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백브리핑] 이라크 신도시 공사에서 한화식 배짱 협상이 가능했던 이유

▲ 한화그룹이 중단했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사업의 전면재개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한화그룹이 지난 2022년 10월 전격 중단했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사업(수주금액 100억 달러, 약 13조 원)의 전면재개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소식이 연초에 전해졌다.
 
이라크측은 그동안 미뤄왔던 공사대금 2억3000만 달러를 최근 지급했다.

업계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 김동선 부사장이 해외사업본부장에 선임되면서 해외 건설 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되고 공사 장기 미수금이 일부 회수되면서 사업 재개를 점치는 분위기다. 

한화그룹이 2022년 당시 거액의 공사 미수금을 안은 상태에서 공사 전면중단을 결단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리고 1년여만에 공사재개쪽으로 분위기가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이라크 신도시 사업은 수도 바그다드 동남쪽에 위치한 비스마야 지역에 10만여 가구의 아파트와 사회기반시설 등 분당급 신도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사업부지가 여의도 면적의 6배에 이른다.

예상 거주인원은 60만 명으로 한국 기업의 해외건설 사상 최대규모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한화건설(현재 한화에 합병돼 건설사업부문으로 존재)이 수주협상을 진행할 당시 김승연 회장이 방탄조끼를 입고 이라크를 세차례나 방문했다.  

본격적으로 공사가 개시된 이후에는 한국인 현장 작업자들을 위해 광어회 600인분을 공수했을 정도로 한화그룹이 심혈을 기울인 해외사업이었다.
 
그러나 2015년 공사 착수 이후 약 3년동안 이라크 정부와 IS(이슬람국가무장단체)간 내전이 지속됐다.

2020년 들어서는 유가가 급락하면서 이라크 정부의 재정이 크게 악화됐다.

또 코로나19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준공시점이 2023년에서 2027년으로 미뤄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사대금 지급이 더뎠고 미수금이 8000억 원을 넘게 됐다.
 
한화그룹이 공사 전면중단을 선언한 것은 2022년 10월 무렵이다.

당시 한화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한화는 100% 완전자회사인 한화건설을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공사의 법적 주체가 한화로 바뀌기 때문에 건설계약의 권리 및 의무 승계를 위해서는 합병절차에 대한 발주처(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 NIC)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라크측이 공사비 삭감과 현지 고용인력 증가 등을 요구하며 합병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공사대금의 지급지연 또는 미지급 등으로 고민중이던 한화그룹은 이라크측의 이 같은 태도에 반발하며 공사 계약 해지를 전격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거액의 공사미수금에도 불구하고 사업철수를 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우선 공사대금 계약조건을 들 수 있다.

공사 선수금은 10%로 계약 시점에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중도금은 계약 뒤 24개월 안에 세차례(12개월, 18개월, 24개월 시점)에 걸쳐 각각 5%씩 모두 15%를 결제한다.

이렇게 본다면 공사대금의 25%가 공사진행 정도에 상관없이 결제시기가 도래하면 이라크측이 무조건 지급해야 하는 조건을 체결한 셈이다.

나머지 잔금 75%는 계약 후 1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매 4개월마다 공사진행(공사기성)에 따라 한화가 수령할 수 있었다.

공사선수금이 회계적으로 어떻게 처리되는지 볼 필요가 있다. 

A건설사가 오피스텔을 어떤 발주처에 지어주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자.

공사대금(도급액)은 100억 원, 공사기간은 3년(2021년초~2023년말)이고 선수금은 20억 원이다.
 
공사 1년차 말 공사진행율은 30%로 측정됐다. A는 도급액의 30%에 해당하는 30억 원을 발주처에 지급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선수금으로 받아놓은 20억 원이 있다.

따라서 20억 원의 30%인 6억 원은 공사대금을 회수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발주처에는 30억 원에서 6억 원을 차감한 24억 원만 청구(회계상 지급청구와 함께 공사미수금 발생)하면 되고 이는 연말에 발주처로부터 결제받아 공사미수금은 없어졌다. 
 
다른 조건은 변화가 없고 공사 2년차 말에 측정된 진행률은 20%였다고 해보자.

도급액의 20%인 20억 원을 발주처에 청구해야겠지만 역시 선수금의 20%인 4억 원은 회수한 것으로 처리하므로 16억 원(20억 원에서 4억 원 차감)의 공사미수금이 발생했다. 

이 상태에서 발주처에 책임이 있는 사유로 공사계약을 해지한다고 해보자.

공사를 하고도 못받은 미수금 잔액은 16억 원이다.

공사를 안 했지만 미리 받은 돈, 즉 선수금 잔액은 10억 원(총선수금 20억 원에서 1년차 6억 원과 2년차 4억 원을 뺀 나머지)이다.  

미수금과 선수금을 상계처리하면 최종 공사미수금은 16억 원이 아닌 6억 원으로 줄어든다.
 
한화가 공사중단을 결정할 무렵 공사미수금 잔액은 약 8200억 원 가량으로 집계됐다.

공사 선수금 잔액은 8000억 원 수준이었다.
 
미수금과 선수금을 상계한다면 최종 공사미수금은 200억 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선수금을 많이 받아놓았던 한화로서는 불안한 공사를 억지로 끌고갈 이유가 없었다.
 
한편 공사중단 이후에도 이라크측은 이런저런 채널을 통해 한화그룹과 대화를 이어왔다.

지난해 초 공식협상이 시작되었고 공사를 부분재개하여 10만 가구 중 3만 가구를 완공했다.

앞으로 공사 전면 재개가 결정된다면 남은 7만 가구 건설이 진행된다.

2023년 3분기 말 기준으로 한화의 재무제표에 잡혀있는 해외도급공사 계약잔액은 7조7000억 원 가량된다. 이 금액의 대부분이 비스마야 신도시 공사 잔액으로 추정된다.

공사가 재개되면 완공시점까지 매출로 인식할 수 있는 금액이 7조 원 이상 된다는 이야기다.
 
이라크는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신도시 건설자 금용 파이낸싱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 김동선 부사장이 한화의 해외사업담당 임원에 선임된 사실 등을 감안해 볼 때 이라크 공사 재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수헌 MTN 기업&경영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