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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류근영 기자  rky@businesspost.co.kr  |  2019-02-28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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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 생애

문성현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다.

사회적 대화에 불참하고 있는 노동계를 설득해 대화의 자리로 나오도록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952년 음력 2월8일 경남 함양군에서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다.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민주노총에서 활동한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노사관계 경험이 풍부하고 균형감과 전문성을 갖췄다.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경남도당위원장을 거쳐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내며 정치권에도 목소리를 냈다.

민주노동당이 3자 합당으로 통합진보당으로 바뀐 뒤 통합진보당을 탈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치른 두 차례 대선에서 모두 문 대통령을 지지했다.

문재인정부에서 노사정위원장에 위촉된 뒤 노사정위원회를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개편했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합의를 이뤄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 활동의 공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합의
문성현은 2019년 2월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를 이뤄냈다. 탄력근로제는 단위기간 안에서 일이 몰리는 시기에 노동시간을 늘리고 다른 시기에 노동시간을 줄여 전체 평균치를 법정 노동시간에 맞추는 제도다.

탄력근로제를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대립이 이어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첫 걸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합의에 성공하면서 문성현도 첫 시험 관문을 통과했다. 문성현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는 한국의 사회적 대화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며 “세계를 살펴봐도 노사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합의한 사례는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민주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불참하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도 강하게 반대하면서 총파업을 예고해 사회적 대화 성과가 빛을 잃을 수도 있다.

문성현은 2019년 2월20일 MBC라디오 시선집중에서 “민주노총은 대화가 아니라 투쟁으로 하겠다고 스스로 결정했다”며 “대화를 통해서 하겠다는 한국노총과 경총이 모여 한 합의는 야합이나 반쪽짜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과 활동
문성현은 사회적 대화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출범했다. 기존 경제사회발전노상정위원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사회적 대화기구로 개편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문성현은 양대노총과 경영단체가 참여하는 6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열어 새로운 기구 구성을 추진했다. 세 차례 대표자회의를 거쳐 2018년 4월23일 새로운 사회적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구성안을 두고 합의를 이뤘다.

2018년 6월1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이 공포된 뒤 2018년 11월22일 청와대에서 출범식과 제1차 본위원회의를 열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문성현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불참해 원래 18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본위원회는 17명 체제로 시작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출범식에서 “경제를 살리고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포용국가로 가기 위해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함께 협력해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9년 1월31일 전체회의에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한국노총도 참여하지 않아 탄력근로제 등 산적한 노동현안의 원활한 협의가 불투명해졌다.

문성현은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서 각종 노동 관련 문제들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해고된 뒤 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이 복직하게 되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세계에서 최장기간 굴뚝농성을 벌였던 파인텍 노동자들이 노사의 교섭 타결로 굴뚝에 오른지 426일 째 농성을 중단했고 쌍용차 노동자와 KTX 승무원 등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게 됐다.

금호타이어 매각과 관련한 노조의 반발도 노사와 채권단이 합의하며 수습됐다.

금호타이어는 2018년 7월6일 중국의 타이어기업 ‘더블스타’에 넘어갔다. 그 결과 더블스타그룹의 경영진이 금호타이어로 선임됐는데 이 때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추천한 노동법학자 최홍엽 조선대 교수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최홍엽 교수는 문성현이 산업은행에 추천한 사람이다.

노동계에서는 민간기업에 사실상 첫 '노동이사제'가 도입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석해 의결권과 발언권 등을 행사하며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다.

다만 금호타이어 측은 최홍엽 교수가 노동자 몫이 아니라 채권단 몫으로 선임됐기 때문에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볼 수는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오른쪽)이 2018년 9월14일 쌍용차 노사 해고자 복직 잠정 합의에서 울먹이고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2017년 8월23일 노사정위원장에 위촉됐다. 청와대는 “문 위원장은 노사문제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있고 균형감과 전문성이 있는 전문가로 새 정부 국정과제인 노동존중 실현에 기여하고 한국형 대화기구를 이끌 적임자”라고 말했다.

문성현은 8월25일 취임사에서 양대 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복귀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노동계는 국민경제의 책임 있는 한 주체로서 대화와 협치를 통한 문제 해결의 방식인 사회적 대화에 적극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대화와 협치만이 최선의 해결책임을 인식하고 양대 노총 모두 용기있는 결단을 내려줄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8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싸움을 많이 해본 사람이 싸움을 말릴 줄도 알고 싸움을 피하는 방법도 아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겠다”며 “조만간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 낼 테니 적극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

9월4일 한국노총, 6일 중소기업중앙회, 12일 대한상의, 13일 소상공인연합회 등을 차례로 만나 사회적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19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노총 선거가 끝난 2018년 2월에 노동계 참여 의사 확인과 사회적 대화기구 재편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회적 대화기구에 비정규직, 청년, 여성, 소상공인 등을 포함시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10월24일 청와대에서 노동계 초청 대화가 열렸으나 민주노총이 불참해 반쪽 간담회가 됐다. 민주노총 출신 노사정위원장 발탁으로 사회적 대화 재개에 기대가 컸는데 민주노총이 첫 만남을 무산시켜 아쉬움을 남겼다. 문성현은 이와 관련해 “대통령에게 미안하고 불편했다”고 말했다.

