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원/달러 환율이 1400선을 넘어 1440선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단단한 미국 경제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감 후퇴, 유가 불안 등에 따라 만만치 않은 상승 압력이 남아있다는 것인데 외환당국은 실질적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며 환율 변동성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당국 원/달러 환율 '1400원 사수' 안간힘, 시장은 추가 상승 압력 경계령

▲ 원/달러 환율이 외환당국의 개입에도 추가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17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7.70원 하락한 1386.80원으로 장을 마쳤다. 전날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1400원까지 올랐던 만큼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평가된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고금리 장기화 전망, 중동지역 긴장감 고조에 따른 유가상승 영향에 연일 연고점을 새로 쓰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환율 흐름을 지켜보던 외환당국은 전날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00원까지 오르자 구두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구두개입에도 추후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외환당국이 실질적 개입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6일(현지시각) 주요 20개국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에 CNBC와 인터뷰에서 “최근의 환율 변동성은 다소 과도하다”며 “필요하면 시장 안정화 조치를 할 여력과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자금이 외환시장이 아닌 한국은행을 통해 달러를 조달하는 통화스와프 거래 등이 한국은행이 현재 시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실질적 개입 방안으로 꼽힌다.

외환당국은 2022년 9월에도 환율 안정화를 위해 구두개입했으나 며칠 뒤 1400원을 넘기자 실질적 개입에 나선 적이 있다. 당시 한국은행은 2022년 10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통해 환율 변동성에 대응했다.

시장에서는 이번에도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위로 올라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우선 단단한 미국 경제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미루고 있어 달러화 강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전날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크게 높여 잡았다. 올해 초에는 2023년보다 낮은 2.1%로 전망했는데 3개월 만에 0.6%포인트 상향한 것이다.

지난달까지 금리 인하를 확신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언급했던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도 연내 2%대 물가 진입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냈다.

16일(현지시각) 파월 의장은 “최근 경제 지표는 2% 물가 달성에 대한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그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전면전으로 확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예측되지만 중동지역에서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 역시 유가를 자극해 달러 강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매년 4월 발생하는 배당에 따른 외국인의 역송금 수요도 환율 상승 부담을 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외국인은 지난해 4분기부터 국내 코스피 종목을 대량으로 담기 시작해 배당에 따른 역송금 수요는 예년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원/달러 환율 상단을 1440원대까지 열어뒀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금리 상승 및 연준 인하 기대 조정으로 인해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된 상황이다”며 “이를 반영해 올해 2분기 원/달러 환율 상단을 1420원까지 상향 조정한다”고 말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이 여전히 높은 점을 고려한 1차 상단은 1400원 수준이다"며 "중동 갈등 전개 상황에 따라 확전으로 연결되면 2차 상단으로 1440원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당국 원/달러 환율 '1400원 사수' 안간힘, 시장은 추가 상승 압력 경계령

▲ 증권가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440원대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합뉴스>


다만 과거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겼던 시기들과 달리 신용위험이 불거진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환율이 크게 오를 만한 위기는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 지연, 중동 문제 등의 리스크는 있다”면서도 “지금은 신용위험이 위기를 촉발한 것이 아닌 만큼 환율이 크게 치고 올라갈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1400원이라는 심리적 저항도 있고 정부도 구두개입이나 실질적 개입을 통한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있어 단기적으로는 숨고르기 양상을 보일 것”이라며 “1300원대 후반에서 1400원 초반 사이 등락을 예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달러 환율 1400원은 국내 외환시장에서 ‘빅 피겨(big figure)’라고 불린다. 그만큼 보기 힘든 숫자라는 뜻이다. 

전날을 제외하고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미국 연준의 긴축과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 신청(일명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신용위기 등 역대 3번뿐이다. 조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