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임명
박영선은 2019년 4월8일 중소벤처기업 장관에 취임했다.
박영선은 취임사에서 “중소벤처기업부는 이제 문재인 정부 시대에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이라며 “인력과 조직을 보강하고 예산을 확대하여 문재인 정부의 튼튼한 핵심 부처로 키워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9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7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중폭 규모의 인사를 실시했는데 박영선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영선 인사청문요청안에서 “언론과 국회에서 풍부한 경륜, 탁월한 업무 추진력과 정책 전문성을 바탕으로 서민경제의 중심이자 삶의 터전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육성하고 일자리 창출의 원천인 창업·벤처기업의 제2벤처 붐을 조성하며 건전한 기업 생태계 조성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상생협력을 유도하는 등 정부 민생경제 사령탑으로서 핵심 국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갈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박영선은 “문재인 정부 1기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상징성을 기반으로 혁신의 씨앗을 뿌렸다”며 “2기는 뿌려진 씨앗을 바탕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영선은 2004년부터 국회의원으로 일하며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징벌적 배상법안’, ‘유통산업발전법’ 등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안 49건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박영선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청와대에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2019년 3월27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치렀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재송부시한인 4월7일까지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8일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없이 박영선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 ▲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2019년 3월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장
2018년 7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원내 지도부의 설득에 따라 “경제민주화와 검찰개혁에 몰입하겠다”며 불출마한 뒤 2018년 11월부터 여성 최초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장을 맡았다.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통과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아울러 검찰과 경찰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등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검찰 권력 비대화문제를 해결하고 경찰의 수사 독립성을 확보해야한다는 목표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그동안 기소권 및 수사권의 조정 방향과 범위를 놓고선 이견이 컸다.
법무부는 검찰의 송치 전 수사지휘를 없애는 대신 사법경찰의 수사 과정에 법령위반, 인권침해, 현저한 수사권 남용이 발생하면 시정조치를 요구하거나 사건을 송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검사의 직접 수사대상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와 경찰공무원의 직무범죄 등으로 제한하고 1차 수사 종결권은 경찰에게 부여하는 방식이다.
공수처 신설은 여당과 야당의 이견이 커 논의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법무부가 내놓은 방안에 따르면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기구다. 처장·차장 각 1인을 포함한 검사 25명, 수사관 30명, 기타인력 20명 총 75명을 규모로 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현재 설치 여부를 비롯해 기소권이나 공수처장 인선방식을 두고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2019년 3월 더불어민주당과 야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선거법 개정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려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장 경선 2위
2018년 6월13일 치러지는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2018년 들어 ‘박영선 서울을 걷다’, ‘영선아 시장 가자’ 등 현장행보를 통해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기반을 닦았다.
2018년 3월18일 서울 영등포구 꿈이룸학교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화했다. 자연이 숨쉬는 서울, 경제가 숨쉬는 서울, 경제가 숨쉬는 서울의 3대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득표율 19.59%로 66.26% 지지를 받은 박원순 서울시장에 이은 2위에 머물렀다. 3위는 득표율 14.14%를 받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박영선이 서울시장에 도전한 것은 2011년에 이어 두 번째였다.
2011년에는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했으나 박원순 무소속 후보와 야권 단일화 후보에서 패했는데 2018년에도 박원순 시장에게 밀려 서울시장 후보가 되지 못했다.
2018년 5월 박영선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박원순 시장이 민선 서울시장 3선을 성공하는 데 힘을 보탰다.
△문재인 정부 탄생에 기여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문재인 정권 탄생에 힘을 보탰고 장관, 시장 등 주요 자리 후보자로 거명됐다.
2017년 19대 대선 정국에 들어서자 처음에는 민주당 경선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지지했다. 그러나 경선이 끝난 뒤 2017년 4월7일 문재인 후보가 발표한 공동선대위원장 명단에 포함됐고 4월16일 이를 수락했다. 2017년 4월23일 통합정부추진위원장 공동위원장에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법무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의 장관 후보로도 꼽혔으나 입각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경력 때문에, 중소벤처기업부는 힘있는 초대장관을 요구하는 의견 때문에 물망에 올랐다.
2017년 5월24~26일 조승래 의원과 함께 대통령 특사로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 취임식에 파견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에콰도르 대통령으로부터 문 대통령 초청 의사를 전해 들었다. 특사로 다녀온 후 에콰도르와 협력을 증진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2017년 국정감사 때는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으로 다스(DAS) 비상장 주식 물납 특혜 의혹, 수출입은행 다스 대출 증가 의혹, 수출입은행 다스 히든챔피언 선정 의혹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다스와 관련한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부터)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8년 4월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이틀 앞두고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20대 국회 재벌개혁 힘써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울 구로을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54.1%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19대에 비해 7.8%포인트 하락하면서 2위인 강요식 새누리당 후보(31.5%)와 차이가 줄었는데 제3당인 국민의당에서 정찬식 후보(12.6%)가 출마했기 때문으로 여겨졌다.
