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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  |  2019-02-07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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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 생애

윤여철은 현대자동차 정책개발담당과 국내생산담당 부회장이다.

현대차그룹 부회장단 가운데 최고령자이자 그룹 내 최고 노무관리 전문가로 꼽힌다. 

1952년 6월23일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현대차에 입사해 40년 가까이 몸담고 있다. 판매교육팀, 경기남부지역사업실을 거쳐 이사로 승진했다. 

운영지원실장 상무, 경영자원본부장 전무에 이어 노무관리 지원담당 부사장까지 초고속 승진했다. 

울산공장장 사장, 노무총괄 부회장을 거치면서 노무관리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 사건사고 탓에 고문으로 물러나 사실상 경질됐지만 현대차가 노조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1년여 만에 부회장으로 되돌아왔다. 

3년 연속으로 노조의 파업 없이 교섭을 타결하는 성과를 내면서 협상의 달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오랜 기간 노무 분야의 전권을 쥐고 진두지휘하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강성 현대차 노조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받는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신념으로 일하는 전문경영인으로 평가받는다.

◆ 경영활동의 공과

△광주형 일자리 타결
윤여철은 현대자동차의 광주 완성차공장 투자협약을 타결했다.

2019년 1월31일 윤여철, 이원희 현대차 사장, 이용섭 광주시장, 광주시 노사민정 대표 등이 참여한 가운데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이 체결됐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광주 빛그린산단 내 62만8000㎡ 부지에 자기자본 2800억 원, 차입금 4200억 원 등 총 7000억 원을 투입해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내용이다.

주 44시간 근무에 연봉 3500만 원의 조건으로 현대차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에 완성차를 생산하고 광주시는 근로자들에게 복지를 제공해 낮은 임금을 보전해주는 구조다. 현대차는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연간 10만 대 규모의 경형 SUV를 생산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2018년 6월 광주형 일자리 투자의향서를 제출했지만 투자협약이 타결되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현대차와 광주시가 협상을 진행하는 가운데 광주 노동계는 '노조 패싱'을 주장하며 노사민정 불참을 선언했다. 현대차 노조 역시 협약 체결시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2018년 11월 광주시와 노동계가 투자유치추진단 구성하며 협약 체결이 가까워졌으나 12월5일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가 현대차와 광주시가 합의한 노사상생발전협정서에 수정을 요구하며 한 차례 협약이 무산됐다. 여기에는 5년 동안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유예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광주시가 중재에 나서면서 해를 넘겨 투자협약이 타결될 수 있었다. 해당 임단협 유예조항은 유지됐으나 별도의 부속합의서에 노동조합법 등 관계법령을 준수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 2019년 1월31일 광주광역시 서구 광주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윗줄 가운데), 이원희 현대차 사장(문 대통령 오른쪽), 이용섭 광주시장(문 대통령 왼쪽) 등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현대차그룹 쇄신인사에서 부회장 유지
2018년 12월12일 실시된 현대차그룹 부회장단, 사장단 인사에서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을 제외한 4명의 전문경영인 출신 부회장 가운데 유일하게 자리를 유지했다.

현대차그룹 부회장에 오른 지 10년이 넘었고 부회장단 가운데서도 가장 선임이자 최고령자인 만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책사형 참모로 불린 김용환 부회장은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겼으며 연구개발본부를 책임진 양웅철 권문식 등 두 부회장은 동시에 고문으로 물러났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따라 노사관계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룹에서 최고의 노무관리 전문가로 꼽히는 윤여철이 재신임을 받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18년 노조와 임금협약 협상을 진행하면서 여름휴가 전 파업 없이 조기종결해 사업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현대차는 2018년 7월27일 기본급 4만5000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성과급·격려금 250%+280만 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통시장 상품권 20만 원 지급 등을 뼈대로 하는 2018년 임금협상을 타결했다. 여름휴가 전 협상 마무리는 2010년 이후 8년 만으로 보호무역 확대와 실적부진 등의 대내외적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차, 해를 넘겨 2017년 임단협 타결 
현대차 노사는 2017년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에서 사상 처음으로 연내 타결에 실패했다. 실적 악화와 판매 부진이 노사 임단협 타결에 악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조는 임금과 성과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경영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특히 해외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면서 노조가 파업하더라도 회사가 입는 타격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임금 인상에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 노사는 2017년 12월19일에 1차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는데 1차 잠정합의안에는 △기본급 5만8천 원 인상 △성과급 300%+280만 원 지급 △중소기업 제품 구입 때 20만 포인트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1차 잠정합의안이 노조 찬반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노조가 파업에 나서는 등 노사갈등이 깊어졌다. 

현대차 노사는 해를 넘겨 2018년 1월10일 본교섭에서 2차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2차 잠정합의안에는 1차 잠정합의안에서 △재래시장상품권 20만 원 지급 △해고자 1명 복지 등의 내용이 추가됐다. 

현대차 임금협약 협상이 해를 넘기면서 2017년에 임금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속출했다.

현대차를 포함해 노사가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을 진행하는 현대차그룹 소속 사업장 13곳 가운데 9곳이 해를 넘겨서도 2017년 임단협을 타결하지 못했다.

현대차 노사의 2차 잠정합의안은 2018년 1월15일 노조 찬반투표에서 61.06%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8년 1월2일 현대차그룹 시무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2016년, 노조 파업으로 사상 최대 생산 차질
현대차 노조는 2016년 임금협약 교섭 과정에서 24차례 파업하고 12차례 특근을 거부했다. 정부가 현대차 노조 파업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힐 정도로 강도 높게 파업했다. 

긴급조정권이란 노조의 파업이나 쟁의행위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거나 국민경제를 해칠 우려가 있을 때 발동되는 조치다.

현대차는 2016년 노조 파업으로 자동차 14만2천여 대, 3조1천억 원에 이르는 생산 차질을 빚은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1987년 이후 노조 파업에 따른 사상 최대 생산 차질 규모다.

게다가 현대차 노사는 2016년 임금협약 교섭에서 쟁점 현안이었던 임금피크제 확대 여부를 놓고도 합의를 보지 못한 채 교섭을 마무리했다. 

노사는 임금피크제 확대 여부를 놓고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임금피크제 놓고 노조와 의견 차이 못 좁혀 
현대차 노사는 2015년 12월 가까스로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을 타결했지만 쟁점현안이었던 임금피크제, 통상임금 등을 놓고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현대차가 도입하려는 임금피크제는 만 59세와 만 60세에 각각 전년도 임금의 10%를 삭감하는 것이다. 

현대차 노사는 앞서 2014년 11월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를 만들었으나 2015년 9월 이후 임금협상 및 단체협약 교섭, 노조 파업, 노조 집행부 임기 만료 등에 발목이 잡혀 활동을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신규 채용 결정
2013년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자 담화문을 내고 2016년 상반기까지 비정규직 직원 3500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2014년 아산과 전주의 비정규직 4천 명을 특별 채용하기로 한 데 이어 2015년 울산의 비정규직 2천 명을 추가로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추가 특별 채용 합의내용은 2016년 3월 노조 찬반투표에서 가결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2017년 안에 비정규직 6천 명의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부회장 복귀하며 국내 생산 담당까지 역할 확대
2012년 1월 현대차 노동자 분신사태의 책임을 지고 부회장에서 물러난 지 16개월 만인 2013년 5월에 노무총괄 부회장으로 복귀했다. 