11월16일 아시아미래포럼 폐회식에서 노사정위는 한국노총, 대한상의, 경총, 일자리위원회, 고용노동부와 함께 ‘좋은 일자리 창출과 저출산·고령화 대응,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사정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노사정 대표자들이 사회적 대화 복원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하면서 사회적 대화 재개의 첫 단추를 뀄다.

11월22일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에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도록 지시하면서 노사 갈등이 커지자 요청이 오면 중재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2018년 1월 11일 사회적 대화 정상화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양대 노총과 경총·대한상의, 고용노동부 장관, 노사정위원장이 참여하는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를 열고 새로운 사회적기구 구성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문성현은 24일 6자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노총이 일정에 이견을 나타내며 31일 첫 6자 회의가 열렸다.

3월7일에는 금호타이어 해외매각에 반대하며 고공농성을 벌이는 금호타이어 노조 간부들을 만났다. 문성현은 “논의의 틀을 바꿔야 한다”며 “서운하고 부족할 수 있지만 극복 가능한 해결방안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오른쪽)이 2018년 1월31일 노사정대표자들과 6자회의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이 난 후 2012년 9월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과 함께 탈당했으나 이들과 달리 정의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2012년 10월 18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문성현은 “진보든 민주세력이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맞서 반드시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일자리혁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민주노총 전현직 노조 대표자 130여 명으로 구성된 민주노동포럼을 출범하고 문재인 지지 선언을 이끌어냈다.

2016년 12월에는 사회연대노동포럼을 출범하고 상임대표를 맡았다. 포럼은 2017년 2월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문성현은 4월 문재인 캠프에 노동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으로 합류해 노동정책 설계에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고용노동부 장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하마평에 올랐다.
▲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가 2007년 1월31일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치 활동
2004년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대표를 맡았고 2006년 2월 당대표 경선에서 NL계열의 지지를 받아 결선투표 끝에 조승수 후보를 제치고 당대표로 선출됐다.

2008년까지 당대표를 맡으면서 제4회 지방선거와 제17대 대선 등을 이끌었으나 큰 성과는 얻지 못했다. 지방선거에서 공약한  전국 정당 지지율 15%, 3030명 공직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대선에서는 2002년 대선 득표율보다 낮은 3.0%의 득표율에 그쳤다.

2007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선 전략으로 노사정이 공동으로 부담해 사회연대기금을 마련하는 내용의 사회연대전략을 제시했다.

구체적 방안으로 국가가 6조 원, 고소득자가 4조 원, 노조가 3조 원을 내 모두 13조 원을 국민연금에 지원해 저소득층과 노인 등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당내 반발에 부딪혀 정책 추진이 무산됐다.

2007년 한미 FTA 추진에 반대하면서 26일간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단식 중이던 3월26일 생일을 맞자 딸 문지현양이 편지를 전해줬다.

문성현은 "딸아이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 절반, 내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음이 절반"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구속됐을 때 담당 변호사였는데 그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협상을 중단하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농성장에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이 다녀가기도 했다.

17대 대선 이후 책임을 지고 민주노동당 대표에서 물러났다. 문성현은 당대표 선출 이후부터 통합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당내 노선 갈등이 이어지면서 민주노동당의 분열을 막지 못했다.

PD 계열이 진보신당을 창당해 빠져나간 뒤에도 문성현은 '노동정치'를 하겠다며 민주노동당에 남았고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2010년 지방선거,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2012년 총선에 출마했다.

△선거 이력
선거와는 인연이 없는 편이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에 민주노동당 경남도지사 후보로 처음 출마했는데 10.05%의 득표율로 3위에 그치며 낙선했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때는 민주노동당 창원시장 후보에 출마해 야권 단일화에 성공했지만 27.4%의 득표율로 박완수 한나라당 후보(55.16%)에 크게 뒤졌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경남 창원 의창구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했다. 김갑수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 45.87%의 득표율로 박성호 새누리당 후보(54.12%)에게 졌다. 

△노동계 활동
대학 시절 전태일 평전을 읽고 노동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삼도물산에서 잠시 일하다가 군대를 다녀왔다. 1978년 삼양사에 취직해 인사과에서 직무 분석을 맡았는데 사실상 구조조정 업무나 다름없었다. 2년가량 일을 하다가 사표를 내고 한도공업사라는 작은 프레스공장에 취직했다. 얼마 안가 학생 출신임이 들통나자 회사를 그만뒀다.

영등포 청소년직업훈련원에서 6개월간 선반기술을 배웠지만 작업증을 따는 데는 실패했고 1980년 동양기계 노동자로 입사했다. 동양기계에는 금속노조 동양기계분회가 이미 존재했다.

문성현은 1982년 복지부장으로 노조 상임집행부에 올랐다. 1984년 동양기계가 통일산업에 흡수됐고 노조 사무장을 맡아 단협에 참여했다.

