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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박원순 서울특별시 시장
김남형 기자  knh@businesspost.co.kr  |  2019-04-22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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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 생애

박원순은 3선 서울시장이다.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제로페이의 성공적 안착이 눈앞의 과제다. 도시재생사업이 서울시민의 삶에 스며들지는 못한 상태라는 비판도 넘어서야 한다. 

3선 임기를 마친 뒤 2022년 치러지는 20대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인지도에 비해 지지율이 낮고 원내와 당내 세력이 작은 것이 약점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2020년 21대 총선에서 원내에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서울시장으로서 탁월한 성과를 남겨 대중적 인기를 확실하게 모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1956년 3월26일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했으나 긴급조치 명령 9호 위반으로 제적당했다.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대구지검 검사를 거쳐 변호사로 개업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을 지냈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했다. 

총선시민연대의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새로운 시민단체를 창립해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시민운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안철수 당시 서울대학교 교수의 지지를 받아 민주당 및 민주노동당 후보와 경선에서 승리해 무소속으로 범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이 됐다.

다음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야권 후보로 출마해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에 이겨 재선에 성공했다.

박근혜 게이트로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자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설 뜻을 보이다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신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시장후보로 출마해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에 이겨 3선에 성공했다.

소탈하고 성실한 성품의 소유자다. 서울시장을 지내며 시민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시장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일과 관련한 열정이 깊어 워커홀릭이라는 평도 있다. 

◆ 활동의 공과

△미세먼지와 전면전 선포 
박원순은 2019년 4월7일 미세먼지 재난대책본부를 설립해 미세먼지와 전면전을 선포했다. 박 시장이 직접 미세먼지 재난대책본부장을 맡기로 했다.  

서울시는 미세먼지 관련 정책을 전문적으로 뒷받침할 싱크탱크로 '미세먼지연구소'를 설립하고 ‘미세먼지 연구·정책자문단’도  발족했다. 

미세먼지 재난대책본부는 박 시장을 본부장으로 사업장관리반, 시민건강보호반, 홍보추진반 등 기능별 5개 실무반 및  25개 자치구 대책본부로 구성된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이 예상되는 당일 오후 4시부터 재난대책본부가 소집돼 '전시체제'로 미세먼지 저감과 시민 보호를 실시간으로 지시하고 점검한다.

미세먼지 연구·정책자문단’은 장영기 수원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를 자문단장으로 김순태 아주대 환경공학과 교수, 고준호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 배현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등 21명의 전문가로 구성된다.  

△스마트시티 서울
박원순은 2019년 3월13일 '스마트시티 서울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1조4천억 원을 투자해 서울 전역에 5만 개의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설치하고  미세먼지, 소음, 바람 등 도시현상과 유동인구, 차량 이동 등 시민행동 빅데이터 정보를 수집 활용해 2022년까지 스마트시티 서울을 만드는 방안을 내놨다.

행정 교통 안전 환경 복지 경제 등 6대 분야 총 18개 전략과제를 수립해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도시로 거듭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제로페이 시범사업 초기 부진
박원순은 2018년 12월20일 결제 대행회사와 카드사를 없애 수수료 0%대를 가능하게 만든 QR코드 결제수단인 제로페이를 출시했다.

공식 일정을 줄이더라도 제로페이 홍보에는 만사를 제처놓고 현장을 찾는 등 제로페이 알리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초기 가맹점 가입 수는 많지 않았다.

소상공인들이 가입하기에 절차가 다소 복잡하고 소비자들도 결제방식에 익숙하지 않아 2월 제로페이의 하루 평균 거래건수는 1005건으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사용실적에 비해 0.1%도 안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영업자와 소비자의 제로페이 참여가 저조하자 서울시 자치구 공무원들에게 가맹점 모집 목표치를 할당했다. 특별교부금 300억 원을 제로페이 모집실적과 연결해 차등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2019년 4월 현재 서울시가 가맹대상으로 정한 생활밀착형업종 소상공인업체 4곳 중 1곳이 등록했다. 4월14일 기준 12만28곳이 가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9년 3월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꽃가게를 찾아 제로페이 홍보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용산과 여의도 개발 추진과 취소
박원순은 2018년 7월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받으러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의도를 신도시급으로 개발하고 서울역∼용산역 철로를 지하화한 뒤 그 위에 마이스 단지와 쇼핑센터를 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개발계획을 공개하자 서울 여의도와 용산의 부동산 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호가가 급등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여의도·용산 개발은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며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반대 의사를 내놓았다.

김 장관의 반대에도 개발 의지를 굽히지 않다가 서울 집값이 급등하면서 민심이 악화되자 여의도 용산 개발계획 발표 및 추진을 전면 보류했다.

△균형발전 위한 강북 개발
박원순은 2018년 8월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 한달살이를 마무리한 뒤 '지역 균형발전정책'을 발표했다.

교통과 주거 등 강북 지역의 기반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골목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민자사업으로 추진됐으나 지지부진했던 면목선, 우이신설연장선, 목동선, 난곡선 등 비강남권 4개 철도노선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2022년까지 비강남권 공영주차장을 90곳 4200면 추가 조성하고 가로변 여유공간에 노상주차장 800면을 만들도록 했다.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2022년까지 장기 방치된 빈집 1천 채를 사들여 청년 창업공간과 청년 주택 등으로 활용하고 청년·신혼주택 4천 호 공급을 목표로 2019년에 우선 400호를 매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2년까지 영유아 열린육아방 373개, 국공립어린이집 486개, 키움센터 357개를 설치하는 등 신규 돌봄시설의 90% 이상을 비강남권에 집중적으로 세우기로 했다.

강북권에 어린이전문병원도 신설하고 청소년 문화·휴식공간을 2022년까지 20개 추가 건립하기로 했다. 또 비강남권에 20개 구립도서관을 확충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강남권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시 산하기관의 강북 이전도 추진한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서울연구원, 인재개발원이 우선 검토대상이다.

△서울시장 3선 성공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와 58.2%를 얻어 20.6%를 득표한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를 꺾고 3선에 성공했다.

그는 ‘시대와 나란히’ ‘시민와 나란히’ ‘미래를 열겠다’는 3가지 목표 아래 9가지 주요 공약을 내세웠다.

9가지 공약은 △시민이 주인인 서울 △성평등 도시 서울 △남북평화를 앞당기는 서울 △돌봄을 책임지는 서울 △폐업, 실직, 빈곤의 두려움 없는 서울 △청년의 꿈을 이루는 서울 △고르게 발전하는 서울 △파란 하늘을 위해 노력하는 서울 △스마트 시티로 다시 태어나는 서울 등이다.

이 가운데 스마트시티 사업, 균형발전, 자영업자 안전망 구축을 핵심공약으로 꼽았다.

글로벌 수준의 스마트시티를 조성하기 위해 6대 스마트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서울형 벤처 5천 개도 키우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균형발전을 위해 재건축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것을 비롯해 '도시·주거환경 정비기금'도 확보하기로 했다. 도심을 일자리, 전통산업지구 등으로 정비해 서울 각 지역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자영업자를 돕기 위한 서울페이도 도입하기로 했다.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018년 6월13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안국빌딩에 마련된 캠프 사무실에서 당선이 유력시 되자 꽃다발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19대 대선 불출마
2017년 4월10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만나 지지를 선언했다.

박원순은 애초 19대 대선 유력 주자로 분류됐으나 2017년 1월26일 “시장으로서 시정에 집중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서 정권교체에 주력하겠다”며 19대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2017년 1월2일 페이스북을 통해 결심이 섰다며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이후 낮은 지지율 등으로 출마를 접었다.

2017년 1월 기준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는 4%대의 지지율을 보이며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이어 6위에 올랐다. 

△재선 임기 활동
2011년부터 서울시를 이끌며 대규모 사업보다는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정책과 도시재생 쪽에 초점을 맞춘 사업들을 다수 진행했다.

2018년 4월 김종진 문화재청장과 함께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광화문광장은 지금보다 약 4배가량 커진다.

2018년 3월 서울시 산하기관인 120다산콜재단에 2명의 노동이사를 임명했다. 서울시 산하기관의 노동이사는 직원들의 투표와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서울시장이 최종 임명한다.

박원순은 서울시장으로 일하며 공공기관에 최초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2016년 9월 정원 100인 이상 산하기관은 노동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조례를 제정했고 노동이사제 도입 1년6개월 만에 정원이 100명이 넘는 16개 기관에 모두 22명의 노동이사를 선임했다.

2017년 11월 ‘태양의 도시 서울’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태양의 도시 계획은 2022년까지 1조7천억 원을 투입해 서울의 태양광 발전용량을 현재보다 8배 가량 늘리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그는 “에너지 소비도시 서울에서 에너지 생산도시 서울로 대전환을 시도할 것”이라며 “2022년에는 서울 어디에서든 태양광이 일상이자 풍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5월 서울역 고가를 도심공원으로 바꿔 ‘서울로7017’을 열었다.

2014년 9월 서울역 고가를 미국의 뉴욕 하이라인파크에 버금가는 도심고가 녹지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발표한 뒤 2016년 3월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해 서울로7017를 완성했다.

2017년 3월 세운상가 일대를 재생하는 ‘다시·세운 프로젝트 창의제조산업 활성화계획’을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6년 1월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를 재개발하는 내용의 다시·세운 프로젝트에 따른 것으로 세운상가는 청년 창업사와 제조사 입주 공간, 시민문화공간 등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2017년 2월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근로자, 아르바이트 등 ‘을’의 경제 주권을 강화하는 23개 과제를 담아 2017 경제민주화 도시 서울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16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전 머물던 안국동 사무실과 혜화동 사저 등을 포함해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장소를 ‘노무현 루트’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15년 10월에 이어 2016년 3월 일자리 대장정 시즌2를 발표했다.

일자리 대장정 시즌2는 2022년까지 서울 전역에 취업준비와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자리 카페를 300개 만들고 강소기업 1천 개를 발굴해 청년 1만 명을 취업시키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2015년 7월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 모델인 ‘서울리츠’를 개발해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는 리츠 방식의 임대주택을 처음 도입했는데 서울리츠는 50년 이상 장기 임대주택으로 공급해 주거 안정성을 최대화했다.

박원순은 2018년 4월12일 서울시장 3선 출마 선언을 하며 치적으로 △친환경 무상급식 △시립대 반값 등록금 △채무 8조 감축과 사회복지 2배 증액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12만호 임대주택 공급 △국공립어린이집 30% 달성 △재개발. 뉴타운의 정리와 도시재생 등을 꼽았다.

△서울시장 재선 성공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로 나와 56.1%를 얻어 43.1%를 득표한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당시 ‘안심특별시 서울’을 표어로 내걸고 ‘재난 컨트롤타워 설치’, ‘골든타임 목표제’, ‘초등학교 스쿨버스 도입’, ‘상습 침수피해 위험지역 해소’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경제 분야 핵심공약으로 ‘서울형 창조경제’를 앞세워 구로의 가산과 홍대의 합정, 상암의 수색, 동대문, 개포를 5대 창조경제 거점으로 키우고 코엑스에서 잠실에 이르는 영동권과 도심, 서남권 등 3대 권역을 국제교류 마이스(MICE) 복합거점으로 육성할 것도 공약했다.

2011년 10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치러진 지방선거 재보궐선거에서 53.4%를 득표해 46.2%를 얻은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 임기를 시작했다.

박원순은 당시 지지율과 인지도가 낮았으나 안철수 서울대학교 교수의 지지를 받아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박영선 당시 민주당 후보를 이겼다.

박원순은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으며 당선 이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선거자금이 부족했던 박원순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면서 활용했던 ‘유시민 펀드’를 모방해 ‘박원순 펀드’를 발행했다.

박원순 펀드는 모금 하루 만에 목표액인 33억 원을 넘기며 52시간 만에 조기 마감됐다.

모금된 펀드는 선거자금으로 쓰였고 12월25일 원금과 이자(연리 3.58%)를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최종 입금액은 38억8500만 원이며 입금에 참여한 시민들은 모두 5778명이었다. 1인당 평균 67만 원을 낸 셈으로 시간당 모금액은 6300만 원이었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 원장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2011년 9월6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포옹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여연대 결성
1994년 9월10일 ‘참여연대’를 결성해 2002년까지 사무처장 및 상임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법률지식을 활용한 ‘합법적’ 형태의 시민운동을 펼쳤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맑은 사회 만들기 운동,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운동, 부패 정치인 낙천낙선운동,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등을 이끌었다.

특히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를 구성해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부패 정치인 낙천·낙선 운동을 벌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의 입법화에 기여했다. 국민연금 노령수당 반환소송을 승소로 이끌어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참여연대가 확실히 자리잡자 2000년 1% 나눔운동을 위한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재단이 궤도에 오르자 2002년 중고 생활용품을 기증받아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했다.