현대차는 2013년 노조와 임금협상에서 주말특근 수당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고 비정규직 노조가 8500여 명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 돌입을 선언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윤여철이 구원투수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재직과 퇴직 여부를 떠나 가장 적합한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정몽구 회장 나름의 인사 철학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어려울 때일수록 구관이 명관이라는 원칙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2014년부터 국내 생산 담당까지 맡아 좋은 성과를 냈다. 2015년 신형 투싼 공동생산 노사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생산 유연성을 높이고 차량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결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 현대자동차 실적.
△노무총괄 부회장에서 물러나
현대차그룹은 2012년 1월18일 윤여철을 노무총괄 부회장에서 물러나게 하고 고문으로 위촉하는 인사를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5년 넘게 노조와 임금과 단체협약 협상을 주도하며 노사관계에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윤여철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뜻밖이었다.

2012년 1월8일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현대차 노조) 소속의 조합원 1명이 분신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윤여철은 정몽구 회장과 직접 만나 사의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성 노조 출범과 조합원 분신 사태 등 일련의 과정에서 노사 관계를 매끄럽게 풀어내지 못한 것과 관련한 문책성 인사로 해석됐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에 숱하게 담화문 작성
윤여철은 노조와 협상하면서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노조가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할 때마다 직접 담화문을 발표하거나 가정통신문을 발송하는 등 노사관계를 대화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시무식에서 노조 간부의 윤여철 폭행사건이 벌어졌던 2007년에는 유독 담화문과 가정통신문 작성 건수가 많았다.

노조가 성과급 지급과 관련한 파업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파업 등으로 끊임없이 파업을 이어가자 숱하게 담화문을 썼다.

윤여철의 담화문을 보면 “파업으로 고객들이 우리차에 등을 돌린다”부터 시작해 “언제까지 정치파업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나” “파업만큼은 자제해 달라” 등으로 내용이 다양하다.

윤여철은 울산 공장장을 맡으며 생산에 힘써야 했는데 노사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 퇴근 후나 시간이 날 때마다 생각을 정리해 글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상무부터 사장까지 초고속 승진
윤여철은 2004~2005년에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윤여철이 현대차에 1979년 입사해 2003년 이사로 승진하기까지 24년이 걸렸다.

이후 2004년 1월에 상무로 진급했으며 같은 해 4월에 전무로, 다시 8개월 뒤에 부사장에, 또다시 9개월 뒤에 사장이 되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노사협상 뿐만 아니라 영업본부장 시절에도 인사노무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이는 등 내부에서 노무관리 전문가로 통하면서 그 역량을 인정받았다.

2005년에는 노조의 의견을 받아들여 국내 기업 최초로 사외 건강증진센터를 설립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IMF 당시 구조조정 직무 수행
윤여철은 1998년 IMF 사태 당시 현대차에서 국내 본부 인사업무를 맡아 구조조정의 임무를 수행했다.

윤여철은 당시를 회상하며 “조직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감행해야 했지만 한 가정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 정리해고 과정이 3차까지 갔을 때에는 적지 않은 고충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2000년에 경기남부 지역본부장이 되어 26개의 지부 가운데 25등이던 경기남부 지부를 1년 만에 전국 2등의 지부로 만드는 쾌거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 비전과 과제
▲ (왼쪽부터) 신수정 현대차정몽구재단 이사장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8년 5월23일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청년 사회적 기업 육성 및 신중년 일자리 창출' 협약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가 광주형 일자리 협약에 반발해 2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어 이에 대처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금속노조 현대차 기아차 지부는 광주형 일자리 관련 특별고용안정위원회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는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20여 년 만에 국내에 완성차공장을 짓는다. 오랜 기간 생산과 노무를 담당해온 윤여철은 광주 완성차공장이 안정적 생산과 노무 체계를 확립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윤여철은 현대차그룹 부회장단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데다 부회장 재직기간도 가장 길다.

노동계의 통상임금 확대 요구가 강해지는 등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새로운 임금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빠르게 오르고 있어 기본급 비중을 확대해 현대차가 안정적으로 최저임금법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2018년 12월 격월로 100%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을 매월 50%로 변경해 최저임금을 맞추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노조는 이미 이를 한 차례 거절했다.

2013년부터 사내하청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고 있지만 불법파견 논란의 불씨가 남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가 노조와 비정규직 특별채용을 놓고 협의를 시작한 것은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도급 비정규직 최병승씨가 2010년 7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이후다.

최씨에 이어 현대차와 기아차 사내하도급 비정규직 1941명은 2010년에 정규직으로 인정해달라며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을 냈다. 직접공정으로 분류된 의장공정에서 일했던 최씨와 달리 1941명은 생산관리, 출고, 포장 등 간접공정에서 일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7년 2월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유지해 현대차와 기아차 비정규직의 손을 들어줬다. 제조업에서 직접공정뿐 아니라 간접공정에 사내하도급 직원을 투입하는 것도 불법파견으로 본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상고하면서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내하도급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게 된 셈이다.  

◆ 평가
▲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1년 4월28일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의 초청강연으로 '내 삶을 이끈 몇 가지 키워드'라는 주제로 얘기하고 있다.
자동차 판매영업 직원 출신으로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으로 노조의 파업 없이 임금과 단체협약 협상을 타결할 때 이를 이끌어낸 노사협상 실무의 주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차 노사가 상생보다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박유기 전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적대적 노사관계 원칙을 만든 장본인은 윤여철 부회장”이라며 “회사가 이런 원칙을 지키는 데 급급하면 노사관계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 윤갑한 전 현대차 사장이 노사협상 실무를 수행했지만 사실상 윤여철이 현대차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2013년 현대차 노조가 강도 높은 파업을 벌였는데 윤여철이 언론과 인터뷰에서 “파업으로 회사 손실이 커지면 당연히 해외생산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발언을 하자 노조는 반발했다. 윤여철이 교섭대상도 아니면서 교섭을 지휘하려고 들면서 교섭체계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노조는 2018년 5월에도 “윤여철 부회장이 최근 회사 교섭팀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1분기 영업이익이 반토막이 난 점을 들어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노조의 하후상박 임금인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며 “그는 매년 교섭마다 등장해 노조의 혼란을 부추기려 한다”고 주장했다.

평소 윗사람이란 아랫사람들의 어려움을 책임져 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신념을 품고 모든 일을 맡는다.