1985년 통일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 노동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한 혐의로 구속돼 2년 동안 실형을 살았다. 출소 후 1988년 경남노동자협의회 의장, 1989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의장을 잇따라 맡으면서 노동운동의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1989년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다가 재차 구속됐고 이듬해 출소했다. 마산 창원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이끌면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초기 활동에 참여했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부위원장,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1995년 민주노총 출범을 추진하다가 국가보안법 및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혐의로 또 구속됐다. 1996년 풀려나 민주금속연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99년에는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을 맡았는데 정리해고제 도입 등에 반발하면서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주도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면서 정치 쪽으로 활동방향을 넓혔다.

◆ 비전과 과제

문성현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노동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추진하는 사회적 대화에 불참하고 있는 노동계를 설득해 대화의 자리로 나오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온건한 한국노총과 비교해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에 완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기존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역할이 다했다는 문제제기에 따라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양대노총과 경영단체 등을 포함한 기구로서 새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합의를 이룬 반면 민주노총은 여전히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오히려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어 사회적 대화 참여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민주노총은 2019년 1월28일 정기 대의원대회 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여부를 투표에 부쳤지만 참여안이 부결되어 최종결정이 미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청와대에 초청해 대화하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양대노총이 모두 참여할 것을 권유했지만 두 노총은 참여를 거부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온전치 못한 상태로 굴러가게 됐다.

문성현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결과를 본 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2018년 11월22일 출범한 뒤로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노동존중사회 실현’과 ‘격차 해소’ 등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며 “앞으로도 민주노총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 대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중요한 과제다.

문성현은 노사정위원장에 오른 뒤 양대 노총보다 비정규직이 중요하다고 밝히는 등 여러차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의지를 나타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대기업 노조는 잘 살게 됐는데 노조를 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문제가 응어리로 남았다고 한다.

문성현은 노회찬 전 의원의 별세로 공석이 된 창원성산 지역구에서 열리는 2019년 4월3일 보궐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본인은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서 할 일이 많아 정치 입문을 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정국 변화에 따라 출마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문성현은 창원에서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했기 때문에 여권 단일화 후보 적임자로 꼽히고 있다.

◆ 평가
▲ 노조 활동을 하던 시절의 문성현(맨 왼쪽).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74년 서울 중구 경동교회에서 야학활동을 했고 전태일 열사의 영향을 받아 노동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성현은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대학에 들어간 것은 그가 처음이라며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공장에 다니는 사촌형제들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통일(현 S&T중공업) 노조위원장, 경남노동자협의회 의장 등을 지내면서 경남지역 노동운동의 대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창설을 주도한 1세대 노동운동가로 민주노총 출범에 핵심 역할을 수행해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문.단.심’ 트리오로 불리기도 했다.

1985년 대우조선 노조 결성을 주도하다 구속됐는데 당시 변론을 맡은 변호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1989년 경남노동자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하다 구속됐을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다.

2012년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하자 먼저 찾아가 돕겠다고 했다. 문성현은 “당신이 꼭 대통령을 해서 노동운동이 해결하지 못한 비정규직 문제를 같이 풀었으면 좋겠다”며 “내가 옆에서 돕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낸 이후에는 거창에서 농사를 지었다. 노사정위원장을 맡은 후에도 주말에는 농사를 지으러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 보안사 민간인 사찰 명단에 올랐다. 문성현은 보안사로부터 '노동자 의식화 교육 및 배후 조종자'로 평가받아 집중 사찰 대상이 됐다.

통일중공업 시절 서울대 출신임이 알려져 회사가 징계하려했으나 노동자 동료들이 농성을 통해 징계 철회 약속을 받아냈다. 당시 동료들은 “그럼 그렇지 어째 아는게 많더라”면서 그를 옹호했다. 처음 공장에 왔을 때 노동자들이 “뭐 저런 얼빵한 사람이 다 있느냐”고 할 정도로 순박해 노동자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대학 선후배로 함께 노동운동을 했다. 문성현은 과거 월간 '말'과 한 인터뷰에서 김 전 지사가 현장을 떠나 정치권으로 가고 그는 현장에 남은 데 대해 “문수형은 이념으로 운동을 시작한 분이라 정치적 좌표를 끊임없이 확장해야 했지만 난 이념보다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과 신뢰와 약속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전투적 노동운동 성향으로 노동운동 계파통합에 힘을 쏟으면서 문통합 등의 별명을 얻었다.

◆ 사건사고

◆ 경력


1979년 한도공업사 프레스공으로 입사했다.

1983년 동양기계(통일) 노조 사무국장, 1985년 통일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1988년 경남노동자협의회 의장을 거쳐 1989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았다.

1993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총장에 올랐다.

1999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연맹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중앙위원을 지냈다.

2004년 민주노동장 경상남도당 위원장을 맡았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민주노동당 대표를 역임했다.

2010년 민주노동당 지도위원을 지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경남 창원 의창구 통합진보당 후보로 나왔으나 낙선했다.

2012년 18대 대선 때 문재인캠프 일자리혁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7년 19대 대선 때도 문재인캠프 노동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8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에 위촉됐다.

◆ 학력
▲ 문성현(오른쪽 두번째)의 대학졸업사진.
1964년 지곡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67년 함양중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부인 이혜자씨와 사이에 딸 문지현씨를 두고 있다. 고려대 출신의 이혜자씨와 대학 시절 야학에서 만나 1982년 결혼했으며 이씨 역시 구로공단 노동자로 일하는 등 노동운동가로 활동했다.