총선 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출마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영선은 “초선 의원부터 해왔던 경제민주화를 20대 국회에서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겠다”고 밝혔다.
20대 국회에서 자사주 처분을 제한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 대기업집단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자사주에 분할신주 배정시 과세하는 법인세법 개정안, 징벌적배상법안, 집단소송법안, 법인세 최고세율을 25%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법인세법 개정안,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외국인의 공동출자를 제한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재벌기업인 배임횡령죄의 경제수익을 환수하도록 하는 특정재산범죄수익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개정안, 로봇기본법 제정안 등을 발의했다.
2016년 12월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가운데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최순실을 모른다며 끝까지 잡아뗐으나 네티즌으로부터 제보받은 증거를 조목조목 내밀면서 김 전 비서실장이 위증을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2007년 김 전 비서실장이 있는 자리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경선 후보가 최순실과 관련해 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보여주자 김 전 비서실장이 “최순실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며 “착각했다”고 말을 뒤집은 장면이 백미였다.
3차와 4차 청문회에서 최순실이 증거 인멸을 지시한 통화녹음을 공개해 주목받았다. 최순실이 “걔네들이 완전 조작이고 이걸 훔쳐서 했다는 걸로 몰아가야 한다”, “왜 정현식이 얘기한 것을 못 막았냐. 그걸 얘기를 좀 짜보자”고 말하는 내용들이 포함됐다.
12월26일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현장 청문회에서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장인 이상달씨가 최태민씨와 가까운 사이였다”며 “장모 김장자씨가 최씨가 총재로 있던 구국봉사단원이었다는 제보도 계속 들어온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원내대표·비대위원장 시절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구로을 지역구에 다시 출마해 18대보다 15%포인트 가까이 높은 61.9%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는 민주통합당이 서울 수도권 지역에서 올린 최고 득표율이었다.
3선 의원이 된 후 법사위원장에 올라 큰 주목을 받았다. 비법조인 출신이 법사위원장에 오른 전례가 드문 데다 여성으로서는 최초였기 때문이다.
법사위원장으로 법안 통과를 두고 여당과 맞설 때가 많았다. 대표적 예가 2014년 새해 예산안 처리 지연사건이다. 박영선은 외국인투자촉진법이 재벌 특혜법이라며 쟁점법안 일괄타결 합의에 반발했고 예산안 역시 처리되지 못했다.
결국 박영선이 주장한 상설특검법을 통과하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외촉법이 통과될 수 있었다. 박영선은 이후 외촉법 원상복구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2014년 5월8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경선에서 69표를 얻어 59표의 노영민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마찬가지로 여성 최초로 원내 교섭단체 대표에 올랐다.
원내대표에 오른 뒤 이전까지 강성 성향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온건 성향으로 돌아섰다. 박영선은 “나는 합리적 원칙주의자”라며 “서로 생각의 마지노선을 꺼내놓고 얘기하면 얼마든지 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영선이 원내대표에 오른 것은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체제가 여당에 주도권을 다소 내주고 있는 점을 두고 반발이 작용한 것으로 여겨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이 7·30 재보선에서 참패하자 두 공동대표가 물러나고 그 뒤를 이어 박영선이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박영선은 강한 야성을 보여줄 것이라던 야권 지지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2014년 8월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놓고 여야와 유가족이 대립하는 가운데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이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유가족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것을 요구했고 야당은 수사권만, 여당은 둘 다 안된다는 자세를 보였다.
박영선은 여당이 주장한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이 제외된 특별법에 합의했다. 박영선은 유족추천 진상조사위원을 2명에서 3명으로 늘리는 선에서 합의를 이룬 것을 평가했으나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과 소통이 부재했기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유가족이 국회를 항의방문하자 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집권당이고 150석 이상 있으면 원하는대로 다 해드린다”고 말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다만 여당이 끝까지 반대한 특별조사위원회 설치를 관철한 점 등은 박영선의 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결국 2014년 9월16일 한달여만에 비대위원장에서 내려왔고 10월 초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마무리한 후 원내대표 자리도 사퇴했다. 박영선은 사퇴의사를 나타내며 동료 의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책임이란 단어에 묶여 소신도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걸어온 힘든 시간이었다”며 심경을 토로하면서도 “직업적 당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일부 극단적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며 당권을 놓고 계파갈등이 벌어지고 있음을 내비쳤다.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 사퇴 과정에서 탈당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2015년 말 새정치민주연합 내홍으로 안철수 의원 등이 탈당할 때도 탈당 가능성이 거론됐다. 박영선은 안철수 의원이 탈당한 이후에 별도로 접촉했고 박영선과 관계가 깊었던 박지원까지 탈당했지만 결국 잔류를 결정했다.