윤여철은 2011년 연세대학교에서 진행한 ‘내 삶을 이끈 몇 가지 키워드’라는 강연에서 “국내 영업부문에 배치돼 중부사업소에서 도배업무를 시작으로 조직에 몸을 담아 보잘것없는 일을 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신념으로 모든 일에 성실히 임했다”며 “1988년에는 마케팅 기획총괄 과장 자리에까지 올랐는데 직원들과 소통하는 방법, 직원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의 중요성 등을 그 때에 다 익혔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후배들에게 주인의식과 적극성, 디테일의 힘, 현재에의 충실성, 자신감 등 다섯 가지를 가질 것을 조언했다. 이 다섯 가지를 지니면 어느 조직에 가더라도 앞길이 밝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최선을 다하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2013년 11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의 초청으로 ‘현대자동차의 성공 요인과 미래 전략’을 주제로 특강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바라는 삶에 관해 설명하며 “마이클 조던이 부상당하지 않는 이유는 앞에 있는 수비수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부딪혔기 때문”이라며 “우리 후배들도 이처럼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애플 신입직원들이 받는 편지를 인용하며 항상 스스로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의미 있는 행동을 하길 바란다고도 당부했다.

현대차의 성공 스토리에 대한 자부심도 많다.

윤여철은 당시 강연에서 “현대차는 1967년 설립된 이후 이제는 고유의 모델과 고유 엔진을 보유한 글로벌 톱5 자동차기업이 됐다”며 “정몽구 회장이 부임한 뒤 품질경영을 강조하며 지난 10년 동안 굉장히 높은 성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내수와 해외의 가격 차별 등 고객들에게서 받는 오해와 관련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여철은 “현대차는 세계 곳곳에 균형 있는 지역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며 “한국과 미국 자동차 가격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자동차의 경우 각 국가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세제가 다르다거나 다양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국가 간 자동차 가격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고 해명했다.

2018년 1월 이형근 전 기아차 부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나면서 현대차그룹 부회장단에서 최고령 부회장이 됐다. 윤여철과 이형근 전 부회장은 둘 다 1952년생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대신해 2017년과 2018년 현대차 시무식을 주재했다.

윤갑한 전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윤여철을 직장생활의 롤모델로 삼았다.

윤 전 사장은 윤여철을 놓고 “모든 일에 도전적 마인드를 지니고 있으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사원들에게 귀감이 되는 분”이라며 “윤 부회장의 도전정신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고등학교 총동창회에 1천만 원을 회비로 납부했다.

◆ 사건사고

△노사 임금협약 교섭 개입 논란
현대차 노조는 2018년 회사와 임금협약 교섭을 놓고 윤여철이 부당하게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차 노조는 2018년 5월18일 소식지를 통해 “윤여철 부회장이 최근 회사 교섭팀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1분기 영업이익이 반토막이 난 점을 들어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노조의 하후상박 임금인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며 “그는 매년 교섭마다 등장해 노조의 혼란을 부추기려 한다”고 비난했다.

노조는 2018년 임금협약 협상에서 ‘하후상박 연대임금 전략’ 펼친다는 방침을 정했는데 현대차 노무를 총괄하고 있는 윤여철이 이런 노조의 핵심 전략을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현대차 노사 교섭을 보면 회사측에서는 울산공장장을 맡고 있는 임원이 노조와 직접 협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윤여철은 노무관리를 총책임하는 위치에 있지만 하언태 현대차 울산공장장 부사장이 협상을 직접 진행한다. 이를 놓고 노조가 윤여철의 부당 개입을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 실습생 사망사고와 현대차 노동자 분신사태 
2011년 12월 기아차의 광주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등학생이 실습 도중에 뇌출혈 증상이 나타나며 사망했다.

2012년 1월에는 현대자동차 울산 엔진공장 노동자가 분신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신모 조합원이 회사측 관리자들의 현장통제에 반발하며 분신했다.

이는 2011년 말부터 불거진 노사관계가 원인으로 분석됐다.

현대차는 조합원의 노동조건과 직결되는 ‘장시간 근로 개선계획’을 작성해 고용노동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단 한 차례의 노사협의도 하지 않았다.

1400명(현대차 900명, 기아차 500명)을 충원한다는 내용이 담긴 근로 개선계획서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다. 또 현대차 노사는 정년퇴직 대상자의 고용을 1년 연장해 주기로 한 단체협약 조항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고교생 뇌출혈 사망사고와 노동자 분신사태에 책임을 지기 위해 윤여철은 노무총괄 부회장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위촉됐다.

그러나 윤여철의 퇴진을 두고 현대차 경영진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관측도 있다. 현대차가 2000년 초반부터 불법적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사실이 인정됐는데도 10년 동안 이 문제를 풀지 않고 외면한 데 이어 노무관리 전문가인 윤여철을 배제했다는 것이다.
▲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8년 4월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재판에서 비자금 증언
윤여철은 현대차 울산공장장 사장을 맡았던 2007년에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회장의 상소심 두 번째 공판에서 비자금 관련 증언을 했다.

윤여철은 2007년 4월1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이재홍 부장판사)에서 열린 정 회장과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의 항소심 속행공판에서 500억 원가량 되는 비자금의 주된 용도는 현장 노동자를 격려하기 위한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윤여철은 현대차측 증인으로 출석해 “노동집약적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생산 담당 직원의 사기를 진작하고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경조사비 같은 경우 영수증 처리를 하기 어려워 비자금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2006년과 2007년의 경영 방식이 달라질 것이 없는데 현재는 어떤 방법으로 노무관리를 하고 있냐”고 묻자 윤여철은 “2006년 검찰 수사 이후로는 비자금을 쓰지 않고 있으며 공식 경비로 처리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주장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검찰이 압박하자 비자금을 받아 사용처를 보고하지도 메모하지도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노조 간부에게서 폭행 당해
윤여철은 2007년 1월3일 시무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던 도중 노조 간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이 폭행으로 윤여철의 안경이 부러졌으며 콧등이 파이는 상처를 입어 울산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현대차가 2006년 말에 목표달성 미달을 이유로 노조에 성과급을 애초 약속했던 150%가 아닌 100%만 지급하기로 한 데 반발해 노조 간부의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현대자동차는 이 폭행사건에 관련된 노조 간부 22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 재산손괴 혐의 등으로 울산 동부경찰서에 고소하고 노조에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도 제기했다.

윤여철은 이 사건과 관련해 “나쁜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며 “원칙대로 모든 일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지법 제1형사단독 최재혁 부장판사는 2007년 7월19일 구속기소된 박유기 전 노조위원장과 안현호 전 수석부위원장에 각각 징역 1년6월과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최 판사는 “피고인들은 우리나라 최대의 노조인 현대차 노조위원장과 노조 핵심간부이지만 노조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불법 쟁의행위를 벌여 회사와 국가신용도를 손상시켰고 최고 경영자까지 폭행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했다”며 “노조 요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봤다.

◆ 경력
▲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오른쪽)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왼쪽)이 2011년 10월25일 ‘현대차-교과부 교육기부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979년 현대차에 입사했다. 판매교육팀과 경기남부지역사업실 등에서 일했다.

1996년 현대차 판매교육팀 부장을 지냈다.

2001년 현대차 경기남부지역사업실 이사대우로 승진했다.

2003년 현대차 영업운영팀 이사에 올랐다.

