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2019년 2월20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공동구를 방문해 현장 점검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방분권
김부겸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취임했을 때부터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강화하는 지방분권을 주요 정책목표로 제시해 왔다.
문재인 정부도 ‘지방재정 자립을 위한 강력한 재정분권’을 국정과제로 채택하면서 김부겸의 행보에 힘을 실었다. 구체적 방법론으로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재 8대2에서 2022년까지 7대3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2017년 11월 범정부 재정분권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정부 부처와 전문가, 지자체의 의견을 폭넓게 받았다. 이를 토대로 2018년 9월 지방자치분권 추진방향을 담은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내놓았다.
김부겸은 2018년 10월 지방분권 추진방안의 세부정책을 내놓았다. 지방소비세율을 11%에서 2020년 21%까지 단계적으로 높여 지방재정을 확충하는 방안이 들어갔다. 2020년에 지역밀착형 사무를 중심으로 3조5천억 원 규모의 중앙정부 기능을 지방정부로 넘기고 소방안전교부세도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2021년 시행 목표로 국세와 지방세의 구조 개편 검토, 중앙정부 기능을 지방정부로 추가 이양,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의 개편 등을 제시했다.
법제처는 2019년 정부입법계획에 지방분권과 관련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지방자치분권법, 주민조례발안법 등의 법률안 214건을 국회에 내겠다는 계획을 넣었다. 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2019년 2월 자치경찰을 국가경찰과 분리해 민생과 치안을 맡기고 수사권도 일부 부여하기 위한 경찰법 전면 개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가 2019년 2월 세종시로 전면 이전한 점도 지방분권과 연관됐다. 김부겸은 2019년 2월24일 보도자료에서 “지방분권 주무부처인 행안부의 세종시 이전은 자치분권 시대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
김부겸은 2018년 6월21일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박상기 법무부 장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3자협의체’를 구성해 검경 수사권 조정에 합의했다.
김부겸은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 시절 검사가 형사 사법구조 전반을 장악한 견제 없는 독점적 수사구조로 검사의 부패비리·권한남용·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며 검찰에 집중된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해 경찰에 수사권을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에 따르면 검찰과 경찰이 지휘와 감독의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 수사와 공소 제기, 공소 유지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관계로 설정됐다. 경찰은 모든 사건과 관련해 1차적 수사권과 수사 종결권을 지니고 검찰은 경찰 수사를 향한 통제권을 보유하도록 했다.
김부겸은 “경찰이 인권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한편 현재 ‘대통령 소속 자치 분권위원회’가 중심이 돼 논의하고 있는 자치경찰제가 조속히 도입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며 “행안부는 합의된 조정안이 입법화될 수 있도록 국회, 법무부, 경찰청과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법무부와 협의해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안을 조문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뒤 국회가 2018년 11월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하고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부안을 반영한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해 위원회에 회부했다.
그러나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놓고도 합의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과 민갑룡 경찰청장이 2018년 11월 사법개혁특별위 전체회의에서 엇갈린 의견을 내놓는 등 검경 안에서도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김부겸은 2019년 1월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검경 수사권의 조정동력이 떨어졌다는 질문을 받자 “국민 대다수가 검경 수사권 조정에 찬성하고 있는 만큼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더욱 나은 형사사법 제도가 마련될 수 있도록 국회가 대승적으로 결단하길 바란다”며 “(정부에서) 이 정도까지 했는데 못 하면 누가 해도 안 된다”고 말했다.
| ▲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2019년 2월1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 라이온스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안전사고 대처
김부겸은 문재인 정부의 첫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이전 정부와 비교해 안전한 나라를 표방해 왔다. 그러나 임기 중에 여러 안전사고가 터지면서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7년 말 제천 스포츠센터, 2018년 초 밀양 노인병원에서 화재가 일어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김부겸은 미국에서 대규모 화재사고를 겪자 ‘아메리카 버닝 리포트’를 내놓고 소방법 등을 개정한 사례를 들어 종합 화재대책을 만들기로 했다. 매년 시행하는 국가안전 대진단 방식도 실효성 있게 바꾸고 진단기간도 2주 추가로 연장하기로 했다.
