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 레시피] 아버지의 진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맨 오브 마스크'

▲ 6년 동안 키운 아이가 출생 직후 병원에서 바뀐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병원에서는 당연히 ‘교환’할 것을 제안한다. 그런데 아이를 교환할 수 있는 걸까? 사진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예고편의 한 장면의 모습. <가가 커뮤니케이션스 공식 유튜브 채널 화면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아버지란 말에서 떠올리는 이미지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TV 드라마 속 아버지들은 과묵하고 엄하거나 고집스러웠다. 21세기 아버지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확고한 아버지상이 있을 때보다 어쩌면 ‘아버지 되기’가 더 힘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아이는 엄마와 애착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특별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인간이 넘어야 할 발달의 단계를 개념화했다.

‘집안의 가장이 아버지이고 아버지는 법과 질서의 상징이므로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규율에 따라야겠다’라는 가장 일차적인 사회화 과정이다. 백 년 전 이론이므로 시대적인 괴리가 느껴질 수 있지만 여전히 유효한 면은 있다. 

‘아버지 되기’가 안고 있는 고민을 잘 보여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가족과 관련한 많은 생각을 품고 있는 영화다. 

6년 동안 키운 아이가 출생 직후 병원에서 바뀐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병원에서는 당연히 ‘교환’할 것을 제안한다. 그런데 아이를 교환할 수 있는 걸까? 

두 집안은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다. 노노미야 료타는 대기업에서 건축기사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인물로 도심의 고층 아파트에서 세련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료타는 아들 케이타가 엄마를 닮아서 착하고 따뜻하지만, 끈기나 승부욕은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사이키 유다이는 시골에서 전파상을 운영하면서 세 아이와 치매 걸린 장인까지 모시고 소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좁은 집에서 가족들이 복닥거리면서 함께 웃고 휴일이면 동네 천변에 나가 연을 날리며 뛰어논다. 

장남 류헤이는 활달하고 영민한 아이다. 노노미야와 사이키는 우선은 주말마다 아이를 바꿔서 지내보기로 한다. 아이들에게는 놀이, 교류 정도의 행사라고 일러주고 첫 번째 교환이 이루어진다. 두 집안의 확연히 다른 분위기는 이들의 첫 번째 저녁 식사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사이키 집안에서는 세 아이의 시끌벅적한 목욕이 끝나고 저녁상이 차려지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엄마의 요리를 기다린다. 드디어 “만두다”라는 엄마의 반가운 음성이 들리고 상 가운데 커다란 만두 접시가 놓인다. 가족들이 서둘러 젓가락질을 하는 와중에 혼자 자란 케이타는 이런 풍경이 낯설다. 

다소 소란스러운 사이키 집안 분위기와는 달리 차분한 노노미야 집안의 저녁 식탁에는 스키야키 요리가 준비된다. 류헤이는 잘 구워진 고급 한우를 자기 접시 위에 먼저 놓아주는 게 어색하다. 세 형제가 경쟁하듯 먹던 식사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아버지가 돼가는 인물은 노노미야 료타다. 

사회적인 성취를 중시해서 아이가 6살이 되도록 일요일에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고 살아온 료타는 사실 그 자신도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무뚝뚝한 아버지 때문에 상처를 받고 아버지의 재혼으로 골은 더 깊어졌다. 

료타는 아이가 바뀐 사건을 통해 크게 두 가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을 닮지 않은 케이타에게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케이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과 새어머니를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예술가 영화 ‘맨 오브 마스크’(알베르 뒤퐁텔, 2017)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어긋난 슬픈 관계를 잘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 수상작인 피에르 르메트르의 소설 ‘오르브와르’가 원작으로 미술, 음악, 의상 등 영상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에두아르는 엄격한 은행가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늘 아버지를 두려워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에두아르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어머니가 사망하자 더더욱 아버지와 멀어진다.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에두아르는 턱이 날아가는 큰 부상을 입는다. 절대 집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에두아르는 전쟁 동료 알베르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사망한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된다. 

처참한 외모를 감추기 위해 늘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에두아르는 전쟁 기념 조각상 사업 사기 행각을 벌여 큰돈을 벌지만 향락에 빠져 자신을 스스로 학대한다. 마침내 에두아르는 아버지와 조우하고 아버지의 진심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맨 오브 마스크’ 둘 다 진심과 관련해 얘기한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진심도 세상 다른 것처럼 알아야 할 때를 놓치면 너무 늦어버릴 수 있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