2004년 1월 상무로 승진해 현대차 운영지원실장을 맡았다.

2004년 4월 전무로 승진해 경영지원본부장을 지냈다.

2004년 12월 부사장으로 승진해 노무관리지원담당을 맡았다.

2005년 9월 사장으로 승진하며 울산공장장 겸 노무총괄담당, 울산아산공장담당을 맡게 됐다.

2008년 노무총괄 겸 울산아산공장담당 부회장이 됐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사단법인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2012년 부회장에서 물러나 노무관리 고문을 맡았다.

2013년 노무총괄 부회장으로 복귀했다.

2013년 울산공장장과 아산공장장에 선임됐다.

2014년부터 국내생산담당 부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 학력

1971년 서울고등학교(23회)를 졸업했다.

1979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 상훈

2010년 사회복지의 날을 기념해 보건복지부가 수여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 기타

2018년 3분기 말 기준으로 현대자동차 주식 500주를 보유하고 있다.

1973년 공군에 자원입대해 만기 전역했다.

◆ 어록

“지금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거의 '식물 단체' 상태다. 이런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부·노동계와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 합리적 인물이 경총 회장이 돼야 한다.” (2018/02/22, 경총 회장과 상임 부회장이 동반 사임한 ‘경총사태’를 놓고)

“올해 다시 한번 현대차 정신을 적극 발현하는 한편 창의적이고 혁신적 자세로 업무를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현대차가 ‘가장 사랑받는 자동차회사’를 넘어 ‘가장 존경받는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초석을 다져야 한다.” (2018/01/02, 현대자동차 시무식에서) 

“임금협상 및 단체협약은 회사실적에 따라 가는 게 맞다. 회사가 잘되면 잘 되는대로 잘 주고 안되면 안되는 대로 깎는 것이 당연하다.” (2017/05/29,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2012년부터 올해까지 사내하도급 근로자 6000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5700명 완료했고, 300명은 계획대로 연내 채용할 계획이다.” (2017/05/29,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대기아차는 협력사 채용박람회를 통해 우수인재를 채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협력사들의 인재확보를 위해 6년 동안 협력사 채용창구 역할을 담당해왔다. 지난해부터 지자체와 협조해 채용박람회에 지역 강소기업도 참여하도록 했다.” (2017/05/29,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현대기아차가 청년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시행하는 ‘고용디딤돌 절차’의 홍보관도 박람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협력사와 구직자를 상시 지원하기 위해 협력사 인재채용과 구직 전용 인터넷사이트를 구축해 4년 동안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2017/05/29,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쉬운 데가 어딨나. 다 어렵다.” (2017/02/28,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국경영자총협회 정기총회에서 노사관계 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일자리인 만큼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기 위해서 임금피크제 확대를 필히 해야 한다고 노조를 설득하고 있다. 쉽지 않겠지만 청년들이 희망없는 사회는 그 자체가 희망이 없다.” (2016/03/23, 현대기아차 채용박람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협력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글로벌 역량을 갖춘 우수인재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자동차산업 전반에 걸친 고용창출 확대에 기여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2016/03/23, 현대기아차 채용박람회에서)

“임금체계 개선에 대해 노사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통상임금 법원판결에서 승소해 (통상임금 확대는) 임금협상 대상이 아니고 이를 협상 자리에서도 충분히 설명하겠다.” (2015/03/25, 현대기아차 채용박람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대기아차는 협력사의 성장과 발전이 곧 모두의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지난 2012년부터 협력사 채용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자동차산업 전반에 걸친 고용창출 확대에 기여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2015/03/25, 현대기아차 채용박람회에서)

“지난해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면 고정성이 부족하면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기로 돼 있다. 우리의 정기상여금이 딱 그렇다. 법대로 하겠다.” (2014/03/11, 상여금의 통상임금 인정 여부를 묻는 질문에)

“파업으로 회사 손실이 커지면 당연히 해외 공장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장기 파업이나 전면 파업은 노조 스스로 밥그릇을 치워버리는 것이다.” (2013/08/20,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고령화 대책으로 정년을 무조건 연장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고령화 문제는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생산성에 큰 차이가 없는 업종 등 다른 부문에서 풀어야 한다. 자동차 공장에선 연령층에 따라 생산성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2013/08/20,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나는 이미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이다. 지금 죽어도 호상이다. 죽는다는 각오로 대처할 각오가 돼 있다. 파업에 밀려 노조 요구를 수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이번에 또 흐지부지 넘어가면 노조의 잘못된 습관을 영영 고치기 힘들어지는 만큼 단호하게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 (2013/08/20,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노조 파업은 국내 생산 물량을 해외로 내쫓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해외공장에 비해 생산성도 낮은 노조가 파업을 통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2013/08/13, 한국경제와 전화 인터뷰에서)

“노조도 계파 간 선명성 경쟁에 매몰될 게 아니라 국민 여론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지금도 업계 최고 연봉을 받는 노조에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를 어떤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 (2013/08/13, 한국경제와 전화 인터뷰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는 근로자의 건강을 지키면서 임금을 보전할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도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노사가 윈윈(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다.” (2011/12, 새벽 근무 없이 주간 근무로만 2개 조를 사업장에 투입해 운영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과 관련해서)

“2차 협력사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품질과 기술 분야에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 또 부품산업진흥재단을 통해 뿌리산업과의 상생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 (2010/07/15, 2, 3차 협력사 1200곳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며)

“언제까지 우리만 정치파업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나. 이번 정치파업의 목적인 ‘쇠고기 재협상’, ‘공공서비스 사유화 반대’, ‘대운하 반대’, ‘기름값 물가폭등 저지’ 중에서 회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노조가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동안의 정치파업이 남긴 것은 엄청난 생산손실과 임금손실, 대외 이미지 하락뿐이다. 또다시 그 아픔의 길로 직원들을 내모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동이다.” (2008/06/13, 현대차 노조의 민주노총 총파업 동참 결정 여부 찬반 투표를 놓고 담화문을 발표하며)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는 금속노조의 지침만을 따르기 위해 또다시 파국의 길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때다. 지금이라도 파국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고 국민들과 고객들에게 과거와는 다른 현대자동차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변화된 모습이야 말로 더 이상의 고객이탈과 국민들의 실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2007/06/25, 현대차 노조의 금속노조 파업 동참 결정을 놓고 담화문을 발표하며)

“노조는 고객들의 바람과 묵묵히 현장에서 자신의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대다수 직원들의 임금손실은 고려 않고 또다시 명백한 불법파업을 강행하고 있다. 더 이상의 혼란은 노사 모두의 피해만 키울 뿐이고 고객들의 마음이 돌아선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혼란을 수습하고 고객의 신뢰를 되찾자.” (2007/01/15, 노조의 부분파업을 놓고 담화문을 발표하며)

“성과는 보상인데, 성과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성과급을 지급하나. 성과급을 사측이 안준게 아니라 노조측이 제대로 못해서 성과급을 못 받은 것이다.” (2007/01/03, 머니투데이와 전화 인터뷰에서)

“자동차산업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아우르는 다양한 사업영역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종합 비즈니스다. 입사지원자들은 어느 영역의 전문가로 성장해 갈 것인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대자동차와 함께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비즈니스맨으로 또는 자동차 미래기술을 선도하는 엔지니어로, 글로벌 기업을 경영하는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하려는 우수 인재가 필요하다.” (2004/09/02, 현대차 미래 인재상을 제시하며)

“소중하고 정겨운 일터가 왜 해마다 정치파업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안타깝다.” (2004/06/28, 노조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반대 파업을 놓고 담화문에서)

◆ 경영활동의 공과

△광주형 일자리 타결
윤여철은 현대자동차의 광주 완성차공장 투자협약을 타결했다.