2018년 하반기에 강릉선 고속철도(KTX) 탈선사고, 서울 아현동 KT 전산망 화재사고,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 목동의 열수송관 파열사고 등 사회기반시설(SOC) 관련 사고가 잇달아 터지면서 행정안전부의 안전관리 대책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김부겸은 2018년 12월 범정부 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광역시·도 17곳에 노후한 사회기반시설을 철저하게 점검하고 비상상황 관리 매뉴얼도 다시 정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당시 그는 “시설물 사고가 계속 터지는 것을 우연으로 보면 안 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비해야 한다”며 “큰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타나는 전조일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신년사에서도 대한민국 ‘안전 대개조’의 원년을 목표로 시대적 기준에 맞지 않는 규정을 모두 정비하고 안전점검이 필요한 시설을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2019년 1월25일 주간조선 인터뷰에서는 “새벽에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며 재난 대처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몰카범죄'에 전면전 선포
김부겸은 홍대 누드모델 몰래카메라사건 이후 몰래카메라 범죄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2018년 6월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메시지를 발표해 몰래카메라 등 사이버 성폭력을 '반문명적 행위'로 규정하고 전면전을 선포했다.
동국대 캠퍼스와 지하철 3호선 동국대 화장실에서 화장실 불법 촬영 카메라 현장 점검을 한 후 명동까지 걸어가며 화장실 불법촬영 근절 거리캠페인도 벌였다
김부겸은 페이스북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잔악하고 비열한 짓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을 것” 이라며 “행안부 장관으로서 약속드린다. 몰카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50억원의 특별교부세를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해 탐지기를 대량 확보, 공공화장실과 민간 화장실의 몰래카메라를 퇴출하겠다고 발표했다.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지명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30일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김부겸을 지명했다.
김부겸은 6월15일 청문보고서가 채택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첫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김부겸은 대구에서 당선된 첫 민주당 의원으로 대구·경북에서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인물로 첫손에 꼽혔다. 합리적 온건진보이자 지역구도 극복의 상징으로 부각되면서 새 정부 장관 발탁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박수현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김부겸을 두고 “새 정부 핵심 국정목표인 지방분권, 균형 발전, 국민 통합을 실현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김부겸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께서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뜻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풀뿌리 민주주의 확대, 투명한 봉사행정의 정착 등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것들을 확고하게 제도화한 장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2019년 2월7일 민주당 유튜브 채널 '씀'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
△19대 대선 불출마 선언
김부겸은 2016년 8월30일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김부겸은 본인 페이스북에 "저는 당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사실상 대선 경선을 준비해왔다. 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며 대선에 도전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김부겸은 분권형 개헌이라는 국가 시스템의 체질 개선안과 공동정부 구성안이라는 개방형 공동 경선을 제안했지만 낮은 지지율과 '대구에 뿌리내린 것 말고는 다른 경쟁력이 안 보인다'는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자 2017년 2월 “정권교체를 위한 밀알이 되겠다”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대구경북지역 민심을 끌어오는 데 힘을 보탰다.
김부겸은 대선 불출마 선언 후 19대 대선 선거운동 기간 중 대구경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문재인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당으로부터 중앙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과 대구경북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어 대구와 경북 일대를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대구에서 유세를 펼칠 때 일부 시민들이 야유를 보내는데도 꿋꿋하게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이 SNS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역인재 채용 의무화 법안 발의
2016년 7월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을 의무화하고 이행결과를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등에 반영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은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을 ‘권고’로 두고 있어 실효성에 지속적 문제 제기가 있었다.
김부겸은 법안을 발의하며 “수도권과 지방 사이 심각한 불균형 속에서 지역인재의 채용기회 확대는 단순히 지방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넘어 국가의 미래를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재수 끝에 대구에서 20대 국회의원에 당선
2016년 5월13일 전통적 보수당 텃밭인 대구에서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를 꺾고 야당의 깃발을 꽂는 데 성공했다.
대구 수성구갑은 투표율 68.5%를 보였고 김부겸은 8만4911표를 받아 득표율 62.3%로 김문수 후보보다 24.7%포인트 크게 앞섰다.
그는 경기 군포에서 3선을 지낸 정치인이었으나 2012년 돌연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 19대 총선을 치뤘다. 당시 그는 “군포에서 4선을 하는 건 월급쟁이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마지막 과제인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고 말했다.
이때도 김부겸은 수성구갑에 출마해 40.4%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보였지만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에게 12.3%포인트의 차이로 졌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도 나서 권영진 대구시장과 맞대결을 펼쳤지만 득표수 15.7%포인트 차이로 낙선했다.
