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단식농성
이정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여 선거제 개편 논의를 이끌어 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로 지지율에 비해 의석이 많지 않은 정의당 등 군소정당에 유리하다.
이정미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2018년 12월7일부터 15일까지 선거제 개편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을 벌였다.
당초 정의당은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과 함께 예산안 처리와 선거제 개편을 연계해 처리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나머지 정당을 배제한 채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에 반발해 이정미는 손학규 대표와 함께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러자 여야5당 원내대표는 12월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2019년 1월 임시국회에서 선거제도 관련 법을 처리하기로 뜻을 모았다.
정의당 소속의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은 12월 안에 특위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정미는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에 소극적 태도를 나타내자 12월2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단식이 해제되자마자 다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합의를 지킬 것을 요구했다.
|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018년 12월12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선거제 개혁 합의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문재인 정부에 협력과 비판
이정미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협력을 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체로 대북 평화 프로세스에는 협조하면서 고용노동정책을 놓고는 비판을 하는 편이다.
이정미는 2018년 12월24일 상무위원회에서 주휴수당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이 사용자 의견을 일방적으로 듣고 (개정안을) 수정하려는 것은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넘어선 최저임금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같은 날 YTN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던 그 취지가 무색해지는 여러 가지 노동개혁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 문제와 관련해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의당이 목소리를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정미는 “정의당은 촛불정부인 이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는 깊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며 “촛불시민들의 요구들이 제대로 해결 안 되고 머뭇거릴 때는 강력하게 비판하고 제대로 잘 갈 때는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일관된 태도가 바뀐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 이정미는 문재인 정부 초기에 인사 논란, 사드 배치 등을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에는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이정미는 2018년 9월 18~20일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방문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함께 갔다. 2005년 민주노동당과 조선사회민주당 정당 사이 교류로 방북한 지 13년 만이었다.
이정미는 방북 후 10월1일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남북 의회의 판문점 선언 동시 비준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회 연설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이정미는 6·13지방선거에서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성과를 냈다.
이정미는 2017년 9월부터 지방선거 기획단을 출범하며 지방선거를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촛불 정국 이후 정의당의 지지율이 높아진 만큼 적지 않은 기대감이 나왔다.
선거결과 정의당은 광역의원 11명, 기초의원 26명이 당선됐다. 이 가운데 비례대표는 광역의원 10명, 기초의원 9명이었다. 광역 비례대표는 10% 이상 지지율을 얻은 곳도 많으며 20%대에 도달한 곳도 나왔다. 광역 비례 합산 득표율은 8.97%를 나타냈다.
하지만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은 단 한 명의 후보도 당선되지 않으며 진보정당의 한계를 보였다. 정의당 후보는 경합지역조차 없이 모두 크게 밀려났고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원외 정당인 녹색당 후보에게도 뒤졌다.
다만 정의당은 지방선거에서 선전한 점을 바탕으로 지방선거 이후 지지율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렸다. 6월 말 지지율이 10.1%로 첫 두 자릿수에 올랐으며 8월 초에는 14%까지 올랐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한국당을 제치고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정의당 대표 선출
이정미는 2017년 7월11일 정의당 대표로 선출됐다. 전국동시 당직선거에서 56.05%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해 박원석 후보(43.95%)를 제쳤다.
그는 취임연설에서 “당원들과 주권자들을 향해 제 몸을 더 낮추겠다. 신발끈을 더 단단히 조이겠다. 정의당의 더 큰 도약을 위해 사력을 다하겠다”며 “2018년 지방선거 승리토대 위에 2020년 제1야당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를 ‘촛불정부’로 규정하며 "촛불혁명을 함께 만들어 이 정부의 성공에 사명이 있는 만큼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잘못된 점은 제대로 비판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 2017년 7월 13일 정의당사에서 열린 당대표 이취임식에서 이정미 신임대표와 심상정 전 대표가 함께 하트를 만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
△소수자의 대변인
이정미는 여성, 청년,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해왔다.
