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덕수 국무총리(행정고시 8회)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25회), 김주현 금융위원장(25회), 최상목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29회) 등 윤석열정부 출범 초기 모피아(재무부처의 고위관료 출신 인사를 마피아에 빗대어 부르는 말)가 중용될 때만 해도 이례적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10년도 더 된 론스타 이슈가 주된 안건으로 떠올랐지만 모피아가 국내 경제정책을 이끄는 주요 자리에 중용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데스크리포트 2월] 금융위원장 이은 금감원장의 귀환, ‘올드 모피아’ 전성시대

▲ 정은보 전 금융위원장은 1월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내정돼 취임을 앞두고 있다.


국내 언론을 찾아보면 1990년대부터 모피아의 강한 영향력을 지적하는 기사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2004년 2월24일 ‘모피아’라는 제목의 대표 컬럼 ‘만물상’을 통해 모피아를 이렇게 소개한다.

“재경부 현직·퇴직 관료들이 똘똘 뭉쳐 선후배 간에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는 것이 마피아에 버금간다는 뜻.”

모피아는 그 이름부터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모피아는 30년 전인 1994년 경제기획원과 합쳐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재무부’의 영문명칭 ‘Ministry of Finance’의 약자인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해가 바뀐 2023년 초,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24회)이 민간 금융사인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가는 것이 확정됐을 때는 이례적 일로 다가왔다.

차관급이 민간 금융사 대표로 가는 일은 종종 있다지만 장관급인 금융위원장이 민간 금융사의 경영을 이끄는 대표이사로 가는 것은 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산업 선진화와 금융시장 안정,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금융권 최상위 행정기구다.

금융권에선 대통령 같은 존재인 금융위원장이 민간 금융사 수장으로 가다니, 더군다나 임종룡 회장은 행시 24회 출신으로 같은 모피아 출신인 경제부총리와 금융위원장, 대통령실 경제수석보다 선배다.

하지만 그때도 그러려니 했다. 우리금융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많다니까.

민간 대형 금융지주의 내부통제 강화부터 비은행사업 강화, 파벌다툼 해소까지 수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하기 위해선 더없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또 다시 해가 지나 지난해 말 김철주 전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29회)이 생명보험협회장에 오르고 올해 1월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28회)이 내정되는 걸 보니 확실해졌다.

금융감독원은 공정한 금융거래를 위해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2008년 금감원 출범 이후 금감원장 출신이 자신이 검사 감독하던 금융기관 수장으로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례적 인사가 연달아 나오다보니 모피아라는 말로 모든 걸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였다.

더 이상 모피아의 시대가 아니었다. 모피아 중에서도 많은 연륜을 지닌 ‘올드 모피아’의 시대였다.

위에 언급한 이들 중 행시 30회 이하는 아무도 없다. 현재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과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이 각각 행시 37회와 36기다. 현직 차관과 대부분 10회 이상 기수가 차이 난다.
 
[데스크리포트 2월] 금융위원장 이은 금감원장의 귀환, ‘올드 모피아’ 전성시대

▲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


임종룡 회장은 9년 전 이 맘 때인 2015년 2월 금융위원장에 내정됐고 그해 3월 금융위원장에 올랐다.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행시 22회로 임종룡 회장(24회)과 기수 차이가 2기에 그쳤다. 진웅섭 금감원장(28회),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26회), 방문규 기획재정부 2차관(28회)도 임 회장과 기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당시 총리는 법조계 출신인 정홍원 전 총리와 정치인 출신인 이완구 전 총리로 모피아도 아니었다.

100세 시대, 능력 있는 이들이 오랜 기간 중용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구축한 강력한 카르텔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며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해 역시 고금리시대 경제 금융상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H ELS(주가연계증권), 증시 부양 등 투자자 이슈도 만만찮다.

올드 모피아가 중용되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역량이 있고 과거 수많은 위기에 대처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드 모피아가 실력을 보여줄 판은 진즉에 깔려있다. 인사권이 없는 국민들은 미래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연륜을 기대할 뿐이다. 이한재 금융증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