2005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방문교수 자격으로 한국 시민사회를 주제로 강의했다.

2006년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희망제작소’를, 2009년 제3세계 가난한 농부들을 돕는 공정무역 커피회사 ‘아름다운 커피’를 각각 세웠다.

2004년부터 5년간 포스코 사외이사로 재직했으며 이외에도 풀무원홀딩스 사외이사, 웅진 비상임이사를 맡았다.

△시민운동가 이전
1975년 서울대학교에서 제적당한 뒤 1979년 장충식 당시 단국대 총장이 신원보증을 서 줘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데모로 복역한 학생을 받아주는 대학은 없었는데 이때 인연으로 장충식 총장은 박원순 결혼식의 주례를 섰다.

단국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1978년 8월 법원사무관시험에 합격해 그해 12월부터 1979년 8월까지 춘천지법 정선등기소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1980년 6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2년 6월 사법연수원(제12기)을 수료한 뒤 투옥된 경력에도 불구하고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다.

하지만 1983년 8월 6개월 만에 검사를 그만 두고 서울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그는 후에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은 데다 폭탄주 등 강압적 조직문화에 거부감을 느껴 검찰조직을 떠났다고 말했다.

1986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을 맡았으며 같은 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전신인 ‘정의실천 법조인회’에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참여했다.

1986년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하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박원순은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피해자 권인숙씨의 변호인단을 맡았고 조영래 변호사가 낭독한 변론요지서에 작성인으로 연서했다.

이 사건은 공권력의 왜곡과 사법부 및 언론의 부도덕한 모습, 보도지침 공개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외에도 ‘보도지침사건’, ‘구로동맹파업사건’, ‘박종철고문치사사건’ 등 여러 시국사건 변론에 참여했다. 이후 1988년 결성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도 학술간사로 활동했다.

박원순을 시민운동가의 길로 인도한 것은 조영래 변호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변호사는 1990년 12월 임종 직전 “박 변호사,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이제 좀 눈을 돌려봐”라고 조언했고 박원순은 1991년 집을 팔아 역사문제연구소에 기부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영국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관련해 선진국의 사례를 연구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변호사 시절 이른바 ‘돈 되는 사건’도 맡아 돈을 꽤 잘 벌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6년 한국현대사 연구자들과 뜻을 모아 민간 학술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를 설립한 뒤 초대 이사장을 지냈는데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 재정적으로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한겨레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일했고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1년간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다.

◆ 비전과 과제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9년 4월12일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세월호 ‘기억 및 안전전시공간’ 개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시>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면서 3선 서울시장이자 최장기 서울시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3선 취임 뒤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제로페이의 성공적 안착이 눈앞의 과제다. 제로페이는 박원순이 '서울페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도한 공약이었던 만큼 제로페이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반향이 크지 않은 데다 민간 영역의 일을 공공이 주도한다는 비판도 있다.

민선 5~6기를 거치며 서울형 도시재생을 추진해 왔지만 젠트리피케이션(내몰림) 발생이나 노후주택 개량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 등 도시재생이 서울 시민의 삶에 스며들지는 못한 상태라는 비판도 넘어서야 한다.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 중 한 사람이다. 3선 임기를 마친 뒤 2022년 치러지는 20대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인지도에 비해 지지율이 낮고 원내와 당내 세력이 작은 것이 약점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2020년 21대 총선에서 원내에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서울시장으로서 탁월한 성과를 남겨 대중적 인기를 확실하게 모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 평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어떤 사건이든 한번 맡게 되면 끝을 보는 성실한 성격 때문에 좋은 평판을 얻었다.

일과 관련한 열정이 깊어 워커홀릭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포스코 사외이사 시절 검소하며 소탈한 모습 때문에 포스코가 오히려 의전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사외이사들이 차를 타고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이사회에 참석한 것과 달리 박원순은 지하철과 택시를 이용해 이사회에 참석했다.

포스코는 박원순이 어느 문으로 들어올지 몰라 모든 입구에 박원순 사진을 배포했으나 안내원들이 행색이 초라한 박원순을 알아보지 못해 번번히 안내에 실패했다고 한다.

과도한 의전을 꺼리는 것은 시장이 된 후에도 여전하다고 한다. 서울시장에 당선된 뒤 ‘불합리한 의전 혁신방안’을 만들라고 서울시 공무원들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장 박원순을 놓고 평가는 엇갈린다.

한 발 앞서 펼쳤던 '서울형 미세먼지 저감조치'들이 재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에서 먼저 2017년 5월 시행한 미세먼지대책들이 2019년 2월부터 시행된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되면서 전국적 미세먼지 저감조치 매뉴얼로 자리잡았다. 친환경보일러 설치, 공용차량 2부제, 배출가스 5등급 경유차량 운행 제한 등이 선구적 조치로 평가받았다.

서울형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정부의 대응보다 앞서 나간 것은 시민인권운동가 출신의 박원순이 환경정책에서도 과감한 정책을 뚝심있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3선 재임하며 8년 동안 정책방향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다.

뉴타운 출구전략과 용산국제업무지구 등에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2013년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와 방화대교 진입로 붕괴 사고 등의 수습 과정에서 기민하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르스 사태 대처도 호평을 받았다.

소통을 중시해 '시민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시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반면 반대진영인 보수야당 등에서는 특별한 정책 없이 인기위주의 정책들을 내놓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서울시는 소득에 상관없이 서울 20대 청년 1600명에게 매달 50만 원을 주는 정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서울 청년 5000명에게 소득과 근로시간을 따져 청년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사회취약층을 위한 실험적 무상복지 행보에 인기를 노린 선심성 복지라는 비판이 있다.

서울메트로나 서울도시철도공사, 시설관리공단, 서울신용보증재단, SH공사, 사회복지재단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광범위하게 자신의 정치적 인맥을 선임했다는 비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로 적합지 않은 정치적 인맥을 임명했다는 비판 등도 받았다.

◆ 사건사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5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방한한 마싱루이(馬興瑞) 광둥성 성장과 경제협력 협약 후 이어진 선물 교환식에서 광둥성 측으로부터 '박 시장을 그린 것'이라며 초상화 선물을 받았다. 하지만 초상화에는 이재명 지사 얼굴이 담겨 있었다. <연합뉴스>
△이재명 초상화 선물
2019년 4월5일 마싱루이 중국 광둥성 성장을 만나 회담했는데 마싱루이 성장이 박원순에게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초상화를 선물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마싱루이 성장은 오전에 박원순을 만난 뒤 오후에 이 지사를 만나는 일정이었다.

마싱루이 성장 측은 초상화 제작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며 사과하고 선물을 다시 회수해 갔다. 

△새 광화문광장 설계안 충돌
서울시는 2019년 1월21일 새 광화문광장 설계안을 발표했다. 설계안은 정부서울청사 건물 4개 동을 철거하고 청사 앞 도로와 주차장을 모두 광장으로 수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2월15일 더불어민주당 유튜브 채널 ‘씀’에 올라온 인터뷰에서 “서울시가 조정할 여지가 있다고 했으니 지켜봐야겠지만 서울시의 안 대로 하면 (정부서울청사의) 마당과 뒷길을 뺏긴다”며 “그러면 청사 자체를 못 쓴다”고 말했다.

박원순은 1월25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세상에 절대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나”며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은 정부, 청와대와 함께 쭉 추진해온 일”이라고 말했다.

박원순은 “행정안전부가 23일 광화문 재구조화사업에 반대 성명서를 냈다가 서울시와 협의해 잘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두 기관이 만나 24일 발표까지 했다”며 “김부겸 행안부 장관이 무슨 뜻에서 새 광화문이 절대 안 된다고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앞서 1월25일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서울시의 설계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안부가 문제를 제기해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만큼 서울시가 합리적 대안을 들고 오면 충분히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놓고 불편한 기류가 흘렀던 박원순과 김 전 장관은 한달여 만에 화해 분위기를 보였다. 2월24일 김 전 장관으로 부터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의 다음 주자로 추천받은 박원순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면서다.

△KT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2018년11월24일 KT아현지사 통신구에서 불이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로 시작된 통신 두절 사태가 서울 서대문구, 용산구, 마포구, 중구, 은평구 등 5개 구와 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박원순은 사고 현장을 찾아 종합적 관리방안을 마련해야한다며 정부와 협의해 빠른 복구와 향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일고시원 화재
2018년 11월9일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불이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후한 건물로 관련법 상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피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된 건축법에 따라 2009년 7월 이전부터 운영된 노후 고시원은 공공에서 스프링클러 설치를 강제할 수 없다

서울시에는 2009년 7월 이전에 지어진 노후 고시원이 1300여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2018년 11월 기준으로 서울시가 221개 고시원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지원했으나 1080곳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서울시 미세먼지대책 설전
박원순은 2018년 1월 환경부가 수도권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하자 1월15일과 17일 출퇴근시간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영했다.

하지만 경기도는 무료로 운영하지 않았고 이와 관련해 남경필 경지지사와 장외에서 설전을 벌였다.

박원순은 1월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취한 조치는 마땅히 정부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라며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시비 거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경필 지사는 1월16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미세먼지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서울시는 경기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세먼지 공짜운행’을 일방적으로 시행했다”며 “박 시장은 포퓰리즘 미봉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순의 무료 대중교통정책은 남 지사뿐 아니라 보수야당 등으로부터도 실효성이 없고 예산만 낭비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시는 1월15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로 출근시간대 서울시내 도로 교통량은 1주 전보다 1.8% 줄고 시내버스 이용객은 0.4%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박원순은 2018년 3월19일 서울청사에서 천지닝 중국 베이징시장을 만나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환경 분야에서 협력한다는 양해각서를 맺었다.

박원순은 “두 도시의 공통 관심사이자 최우선 해결과제인 대기질 개선 분야에서 실질적 협력방안을 이끌어낼 것”이라며 “미세먼지 절감을 위한 도시외교적 노력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중립 의무 논란
2017년 3월26일 페이스북에 “촛불 민심, 국민의 염원을 받들기 위해 혁신적 통합의 마인드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민주당이 정권을 교체하고 민주 정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능력이 있음을 국민에 자랑스럽게 보여줘야 할 때다”고 올렸다가 30분 만에 삭제했다.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랭크스코필드 전시회 축사 사건
2017년 2월24일 서울시청 로비에서 ‘프랭크스코필드’ 특별전시회 축사를 진행하던 중 한 남성이 자해 시위를 했다.

이 남성은 2015년 한 재개발 정비예정구역에서 직권 해제된 뒤 보조금 액수를 두고 서울시와 갈등을 벌여왔으며 재개발 담당 관계자를 만나러 시청에 왔다가 박원순을 보자 술김에 돌발행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폐지 주장
2017년 1월10일 한 인터넷방송매체 대선주자 초청 인터뷰에서 국정원을 폐지하고 해외정보 수집 부서를 새로 만들 것을 주장했다. 이 때 국정원의 사찰과 제압문건 작성 등을 함께 언급했다. 

2013년 5월15일 한겨레가 국가정보원의 내부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인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와 대응방향’을 공개했다. 

문건에는 여당과 정부기관, 민간단체, 학계를 총동원해 박원순을 ‘제압‘해야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하야 요구와 탄핵 주장
2016년 11월2일 청와대가 박근혜 게이트 의혹에 대응해 개각을 발표한 것을 놓고 예비 대선주자 가운데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하면 대선 출마를 포기하겠다고 내걸기도 했다.

11월3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을 언급했다. 11월9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회동하고 박 대통령의 하야 요구에 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모를 적시한 공소장을 발표하자 즉각 탄핵을 결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2017년 5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시민들과 함께하는 개표방송에서 함께 웃음 짓고 있다. <연합뉴스>
△지하철 스크린 도어 사고
2016년 5월28일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안전문을 정비하던 용역업체 직원 김씨가 열차와 스크린 도어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박원순은 이를 사과하면서 지하철공사의 안전 관련 업무의 외주를 근본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스크린 도어 정비를 모두 직영전환하기로 하고 서울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2018년까지 레이저센서로 모두 교체하기로 했다.

△강남구와 충돌
2015년 12월 강남구청 공무원들이 인터넷포털사이트에 서울시를 비방하고 강남구를 지지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게재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와 강남구는 2015년 들어서만 제2시민청, 한전 부지 개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현대차 공공기여금 등 중요 이슈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서울시는 당시 지방자치단체와 관련한 행정감사 규정 등에 따라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실질감사를 해 위법성이 확인되면 수사의뢰 등 법적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10월 서울중앙지검은 강남구청 공무원들에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송현동 호텔 건립 반대
대한항공의 송현동 호텔 건립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부지 인근에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가 있어서 호텔 건립은 부적절하다는 태도를 취하며 민속박물관을 선호한다고 피력해왔다.

대한항공은 서울시 송현동의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를 290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7성급 특급호텔 건립을 추진해왔다.

