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넷플릭스 창업자 헤이스팅스의 '미디어 시장 뽀개기'

▲ 넷플릭스 창업 아이디어는 공동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의 ‘기분 나쁜 경험’에서 비롯됐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40달러의 연체료(6주 연체)를 물게 되면서 ‘연체료 없는’ 사업 아이템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세상이 여전히 전통적인 DVD 배달에 집착하고 있을 때, 헤이스팅스는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이라는 디지털 영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다. <헤이스팅스 페이스북>

[비즈니스포스트] “변하려면 ‘변하면 안되는 것’을 찾아내면 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전략부문 편집자였던 조안 마그레타(Joan Magretta)는 저서 ‘경영이란 무엇인가(What Management Is)’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무엇이 변하지 않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OTT(Over The Top: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최강자 넷플릭스의 공동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63)라면 그 누구보다도 조안 마그레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이를 실천했을 것이다. 분명 그는 그렇게 했다. 헤이스팅스는 기존의 ‘변하면 안되는’ 전통을 일거에 무너트리는 변화(혁신)를 꾀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이렇다. 

빈지 와칭(Binge-Watching). 빈지(binge)는 폭식을 의미한다. 우리 말로 해석하면 ‘몰아보기’. 넷플릭스는 2013년 2월 오리지널(자체 생산)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를 내놓으면서 기존의 문법을 걷어찼다. 매력적일 수도 있고 도발적일 수도 있는 전략이었다. 

영국 드라마를 워싱턴 정가 이야기로 리메이크한 ‘하우스 오브 카드’가 공개되자마자 팬들은 열광했다. 작품성 때문일까? 

넷플릭스는 방영 시간을 설정해 간격을 두고 방송을 내보내는 TV 산업의 전통을 무시하고 13편의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공개했다. 시청자들이 몰아보기, 즉 빈지 와칭(Binge-Watching)을 하도록 한 것이다. 전례가 없는 ‘빈지 와칭’ 전략은 전통적인 방송 생산 및 소비 패턴에 대한 강한 도전이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크리에이터 보 윌리먼(Beau Willimon)은 당시 “우리의 목표는 미국의 일부를 하루 종일 폐쇄하는 것(Our goal is to shut down a portion of America for a whole day)”이라고 공언했다. 시청자들을 드라마 세계로 완전히 몰아넣고 다른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 

몰아보기는 시청자들이 매주 시리즈물을 보는 것보다 등장인물에 더 강한 애착을 갖게 한다는 분석도 있다.(‘넷플릭스 효과’, 케빈 맥도널드 외 공저, 한울아카데미) 넷플릭스의 이런 의도는 제대로 먹혔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공개된 지 한 달 만에 넷플릭스 고객들이 가장 많이 본 드라마가 됐다. 

이렇듯 넷플릭스 공동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취향과 욕구를 예측하는 데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게다가 그는 콘텐츠를 남들보다 효과적으로 마케팅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전략이 성공하면서 TV 수용 방식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몰아보기’는 시청자가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식과 미디어 회사가 콘텐츠를 배포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평가했다. 

넷플릭스가 몰고 온 지각변동의 영향력과 확장성은 다양한 산업 분야로 급속하게 이어지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넷플릭스 효과(Netflix Effect)’라 부른다. 포브스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몰아보기를 하면서 ‘무명의 배우가 하룻밤 사이에 유명해지는(unknown actor to fame–overnight)’것도 넷플릭스 효과 덕분”이라고 했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넷플릭스 창업자 헤이스팅스의 '미디어 시장 뽀개기'

▲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시장의 변화를 주도한 것은 2013년 ‘빈지 와칭(Binge-Watching)’, 즉 몰아보기 전략을 펼치면서부터다. 당시 첫 번째 오리지널 TV 시리즈인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의 13개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공개하면서 시장의 오랜 전통을 무너트렸다. 그해 말까지 넷플릭스 주가는 3배나 올랐다. <픽사베이>

리드 헤이스팅스의 또 다른 변화(혁신)는 ‘넷플릭스 프라이즈(Netflix Priz)’라는 외부 공모전에서도 잘 드러났다. 필자는 이를 헨리 체스브로(Henry Chesbrough) 교수(‘오픈 이노베이션’ 이론 창시자)의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이론과 연결시켜 보려 한다. 

