 다시 태어나는 서울 등이다.
이 가운데 스마트시티 사업, 균형발전, 자영업자 안전망 구축을 핵심공약으로 꼽았다.
글로벌 수준의 스마트시티를 조성하기 위해 6대 스마트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서울형 벤처 5천 개도 키우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균형발전을 위해 재건축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것을 비롯해 '도시·주거환경 정비기금'도 확보하기로 했다. 도심을 일자리, 전통산업지구 등으로 정비해 서울 각 지역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자영업자를 돕기 위한 서울페이도 도입하기로 했다.
| ▲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018년 6월13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안국빌딩에 마련된 캠프 사무실에서 당선이 유력시 되자 꽃다발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17년 19대 대선 불출마
2017년 4월10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만나 지지를 선언했다.
박원순은 애초 19대 대선 유력 주자로 분류됐으나 2017년 1월26일 “시장으로서 시정에 집중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서 정권교체에 주력하겠다”며 19대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2017년 1월2일 페이스북을 통해 결심이 섰다며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이후 낮은 지지율 등으로 출마를 접었다.
2017년 1월 기준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는 4%대의 지지율을 보이며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이어 6위에 올랐다.
△재선 임기 활동
2011년부터 서울시를 이끌며 대규모 사업보다는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정책과 도시재생 쪽에 초점을 맞춘 사업들을 다수 진행했다.
2018년 4월 김종진 문화재청장과 함께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광화문광장은 지금보다 약 4배가량 커진다.
2018년 3월 서울시 산하기관인 120다산콜재단에 2명의 노동이사를 임명했다. 서울시 산하기관의 노동이사는 직원들의 투표와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서울시장이 최종 임명한다.
박원순은 서울시장으로 일하며 공공기관에 최초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2016년 9월 정원 100인 이상 산하기관은 노동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조례를 제정했고 노동이사제 도입 1년6개월 만에 정원이 100명이 넘는 16개 기관에 모두 22명의 노동이사를 선임했다.
2017년 11월 ‘태양의 도시 서울’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태양의 도시 계획은 2022년까지 1조7천억 원을 투입해 서울의 태양광 발전용량을 현재보다 8배 가량 늘리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그는 “에너지 소비도시 서울에서 에너지 생산도시 서울로 대전환을 시도할 것”이라며 “2022년에는 서울 어디에서든 태양광이 일상이자 풍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5월 서울역 고가를 도심공원으로 바꿔 ‘서울로7017’을 열었다.
2014년 9월 서울역 고가를 미국의 뉴욕 하이라인파크에 버금가는 도심고가 녹지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발표한 뒤 2016년 3월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해 서울로7017를 완성했다.
2017년 3월 세운상가 일대를 재생하는 ‘다시·세운 프로젝트 창의제조산업 활성화계획’을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6년 1월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를 재개발하는 내용의 다시·세운 프로젝트에 따른 것으로 세운상가는 청년 창업사와 제조사 입주 공간, 시민문화공간 등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2017년 2월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근로자, 아르바이트 등 ‘을’의 경제 주권을 강화하는 23개 과제를 담아 2017 경제민주화 도시 서울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16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전 머물던 안국동 사무실과 혜화동 사저 등을 포함해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장소를 ‘노무현 루트’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15년 10월에 이어 2016년 3월 일자리 대장정 시즌2를 발표했다.
일자리 대장정 시즌2는 2022년까지 서울 전역에 취업준비와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자리 카페를 300개 만들고 강소기업 1천 개를 발굴해 청년 1만 명을 취업시키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2015년 7월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 모델인 ‘서울리츠’를 개발해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는 리츠 방식의 임대주택을 처음 도입했는데 서울리츠는 50년 이상 장기 임대주택으로 공급해 주거 안정성을 최대화했다.
박원순은 2018년 4월12일 서울시장 3선 출마 선언을 하며 치적으로 △친환경 무상급식 △시립대 반값 등록금 △채무 8조 감축과 사회복지 2배 증액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12만호 임대주택 공급 △국공립어린이집 30% 달성 △재개발. 뉴타운의 정리와 도시재생 등을 꼽았다.
