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실적 잔치' 식음료업계, 이젠 투자자 위한 'IR자료'라도 챙길 때

▲ 식음료업계가 지난해 대부분 좋은 실적을 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식음료업계의 지난해 성적표가 대부분 공개됐다.

애초 고물가로 고금리 등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쉽지 않은 경영환경이라는 말들이 나왔지만 이런 목소리가 무색할 만큼 실적이 좋았다.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기업이 수두룩하며 연간 매출 3조 원가량을 낸 이른바 ‘3조 클럽’ 회사들도 우후죽순 나왔다. 

외형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수익성도 대부분 개선됐다.

원부자재 가격이 올라 불가피하게 가격을 인상한다고 했었는데 매출의 오름 폭보다 영업이익의 상승 폭이 높은 회사가 눈에 띄게 많았다.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한 것이 아닌가는 씁쓸함이 들 정도로.

사실 돈을 버는 것이 기업의 주된 책무인 만큼 좋은 실적을 두고 지적하고픈 생각은 없다. 다만 늘어난 실적을 살펴보면서 들었던 아쉬운 점 한 가지는 꼭 짚고 싶다.

일반적으로 매출이 400억~1500억 원이상이거나 자산규모가 5천억 원 이상 10조 원 미만인 경우 중견기업에 속한다.

회사 매출이 조 단위가 넘어가면 능력 있는 중견기업으로 평가받는다. 기업을 상대로 하는 회사가 아닌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회사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물며 매출 3조 원 이상의 회사라면 시장에서는 이미 두루 인정받는 기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여러 식음료업계가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자료의 수준을 보면 이들이 과연 시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기업이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많은 상장사들은 매 분기 실적을 발표할 때마다 IR자료를 내놓는다. IR자료란 ‘투자자 관계’를 뜻하는 영단어 ‘Investor Relations’의 약자를 딴 말로 투자자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업 활동을 소개하는 자료다.

IR자료가 중요한 이유는 이 자료가 투자자들에게 일종의 기업 안내서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적이 왜 좋았는지 혹은 나빴는지, 현재 영업환경은 어떠한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보고 있는지 등 기업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보들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평소 기업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투자자들에게는 분기에 한 번씩 나오는 이 자료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많은 기업들이 의무도 아닌 IR자료를 공들어 내놓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상장된 회사로서 투자자들에게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식음료기업들을 살펴보면 이런 최소한의 도리를 챙기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라면업계만 보더라도 그렇다.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 등 주요3사를 보면 농심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IR자료를 내놓지 않는다. 오뚜기는 한 때 ‘갓뚜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지배구조 모범 기업으로 꼽히기도 했는데 투자자들을 대상으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제과업계도 비슷하다. 롯데웰푸드나 오리온과 같은 일부 기업을 빼면 투자자들에게 IR자료를 제공하는 회사가 드물다.

심지어 어떤 회사는 IR자료 확인을 위해 투자정보 탭으로 들어가 보니 오류가 나기도 했다. 접속이 불가능한 페이지라는 뜻은 그만큼 평소에도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처럼 여겨졌다.

공시라도 잘 하면 다행이다 싶다. 하지만 이마저도 무책임한 경우가 너무 많다.

제과업계의 한 회사는 최근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반 상승했다는 잠정실적 공시를 냈다. 공시에는 ‘매출액 또는 손익구조 변동 주요원인’을 기입하는 곳이 있는데 이 회사는 “매출 증가 및 수익성 개선에 따른 영업이익 변경”이라고 설명했다.

실적 변동의 이유를 설명하라는데 ‘실적이 변동해서 실적이 변동했음’이라고 적어놓은 꼴을 보니 실소가 터진다.

앞서 언급했듯 매출이 조 단위를 넘어간 회사라면 이런 행태는 이제 바꿔야 한다고 믿는다.

과거 회사 규모가 작았을 때는 미처 챙기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커진 덩치에 걸맞게 투자자들을 위한 책임있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사람이 부족해 IR자료를 따로 챙기지 못한다’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단계라는 뜻이다.

식음료업계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투자에 매력적인 업종이 아니다 보니 주식 시장에서 본인들이 소외돼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을 대하는 인색한 모습을 돌이켜봤으면 한다. 대표적인 저평가 업종이라는 세간의 인식부터 바꾸려면 투자자들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그 시작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