2019년 1월31일 윤여철, 이원희 현대차 사장, 이용섭 광주시장, 광주시 노사민정 대표 등이 참여한 가운데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이 체결됐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광주 빛그린산단 내 62만8000㎡ 부지에 자기자본 2800억 원, 차입금 4200억 원 등 총 7000억 원을 투입해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내용이다.

주 44시간 근무에 연봉 3500만 원의 조건으로 현대차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에 완성차를 생산하고 광주시는 근로자들에게 복지를 제공해 낮은 임금을 보전해주는 구조다. 현대차는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연간 10만 대 규모의 경형 SUV를 생산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2018년 6월 광주형 일자리 투자의향서를 제출했지만 투자협약이 타결되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현대차와 광주시가 협상을 진행하는 가운데 광주 노동계는 '노조 패싱'을 주장하며 노사민정 불참을 선언했다. 현대차 노조 역시 협약 체결시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2018년 11월 광주시와 노동계가 투자유치추진단 구성하며 협약 체결이 가까워졌으나 12월5일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가 현대차와 광주시가 합의한 노사상생발전협정서에 수정을 요구하며 한 차례 협약이 무산됐다. 여기에는 5년 동안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유예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광주시가 중재에 나서면서 해를 넘겨 투자협약이 타결될 수 있었다. 해당 임단협 유예조항은 유지됐으나 별도의 부속합의서에 노동조합법 등 관계법령을 준수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 2019년 1월31일 광주광역시 서구 광주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윗줄 가운데), 이원희 현대차 사장(문 대통령 오른쪽), 이용섭 광주시장(문 대통령 왼쪽) 등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현대차그룹 쇄신인사에서 부회장 유지
2018년 12월12일 실시된 현대차그룹 부회장단, 사장단 인사에서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을 제외한 4명의 전문경영인 출신 부회장 가운데 유일하게 자리를 유지했다.

현대차그룹 부회장에 오른 지 10년이 넘었고 부회장단 가운데서도 가장 선임이자 최고령자인 만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책사형 참모로 불린 김용환 부회장은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겼으며 연구개발본부를 책임진 양웅철 권문식 등 두 부회장은 동시에 고문으로 물러났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따라 노사관계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룹에서 최고의 노무관리 전문가로 꼽히는 윤여철이 재신임을 받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18년 노조와 임금협약 협상을 진행하면서 여름휴가 전 파업 없이 조기종결해 사업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현대차는 2018년 7월27일 기본급 4만5000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성과급·격려금 250%+280만 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통시장 상품권 20만 원 지급 등을 뼈대로 하는 2018년 임금협상을 타결했다. 여름휴가 전 협상 마무리는 2010년 이후 8년 만으로 보호무역 확대와 실적부진 등의 대내외적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차, 해를 넘겨 2017년 임단협 타결 
현대차 노사는 2017년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에서 사상 처음으로 연내 타결에 실패했다. 실적 악화와 판매 부진이 노사 임단협 타결에 악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조는 임금과 성과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경영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특히 해외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면서 노조가 파업하더라도 회사가 입는 타격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임금 인상에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 노사는 2017년 12월19일에 1차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는데 1차 잠정합의안에는 △기본급 5만8천 원 인상 △성과급 300%+280만 원 지급 △중소기업 제품 구입 때 20만 포인트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1차 잠정합의안이 노조 찬반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노조가 파업에 나서는 등 노사갈등이 깊어졌다. 

현대차 노사는 해를 넘겨 2018년 1월10일 본교섭에서 2차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2차 잠정합의안에는 1차 잠정합의안에서 △재래시장상품권 20만 원 지급 △해고자 1명 복지 등의 내용이 추가됐다. 

현대차 임금협약 협상이 해를 넘기면서 2017년에 임금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속출했다.

현대차를 포함해 노사가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을 진행하는 현대차그룹 소속 사업장 13곳 가운데 9곳이 해를 넘겨서도 2017년 임단협을 타결하지 못했다.

현대차 노사의 2차 잠정합의안은 2018년 1월15일 노조 찬반투표에서 61.06%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8년 1월2일 현대차그룹 시무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2016년, 노조 파업으로 사상 최대 생산 차질
현대차 노조는 2016년 임금협약 교섭 과정에서 24차례 파업하고 12차례 특근을 거부했다. 정부가 현대차 노조 파업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힐 정도로 강도 높게 파업했다. 

긴급조정권이란 노조의 파업이나 쟁의행위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거나 국민경제를 해칠 우려가 있을 때 발동되는 조치다.

현대차는 2016년 노조 파업으로 자동차 14만2천여 대, 3조1천억 원에 이르는 생산 차질을 빚은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1987년 이후 노조 파업에 따른 사상 최대 생산 차질 규모다.

게다가 현대차 노사는 2016년 임금협약 교섭에서 쟁점 현안이었던 임금피크제 확대 여부를 놓고도 합의를 보지 못한 채 교섭을 마무리했다. 

노사는 임금피크제 확대 여부를 놓고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임금피크제 놓고 노조와 의견 차이 못 좁혀 
현대차 노사는 2015년 12월 가까스로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을 타결했지만 쟁점현안이었던 임금피크제, 통상임금 등을 놓고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현대차가 도입하려는 임금피크제는 만 59세와 만 60세에 각각 전년도 임금의 10%를 삭감하는 것이다. 

현대차 노사는 앞서 2014년 11월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를 만들었으나 2015년 9월 이후 임금협상 및 단체협약 교섭, 노조 파업, 노조 집행부 임기 만료 등에 발목이 잡혀 활동을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신규 채용 결정
2013년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자 담화문을 내고 2016년 상반기까지 비정규직 직원 3500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2014년 아산과 전주의 비정규직 4천 명을 특별 채용하기로 한 데 이어 2015년 울산의 비정규직 2천 명을 추가로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추가 특별 채용 합의내용은 2016년 3월 노조 찬반투표에서 가결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2017년 안에 비정규직 6천 명의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부회장 복귀하며 국내 생산 담당까지 역할 확대
2012년 1월 현대차 노동자 분신사태의 책임을 지고 부회장에서 물러난 지 16개월 만인 2013년 5월에 노무총괄 부회장으로 복귀했다. 