2015년 8월 새누리당의 ‘경제활성화 4법 일괄 타결 추진 방침’으로 이 개발이 재조명됐지만 송현동 부지는 지구단위계획상 호텔을 지을 수 없는 곳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다. 송현동 호텔 건립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숙원사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메르스 대처로 지지도 상승
2015년 6월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서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비판하며 서울시가 직접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중앙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지방정부 차원에서 직접 재난 수준의 사태에 대응하겠다고 나선 셈인데 많은 지지와 함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대중에게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박원순은 당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우버 도입 불허
2015년 1월21일 글로벌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Uber)와 관련해 우버가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어 영업활동을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버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승객과 차량을 이어주는 서비스로 일반 택시와 승객을 연결하는 우버택시와 일반인이 자신의 차량으로 운송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버엑스, 프리미엄 리무진 차량을 연결하는 우버블랙 등의 서비스를 포함한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 지자체는 우버의 서비스가 여객자동차운송사업법을 위반해 불법이라 규정하고 제동에 나섰지만 우버가 ‘우버택시’를 출범하며 갈등이 이어졌다.

서울시는 우버를 불법콜택시 영업을 벌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우버는 결국 한국에서 사업을 포기했다.

△제2롯데월드 조기 개장 허가
박원순은 2014년 10월 위험요소가 발견되면 즉각 허가를 취소한다는 조건을 달아 제2롯데월드의 조기개장을 허가했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과 관련한 국민 불안감이 극대화됐을 때로 싱크홀과 석촌호수 수위저하 등 안전문제로 제2롯데월드 개장과 관련해 국민적 관심이 높을 때였다.

제2롯데월드는 2014년 2월 47층 컨테이너박스에서 화재가 나고 4월 12층 옥상배관설비 이음부분이 폭발하는 등 안전성을 놓고 논란의 대상이 됐다.

제2롯데월드는 2014년 10월 조기 개장 뒤 대형 수족관(아쿠아리움) 균열문제, 영화관 진동, 출입문 떨어짐 사고 등이 일어났고 다시 안전진단을 받아 2015년 5월 재개장했다.

△아들 병역의혹
강용석 당시 무소속 의원은 2012년 박원순 아들 박주신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박주신씨가 2011년 8월 공군에 입대했으나 ‘대퇴부 말초신경 손상’을 이유로 나흘 만에 귀가 조치된 것과 관련해 그가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MRI를 바꿔치기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2012년 2월22일 세브란스병원이 판독한 결과 군에 제출된 MRI 사진이 박주신씨 본인의 것이라고 밝혀졌다.

이에 강 의원은 박원순과 그 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병역 기피 의혹
2011년 10월 병역 기피를 위한 호적 쪼개기 의혹이 제기됐다.

1969년 7월 당시 13살인 박원순은 일제 강점기 사할린에서 실종된 작은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됐다.
 
입양 덕분에 당시 만 17세로 징집편입 대상자였던 박원순의 형이 1967년 개정된 병역법에 따라 ‘부선망 독자 방위복무 혜택’을 봤고 박원순도 아버지(자신을 입양한 작은할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는 사실을 인정받아 6개월 방위로 군복무를 마친 것이 논란이 됐다.

한나라당은 당시 박원순의 입양과 관련해 양부인 작은할아버지의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민법상 근거가 없는 입양이라고 주장했다.

박원순은 “양손 입양이 당시 관행이었으며 할아버지가 작은할아버지의 대리인으로 입양에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아내 일감 몰아주기 의혹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박원순의 배우자 강난희씨가 세운 인테리어회사 ‘P&P디자인’에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원순은 “아름다운가게가 전국에 130여 개 있는데 2000년대 초반 시작 단계에서 10여 개 정도만 부인이 도와줬다”며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인테리어를 했다”고 해명했다.

P&P디자인이 실내건축공사업 등록을 하지 않은 무등록회사라는 의혹도 나왔는데 박원순은 이와 관련해 “세무서에 사업체 신고를 해 사업자 등록증이 있다”며 “시도지사에 등록하는 조항을 몰라 신고하지 않았지만 사업을 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포스코 사외이사 시절
한나라당은 2011년 논평을 통해 “박원순 후보가 포스코와 풀무원 홀딩스의 사외이사를 지내면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참가한 표결 307회 가운데 단 1회를 빼고 모든 안건에서 찬성표를 던졌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박원순이 대기업 사외이사 시절 외부감시자로서 역할은커녕 도리어 재벌의 거수기 역할만 했던 위선자였다고 비판했다.

박원순은 이와 관련해 “이사회에 앞서 열린 소위원회 등에서 소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해 최종안에 반영했기 때문에 반대표를 던질 필요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사외이사로 일하며 받은 보수 5억3091만 원도 “모두 기부했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과 소송 승소
2009년 국가정보원 명예훼손 혐의에서 승소했다.

박원순은 2009년 6월 위클리경향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시민단체와 관계를 맺는 기업 임원까지 전부 조사해 시민단체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불법사찰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국가정보원은 “박 변호사가 허위 사실을 말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2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2010년 9월15일 서울중앙지법은 국가의 청구를 기각한다며 박원순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는 기본권의 보장 의무를 지는 존재이지 누리는 주체가 아니다”며 “국가가 국민의 비판에 소송으로 대응하려 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언로가 봉쇄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낙천낙선운동 전개
2000년 1월12일 박원순이 속한 참여연대와 환경연합 등 420여 개 시민단체는 뜻을 모아 ‘2000년 총선 부패 정치 청산 시민연대(총선연대)’를 구성했다.

박원순은 총선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낙천·낙선운동을 이끌었다.

총선연대는 후보공천 반대 인사들의 선정기준으로 △병역사항 △재산변동 △부패혐의 △선거법 위반 △헌정질서 파괴와 반인권 행위 △의정활동 성실성 △법안과 정책 △반의회 반유권자적 행위 등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선거법 위반’ 판정을 받았다.

당시 선거법 제87조는 선거일 20일 전부터 시작된 공식 선거운동 기간 시민단체가 특정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총선연대는 ‘부패정치 청산’을 위한 낙천낙선운동을 지속했고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상자 132명 가운데 72.3%인 102명이 낙선했다. 비록 선거법을 어겼으나 시민참여를 통해 정치개혁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대 제명
1975년 5월22일 구속돼 영등포 구치소에서 4개월 동안 복역했다.

긴급조치 9호를 반대하며 할복자살한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의 장례식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이어졌는데 박원순을 비롯해 ‘돌멩이를 몇 개 던진’ 60여 명의 학생이 구속됐다.

그는 기소유예로 풀려났지만 대학에서 제적을 당했다.

◆ 경력
▲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7년 4월10일 광화문 광장을 방문해 시설현황 브리핑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오른쪽 사진은 사법연수원 시절 동기였던 문 대통령과 박 시장.
1978년 8월 법원사무관시험에 합격해 그해 12월부터 1979년 8월까지 춘천지법 정선등기소장으로 일했다.

1980년 6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2년 6월 사법연수원(제12기)을 수료한 뒤 검사를 지망해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다.

1983년 8월 검사를 그만 두고 서울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을 지냈다.

1989년부터 2년 동안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으로 일했고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지냈다.

1990년대 후반 감사원 부정방지위원대책위원회 위원, 국회 제도운영개혁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2000년 일본군 성노예 범 국제법정 공동검사, 법무부 민사소송 개정 심의위원, 부패방지 입법 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으로도 일했다.

2003년 국세청 세정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사법개혁위원회 위원,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방문교수 등을 역임했다.

2000년대 들어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2011년 10월 제35대 서울시장에 올라 2014년 재선, 2018년 3선에 성공했다.

◆ 학력
 
경상남도 창녕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1974년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재수를 해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합격했다.

1975년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서울대에서 제적됐다.

1979년 유신체제가 끝나면서 이듬해 각 대학의 제적생 복교조치가 내려졌으나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1985년 2월 졸업했다.

1991년 8월 런던정경대 국제법과정(LSE)에서 1년 동안 공부했다.

◆ 가족관계

경남 창녕의 가난한 농가에서 부친 박길보씨의 7남매(2남5녀)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났다. 

1969년(당시 13세) 일제강점기 사할린에서 실종된 작은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됐다.

1982년 강난희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박주신) 1녀(박다인)를 뒀다. 

◆ 상훈

시민운동가로서 활동하며 많은 상을 받았다.

2003년 이웃돕기 유공자로 국민포장을 받았다.

2006년 ‘아시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의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에서 수상했다. 

2017년 12월 국내 정치인 가운데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시에서 최고등급 명예메달(Grand Vermeil)을 받았다.

파리시는 1911년부터 시와 협력관계에 큰 공을 세웠거나 문화, 예술, 스포츠 발전을 도운 주요 정계인사에게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 기타

2019년 3월28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박원순은 2018년 말 기준으로 7억3650만 원의 빚이 있다. 2017년 말보다 빚이 1억 원가량 늘었다.

박원순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 공관에 살고 있으며 따로 집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자녀들은 모두 해외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은 서울시장에 오른 2011년 빚 3억1056만 원이 있다고 신고한 뒤 매년 빚이 늘었다.

주요 공직자 가운데 7년 동안 가장 적은 재산을 보유하다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13억8697만 원의 빚을 신고해 ‘꼴찌’에서 벗어났다.

1977년 8월 육군 보충역으로 편입해 경남 창녕군 장마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 1978년 4월 이병으로 소집해제됐다.

'NGO-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1999) '일본시민사회 기행'(2001) '원순씨를 빌려드립니다'(2010, 21세기북스) '박원순의 아름다운 가치사전'(2011, 위즈덤하우스) '경청 : 박원순의 대한민국 소통 프로젝트'(2014, 휴먼큐브) '국민에게만 아부하겠습니다'(2016, 더봄) '박원순, 생각의 출마'(2018, 더봄)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 어록
▲ 2019년 4월18일 서울 신한엘타워 디지털캠퍼스에서 열린 간편결제 활성화 간담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현대사에 굵고 통 큰 정치를 했다. 나는 디테일하고 감성적이다. 역사마다 서로 다른 리더십이 필요한것 같다.” (2019/04/17,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을 관람한 뒤 기자단에게)

“나는 미세먼지와 싸우는 야전사령관으로서 미세먼지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대비하겠다.” (2019/04/15, 서울시청에서 ‘미세먼지 10대 그물망대책’을 발표하며)

“개미구멍처럼 사람들이 집을 찾아들어가면서 옆집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게 과연 우리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느냐. 제가 화장을 해 멀끔한 것 같지만 피를 흘리고 있다.” (2019/04/08, 서울시청에서 ‘골목길 재생 시민정책대화’ 인사말에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 국민이 뽑은 문재인 대통령을 막말로 모독하고 민주주의 기본 질서조차 부정하는 정당에 미래가 있나. 국민들 보기 창피하고 부끄럽다.” (2019/02/20,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이 전당대회를 준비하면서 극우적, 자극적 발언을 내놓는 상황을 두고 페이스북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망언은 망언일 뿐 역사 왜곡은 다양한 해석이 될 수 없다. 일본이 일제 치하에 벌어진 일본군 성노예 만행을 인정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는 말을 할 때 우리는 망언이라 부른다.” (2019/02/10,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모독 발언을 두고 페이스북에서) 

“세상에 절대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은 정부, 청와대와 함께 쭉 추진해온 일이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이 무슨 뜻에서 새 광화문이 절대 안된다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2019/01/25,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여론조사는 공중에 나는 깃털과 같은 것이다. 지금 서울시민의 삶이 힘든데 민생의 문제를 풀어내는 것 밖에 관심이 없다.” (2019/01/07,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현해 여권 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명되는 것을 두고)

“정부가 2인의 부시장 자리를 만들어 준다면 그 가운데 한 명은 기업출신 경제전문가를 임명하겠다. 서울시는 기업을 지원하는 경제정책의 기둥을 세우고 그 정책의 성과목표를 엄밀히 평가해 오류와 실수를 시정해 나가겠다.” (2018/12/28, 신년사에서)

“국민이 원하는 건 진실이지 정치공세가 아니다. 민생이 절박한 상황에서 정파적 이득을 위해 국정조사를 이용한 것을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진행하고 있는 감사와 조사를 놓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일로 민생을 인질로 삼은 야당의 정치공세에 개탄한다.” (2018/11/22, 공공부문 채용비리 관련해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이 국정조사를 요구한 것을 두고 페이스북에서)

“늑장대응보다는 과잉대응이 낫다는게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서울시가 얻은 교훈이다. 3년전 경험을 살려 메르스 확산을 막아야 한다.” (2018/09/08,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뒤 페이스북에서)

“강북과 강남의 격차는 1970년대 이뤄졌던 강남 집중개발에 기인한 것이다. 투자와 정책방향의 전환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 (2018/08/19,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 한달살이를 마친 뒤 강북구 강북문화에술회관에서 열린 ‘시민과 동고동락’ 정책발표회에서)