△서울시장 재선 성공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로 나와 56.1%를 얻어 43.1%를 득표한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당시 ‘안심특별시 서울’을 표어로 내걸고 ‘재난 컨트롤타워 설치’, ‘골든타임 목표제’, ‘초등학교 스쿨버스 도입’, ‘상습 침수피해 위험지역 해소’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경제 분야 핵심공약으로 ‘서울형 창조경제’를 앞세워 구로의 가산과 홍대의 합정, 상암의 수색, 동대문, 개포를 5대 창조경제 거점으로 키우고 코엑스에서 잠실에 이르는 영동권과 도심, 서남권 등 3대 권역을 국제교류 마이스(MICE) 복합거점으로 육성할 것도 공약했다.
2011년 10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치러진 지방선거 재보궐선거에서 53.4%를 득표해 46.2%를 얻은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 임기를 시작했다.
박원순은 당시 지지율과 인지도가 낮았으나 안철수 서울대학교 교수의 지지를 받아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박영선 당시 민주당 후보를 이겼다.
박원순은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으며 당선 이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선거자금이 부족했던
박원순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면서 활용했던 ‘유시민 펀드’를 모방해 ‘
박원순 펀드’를 발행했다.
박원순 펀드는 모금 하루 만에 목표액인 33억 원을 넘기며 52시간 만에 조기 마감됐다.
모금된 펀드는 선거자금으로 쓰였고 12월25일 원금과 이자(연리 3.58%)를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최종 입금액은 38억8500만 원이며 입금에 참여한 시민들은 모두 5778명이었다. 1인당 평균 67만 원을 낸 셈으로 시간당 모금액은 6300만 원이었다.
|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 원장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2011년 9월6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포옹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참여연대 결성
1994년 9월10일 ‘참여연대’를 결성해 2002년까지 사무처장 및 상임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법률지식을 활용한 ‘합법적’ 형태의 시민운동을 펼쳤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맑은 사회 만들기 운동,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운동, 부패 정치인 낙천낙선운동,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등을 이끌었다.
특히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를 구성해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부패 정치인 낙천·낙선 운동을 벌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의 입법화에 기여했다. 국민연금 노령수당 반환소송을 승소로 이끌어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참여연대가 확실히 자리잡자 2000년 1% 나눔운동을 위한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재단이 궤도에 오르자 2002년 중고 생활용품을 기증받아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했다.
2005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방문교수 자격으로 한국 시민사회를 주제로 강의했다.
2006년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희망제작소’를, 2009년 제3세계 가난한 농부들을 돕는 공정무역 커피회사 ‘아름다운 커피’를 각각 세웠다.
2004년부터 5년간 포스코 사외이사로 재직했으며 이외에도 풀무원홀딩스 사외이사, 웅진 비상임이사를 맡았다.
△시민운동가 이전
1975년 서울대학교에서 제적당한 뒤 1979년 장충식 당시 단국대 총장이 신원보증을 서 줘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데모로 복역한 학생을 받아주는 대학은 없었는데 이때 인연으로 장충식 총장은
박원순 결혼식의 주례를 섰다.
단국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1978년 8월 법원사무관시험에 합격해 그해 12월부터 1979년 8월까지 춘천지법 정선등기소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1980년 6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2년 6월 사법연수원(제12기)을 수료한 뒤 투옥된 경력에도 불구하고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다.
하지만 1983년 8월 6개월 만에 검사를 그만 두고 서울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그는 후에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은 데다 폭탄주 등 강압적 조직문화에 거부감을 느껴 검찰조직을 떠났다고 말했다.
1986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을 맡았으며 같은 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전신인 ‘정의실천 법조인회’에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참여했다.
1986년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하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박원순은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피해자 권인숙씨의 변호인단을 맡았고 조영래 변호사가 낭독한 변론요지서에 작성인으로 연서했다.
이 사건은 공권력의 왜곡과 사법부 및 언론의 부도덕한 모습, 보도지침 공개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외에도 ‘보도지침사건’, ‘구로동맹파업사건’, ‘박종철고문치사사건’ 등 여러 시국사건 변론에 참여했다. 이후 1988년 결성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도 학술간사로 활동했다.
박원순을 시민운동가의 길로 인도한 것은 조영래 변호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변호사는 1990년 12월 임종 직전 “박 변호사,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이제 좀 눈을 돌려봐”라고 조언했고
박원순은 1991년 집을 팔아 역사문제연구소에 기부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영국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관련해 선진국의 사례를 연구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변호사 시절 이른바 ‘돈 되는 사건’도 맡아 돈을 꽤 잘 벌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6년 한국현대사 연구자들과 뜻을 모아 민간 학술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를 설립한 뒤 초대 이사장을 지냈는데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 재정적으로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한겨레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일했고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1년간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