◆ 상훈

◆ 기타


1970년 서울대학교 중문과에 입학했으나 재수해 경영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군에 입대해 육군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2010년 지방선거 때는 3441만 원의 채무를, 2012년 총선 때는 7196만 원의 채무를 신고해 재산보다 빚이 많았다.

◆ 어록
▲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오른쪽)가 2007년 3월26일 단식농성 중 방문한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민주당이 20~30년 장기집권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김대중 노무현정부 때 10년을 해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이미 겪었다. 작년 폐에 6mm 종양을 발견했다. 이것을 공개하면 대통령이 병원에 가보라며 쫓아낼 것 같아 이런저런 일을 다 겪은 뒤 2018년 12월 수술을 잘 받았다.” (2019/01/17,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민주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시대적 의무라고 본다.”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첫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포용국가라는 아젠다는 국민이 피부로 느끼기에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다. 앞으로 중소기업과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중심으로 아젠다를 만들고 이를 소득 혁신 공정 포용 등과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2018/11/13,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공동개최한 ‘노동시장 격차 완화와 소득주도성장’토론회 기조연설에서)

“해고된 쌍용차 노동자들이야 노동자라는 굴레 때문에 아픔을 겪었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10년 동안 가정을 지켜주신 그 가족들에게 정부를 대신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추석은 따뜻한 마음으로 보내시라.” (2018/09/14, 서울 광화문S타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쌍용차 해고자 복직합의 발표 기자회견에서)

“현재 일자리는 10명 중 2명만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가도록 설계돼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기업은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중소기업으로 청년들이 갈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청년실업의 해법이다.” (2018/02/27, 파이낸셜뉴스 인터뷰)

“노사정위원회는 버려도 된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의 소중한 가치는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 지난 시간 우리가 공들이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시행한 실험의 귀한 시간을 헛되이 버려서는 안 된다. 이제 긴 예행연습을 마감하고 우리는 비로소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맞이했다.” (2018/02/22, 포용적 노동체제의 비전과 새로운 사회적 대화 토론회 기조연설)

“그동안 걸어온 길은 멀고 험했고 산과 강은 높고 깊었다. 과거 노사정 대화는 경제위기 극복이 중심이었지만,이를 넘어 사회적 대화에 대한 결의와 각오로 노동계가 스스로 참여한 회의이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2018/02/13, 뉴스1 인터뷰에서 1차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평가하며)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면 연봉이 2500만 원이고 둘이서 결혼하면 5000만 원이다. 이 정도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어디를 가든 자기 삶을 희망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 최저임금과 관련된 핵심 내용이다.” (2017/11/20, 경남신문 인터뷰)

“노사정위를 우회하는 사회적 대화는 없다.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민주노총이 집행부 선거 중이니 기다리겠다. 선거 과정을 통해 ‘사회적 대화’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거부한다면 대안은 뭔지,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2017/11/10, 경향신문 인터뷰)

“노동계나 경영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사회적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역할을 해 나가겠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어 노사가 상생하는 노동 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대화를 진행할 수 있도록 노사정 모두 사회적 책임을 다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2017/08/25, 노사정위원장 취임사)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정치가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다면 답이 있다. 문 후보는 김대중 정부 5년, 참여정부 5년의 노동정책에 대한, 또 그 당시 노동자들이 참담하게 느꼈던 아픔에 대한 통절한 자기반성 위에 서 있다. 진심이 담겨있다. 그 결과로 나온 게 사람중심 경제, 일자리 경제다.” (2012/11/01, 오마이뉴스 인터뷰)

“야권단일후보를 모시고 일대일 구도로 대선을 치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진보진영 사람들도 추후 거국적으로 야권단일후보를 만들려 하지만 저는 여러 후보 중 누가 야권단일후보가 되는 것이 좋은지 한발 앞서 판단하려 한다는 차이가 있다.” (2012/10/11,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선언만으로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실천적 결과물을 확인해 줄 때라야만 믿는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마련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던 기본적인 복지는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명박은 토목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었고, 문국현도 기업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국민들은 그렇게 보았고 그래서 대선에서 표를 줬다.” (2008/02/29, 민중의소리 기고문)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농민, 서민의 아픔을 해결해야 한다. 여기까지 오기가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앞으로 통합을 제일의 기치로 민중의 토대 위에서 바람직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2006/02/10, 민주노동당 대표 선출 뒤)

“시위를 이유로 연맹 핵심지도부를 무더기 사법처리하겠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탄압이다. 노조 간부 구속 연행이 이어져 정부가 대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노동문제를 공안차원에서 접근하는 태도를 버리고 노사정위원회라는 틀을 고집하지 않으면 대화가 가능하다.” (1999/05/20, 불법시위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명동성당 농성 중)

“김 대통령의 집권이 87년 이후 터져나온 노동자들의 대규모 투쟁이 조성한 유리한 조건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면 새 정부가 노동계를 무시하고 국가를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지난해 말부터 가시화하고 있는 독점재벌과 유착관계를 청산하고 민주노도 진영과 정상적 관계를 갖는 것이 통치기반을 넓히는 데도 유리할 것이다.” (1994/02/25, 김영삼 정부 1년의 노동정책을 평가하며)

“대통령제 아래서도 국가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조약은 국회 동의를 받도록 법률에 규정돼 있는 현실에 비춰 조합원의 가장 중요한 이해가 걸린 임단협 체결에 동의 여부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 (1993/04/30, 대법원의 노조대표자 단협체결권 인정판결을 비판하며)

◆ 활동의 공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합의
문성현은 2019년 2월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를 이뤄냈다. 탄력근로제는 단위기간 안에서 일이 몰리는 시기에 노동시간을 늘리고 다른 시기에 노동시간을 줄여 전체 평균치를 법정 노동시간에 맞추는 제도다.

