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하루 14명씩 술로 죽는 한국, 새해 금주 권하다

▲ 사람이 술을 먹다가 술이 사람을 먹게 된다, <픽사베이>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고 술에 관대하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세계적으로 많지만 한국 사람들은 유독 빠르게 많이 마신다. 한잔을 들고 몇 시간씩 대화하는 서양 문화와는 꽤 다른 폭음 문화가 있고, 술을 강권하는 권위주의적 문화도 아직 남아 있다. 

‘오늘 한번 먹고 죽어보자’라는 말을 건배사처럼 건네는 게 흔한 사회답게 술 먹고 벌어지는 사건 사고도 잦다. 연말 연초면 음주 운전자가 낸 사고 기사가 빠지질 않고 대학 신입생들이 환영회에서 술 마시다 죽는 사건들도 그간 꽤 많았다.

2022년 한국에서 술 때문에 사망한 사람이 모두 총 5033명에 달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하루 평균 14명 꼴이다. 술 취한 범죄자로 인한 타살 등의 간접적 원인은 제외하고 알코올성 간질환 등의 직접적 원인만 포함시킨 결과이다. 여성 사망자 증가율이 높아졌지만 4272명이 남자, 761명이 여자로 남성 사망자 수가 현격히 많다. 
 
필자 역시 20대 때는 술을 자주 마시고 폭음하는 문화를 답습했다. 90년대에 대학에 다녔는데 밤새도록 도서관 앞이든 잔디밭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다가 아침 수업에 들어가는 날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내내 억눌러 온 자유에 대한 갈망을 참 획일적인 방식으로 어리석게 풀어내던 시기였다. 

졸업 후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도 그런 폭음 문화는 이어졌다. 거의 매일이 회식이었고 늦게 출근해 늦게 퇴근하는 강사들이라 밤을 새며 술을 마시는 일이 흔했다.

사회생활 초년생이라서 그랬는지 이런 회식이 고되지만 동시에 재미있게도 느껴졌다. 선배들 사이에 껴서 같이 어울리면서 집단의 일부로 인정받는 듯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십여 년간의 폭음 문화를 결국은 끊어냈다. 서른 초반쯤 건강검진 결과에 몇 번씩 위염 진단이 나와 걱정하던 차에 술 먹고 빙판길에 넘어져 머리에 큰 혹을 하나 달게 된 다음부터다. 동료들 말에 의하면 뒤로 넘어진 뒤 몇 분간 정신을 못 차리고 누워 있더라고 했다. 순간 요즘 말로 술에 대한 ‘현타’가 꽤 세게 왔다. 

열심히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잘 살아보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면서 한쪽으론 이렇게 술로 인생을 태우고 있다니 이건 모순도 너무 큰 모순 아닌가. 이러다가 사고사라도 하면 얼마나 허무하겠나 싶어 아찔했다. ‘처음에는 내가 술을 먹지만 결국은 술이 나를 먹는다’는 말처럼 술에 잡아먹히면 안 되겠다, 끊자고 다짐했다. 

이런 생각으로 술자리, 회식 자리를 피하면서 폭음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머리에 큰 혹 하나를 단 덕에 술에 대해 늦게나마 철이든 셈이다. 

이후 건강관리는 조금씩 더 철저해졌고 몸이 가벼우니 일하고 일상 생활하는 데에도 전보다 덜 피곤하고 힘이 났다. 인간관계도 변했다. 술 권하고 밤새 노는 이들과는 멀어지고 대신 좀 더 내실 있고 성실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됐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면 공통된 성향이 더 진해지기 마련이다. 전에는 술도 안 마시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무슨 낙으로 사나, 재미없는 사람들이네’ 싶었지만, 지금은 많이 자주 마시는 사람들을 보며 ‘술밖에 낙이 없나? 재미없는 사람들이네’ 싶어진다.

점점 건강한 생활 습관에 관심을 두며 생활하다 보니 결국 미세먼지를 피해 조기 은퇴하고 캐나다 이민 길에까지 오르게 됐다. 지난 사십 년의 인생을 다 바꾸는 큰 변화였고 어느새 오 년이 지나는 동안 잘 적응하고 있다. 겨울과 봄 내내 하던 미세먼지 걱정 하나 없이 오 년을 보내면서 전에 달고 살던 비염, 인후통 등 호흡기질환도 말끔히 사라졌다.
 
[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하루 14명씩 술로 죽는 한국, 새해 금주 권하다

▲ 미세먼지 없는 캐나다의 초겨울 산책을 즐기고 있다. <캐나다홍작가>

지금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는 금주하는 게 더 편하다. 한국처럼 폭음하고 술을 강권하는 문화도 없을 뿐더러 다양한 각자 취향을 존중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라서다. 

지인 생일 파티, 크리스마스 파티에서도 술 대신 소다수나 과일주스를 마시는데 이런 선택이 모임 분위기를 흐릴 일도 없고 고깝게 보는 사람도 없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일이 있어도 와인이나 칵테일 대신에 주스나 차를 시킨다. 내 기호대로 주문하면 되지 남들 따라서 취향을 꾸며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술을 끊고 내 몸과 내 건강을 더 소중히 하기, 남들이 뭐라던 내 소신을 지키며 살기, 이런 삶 속에서 자기 신뢰와 자신감도 더 커져간다. 술값이 절약되고 인간관계가 한번 걸러져 정돈되는 것도 뒤따르는 장점이다.

곧 새해다. 이맘때가 되면 다들 지난 날들을 성찰하고 새해 결심도 새로 하게 된다. 이번에는 어떤 결심을 할 것인가? 

더 건강한 몸과 더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술을 줄이거나 끊어보겠다는 계획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두 팔 벌려 응원한다. 우리가 비록 술 권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고 이사님이 따라 주시는 한잔까지 과감히 거절하기는 힘들겠지만 우리가 거절하고 피할 수 있는 술자리도 분명 많다. 

세상을 컨트롤하고 주식시장을 컨트롤하는 것은 우리 역량 밖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확실한 하나가 있다. 바로 우리 몸이다.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성찰적이고 의지 강한 사람이 한번 되어 보자. 술·담배 끊고 나서 후회한 사람 없다지 않은가. 

모두에게 의미 있고 뜻 깊은 연말 연초가 되기를 희망한다. 끝으로 지난 1년 6개월간 조기은퇴자 파이어족의 칼럼을 연재할 수 있게 해준 비즈니스포스트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다른 준비들로 인해 이번 칼럼을 끝으로 연재를 마치게 돼 인사드린다. 캐나다홍 작가