현대차는 2013년 노조와 임금협상에서 주말특근 수당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고 비정규직 노조가 8500여 명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 돌입을 선언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윤여철이 구원투수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재직과 퇴직 여부를 떠나 가장 적합한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정몽구 회장 나름의 인사 철학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어려울 때일수록 구관이 명관이라는 원칙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2014년부터 국내 생산 담당까지 맡아 좋은 성과를 냈다. 2015년 신형 투싼 공동생산 노사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생산 유연성을 높이고 차량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결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 현대자동차 실적.
△노무총괄 부회장에서 물러나
현대차그룹은 2012년 1월18일 윤여철을 노무총괄 부회장에서 물러나게 하고 고문으로 위촉하는 인사를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5년 넘게 노조와 임금과 단체협약 협상을 주도하며 노사관계에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윤여철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뜻밖이었다.

2012년 1월8일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현대차 노조) 소속의 조합원 1명이 분신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윤여철은 정몽구 회장과 직접 만나 사의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성 노조 출범과 조합원 분신 사태 등 일련의 과정에서 노사 관계를 매끄럽게 풀어내지 못한 것과 관련한 문책성 인사로 해석됐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에 숱하게 담화문 작성
윤여철은 노조와 협상하면서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노조가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할 때마다 직접 담화문을 발표하거나 가정통신문을 발송하는 등 노사관계를 대화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시무식에서 노조 간부의 윤여철 폭행사건이 벌어졌던 2007년에는 유독 담화문과 가정통신문 작성 건수가 많았다.

노조가 성과급 지급과 관련한 파업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파업 등으로 끊임없이 파업을 이어가자 숱하게 담화문을 썼다.

윤여철의 담화문을 보면 “파업으로 고객들이 우리차에 등을 돌린다”부터 시작해 “언제까지 정치파업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나” “파업만큼은 자제해 달라” 등으로 내용이 다양하다.

윤여철은 울산 공장장을 맡으며 생산에 힘써야 했는데 노사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 퇴근 후나 시간이 날 때마다 생각을 정리해 글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상무부터 사장까지 초고속 승진
윤여철은 2004~2005년에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윤여철이 현대차에 1979년 입사해 2003년 이사로 승진하기까지 24년이 걸렸다.

이후 2004년 1월에 상무로 진급했으며 같은 해 4월에 전무로, 다시 8개월 뒤에 부사장에, 또다시 9개월 뒤에 사장이 되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노사협상 뿐만 아니라 영업본부장 시절에도 인사노무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이는 등 내부에서 노무관리 전문가로 통하면서 그 역량을 인정받았다.

2005년에는 노조의 의견을 받아들여 국내 기업 최초로 사외 건강증진센터를 설립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IMF 당시 구조조정 직무 수행
윤여철은 1998년 IMF 사태 당시 현대차에서 국내 본부 인사업무를 맡아 구조조정의 임무를 수행했다.

윤여철은 당시를 회상하며 “조직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감행해야 했지만 한 가정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 정리해고 과정이 3차까지 갔을 때에는 적지 않은 고충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2000년에 경기남부 지역본부장이 되어 26개의 지부 가운데 25등이던 경기남부 지부를 1년 만에 전국 2등의 지부로 만드는 쾌거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 비전과 과제
▲ (왼쪽부터) 신수정 현대차정몽구재단 이사장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8년 5월23일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청년 사회적 기업 육성 및 신중년 일자리 창출' 협약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가 광주형 일자리 협약에 반발해 2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어 이에 대처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금속노조 현대차 기아차 지부는 광주형 일자리 관련 특별고용안정위원회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는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20여 년 만에 국내에 완성차공장을 짓는다. 오랜 기간 생산과 노무를 담당해온 윤여철은 광주 완성차공장이 안정적 생산과 노무 체계를 확립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윤여철은 현대차그룹 부회장단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데다 부회장 재직기간도 가장 길다.

노동계의 통상임금 확대 요구가 강해지는 등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새로운 임금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빠르게 오르고 있어 기본급 비중을 확대해 현대차가 안정적으로 최저임금법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2018년 12월 격월로 100%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을 매월 50%로 변경해 최저임금을 맞추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노조는 이미 이를 한 차례 거절했다.

2013년부터 사내하청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고 있지만 불법파견 논란의 불씨가 남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가 노조와 비정규직 특별채용을 놓고 협의를 시작한 것은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도급 비정규직 최병승씨가 2010년 7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이후다.

최씨에 이어 현대차와 기아차 사내하도급 비정규직 1941명은 2010년에 정규직으로 인정해달라며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을 냈다. 직접공정으로 분류된 의장공정에서 일했던 최씨와 달리 1941명은 생산관리, 출고, 포장 등 간접공정에서 일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7년 2월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유지해 현대차와 기아차 비정규직의 손을 들어줬다. 제조업에서 직접공정뿐 아니라 간접공정에 사내하도급 직원을 투입하는 것도 불법파견으로 본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상고하면서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내하도급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게 된 셈이다.  


◆ 평가
▲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1년 4월28일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의 초청강연으로 '내 삶을 이끈 몇 가지 키워드'라는 주제로 얘기하고 있다.
자동차 판매영업 직원 출신으로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으로 노조의 파업 없이 임금과 단체협약 협상을 타결할 때 이를 이끌어낸 노사협상 실무의 주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차 노사가 상생보다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박유기 전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적대적 노사관계 원칙을 만든 장본인은 윤여철 부회장”이라며 “회사가 이런 원칙을 지키는 데 급급하면 노사관계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 윤갑한 전 현대차 사장이 노사협상 실무를 수행했지만 사실상 윤여철이 현대차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2013년 현대차 노조가 강도 높은 파업을 벌였는데 윤여철이 언론과 인터뷰에서 “파업으로 회사 손실이 커지면 당연히 해외생산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발언을 하자 노조는 반발했다. 윤여철이 교섭대상도 아니면서 교섭을 지휘하려고 들면서 교섭체계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노조는 2018년 5월에도 “윤여철 부회장이 최근 회사 교섭팀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1분기 영업이익이 반토막이 난 점을 들어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노조의 하후상박 임금인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며 “그는 매년 교섭마다 등장해 노조의 혼란을 부추기려 한다”고 주장했다.

평소 윗사람이란 아랫사람들의 어려움을 책임져 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신념을 품고 모든 일을 맡는다.

윤여철은 2011년 연세대학교에서 진행한 ‘내 삶을 이끈 몇 가지 키워드’라는 강연에서 “국내 영업부문에 배치돼 중부사업소에서 도배업무를 시작으로 조직에 몸을 담아 보잘것없는 일을 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신념으로 모든 일에 성실히 임했다”며 “1988년에는 마케팅 기획총괄 과장 자리에까지 올랐는데 직원들과 소통하는 방법, 직원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의 중요성 등을 그 때에 다 익혔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후배들에게 주인의식과 적극성, 디테일의 힘, 현재에의 충실성, 자신감 등 다섯 가지를 가질 것을 조언했다. 이 다섯 가지를 지니면 어느 조직에 가더라도 앞길이 밝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최선을 다하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2013년 11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의 초청으로 ‘현대자동차의 성공 요인과 미래 전략’을 주제로 특강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바라는 삶에 관해 설명하며 “마이클 조던이 부상당하지 않는 이유는 앞에 있는 수비수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부딪혔기 때문”이라며 “우리 후배들도 이처럼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애플 신입직원들이 받는 편지를 인용하며 항상 스스로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의미 있는 행동을 하길 바란다고도 당부했다.

