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 외부감사 행동강령’ 마련
한국공인회계사회는 2018년 10월 ‘공인회계사 외부감사 행동강령’을 제정했다.
최중경은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로 감사공영제 등과 함께 공인회계사 외부감사 행동강령 제정을 제시했다.
공인회계사 외부감사 행동강령은 공인회계사 업계의 자정 노력을 보여 대외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공인회계사가 외부감사 업무를 수행할 때 지켜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은 △외부감사의 공정성 및 독립성 확보를 위한 일체의 청탁·접대행위 금지 △과도한 감사보수, 감사자료 요구 등 지정감사제 도입에 따라 예상되는 부당행위 금지 △표준감사시간 준수 및 엄격한 감사 절차 수행 등 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한 필요 조치 등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행동강령 위반행위의 제보 접수를 위한 신고센터도 운영하기로 했다.
| ▲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2018년 11월31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회 회계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이상화 회계투명성 대사,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중경 회장. |
△공인회계사회 회장 연임 성공
최중경은 2018년 6월20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제64회 한국공인회계사회 정기총회를 통해 제44대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단독 후보로 출마해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칙에 따라 별도의 투표 절차 없이 연임에 성공한 것이다. 연임 임기는 2020년 정기총회까지다.
최중경은 연임에 성공한 뒤 “두 번째 임기를 맞아 새로운 회계사업 설계 구상, 감사공영제 추진, 외부감사 행동강령 제정 및 운영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인회계사회를 4차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겠다는 뜻도 나타냈다. 회계사들이 회계와 세무뿐 아니라 산업과 경제 전문가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기로 했다.
△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활동
최중경은 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서 회계업계 자정에 힘쓰고 있다.
최중경은 2016년 6월 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당선되고 두 달 뒤 회장 직속으로 ‘회계 바로 세우기 특별위원회’를 세웠다.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선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최중경은 “부실감사와 분식회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올바른 회계제도 정립과 회계사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며 “특별위원회 활동으로 그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정감사제 도입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 제도 도입에 힘을 보탰다.
지정감사제란 상장기업이 회계감사를 받을 때 금융위원회 등에서 회계법인을 정해주는 제도다. 기존에는 감사를 받아야 할 기업이 회계법인을 수임해 감사를 받는 자유수임 구조였다.
최중경은 “회사가 감사할 회계법인을 입찰경쟁으로 선발하는 구조 아래 양질의 감사가 이뤄질 수 없다”며 “자유수임제 때문에 회계감사가 본래의 취지를 잃고 기업에 점점 예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정감사제는 2018년 11월1일부터 시행되는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에 따라 모든 상장법인 및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비상장사를 대상으로 9년 가운데 3년 주기로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도입됐다.
공인회계사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2017년 12월12일 공인회계사의 사회적 신뢰를 높이고 사회공헌활동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사회공헌위원회’를 발족했다.
최중경은 “공인회계사가 전문가로서 사회적 신뢰를 얻으려면 사회적 약자 지원 등 여러 분야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이번 위원회 출범으로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공헌활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압도적 지지로 공인회계사회 회장 당선
최중경은 2016년 6월22일 치러진 공인회계사협회 회장 투표에서 전체 4911표 가운데 3488표를 얻어 71%의 지지로 당선됐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민만기 공인회계사도 후보로 나섰다.
최중경의 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 출마와 관련해 여러 논란이 있었다. 최중경의 1년도 안 되는 회계사 경력과 효성, KT캐피탈(현재 애큐온캐피탈)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는 점 등이 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서 부적절하다는 말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중경은 71%에 이르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이 됐는데 이는 단체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당시 회계사업계 사정과 관련이 있다.
공인회계사회 회장은 비상임에 임기 2년의 명예직이다. 따라서 치열한 선거가 치러지는 자리는 아니었다. 직전 회장 선거에서는 후보자가 없어 강성원 전 회장이 연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회계부정 사태로 회계사 사이에 위기감이 돌면서 사정이 변했다. 위기의식과 함께 회계사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실제로 2016년 4월13일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회계사 출신 국회의원이 늘어났다.