“여의도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 때 한강 밤섬을 폭파해 나온 흙과 돌로 개발됐다. 그때 만들어진 아파트가 노후화해 새로운 개발이 필요하다. 여의도를 서울의 맨하튼처럼 만들어야 한다.” (2018/07/25,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의 팟캐스트방송 ‘서당캐’에 출연해)

“여의도를 통으로 개발하겠다. 여의도 전체를 새로운 업무와 주택지로 바꿔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신도시에 버금가는 지역으로 만들겠다.” (2019/07/09, 리콴유 세계도시상 수상을 위해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언제나 시민의 삶을 최우선에 두라는 시민 여러분의 위대한 승리다. 평화와 번영이 넘치는 서울을 만들겠다. 공정과 정의, 평화와 민주주의가 꽃피는 대한민국을 서울에서부터 시작하겠다.” (2018/06/13, 당선이 확실시 된 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선거캠프 상황실에서)

“변호사와 시장으로 오래 일한 사람이 가난하다면 칭찬받을 일이다. 이런 청백리가 어디 있느냐.” (2018/06/08, 서울시장 후보자 토론회에서)  

“서울에서 압도적 승리가 수도권의 승리와 더 나아가 전국 승리의 견인차가 될 것이다. 그 승리를 위해 민주당의 야전사령관으로 모든 힘을 바치겠다.” (2018/05/14, 서울시장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페이스북에)

“하루 종일 설레다 울컥했다. 따릉이를 타고 평양까지 한달음에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2018/04/27,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소회를 페이스북을 통해 전하며)

“6년 전 대통령이 토목의 강을 파고 불통의 벽을 쌓을 때 서울시장이 돼 ‘시민이 시장’이라고 선언했고 ‘내 삶을 바꾸는 첫 번째 시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6년 뒤 새로운 시간이 왔다. 2022년 서울에 사는 보통사람들이 서로가 사랑하고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사람이 행복한 서울, 그 10년 혁명을 완성하고 싶다.” (2018/04/12, 서울시장 3선 도전을 공식화하며)

“그때는 이명박 정부의 독선에 맞선 민주개혁진영의 동지로서 함께했던 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흐르면서 당적도 가는 방향도 달라지고 서로 다른 곳에 서 있다.” (2018/04/03, 기자들과 만나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과 관련해)

“미세먼지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정말 큰 재난이자 침묵의 살인자다. 그런 관점에서 미세먼지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나빠지면 서울시교육청과 협력해 휴교를 할 수도 있다.” (2018/03/27, 출입기자단과 간담회에서)

“강산이 변하는데도 10년이 걸리고 내 삶을 바꾸는데도 10년이 걸린다. 10년 혁명은 내 삶을 바꾸는 대전환이며 내 삶을 바꾼 첫 번째 도시 서울의 완성이 될 것이다.” (2017/12/29, 신년사에서)

“이번 방한이 한미관계가 ‘포괄적 동맹’을 넘어 지속가능한 ‘위대한 동맹’으로 가는 기회가 되기를, 한반도의 평화를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전쟁의 메시지 대신에 평화의 메시지를 심어주고 가달라.” (2017/11/0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에 맞춰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 직원들이 자꾸 삼선짜장면을 시켜준다.” (2017/09/28,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3선 도전 가능성과 관련해)

“서울시는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혁신도시다. 서울시가 성취하고 실험한 정책들을 로열티 없이 문재인 후보에 주겠다. 사법연수원 동기로 37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지였고 현재의 동지이며 앞으로도 동지일 것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길을 문재인 후보와 함께 걷겠다.” (2017/04/11,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하며)

“대통령 탄핵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대한민국 시민은 자랑스럽다. 위대한 시민의 완벽한 승리다.” (2017/03/31,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안보협력기구 기조연설에서 촛불집회를 놓고)

“이번 대선에 나가면서 ‘나다운 것’을 잘 못했던 것 같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훨씬 다른, 조직이나 개인 비전이나 선거 방식이나 다 새로움으로 가득 찬 것을 하겠다. 국민이 신기해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을 하려 한다. 그동안 서울시장으로서 너무 ‘올인’했던 것 같다.” (2017/03/23, 기자들과 만나 대선 재도전을 놓고)

“오늘 비로소 광장에 봄이 당도했다. 2017년 3월10일 오늘로 대한민국 이전과 이후는 달라졌다. 성숙한 광장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바꿨다. 우리는 공명정대한 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을 뽑고, 희망찬 민주적 정부를 수립할 것이다. 서울시장으로서, 정치인 한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감과 함께 광장의 교훈을 겸허하게 새긴다.” (2017/03/10,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직후 페이스북에)

“사드 배치와 관련한 갈등 때문에 중국과 외교 문제가 심각해졌고, 관광객을 포함한 어려운 문제가 닥쳤다. 나는 이것을 어리석은 외교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강력한 동맹관계를 기초로 하면서 경제적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중국을 외교적 파탄으로 만든 것은 외교적 실책이고 실패였다.” (2017/03/07, 서울시청에서 중국의 한국 여행금지 조치를 놓고 ‘민관합동 대책회의’에서)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의 관용에도 한계가 있다. 지금 시청광장에서 벌어지는 박사모 등의 집회에서 도가 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살인과 테러를 주창하고 내란을 선동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서울시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2017/02/26, 보수단체의 헌법재판관 원색비난을 놓고 페이스북을 통해)

“그 긴 걸음 속에서 아직도 제 마음 속에 비워내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비워진 마음 속에 시민을, 그 고통의 삶을, 그것을 해결할 방도를, 헝클어진 세상의 매듭을 풀어보겠다는 그 초심을 차곡차곡 쌓아 가겠다. 지리산을 다녀왔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걸었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일었다. 저 눈보라와 짙은 구름 속에서도 여전히 태양은 빛나고 있었다. 다시 시작하겠다.” (2017/02/01, 대선 불출마 선언을 놓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의 염원과 기대, 그리고 저의 역할 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열망으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정권교체 이후 민주개혁세력의 단결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다시 시민 속으로 들어가겠다.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을 안전하고 시민들이 행복한 세계 최고의 글로벌 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 (2017/01/26,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결심이 섰다! 지금 대한민국이 거듭나려면 '유능한 혁신가'가 필요하다. 온 국민이 대한민국의 총체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점에 평생을 혁신과 공공의 삶을 살아온 나는 시대적 요구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낡은 질서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을 누구보다 가장 잘 만들 수 있다고, 도탄에 빠진 절박한 국민들의 삶을 가장 잘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대한민국의 거대한 전환, 대혁신을 기필코 이루겠다.” (2017/01/02, 대선출마를 시사하며 페이스북에서)

“온 나라가 위기인데 개인이 대선 출마 같은 정치적 이해를 따질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시정을 잘 챙기고 한명의 정치인으로서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겠다.”(2016/11/15, TV조선 뉴스쇼 ‘판’에 출연해 대선출마가능성을 놓고 이야기하며)

“촛불을 든 국민은 묻고 있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비선을 통해 ‘혼용무도(어리석은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힌다)’한 세력이 임기를 마쳤다고 기록되는 것이 정의인지, 아니면 무도한 세력들이 모두 죗값을 치르고 성난 민심의 요구로 하야했다고 기록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묻고 있다. 정의롭고 공정한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2016/11/10, 사회관계망서비스 방송인 ‘원순씨 X파일’에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반도 정책의 변화와 경제 무역환경의 변화 등 세계 질서가 급변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박근혜 대통령으로는 이런 상황에 준비를 할 수 없다. 대통령이 조속히 퇴진하는 길만이 국정공백과 외교공백을 최소화하고 혼란의 장기화를 막는 길이다.”(2016/11/09,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놓고)

“국민과 함께 촛불을 들겠다. 대한민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통령도 정치인도 국민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 오늘 하나의 촛불이 대한민국의 희망을 밝히는 그런 촛불이 되길 바란다. 제도권과 비제도권을 차별할 필요가 있는가. 지금 국민이 격앙하고 분노하고 있다.” (2016/11/02,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야 한다.”(2016/11/02, 청와대가 박근혜게이트에 대응해 발표한 개각을 놓고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긴급성명을 열면서)

“서울시는 앞으로 옥시 소모품을 쓰지 않겠다.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되면 이처럼 부도덕한 기업의 상품은 이 땅에 자리 못 잡게 해야 한다. 문제 있는 기업이 반드시 징벌돼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2016/04/28,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 논란에서 촉발된 옥시 불매운동에 동참하며)

“2년이 지난 지금도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유가족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는 어느 실종자 어머니의 말에 꾹꾹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더 슬픈 분 앞에서 울지 않으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직도 세월호에는 국민이 있다. 국가란 국민이다.” (2016/04/16, 세월호 팽목항을 찾은 뒤 SNS를 통해)

“청년이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의 희망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청년들의 삶이 비루하다면 우리사회의 미래가 비루할 것이라는 전조이며 청년들의 삶에 희망이 없다면 다가올 우리사회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징후다.” (2015/12/10, 청년정책을 놓고 기자간담회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당과 민주화운동에 큰 지도자였다.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도 민주헌정의 기초를 닦으셨던 분이다. 우리 사회의 큰 별이 지셨다. 민주화추진협의회와 양김 단일화에 참여하면서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어려운 시절을 견디면서 민주화의 큰 길을 개척했던 지도자라 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대도무문의 그 길 우리가 따르겠다.”(2015/11/22,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방문해)

“관광객 2천만 서울을 목표로 뛰겠다. 무엇보다 메르스로 발길을 돌린 외국인관광객을 다시 서울로 오게 하는 게 급선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관광여행업계와 숙박업계, 요식업계, 쇼핑업계 등 관광인프라 업계 모두와 손잡고 외국인관광객을 다시 서울로 끌어들이는 데 온 힘을 쏟겠다. 서울의 관광산업이 다시 옛 명성을 되찾고 경제를 살리는 황금알로 거듭나는 관광객 2천만 도시 목표를 위해서라면 관광가이드로 나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 (2015/07/01, 서울시장 민선 6기 1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모든 정책 수단과 예산을 쏟아 부어 민생회복에 앞장서겠다. 향후 서울시정은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다.” (2015/07/01, 서울시장 민선 6기 1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는 실용주의자다. 정말로 창조경제가 내 신념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심지어 먼저 말했다. 대통령이 쓰셨다고 서울시장이 억지로 딴 걸 만들어야 하는가.” (2015/01/08, ‘서울형 창조경제’를 주장한 배경을 놓고 기자간담회에서)

“다시 사람이 희망, 시민이 시장이다. 서울은 사람제일의 도시인 ‘사람특별시’로 나아간다.” (2014/07/01, 서울시장 취임식에서)

“우리는 묶여있고 상대방은 우리를 매와 몽둥이로 때린다. 그걸 고스란히 맞는 느낌이었다. 네거티브 없는 선거가 우리는 네거티브를 안 하고 상대방만 하는 상황이 되면 참 어렵다고 느꼈다. 7선 국회의원과 대한민국 한 정당의 대표를 지낸 정몽준 후보가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대한민국의 정치풍토가 이것밖에 안되는가 하는 생각에 슬프고 참혹했다.” (2014/06/04, 선거캠프 자원봉사자 조회에서 서울시장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을 마치며)

“본질은 기본과 원칙이 무너진 대한민국의 사회와 구조에 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고뇌와 결단을 느낄 수 있었다. 시기적으로 안타까운 부분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뭔가 새로운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나온 담화라 의미있게 받아들인다.”(2014/05/19,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를 놓고 한국프레스센터 중견언론인모임인 ‘관훈클럽’ 주최로 열린 TV토론회에서)

“사람이 안전한 서울, 사람이 따뜻한 서울, 사람이 꿈꾸고 창조하는 서울, 사람과 도시가 함께 숨 쉬는 서울, 반듯하고 품격있는 서울로 나아가겠다.” (2014/05/16, 서울시장 재선출마를 선언하며)

“시민은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습니다. 상식과 원칙이 이겼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선택한 것입니다.” (2011/10/2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발표한 당선사례에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2011년 9월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수피아홀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에 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드디어 새로운 서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2011/10/03, 범 야권 단일화 후보 선출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몇 마디 물어보고 난 다음에 너무 갑자기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저는 양보하겠습니다’라고 얘기해서 사실 놀랐다. 안 교수가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의 공공적 이익을 위해서 해왔던 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태도였다고 본다.” (2011/09/07, 안철수 원장의 서울시장 단일화 양보 다음날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평범한 시민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모든 진리는 현장에 있다고 믿는다. 희망은 희망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보인다.” (2006/11/14, 주간경향과 인터뷰에서 희망제작소의 비전을 이야기하며)

“국민이 국가의 잘못된 법 제정과 집행에 책임을 묻지 못한다면 국민의 기본권은 계속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 (2000/4/30, 택지소유상한법 위헌 판결이 나자, 입법기관인 국회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벌어진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

“‘탐욕’이라는 열차에 올라탔으나 열차에서 내리면서 세상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우선 물질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다.” (1991년 멘토 조영래 변호사의 죽음을 계기로, 성공한 변호사 생활을 접고 영국유학을 떠난 당시를 회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고 시민운동에 뛰어들 결심을 할 수 있었다."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4개월간 투옥됐던 당시를 회고하며)
 

◆ 활동의 공과

△미세먼지와 전면전 선포 
박원순은 2019년 4월7일 미세먼지 재난대책본부를 설립해 미세먼지와 전면전을 선포했다. 박 시장이 직접 미세먼지 재난대책본부장을 맡기로 했다.  