탄력근로제를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대립이 이어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첫 걸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합의에 성공하면서 문성현도 첫 시험 관문을 통과했다. 문성현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는 한국의 사회적 대화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며 “세계를 살펴봐도 노사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합의한 사례는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민주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불참하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도 강하게 반대하면서 총파업을 예고해 사회적 대화 성과가 빛을 잃을 수도 있다.

문성현은 2019년 2월20일 MBC라디오 시선집중에서 “민주노총은 대화가 아니라 투쟁으로 하겠다고 스스로 결정했다”며 “대화를 통해서 하겠다는 한국노총과 경총이 모여 한 합의는 야합이나 반쪽짜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과 활동
문성현은 사회적 대화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출범했다. 기존 경제사회발전노상정위원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사회적 대화기구로 개편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문성현은 양대노총과 경영단체가 참여하는 6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열어 새로운 기구 구성을 추진했다. 세 차례 대표자회의를 거쳐 2018년 4월23일 새로운 사회적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구성안을 두고 합의를 이뤘다.

2018년 6월1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이 공포된 뒤 2018년 11월22일 청와대에서 출범식과 제1차 본위원회의를 열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문성현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불참해 원래 18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본위원회는 17명 체제로 시작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출범식에서 “경제를 살리고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포용국가로 가기 위해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함께 협력해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9년 1월31일 전체회의에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한국노총도 참여하지 않아 탄력근로제 등 산적한 노동현안의 원활한 협의가 불투명해졌다.

문성현은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서 각종 노동 관련 문제들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해고된 뒤 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이 복직하게 되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세계에서 최장기간 굴뚝농성을 벌였던 파인텍 노동자들이 노사의 교섭 타결로 굴뚝에 오른지 426일 째 농성을 중단했고 쌍용차 노동자와 KTX 승무원 등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게 됐다.

금호타이어 매각과 관련한 노조의 반발도 노사와 채권단이 합의하며 수습됐다.

금호타이어는 2018년 7월6일 중국의 타이어기업 ‘더블스타’에 넘어갔다. 그 결과 더블스타그룹의 경영진이 금호타이어로 선임됐는데 이 때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추천한 노동법학자 최홍엽 조선대 교수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최홍엽 교수는 문성현이 산업은행에 추천한 사람이다.

노동계에서는 민간기업에 사실상 첫 '노동이사제'가 도입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석해 의결권과 발언권 등을 행사하며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다.

다만 금호타이어 측은 최홍엽 교수가 노동자 몫이 아니라 채권단 몫으로 선임됐기 때문에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볼 수는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오른쪽)이 2018년 9월14일 쌍용차 노사 해고자 복직 잠정 합의에서 울먹이고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2017년 8월23일 노사정위원장에 위촉됐다. 청와대는 “문 위원장은 노사문제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있고 균형감과 전문성이 있는 전문가로 새 정부 국정과제인 노동존중 실현에 기여하고 한국형 대화기구를 이끌 적임자”라고 말했다.

문성현은 8월25일 취임사에서 양대 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복귀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노동계는 국민경제의 책임 있는 한 주체로서 대화와 협치를 통한 문제 해결의 방식인 사회적 대화에 적극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대화와 협치만이 최선의 해결책임을 인식하고 양대 노총 모두 용기있는 결단을 내려줄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8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싸움을 많이 해본 사람이 싸움을 말릴 줄도 알고 싸움을 피하는 방법도 아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겠다”며 “조만간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 낼 테니 적극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

9월4일 한국노총, 6일 중소기업중앙회, 12일 대한상의, 13일 소상공인연합회 등을 차례로 만나 사회적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19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노총 선거가 끝난 2018년 2월에 노동계 참여 의사 확인과 사회적 대화기구 재편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회적 대화기구에 비정규직, 청년, 여성, 소상공인 등을 포함시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10월24일 청와대에서 노동계 초청 대화가 열렸으나 민주노총이 불참해 반쪽 간담회가 됐다. 민주노총 출신 노사정위원장 발탁으로 사회적 대화 재개에 기대가 컸는데 민주노총이 첫 만남을 무산시켜 아쉬움을 남겼다. 문성현은 이와 관련해 “대통령에게 미안하고 불편했다”고 말했다.

11월16일 아시아미래포럼 폐회식에서 노사정위는 한국노총, 대한상의, 경총, 일자리위원회, 고용노동부와 함께 ‘좋은 일자리 창출과 저출산·고령화 대응,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사정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노사정 대표자들이 사회적 대화 복원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하면서 사회적 대화 재개의 첫 단추를 뀄다.