원내대표 사퇴 이후 전면에 나서는 일이 적다가 2016년 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체제에서 비대위원을 맡았고 20대 총선 승리에 일정부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해찬·정청래 의원 컷오프 탈락 등 공천파동이 일면서 비대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비대위원 전원 사퇴 초강수로 논란을 돌파했고 결과적으로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비대위를 향한 비판은 사그라들었다.
총선 전 벌어진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 정국에서 야권의 필리버스터 중단 사실을 언론에 유출한 부분이 비난받기도 했다. 박영선은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뒤 “총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필리버스터를 중단한다”며 “분노한 만큼 야당에 표를 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 ▲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4월23일 통합정부추진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
△의원 시절
2004년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9번으로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정치 입문은 MBC 선배인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원의 권유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정치활동 초반 정동영계로 분류됐다. 박영선은 “완고한 아버지 때문에 민주화운동을 못했는데 열린우리당에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이 많아 빚을 갚자는 마음으로 정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초선 경력의 가장 인상적 장면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저 똑바로 못 보시겠죠? 부끄러운 줄 아세요 진짜”라고 쏘아붙인 것이다. 이 후보는 “저게 미쳤나? 옛날엔 안 저랬는데”라고 옆 사람에게 말하는 내용까지 담긴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박영선이 이렇게 한 이유는 과거 기자 시절 BBK와 관련된 e뱅크코리아 회장으로 재임하던 이명박 후보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대선까지 박영선은 이명박 후보를 계속 공격하며 ‘BBK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18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을 지역구 통합민주당 후보로 나와 47.38% 득표율로 당선됐다. 18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로 활동했으며 정책위의장, 민주당 FTA대책 특별위원장, 국회 사법개혁특위 검찰소위 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명박 정권에서 여당 저격수로 꾸준히 활약했다.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신재민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를 연달아 낙마시켜 ‘낙마왕’으로 불렸다.
함께 여당 공격수로 팀워크를 발휘한 박지원 의원은 박영선을 두고 “박영선은 기자 출신이라 분석을 잘하고 나는 정보를 잘 알아온다”며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박영선 박지원이다”고 말했다.
법사위에서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2011년 전관예우 근절과 관련된 법을 처리했고 고위공직자 관련 취업을 일정 기간 금지하는 공직자윤리법 통과를 주도했다. 경찰이 검찰에 복종하도록 돼 있는 형사소송법 조항을 삭제하고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명문화해 검경수사권 조정도 시도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경선에서 천정배, 추미애, 신계륜 후보 등을 꺾었다. 그 뒤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한 박원순 무소속 후보와 경쟁했다.
비록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져서 서울시장의 꿈은 접었지만 정치경력이 그리 길지 않은 여성 재선의원으로서 민주당을 대표해 서울시장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경선 패배 후 박 후보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는 등 결과에 승복한 자세도 높게 평가받았다.
△기자 시절
첫 직장은 KBS 춘천방송국이었다. 당시 아버지가 집을 나가서 사는 것에 반대해 서울에서 출퇴근을 했는데 새벽 4시에 나와 8시30분에야 도착했다고 한다. 결국 얼마 안가 그만두고 MBC에 입사했다. 이후 여기는 MBC, 뉴스데이트, 마감뉴스 등을 진행하며 MBC 간판 앵커로 발돋움했다.
박영선은 2011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한 강연에서 얼굴이 너무 예쁘지도 밉지도 않아서 앵커에 발탁된 것이라고 소회했다.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보도국 기자로 자리를 옮겼고 경제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이 가운데 경제부 기자로 오래 근무했다.
박영선은 경제부 기자를 하면서 재벌에 관한 문제의식이 생겼다며 경제부 기자 시절의 경험이 정치인이 된 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또 상속·증여, 일감 몰아주기, 금산분리 등에 소신을 품고 많은 보도를 했다고 밝혔다.
198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87년 귀국했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아침뉴스인 뉴스와이드 앵커를 맡았다.
1994년 육영수씨 서거 20주기를 맞아 은둔생활을 하던 박근혜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박영선은 박 이사장이 주로 TV를 많이 시청한다며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 동물들은 배신하지 않으니까”라고 또박또박 말한 것이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1995년 다시 미국에 건너가 로스앤젤레스 특파원으로 일했다. 1997년 귀국해 평일 오후 5시 뉴스인 뉴스센터500을 진행했고 1998년 9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메인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석을 지켰다. 2000년 아침 뉴스와 아침 교양프로그램을 통합한 피자의 아침을 맡았다.
2003년 경제매거진M을 진행하면서 경제부 부장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