서울시는 미세먼지 관련 정책을 전문적으로 뒷받침할 싱크탱크로 '미세먼지연구소'를 설립하고 ‘미세먼지 연구·정책자문단’도  발족했다. 

미세먼지 재난대책본부는 박 시장을 본부장으로 사업장관리반, 시민건강보호반, 홍보추진반 등 기능별 5개 실무반 및  25개 자치구 대책본부로 구성된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이 예상되는 당일 오후 4시부터 재난대책본부가 소집돼 '전시체제'로 미세먼지 저감과 시민 보호를 실시간으로 지시하고 점검한다.

미세먼지 연구·정책자문단’은 장영기 수원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를 자문단장으로 김순태 아주대 환경공학과 교수, 고준호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 배현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등 21명의 전문가로 구성된다.  

△스마트시티 서울
박원순은 2019년 3월13일 '스마트시티 서울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1조4천억 원을 투자해 서울 전역에 5만 개의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설치하고  미세먼지, 소음, 바람 등 도시현상과 유동인구, 차량 이동 등 시민행동 빅데이터 정보를 수집 활용해 2022년까지 스마트시티 서울을 만드는 방안을 내놨다.

행정 교통 안전 환경 복지 경제 등 6대 분야 총 18개 전략과제를 수립해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도시로 거듭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제로페이 시범사업 초기 부진
박원순은 2018년 12월20일 결제 대행회사와 카드사를 없애 수수료 0%대를 가능하게 만든 QR코드 결제수단인 제로페이를 출시했다.

공식 일정을 줄이더라도 제로페이 홍보에는 만사를 제처놓고 현장을 찾는 등 제로페이 알리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초기 가맹점 가입 수는 많지 않았다.

소상공인들이 가입하기에 절차가 다소 복잡하고 소비자들도 결제방식에 익숙하지 않아 2월 제로페이의 하루 평균 거래건수는 1005건으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사용실적에 비해 0.1%도 안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영업자와 소비자의 제로페이 참여가 저조하자 서울시 자치구 공무원들에게 가맹점 모집 목표치를 할당했다. 특별교부금 300억 원을 제로페이 모집실적과 연결해 차등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2019년 4월 현재 서울시가 가맹대상으로 정한 생활밀착형업종 소상공인업체 4곳 중 1곳이 등록했다. 4월14일 기준 12만28곳이 가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9년 3월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꽃가게를 찾아 제로페이 홍보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용산과 여의도 개발 추진과 취소
박원순은 2018년 7월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받으러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의도를 신도시급으로 개발하고 서울역∼용산역 철로를 지하화한 뒤 그 위에 마이스 단지와 쇼핑센터를 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개발계획을 공개하자 서울 여의도와 용산의 부동산 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호가가 급등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여의도·용산 개발은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며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반대 의사를 내놓았다.

김 장관의 반대에도 개발 의지를 굽히지 않다가 서울 집값이 급등하면서 민심이 악화되자 여의도 용산 개발계획 발표 및 추진을 전면 보류했다.

△균형발전 위한 강북 개발
박원순은 2018년 8월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 한달살이를 마무리한 뒤 '지역 균형발전정책'을 발표했다.

교통과 주거 등 강북 지역의 기반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골목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민자사업으로 추진됐으나 지지부진했던 면목선, 우이신설연장선, 목동선, 난곡선 등 비강남권 4개 철도노선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2022년까지 비강남권 공영주차장을 90곳 4200면 추가 조성하고 가로변 여유공간에 노상주차장 800면을 만들도록 했다.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2022년까지 장기 방치된 빈집 1천 채를 사들여 청년 창업공간과 청년 주택 등으로 활용하고 청년·신혼주택 4천 호 공급을 목표로 2019년에 우선 400호를 매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2년까지 영유아 열린육아방 373개, 국공립어린이집 486개, 키움센터 357개를 설치하는 등 신규 돌봄시설의 90% 이상을 비강남권에 집중적으로 세우기로 했다.

강북권에 어린이전문병원도 신설하고 청소년 문화·휴식공간을 2022년까지 20개 추가 건립하기로 했다. 또 비강남권에 20개 구립도서관을 확충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강남권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시 산하기관의 강북 이전도 추진한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서울연구원, 인재개발원이 우선 검토대상이다.

△서울시장 3선 성공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와 58.2%를 얻어 20.6%를 득표한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를 꺾고 3선에 성공했다.

그는 ‘시대와 나란히’ ‘시민와 나란히’ ‘미래를 열겠다’는 3가지 목표 아래 9가지 주요 공약을 내세웠다.

9가지 공약은 △시민이 주인인 서울 △성평등 도시 서울 △남북평화를 앞당기는 서울 △돌봄을 책임지는 서울 △폐업, 실직, 빈곤의 두려움 없는 서울 △청년의 꿈을 이루는 서울 △고르게 발전하는 서울 △파란 하늘을 위해 노력하는 서울 △스마트 시티로 다시 태어나는 서울 등이다.

이 가운데 스마트시티 사업, 균형발전, 자영업자 안전망 구축을 핵심공약으로 꼽았다.

글로벌 수준의 스마트시티를 조성하기 위해 6대 스마트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서울형 벤처 5천 개도 키우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균형발전을 위해 재건축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것을 비롯해 '도시·주거환경 정비기금'도 확보하기로 했다. 도심을 일자리, 전통산업지구 등으로 정비해 서울 각 지역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자영업자를 돕기 위한 서울페이도 도입하기로 했다.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018년 6월13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안국빌딩에 마련된 캠프 사무실에서 당선이 유력시 되자 꽃다발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19대 대선 불출마
2017년 4월10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만나 지지를 선언했다.

박원순은 애초 19대 대선 유력 주자로 분류됐으나 2017년 1월26일 “시장으로서 시정에 집중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서 정권교체에 주력하겠다”며 19대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2017년 1월2일 페이스북을 통해 결심이 섰다며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이후 낮은 지지율 등으로 출마를 접었다.

2017년 1월 기준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는 4%대의 지지율을 보이며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이어 6위에 올랐다. 

△재선 임기 활동
2011년부터 서울시를 이끌며 대규모 사업보다는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정책과 도시재생 쪽에 초점을 맞춘 사업들을 다수 진행했다.

2018년 4월 김종진 문화재청장과 함께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광화문광장은 지금보다 약 4배가량 커진다.

2018년 3월 서울시 산하기관인 120다산콜재단에 2명의 노동이사를 임명했다. 서울시 산하기관의 노동이사는 직원들의 투표와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서울시장이 최종 임명한다.

박원순은 서울시장으로 일하며 공공기관에 최초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2016년 9월 정원 100인 이상 산하기관은 노동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조례를 제정했고 노동이사제 도입 1년6개월 만에 정원이 100명이 넘는 16개 기관에 모두 22명의 노동이사를 선임했다.

2017년 11월 ‘태양의 도시 서울’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태양의 도시 계획은 2022년까지 1조7천억 원을 투입해 서울의 태양광 발전용량을 현재보다 8배 가량 늘리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그는 “에너지 소비도시 서울에서 에너지 생산도시 서울로 대전환을 시도할 것”이라며 “2022년에는 서울 어디에서든 태양광이 일상이자 풍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5월 서울역 고가를 도심공원으로 바꿔 ‘서울로7017’을 열었다.

2014년 9월 서울역 고가를 미국의 뉴욕 하이라인파크에 버금가는 도심고가 녹지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발표한 뒤 2016년 3월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해 서울로7017를 완성했다.

2017년 3월 세운상가 일대를 재생하는 ‘다시·세운 프로젝트 창의제조산업 활성화계획’을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6년 1월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를 재개발하는 내용의 다시·세운 프로젝트에 따른 것으로 세운상가는 청년 창업사와 제조사 입주 공간, 시민문화공간 등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2017년 2월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근로자, 아르바이트 등 ‘을’의 경제 주권을 강화하는 23개 과제를 담아 2017 경제민주화 도시 서울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16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전 머물던 안국동 사무실과 혜화동 사저 등을 포함해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장소를 ‘노무현 루트’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15년 10월에 이어 2016년 3월 일자리 대장정 시즌2를 발표했다.

일자리 대장정 시즌2는 2022년까지 서울 전역에 취업준비와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자리 카페를 300개 만들고 강소기업 1천 개를 발굴해 청년 1만 명을 취업시키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2015년 7월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 모델인 ‘서울리츠’를 개발해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는 리츠 방식의 임대주택을 처음 도입했는데 서울리츠는 50년 이상 장기 임대주택으로 공급해 주거 안정성을 최대화했다.

박원순은 2018년 4월12일 서울시장 3선 출마 선언을 하며 치적으로 △친환경 무상급식 △시립대 반값 등록금 △채무 8조 감축과 사회복지 2배 증액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12만호 임대주택 공급 △국공립어린이집 30% 달성 △재개발. 뉴타운의 정리와 도시재생 등을 꼽았다.

△서울시장 재선 성공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로 나와 56.1%를 얻어 43.1%를 득표한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당시 ‘안심특별시 서울’을 표어로 내걸고 ‘재난 컨트롤타워 설치’, ‘골든타임 목표제’, ‘초등학교 스쿨버스 도입’, ‘상습 침수피해 위험지역 해소’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경제 분야 핵심공약으로 ‘서울형 창조경제’를 앞세워 구로의 가산과 홍대의 합정, 상암의 수색, 동대문, 개포를 5대 창조경제 거점으로 키우고 코엑스에서 잠실에 이르는 영동권과 도심, 서남권 등 3대 권역을 국제교류 마이스(MICE) 복합거점으로 육성할 것도 공약했다.

2011년 10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치러진 지방선거 재보궐선거에서 53.4%를 득표해 46.2%를 얻은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 임기를 시작했다.

박원순은 당시 지지율과 인지도가 낮았으나 안철수 서울대학교 교수의 지지를 받아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박영선 당시 민주당 후보를 이겼다.

박원순은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으며 당선 이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선거자금이 부족했던 박원순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면서 활용했던 ‘유시민 펀드’를 모방해 ‘박원순 펀드’를 발행했다.

박원순 펀드는 모금 하루 만에 목표액인 33억 원을 넘기며 52시간 만에 조기 마감됐다.

모금된 펀드는 선거자금으로 쓰였고 12월25일 원금과 이자(연리 3.58%)를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최종 입금액은 38억8500만 원이며 입금에 참여한 시민들은 모두 5778명이었다. 1인당 평균 67만 원을 낸 셈으로 시간당 모금액은 6300만 원이었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 원장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2011년 9월6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포옹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여연대 결성
1994년 9월10일 ‘참여연대’를 결성해 2002년까지 사무처장 및 상임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법률지식을 활용한 ‘합법적’ 형태의 시민운동을 펼쳤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맑은 사회 만들기 운동,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운동, 부패 정치인 낙천낙선운동,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등을 이끌었다.

특히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를 구성해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부패 정치인 낙천·낙선 운동을 벌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의 입법화에 기여했다. 국민연금 노령수당 반환소송을 승소로 이끌어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참여연대가 확실히 자리잡자 2000년 1% 나눔운동을 위한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재단이 궤도에 오르자 2002년 중고 생활용품을 기증받아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했다.

2005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방문교수 자격으로 한국 시민사회를 주제로 강의했다.

2006년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희망제작소’를, 2009년 제3세계 가난한 농부들을 돕는 공정무역 커피회사 ‘아름다운 커피’를 각각 세웠다.

2004년부터 5년간 포스코 사외이사로 재직했으며 이외에도 풀무원홀딩스 사외이사, 웅진 비상임이사를 맡았다.

△시민운동가 이전
1975년 서울대학교에서 제적당한 뒤 1979년 장충식 당시 단국대 총장이 신원보증을 서 줘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데모로 복역한 학생을 받아주는 대학은 없었는데 이때 인연으로 장충식 총장은 박원순 결혼식의 주례를 섰다.

단국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1978년 8월 법원사무관시험에 합격해 그해 12월부터 1979년 8월까지 춘천지법 정선등기소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1980년 6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2년 6월 사법연수원(제12기)을 수료한 뒤 투옥된 경력에도 불구하고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다.