2006년 1월, 넷플릭스는 뉴욕타임스에 1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공모전 개최를 발표하면서 “상금은 넷플릭스의 영화 추천 알고리즘인 ‘시네매치(Cinematch)’의 정확도를 10% 이상 개선하는 팀에게 주어진다”고 밝혔다. 시네매치는 회원들이 최고 등급(별점)을 부여할 가능성이 있는 영화를 추천해주는 시스템을 말한다. 

전 세계 언론이 넷플릭스 프라이즈 개최 소식을 앞다퉈 전하면서 참가팀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2009년 우승자가 결정될 때까지 186개국에서 무려 4만 팀 이상이 이름을 올렸다. ‘넷플릭스, 스타트업의 전설’(한빛비즈)을 쓴 저널리스트 지나 키팅은 당시 공모전의 열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100만 달러 상금은 데이터 마이닝 전문가뿐만 아니라 컴퓨터 공학자, 수학자, 소프트웨어 분야 실력자, 심지어 심리학자까지 끌어들였다.”

이 대열엔 ‘딥 러닝(Deep Learning)’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도 있었다. 힌턴 교수는 자신이 지도하던 대학원생 두 명과 함께 팀을 이뤘다. 

“나는 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토론토대 매거진)”고 했던 힌턴 교수는 단지 넷플릭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공모전 자체가 흥미로웠을 뿐이다. 

힌턴 교수까지 경쟁에 뛰어들면서 1위 싸움은 점입가경이었다. 다음 해인 2007년 1월 뉴욕타임스 기자는 “1위를 차지하고 있던 힌턴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내 그의 팀은 헝가리팀에 의해 2위로 밀려난 상태였다”고 전하기도 했다.(뉴욕타임스 2007. 01.31) 

공모전의 우승은 누구에게 돌아갔을까. 2009년 9월에야 우승팀이 결정됐는데 AT&T 연구소가 주축이 된 3개국의 연합팀이 주인공이었다. 우승팀이 경쟁 과정에서 얻은 기술은 넷플릭스에 귀속됐다. 

넷플릭스는 3년에 걸친 이 공모전으로 어떤 효과를 거뒀을까. 지나 키팅은 “마케팅과 첨단기술의 결합이 시네매치를 탄생시켰고 이는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포인트는 이런 거다. 넷플릭스는 당초 시네매치 개선 작업을 자체 기술진만으로 내부에서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밀리에 말이다. 하지만 창업자 헤이스팅스는 영리했다. 

그는 이를 외부 공모전 방식을 빌어 공개(open)했고 결국엔 남의 손(우승팀)을 빌려 혁신(innovation)을 이뤄냈다. 체스브로 교수가 주창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살짝 비트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빈지 와칭(몰아보기)과 넷플릭스 공모전은 헤이스팅스의 대표적인 ‘시장 뽀개기’ 전법이라 할 수 있다. 헤이스팅스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구루(Guru: 스승)’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롱테일(Long Tail)’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 전 와이어드 편집장)은 이렇게 말했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롱테일 연구 초기부터 나를 지지하며 자료를 제공해 주었을뿐만 아니라 롱테일 이론이 체계를 갖춘 의미있는 이론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롱테일 경제학’, 크리스 앤더슨 저, 랜덤하우스)

롱테일 이론은 기업의 매출 수요곡선에서 꼬리 부분이 점점 길어지는 걸 말한다. 구체적으로 수요곡선 꼬리 부분에 있는 인기 없는 상품들의 매출이 머리 부분의 상품(히트 상품) 매출에 버금가거나 훨씬 상회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성공한 넷플릭스 사례가 대표적인 ‘롱테일 현상’ 중 하나다.   

