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 부과 어렵다, 물가 상승과 무역보복 리스크에 직면

▲ 2023년 10월31일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가 중국 베이징의 한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이 BYD를 비롯한 중국 전기차 제조사의 ‘덤핑’과 관련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무역장벽을 높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물가 상승과 경제상황 악화로 유럽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낮아진 데다 중국 정부가 유럽 자동차 기업을 상대로 보복조치에 나선다면 큰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5일 블룸버그는 논평을 내고 “중국과 전기차 무역전쟁을 시작하는 일은 유럽연합에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말부터 중국 정부가 유럽으로 수출되는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해 유럽연합 규정 및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자국 전기차 제조사에 소득세 감면 및 면제, 국유은행 대출 우대, 수출입세 환급 등 방식으로 사실상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는 의혹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만약 중국 기업이 정부 보조금에 힘입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유럽연합 측은 이에 따른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유럽연합이 중국의 전기차 저가 공세로 현지 기업들에 미칠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세 인상을 추진할 수 있는 전망이 꾸준히 나왔다.

미국 정부도 BYD 등 중국 기업이 낮은 가격을 앞세워 전기차 시장 진출을 확대할 가능성을 고려해 관세 인상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 내부에서 중국과 무역 관계에 미국과 다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여론도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 등 주요 자동차 기업들이 적극 나서 중국산 전기차에 오히려 관세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마저 내놓고 있다.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도 3월21일 열린 연례 콘퍼런스를 통해 “중국산 전기차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유럽연합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자동차 업체들도 중국산 차량 수입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유럽에서 중국 전기차에 높은 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반대하는 이유로는 우선 물가 상승 가능성이 꼽혔다.

낮은 가격에 판매되는 중국산 차량 수입을 막는다면 구매력이 낮아진 유럽 내 소비자들로부터 반발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현재 탄소중립 목표를 추진하며 전기차 비중을 단기간에 크게 높여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 수입이 줄어들면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려워진다.
 
유럽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 부과 어렵다, 물가 상승과 무역보복 리스크에 직면

▲ 메르세데스-벤츠가 중국 전기차 1위 기업 BYD와 합작해 설립한 브랜드 '덴자'의 차량들이 2023년 11월3일 베이징의 한 쇼핑몰에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유럽의 관세 인상에 맞춰 보복적 성격을 띠는 무역정책을 시행할 가능성도 고율 관세 부과가 쉽지 않은 이유로 제시됐다.

폴크스바겐과 BMW 등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체 판매량의 약 3분의1을 중국에서 올리는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중국이 무역보복 조치에 나서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2015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사태 당시 현대차그룹이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크게 잃은 사례를 예로 들었다.

당시 한국 정부가 중국의 반대에도 사드 미사일을 배치하자 중국 정부는 자동차와 전자제품, 유통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한국을 압박하며 자국민의 소비 자제를 촉구하는 '한한령'을 앞세웠다.

현대차그룹 2014년 판매량 기준으로 중국에서 2위에 올라 있었는데 사드 사태 이후 점유율이 급감하며 2023년 기준으로 20위에 그쳤다.

블룸버그는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 인상은 큰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고 전했다. 유럽 자동차 기업들이 현대차그룹과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고 언급한 셈이다.

중국 시진핑 정부는 미국의 대중 무역제재 수위가 높아질수록 유럽과 협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입장에서도 유럽은 중요한 수출시장에 해당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차량 가격의 27.5%를 관세로 부과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현재 중국산 차량에 10%의 수입관세를 매기는 데 그친다.

만약 유럽이 내부 여론과 무역보복 가능성을 고려해 중국산 전기차의 시장 진입을 허용한다면 이는 BYD를 비롯한 수출 상위 기업들의 몸집을 더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유럽 시장에 진출을 본격화한다면 성장성이 큰 유럽 전기차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 등 제조사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