현대차의 성공 스토리에 대한 자부심도 많다.

윤여철은 당시 강연에서 “현대차는 1967년 설립된 이후 이제는 고유의 모델과 고유 엔진을 보유한 글로벌 톱5 자동차기업이 됐다”며 “정몽구 회장이 부임한 뒤 품질경영을 강조하며 지난 10년 동안 굉장히 높은 성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내수와 해외의 가격 차별 등 고객들에게서 받는 오해와 관련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여철은 “현대차는 세계 곳곳에 균형 있는 지역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며 “한국과 미국 자동차 가격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자동차의 경우 각 국가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세제가 다르다거나 다양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국가 간 자동차 가격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고 해명했다.

2018년 1월 이형근 전 기아차 부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나면서 현대차그룹 부회장단에서 최고령 부회장이 됐다. 윤여철과 이형근 전 부회장은 둘 다 1952년생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대신해 2017년과 2018년 현대차 시무식을 주재했다.

윤갑한 전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윤여철을 직장생활의 롤모델로 삼았다.

윤 전 사장은 윤여철을 놓고 “모든 일에 도전적 마인드를 지니고 있으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사원들에게 귀감이 되는 분”이라며 “윤 부회장의 도전정신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고등학교 총동창회에 1천만 원을 회비로 납부했다.

◆ 사건사고

△노사 임금협약 교섭 개입 논란
현대차 노조는 2018년 회사와 임금협약 교섭을 놓고 윤여철이 부당하게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차 노조는 2018년 5월18일 소식지를 통해 “윤여철 부회장이 최근 회사 교섭팀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1분기 영업이익이 반토막이 난 점을 들어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노조의 하후상박 임금인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며 “그는 매년 교섭마다 등장해 노조의 혼란을 부추기려 한다”고 비난했다.

노조는 2018년 임금협약 협상에서 ‘하후상박 연대임금 전략’ 펼친다는 방침을 정했는데 현대차 노무를 총괄하고 있는 윤여철이 이런 노조의 핵심 전략을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현대차 노사 교섭을 보면 회사측에서는 울산공장장을 맡고 있는 임원이 노조와 직접 협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윤여철은 노무관리를 총책임하는 위치에 있지만 하언태 현대차 울산공장장 부사장이 협상을 직접 진행한다. 이를 놓고 노조가 윤여철의 부당 개입을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 실습생 사망사고와 현대차 노동자 분신사태 
2011년 12월 기아차의 광주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등학생이 실습 도중에 뇌출혈 증상이 나타나며 사망했다.

2012년 1월에는 현대자동차 울산 엔진공장 노동자가 분신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신모 조합원이 회사측 관리자들의 현장통제에 반발하며 분신했다.

이는 2011년 말부터 불거진 노사관계가 원인으로 분석됐다.

현대차는 조합원의 노동조건과 직결되는 ‘장시간 근로 개선계획’을 작성해 고용노동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단 한 차례의 노사협의도 하지 않았다.

1400명(현대차 900명, 기아차 500명)을 충원한다는 내용이 담긴 근로 개선계획서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다. 또 현대차 노사는 정년퇴직 대상자의 고용을 1년 연장해 주기로 한 단체협약 조항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고교생 뇌출혈 사망사고와 노동자 분신사태에 책임을 지기 위해 윤여철은 노무총괄 부회장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위촉됐다.

그러나 윤여철의 퇴진을 두고 현대차 경영진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관측도 있다. 현대차가 2000년 초반부터 불법적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사실이 인정됐는데도 10년 동안 이 문제를 풀지 않고 외면한 데 이어 노무관리 전문가인 윤여철을 배제했다는 것이다.
▲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8년 4월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재판에서 비자금 증언
윤여철은 현대차 울산공장장 사장을 맡았던 2007년에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회장의 상소심 두 번째 공판에서 비자금 관련 증언을 했다.

윤여철은 2007년 4월1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이재홍 부장판사)에서 열린 정 회장과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의 항소심 속행공판에서 500억 원가량 되는 비자금의 주된 용도는 현장 노동자를 격려하기 위한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윤여철은 현대차측 증인으로 출석해 “노동집약적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생산 담당 직원의 사기를 진작하고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경조사비 같은 경우 영수증 처리를 하기 어려워 비자금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2006년과 2007년의 경영 방식이 달라질 것이 없는데 현재는 어떤 방법으로 노무관리를 하고 있냐”고 묻자 윤여철은 “2006년 검찰 수사 이후로는 비자금을 쓰지 않고 있으며 공식 경비로 처리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주장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검찰이 압박하자 비자금을 받아 사용처를 보고하지도 메모하지도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노조 간부에게서 폭행 당해
윤여철은 2007년 1월3일 시무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던 도중 노조 간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이 폭행으로 윤여철의 안경이 부러졌으며 콧등이 파이는 상처를 입어 울산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현대차가 2006년 말에 목표달성 미달을 이유로 노조에 성과급을 애초 약속했던 150%가 아닌 100%만 지급하기로 한 데 반발해 노조 간부의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현대자동차는 이 폭행사건에 관련된 노조 간부 22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 재산손괴 혐의 등으로 울산 동부경찰서에 고소하고 노조에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도 제기했다.

윤여철은 이 사건과 관련해 “나쁜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며 “원칙대로 모든 일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지법 제1형사단독 최재혁 부장판사는 2007년 7월19일 구속기소된 박유기 전 노조위원장과 안현호 전 수석부위원장에 각각 징역 1년6월과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최 판사는 “피고인들은 우리나라 최대의 노조인 현대차 노조위원장과 노조 핵심간부이지만 노조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불법 쟁의행위를 벌여 회사와 국가신용도를 손상시켰고 최고 경영자까지 폭행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했다”며 “노조 요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봤다.


◆ 경력
▲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오른쪽)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왼쪽)이 2011년 10월25일 ‘현대차-교과부 교육기부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979년 현대차에 입사했다. 판매교육팀과 경기남부지역사업실 등에서 일했다.

1996년 현대차 판매교육팀 부장을 지냈다.

2001년 현대차 경기남부지역사업실 이사대우로 승진했다.

2003년 현대차 영업운영팀 이사에 올랐다.

2004년 1월 상무로 승진해 현대차 운영지원실장을 맡았다.

2004년 4월 전무로 승진해 경영지원본부장을 지냈다.

2004년 12월 부사장으로 승진해 노무관리지원담당을 맡았다.

2005년 9월 사장으로 승진하며 울산공장장 겸 노무총괄담당, 울산아산공장담당을 맡게 됐다.

2008년 노무총괄 겸 울산아산공장담당 부회장이 됐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사단법인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2012년 부회장에서 물러나 노무관리 고문을 맡았다.