11월22일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에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도록 지시하면서 노사 갈등이 커지자 요청이 오면 중재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2018년 1월 11일 사회적 대화 정상화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양대 노총과 경총·대한상의, 고용노동부 장관, 노사정위원장이 참여하는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를 열고 새로운 사회적기구 구성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문성현은 24일 6자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노총이 일정에 이견을 나타내며 31일 첫 6자 회의가 열렸다.

3월7일에는 금호타이어 해외매각에 반대하며 고공농성을 벌이는 금호타이어 노조 간부들을 만났다. 문성현은 “논의의 틀을 바꿔야 한다”며 “서운하고 부족할 수 있지만 극복 가능한 해결방안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오른쪽)이 2018년 1월31일 노사정대표자들과 6자회의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이 난 후 2012년 9월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과 함께 탈당했으나 이들과 달리 정의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2012년 10월 18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문성현은 “진보든 민주세력이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맞서 반드시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일자리혁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민주노총 전현직 노조 대표자 130여 명으로 구성된 민주노동포럼을 출범하고 문재인 지지 선언을 이끌어냈다.

2016년 12월에는 사회연대노동포럼을 출범하고 상임대표를 맡았다. 포럼은 2017년 2월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문성현은 4월 문재인 캠프에 노동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으로 합류해 노동정책 설계에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고용노동부 장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하마평에 올랐다.
▲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가 2007년 1월31일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치 활동
2004년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대표를 맡았고 2006년 2월 당대표 경선에서 NL계열의 지지를 받아 결선투표 끝에 조승수 후보를 제치고 당대표로 선출됐다.

2008년까지 당대표를 맡으면서 제4회 지방선거와 제17대 대선 등을 이끌었으나 큰 성과는 얻지 못했다. 지방선거에서 공약한  전국 정당 지지율 15%, 3030명 공직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대선에서는 2002년 대선 득표율보다 낮은 3.0%의 득표율에 그쳤다.

2007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선 전략으로 노사정이 공동으로 부담해 사회연대기금을 마련하는 내용의 사회연대전략을 제시했다.

구체적 방안으로 국가가 6조 원, 고소득자가 4조 원, 노조가 3조 원을 내 모두 13조 원을 국민연금에 지원해 저소득층과 노인 등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당내 반발에 부딪혀 정책 추진이 무산됐다.

2007년 한미 FTA 추진에 반대하면서 26일간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단식 중이던 3월26일 생일을 맞자 딸 문지현양이 편지를 전해줬다.

문성현은 "딸아이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 절반, 내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음이 절반"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구속됐을 때 담당 변호사였는데 그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협상을 중단하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농성장에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이 다녀가기도 했다.

17대 대선 이후 책임을 지고 민주노동당 대표에서 물러났다. 문성현은 당대표 선출 이후부터 통합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당내 노선 갈등이 이어지면서 민주노동당의 분열을 막지 못했다.

PD 계열이 진보신당을 창당해 빠져나간 뒤에도 문성현은 '노동정치'를 하겠다며 민주노동당에 남았고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2010년 지방선거,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2012년 총선에 출마했다.

△선거 이력
선거와는 인연이 없는 편이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에 민주노동당 경남도지사 후보로 처음 출마했는데 10.05%의 득표율로 3위에 그치며 낙선했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때는 민주노동당 창원시장 후보에 출마해 야권 단일화에 성공했지만 27.4%의 득표율로 박완수 한나라당 후보(55.16%)에 크게 뒤졌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경남 창원 의창구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했다. 김갑수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 45.87%의 득표율로 박성호 새누리당 후보(54.12%)에게 졌다. 

△노동계 활동
대학 시절 전태일 평전을 읽고 노동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삼도물산에서 잠시 일하다가 군대를 다녀왔다. 1978년 삼양사에 취직해 인사과에서 직무 분석을 맡았는데 사실상 구조조정 업무나 다름없었다. 2년가량 일을 하다가 사표를 내고 한도공업사라는 작은 프레스공장에 취직했다. 얼마 안가 학생 출신임이 들통나자 회사를 그만뒀다.

영등포 청소년직업훈련원에서 6개월간 선반기술을 배웠지만 작업증을 따는 데는 실패했고 1980년 동양기계 노동자로 입사했다. 동양기계에는 금속노조 동양기계분회가 이미 존재했다.

문성현은 1982년 복지부장으로 노조 상임집행부에 올랐다. 1984년 동양기계가 통일산업에 흡수됐고 노조 사무장을 맡아 단협에 참여했다.

1985년 통일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 노동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한 혐의로 구속돼 2년 동안 실형을 살았다. 출소 후 1988년 경남노동자협의회 의장, 1989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의장을 잇따라 맡으면서 노동운동의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1989년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다가 재차 구속됐고 이듬해 출소했다. 마산 창원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이끌면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초기 활동에 참여했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부위원장,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1995년 민주노총 출범을 추진하다가 국가보안법 및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혐의로 또 구속됐다. 1996년 풀려나 민주금속연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99년에는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을 맡았는데 정리해고제 도입 등에 반발하면서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주도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면서 정치 쪽으로 활동방향을 넓혔다.