하지만 1983년 8월 6개월 만에 검사를 그만 두고 서울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그는 후에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은 데다 폭탄주 등 강압적 조직문화에 거부감을 느껴 검찰조직을 떠났다고 말했다.

1986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을 맡았으며 같은 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전신인 ‘정의실천 법조인회’에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참여했다.

1986년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하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박원순은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피해자 권인숙씨의 변호인단을 맡았고 조영래 변호사가 낭독한 변론요지서에 작성인으로 연서했다.

이 사건은 공권력의 왜곡과 사법부 및 언론의 부도덕한 모습, 보도지침 공개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외에도 ‘보도지침사건’, ‘구로동맹파업사건’, ‘박종철고문치사사건’ 등 여러 시국사건 변론에 참여했다. 이후 1988년 결성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도 학술간사로 활동했다.

박원순을 시민운동가의 길로 인도한 것은 조영래 변호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변호사는 1990년 12월 임종 직전 “박 변호사,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이제 좀 눈을 돌려봐”라고 조언했고 박원순은 1991년 집을 팔아 역사문제연구소에 기부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영국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관련해 선진국의 사례를 연구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변호사 시절 이른바 ‘돈 되는 사건’도 맡아 돈을 꽤 잘 벌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6년 한국현대사 연구자들과 뜻을 모아 민간 학술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를 설립한 뒤 초대 이사장을 지냈는데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 재정적으로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한겨레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일했고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1년간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다.


◆ 비전과 과제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9년 4월12일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세월호 ‘기억 및 안전전시공간’ 개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시>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면서 3선 서울시장이자 최장기 서울시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3선 취임 뒤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제로페이의 성공적 안착이 눈앞의 과제다. 제로페이는 박원순이 '서울페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도한 공약이었던 만큼 제로페이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반향이 크지 않은 데다 민간 영역의 일을 공공이 주도한다는 비판도 있다.

민선 5~6기를 거치며 서울형 도시재생을 추진해 왔지만 젠트리피케이션(내몰림) 발생이나 노후주택 개량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 등 도시재생이 서울 시민의 삶에 스며들지는 못한 상태라는 비판도 넘어서야 한다.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 중 한 사람이다. 3선 임기를 마친 뒤 2022년 치러지는 20대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인지도에 비해 지지율이 낮고 원내와 당내 세력이 작은 것이 약점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2020년 21대 총선에서 원내에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서울시장으로서 탁월한 성과를 남겨 대중적 인기를 확실하게 모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 평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어떤 사건이든 한번 맡게 되면 끝을 보는 성실한 성격 때문에 좋은 평판을 얻었다.

일과 관련한 열정이 깊어 워커홀릭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포스코 사외이사 시절 검소하며 소탈한 모습 때문에 포스코가 오히려 의전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사외이사들이 차를 타고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이사회에 참석한 것과 달리 박원순은 지하철과 택시를 이용해 이사회에 참석했다.

포스코는 박원순이 어느 문으로 들어올지 몰라 모든 입구에 박원순 사진을 배포했으나 안내원들이 행색이 초라한 박원순을 알아보지 못해 번번히 안내에 실패했다고 한다.

과도한 의전을 꺼리는 것은 시장이 된 후에도 여전하다고 한다. 서울시장에 당선된 뒤 ‘불합리한 의전 혁신방안’을 만들라고 서울시 공무원들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장 박원순을 놓고 평가는 엇갈린다.

한 발 앞서 펼쳤던 '서울형 미세먼지 저감조치'들이 재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에서 먼저 2017년 5월 시행한 미세먼지대책들이 2019년 2월부터 시행된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되면서 전국적 미세먼지 저감조치 매뉴얼로 자리잡았다. 친환경보일러 설치, 공용차량 2부제, 배출가스 5등급 경유차량 운행 제한 등이 선구적 조치로 평가받았다.

서울형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정부의 대응보다 앞서 나간 것은 시민인권운동가 출신의 박원순이 환경정책에서도 과감한 정책을 뚝심있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3선 재임하며 8년 동안 정책방향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다.

뉴타운 출구전략과 용산국제업무지구 등에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2013년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와 방화대교 진입로 붕괴 사고 등의 수습 과정에서 기민하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르스 사태 대처도 호평을 받았다.

소통을 중시해 '시민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시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반면 반대진영인 보수야당 등에서는 특별한 정책 없이 인기위주의 정책들을 내놓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서울시는 소득에 상관없이 서울 20대 청년 1600명에게 매달 50만 원을 주는 정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서울 청년 5000명에게 소득과 근로시간을 따져 청년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사회취약층을 위한 실험적 무상복지 행보에 인기를 노린 선심성 복지라는 비판이 있다.

서울메트로나 서울도시철도공사, 시설관리공단, 서울신용보증재단, SH공사, 사회복지재단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광범위하게 자신의 정치적 인맥을 선임했다는 비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로 적합지 않은 정치적 인맥을 임명했다는 비판 등도 받았다.

◆ 사건사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5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방한한 마싱루이(馬興瑞) 광둥성 성장과 경제협력 협약 후 이어진 선물 교환식에서 광둥성 측으로부터 '박 시장을 그린 것'이라며 초상화 선물을 받았다. 하지만 초상화에는 이재명 지사 얼굴이 담겨 있었다. <연합뉴스>
△이재명 초상화 선물
2019년 4월5일 마싱루이 중국 광둥성 성장을 만나 회담했는데 마싱루이 성장이 박원순에게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초상화를 선물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마싱루이 성장은 오전에 박원순을 만난 뒤 오후에 이 지사를 만나는 일정이었다.

마싱루이 성장 측은 초상화 제작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며 사과하고 선물을 다시 회수해 갔다. 

△새 광화문광장 설계안 충돌
서울시는 2019년 1월21일 새 광화문광장 설계안을 발표했다. 설계안은 정부서울청사 건물 4개 동을 철거하고 청사 앞 도로와 주차장을 모두 광장으로 수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2월15일 더불어민주당 유튜브 채널 ‘씀’에 올라온 인터뷰에서 “서울시가 조정할 여지가 있다고 했으니 지켜봐야겠지만 서울시의 안 대로 하면 (정부서울청사의) 마당과 뒷길을 뺏긴다”며 “그러면 청사 자체를 못 쓴다”고 말했다.

박원순은 1월25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세상에 절대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나”며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은 정부, 청와대와 함께 쭉 추진해온 일”이라고 말했다.

박원순은 “행정안전부가 23일 광화문 재구조화사업에 반대 성명서를 냈다가 서울시와 협의해 잘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두 기관이 만나 24일 발표까지 했다”며 “김부겸 행안부 장관이 무슨 뜻에서 새 광화문이 절대 안 된다고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앞서 1월25일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서울시의 설계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안부가 문제를 제기해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만큼 서울시가 합리적 대안을 들고 오면 충분히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놓고 불편한 기류가 흘렀던 박원순과 김 전 장관은 한달여 만에 화해 분위기를 보였다. 2월24일 김 전 장관으로 부터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의 다음 주자로 추천받은 박원순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면서다.

△KT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2018년11월24일 KT아현지사 통신구에서 불이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로 시작된 통신 두절 사태가 서울 서대문구, 용산구, 마포구, 중구, 은평구 등 5개 구와 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박원순은 사고 현장을 찾아 종합적 관리방안을 마련해야한다며 정부와 협의해 빠른 복구와 향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일고시원 화재
2018년 11월9일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불이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후한 건물로 관련법 상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피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된 건축법에 따라 2009년 7월 이전부터 운영된 노후 고시원은 공공에서 스프링클러 설치를 강제할 수 없다

서울시에는 2009년 7월 이전에 지어진 노후 고시원이 1300여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2018년 11월 기준으로 서울시가 221개 고시원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지원했으나 1080곳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서울시 미세먼지대책 설전
박원순은 2018년 1월 환경부가 수도권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하자 1월15일과 17일 출퇴근시간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영했다.

하지만 경기도는 무료로 운영하지 않았고 이와 관련해 남경필 경지지사와 장외에서 설전을 벌였다.

박원순은 1월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취한 조치는 마땅히 정부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라며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시비 거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경필 지사는 1월16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미세먼지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서울시는 경기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세먼지 공짜운행’을 일방적으로 시행했다”며 “박 시장은 포퓰리즘 미봉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순의 무료 대중교통정책은 남 지사뿐 아니라 보수야당 등으로부터도 실효성이 없고 예산만 낭비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시는 1월15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로 출근시간대 서울시내 도로 교통량은 1주 전보다 1.8% 줄고 시내버스 이용객은 0.4%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박원순은 2018년 3월19일 서울청사에서 천지닝 중국 베이징시장을 만나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환경 분야에서 협력한다는 양해각서를 맺었다.

박원순은 “두 도시의 공통 관심사이자 최우선 해결과제인 대기질 개선 분야에서 실질적 협력방안을 이끌어낼 것”이라며 “미세먼지 절감을 위한 도시외교적 노력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중립 의무 논란
2017년 3월26일 페이스북에 “촛불 민심, 국민의 염원을 받들기 위해 혁신적 통합의 마인드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민주당이 정권을 교체하고 민주 정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능력이 있음을 국민에 자랑스럽게 보여줘야 할 때다”고 올렸다가 30분 만에 삭제했다.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랭크스코필드 전시회 축사 사건
2017년 2월24일 서울시청 로비에서 ‘프랭크스코필드’ 특별전시회 축사를 진행하던 중 한 남성이 자해 시위를 했다.

이 남성은 2015년 한 재개발 정비예정구역에서 직권 해제된 뒤 보조금 액수를 두고 서울시와 갈등을 벌여왔으며 재개발 담당 관계자를 만나러 시청에 왔다가 박원순을 보자 술김에 돌발행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폐지 주장
2017년 1월10일 한 인터넷방송매체 대선주자 초청 인터뷰에서 국정원을 폐지하고 해외정보 수집 부서를 새로 만들 것을 주장했다. 이 때 국정원의 사찰과 제압문건 작성 등을 함께 언급했다. 

2013년 5월15일 한겨레가 국가정보원의 내부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인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와 대응방향’을 공개했다. 

문건에는 여당과 정부기관, 민간단체, 학계를 총동원해 박원순을 ‘제압‘해야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하야 요구와 탄핵 주장
2016년 11월2일 청와대가 박근혜 게이트 의혹에 대응해 개각을 발표한 것을 놓고 예비 대선주자 가운데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하면 대선 출마를 포기하겠다고 내걸기도 했다.

11월3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을 언급했다. 11월9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회동하고 박 대통령의 하야 요구에 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모를 적시한 공소장을 발표하자 즉각 탄핵을 결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2017년 5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시민들과 함께하는 개표방송에서 함께 웃음 짓고 있다. <연합뉴스>
△지하철 스크린 도어 사고
2016년 5월28일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안전문을 정비하던 용역업체 직원 김씨가 열차와 스크린 도어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박원순은 이를 사과하면서 지하철공사의 안전 관련 업무의 외주를 근본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스크린 도어 정비를 모두 직영전환하기로 하고 서울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2018년까지 레이저센서로 모두 교체하기로 했다.

△강남구와 충돌
2015년 12월 강남구청 공무원들이 인터넷포털사이트에 서울시를 비방하고 강남구를 지지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게재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와 강남구는 2015년 들어서만 제2시민청, 한전 부지 개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현대차 공공기여금 등 중요 이슈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서울시는 당시 지방자치단체와 관련한 행정감사 규정 등에 따라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실질감사를 해 위법성이 확인되면 수사의뢰 등 법적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10월 서울중앙지검은 강남구청 공무원들에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송현동 호텔 건립 반대
대한항공의 송현동 호텔 건립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부지 인근에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가 있어서 호텔 건립은 부적절하다는 태도를 취하며 민속박물관을 선호한다고 피력해왔다.

대한항공은 서울시 송현동의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를 290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7성급 특급호텔 건립을 추진해왔다.

2015년 8월 새누리당의 ‘경제활성화 4법 일괄 타결 추진 방침’으로 이 개발이 재조명됐지만 송현동 부지는 지구단위계획상 호텔을 지을 수 없는 곳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다. 송현동 호텔 건립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숙원사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메르스 대처로 지지도 상승
2015년 6월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서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비판하며 서울시가 직접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중앙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지방정부 차원에서 직접 재난 수준의 사태에 대응하겠다고 나선 셈인데 많은 지지와 함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대중에게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박원순은 당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우버 도입 불허
2015년 1월21일 글로벌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Uber)와 관련해 우버가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어 영업활동을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버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승객과 차량을 이어주는 서비스로 일반 택시와 승객을 연결하는 우버택시와 일반인이 자신의 차량으로 운송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버엑스, 프리미엄 리무진 차량을 연결하는 우버블랙 등의 서비스를 포함한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 지자체는 우버의 서비스가 여객자동차운송사업법을 위반해 불법이라 규정하고 제동에 나섰지만 우버가 ‘우버택시’를 출범하며 갈등이 이어졌다.