이정미는 2018년 9월7일 국회 잔디마당에서 열린 노회찬 전 의원의 추모문화제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더 따뜻하게 보듬는 진보 정치가 되어달라는 뜻, 더 크고 강한 정당이 되어달라는 그 뜻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2017년 6월15일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질 때부터 여성, 청년 등 사회·경제적 약자의 삶을 바꾸는 정당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한국정치의 주류를 교체하겠다”며 “여성, 청년, 비정규직의 노동을 대변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당 안의 정당, ‘청년정의당’을 건설하겠다. 청년정치에 더이상 ‘나중에’는 없다”며 “당으로부터 준독립된 청년정의당에 과감히 자리와 재정을 내주겠다”고도 제안했다.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의 권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몇 안되는 국회의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정미는 2017년 7월15일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국가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말했다. 퀴어문화축제는 국내에 살고 있는 내·외국인 성소수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행사다.
그는 “정권이 바뀌었다”며 “태어날 때부터 성 정체성 때문에 범죄자로 낙인찍히고 범죄국민으로 낙인찍히는 이런 사회를 극복하는 것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첫발”이라고 주장했다.
△심상정 대선캠프 전략기획본부장
이정미는 2017년 19대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전략기획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이정미 심 후보가 사용할 메시지, 여론조사 분석 및 타깃 설정, 유세동선 등을 짰다.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소신과 일관성 있는 대통령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힘썼다.
이정미는 정치공학보다 정책과 비전을 내세워 진보지지층을 공략했다. 민주당 경선이 끝난 뒤에는 비슷한 정책성향을 보인 이재명 후보의 지지층을 흡수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정미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문재인 후보의 2중대가 아니다”라며 대선 완주를 향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심 후보는 5월9일 대선 결과 6.17%를 득표해 5위에 올랐다. 4위인 유승민 후보(6.76%)와는 19만여 표 차이였다. 광주, 인천, 울산, 대전, 세종, 경기, 충남, 충북, 전남, 전북, 제주 등 지역에서는 유 후보를 제치고 4위를 했다.
심 후보가 역대 진보정당 후보 가운데 최고 득표율을 얻는 데 이정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들었다.
|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017년 7월2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을 방문해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과 악수하고 있다. |
△3전4기로 국회 진출과 의정활동
이정미는 2번의 낙선과 1번의 중도 사퇴 끝에 20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하지만 비례 순번 15번으로 낮은 순서에 배정받아 낙선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13.3%를 득표해 8명의 비례 당선자를 냈다.
2008년 18대 총선 때는 서울 영등포갑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했으나 4.17%의 저조한 득표율로 전여옥 한나라당 후보(43.75%), 김영주 통합민주당 후보(42.53%)는 물론 한경남 친박연대 후보(8.80%)에게도 뒤진 4위에 그쳤다.
2014년 7월 열린 19대 재보궐 선거 때 수원병 지역구 출마했으나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단일화를 위해 중도 사퇴했다. 하지만 손학규 후보는 2위로 낙선하며 단일화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정의당 비례대표 1번을 받아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정의당은 7.23%를 득표해 4명의 비례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정미는 20대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했다.
이랜드그룹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 애슐리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강요한 열정페이 문제, 장시간 저임금 문제로 홍역을 앓던 게임업계 노동환경, 대기업 SPC 계열 제빵 브랜드 파리바게뜨의 불법파견 및 임금꺾기 등을 폭로하며 노동환경 개선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이정미는 2018년 후반기 국회 원구성 과정에서 기존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배제돼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로 배치됐다.
이정미는 “애초에 정의당을 더 이상 법안소위에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의도”라며 “이번 과정의 불합리성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다시 생각해 달라”고 말했으나 소위 구성은 변경되지 않았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활동
대학생 시절 학교 선배에게 들은 전태일 노동자의 생애는 이정미를 노동운동가의 길로 인도했다.
1988년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영원통신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사용자 측과 단체교섭 체결과정에서 해고된 후 전면적으로 앞에 나서 운동을 이끌기보다는 노조결성을 위한 교육과 지원에 힘쓰는 방식으로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주로 민족해방(NL)계열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1995년 한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에서 조직국장을 맡았고 1998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에 몸담았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하자 가입해서 최고위원, 대변인 등으로 활동했다. 2012년 창당한 통합진보당에도 합류해 대변인과 최고위원 등을 맡았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로 분열하자 천호선 최고위원과 함께 탈당했다. 이어 탈당한 노회찬 심상정 의원 등과 함께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을 창당했다. 이정미는 1기 최고위원과 대변인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