공인회계사회가 정치적으로 힘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회장을 원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한국세무사회의 회장으로 백운찬 전 관세청장이 당선된 점도 최중경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백 회장도 관료 출신으로 세무사로서 경력이 거의 없어 최중경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백 회장은 세무사회 회장을 맡고 관료 출신의 영향력으로 세무사의 지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계사 사이에서도 최중경 같은 전직 관료 출신 회장이 필요하다는 시선이 생겼다. 최중경도 장관에서 물러난 후 점차 주목받고 있는 직능단체 대표 자리가 앞으로 개인적 행보와 관련해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중경은 선거공약으로 감사보수 최저한도 설정 등을 내세웠다.
△지식경제부 장관 시절
최중경은 2011년 1월27일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에 임명됐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탈세와 부동산 투기, 과거의 환율 정책실패 등으로 당시 여당 의원들에게도 비판을 받았다.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이 무산됐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다.
그러나 2011년 11월15일 사상 유례가 없었던 대규모 순환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이른바 '9·15 정전사태'로 불리는 이 사고의 여파로 최중경은 지식경제부 장관에 임명된 지 8개월만인 2011년 9월27일 사의를 표하고 2011년 11월16일 장관에서 물러났다.
| ▲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2011년 1월27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
△세 차례에 걸친 악연, 최중경과 외환
최중경은 적극적 외환 개입정책의 신봉자다. 경제관료로서 책임있는 자리에 있을 때마다 강력한 외환 개입정책을 폈다. 그의 대표적 별명인 ‘최틀러’도 2004년 외환개입 때 얻은 별명이다.
최중경의 외환과 관련된 악연은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당시 최중경은 재정경제원(현재 기획재정부) 금융협력과장이었다.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 강만수 재정경제원 차관 등과 함께 외환정책의 실무자였다.
매일경제의 1997년 11월8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최중경은 “현재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금융시장 관계자들과 일부 언론의 호도로 국제금융시장에서 국내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경제는 당시 기사에서 최중경이 “‘IMF의 자금지원을 전혀 검토한 적이 없으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최중경의 발언과 달리 1997년 11월21일 임창열 당시 부총리는 IMF에 구제금융 200억 달러를 공식 요청했고 정부는 1997년 12월3일 IMF와 구제금융 양해각서를 체결하기에 이른다.
최중경과 외환의 두 번째 악연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있던 시절의 외환 개입이다.
최중경은 환율이 떨어지면 국내 수출기업의 수출경쟁력이 약해진다며 역외차액선물환시장(NDF)에 개입했다.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며 한동안 환율을 달러당 1140원 이하로 사수해 당시 이 환율을 ‘최중경 라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당시 저돌적 환율 방어에 외환시장은 최중경을 그의 이름과 히틀러를 합친 ‘최틀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후 최틀러는 최중경의 대표적 별명이 됐다.
그러나 무리한 환율 개입으로 거의 1조8천억 원에 이르는 국고손실을 낸 것이 그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최중경은 국고손실에 책임지고 물러나 2005년 8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상임이사로 사실상 좌천돼 미국으로 출국해 한동안 머무르게 됐다.
최중경은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다시 기획재정부에서 활동할 기회를 잡았다. 2007년 12월3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임명됐다. 이명박 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범한 2008년 2월에는 기획재정부 제1차관으로 임명됐다.
같은 시기에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은 강만수 전 장관과 함께 두 사람의 성을 딴 ‘최-강 라인’으로 불리며 ‘747성장’으로 대변되는 MB노믹스를 이끌 핵심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무리한 고환율정책이 다시 최중경의 발목을 잡았다. 고환율정책 때문에 국내 물가가 크게 올랐다. 이른바 '키코 사태'로 많은 수출기업이 환차손을 보게 되자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이 시기에 언론은 강 전 장관과 최중경에게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키코(KIKO)란 ‘Knock-In Knock-Out’의 약자로 환율변동에 따른 환차손 위험을 줄이기 위해 수출기업과 은행이 맺는 계약의 일종이다. 약정금액과 약정환율, 환율 상한가와 하한가를 정해 놓고 환율 변동에 따라 양 당사자에게 각각 권리가 부여된다. 키코에 따르면 환율이 약정상한을 넘으면 수출기업은 은행에 손해를 보고 외환을 팔게 된다.
결국 최중경은 4개월을 채우지 못한 채 정책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 이후에도 이명박 정권에서 주필리핀 대사와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지내다 지식경제부 장관까지 지냈다.
2018년 들어 키코 사태 피해기업들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청산과 관련해 금융적폐의 하나로 키코를 꼽고 있다. 당시 은행과 맺었던 키코가 사실상 사기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