서울시는 우버를 불법콜택시 영업을 벌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우버는 결국 한국에서 사업을 포기했다.

△제2롯데월드 조기 개장 허가
박원순은 2014년 10월 위험요소가 발견되면 즉각 허가를 취소한다는 조건을 달아 제2롯데월드의 조기개장을 허가했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과 관련한 국민 불안감이 극대화됐을 때로 싱크홀과 석촌호수 수위저하 등 안전문제로 제2롯데월드 개장과 관련해 국민적 관심이 높을 때였다.

제2롯데월드는 2014년 2월 47층 컨테이너박스에서 화재가 나고 4월 12층 옥상배관설비 이음부분이 폭발하는 등 안전성을 놓고 논란의 대상이 됐다.

제2롯데월드는 2014년 10월 조기 개장 뒤 대형 수족관(아쿠아리움) 균열문제, 영화관 진동, 출입문 떨어짐 사고 등이 일어났고 다시 안전진단을 받아 2015년 5월 재개장했다.

△아들 병역의혹
강용석 당시 무소속 의원은 2012년 박원순 아들 박주신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박주신씨가 2011년 8월 공군에 입대했으나 ‘대퇴부 말초신경 손상’을 이유로 나흘 만에 귀가 조치된 것과 관련해 그가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MRI를 바꿔치기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2012년 2월22일 세브란스병원이 판독한 결과 군에 제출된 MRI 사진이 박주신씨 본인의 것이라고 밝혀졌다.

이에 강 의원은 박원순과 그 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병역 기피 의혹
2011년 10월 병역 기피를 위한 호적 쪼개기 의혹이 제기됐다.

1969년 7월 당시 13살인 박원순은 일제 강점기 사할린에서 실종된 작은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됐다.
 
입양 덕분에 당시 만 17세로 징집편입 대상자였던 박원순의 형이 1967년 개정된 병역법에 따라 ‘부선망 독자 방위복무 혜택’을 봤고 박원순도 아버지(자신을 입양한 작은할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는 사실을 인정받아 6개월 방위로 군복무를 마친 것이 논란이 됐다.

한나라당은 당시 박원순의 입양과 관련해 양부인 작은할아버지의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민법상 근거가 없는 입양이라고 주장했다.

박원순은 “양손 입양이 당시 관행이었으며 할아버지가 작은할아버지의 대리인으로 입양에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아내 일감 몰아주기 의혹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박원순의 배우자 강난희씨가 세운 인테리어회사 ‘P&P디자인’에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원순은 “아름다운가게가 전국에 130여 개 있는데 2000년대 초반 시작 단계에서 10여 개 정도만 부인이 도와줬다”며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인테리어를 했다”고 해명했다.

P&P디자인이 실내건축공사업 등록을 하지 않은 무등록회사라는 의혹도 나왔는데 박원순은 이와 관련해 “세무서에 사업체 신고를 해 사업자 등록증이 있다”며 “시도지사에 등록하는 조항을 몰라 신고하지 않았지만 사업을 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포스코 사외이사 시절
한나라당은 2011년 논평을 통해 “박원순 후보가 포스코와 풀무원 홀딩스의 사외이사를 지내면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참가한 표결 307회 가운데 단 1회를 빼고 모든 안건에서 찬성표를 던졌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박원순이 대기업 사외이사 시절 외부감시자로서 역할은커녕 도리어 재벌의 거수기 역할만 했던 위선자였다고 비판했다.

박원순은 이와 관련해 “이사회에 앞서 열린 소위원회 등에서 소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해 최종안에 반영했기 때문에 반대표를 던질 필요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사외이사로 일하며 받은 보수 5억3091만 원도 “모두 기부했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과 소송 승소
2009년 국가정보원 명예훼손 혐의에서 승소했다.

박원순은 2009년 6월 위클리경향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시민단체와 관계를 맺는 기업 임원까지 전부 조사해 시민단체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불법사찰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국가정보원은 “박 변호사가 허위 사실을 말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2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2010년 9월15일 서울중앙지법은 국가의 청구를 기각한다며 박원순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는 기본권의 보장 의무를 지는 존재이지 누리는 주체가 아니다”며 “국가가 국민의 비판에 소송으로 대응하려 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언로가 봉쇄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낙천낙선운동 전개
2000년 1월12일 박원순이 속한 참여연대와 환경연합 등 420여 개 시민단체는 뜻을 모아 ‘2000년 총선 부패 정치 청산 시민연대(총선연대)’를 구성했다.

박원순은 총선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낙천·낙선운동을 이끌었다.

총선연대는 후보공천 반대 인사들의 선정기준으로 △병역사항 △재산변동 △부패혐의 △선거법 위반 △헌정질서 파괴와 반인권 행위 △의정활동 성실성 △법안과 정책 △반의회 반유권자적 행위 등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선거법 위반’ 판정을 받았다.

당시 선거법 제87조는 선거일 20일 전부터 시작된 공식 선거운동 기간 시민단체가 특정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총선연대는 ‘부패정치 청산’을 위한 낙천낙선운동을 지속했고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상자 132명 가운데 72.3%인 102명이 낙선했다. 비록 선거법을 어겼으나 시민참여를 통해 정치개혁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대 제명
1975년 5월22일 구속돼 영등포 구치소에서 4개월 동안 복역했다.

긴급조치 9호를 반대하며 할복자살한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의 장례식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이어졌는데 박원순을 비롯해 ‘돌멩이를 몇 개 던진’ 60여 명의 학생이 구속됐다.

그는 기소유예로 풀려났지만 대학에서 제적을 당했다.


◆ 경력
▲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7년 4월10일 광화문 광장을 방문해 시설현황 브리핑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오른쪽 사진은 사법연수원 시절 동기였던 문 대통령과 박 시장.
1978년 8월 법원사무관시험에 합격해 그해 12월부터 1979년 8월까지 춘천지법 정선등기소장으로 일했다.

1980년 6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2년 6월 사법연수원(제12기)을 수료한 뒤 검사를 지망해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다.

1983년 8월 검사를 그만 두고 서울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을 지냈다.

1989년부터 2년 동안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으로 일했고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지냈다.

1990년대 후반 감사원 부정방지위원대책위원회 위원, 국회 제도운영개혁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2000년 일본군 성노예 범 국제법정 공동검사, 법무부 민사소송 개정 심의위원, 부패방지 입법 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으로도 일했다.

2003년 국세청 세정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사법개혁위원회 위원,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방문교수 등을 역임했다.

2000년대 들어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2011년 10월 제35대 서울시장에 올라 2014년 재선, 2018년 3선에 성공했다.

◆ 학력
 
경상남도 창녕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1974년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재수를 해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합격했다.

1975년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서울대에서 제적됐다.

1979년 유신체제가 끝나면서 이듬해 각 대학의 제적생 복교조치가 내려졌으나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1985년 2월 졸업했다.

1991년 8월 런던정경대 국제법과정(LSE)에서 1년 동안 공부했다.

◆ 가족관계

경남 창녕의 가난한 농가에서 부친 박길보씨의 7남매(2남5녀)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났다. 

1969년(당시 13세) 일제강점기 사할린에서 실종된 작은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됐다.

1982년 강난희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박주신) 1녀(박다인)를 뒀다. 

◆ 상훈

시민운동가로서 활동하며 많은 상을 받았다.

2003년 이웃돕기 유공자로 국민포장을 받았다.

2006년 ‘아시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의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에서 수상했다. 

2017년 12월 국내 정치인 가운데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시에서 최고등급 명예메달(Grand Vermeil)을 받았다.

파리시는 1911년부터 시와 협력관계에 큰 공을 세웠거나 문화, 예술, 스포츠 발전을 도운 주요 정계인사에게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 기타

2019년 3월28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박원순은 2018년 말 기준으로 7억3650만 원의 빚이 있다. 2017년 말보다 빚이 1억 원가량 늘었다.

박원순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 공관에 살고 있으며 따로 집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자녀들은 모두 해외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은 서울시장에 오른 2011년 빚 3억1056만 원이 있다고 신고한 뒤 매년 빚이 늘었다.

주요 공직자 가운데 7년 동안 가장 적은 재산을 보유하다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13억8697만 원의 빚을 신고해 ‘꼴찌’에서 벗어났다.

1977년 8월 육군 보충역으로 편입해 경남 창녕군 장마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 1978년 4월 이병으로 소집해제됐다.

'NGO-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1999) '일본시민사회 기행'(2001) '원순씨를 빌려드립니다'(2010, 21세기북스) '박원순의 아름다운 가치사전'(2011, 위즈덤하우스) '경청 : 박원순의 대한민국 소통 프로젝트'(2014, 휴먼큐브) '국민에게만 아부하겠습니다'(2016, 더봄) '박원순, 생각의 출마'(2018, 더봄)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 어록
▲ 2019년 4월18일 서울 신한엘타워 디지털캠퍼스에서 열린 간편결제 활성화 간담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현대사에 굵고 통 큰 정치를 했다. 나는 디테일하고 감성적이다. 역사마다 서로 다른 리더십이 필요한것 같다.” (2019/04/17,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을 관람한 뒤 기자단에게)

“나는 미세먼지와 싸우는 야전사령관으로서 미세먼지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대비하겠다.” (2019/04/15, 서울시청에서 ‘미세먼지 10대 그물망대책’을 발표하며)

“개미구멍처럼 사람들이 집을 찾아들어가면서 옆집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게 과연 우리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느냐. 제가 화장을 해 멀끔한 것 같지만 피를 흘리고 있다.” (2019/04/08, 서울시청에서 ‘골목길 재생 시민정책대화’ 인사말에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 국민이 뽑은 문재인 대통령을 막말로 모독하고 민주주의 기본 질서조차 부정하는 정당에 미래가 있나. 국민들 보기 창피하고 부끄럽다.” (2019/02/20,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이 전당대회를 준비하면서 극우적, 자극적 발언을 내놓는 상황을 두고 페이스북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망언은 망언일 뿐 역사 왜곡은 다양한 해석이 될 수 없다. 일본이 일제 치하에 벌어진 일본군 성노예 만행을 인정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는 말을 할 때 우리는 망언이라 부른다.” (2019/02/10,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모독 발언을 두고 페이스북에서) 

“세상에 절대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은 정부, 청와대와 함께 쭉 추진해온 일이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이 무슨 뜻에서 새 광화문이 절대 안된다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2019/01/25,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여론조사는 공중에 나는 깃털과 같은 것이다. 지금 서울시민의 삶이 힘든데 민생의 문제를 풀어내는 것 밖에 관심이 없다.” (2019/01/07,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현해 여권 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명되는 것을 두고)

“정부가 2인의 부시장 자리를 만들어 준다면 그 가운데 한 명은 기업출신 경제전문가를 임명하겠다. 서울시는 기업을 지원하는 경제정책의 기둥을 세우고 그 정책의 성과목표를 엄밀히 평가해 오류와 실수를 시정해 나가겠다.” (2018/12/28, 신년사에서)

“국민이 원하는 건 진실이지 정치공세가 아니다. 민생이 절박한 상황에서 정파적 이득을 위해 국정조사를 이용한 것을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진행하고 있는 감사와 조사를 놓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일로 민생을 인질로 삼은 야당의 정치공세에 개탄한다.” (2018/11/22, 공공부문 채용비리 관련해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이 국정조사를 요구한 것을 두고 페이스북에서)

“늑장대응보다는 과잉대응이 낫다는게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서울시가 얻은 교훈이다. 3년전 경험을 살려 메르스 확산을 막아야 한다.” (2018/09/08,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뒤 페이스북에서)

“강북과 강남의 격차는 1970년대 이뤄졌던 강남 집중개발에 기인한 것이다. 투자와 정책방향의 전환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 (2018/08/19,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 한달살이를 마친 뒤 강북구 강북문화에술회관에서 열린 ‘시민과 동고동락’ 정책발표회에서)

“여의도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 때 한강 밤섬을 폭파해 나온 흙과 돌로 개발됐다. 그때 만들어진 아파트가 노후화해 새로운 개발이 필요하다. 여의도를 서울의 맨하튼처럼 만들어야 한다.” (2018/07/25,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의 팟캐스트방송 ‘서당캐’에 출연해)

“여의도를 통으로 개발하겠다. 여의도 전체를 새로운 업무와 주택지로 바꿔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신도시에 버금가는 지역으로 만들겠다.” (2019/07/09, 리콴유 세계도시상 수상을 위해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언제나 시민의 삶을 최우선에 두라는 시민 여러분의 위대한 승리다. 평화와 번영이 넘치는 서울을 만들겠다. 공정과 정의, 평화와 민주주의가 꽃피는 대한민국을 서울에서부터 시작하겠다.” (2018/06/13, 당선이 확실시 된 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선거캠프 상황실에서)