헤이스팅스, 그의 전략이 늘 적중했던 건 아니다. ‘퀵스터(Qwikster)’라는 사업은 재앙에 가까운 실패였다. DVD 대여 서비스(‘퀵스터’로 명명)와 스트리밍 서비스(기존 넷플릭스 이름 사용)를 분리하는 결정을 내렸다가 소비자들의 강한 반발로 원점으로 되돌린 경험이 있다. 

이젠 두 공동창업자 이야기. 리드 헤이스팅스가 두 살 위인 마크 랜돌프(Marc Bernays Randolph·65)와 넷플릭스를 함께 창업한 것이 1997년이다. 헤이스팅스가 최초 투자자였으며 초대 CEO는 랜돌프가 맡았다.(랜돌프는 2003년 넷플릭스를 떠났다)

둘은 대학에서 수학(헤이스팅스)과 지질학(랜돌프)을 전공했다. 인공지능에 관심이 컸던 헤이스팅스는 스탠포드대에서 컴퓨터 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주목할 건 랜돌프의 집안이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종조부(great-uncle)인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조카이자 흔히 ‘현대 PR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랜돌프에 따르면 아버지의 서재에는 프로이트의 커다란 사진 두 장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프로이트 독사진, 그리고 아내 마르타 버네이스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마크 랜돌프 저, (주)알피스페이스) 

1997년 DVD 우편배달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도입한 건 10년 후인 2007년부터다. 그리고 6년 후인 2013년엔 자체 콘텐츠인 ‘하우스 오브 카드’로 대박을 쳤다. 

이렇게 변화에 변화를 꿰한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시장의 제왕이 되면서 ‘콘텐츠 폭식자’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더 나아가 디즈니(디즈니플러스), HBO(HBO맥스), 애플(애플TV 플러스) 등이 합세하면서 OTT 시장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이뤘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넷플릭스 창업자 헤이스팅스의 '미디어 시장 뽀개기'

▲ 진공청소기 판매에서 미디어 시장 혁신까지. 리드 헤이스팅스는 고교 졸업 후 첫 직업으로 1년 넘게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진공청소기를 판매하는 세일즈맨을 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 경험을 통해 일에 대한 열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헤이스팅스 페이스북> 

넷플릭스의 성공 스토리는 헤이스팅스와 비즈니스 사상가 에린 마이어(INSEAD 조직행동 교수)가 공저로 펴낸 ‘No Rules Rules’(한국판 ‘규칙없음’, RHK)라는 책이 비교적 잘 설명하고 있다. 책 제목처럼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No Rules Rules)”이라는 말에 넷플릭스만의 독특한 문화가 배어 있다. 쓸데없는 규정과 규칙이 혁신을 더디게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넷플릭스엔 휴가 규정이 따로 없다. 자율적으로 상당 기간 휴가를 낼 수 있다. 다른 회사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유가 허용되지만 그만큼 더 큰 책임으로 이어진다. 넷플릭스 직원들은 이를 ‘F&R(Freedom and Responsibility: 자유와 책임)’이라고 부른다. 

솔직함과 개방성 그리고 피드백 문화를 중요시하는 넷플릭스지만 살벌한(?) 규정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적당한 성과를 내는 직원은 두둑한 퇴직금을 주고 내보낸다’라는 인사 규정이다. 넷플릭스에선 자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헤이스팅스의 어록도 좀 살펴봐야 하지 않겠는가. 두 가지만 ‘픽(pick)’.

먼저 “실패하면 선샤이닝(sunshining)하라”. 실패를 숨기지 말고 밝은 햇볕에 온몸을 드러내듯 공개하라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실패 사례를 귀담아 들으면서 직접 베팅할 용기를 키워야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혁신적인 문화를 기대할 수 있다.”

다음 어록을 보자. “Be big, fast, and flexible.(크게, 빠르게, 그리고 유연해져라)” 

헤이스팅스, 그는 특히 속도(fast)를 더 강조했다. “기업이 너무 빨리 움직여서 죽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너무 느리게 움직여서 죽는 경우는 자주 있다(Companies rarely die from moving too fast, and they frequently die from moving too slowly).”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