◆ 비전과 과제


문성현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노동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추진하는 사회적 대화에 불참하고 있는 노동계를 설득해 대화의 자리로 나오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온건한 한국노총과 비교해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에 완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기존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역할이 다했다는 문제제기에 따라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양대노총과 경영단체 등을 포함한 기구로서 새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합의를 이룬 반면 민주노총은 여전히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오히려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어 사회적 대화 참여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민주노총은 2019년 1월28일 정기 대의원대회 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여부를 투표에 부쳤지만 참여안이 부결되어 최종결정이 미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청와대에 초청해 대화하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양대노총이 모두 참여할 것을 권유했지만 두 노총은 참여를 거부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온전치 못한 상태로 굴러가게 됐다.

문성현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결과를 본 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2018년 11월22일 출범한 뒤로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노동존중사회 실현’과 ‘격차 해소’ 등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며 “앞으로도 민주노총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 대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중요한 과제다.

문성현은 노사정위원장에 오른 뒤 양대 노총보다 비정규직이 중요하다고 밝히는 등 여러차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의지를 나타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대기업 노조는 잘 살게 됐는데 노조를 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문제가 응어리로 남았다고 한다.

문성현은 노회찬 전 의원의 별세로 공석이 된 창원성산 지역구에서 열리는 2019년 4월3일 보궐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본인은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서 할 일이 많아 정치 입문을 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정국 변화에 따라 출마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문성현은 창원에서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했기 때문에 여권 단일화 후보 적임자로 꼽히고 있다.


◆ 평가
▲ 노조 활동을 하던 시절의 문성현(맨 왼쪽).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74년 서울 중구 경동교회에서 야학활동을 했고 전태일 열사의 영향을 받아 노동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성현은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대학에 들어간 것은 그가 처음이라며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공장에 다니는 사촌형제들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통일(현 S&T중공업) 노조위원장, 경남노동자협의회 의장 등을 지내면서 경남지역 노동운동의 대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창설을 주도한 1세대 노동운동가로 민주노총 출범에 핵심 역할을 수행해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문.단.심’ 트리오로 불리기도 했다.

1985년 대우조선 노조 결성을 주도하다 구속됐는데 당시 변론을 맡은 변호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1989년 경남노동자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하다 구속됐을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다.

2012년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하자 먼저 찾아가 돕겠다고 했다. 문성현은 “당신이 꼭 대통령을 해서 노동운동이 해결하지 못한 비정규직 문제를 같이 풀었으면 좋겠다”며 “내가 옆에서 돕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낸 이후에는 거창에서 농사를 지었다. 노사정위원장을 맡은 후에도 주말에는 농사를 지으러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 보안사 민간인 사찰 명단에 올랐다. 문성현은 보안사로부터 '노동자 의식화 교육 및 배후 조종자'로 평가받아 집중 사찰 대상이 됐다.

통일중공업 시절 서울대 출신임이 알려져 회사가 징계하려했으나 노동자 동료들이 농성을 통해 징계 철회 약속을 받아냈다. 당시 동료들은 “그럼 그렇지 어째 아는게 많더라”면서 그를 옹호했다. 처음 공장에 왔을 때 노동자들이 “뭐 저런 얼빵한 사람이 다 있느냐”고 할 정도로 순박해 노동자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대학 선후배로 함께 노동운동을 했다. 문성현은 과거 월간 '말'과 한 인터뷰에서 김 전 지사가 현장을 떠나 정치권으로 가고 그는 현장에 남은 데 대해 “문수형은 이념으로 운동을 시작한 분이라 정치적 좌표를 끊임없이 확장해야 했지만 난 이념보다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과 신뢰와 약속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전투적 노동운동 성향으로 노동운동 계파통합에 힘을 쏟으면서 문통합 등의 별명을 얻었다.

◆ 사건사고


◆ 경력


1979년 한도공업사 프레스공으로 입사했다.

1983년 동양기계(통일) 노조 사무국장, 1985년 통일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1988년 경남노동자협의회 의장을 거쳐 1989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았다.

1993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총장에 올랐다.

1999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연맹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중앙위원을 지냈다.

2004년 민주노동장 경상남도당 위원장을 맡았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민주노동당 대표를 역임했다.

2010년 민주노동당 지도위원을 지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경남 창원 의창구 통합진보당 후보로 나왔으나 낙선했다.

2012년 18대 대선 때 문재인캠프 일자리혁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7년 19대 대선 때도 문재인캠프 노동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8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에 위촉됐다.

◆ 학력
▲ 문성현(오른쪽 두번째)의 대학졸업사진.
1964년 지곡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67년 함양중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부인 이혜자씨와 사이에 딸 문지현씨를 두고 있다. 고려대 출신의 이혜자씨와 대학 시절 야학에서 만나 1982년 결혼했으며 이씨 역시 구로공단 노동자로 일하는 등 노동운동가로 활동했다.

◆ 상훈

◆ 기타


1970년 서울대학교 중문과에 입학했으나 재수해 경영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군에 입대해 육군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2010년 지방선거 때는 3441만 원의 채무를, 2012년 총선 때는 7196만 원의 채무를 신고해 재산보다 빚이 많았다.