2013년 노무총괄 부회장으로 복귀했다.

2013년 울산공장장과 아산공장장에 선임됐다.

2014년부터 국내생산담당 부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 학력

1971년 서울고등학교(23회)를 졸업했다.

1979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 상훈

2010년 사회복지의 날을 기념해 보건복지부가 수여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 기타

2018년 3분기 말 기준으로 현대자동차 주식 500주를 보유하고 있다.

1973년 공군에 자원입대해 만기 전역했다.


◆ 어록


“지금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거의 '식물 단체' 상태다. 이런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부·노동계와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 합리적 인물이 경총 회장이 돼야 한다.” (2018/02/22, 경총 회장과 상임 부회장이 동반 사임한 ‘경총사태’를 놓고)

“올해 다시 한번 현대차 정신을 적극 발현하는 한편 창의적이고 혁신적 자세로 업무를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현대차가 ‘가장 사랑받는 자동차회사’를 넘어 ‘가장 존경받는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초석을 다져야 한다.” (2018/01/02, 현대자동차 시무식에서) 

“임금협상 및 단체협약은 회사실적에 따라 가는 게 맞다. 회사가 잘되면 잘 되는대로 잘 주고 안되면 안되는 대로 깎는 것이 당연하다.” (2017/05/29,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2012년부터 올해까지 사내하도급 근로자 6000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5700명 완료했고, 300명은 계획대로 연내 채용할 계획이다.” (2017/05/29,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대기아차는 협력사 채용박람회를 통해 우수인재를 채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협력사들의 인재확보를 위해 6년 동안 협력사 채용창구 역할을 담당해왔다. 지난해부터 지자체와 협조해 채용박람회에 지역 강소기업도 참여하도록 했다.” (2017/05/29,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현대기아차가 청년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시행하는 ‘고용디딤돌 절차’의 홍보관도 박람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협력사와 구직자를 상시 지원하기 위해 협력사 인재채용과 구직 전용 인터넷사이트를 구축해 4년 동안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2017/05/29,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쉬운 데가 어딨나. 다 어렵다.” (2017/02/28,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국경영자총협회 정기총회에서 노사관계 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일자리인 만큼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기 위해서 임금피크제 확대를 필히 해야 한다고 노조를 설득하고 있다. 쉽지 않겠지만 청년들이 희망없는 사회는 그 자체가 희망이 없다.” (2016/03/23, 현대기아차 채용박람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협력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글로벌 역량을 갖춘 우수인재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자동차산업 전반에 걸친 고용창출 확대에 기여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2016/03/23, 현대기아차 채용박람회에서)

“임금체계 개선에 대해 노사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통상임금 법원판결에서 승소해 (통상임금 확대는) 임금협상 대상이 아니고 이를 협상 자리에서도 충분히 설명하겠다.” (2015/03/25, 현대기아차 채용박람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대기아차는 협력사의 성장과 발전이 곧 모두의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지난 2012년부터 협력사 채용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자동차산업 전반에 걸친 고용창출 확대에 기여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2015/03/25, 현대기아차 채용박람회에서)

“지난해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면 고정성이 부족하면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기로 돼 있다. 우리의 정기상여금이 딱 그렇다. 법대로 하겠다.” (2014/03/11, 상여금의 통상임금 인정 여부를 묻는 질문에)

“파업으로 회사 손실이 커지면 당연히 해외 공장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장기 파업이나 전면 파업은 노조 스스로 밥그릇을 치워버리는 것이다.” (2013/08/20,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고령화 대책으로 정년을 무조건 연장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고령화 문제는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생산성에 큰 차이가 없는 업종 등 다른 부문에서 풀어야 한다. 자동차 공장에선 연령층에 따라 생산성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2013/08/20,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나는 이미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이다. 지금 죽어도 호상이다. 죽는다는 각오로 대처할 각오가 돼 있다. 파업에 밀려 노조 요구를 수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이번에 또 흐지부지 넘어가면 노조의 잘못된 습관을 영영 고치기 힘들어지는 만큼 단호하게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 (2013/08/20,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노조 파업은 국내 생산 물량을 해외로 내쫓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해외공장에 비해 생산성도 낮은 노조가 파업을 통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2013/08/13, 한국경제와 전화 인터뷰에서)

“노조도 계파 간 선명성 경쟁에 매몰될 게 아니라 국민 여론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지금도 업계 최고 연봉을 받는 노조에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를 어떤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 (2013/08/13, 한국경제와 전화 인터뷰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는 근로자의 건강을 지키면서 임금을 보전할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도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노사가 윈윈(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다.” (2011/12, 새벽 근무 없이 주간 근무로만 2개 조를 사업장에 투입해 운영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과 관련해서)

“2차 협력사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품질과 기술 분야에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 또 부품산업진흥재단을 통해 뿌리산업과의 상생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 (2010/07/15, 2, 3차 협력사 1200곳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며)

“언제까지 우리만 정치파업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나. 이번 정치파업의 목적인 ‘쇠고기 재협상’, ‘공공서비스 사유화 반대’, ‘대운하 반대’, ‘기름값 물가폭등 저지’ 중에서 회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노조가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동안의 정치파업이 남긴 것은 엄청난 생산손실과 임금손실, 대외 이미지 하락뿐이다. 또다시 그 아픔의 길로 직원들을 내모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동이다.” (2008/06/13, 현대차 노조의 민주노총 총파업 동참 결정 여부 찬반 투표를 놓고 담화문을 발표하며)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는 금속노조의 지침만을 따르기 위해 또다시 파국의 길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때다. 지금이라도 파국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고 국민들과 고객들에게 과거와는 다른 현대자동차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변화된 모습이야 말로 더 이상의 고객이탈과 국민들의 실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2007/06/25, 현대차 노조의 금속노조 파업 동참 결정을 놓고 담화문을 발표하며)

“노조는 고객들의 바람과 묵묵히 현장에서 자신의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대다수 직원들의 임금손실은 고려 않고 또다시 명백한 불법파업을 강행하고 있다. 더 이상의 혼란은 노사 모두의 피해만 키울 뿐이고 고객들의 마음이 돌아선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혼란을 수습하고 고객의 신뢰를 되찾자.” (2007/01/15, 노조의 부분파업을 놓고 담화문을 발표하며)

“성과는 보상인데, 성과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성과급을 지급하나. 성과급을 사측이 안준게 아니라 노조측이 제대로 못해서 성과급을 못 받은 것이다.” (2007/01/03, 머니투데이와 전화 인터뷰에서)

“자동차산업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아우르는 다양한 사업영역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종합 비즈니스다. 입사지원자들은 어느 영역의 전문가로 성장해 갈 것인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대자동차와 함께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비즈니스맨으로 또는 자동차 미래기술을 선도하는 엔지니어로, 글로벌 기업을 경영하는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하려는 우수 인재가 필요하다.” (2004/09/02, 현대차 미래 인재상을 제시하며)

“소중하고 정겨운 일터가 왜 해마다 정치파업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안타깝다.” (2004/06/28, 노조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반대 파업을 놓고 담화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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