△40년 만에 첫 대구경북(TK) 선출직 야권 지도부로 선출
김부겸은 2011년 12월26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예비경선 개표 결과 9위 안에 들어 본선에 출마하여 2012년 1월15일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뽑혔다. TK(대구·경북)출신으로는 40년 만에 첫 선출직 야권 지도부에 올랐다.
전당대회 결과 1위 한명숙(24.05%), 2위 문성근(16.68%), 3위 박영선(15.74%), 4위 박지원(11.97%), 5위 이인영(9.99%), 6위 김부겸(8.09%), 7위 이학영(7.00%), 8위 이강래(3.73%), 9위 박용진(2.76%) 순으로, 6위 김부겸까지만 최고위원이 됐다.
△대부업 금리 30%로 인하하는 법안 대표발의
2010년 12월 금융업 최고금리를 현재 44%에서 30%로 14%포인트 인하하는 내용의 이자제한법 개정안과 대부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대표발의했다.
김부겸은 “이자제한법의 사인 사이 금전거래 최고이자율을 30%로 묶으면서도 금융기관과 거래는 44%로 허용하고 있다”며 “이를 일치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 ▲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이 2019년 1월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19년 정부혁신추진협의회 제1차 회의' 장소에 김병섭 민간공동위원장과 함께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
△예산 결산 심의·의결 앞당기는 법안 발의
2010년 1월 정부에서 결산을 제출받은 날부터 30일 이내로 심의·의결을 완료토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국회법은 '전년도 결산에 대한 심의·의결을 정기회 개회(9월1일) 전까지 완료'하고 국가재정법은 '차기연도 예산안 제출기한을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10월2일)까지'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부겸은 "결산심사가 끝나는 9월1일이면 사실상 정부 예산안이 거의 확정되기 때문에 사실상 결산심의 결과가 예산안에 반영되지 못한다"며 "심지어 결산심의에서 지적된 문제도 차기연도 예산편성에 반영되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에서 소장파로 활동
김부겸은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당적을 지니면서 한나라당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등 소장개혁파로 활동했다.
그가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당적을 지녔던 것은 1997년 조순 당시 서울시장이 민주당 총재 겸 대선후보로 나섰다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합당을 발표하고 한나라당을 출범했기 때문이다. 김부겸은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 이부영, 김영춘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꼬마 민주당’ 입당으로 정치에 본격적으로 나서
김부겸은 한겨레민주당이 실패한 뒤 1991년 이부영, 유인태, 원혜영씨 등과 ‘꼬마민주당’에 합류했다.
꼬마민주당은 1990년의 3당 합당(노태우·김영삼·김종필)에 반대한 이기택, 김광일, 김정길, 노무현, 장석화 등 통일민주당 잔류파가 중심이 돼 만든 정당(민주당)으로 소속 의원이 적어 그렇게 불렸다.
김부겸의 본격적 정치활동은 1992년 대선을 앞둔 1991년 9월 꼬마민주당이 김대중의 신민주연합당(평화민주당의 후신)과 합당을 하면서 시작됐다. 김부겸은 노무현, 홍사덕 대변인 밑에서 부대변인으로 일했으며 이어 당무기획실을 이끌던 제정구 아래에서 부실장으로 활약했다.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
김부겸은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김부겸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과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등에서 활발하게 하면서 한겨레민주당에 자연스레 참여했다.
한겨레민주당은1987년 6월 항쟁으로 이뤄낸 민주화 국면에서 김대중 김영삼 양김씨의 분열로 그해 대통령선거에서 야권이 패배하자 재야 민주화운동세력이 13대총선을 앞두고 독자세력화한 정당이었다.
김부겸은 13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갑에 처음 출마했지만 미미한 성적을 얻는 데 그쳤다.
△민주화운동에 매진
김부겸은 서울대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민주화운동에 힘을 쏟았고 유신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으며 긴급조치 위반으로 실형을 살아 병역도 면제됐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로 활동하면서 5·17계엄령 확대와 함께 신군부의 포고령 위반 혐의(김대중 내란음모 사건)로 두번째로 구속되어 안양교도소에서 복역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1987년 6월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행동본부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명동성당 농성에도 참여 하는 등 민주화운동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