◆ 어록
▲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오른쪽)가 2007년 3월26일 단식농성 중 방문한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민주당이 20~30년 장기집권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김대중 노무현정부 때 10년을 해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이미 겪었다. 작년 폐에 6mm 종양을 발견했다. 이것을 공개하면 대통령이 병원에 가보라며 쫓아낼 것 같아 이런저런 일을 다 겪은 뒤 2018년 12월 수술을 잘 받았다.” (2019/01/17,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민주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시대적 의무라고 본다.”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첫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포용국가라는 아젠다는 국민이 피부로 느끼기에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다. 앞으로 중소기업과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중심으로 아젠다를 만들고 이를 소득 혁신 공정 포용 등과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2018/11/13,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공동개최한 ‘노동시장 격차 완화와 소득주도성장’토론회 기조연설에서)

“해고된 쌍용차 노동자들이야 노동자라는 굴레 때문에 아픔을 겪었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10년 동안 가정을 지켜주신 그 가족들에게 정부를 대신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추석은 따뜻한 마음으로 보내시라.” (2018/09/14, 서울 광화문S타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쌍용차 해고자 복직합의 발표 기자회견에서)

“현재 일자리는 10명 중 2명만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가도록 설계돼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기업은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중소기업으로 청년들이 갈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청년실업의 해법이다.” (2018/02/27, 파이낸셜뉴스 인터뷰)

“노사정위원회는 버려도 된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의 소중한 가치는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 지난 시간 우리가 공들이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시행한 실험의 귀한 시간을 헛되이 버려서는 안 된다. 이제 긴 예행연습을 마감하고 우리는 비로소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맞이했다.” (2018/02/22, 포용적 노동체제의 비전과 새로운 사회적 대화 토론회 기조연설)

“그동안 걸어온 길은 멀고 험했고 산과 강은 높고 깊었다. 과거 노사정 대화는 경제위기 극복이 중심이었지만,이를 넘어 사회적 대화에 대한 결의와 각오로 노동계가 스스로 참여한 회의이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2018/02/13, 뉴스1 인터뷰에서 1차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평가하며)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면 연봉이 2500만 원이고 둘이서 결혼하면 5000만 원이다. 이 정도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어디를 가든 자기 삶을 희망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 최저임금과 관련된 핵심 내용이다.” (2017/11/20, 경남신문 인터뷰)

“노사정위를 우회하는 사회적 대화는 없다.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민주노총이 집행부 선거 중이니 기다리겠다. 선거 과정을 통해 ‘사회적 대화’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거부한다면 대안은 뭔지,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2017/11/10, 경향신문 인터뷰)

“노동계나 경영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사회적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역할을 해 나가겠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어 노사가 상생하는 노동 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대화를 진행할 수 있도록 노사정 모두 사회적 책임을 다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2017/08/25, 노사정위원장 취임사)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정치가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다면 답이 있다. 문 후보는 김대중 정부 5년, 참여정부 5년의 노동정책에 대한, 또 그 당시 노동자들이 참담하게 느꼈던 아픔에 대한 통절한 자기반성 위에 서 있다. 진심이 담겨있다. 그 결과로 나온 게 사람중심 경제, 일자리 경제다.” (2012/11/01, 오마이뉴스 인터뷰)

“야권단일후보를 모시고 일대일 구도로 대선을 치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진보진영 사람들도 추후 거국적으로 야권단일후보를 만들려 하지만 저는 여러 후보 중 누가 야권단일후보가 되는 것이 좋은지 한발 앞서 판단하려 한다는 차이가 있다.” (2012/10/11,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선언만으로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실천적 결과물을 확인해 줄 때라야만 믿는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마련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던 기본적인 복지는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명박은 토목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었고, 문국현도 기업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국민들은 그렇게 보았고 그래서 대선에서 표를 줬다.” (2008/02/29, 민중의소리 기고문)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농민, 서민의 아픔을 해결해야 한다. 여기까지 오기가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앞으로 통합을 제일의 기치로 민중의 토대 위에서 바람직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2006/02/10, 민주노동당 대표 선출 뒤)

“시위를 이유로 연맹 핵심지도부를 무더기 사법처리하겠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탄압이다. 노조 간부 구속 연행이 이어져 정부가 대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노동문제를 공안차원에서 접근하는 태도를 버리고 노사정위원회라는 틀을 고집하지 않으면 대화가 가능하다.” (1999/05/20, 불법시위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명동성당 농성 중)

“김 대통령의 집권이 87년 이후 터져나온 노동자들의 대규모 투쟁이 조성한 유리한 조건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면 새 정부가 노동계를 무시하고 국가를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지난해 말부터 가시화하고 있는 독점재벌과 유착관계를 청산하고 민주노도 진영과 정상적 관계를 갖는 것이 통치기반을 넓히는 데도 유리할 것이다.” (1994/02/25, 김영삼 정부 1년의 노동정책을 평가하며)

“대통령제 아래서도 국가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조약은 국회 동의를 받도록 법률에 규정돼 있는 현실에 비춰 조합원의 가장 중요한 이해가 걸린 임단협 체결에 동의 여부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 (1993/04/30, 대법원의 노조대표자 단협체결권 인정판결을 비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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