“변호사와 시장으로 오래 일한 사람이 가난하다면 칭찬받을 일이다. 이런 청백리가 어디 있느냐.” (2018/06/08, 서울시장 후보자 토론회에서)  

“서울에서 압도적 승리가 수도권의 승리와 더 나아가 전국 승리의 견인차가 될 것이다. 그 승리를 위해 민주당의 야전사령관으로 모든 힘을 바치겠다.” (2018/05/14, 서울시장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페이스북에)

“하루 종일 설레다 울컥했다. 따릉이를 타고 평양까지 한달음에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2018/04/27,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소회를 페이스북을 통해 전하며)

“6년 전 대통령이 토목의 강을 파고 불통의 벽을 쌓을 때 서울시장이 돼 ‘시민이 시장’이라고 선언했고 ‘내 삶을 바꾸는 첫 번째 시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6년 뒤 새로운 시간이 왔다. 2022년 서울에 사는 보통사람들이 서로가 사랑하고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사람이 행복한 서울, 그 10년 혁명을 완성하고 싶다.” (2018/04/12, 서울시장 3선 도전을 공식화하며)

“그때는 이명박 정부의 독선에 맞선 민주개혁진영의 동지로서 함께했던 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흐르면서 당적도 가는 방향도 달라지고 서로 다른 곳에 서 있다.” (2018/04/03, 기자들과 만나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과 관련해)

“미세먼지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정말 큰 재난이자 침묵의 살인자다. 그런 관점에서 미세먼지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나빠지면 서울시교육청과 협력해 휴교를 할 수도 있다.” (2018/03/27, 출입기자단과 간담회에서)

“강산이 변하는데도 10년이 걸리고 내 삶을 바꾸는데도 10년이 걸린다. 10년 혁명은 내 삶을 바꾸는 대전환이며 내 삶을 바꾼 첫 번째 도시 서울의 완성이 될 것이다.” (2017/12/29, 신년사에서)

“이번 방한이 한미관계가 ‘포괄적 동맹’을 넘어 지속가능한 ‘위대한 동맹’으로 가는 기회가 되기를, 한반도의 평화를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전쟁의 메시지 대신에 평화의 메시지를 심어주고 가달라.” (2017/11/0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에 맞춰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 직원들이 자꾸 삼선짜장면을 시켜준다.” (2017/09/28,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3선 도전 가능성과 관련해)

“서울시는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혁신도시다. 서울시가 성취하고 실험한 정책들을 로열티 없이 문재인 후보에 주겠다. 사법연수원 동기로 37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지였고 현재의 동지이며 앞으로도 동지일 것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길을 문재인 후보와 함께 걷겠다.” (2017/04/11,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하며)

“대통령 탄핵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대한민국 시민은 자랑스럽다. 위대한 시민의 완벽한 승리다.” (2017/03/31,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안보협력기구 기조연설에서 촛불집회를 놓고)

“이번 대선에 나가면서 ‘나다운 것’을 잘 못했던 것 같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훨씬 다른, 조직이나 개인 비전이나 선거 방식이나 다 새로움으로 가득 찬 것을 하겠다. 국민이 신기해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을 하려 한다. 그동안 서울시장으로서 너무 ‘올인’했던 것 같다.” (2017/03/23, 기자들과 만나 대선 재도전을 놓고)

“오늘 비로소 광장에 봄이 당도했다. 2017년 3월10일 오늘로 대한민국 이전과 이후는 달라졌다. 성숙한 광장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바꿨다. 우리는 공명정대한 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을 뽑고, 희망찬 민주적 정부를 수립할 것이다. 서울시장으로서, 정치인 한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감과 함께 광장의 교훈을 겸허하게 새긴다.” (2017/03/10,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직후 페이스북에)

“사드 배치와 관련한 갈등 때문에 중국과 외교 문제가 심각해졌고, 관광객을 포함한 어려운 문제가 닥쳤다. 나는 이것을 어리석은 외교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강력한 동맹관계를 기초로 하면서 경제적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중국을 외교적 파탄으로 만든 것은 외교적 실책이고 실패였다.” (2017/03/07, 서울시청에서 중국의 한국 여행금지 조치를 놓고 ‘민관합동 대책회의’에서)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의 관용에도 한계가 있다. 지금 시청광장에서 벌어지는 박사모 등의 집회에서 도가 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살인과 테러를 주창하고 내란을 선동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서울시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2017/02/26, 보수단체의 헌법재판관 원색비난을 놓고 페이스북을 통해)

“그 긴 걸음 속에서 아직도 제 마음 속에 비워내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비워진 마음 속에 시민을, 그 고통의 삶을, 그것을 해결할 방도를, 헝클어진 세상의 매듭을 풀어보겠다는 그 초심을 차곡차곡 쌓아 가겠다. 지리산을 다녀왔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걸었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일었다. 저 눈보라와 짙은 구름 속에서도 여전히 태양은 빛나고 있었다. 다시 시작하겠다.” (2017/02/01, 대선 불출마 선언을 놓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의 염원과 기대, 그리고 저의 역할 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열망으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정권교체 이후 민주개혁세력의 단결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다시 시민 속으로 들어가겠다.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을 안전하고 시민들이 행복한 세계 최고의 글로벌 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 (2017/01/26,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결심이 섰다! 지금 대한민국이 거듭나려면 '유능한 혁신가'가 필요하다. 온 국민이 대한민국의 총체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점에 평생을 혁신과 공공의 삶을 살아온 나는 시대적 요구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낡은 질서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을 누구보다 가장 잘 만들 수 있다고, 도탄에 빠진 절박한 국민들의 삶을 가장 잘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대한민국의 거대한 전환, 대혁신을 기필코 이루겠다.” (2017/01/02, 대선출마를 시사하며 페이스북에서)

“온 나라가 위기인데 개인이 대선 출마 같은 정치적 이해를 따질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시정을 잘 챙기고 한명의 정치인으로서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겠다.”(2016/11/15, TV조선 뉴스쇼 ‘판’에 출연해 대선출마가능성을 놓고 이야기하며)

“촛불을 든 국민은 묻고 있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비선을 통해 ‘혼용무도(어리석은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힌다)’한 세력이 임기를 마쳤다고 기록되는 것이 정의인지, 아니면 무도한 세력들이 모두 죗값을 치르고 성난 민심의 요구로 하야했다고 기록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묻고 있다. 정의롭고 공정한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2016/11/10, 사회관계망서비스 방송인 ‘원순씨 X파일’에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반도 정책의 변화와 경제 무역환경의 변화 등 세계 질서가 급변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박근혜 대통령으로는 이런 상황에 준비를 할 수 없다. 대통령이 조속히 퇴진하는 길만이 국정공백과 외교공백을 최소화하고 혼란의 장기화를 막는 길이다.”(2016/11/09,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놓고)

“국민과 함께 촛불을 들겠다. 대한민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통령도 정치인도 국민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 오늘 하나의 촛불이 대한민국의 희망을 밝히는 그런 촛불이 되길 바란다. 제도권과 비제도권을 차별할 필요가 있는가. 지금 국민이 격앙하고 분노하고 있다.” (2016/11/02,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야 한다.”(2016/11/02, 청와대가 박근혜게이트에 대응해 발표한 개각을 놓고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긴급성명을 열면서)

“서울시는 앞으로 옥시 소모품을 쓰지 않겠다.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되면 이처럼 부도덕한 기업의 상품은 이 땅에 자리 못 잡게 해야 한다. 문제 있는 기업이 반드시 징벌돼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2016/04/28,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 논란에서 촉발된 옥시 불매운동에 동참하며)

“2년이 지난 지금도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유가족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는 어느 실종자 어머니의 말에 꾹꾹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더 슬픈 분 앞에서 울지 않으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직도 세월호에는 국민이 있다. 국가란 국민이다.” (2016/04/16, 세월호 팽목항을 찾은 뒤 SNS를 통해)

“청년이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의 희망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청년들의 삶이 비루하다면 우리사회의 미래가 비루할 것이라는 전조이며 청년들의 삶에 희망이 없다면 다가올 우리사회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징후다.” (2015/12/10, 청년정책을 놓고 기자간담회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당과 민주화운동에 큰 지도자였다.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도 민주헌정의 기초를 닦으셨던 분이다. 우리 사회의 큰 별이 지셨다. 민주화추진협의회와 양김 단일화에 참여하면서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어려운 시절을 견디면서 민주화의 큰 길을 개척했던 지도자라 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대도무문의 그 길 우리가 따르겠다.”(2015/11/22,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방문해)

“관광객 2천만 서울을 목표로 뛰겠다. 무엇보다 메르스로 발길을 돌린 외국인관광객을 다시 서울로 오게 하는 게 급선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관광여행업계와 숙박업계, 요식업계, 쇼핑업계 등 관광인프라 업계 모두와 손잡고 외국인관광객을 다시 서울로 끌어들이는 데 온 힘을 쏟겠다. 서울의 관광산업이 다시 옛 명성을 되찾고 경제를 살리는 황금알로 거듭나는 관광객 2천만 도시 목표를 위해서라면 관광가이드로 나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 (2015/07/01, 서울시장 민선 6기 1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모든 정책 수단과 예산을 쏟아 부어 민생회복에 앞장서겠다. 향후 서울시정은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다.” (2015/07/01, 서울시장 민선 6기 1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는 실용주의자다. 정말로 창조경제가 내 신념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심지어 먼저 말했다. 대통령이 쓰셨다고 서울시장이 억지로 딴 걸 만들어야 하는가.” (2015/01/08, ‘서울형 창조경제’를 주장한 배경을 놓고 기자간담회에서)

“다시 사람이 희망, 시민이 시장이다. 서울은 사람제일의 도시인 ‘사람특별시’로 나아간다.” (2014/07/01, 서울시장 취임식에서)

“우리는 묶여있고 상대방은 우리를 매와 몽둥이로 때린다. 그걸 고스란히 맞는 느낌이었다. 네거티브 없는 선거가 우리는 네거티브를 안 하고 상대방만 하는 상황이 되면 참 어렵다고 느꼈다. 7선 국회의원과 대한민국 한 정당의 대표를 지낸 정몽준 후보가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대한민국의 정치풍토가 이것밖에 안되는가 하는 생각에 슬프고 참혹했다.” (2014/06/04, 선거캠프 자원봉사자 조회에서 서울시장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을 마치며)

“본질은 기본과 원칙이 무너진 대한민국의 사회와 구조에 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고뇌와 결단을 느낄 수 있었다. 시기적으로 안타까운 부분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뭔가 새로운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나온 담화라 의미있게 받아들인다.”(2014/05/19,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를 놓고 한국프레스센터 중견언론인모임인 ‘관훈클럽’ 주최로 열린 TV토론회에서)

“사람이 안전한 서울, 사람이 따뜻한 서울, 사람이 꿈꾸고 창조하는 서울, 사람과 도시가 함께 숨 쉬는 서울, 반듯하고 품격있는 서울로 나아가겠다.” (2014/05/16, 서울시장 재선출마를 선언하며)

“시민은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습니다. 상식과 원칙이 이겼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선택한 것입니다.” (2011/10/2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발표한 당선사례에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2011년 9월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수피아홀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에 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드디어 새로운 서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2011/10/03, 범 야권 단일화 후보 선출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몇 마디 물어보고 난 다음에 너무 갑자기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저는 양보하겠습니다’라고 얘기해서 사실 놀랐다. 안 교수가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의 공공적 이익을 위해서 해왔던 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태도였다고 본다.” (2011/09/07, 안철수 원장의 서울시장 단일화 양보 다음날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평범한 시민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모든 진리는 현장에 있다고 믿는다. 희망은 희망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보인다.” (2006/11/14, 주간경향과 인터뷰에서 희망제작소의 비전을 이야기하며)

“국민이 국가의 잘못된 법 제정과 집행에 책임을 묻지 못한다면 국민의 기본권은 계속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 (2000/4/30, 택지소유상한법 위헌 판결이 나자, 입법기관인 국회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벌어진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

“‘탐욕’이라는 열차에 올라탔으나 열차에서 내리면서 세상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우선 물질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다.” (1991년 멘토 조영래 변호사의 죽음을 계기로, 성공한 변호사 생활을 접고 영국유학을 떠난 당시를 회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고 시민운동에 뛰어들 결심을 할 수 있었다."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4개월간 투옥됐던 당시를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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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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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아
(112.187.244.146)
박원순 3선 서울시장님~ 정신차리세요!!
이렇게 훌륭한 일 많이 하신 분이 3선 서울시장하면서 많이 더러워졌네요.. 진정 시민을 생각하셔야죠.. 없이 살아야 민주당 찍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 고쳐먹으시고 민주당 도와줍시다 당신때문에 민주당 표 날아갑니다.

(2019-04-27 1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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